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 날이 왔다.

이 세상의 유일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날이.

그리고 로도스가 무너지는 날이.




과거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던 로도스의 본함은 이미 검은 화마로 인해 활활타버린 폐허가 된지 오래였다. 그 주변에는 검게 타버린 잔해더미들과 시체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구 형태로 뭉개져버린 시체.

사선으로 갈라진 시체.

숯덩어리처럼 검게 그을린 시체.

내장이 전부 튀어나온 시체.

전부 가지각색의 모양의 시체들은 검은 불이 장식하고 있는 폐허를 한 층 더 독보이게 만드는 향신료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시체들은 검은 힘에 휩쓸려 시체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사람들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자가 검은 화마 속에서 걸어나오며, 모습을 드러냈다.

우뚝 서있는 뒤 귀 위에 뜬 작은 왕관과 왼팔에 검은 무장을 한 채 검은 검을 쥔 한 카우스트 소녀의 주위로 검은 아우라가 맴돌았다.

한 때 로도스라는 제약회사를 이끌었던 리더이자, 아미야라는 이름의 작고어린 소녀였던, 지금은 마왕이라고 불리는 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새까맣게 탄 시체 한 구를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몇 가닥 되지도 않는 녹색 머리카락과 갈기갈기 찢어진 녹색 천 조각들이였던 것들이 있었다.


'' .........끈질긴 년 같으니라고. ''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



–삐걱


로도스 본함에 유일하게 서있는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어린 마왕에게 익숙한 광경이 펼처졌다.

깜박거리는 전등, 림 빌리턴산 나무로 만든 책상, 그 위에 어질러진 수많은 종이더미, 그리고 집무실 안에 앉아서 자신의 생명을 오염시킬 소녀를 기다리는 검은 후두를 뒤집어 쓴 한 여성.

박사는 그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듯한 손짓을 했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녹색 머리의 두 눈이 뽑힌 필라인족의 잘린 머리를 책상 위에 놓았다. 자른지 얼마 안 된건지 목 아래로 피웅덩이가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 .... ''


박사는 덤덤하게 자신의 동료였던 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곤 천천히 검은 후두를 벗은 그녀는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어린 마왕을 바라보았다.


'' 결국 이렇게 될 줄은 알고있었지만.....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니? ''


박사가 마침내 입을 열자 어린 마왕, 아니 아미야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 불경했으니까. ''


그녀의 말투 속에는 하나하나에 분노가 서려있었다.


'' .......그들이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


그녀는 왼손에 검은 대검을 소환했다. 검은 아우라와 악함이 가득찬 검을, 오직 단 한 사람의 생명을 뺐기 위한 검을.


'' 그리고.....당신을 망가뜨렸으니....까 ''

'' .....그러니...? ''


박사는 반쯤 체념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너에게 한 마디 해도 되겠니? ''

'' .....뭔가요? ''


이미 정해진 결말임을 알고있는 어린 마왕은 자신의 손아귀에 있는 최후의 기사에게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아무리 원망스러운 자였어도 한때 그녀와 함께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순 없으니까.


'' 너는 마왕이면서 모든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지 않니? 네가 생각하기에 나의 용사님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니, 나의 작은 마왕아? ''


-달칵


'' ....!!! ''

'' 바로 너의 앞에 있단다, 아미야. ''


그리고 잠시뒤 작은 점 하나가 엄청나게 큰 흰 빛과 굉음을 내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



'' ......그녀가 성공한 모양입니다, 프리스티스. 하지만..... ''

'' .......결국 이번에도 실패인 건가... ''

'' 그렇습니다. 저 로도스 아일랜드라는 단체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국가들이 파괴되었거든요. 이거 아예 새로 갈아끼워야 될 판입니다. ''

'' .... ''


어느 지하벙커 속에서 두 남녀가 화면에 전송된 큰 버섯구름을 보며, 낙담했다.


'' 어쩔 수 없었어요, 프리스티스. 로도스 사람들의 일은 유감이지만...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지요. ''

'' 후....그래. 항상 해왔던 것처럼 할 수 밖에. 위에선 뭐라고 하셨어? ''

'' 똑같죠 뭐. 다시 리셋시키랍니다. ''

'' 그래 알았어. 남아있는 작업팀 전부 호출시켜. 다시 한 번 테라를 재건시켜 보자고. ''

'' 이거 점점 일이 늘어나는건 기분탓이겠지요? ''


두 남녀는 화면을 끄고 벙커 입구를 통해 나갔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