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아일랜드는 이동기지이자 집이요, 하나의 마을이다. 몇 달간은 보급 없이 생활해야 하는 상황도 상정해 자급자족이 가능한 설비와 독자적인 경제를 가질 정도가 되었다.

단지 사람이란 그저 의식주, 최소한의 욕구 충족만으로는 부족한 생물. 더군다나 죽음과 가까운 일을 하기에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이유가 필요하다.

여기서 오락, 휴식이 중요해진다― 특히 적당한 알코올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함내에 몇 군데 설치된 공용 바 에리어 중 하나. 이미 CLOSE 태그가 걸려있는 문을 연다. 짤랑짤랑, 고풍스러운 도어벨 소리.

바 카운터에서 리베리 족 소녀가 잔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미안, 조금 늦었어"



잠시 잔을 닦던 가느다란 손가락 끝이 멈추고, 기본적으로 머리색과 같으나 약간 회색빛 또한 섞인 검은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는다.



"으응, 와줬으니까 괜찮아. 박사, 어서 와."



그녀는 평소처럼 그렇게 말했다.

이곳은 그녀의 제2의 집― 원래는 다목적실이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볼리바르풍의 그녀가 바라는 인테리어, 가게로 바뀌었기 때문인가. 



"박사, 대답은?"


"그래. 나 왔어, 라 플루마."


"다시"


"어?"


"코드네임은 내 이름이 아닌데?"


"그래... 나 왔어, 라파엘라."


"응, 어서 와. 박사. 어서 앉아. 오래 기다렸어." 



카운터 앞 일곱 자리 중 가운데 앉았다. 안주로 작은 접시에 담긴 짭조름한 믹스넛이 나온다. 내게 준비된 특등석이다.

 

코드네임 라 플루마. 볼리바르어로 날개를 의미한다고 한다. 본명 라파엘라 실비아. 이 검은 리베리 소녀와의 만남은 로도스 멤버가 된 첸의 추천에 따른 것이었다.

볼리바르령의 관광 도시 도솔레스에서 발생한 사건의 원인 중 한 명이라고 했기에, 인사부는 그녀가 오퍼레이터로서 로도스에 들어오는 것에 반발했었다. 

허나 이곳에는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들어온 사람이 더 적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는 이도 있다. 게다가 그 첸이 추천한 인물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사부가 너무 걱정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작전을 계기로, 나도 나름대로 그녀에게 다른 종류의 걱정을 품게 되었다.


약의 교역 루트를 방해하는 도적단―사실은 다른 제약회사가 방해를 위해 고용한 이들이었지만― 토벌 작전. 

임무 자체는 단순했지만 살카즈 용병들도 섞여있었기에 상황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승리는 확정적이었으나 소대 하나를 미끼로 사용해야 했다. 심지어 중상 가능성도 있었다. 

살카즈의 공격을 여유롭게 흘려낼 수 있는 기동력 높은 오퍼레이터들이 있었다면 손실 없이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이가 당시에는 부족했다.



"박사님, 곤란해? 내가 갈까?"



당시 오퍼레이터로 막 들어온 상태였던 라파엘라가 그렇게 말했다.

고마운 제의였다. 데이터상으로도 적합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전원이 무사히 돌아오려면 단 한 번의 연계 실수조차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괜찮아. 지시만 해준다면 그걸 이루는 게 내 역할이니까."



고민했다. 하지만 천천히 생각하고 음미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그녀의 신뢰를 바라는 듯한 말을 믿기로 했다. 

그 결과, 그녀는 나의 지시를 모두 완벽하게 수행하여, 아무도 다치지 않고 작전은 무사히 종료되었다. 그 일은 신인 오퍼레이터의 높은 포텐셜이 입증된, 훌륭한 미담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응, 역시 아무 생각 안 해도 되는 게 좋아."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아츠 폭풍에 뛰어들어 몸을 적들의 피로 적신 모습으로.

실력에서 오는 여유? 투쟁에 대한 갈망? 그 어떤 것도 아닌, 다른 오퍼레이터들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선 나는 그 위화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내버려두는 것은 위험하다. 지휘나 오퍼레이터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좀 더 그녀를 알 필요가 있다. 그러니, 그녀와 커뮤니케이션의 빈도를 늘려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쨍그랑. 가벼운 소리가 사고의 바다에서 날 끌어올린다. 라파엘라가 카운터에 놓인 유리잔 안으로 둥근 얼음을 떨어뜨리는 소리다.

오렌지를 반으로 잘라 그 안의 과육을 한번 더 잘라내 착즙기 스퀴저에 반씩 대고 정성스럽게 과즙을 짜낸다. 이어 흰색 병에서 모래시계형 계량컵으로 무색 투명한 액체를 붓는다. 

그것들이 잔 안에서 빙글빙글 머들러로 뒤섞이고, 어느새 준비되어 있던 오렌지 껍질 장식이 잔 가장자리에 꽂힌다.



"여기, 스크루드라이버." 


"고마워. 언제 봐도 훌륭한 솜씨군."


"그런가? 박사도 배우면 금방 할 수 있을 거야"



칵테일을 잘 만든다면서? 라고 내가 접촉하려던 것보다 빨리 라파엘라가 다가왔다.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게 취미라고 알려준 뒤 이렇게 바에 초대돼 칵테일을 대접받는다.

처음 왔을 때부터 매번 첫 잔은 스크루드라이버였다. 보드카가 든 오렌지 주스지만 그만큼 마시기 쉽다.

갓 짜낸 오렌지의 상큼함이 입안에서 터져 나온다. 짭조름한 견과류와 함께 먹으니 달콤함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데 박사, 여기에서는 아무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여기는 즐기는 장소니까"


"미안미안... 버릇 때문인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일 생각이야?"


"보통은. 그 외에도 고민할 게 많지만"


"일이 안 끝나―라며 방에서도 못 쉬고 있겠네"



처음에는 라파엘라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온화하고 자기주장을 잘 하지 않는 그녀는, 나 이외에도 이런 식으로 손님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한다. 그녀의 칵테일 솜씨와 맞물려 그녀가 바에 나오는 날은 특히 장사가 잘 된다고 클로저와 술을 좋아하는 오퍼레이터들에게 들은 적이 있다.

본인이 말하기를,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는 것 같다.



"드디어 끝났나 했더니, 바로 의료부 결재 업무가 생기는 거야."


"황급히 박사 방으로 서류더미를 들고 가던 사람이 있었는데......"


"아, 그거 맞을 거야. 항상 좀 쉬려고 하면 오더라고"



솔직히 기습과 마찬가지다. 어떤 의미로 작전 중 기습보다도 더욱 대처가 힘들다. 작전 중에는 항상 신경을 쓰고 있지만, 일은 방심한 상태나 마찬가지니까.

남아 있던 스크루드라이버를 들이켰다.



"그럼 이게 좋으려나"



라파엘라의 시선이 빽빽이 포스트잇들이 튀어나온 책 속을 뒤적인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칵테일 가이드북인 것 같지만, 낡은 기색과 그녀의 추가 메모가 들어간 정도로 보아 이제 그녀 오리지널 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새 잔에 각얼음이 두개. 머들러로 휘젓는다. 빠르게 회전하는 얼음에서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잔을 차갑게 하는 사전 준비며 제조에 잡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프로라고 들었다.

그녀가 다시 흰 병을 꺼내든다. 하지만 아까와는 라벨이 달랐다. 보드카가 아니다. 



"테킬라?"


"정답. 오빠 아니고 진짜 테킬라. 후후"



미소를 띤 상쾌한 남자. 그러고 보니 그도 술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고 했다. 남매 모두 술에 해박하다는 것은 환락과 유희에 특화된 도솔레스에서 자란 것 때문일까.

와인보다 더 진한 걸쭉한 붉은 액체가 테킬라에 이어 잔에 쏟아진다. 투명한 테킬라에 짙은 붉은색이 녹아드는 순간은 다소 섬뜩함이 있었다.

녹색 라임을 짜 넣은 뒤 다시 머들러로 섞는다.



"점성도 내용물도 비중도 다들 다르니까 잘 섞지 않으면 흩어져버려. 빙글빙글~ 뱅글뱅글~"



칵테일을 만드는 동안에는 라파엘라의 말이 조금 많아진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병에 든 진저에일. 탄산이 빠지지 않도록 천천히 붓는다. 얼음이 돌아가고 머들러가 두 바퀴 반. 적갈색 빛 칵테일이 완성되었다.



"엘 디아블로. 악마의 칵테일이래. 무서워~"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어떤 맛일지 조금 긴장했지만 스크루드라이버만큼이나 마시기 쉬웠다. 하지만 뭘까? 신 맛. 하지만 포도나 오렌지, 라임도 아니다.



"맛있는걸. ...빨간 건 뭐였어?"


"카시스야"



들으니까 알겠다. 평소 별로 입에 대지 않으니 느끼지 못한 것 같다.

진저에일의 매콤함과 탄산으로 목넘김도 좋아 술술 들어간다.



"참고로, 마시기 쉬워서 큰일도 나니 쉬우니까 악마 칵테일이래"


"확실히 그렇군. 조심해야겠어"



테킬라는 보드카와 비슷한 도수였던 것 같다. 블레이즈에게 샷을 먹였을 때보단 낫지만, 안정된 정신상태 탓인지 몸이 따뜻해졌다. 기분도 슬슬 좋아지고 있다.



"박사, 슬슬 괜찮을까?"



으응, 카운터 너머로 라파엘라의 작은 입술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의 옅게 빛나는 연분홍색과 마주칠 때마다 매번 덜컥 놀라게 된다.



"오늘은 안 하면 안될까?"


"안 돼."



진지한 눈빛과 어조에 도망갈 곳이 없다. 믹스넛을 하나 집어 올려 그녀의 입에 물려준다. 

손끝으로 부드럽고 말랑한 입술이 뭉클 달라붙는다. 그녀가 혀로 견과류를 가져가 오독오독 씹는다.



"으응ー 역시 평범하게 먹는 것보다 맛있어. 하나 더"



배가 고프니까 하나만 먹여줘도 되냐고 물어본 게 시작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손이 젖어있어서 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전제따윈 날려버린지 오래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녀의 입으로 가져간다.



"박사 손 따뜻해. 맛있어지고 따뜻한 마법의 손인가봐."



다음, 다음. 접시가 비워지는 건 눈 깜짝할 새다.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르는 건 만족했다는 신호. 몸짓으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작은 동물에게 먹이를 준 것 같은 기분이다.



"식당에서 밥 먹을 때도 먹여줬으면 좋겠어"


"그건 좀..."


"안 돼?"


"식당에서 그런 짓을 하면 다들 놀랄 거야"


"그럼 둘만 있으면 해도 되는 거야?"



고개를 작게 갸웃거리며 물어보는 그녀. 



"뭐, 그렇게 말하면 그런가..."


"그렇구나"



확실히 둘만이라면 지금같은 관계도 변하지 않고 나름 괜찮지 않을까...?



"에헤헤, 해냈다. 그럼 방에 종종 들를게. 그때 먹여줘."



왠지 대단한 것에 동의해버린 것 같다, 뭐 그녀가 좋다면 문제 없을 것이다. 아마. 



"요즘, 박사 많이 피곤하지 않아?"



세 잔째. 화이트 러시안이라는 커피 리큐어에 생크림을 두 층 얹은 칵테일.



"그건 뭐, 항상 그렇지"



농담과 함께 잔을 들이킨다. 겉모습대로 우유 느낌이 강한 카페라떼 같은 칵테일이었다.

라파엘라가 만드는 것들은 모두 마시기 쉽고 단맛이 많다. 매운맛과 단맛 어느 쪽이 좋냐고 하면 단 것이다. 어느샌가 완전히 내 취향을 파악해 버렸다.



"정말, 그건 그렇지만... 평소에도 피곤하면서, 오늘도 너무 피곤해~ 라니. 너무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가 펑크난 건 아닐까나"


"정신적 피로란 말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



오늘도 그랬지만, 최근 섬세함을 요구하는 거래 관련 일이 많았다.

상대의 의도를 헤아려야만 한다, 전쟁터든 서류든 상황을 읽고 예측하는 능력은 어디에서든 요구된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꽤 편한 느낌이 들고 있어"



그녀와의 시간은 아주 도움이 된다.

잘 시간도 갖고 싶지만 무엇보다 여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집무실에 있으면 누군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집무실이 아닌 자신의 방까지 찾아오기도 한다.

이 바는 은신처 같은 것이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스스럼없이 쉬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으응, 아직 부족한 것 같아"


"부족하다니?"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해야지. 여기 사람들은 악착같이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아. 특히 박사는."


"일을 많이 하지"


"그거야"



정성스럽게 닦인 은색 쉐이커에 내 얼굴이 비친다.



"이렇게 말이야, 점점 일이 계속 늘어가는 거야"



셰이커 안에 얼음이 담긴다. 박쥐 모양 심벌과 갈색 병의 두 내용물과 짜낸 레몬즙이 더해진다.



"내용물은 아무도 몰라. 박사도, 상대도. 아직 제대로 안 섞였을까~ 하고 생각만 해"



뚜껑이 닫힌 쉐이커를 양손으로 잡고 흔들기 시작한다.

달칵달칵, 기분 좋은 소리가 난다. 



"그러다가 깨달았을 때에는―"



미리 차갑게 식혀진 새 칵테일잔에 라파엘라가 셰이커를 수직으로 내린다.



"―이렇게 되는 거야"



힘차게 흘러나온 옅은 우윳빛 액체는 유리잔의 가장자리 끝까지 가득 차올랐다.



"XYZ. 마지막이란 뜻이야. 그런 의미로 이 칵테일만 있으면 되는 거야"



손으로 조심스럽게 옮기려 해도 분명 흘러넘칠 것이다. 아니, 표면장력으로 유지하고 있을 뿐 수면은 이미 둥그스름한 상태, 이미 흘러내렸다고 해도 좋다.



"이렇게 되면 힘들지? 일 같은 건 싹 잊고 멍하니 비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계는 갑자기 오는 법,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깊게 뿌리박힌, 짐작이 가는 부분이 떠오른다. 보다 근본적인 부분. 복잡한 일 중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하는 부분은 분명 있다.



"라파엘라의 말이 맞아... 제대로 휴가 낼게"


"응응. 맞아, 그럼 내 휴가랑 맞춰줬으면 좋겠어, 같이 나가자? 호위라면 맡겨."


"그래, 알았어. 신경 써줘서 고마워"


"괜찮아. 나도 오랜만에 바깥 공기 마시고 싶었고, 시간도 남으니까"



수줍어하는 라파엘라. 그 순수하고 해맑은 미소만 봐도 마음이 가벼워진다.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도 많이 지쳐있던 것일까. 



"그러고보니... 이거 어떻게 마셔야 하지?"


"흐흐, 어렵게 생각하면 안돼. 이렇게 하면 돼"



쯉, 라파엘라는 고개를 숙여 유리잔에 달라붙었다.

내용물이 약간 줄었다. 이젠 들어올려 마셔도 문제없다. 없지만―



"네, 받으세요. 너무 시면 안 되지만... 오늘은 특별히, 레몬을 강하게 넣었어. 피로회복에 딱"



잔을 건네오는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그녀는 신경 쓰지 않고 있는 것이리라. 잔을 받아들이고 단숨에 들이켰다.

신 맛이 지친 몸에 확실하게 스며들었다.



***



"박사~... 방에 도착했어ー"


새근새근 잘 자고 있는 건 안심이지만, 대답해주지 않는 건 그것대로 쓸쓸하네.

침대 위 놓인 담요는 엉망진창이었어. 일어났을 때 그대로였겠구나. 코트를 벗기고 천천히 눕힌다. 부츠도 잊지 않고.

나도 옷을 다 벗었어. 난방을 켜놓지 않아서 방이 쌀쌀하네.

추울수록 사람의 살갗이 따뜻함을 잘 느낄 수 있어. 침대로 들어가자. 싱글 사이즈에 둘은 역시 좁아. 높은 사람이니까 좀 더 큰 걸 준비해 줬으면 좋겠는데, 작은 만큼 꼭 달라붙어야 하니까 이건 이거대로 괜찮을까?

색색 숨결이 느껴질 정도의 거리. 껴안으면 좀 간지러운 정도. 그렇지만 더욱 세게 안아버려.



"으응ー 박사, 따뜻해"



문지른 볼이 따끈따끈해. 그렇겠지, 그렇게 술을 마셔버렸는걸.

XYZ로 끝― 이라고 하고 싶었는데, 그때부터 계속 더 마셔버리다니. 점점 술이 세지네. 기뻐. 

그렇다고 많이 마시면 안 돼. 칵테일에 들어있던 보드카나 테킬라, 럼 같은 건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어지러워지니까. 마시기 쉽게 해서 먹인 건 나지만.



"행복해..."



이불 속이 점점 따뜻해지고 있어. 푹신푹신한 촉감도 기분 좋아.

행복이란 이런 걸 말하나봐.



"박사는 대단해. 아무 생각 없이 좋아지는 것만 해도 대단한데, 같이 있기만 해도 둥실둥실하고 폭신폭신해져."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 첸 씨가 확실하다고 말하던 사람이라 궁금했지만 새까맣고 유령 같은 사람이고 전혀 강해보이지 않았다. 도솔레스에서 본 위험해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아빠랑 완전 달랐다. 그렇지만, 작전지휘를 하는 모습이 너무 아빠랑 닮아서 안심이 되었다.



라 플루마. 너를 믿을 테니, 나를 믿어줬으면 해.



처음 오퍼레이터로서 작전에 참가했던 때를 잊을 수 없다.

위험하다고 했지만 지시대로만 하니 아무 문제 없었다. 아무 생각 없어도 잘 된다. 나오는 적의 위치도 어떤 공격이 오는지도 모두 알려준 대로 됐다.

싸우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쓰인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써줄 수도 있다고, 내가 모르는 나를 가르쳐주었다.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상이 이런 것일까 알 것 같았다.

믿는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도솔레스에서 나가도 괜찮을까 여러가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전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좀 더 박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무실에서 일할 때는 꿍ー하니. 

그런가 하면 다른 이들의 상담도 진지하게 들어준다. 저 바도 알려줬어.

술에는 꽤 강하고 단맛을 좋아한다. 

칵테일을 만드는 나를 보는 눈은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고 즐거울 것 같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믿고 따르는 인기인. 


맞아. 따라가고 싶어져. 매일매일 꼭 누군가와 함께 있어. 다들 당신에게 이끌리는 것 같아. 나도 그러니까.

그렇지만, 그게 더욱 짙어지고 있다.



"너무 생각이 많다고 말했는데 나도 그렇게 돼버렸어. 계속 생각나. 당신이"



어떻게 하면 나를 더 봐줄까? 옆에 있을 수 있을까?

바에서 당신 얘기가 나오면 정신이 팔려버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지 말고 나를 써줬으면 좋겠어. 믿음직하지 못한 걸까 괴로워져. 

이렇게 붙어 있으면 굉장히 안심되지만, 떨어지면 너무나 외로워져.


독차지하고 싶어. 다른 이보다 나를 봤으면 좋겠어.

좀 더 써줬으면 좋겠어. 너를 위해서라면, 더 힘낼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나만 이러는 건 쓸쓸해"



박사의 입술을 쪼았다. 이렇게 해도 푹 잠든 채다.

간접키스 정도로 당황하긴. 귀여웠어. 신경 안 쓴 거 아니야. 그렇게 되게 한 거지. 



"휴가 나들이, 벌써부터 기대돼. 겨우 단둘이 될 수 있구나"



칵테일에 마음을 담아 주자고, 말주변이 없는 나는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

왜냐면...



***



나라고 하는 쉐이커의 내용물은 엉망진창 끈적끈적해져― 이제 잔에 담을 수 없으니까.






※ 이 소설은 원작자 「ぱう課長」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6802574 

※ 증거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작가분께서 "반갑습니다. 이 게임을 좋아하는 해외의 동지들이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봐주셨다면 기쁠 겁니다" 라고 전해달라고 하셨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거의 2달만에 소설을 가져왔다. 늦어서 미안... 시간이 잘 나지 않아 이렇게 간헐적으로 글 올리는 걸 용서해주기 바람... 

이번 편은 내 실력 부족으로 의역도 꽤 넣었고 라 플루마 특유의 맹한 말투를 옮기기 어려웠는데 잘 전달될 지 모르겠네. 

오타 오역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