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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저의 사랑스러운 전사여. 로도스의 오퍼레이터 분들은 정말로 상냥하시답니다. 특히나 이 광명 808이라는 음료는 최고입니다. 술로 인해 흐려졌던 정신을 이렇게나 맑게 해 주다니. 미노스의 축제도 이런 음료만 있다면 만취 상태의 황홀경과 지고의 지성을 갖춘 상태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테니 얼마나 즐거워질까요.”

 

“넌 머리에 들어있는 게 술 생각뿐이냐? 만취해 있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전장에도 못 나가게 되었으면 조금은 줄여 보려고 노력하는 게 어때?”

 

살카즈 호위님의 말에, 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첫 출전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술을 마시다가 다음 날 모든 오퍼레이터들이 용문으로 향한 이후에도 술이 깨지 않아 로도스에 남게 되었기 때문이죠.

 

“아아, 저의 사랑스럽고 용맹한 전사여. 당신은 뼈아픈 진실을 제게 들이대시는군요... 흑흑.”

 

“개소리 말고 이런 야심한 시각에 왜 네 방으로 나를 부른 건지 진짜 이유를 말해 볼래?”

 

“후후, 오늘은 저와 함께 어울려 주셨으면 해서 불렀답니다. 제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네, 바로 숨겨왔던 저의 소중한...”

 

“보나마나 술이겠지, 뭐.”

 

“그렇습니다. 술! 안 마시고는 못 배기겠어요!”

 

저는 로도스가 폐쇄 상태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가져온 영롱한 빛깔의 ‘빅 밥’ 1079년산을 꺼냈습니다.

 

“그 와중에 뭘 챙기고 앉아있나 했더니, 술이었냐?”

 

“보통 술이 아닙니다! 1079년은 기후가 적당해서 포도가 잘 익었죠. 게다가 이건 양조장 근처에 자생하는 원석충을 이용한 발효가 마지막으로 이루어졌던,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술을 로도스에서 썩히는 것은 술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예, 예. 다음 환자분, 들어오세요.”

 

“윽. 하지만 당신도 이걸 드셔 보시면 생각이 바뀔 겁니다!”

 

저는 자랑스럽게 병을 호위님께 내밀었지만, 그분께서는 시종일관 시큰둥한 표정이셨습니다.

 

“뭐, 네가 술 좋아하는 건 하루이틀 일은 아니니까 넘어가겠는데, 애초에 이거 진짜 맞아? 빅 밥이라면 몇 번 본 적 있어서 아는데, 이건 라벨 인쇄 상태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1079년산이라기에는 색이 약간 밝은데?”

 

“호오, 술친구 3년이면 빅 밥을 알아본다더니, 정말 그 말대로군요. 맞습니다. 이건 애주가들 사이에서 ‘빅 아담’이라고 불리는 빅 밥의 가품이죠. 애초에 이건 1089년산입니다. 하지만 처음 나올 당시에는 빅 밥과 너무도 닮아서 구분할 수 없었다고 하죠.”

 

“하긴, 진품이 로도스에 있을 리가 없지. 그런데 넌 그걸 알면서도 들고 온 거야?”

 

“물론이죠. 비록 가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아하는 술이랍니다. 오히려 빅 밥보다 좋아할지도 모르죠.”

 

용맹한 호위님은 잘 이해가 되시지 않는 듯한 표정이셨습니다. 아니, 사실 얼굴이 안 보여서 표정은 모르겠지만, 여튼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구만. 가품이 진품보다 가치 있다고 느끼다니.”

 

“아아, 저의 사랑스럽고 용맹하며 힘센 전사여. 물건의 가치는 그걸 원하는 사람이 부여하는 거랍니다. 하지만 이해가 잘 가시지 않는다면, 술과 함께 이야기를 들려드리죠.”

 

저는 두 개의 잔을 채우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옛날 미노스에, 테라에서 제일가는 도둑이 살았답니다. 이름은... 대도라고 하죠. 어느 날 대도는 새로 부임한 젊은 총독의 집에 인사를 갔답니다. 그는 무언가 훔칠 것이 없을까 둘러보면서 총독에게 자신의 여러 재주를 보여주어 환심을 샀죠.”

 

“전형적인 사기꾼들의 행동이로군. 표적과 신뢰 관계를 쌓은 뒤 한 순간에 벗겨먹지.”

 

“그런데, 총독은 대도가 이곳에서 도둑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에 부임한 것이었죠. 총독은 대도의 여러 재주를 보고 그가 능력이 있지만 단지 즐거움을 위해 도둑질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죠. 총독은 그에게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황금 동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의 보물을 보여주었다고? 어째서?”

 

“그는 이렇게 말했죠. ‘이 황금 동상은 나의 자랑이라네. 매일 그 모습을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달라진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지. 동상은 그야말로 완전무결해서 달라진 부분을 찾기는 더없이 쉽지만 말일세.’ 그리고 대도는 반드시 동상을 훔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집에 돌아가 가짜를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황금을 사다가 하루는 머리를 만들어 총독의 저택에 있는 동상과 바꾸고, 하루는 팔을 만들어 바꾸고... 그렇게 발가락까지 모든 부분을 바꿔치기했을 때, 대도는 자신이 동상을 훔쳤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뭐야, 그걸로 끝이야? 총독이 중간에 알아차리지도 않았어?”

 

“아직 이야기는 끝이 아닙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도 동상이 바뀐 것을 알지 못하자 대도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습니다. 총독의 저책에 가서 일부러 동상을 보면서 멋있다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죠. 하지만 총독은 그 말에 맞장구치며 빙그레 웃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한 달이 지나자 대도는 자신의 도둑질을 마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상이 되었죠. 결국 그는 총독을 자신의 작업실로 데리고 가 훔쳐낸 동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자, 총독이 어떻게 했을까요?”

 

“그야 당장에 대도를 체포했겠지. 그러려고 온 거니까.”

 

호위님의 순진한 대답에 저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총독은 대도를 칭찬했습니다. ‘자네의 복제 실력은 실로 대단하군. 이래서야 내 저택에 있는 진품과 구별할 수도 없겠어.’ 대도는 울상이 되어서 말했죠. ‘총독님, 이게 총독님 저택에 있던 동상입니다! 저택에 가지고 계신 동상은 제가 만든 가짜고요. 그토록 자랑하시던 동상은 여기 있단 말입니다!’ 총독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죠. ‘좋아, 그러면 묻겠네. 자네는 그 동상을 어떻게 만들었나?’ ‘그야 황금을 녹여서 만들었지요. 진짜와 똑같은 무게와 똑같은 빛을 내야 구별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모양도 똑같이 만들었겠군.’ ‘두말하면 잔소리죠. 조금이라도 다르면 바뀐 것을 눈치 채고 맙니다.’ ‘그러면 묻겠네. 모양도, 무게도, 재료도 같다면 두 동상은 무엇이 다른가?’ ‘하나는 제가 만들었죠. 저도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하나는 제가 만들었습니다.’ 자.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이제 이해가 좀 되시나요?”

 

“그래. 술의 맛도, 색도, 포장도 같다면 그건 같은 술이라는 거지. 하지만 이건 다른 술이라는 게 눈에 보이잖아?”

 

“처음 만들어질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진품과 차이가 생긴 거죠. 대도의 말대로 하나는 가품입니다. 구분하기 힘들다고 가품이 진품이 되지는 않죠. 하지만 저는 진품을 완벽히 모방한 가품에는 진품의 가치에 그 노력만큼의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맛도 더 좋고 말이죠.”

 

잔을 들어 부드럽게 넘어가는 와인의 맛과 향을 음미하며, 저는 황홀함에 빠져들었습니다.

 

“뭐, 술 한 잔과 함께 듣기에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네. 재미있었어. 보답으로 나도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도록 할까.”

 

“좋습니다! 좋아요! 이야기! 듣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군요!”

 

호위님은 살며시 웃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어. 편의상 앨리스와 밥이라고 하자. 앨리스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밥이 자신을 흔들면서 깨우고 있었지. 어서 길을 나서야 한다면서 말이야. 그런데 앨리스는 너무 졸려서 당장이라도 다시 잠들어 버릴 것 같은 거지. 그래서 밥에게 졸음을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지.”

 

“아, 알겠습니다! 졸음을 깰 때는 술이 최고죠!”

 

“비슷하지만 아니야. 밥은 앨리스에게 양을 세면 된다고 말해 줬어. 한 마리, 두 마리... 양을 세던 앨리스는 더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지. 세 마리, 네 마리... 계속 졸려져만 오던 앨리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밥을 보자, 그는 낄낄대며 웃고 있었어. 앨리스는 그제서야 속은 걸 알고서는 밥을 나무랐지.”

 

“뭐, 장난 정도는 칠 수도 있죠.”

 

“맞아. 그래서 앨리스는 장난치지 말라고 하고서는 다시 졸음을 쫓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어. 그러자 밥은 손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해 보라고 했지. 앨리스가 손을 쥐락펴락하자, 처음에는 졸음이 사라져 가다가 나중에는 점점 졸려오기 시작했어... 그리고 밥은 킥킥대며 웃고 있었지. 뭔가 섬뜩함을 느낀 앨리스가 밥을 유심히 바라보던 순간...”

 

저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섬뜩한 긴장감을 느끼면서 말이죠.

 

“앨리스는 잠에서 깨어났어. 그리고 옆에는... 자신을 흔들어서 깨우고 있는 밥이 있었지.”

 

“와악! 너무 무섭습니다! 술이 확 깨겠어요!”

 

저는 정신이 무척이나 맑아졌지만, 어째서인지 호위님의 얼굴이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어, 어라...? 으으... 너무 마셨나...”

 

“...라스 씨.”

 

“팔라스 씨!”

 

“와앗! 여, 여기는 어디죠? 저는 분명히 호위님과 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눈을 떴을 때, 저는 로도스의 의무실에 와 있었습니다.

 

“여긴 의무실이예요. 저녁 식사 때 너무 과음하셨어요. 지금은 벌써 자정이 다 되어갑니다.”

 

“으으... 죄송합니다. 와인이 너무 맛있어서 그만...”

 

“이거라도 드시고 정신 차리세요.”

 

상냥한 의료부 오퍼레이터 분께서 건네주신 캔에는 ‘광명 808’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남김없이 전부 마시자, 놀랍게도 숙취는 전부 사라지고 머리가 깨끗하게 맑아졌습니다.

 

“와, 머리가 맑아졌습니다. 이 음료는 정말 효과가 좋군요.”

 

“정신 차리셨으면 이만 들어가 보세요. 곧 자정이니까.”

 

다시 감사 인사를 전하고, 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에 돌아왔습니다. 로도스에 있으면 있을수록, 모두의 친절함이 너무나도 따스해서 마치 고향에 개선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죠.

 

“아아, 저의 호위님! 방에 계신가요?”

 

호위님의 방문을 두들기자, 잠시 후 호위님께서 간단히 옷을 입고 나오셨습니다.

 

“뭐야, 술은 다 깼냐? 그러기에 작작 좀 마시라니까...”

 

“후후, 저를 걱정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 제 방으로 와주실 수 있나요?”

 

“아, 뭔데? 또 쓸데없는 일은 아니지?”

 

“그런 말씀 마시고. 자, 용사여. 부디 제 방으로 오시죠,”

 

저는 거의 호위님을 잡아끌듯 하면서 제 방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래서, 아까 의료부에 실려가는 것 같던데, 네 간은 괜찮대?”

 

“아아, 저의 사랑스러운 전사여. 로도스의 오퍼레이터 분들은 정말로 상냥하시답니다. 특히나 이 광명 808이라는 음료는 최고입니다. 술로 인해 흐려졌던 정신을 이렇게나 맑게 해 주다니. 미노스의 축제도 이런 음료만 있다면 만취 상태의 황홀경과 지고의 지성을 갖춘 상태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을 테니 얼마나 즐거워질까요.”

 

“넌 머리에 들어있는 게 술 생각뿐이냐? 만취해 있어서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전장에도 못 나가게 되었으면 조금은 줄여 보려고 노력하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