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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연애 조작단 결성, 다음 날』

『첸 훼이지에 '팀장'

『로도스 연애 조작단 - 존재 기밀』

『박사의 집무실』


"...이런 건 왜 만드는 거냐. 클릭."

"응? 저번에 스트리밍한 게임 중에서 의무의 전화라고, 약간 우리가 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의 분위기가 있길래. 어때?"

"...하아."


정말 미쳐버리겠군, 어제부터 몇 번이나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자라크 소녀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참으로 고역이다.

첸은 아까부터 자신의 머리 위에 드론으로 이상한 홀로그램 멘트를 띄워두고

어때? 어때? 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를 결국 한 대 쥐어박고, 박사의 집무실을 향해 걸어나갔다.

뒤에서 우에엥,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라니가 달래고 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첸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저 걸음을 옮겼다.


한편,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정의하는가.

...결국 인간은 혼자가 아닌가.


여기, 인생과 인간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색하는 한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 사색을 방해하는 한 마디.


"박사님, 쉬시면 안돼용♥"

"아미야..."


진지하게 사색한다고 쓰고, 헛짓거리 중이다. 결국 박사는 자신에게 서류 더미를 한 더미 들고온 다가온 토끼(자칭?) 소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슬슬 좀 쉬고 싶은데...지금 벌써 몇 시간 째냐...?"


힘 없이 말하는 박사, 그러나 그런 박사의 상태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환하게 웃으면서 서류를 책상 위에 쿵 하고 내려놓는 소녀.

갈색 긴 머리에, 쫑긋거리는 커다란 귀, 온화한 표정 속의 뒤에 감춰져 있는 끝없는 어둠. 블랙 기업이다.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박사에게는 블랙 기업이다.

로도스 아일랜드의 대표자, 아미야는 박사를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이 머리를 토닥여주었다.


"박사님은 오전 4시에 기상하셔서 근무를 시작하셨고, 지금 시간은 오전 9시에요. 곧 오늘의 어시스턴트가 올 거니까 조금만 더 힘내요♥"

"...가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나 싶다."

"어머, 박사님. 박사님께는 아무 죄가 없어요.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거에요."

"그거 참 고맙기도 해라."


비꼬듯이 말하면서도 서류를 기계적으로 읽어내려가면서 처리하는 박사. 그리고 그런 박사를 보며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아미야가 쐐기를 박듯이 한 마디를 남겼다.


"아, 물론 서류가 이걸로 끝은 아니에요. 아마 1시간 뒤에 추가적으로 들어 올 거니까...힘내세요. 박사님!"

"..."


대꾸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 박사는 그저 왼 손을 내저으며 아미야에게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고, 아미야는 마침 들어오던 첸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나갔다.


"박사, 오늘은 내가 네 어시스턴트다. 잘 부탁한다."

"아아...잘 부탁해. 첸 팀장님."

"난 더 이상 팀장이 아니지만...네가 그렇게 부르길 원한다면야..."


오늘따라 첸이 조금 더 친근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박사는 고개를 들어 첸을 올려다보았지만, 이미 첸은 집무실에 딸린 부엌으로 사라진 뒤였고,

내 착각인가...그렇게 중얼거린 박사는 다시 서류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아...이제야 끝났지만, 또 들어온댔나...미치겠네."

"...수고가 많군. 박사. 자, 한 잔 마셔라."

"아...고마워, 첸 팀장님."


마침내 서류를 다 마무리하고 책상에 엎어지는 박사. 그리고 그런 박사에게 미리 준비한 커피를 건네며 첸은 입을 열었다.


"정말 서류가 많군. 이걸 네가 혼자서 다 한단 말이지."

"응...그래. 하아...다이어트도 해야하는데...큰일이야. 큰일."

"다이어트 말인가...어째서지?"


이미 대부분 사실은 어젯밤 회의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확인을 위해 첸이 물어보자, 박사는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시작했고, 이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군...이것이 네가 먹은 칼로리고, 이것이 네가 소모한 칼로리..."

"어쨌든 운동을 해야하는데...시간도 부족하고 힘들어 죽겠어, 정말."

"크흠크흠. 그런가...그렇다면 박사, 네게 제안이 하나 있다."


첸이 오늘따라 이상하지만, 이런 첸이 조금 더 좋네...그렇게 생각하며 박사는 그녀를 쳐다보았고, 이내 박사의 앞에는 한 장의 종이가 내밀어졌다.

바로 종이를 받아든 박사는 내용을 읽기 시작했고, 이내 다 읽은 종이의 밑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 첸 팀장님께서."

"백파이프다."

"그러니까, 우리 백파이프가 감자 농사 체험 동아리를 만들었고, 내가 들어오면 좋겠다는 거지?"

"그렇지. 짧은 시간에 칼로리를 대량으로 소모하는데 농사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켈시가..."


뭐라고 더 말하려던 박사는 이내 코 앞까지 다가온 첸의 얼굴을 보고 히익, 하면서 몸을 뒤로 뺐고, 잡아먹진 않는다니까...하고 한숨을 내쉬며 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 녀석이 뭐라고 한 건가?"

"동아리에 가입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중립성? 그런 것이 어긋난다고..."

"...음. 박사. 그런 말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우선 로도스 아일랜드에 소속 된 사람들은 자유로운 동아리 활동이 가능하다. 이것이 복지에 쓰인 내용이다. 그리고 이 내용에 따르면..."


한참 준비를 해온 '박사가 동아리에 가입해선 안 되는 이유 따윈 없다.' 라고 요약되는 내용의 말을 읊은 첸은 마지막으로 감자에 포크를 찌르듯이 말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미 다섯 명이다. 그러므로 박사의 이름은 제일 아래에 잘 안 보이게 기입한다면 되지 않는가. 동아리 관리는 내가 하고 있다. 문제될 건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어...그건 그렇네. 하기사 중립성...여기가 뭐 정치 단체도 아니고...그렇지..."


마침 늘 자신을 약올리는 것 같던 켈시에게도 화가 났던 박사는 점점 동아리 가입에 마음이 기울어졌고, 거기에 나이프까지 추가로 찔러졌다.


"너는, 생각해보면 켈시와 아미야에게 너무 휘둘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너도 너 자신으로서 주체성을 가져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네 서류 작업도 같이 도울거다."

"좋네! 당장 가입할게! 아니, 가입하게 해주세요!"


그렇게 말한 박사는 재빨리 자신의 펜을 꺼내서 이름을 써냈고, 여기에도 싸인해라. 그렇게 친절하게 어시스트해주는 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이곳 저곳에 이름을 적었다.

한 편, 첸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박사가 여태 다른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아마 누가 손을 쓰고 있지 않을까요. 높은 확률로 켈시, 혹은 아미야 일겁니다. 박사를 설득할 방안도 미리 마련해야합니다.'


호시구마, 나이스 어시스트. 그렇게 중얼거린 첸은 단말기를 꺼내서 메세지를 전송했고, 이내 도착한 호시구마, 백파이프, 그라니, 클릭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추가로 올 서류들을 처리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야, 살았어. 모두가 도와준 덕분에 빨리 끝났네!"

"박사가 기쁘다니 내도 기쁘다!"

"이것으로 어제 책상을 부순 건 없던 일로 해줄게."

"하, 하하. 그...미안했다. 박사."


실없는 소리를 나누며 나란히 걸어가는 박사와 백파이프,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그라니와 나머지 세 명.

복도를 따라 걷는 이 그룹이 신기한지 몇 명의 오퍼레이터들이 말을 걸어보려 했으나, 진중한 얼굴의 호시구마와 일부러 짜증난 표정을 짓는 첸 앞에서 그 누구도 함부로 말을 꺼낼 순 없었다.

그렇게 걸음을 서둘러서 움직이던 그들은 이내 약간 떨어져 있던 온실에 도착했다.


"오, 그나저나 이 온실은 약간 주변과는 떨어져 있네, 여기를 고른 이유가 뭐야?"

"일단, 지금 쓸 수 있는 곳이 여기 밖에 없는데다가, 백파이프의 말에 따르면 여기가 가장 햇볕이 잘 들어온다고 하더라고."

"그렇다! 박사! 내사 이곳저곳 마이 둘러보았는데, 여기가 제일이다 아이가."


신기한 듯,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박사는 주변에 생각보다 아무 것도 없네? 그런 의문점에 질문을 던졌고, 그라니와 백파이프는 재빨리 대답한 뒤, 박수를 짝짝치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선 옷부터 갈아입자. 저쪽에 미리 준비했다!"

"오, 본격적인데? 그렇다면...마침 내 사이즈랑도 딱 맞아!"


동심으로 돌아갔는지 신난 박사는 재빨리 옷을 찾아서 근처에 딸린 탈의실로 들어갔고, 서로에게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 그녀들도 옷을 찾아서 들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자, 그럼 우선 감자 농사에 대해서 설명하겠사."

"감자 농사는 씨감자를 바로 심는 것이 아닌 거사. 그건 3살 묵은 머스마도 하믄 이마이 혼난다."

"우선 씨감자를 이리 잘라가, 보이나?"


햇볕이 내려쬐는 오후 1시, 백파이프의 시범에 따라 천막 아래에서 모두가 그녀의 손을 바라보며 칼로 감자를 세심하게 자르고 있었다.

모두가 씨감자를 자르는 모습을 보며 백파이프는 한 명 한 명, 교정해주기 시작했고, 이내 박사의 순서가 되었다.


"자, 박사. 이리 잡아가...좀 어렵나?"

"약간, 자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데...좀 어렵네."

"그렇나? 그럼 잠시만..."


앉아 있는 박사의 뒤로 다가간 그녀는 박사의 손을 뒤에서 잡고, 등에 밀착한 채 같이 감자를 자르기 시작했다.

이내 하나의 감자를 잘라낸 뒤, 백파이프는 박사의 어깨에 턱을 괴고 말했다.


"자, 이러믄 된다. 어렵나?"

"어...어어. 아니 어렵진 않은데..."

"어렵진 않은디?"


옷 위에서만 봐도 커다란 무언가가 내 등이나 머리, 이곳 저곳에 마구 닿아서 집중하기 어렵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낸 박사는 최대한 침착하게 감자를 썰기 시작했다..

그것을 여전히 뒤에서 가까이 붙은 채, 바라보던 백파이프는 잘 하구 있사. 잘 하구 있사. 음음. 그렇게 말하고 박사에게서 떨어졌고,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은 박사는 다 썬 감자를 옆으로 밀었다.


"...뭐랄까, 천국이면서도 지옥이였어."


그렇게 중얼거리는 박사,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바로 뒤에 있던 클릭은 빙긋 웃으며 자신의 몫의 감자를 잘라냈다.

물론 잘못 잘라낸 탓에 백파이프가 다시 한 번 클릭을 교정해주는 시간이 들어가긴 했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모두 감자를 무사히 잘라냈다.


"다음엔 어떤 걸 하는거야?"

"이 감자들은 이 상자에 담아가 비닐 하우스에 옮기구 4~5일 동안 거적에 물 적셔서 덮어놓으믄 끝이라."

"저기, 왜 그렇게 하는 겁니까?"


감자를 상자 속에 넣던 호시구마의 물음에, 백파이프는 상자를 영차, 하고 들면서 말했다.


"절단되믄 낫는 시간두 필요하다. 이리하믄 감자가 더더욱 튼튼해지는다!"

"농사는 의외로 할 것이 많구나..."

"그렇다. 앞으로도 농부들에게 감사하라. 엣헴! 자, 그럼 나 따라오믄 된다!"


백파이프가 상자를 들고 앞장서서 걸어나갔고, 그 뒤를 클릭과 그라니가 한 상자, 첸이 한 상자, 호시구마가 한 상자, 그리고 박사가 한 상자를 들고 움직였다.



"다음은, 씨감자가 자랄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다들 2인 1조로 쟁기랑 삽을 들구, 자. 이리 땅을 파는디..."


2인 1조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클릭에게 다가가는 호시구마, 그리고 첸 옆에 붙은 그라니. 백파이프는 박사의 손을 잡아 끌고 자신의 옆에 세웠다.

감자들을 비닐하우스에 옮겨놓는데 까지, 오후 2시. 계획대로 진행되구 있사. 그렇게 만족스러워 하며 백파이프는 직접 쟁기를 들고 땅을 파며 시범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내 팍팍 소리가 나도록 땅을 파던 그녀는 뒤로 조금씩 움직이고, 옆으로 조금 더 움직이고 삽으로 퍼내더니 무언가 요철 모양을 만들어냈다.


"자, 이 모양대로 가면서 파고, 흙을 올리면 된다! 오늘 내로 다 할 수 있진 않겠지만, 최대한 해보믄 되지 않겄나?"

"""""오!"""""


쟁기를 들고 하나 둘 씩 다가간 박사와 그녀들은 있는 힘껏 땅을 파내기 시작했고, 백파이프는 본인도 땅을 파면서 자세를 교정해주느라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그라니. 그 자세 보다는 이 자세가 낫다."

"첸 햇아. 그거는 삽이 아니구 검을 드는 자세 아니가?"

"클릭 햇아는...그냥, 쟁기를 가능한 자연스럽게 쥐고."

"호시구마씨는 잘 하고 있사. 그대로 하믄 된다."


그렇게 한 명씩 자세를 교정해나가던 백파이프는 박사에게 도착했고, 허리 아파 허리 아파, 그러면서도 칼로리 소모를 위해 열심히 땅을 파던 박사는 자신 앞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고 잠시 손을 멈췄다.


"응? 백파이프? 나 어때, 잘 하고 있지 않아?"

"음...박사, 잠만...그 자세는 아닌 것 같사."


몇 차례 땅을 파는 박사를 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백파이프는 박사의 옆에 바짝 붙더니, 박사의 온 몸을 손으로 하나하나 교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뼈마디에서 우드득 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박사는 진짜로 아픔을 느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아, 아야야! 아파!"

"시상에! 박사, 을마나 운동을 안했던 것이고?"

"그동안..."


안 말해도 알겠사, 박사의 눈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백파이프는 이내 박사를 데리고 밭에서 나오더니 천막 밑으로 데려가서 돗자리를 깔았다.

무슨 일이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박사를 보고 그녀는 말했다.


"우선 박사는 스트레칭을 해서 몸을 좀 유연하게 만드는 과정도 필요하겠사. 자, 우선...앉으라."


돗자리에 앉은 박사는 백파이프가 시키는대로 다리를 벌리고, 양 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자, 그럼 내사 뒤에서 가볍게 눌러주겠사. 하나하믄 내려가구 10초를 세구 올라온다. 자, 하나."


백파이프는 이번에도 무릎을 꿇은 채 앉아서 박사의 등 뒤에 바짝 붙어서 같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 아야야야야...!"

"자, 조금만 참으라 박사. 참으면 내사 상을 주겠사! 일!"


허리와 다리에 전해져오는 아픔과 등에서 전해져오는 소녀의 부드러움과 따뜻함. 물론 박사에겐 느긋하게 감상할 여유는 없었지만.

그 사이 어딘가 천국과 지옥 사이의 연옥에서 박사는 끊임없이 신음했고, 그녀는 최대한의 성심성의껏 박사의 스트레칭을 돕기 시작했다.


"아, 아이구...아프다. 아파."

"박사, 수고했사. 마이 아프제."


그 뒤에도 이런저런 스트레칭을 하면서 백파이프와 하루종일 붙어있게 된 박사는 매 시간마다 천국과 지옥을 끊임없이 경험해야 했고, 그런 박사의 마음도 모른채 백파이프는 해맑게 웃으며 박사에게 물통을 건넸다.


"후, 고마워...그나저나..."


물을 벌컥벌컥 들이킨 박사는 시계를 흘낏 쳐다보았고, 적힌 숫자에 자신도 모르게 만세를 부르다가...

다리에 쥐가 났다.


"아, 아야야...쥐가 났나봐."

"아, 그렇나 박사. 기다려라!"


종아리의 근육이 멋대로 움직이는 고통에 박사는 다시 신음했고, 백파이프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서 신발을 벗기고, 발을 잡아서 뒤로 꺾어주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이 그녀에게 잡혀있다는 사실에 새삼 조금 부끄러워진 박사는 다리를 빼려고 했고, 백파이프는 더더욱 세게 잡아서 쥐를 풀어주고 종아리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미안, 더러울텐데."

"뭐가?"

"내 발."

"그렇나?"


한창 종아리 마사지를 하던 백파이프가, 이만하믄 되었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털고 누워있는 박사의 얼굴을 향해 무릎걸음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박사의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데가 더럽다는 것인지 내는 잘 모르겠사. 박사."

"그...냄새도 나고 그럴텐데."


자신의 얼굴에 무척 가까이 다가온 백파이프의 얼굴, 본인이 가끔 가다가 말하던 대로 귀여운 축에 속한 외모를 보며, 이리 가까이에서 보니 또 그건 맞네. 그렇게 생각하며 박사는 중얼거렸다.

그 말에 백파이프는 빙긋 웃더니 박사의 머리를 붙잡더니...


"박사가 고생했다 아이가. 그렇다면 포상을 줘야제. 우리 동네에선 이러믄 포상이라구 했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리고, 이마를 쓸어내려주었다.

속칭 말하는 무릎 배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진 박사는 급하게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내 이마에 올려진 백파이프의 손을 느끼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충분히 쉬는 것두 중요하다, 박사. 그동안 마이 힘들었지 않나?"

"어차피, 밭은 트랙터도 곧 쓸거라 괘않타. 그리구, 첸 햇아랑 다른 애들도 마이 해뒀다."

"그리구...내는 박사가 힘든 모습이 보기 싫다..."


이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말에 박사는 백파이프의 얼굴을 보았고, 백파이프 또한 자신처럼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을 알아챈 박사는 빙긋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조금만 자도 될까?"

"어, 응. 괘않타. 그러믄...자장가라도 하나 불러주까?"

"...노래도 할 줄 알아?"

"시골에선 애들을 다 같이 돌본다. 내도 옆집 애 마이 돌봤다."


그렇게 말한 백파이프는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고, 이마의 부드러운 감촉과 뒷통수에서 전해져오는 부드러움과 딱딱함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감촉까지,

이것이 극락일까...그렇게 생각하던 박사는 이내 생각을 멈추고 그저 귓가에 맴도는 노래를 들으며 잠에 빠졌다.



잠시 뒤, 오늘은 조금 늦었으니 그만하자고 말하려고 찾아온 그라니가 본 것은

백파이프의 무릎 배게를 받으며 잠든 박사와, 쉿! 하고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갖다댄 백파이프였고,

말 없이 엄지 손가락을 세운 그라니는 조용히 밭으로 돌아갔다.




"아, 농사라는 것이 생각보다 칼로리 소모량이 크구나. 아니, 사실 스트레칭이 더 큰 거였나?"

"소관의 관점으로 보았을때, 박사님께서 조금 더 유연해지신다면 앞으로 더 많은 칼로리 소모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계를 보면서 만족스러워하는 박사와, 그 옆을 따라 걷고 있는 호시구마.

박사가 깨어났을때는 이미 오후 6시였고,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다리가 저릴텐데도 무릎 배게를 해 준 백파이프에게 감사를 표한 뒤, 정기 보고를 마무리 하기 위해 먼저 돌아가야 하는 박사에게 호시구마가 호위로 따라붙었다.

나머지 사람들에게 뒷정리를 맡긴 건 조금 미안한데...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상쾌한 기분에 기지개를 켜는 박사를 호시구마는 조용히 미소지으며 응시했다.


"역시, 백파이프에게는 고마워해야겠어. 이런 좋은 제안을 해주고..."

"백파이프씨는 박사님을 많이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하하, 정말 고마울 따름이야. 기특하고 말고, 나중에 뭔가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며 박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뭔가 새로운 농기구라도 사주면 좋아할까?"

"박사님."


어떤 농기구가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박사는 이내 호시구마의 평소보다 진중한 부름에 생각을 바로 멈췄다.


"왜?"

"그런 경우라면, 두 분이서 어디 나가셔서 같이 고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백파이프씨는 농사를 많이 좋아하니, 웬만한 농기구는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맞다. 그걸 생각 못했네. 하기사 부모님도 농사를 짓는다고 하셨던가...고마워, 호시구마. 한 번 생각해볼게. 아니면, 네가 백파이프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봐주면 안 될까?"

"음...그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하지만 소관의 생각에는 같이 고르는 선물이 더 기억에 남고,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 술 친구는 정말 엄청난 둔탱이가 틀림 없다. 이거 큰일인데...그렇게 생각하며 호시구마는 마음 속의 식은땀을 최대한 숨기고 대답했고, 박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어깨를 으쓱이고 말했다.


"서프라이즈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아, 하기사 호시구마가 물으면 바로 알아챌지도 모르겠네. 좋았어. 다음에 우리가 조금 큰 도시에 정박하게 될 예정이니까 그 때, 한 번 제안해봐야겠네."

"소관의 생각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아, 벌써 다 왔군요."


세상에서 가장 긴 대화이면서도 짧은 시간이 끝나고, 회의실의 문 앞에서 호시구마는 들어가는 박사를 배웅했다.


"그럼, 내일도 뵙겠습니다. 정기 보고 마무리 잘 하십시오."

"그래, 그럼!"


손을 흔들며 박사는 회의실 안에 들어갔고, 십년감수했다...그렇게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호시구마는 백파이프에게 조용히 남 모를 애도를 보냈다.


"엣취! 누가 내 얘기라도 하나?"


...물론 백파이프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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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를 닫고, 클릭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세상이란 참 불공평하구나. 어휴..."


그래도 일은 일이지! 잠시 어두운 생각은 접어두고, 클릭은 드론의 데이터를 노트북에 전송하기 시작했다.

...클릭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게 되는 것은 약간 뒤의 일이었지만,

그것을 아직 모르는 자라크 소녀의 손가락은 연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와이번 소녀의 사랑과 꿈을 싣고, 그렇게 오늘도 두 개의 달이 비추는 밤이 깊어만 갔다.



감자 소녀와, 찾아온 봄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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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까지가 1화임


 

만약 다음화를 내놓는다면 감자 소녀와, 다가온 여름 대충 이런 제목으로 하려고 했고 

중간중간 외전까지 넣으려고 했는데

소설은 사실 1화에서 끝나야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너무 장편이면 좀 그렇지 않나?

뭔가 뇌절 같아질 느낌도 들고



피드백은 언제든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