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의 추천을 받아 이곳 로도스에 온 지 약 한 달이 지났다.

내 코드네임은 로빈. 


그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해왔지만, 이곳은 확실히 이전 직장들보다도 만족도가 높다.


처음에는... 그냥 기존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반쯤 어쩔 수 없이 왔던 것 뿐이었다.

채용시험은 힘들었지만 월급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두둑했고.


솔직히 아버지 치료비로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달려들었다고 해도 된다.


뭐... 사원들에겐 화이트인 것과는 달리 기업으로서는 완전 블랙인 것 같지만.


아무튼 지금 내 직장은 제약회사의 전투부대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광석병이나 그 환자와 밀접하게 관련된 적이 없었다. 때문에 이 기업의 이념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하게 공감하고 있지 않다. 다만 대단하다거나 멋지다고 생각은 한다. 영화 주인공 같아.


다만 세계를 둘러싼 고통의 대표격인 광석병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이상, 이 기업의 뒷부분인 용병부대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내 특기는 나이프를 이용한 근・중거리 전투 및 트랩 설치. 그 특성상 스페셜리스트 오퍼레이터라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때도 전장을 보는 형편상, 싫어도 알 수 있다.


이곳은 괴물들 투성이다. 


검 한 자루와 아츠만으로 자신 앞의 광범위한 적들을 섬멸하는 자. 단 한번의 기술만으로 주변을 전부 불태우는 자. 혼자서 전장 한복판에 떨어져 보급도 회복도 없어도 전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는 자.


그리고 나와 같은 시기에 로도스에 들어온 앤소니... 마운틴 또한 그 괴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괴물이었다.

한번은 그를 배신하고 암살을 시도했지만 지금 이렇게 그의 동료가 되어 같은 직장에 있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정면에서 나이프로 어찌해볼 상대가 아니었다. 감옥에서 내가 받은 의뢰는 실행도 전부터 파탄이 났던 것이다.



"이야, 어서 와 로빈. 수고했어."



그리고... 지금 말을 걸어온 게 그 괴물들의 상사. 내 상사이기도 하지만. 


박사다. 여기의 최고 책임자 중 한 명이기도 한 것 같다.

그 자신에게는 앞서 말한 괴물들같은 전투력은 없다.

...전투력이라면 분명히 나보다도 약하다.


그럼에도 앤소니 같은 신사적인 괴물부터 피에 굶주린 전투광 같은 괴물까지 똑같이, 그의 지시만은 얌전히 따른다.

그의 인품이나 탁월한 전투지휘능력, 기업으로서의 입장,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만, 실제로 그가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이해득실 계산없이 움직이는 이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서 진정한 의미의 괴물은 바로 그일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전혀 무섭지 않지만.



"응. 나 왔어 박사. 박사도 수고했어. 서류 일은 제대로 하고 있었어?"



지금 내 직업의 또 다른 임무... 그의 어시스턴트.


먼저 이 일을 권해온 사람은 박사였다.



"야 로빈. 돈 때문에 곤란하다고 들었는데, 괜찮으면 내 비서 일을 해볼래? 물론 추가 급여도 있고, 굶을 일도 없을 거야."



처음에는 의심했다. 기업의 최고 책임자란 사람이 돈이 없어 곤란한 젊은 여성에게 비서 일을 제안하다니...


사일런스의 동의가 없었다면 아마 거절했을 것이다. 박사, 정말 그런 말투랄까... 섬세함, 배우는 게 좋아.


결과적으로, 그의 비서는 매우 쾌적한 일자리였지만.



먼저 알게 된 건 그가 처음 말한 "굶을 일은 없다"는 말.


박사는 자주 물건들을 받는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음식이었다. 

기업의 총수들이 접대를 위해 제공하는 것들도 있었지만 그는 능숙하게 대응했다.

박사 자신 또한 그다지 많이 먹지는 않는, 굳이 말하면 소식가에 가까운 사람이기에 결과적으로 내 배도 채워진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와 있으면 나는 매우 안심할 수 있었다.


그의 비서 일은 쾌적하지만 편하냐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바쁘다.

어쨌든 그는 기존 서류 일이 산더미처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주 전장에 투입되어 지휘를 하기 때문에 전혀 서류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단지, 그와 있으면... 상냥했던 시절의 아버지가 떠오른다.

그가 평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탓도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비서를 하다 보니 그의 맨얼굴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평소에는 숨기고 있는 탓에 점점 그에 대한 의식이 모호해지고 만다.


그와 함께 있는 것은 나를... 아버지와, 상냥했던 시절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했다.


ーーー그가 전장에 나가 있는 동안 열심히 뒤죽박죽이었던 서류들을 모두 정리하니 칭찬을 들어 너무 기뻤다.


ーーー취침 전 집무실에 들렀더니 서류에 둘러싸여 졸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어쩔 수 없는 사랑스러움이 치밀었다.


ーーー어쩌다가 전장에서 내가 다치고 돌아오면 진심으로 걱정해주었다. 가끔 다치는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 그의 비서로서 일하는 시간은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흐~응, 비서는 그런 일도 하고 있구나~"


오후 3시 휴식시간. 지금은 식당이 열려있어 동료들과 차를 마시고 있다.


그녀는 카프카. 나와 같은 시기에 여기에 취직한... 탈옥 동료다.

박사의 어시스턴트로서 로도스의 여러 사람과 접할 기회도 늘었지만 역시 그 사건에서의 만남은 특별했다. 난 그녀도 앤소니처럼 한번 배신한 입장인데.


앤소니는 그의 부드러운 신념으로. 카프카는 그녀 특유의 털털한 성격으로. 지금은 가끔 함께 차를 마시는 관계로 지내고 있다. 언젠가 제대로 보답하고 싶다.



"응. 요전번에 박사, 메딕 오퍼레이터를 팀에 편성하는 거 까먹어버려서. 거점 수비를 사리아 한 명에게 맡기고 긴급히 뱅가드와 스페셜리스트 투입으로 이쪽이 몰리기 전에 속전속결로 전투를 끝내버렸어. 그걸 단숨에 해버리는 박사도 대단했지만, 나중에 사리아한테 엄청 혼났어."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이 서류는 그 일의 시말서로, CEO 아미야 씨에게 전달하러 간다.

...사리아의 지시로 이 시말서는 내가 만들었다.

그녀가 말하길 '결과가 좋았으니 박사는 이 일을 덮으려고 할 거다. 빠짐없이 CEO에게 보고해라' 라고 했다.



"햐~ 카프카는 그런 거 못 해. 완전 박사 뒤치다꺼리 역할 아니야?"


"박사... 너무 바쁘니까. 가끔 이상해지잖아. 전장에서는 그렇게 머리 회전이 빠른데 말이야. 메딕 오퍼레이터 편성을 잊다니... 이번엔 잘 끝나게 돼서 좋지만 나도 걱정되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히 보고하고 좀 쉬게 해줘야겠어."


"여, 로빈. 카프카도 안녕. 다과회야?"



그런 얘기를 하던 차에 마침 이야기의 중심 인물, 박사가 지나갔다.



"응. 박사, 수고했어. 맞아, 박사 이거 사리아가 의뢰해서 만든 시말서인데, 지금부터 아미야씨에게 제출하러 가려고 해. 내용 체크해줄 수 있어?"


"아 미안. 내가 또 모르는 사이에 일을 떠넘겼나? 지금 볼게"



내 옆에 서서 서류를 받아들고 팔락팔락 넘기는 박사.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간다. 아,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아무튼 파랗게 질린 것 같아.



"저, 로빈 씨... 이걸 이제 아미야 CEO한테로 가져가신다고요?"


"응. 맞아. 빠뜨린 게 있었나? 잘 된 줄 알았는데"


"...빠뜨린 건... 없네요."


"다행이다"


"...제가 숨겨둔 몽블랑 케이크가 있는데, 받아주시지 않겠습니까?


"안 돼, 박사. 제대로 혼 좀 나도록 해."



박사는 터벅터벅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떠났다. 아마 꽤 쪼일 것 같으니까 나중에 위로해줘야겠다.



"있잖아 로빈. 박사와 거리 가깝지 않아? 지금 거의 밀착하지 않았어?"



카프카가 멍하니 입을 벌린 표정으로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어... 그런가? 항상 이런 거 같은데."



그가 잠들었을 때 자주 내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있지만... 그것보다는 덜 밀착되지 않았나?



"어어...? 그럼 말이야. 박사 말고 다른 남자랑 그런다면 어떨 것 같아?"


"아, 응. 그건... 싫은데. 박사, 뭔가 아버지랑 같이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느슨해졌는지도 모르겠어."



카프카는 그 후에도 으응? 이라던가, 어어~? 라며 머리를 갸우뚱하며 당혹해하고 있다.

사실 신경이 쓰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가 내 몸을 만지는 것에도 저항이 없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건 오히려 기쁘고.



"어~~...? 그럼, 그럼 말야, 박사로부터 갑자기 키스를 받는다면... 로빈 넌 어떡할 거야?"


"...? 박사는 그런 짓 안 하는데?"


"만약에! 만~약~에~! 그래서 어떡해? 밀쳐버릴 거야? 욕하고 소리지를 거야?"



박사랑... 키스...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서 상상해 본다.


...후드를 벗은 박사가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키스... 를...



ーーー퍼엉!!!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다는 걸 나도 느낄 수 있다. 어라...? 싫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받아들일 것 같아... 싫지는 않아..."



오히려 이 감정은... 기쁘다, 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



"로빈, 그, 아마 그거, 아버지같은 거... 아닌데?"



앞으로도 그의 어시스턴트로 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거. 


머리가 혼란스러워진다.



박사는 아버지가 아니다. 그런 당연한 걸 새삼 깨닫고 말았다.


하지만 난 이제...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그 행복한 시간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카프카... 어떡하지? 나 어떡하면 좋아?"


"카프카는 그런 건 전문이 아니야! 앤소니, 앤소니랑 상담해! 어른이잖아!"


"나, 아, 암살하려던 사람한테 이런 거 상담해...?"






오늘도 로도스 아일랜드는 황야를 간다. 많은 이들의 신념과 생각을 담고.


깨달아버린, 나의 이 마음도 함께. 






이미지 출처


※ 이 소설은 원작자 「tada」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5493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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