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오류 지적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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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은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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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하는 걸 너무 대충대충 하고 있는 거 아닌가, 박사?"


"대충대충이라뇨. 그 어떤 때보다 빡세게 하고 있는데."


아침에 겨우겨우 레나를 달래 출근시키고, 나도 출근해서 비정기 위기협약 사후보고서를 켈시한테 갖다줬더니 대충 훑어보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선 이야기했다.

수고했다던가, 뭐 이 부분은 이런 내용으로 쓰면 안 되지. 그럼 어떻게 해야 되냐? 라고 물어보면 네가 원하는 대답은 해 주지 않겠다. 는 둥의 피드백 같지도 않은 피드백을 한다던가 아무튼 뭐가 되든 제출한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대뜸 시비를 털어?


"비서 오퍼레이터로 들어갔던 대원들한테서 네가 일하는 시간에 멍하니 있다는 보고가 많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 자주 말이지."


"대충 해서 주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


비서 오퍼레이터로 들어온 사람들 몇 명에게서 일 효율 올리는 요령을 배워서 그대로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일 유형에 따라서 견본을 만들어놓은 다음 그대로 처리하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특히 레나랑 포덴코가 상당히 많이 도와줘서 지금도 곧잘 잘 쓰고 있다.


"그렇게나 멍때릴 시간이 많다면 일이 적다는 거로군. 좋다. 그렇게 시간이 주체가 안된다면 할 걸 더 만들어주지."


"아니 일을 제때 해서 내면 더 얹어주고 제때 못하면 정신 못차린다고 더 얹어주면 도대체 일이 언제 줄어드는 겁니까?"


"워커홀릭이 되면 줄어들 것이다."


워커홀릭은 당신이잖아, 미친 여자야.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일을 오래 하면 레나랑 보낼 시간만 줄어드는데. 일하는 시간을 늘릴 이유가 1도 없다, 정말.


그제야 위기협약 사후보고서를 슥 훑으며 커피를 홀짝이고, 다시 나한테 내밀었다.


"아무튼 이건 오늘 안에 다시 써 와라."


"아니 저기요. 실전도 아니고 위기협약 작전 보고서인데, 뭘 더 바라는 건데. 매번 필요한 건 다 써서 줬잖아. 써낸 내용이 저번하고 달라지지도 않았다고."


작전이 달라졌으니 디테일한 부분이 달라진 정도일 건데. 그때는 그래, 네가 이 정도까지도 써서 내는군, 하면서 한 번에 패스했으면서.


"그러니까 다시 쓰라는 거다. 전장이 항상 네가 알고 있던 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데 예전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써서 내면 의미가 없지."


그렇다고 항의를 했다간 아예 물리적으로 오늘 끝낼 수 없을 양의 일을 던져줄 테니, 군말하지 않고 가져가기로 했다.

이게 제때 안 끝나면 퇴근이 늦어지는데.


레나하고 사귀고 나서부터, 이제 내가 레나하고 시간을 보내는 걸 우선하고 있다는 걸 켈시도 알아서인지 요즘 시간으로 나를 압박하는 일이 상당히 많아졌다.


....비서 오퍼레이터한테 빨리 퇴근시켜주는거 미끼로 부탁해서 매점에 잠깐 다녀와달라고 해야겠다.

오늘 비서는 키라라니까 말이 통하겠지.




아무튼 어찌저찌, 눈앞의 위기를 넘기는 데에 성공했다.

키라라가 급한 건 자기가 아니라는 식으로 이리저리 흥정하는 게 아닌가. 겨우 조기퇴근으로 부려먹으려는 거냐, 거기다 신작게임 하나는 얹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아니 아무리 그래도 왔다갔다 공임비 정도인데 그거 얼마나 한다고 최저임금의 몇 배로 받아먹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겨우 전직 고등학생 따위가, 테라 굴지의 내로라 하는 회사의 영업사원부터 국가정상의 대리자 상대로 교섭을 해온 나를 흥정으로 이길 리가 없다. 야외훈련 때 구석에 박혀서 게임한 거라던가, 일과시간에 슬쩍 빠져나가 자기 방에 가서 게임 할인하는 거 확인하던 것 등으로 슬쩍 찔러서, 결국 왔다갔다+밤 간식비 정도로 타결했다. 게임 가격에 비하면 1/10 정도니까, 거의 삥뜯는 걸로 치면 계약서에다가 슬쩍 사기치는 빈즈토크도 한수 접어줄 정도다.


그렇게 하루 일을 끝내고, 내일 일할 준비를 끝내놓고 시계를 보니 여덟 시 반이다.

이미 약속 시간인 일곱 시 반은 한참 넘어가 있다. 


왜 늦었다던가 하는 이유를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건 어쨌든 좋고, 어떻게 사과해야 레나가 금방 풀릴까.

샤워를 하지 말고 일단 약속 시간이니 가야 하나? 하고 어제랑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방 앞까지 도착했더니,


"어? 레나."


"아, 박사 군이다. 왜 이렇게 늦었어, 박사 군...."


오늘 레나 방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너무 늦어서 그런지 못 기다리고 내 방으로 온 모양이다. 한 시간....아니, 이 사람이니까 그 이상 기다린 걸까?

가까이 다가가자 한달음에 뛰어와서 폭 안긴다.


참 신기하게도, 아침에 나서면서 끌어안고, 입맞춤도 하고 나섰는데 확 다가오는 향기와 체온에 심장이 턱 멎을 것 같다.

캐모마일 향기인지, 라벤더 향기인지, 아무튼 이름 모를 꽃 냄새와 비누 냄새에 어지러워지는 것을 견디고,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던 감정을 속삭였다.


"미안해요. 다녀왔어요."


"응....어서와...."


여우가 내 가슴께에 얼굴을 묻고, 진정하려는 듯 심호흡을 몇 번 한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스커트 아래로 천천히 꼬리가 살랑거린다.

한참을 그러도록 놔두고 있자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보았다. 어제보다도 더한 갈증을 호소하는 듯 속눈썹이 살짝 감겨 파르르 떨리고 있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도, 꽃잔디색 호선을 그리던 입술도.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살짝 나온 채로 달큰한 숨을 내뱉는다. 알고 있던 얼굴에서 익숙지 않은 표정이 떠오르는 것에 이끌려 바로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넣으며 입술을 맞댔다.

복도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아직 샤워도 하지 않았다는 것도 모르고서, 눈앞의 이 사람에게 온 정신을 다 빼앗겨 버렸다.


"박사 군....박사 군...."


들릴 듯 말 듯 레나가 나를 거듭 부르며 목에 매달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보니 다행히도 지나가던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레나. 방에 들어가요."


"응...."


복도에서 계속하자고 하지 않는 게 다행일까.

아니, 아무리 지금 레나라고 하더라도 그러진 않겠지. 농담으로 이야기할 정도면 모르겠지만, 기색을 보니 농담을 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레나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자 옆에 붙어서서 문을 열 수 있게 해 주었다. 문을 열고 방 안에 들어올 때까지, 단 한순간도 멀리 서거나 하지 않았다.


"...."


"...."


잠깐 선 채로 껴안고서 멍하니 있었다.

그래도 샤워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항상 그렇게 해왔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기다리게 했는데? 어제는 제시간에 왔지만 레나가 기다린 거라고 해도, 오늘은 명백하게 내가 늦은 거다. 그걸로 모자라서 레나가 찾아오게까지 만들었으니까, 막상 당연히 했던 건데도 망설여진다.


"....샤워할까?"


"....네."


다행히 레나가 눈치챈 모양이다. 이렇게 저녁에 만나면 수순 같은 거였으니까.

근데 지금 '할까', 라고 물어본 건가?


"근데 레나, 샤워하고 온 거 아니에요? 한 번 더 해도 괜찮아요?"


"평소면 몰라도....이런 때엔 단순히 몸 씻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둘이 하고 나서도 곧잘....몇 번이나 샤워하는데, 이상할 거 없지."


여유로운 듯 웃고 있지만 내 허리에 감긴 팔은 풀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풀어야 옷을 벗고 샤워라도 하는데 말이지.

하는 수 없이 잡힌 채로 셔츠 단추를 풀자, 그제야 레나도 팔을 풀어주었다. 그런데 내가 겉옷을 다 벗도록 레나는 가만히 서서 나를 보고 있기만 했다.


"가끔 생각하는 건데, 한 번씩 어린애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좋은 거지만요."


팔로 끌어안듯 하며 원피스 지퍼를 내려주자 다시 레나가 말없이 팔로 매달리듯 안긴다. 

그....괜찮은 거 맞지? 맨몸인 데다 샤워하기 전이라 땀냄새라던가 날 건데.


지퍼 하나 푸는 걸로 쉽게 벗겨지는 옷이라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숨소리, 에어컨 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실내에서, 레나의 발 밑에 옷 떨어지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그대로 옷을 바닥에 거의 내버려두다시피 한 채로 레나가 다시 발돋움을 했고, 서로 입술과 혀를 자석 이끌리듯 다시 맞댄다. 풀어주지 않겠다는 듯, 아예 허리에 감은 자기 팔을 손으로 붙잡으며 껴안는다.


키스에 집중하면서 손을 놀리는 게 좀 까다롭긴 했지만 조금 시간이 걸려서 위쪽 속옷도 풀었다. 의도했는지 아닌지, 이번 키스가 끝나고 레나가 살짝 거리를 두어서 속옷이 바닥에 떨어졌다.


"레나, 계속 이렇게 잡고 있으면....물론 저도 좋지만 아무것도 못 해요. 씻고 나서 또 껴안고 있으면 되니까 일단 옷 벗고 들어가죠." 


"그게....아는데, 몸이 말을 안 듣는 것 같아....떨어지기 싫고, 좀 더 이렇게 있고 싶고 그래."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도 그저 레나한테 붙어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끌어안곤 했었으니. 어제도 마찬가지고. 


"그럼 씻으면서 만져줄게요. 껴안고도 있구요. 그건 괜찮죠?" 


품에 고개를 묻은 채 레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도 한참만에 떨어져 서서 각자 옷을 벗었다. 

아직 일상복 차림이라 내 쪽이 벗는 데에 시간이 걸리자, 뒤에서 끌어안아 등에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기껏 샤워했다면서, 땀 냄새라던가 날 텐데.


잠깐만.


"레나, 잠깐만요."


"....응?"


둘째날 마지막에도 느꼈던 묘한 감촉이다. 살짝 축축하고, 부드럽고, 겉이 조금 까끌한 무언가로 찌르는 듯, 훑는 듯.

그 감촉이 두 번 정도 등에 맞닿았다.


"아니요. 씻을까요."


"응."


뭔지 알 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묘하게 걷지 않으려 하는 레나를 이끌고 욕실로 들어간다. 레나가 바닥에 그대로 둔 옷은....뭐, 조금 있다 치워도 되겠지.




샤워를 시작했음에도 레나는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서 내가 무언가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이었으면 샤워기로 장난친다던가, 그래서 샤워기를 빼앗으면 비누로 장난친다던가, 몸에 물을 뿌려주면 손에 물을 받아서는 내게 끼얹는다거나 좀체 가만히 있질 않았는데. 


물론 기분나쁜 정도는 아니고, 나름대로의 애정표현 비슷한 거다. 같이 샤워하러 들어가면 절차 비슷한 게 되어 있던 거라 오히려 안 하는 게 어색하다.

샤워기로 물을 뿌려줘도 멍하니, 가만히 서 있는 걸 보니....오늘 어제 거 계속해도 괜찮은 건가....?


"돌아서 보세요, 레나."


"...."


내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등을 보이고 섰다.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고 닦아주었던 등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눈이 가서인지 새하얗게 빛나는 것 같다. 샤워한다고 틀어올려진 머리카락과 목덜미의 경계선에서 시선이 떨어지지가 않는다. 목덜미에서 이어지는 새하얀 피부부터 조각한 것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 어깨뼈도,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좁아지다가 한순간에, 그러면서도 조화롭게 넓어지는 골반도. 수줍어하는지 축축해진 채로 붓처럼 늘어뜨려진 갈색 꼬리도.


한참 동안 이어졌던 밀착감과 진한 입맞춤으로 한 번 시동을 걸었던 아랫도리가 한 번 더 욕망을 울부짖는다. 지금 이대로면 사실 한참 전이지만 전희도 충분히 해준 것 같고, 레나가 반응이 좋다 보니 넣어도 될 것 같다. 무방비하게 이쪽으로 엉덩이를 향하고 있고.

겨우 본능을 눌러참고서, 대신 비누 묻혀주기 전에 한 번만, 이라고 생각하며 하얀색이 시작되는 쪽에 입술을 가져갔다.


"....!"


깜짝 놀라며 발뒤꿈치를 들어올리다가 넘어질 뻔해서 다급히 허리를 끌어안았다. 당연히 레나의 몸에 심볼이 맞닿았고, 그 잠깐의 접촉으로 이성이 순식간에 박살날 뻔했다. 끌어안았더니 삽입, 같은 말도 안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 그럼.


"닿았어....박사 군....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선 거 맞지....?"


"사흘 동안 참았는데,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닿은 건 미안해요."


"....다행이다. 당신이 하기 싫어하는 게 아니라서. 미안할 거 뭐 있니."


"그럴 리가요."


약속이니까 따르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스펀지에 비누를 묻혀 거품을 내어서 하얗게 드러난 등을 문질러 닦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알고 있는 음란한 소리와 사가가 외우는 청명한 독경 소리를 동시에 떠올리면서

그 사이에도 좀 불안하게 몸을 떨어서 어깨를 잡고서 했지만.


"....후우, 으....응."


우와....이게 맞나?

분명 항상 그랬던 것처럼 등을 비누로 씻어줄 뿐인데 손이 닿을 때마다 몸을 떨고 있다. 스펀지로 등을 닦는 척 손가락 끝으로 등골을 쓸어내리자 스프링이라도 넣은 것처럼 상체가 튕겨져 깜짝 놀란다. 서 있기도 힘든지 욕실 벽에 손을 짚고도 겨우 서서, 한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고 있다. 신음을 눌러참으려는 모습에 더더욱 괴롭히고 싶어져서 몇 번이고, 중간중간 등을 씻어주는 척 손가락으로 등골을 쓸어내리거나 반대쪽 손으로는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듯 만져보았다.


억눌린 신음소리, 우는 것 같은 목소리에서 수치심과 애달픔이, 갈망이 축축하게 온몸에 걸쳐진다.


힘조절과 요령을 들여 등을 씻어주다가 불시에 욕망으로 다시 더럽히던 손이, 노골적으로 레나를 향한 갈증을 촉각으로 호소하던 반대쪽 손에 이끌리고 만다. 스펀지를 쥔 채로 두 팔을 못 움직이게 껴안고, 최대한 상체만 밀착시키면서 레나의 한쪽 젖가슴을 움켜잡았다. 매끄러운 피부가 손에 묻은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만족스러운 질량감을 손에 쥐지 못하도록 튕겨내는 오묘한 감촉과, 조금 전 비누로 씻어준 탓에 등에 묻어 있던 비눗물이 만들어낸 밀착감이 가슴에 닿는다.


레나의 체온. 억눌려서 거칠어진 숨결.

손에 잡히는 피부의 감촉과 만지는 대로 더더욱 애타는 소리를 재생하는 자그마한 버튼.


숨결에서 묻어나오는 암컷 냄새.

이제 완전히 바뀌어버린 캐모마일 향기.


나흘 간의 인내.


하얗게 드러나는 목덜미를 거의 물듯이 키스하면서, 거의 옥죄어묶는 것처럼 레나의 허리를 팔로 붙들면서 봉긋이 올라온 가슴을 넋 놓고 만지고 싶다. 레나한테 한 손으로 내 허리를 잡혀서, 아니면 허리에 꼬리가 둘러진 채로.


비비고 싶다.

아니, 넣고 싶다.


무아지경으로, 평소 느긋하고 우아하던 목소리가 음란하게 흐트러지는 걸 온몸으로 들으면서. 팔에 붙잡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사람의 체온을 온몸에 안고 같이 쾌락에 끈적하게 젖고 싶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안 입은 채로, 하물며 비누거품으로 축축해진 몸을 만지고 있자니 욕실에서 샤워 중에 몸 섞었던 것도 뿌옇게 떠오른다.

온몸이 젖어서, 타일에 울리는 것 때문에 살 부딪히는 소리나 레나가 내는 신음소리도 더 크게 들려서 방에서 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인데.


무심코 그 기세로 하체까지 밀착시키려다 또 한 번 눌러참았다. 조금 전에 살짝 맞닿았던 감촉을 기억한 아랫도리의 마수가 소리없이 으르렁거렸다.

닿아 있으면서도 그 맞닿을 듯, 닿지 않는 거리감에 레나는 팔이 잡혀 있는 와중에 내 허리를 끌어당겨 하체를 밀착시키려 한다.


"레나. 그렇게 손으로 당기면 앞쪽 씻겨줄 수가 없어요. 가만히 있어요."


"....그래도....알겠어. 가만히 있을게."


레나가 심호흡을 하면서 몸이 부풀었다가 가라앉는 게 느껴진다. 스펀지와 손으로 가슴부터 시작해 여기저기 닦아주자니, 허벅지를 닦던 손을 붙잡혔다.


"왜 그래요, 레나?"


"....여기도 씻겨 줘."


어디로 레나가 손을 이끌려는지 감이 와서 손을 잡힌 채로 버텼다. 머리카락과는 비슷하면서 다른 감촉이 손날 쪽에 비벼진다.

뭐, 안 씻을 수는 없으니까. 씻으면서 만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


"알겠으니까, 놓아주세요."


"진짜지....?"


밀문에 손이 닿는 걸 피하면서 천천히 아래쪽을 닦기 시작하자 그제야 레나도 손을 놓았다. 허벅지 안쪽을 쓸듯이 만지는 게 생각보다 기분좋았던 게 떠올라서 손을 가져갔더니 바로 반응이 왔다. 너무 자극이 세지 않게 씻기던 와중에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졌다.


비누하고 다른 미끄러운 감촉이 엄지손가락에 맞닿으면서, 닿을 때마다 레나의 억눌린 숨소리가 거칠게 욕실에 울린다.


우와....이 사람 스스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손가락 마디에 살짝살짝 닿게 하려고.

맞닿은 손을 가만히 있는 채로 반대쪽 손으로 다른 곳을 씻겨주니 움직임이 은근히 커지고, 숨소리도 억누르지 못하고 있다.


"....왜 그래, 박사?"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가 손을 멈춘 이유를 묻는 걸 보고 천연덕스럽다고 해야 할지, 그 와중에도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에요. 다 닦았어요. 제 등도 닦아 주셔야죠?"


"하아....하아....응. 알겠어. 스펀지 줘."


모르는 척 스펀지를 넘겨주고 돌아서자 좀 떨리면서도 힘있게 문질러진다. 키 차이가 있어서 일단 손 닿는 데부터 하고, 그러고서 자세를 낮춰주는 게, 하고 생각했는데 두 팔이 뒤에서 뻗어나와 내 허리를 또 다시 껴안았다. 손에 들고 있던 스펀지가 욕실 바닥에 떨어지고 스펀지보다 더 부드러운 피부가, 양쪽 정점이 달아올라서는 비누 거품을 묻힌 채 등에 맞닿는다.


"이거는 그거 안 닿으니까 괜찮지....?"


"어....괜찮, 겠죠?"


욕실 바닥에 살짝 앉아서 레나가 몸을 비비기 좋게 하자, 뒤에 업히는 것처럼 레나가 내 어깨를 껴안으며 밀착했다.

한 번씩 욕실에서 몸 섞을 때 전희로 해 달라고 하던 거라서 별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하물며 오늘은 더 바짝 붙는 느낌이다. 애태우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온몸을 실어서.


"이상한 것 같아. 오늘은 당신이 해달라고 안 했는데도 해 주고 싶어졌어."


"그런가요."


"당신은 뒤에서 안든 앞에서 안든 닿는데, 나는 앞에서 봐야만 닿으니까 지금 이러면서 몰래 닿게는 못 하겠네."


"뭐, 씻는 정도니까 괜찮지 않겠어요?"


정점이 비벼지면서 뒤에서 레나의 숨이 거칠어지는 거나, 이따금 목덜미를 깨문다던지, 귀를 핥거나 입술로 부드럽게 문다던지 하는 스파이스가 곁들여지면서 머릿속에 재생시키던 사가의 독경 소리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 같다. 아까도 말이 없었지만, 더더욱 말이 없어졌다.


좀 더 제대로 씻고 싶기야 하지만, 이대로 레나가 애타하는 걸 느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서 일단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이 무언의 달콤한 속삭임은 끊고 싶지 않고, 끊을 수도 없다.




그 후로는 별일 없이 서로 씻겨주고, 몸을 수건으로 닦고선 가운 같은 것도 걸치지 않고 그대로 서로 이끄는 것처럼 침대로 돌아왔다.

몸을 던지는 것처럼 레나를 침대에 쓰러뜨려 덮치자 놀라울 정도로 가볍게 몸이 누여졌다.


여기까지 오기 전에도, 오늘 하루만 몇십 번이나 맞댔던 입술을 시작으로 레나의 온몸을 손으로 쓸면서 혀끝으로 맛보자 평소 이상으로 반응이 좋다. 몸이 떨리면서 터져나오는 신음소리가, 숨을 내뱉으면서 퍼지는 달큰한 여자 냄새가 몸을 섞고 있지 않는데도 캐모마일 향기에 금방 뒤섞여버린다. 입술과 손만으로, 거기다 피부만을 간지르고, 이따금 손톱으로 살짝 긁는 것만으로 레나의 몸이 황홀경을 몇 번이나 그린다.


슬며시 허벅지 안쪽을 만져보니 분명 샤워 후 닦았을 텐데도 손에 축축하게 꿀이 묻어난다. 천천히 애태우듯, 약속을 깨고 금기에 닿을 듯 말듯 하며 손을 놀리자 거짓말처럼 레나가 허리를 아래쪽으로 당기면서 손가락에 밀문을 맞닿게 하려 한다. 어떻게 참는 듯 하면서도 다시 허리를 움직여서 몇 번 닿았지만 그 짤막한, 정말 1초도 안 되는 접촉만으로 금세 허벅지 안쪽에 꿀이 흘러나온다.


"....줘." 


"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레나가 속삭였다. 


밀크커피색의 정점을 혀와 입술로, 바로 앞에서 느껴지는 비누 향기를, 억눌린 채로 황홀에 잠겨 춤추는 동체를 안주삼아서, 다리 사이에 흐르던 꿀을 손으로 맛보던 그때 시야가 뒤집혔다. 내 방 천장....아니, 그 앞에 울 것처럼 눈과 입술을 떨고 있는 레나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다.


"넣어줘....도저히....도저히 이 이상 안 될 것 같아....당신이 만지는 데 하나하나 어떤 느낌인지 아는데, 그런데도 질리지도 않고, 다음엔 어디를 어떻게 만져줄까, 혹시 지금쯤이면 넣어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고 있는데도....가장 하고 싶은 걸 할 수 없어서 미쳐버릴 것 같아...." 


레나가 더 이상 억누르기 싫다는 듯 밀착하며 허리를 들썩인다. 지금 이 움직이는 거, 레나가 위에 올라탔을 때랑 똑같아서 나도 똑같이 이성을 잃고 밀문에 심볼을 맞추려 할 뻔했다. 이미 전희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몇십 분이나 레나를 애태운 탓에 가녀린 몸은 나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흘, 닷새 동안의 약속이라는 우리 둘의 협약에 아랫도리도 인내의 한계를 호소했다. 


"지금까지 한 거 나중에 또, 처음부터 해도 좋으니까....응? 박사 군....그거 넣어줘....꼭 껴안고, 평소에 하는 것처럼 사랑해줘....나흘 동안 참았잖아....이제 해줄 때도 됐잖아...."


"그럼 지금까지 참아온 게 아깝잖아요, 레나."


오히려 방금 몇 번, 의도치 않게 손댔지만 그러지 말라고까지는 차마 말할 수 없다.

나도 어렵게 어렵게 참고 있기 때문에 레나도 얼마나 


"그럼 내가 움직일게, 당신은 아무것도 안 해도 돼....내가 그냥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니까 잠깐만 이대로 있어줘...."


"둘 다 어렵게 참았는데요. 이제 하루에요. 조금만 더 견뎌봐요."


"그....그럼 손가락만, 아니 안 넣어도 괜찮으니까 바깥쪽이라도....조금만 달래주면 더 참을 수 있어....제발, 박사 군....나도 해줄 거니까....입으로든 손으로든, 당신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할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니 상상해본 적도 없는 애달파하는 모습에 심장이 부서져라 뛴다. 이 정도로 레나가 강하게 갈구한 적이 없었다. 

레나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우는 것 같은 답답한 숨소리가 묘하게 심장을 진정시키는 듯했다. 정작 레나는 진정이 되지 않는지 여전히 몸을 떨고 있다. 


정말로, 이 정도로까지 레나가 원한다면 사실 약속은 아무래도 좋겠지. 먼저 말 꺼낸 것도 레나고. 이번은 실패한셈 치고 다음을 기약해도 문제는 없다. 기회가 이번만 있는 것도 아니니. 


"응? 박사 군....이렇게 안고 있는 것도 좋은데....지금 넣으면 얼마나 좋을까...."


"레나. 사흘 참았으니까, 하루 정도는 더 참을 수 있잖아요. 괜찮아요. 같이 하면, 할 수 있어요." 


"미치겠어. 정말 미칠 것 같아. 아직 넣으려면 몇 시간이나 더 남았다니. 발정기 온 암여우가 짝짓기를 못하면 이런 느낌일까? 약속이고 뭐고, 얼른 이 안에 채워줬으면 싶어....이대로 피임도 하지말고, 몇번이고 부서지도록 박히고 싶어....임신할 때까지 찔러줘...."


묘하게 듣고 싶은 말이랑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섞어서 대답하기 힘들다. 저런 대사 어디서 들은 거냐고. 


"일단 진정해요, 레나." 


술이 들어가서 음담패설을 하는 거라면 헛소리하는 거려니 하면서 물 두어잔 먹이고 재우면 되지만 이건 그런 것도 아니라서 더 난처하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딸 하나 아들 하나라던가, 그때 이후로도 몇 번 이야기했었지만. 하물며 레나는 술도 안 한다.


아무튼 레나를 한 번 도닥이고 일어나려 하자 레나가 나를 더 꼭 붙잡았다. 어린아이가 칭얼거리는 것 같아 귀여우면서도, 나에게 기대려는 듯, 아니면 잡아먹으려는 듯 열망어린 기세에 덮쳐져 억눌릴 뻔했다. 


"싫어....안 놔줄 거야....어디 가...." 


"물 가지러요. 한 잔씩 마시면서 잠깐 쉬어야 되지 않나 해서요. 이 방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갈 거니까, 일단 진정해요, 레나."


겨우 레나를 설득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챙겨 돌아왔다. 물을 받아 마시면서도 여유롭고 그윽한 표정은 어디에도 없고, 아쉽다는 듯 흘끗흘끗 조용히 눈만 맞추고 있다.

뭐, 항상 이러는 것도 아니니까 받아줄 수 있다. 오히려 이렇게 애타하는 모습을 보니 더 애태우고 싶고. 


혹시 나이트메어가 말한 게 이런 의미였나? 

아무리 뛰어도 앞발이 포도에 닿지 않는 여우의 눈앞에, 손수 따서 보여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새콤달콤한 향기를 눈앞에서 맡게 하면서, 발돋움해서 겨우 주둥이가 닿을락말락 한 높이에 포도를 들어올리고 있다. 혀를 내밀어 핥을 수는 있지만 포도는 껍질을 핥는 걸론 아무 맛도 나질 않고, 결국 힘이 빠져서 발돋움을 그만두고 만다. 그런데도 다시 발돋움해서 포도를 한 알이라도 입에 넣으려고 낑낑거리고, 다시 힘이 빠지고. 다시 발돋움하고.


ㅡ그래서 실제로 같이 자면 어때? 의료부에서 그 여자 표정 보면 당신이 안 해줘서 안달난 것도 아닌 것 같고, 하기 싫은데 싫다고 말도 못해서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하기 싫어하는데 억지로 하는 건 나도 같이 하는 기분이 안 드니까 싫고, 안달내는 것 정도는 조금 조절하면 괜찮은 느낌일 것 같다. 레나도 평소 은근히 유혹하면서도 슬슬 애태우는 감이 있으니, 오늘처럼 반대로 레나가 애타서 보채면 평소에 애태워진 만큼 되돌려 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묘한 정복감과, 평소 하지 않던 짓이라 피어나는 배덕감에 오히려 본능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만약 레나의 비부를 직접 만지거나 했다간 점점 그 다음을 바랄 것 같고, 결국 약속을 깰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섣불리 손대질 못하겠다.


"레나. 물 마시고 교대해요. 정말로 못 참겠다면 조금 정도는 만져주겠지만....좀 더 힘내 봐요. 할 수 있어요. 꽃이 크는 것도 기다릴 수 있잖아요. 하루만 더 같이 기다리면 당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내일 섹스는 정말 황홀할 거에요. 저도 그게 기대되어서 참고 있는 거구요."


"...."


대답 대신 레나는 다시 나를 덮치듯 껴안으며 입술을 맞대는 인사로 리드하기 시작했다.

그 잠깐 체온이 올라 땀이 흘렀는지 아까 껴안았을 때보다 더 바짝 붙는 것 같다. 더 이상 보채거나, 말없이 시위하지 않고 내가 했던 그대로 손길과 입술로, 자신이 원하는 데까지 인도했다.


입술하고 혀가 피부를 훑는 느낌이 평소하고 다르다. 물론 둘이 아무것도 입지 않고, 손과 입으로 애무하면서 몸을 비비는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에로틱한데 오늘은 왠지 레나의 손길과 숨결에서 달콤함까지 느껴진다.


평소에 하면서도 꽤나 헌신적이라서 처음엔 이런 애무를 내가 받아도 되는가 싶었는데, 오랜만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익숙해져 버려서 잊어버리고 있던 감각이다. 내 반응을 살피면서 자신도 즐긴다거나, 내가 애태운 그 이상으로 나를 애태우려 할 건데 오늘은 완전히 애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도 이틀 전과 똑같이, 온몸 여기저기를, 심볼과 그 주변만 빼고 손과 입술로. 

혀로 정중하게 인사하듯 애무하고 훑으면서, 이따금 내 손가락 사이에 자기 손가락을 엮어 꼬옥 잡으면서. 


그래도 중간중간 아예 손길과 입술을 멈추고 지긋이 나하고 시선을 맞추었다.

애달픈 시선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그윽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무언가 말하는 것처럼 한 번씩 입술을 벙긋거렸지만 굳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묻지 않았고, 레나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는지 거듭 말하지 않았다.


심볼 근처에 갔을 때 망설인다던지, 뜨거운 숨을 내뱉는다던가 하는 것도 몇 번 있었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랫도리는 건드리지 않았다.

긴 시간을 들인 손길과 입맞춤을 끝내고 레나가 내 몸 위로 덮치듯 올라왔다.


"....하아....이 정도면 다 한 것 같아. "


"잘 참았어요, 레나. 고마워요. 따라 줘서."


"...."


대답 대신 레나가 무언가를 바라는 눈으로 지긋이 나를 본다. 내가 하자는 대로 따랐으니,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아까 욕실에서도 내가 했던 걸 생각하면 반대로 내가 등을 보였을 때가 되돌려줄 기회였을 텐데.


말없이, 이번에는 레나를 엎드려 눕게 하고선 목덜미부터 입술과 혀로 맛보기 시작했다.

몇 번 정도 무언가 말하려다가 포기한 것처럼, 레나는 오히려 힘을 빼고 내게 맡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터져나오는 숨결은 여전히 내 본능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날짜 바뀌었으니까 이제 해도 되는 거 아닐까?

지금 뒤에서 갑자기 넣어버리면 레나는 바라던 대로 되어서 기뻐할까? 손가락만 살짝 넣어서 해도 되는지 물어볼까?


망설임과 본능을 더더욱 억누른 숨소리.

더 짙어진 체향과 방 안을 뜨겁게 달구는 체온.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로 우리 둘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협약은 마지막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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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오류 지적 환영 


매번 너무 오래걸려서 미안하다

쓰면서도 이게 맞나 싶으니까 피드백은 다른때보다 더 빡세게 부탁할게


빨리 완성해야 안젤리나 글도 쓸텐데

왜 순서가 바뀌었냐고는 물어보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