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닝 박사의 연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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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깨어난 지 사흘째 아침

대부분의 오퍼레이터들이 모인 회의실, 그곳에서 켈시가 다른 오퍼레이터들에게 현재 박사의 상태를 브리핑해주고 있었다.

"박사는 현재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다. 본인이 누군지, 이곳은 어디인지 전혀 기억 못 하더군.

다들 생각에 잠긴 듯, 모두가 조용하다

"기억이 돌아올 가능성은?"

옆에서 듣고 있던 실버애쉬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카란의 지도자로서, 누구보다 로도스에 먼저 입사해서, 박사와 오랜 시간을 같이 싸워온 실버애쉬라면 마음이 좋진 않을 것이다.

"그게.."
켈시가 샤이닝을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흐린다.

"솔직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돌아올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결국 난 눈물을 참지 못했고, 나인팅게일, 니어 등의 다른 오퍼레이터들이 그런 나를 다독여주었다. 한참을 다독인 후에야 진정이 되었고, 켈시는 설명을 이어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박사를 대하는 것 말인데.."


켈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지금 박사에겐 지금 우리가 모두 처음 본 사람이고, 이 로도스는 낯선 공간일 거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행동했으면 한다."
개미 걷는 소리도 안 들리는 조용한 회의실 안에서, 내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건... 그건..제가.. 박사와 연인이라는 것도.. 숨기라는..."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다.


"그게..최선일거다. 박사가 기억을 못하는 이상, 처음 보는 사람이 연인이라고 해봐야, 믿지 않을 거니까."

켈시가 이마를 찡그리며 말했다.

"하아..."

난 알고 있다. 박사의 차가운 눈동자를, 그는 더는 나를 모른다.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우주를 떠도는 느낌, 심장이 떨어져 나가도 이것보단 숨을 쉬는 게 편하게 느껴질 거다. 하지만..

"제가.. 그럴 순 없어요.. 박사를 잊으라니.. 그건 지금까지 함께한 다른 모든 분에게도 못할짓이에요."
나는 무릎 위에 두 손을 꼭 쥐고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이제 와서 처음 본 사람 인척 연기해봐야 어색하기만 하고, 불편할 거다.
실버애쉬 역시 동의하듯 말했다.

"맞아 맞아!"


"나도 같은 생각이야."

같이 듣고 있던 다른 오퍼레이터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박사를 잊으라는 건, 로도스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럴 순 없다.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켈시가 샤이닝을 지긋이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박사와는 나를 비롯한 소수의 의료부 직원 그 외의 오퍼레이터와는 당분간 접촉을 하지 않아 줬으면 한다."

"왜지?"

실버애쉬가 의문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말했잖아? 박사는 지금 기억을 잃은 상태야. 우르르 몰려가서 이야기한다고 기억이 돌아오진 않아. 더 혼란만 주겠지."

켈시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저는 언제쯤 만날 수 있는 거죠?"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붉어진 눈시울로 켈시에게 말했다.
그때, 켈시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켈시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최대한 우선으로 만나게 하지. 넌 박사의 연인이니까."

켈시는 시선을 돌리며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난 느꼈다. 내가 박사와 만나고 싶다고 했을 때, 켈시의 눈에 보였던 건 분명 증오였다.
왜지? 왜 나에게 저런 증오를 품고 있는 거지?
머릿속이 풍선처럼 터질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증오, 박사의 기억상실. 이 모든 상황이 나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있었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다들 조금만 참으면 금방 만날 수 있을 거다."


켈시는 손뼉을 한번 크게 치며, 회의의 끝을 알렸다.

다른 오퍼레이터들이 하나둘씩 나가고, 나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회의실을 나가는 나를 보며, 내가 듣지 못하는 작은 목소리로 켈시가 말했다.

"..이번엔 안 뺏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