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arknights/58442583


전술에 문제는 없다. 똑같은 방법으로 시뮬레이션을 네 번이나 진행해 봤지만 네 번 모두 성공했다. 역시 전장의 변수가 문제였던 거다. 소음, 아머레스 유니온의 습격, 집중력 분산과 기타 등등.


이대로만 하면 이틀 뒤 작전은 문제없이 끝날 것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요인들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때 가서 만전을 기해야겠지.


부상병의 치료는 끝났다. 오늘 있었던 사고에 대해 묻는 켈시도 적당히 잘 둘러대고 넘겼다. 이제 남은 문제는 두 시간도 안 돼서 파다하게 퍼진 소문을 어떻게 잠재우냐는 건데.


"엘리시움, 대체.."


대체 뭔 말을 했길래 쏜즈가 대뜸 찾아와서 모자 좀 벗어보라는 말부터 꺼내는가. 때마침 들어온 켈시가 아니었다면 그대로 후드가 벗겨졌을 것이다. 그 녹색 고양이의 잔소리가 반가운 건 처음이었다.


박사가 이마를 짚으며 그를 추궁했다. 암만 생각해도 선내에 파다하게 퍼진 소문의 시발점은 저놈의 주둥아리다. 그간의 행적이 있으니 박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엘리시움은 억울했다. 이번에는 정말, 그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전 전후로 박사를 대하는 오퍼레이터들의 태도가 싹 바뀌었는데 그걸 눈치 못 채는 게 더 이상하지.


그녀의 후드가 벗겨진 그 순간부터 이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 얼굴을 보고도 그녀를 전처럼 대할 수 있을 리가. 심지어 없던 소문이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니다. 있던 소문이 갑자기 커진 거지.


"전부터 박사 성별 얘기만 하면 싸움판이었잖아."


박사의 성별에 대한 얘기로 종종 갈드컵이 열린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보통이라면 박사가 남자라는 쪽이 크게 우세하고, 여자라고 주장하는 측은 아주 극소수였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실버애쉬의 수작질이 훨씬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니어가 그라벨을 볼 때마다 시선을 슬쩍 돌린다. 스즈란이 박사의 상태를 걱정하는 방식도, 허리를 끌어안고 치근덕거리는 그를 쳐내는 사일라흐도 평소와는 다르다.


"그래서 내가 여자라는 쪽이 갑자기 득세했다?"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사그라들걸. 원래도 그랬잖아."


"..그래, 의심해서 미안하다. 가서 쉬어. 넌 내일 일일 협약도 나가야 되니까."


협약만 나가겠는가. 온갖 작전에 항상 끌고 다니면서. 출전 횟수가 가장 많은 뱅가드 삼 인방 중 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집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박사도 한숨을 내쉬었다. 저 가슴이 어떻게 여자냐, 저 키가 어떻게 남자냐. 박사에겐 상처만 남는 저 논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위기 협약이다. 박사는 단말기를 들고 다시 전술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




"스펙터! 무조건 버텨! 머틀은 깃발 들고 엘리시움은 올라가! 백파이프, 말 안 해도 어딘지 알지? 노시스, 얼려!"


차가운 서리가 톨라를 얼리고 클로즈드 볼트 연발이 얼음덩이를 꿰뚫는다. 텍사스가 잠시 내려와 그의 발을 묶고 사라진 뒤 스즈란과 니어가 등장해 온 화력을 퍼붓는다. 마침내 악몽의 기사가 창을 떨구고 무릎을 꺾을 때까지,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이겼다!! 대승리! 박사, 나 잘했지?"


"잘했어, 다들. 수고 많았다."


"사전 준비가 철저했으니,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했던 대로 작전이 끝났다. 다행이다. 역시 전술에는 문제가 없었어. 박사는 꽈악 움켜쥔 주먹을 허공에 한 번 휘둘렀다. 무전으로 전해지는 목소리에서 벅차오르는 기쁨이 묻어났다. 돈 시커 작전 1주 차 만점, 그 험난했던 작전이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부상자는 바로 나이팅게일한테 가고, 저녁은 내가 쏠 테니까 시간 되는 사람은 남아."


"박사, 부상자한테 술은 금지다."


"여기 애들도 있는데.."


바로 근처 술집으로 향하려던 계획이 저지당하자 박사가 어깨를 늘어뜨린다. 아쉬운 기색이 역력한 그를 끌고 그들은 로도스 아일랜드로 돌아갔다.


그렇지만 박사의 의지를 막지는 못했다. 술집이 안 된다면 로도스의 식당에서 마시면 되는 거 아닌가. 술을 향한 그의 의지는 아주 결연하기 짝이 없었다.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몰라. 인원이 너무 많아서 어느 술집을 가던 자리가 문제였을걸."


"됐어, 인원도 인원이고 애초에 술 안 좋아하는 애들도 많아서 무슨 수를 써도 술집은 못 갔을 거야."


스즈란은 아직 애고 스펙터와 나이팅게일은 중증 광석병 감염자이니 음주는 엄금. 음주를 즐기지 않는 오퍼레이터들도 많으니 차라리 이게 더 낫다.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며 박사는 곁에 앉은 사람들과 건배를 나눴다.


실버애쉬, 텍사스, 테킬라, 엘리시움. 함께 작전에 나갔던 오퍼레이터들 중 음주에 적극적인 몇 명만 남으니 인원은 몇 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중 몇 명은 내일도 작전에 나가니 여기서도 마음 놓고 마시긴 글렀다.


"하여간 다들 고생했어. 1주 차 만점은 솔직히 좀 욕심이었는데."


"전투가 힘겨울수록 승리의 희열은 더욱 달콤해지지. 이번 임무는 꽤 흥미로웠으니 상관없다."


위기협약의 난이도는 점수가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하지만 보상이 준비되어 있는 건 18점까지. 리스크는 크고 리턴은 없는 전투에 로도스가 출전하게 된 건 순전히 박사 개인의 욕심이었다.


어려운 도전일수록 이를 해결했을 때의 쾌감도 커진다. 이만큼 난도 높은 전투에 도전할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 작전을 한 번 실패하기까지 했는데도 1주 차 만점에 매달린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으나..


난이도가 더 높아지면 오퍼레이터들의 부담도 커진다. 그러니 이번 위기 협약에서 이 이상의 고난도 도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솔직히 2주 차에도 만점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33점은 정말 과한 욕심이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할 줄 알아야 한다.


"박사, 그렇게 마시고 내일 괜찮겠어?"


"벌써 취하면 곤란해. 네가 얼마나 마실지 내기했다고."


아쉬운 마음에 술을 쭉 들이켜자 옆에서 다들 박사를 말렸다. 내일 작전에 나가는 건 박사도 마찬가지. 누구누구는 머틀과 백파이프를 믿고 빠질 수라도 있지, 박사는 그러지도 못한다.


"아직은 안 취해. 내가 첸이랑 호시구마 사이에 껴서 마신 술이 얼만데, 나도 전보다는 늘었다고."


용문의 고량주던 우르수스의 보드카던 원샷이 기본인 미친놈들. 비우면 채우고 채우면 비우는 돌아버린 놈들. 그러고도 다음날 아침에 멀쩡한 얼굴로 출근하는 괴물 같은 놈들. 도솔레스에서 그 술꾼들에게 당해본 적 있는 테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건배! 또다시 술잔을 부딪친 박사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용문의 미친 술고래들과 하도 술을 마셔댔더니 버릇이 잘못 들었다. 이렇게 빨리 마시면 빨리 취하는데. 이상하게 아까부터 마시는 족족 잔이 채워진다. 이러면 어쩔 수 없이, 또 들이켜야 한다.


"오늘은 크루아상도 없어. 취하면 알아서 걸어 들어가라."


"너무하네. 텍사스, 우리 사이가 그거밖에 안 됐어?"


"우리가 무슨 사이였지?"


이런 사이? 그녀가 텍사스를 끌어안고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다. 이렇게 매달리고 애교 부려도 그녀가 술에 꼴은 박사를 업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텍사스가 박사를 가볍게 밀어내자 순순히 떨어져 나온 그녀는 다시 잔을 입에 가져갔다. 벌써 몇 잔 째일까. 비우기가 무섭게 다시 채워지는 잔을 슬쩍 옆으로 밀어낸 박사가 아까부터 말없이 술을 따르던 사람을 노려봤다.


"벌써 취한 거 아냐? 천천히 마시라니까."


"너랑 내기하는 게 이놈이냐? 늬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친했다고."


"한 잔 더 하지, 맹우여."


"그만 먹여. 아직 일 다 안 끝났어."


내일 일일 작전 지점에서 사용될 전술도 다시 한번 검증해 봐야 하고, 다음 주부터 시작될 힐록 카운티 교외 섬멸 의뢰도 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버애쉬, 이 자식도 내일은 로도스에 코빼기도 못 비칠 정도로 바쁘다면서 오늘 이렇게 마시면...


마시면..


마시면....


"아직 일 덜 끝났다고 했잖아아.."


로도스의 주당들 중에 가장 술을 못 마시는 건 박사다. 로도스 전체에서 술 잘 마시기로 순위를 매겨보자면 박사는 대충 중간보다 살짝 위 정도에 있겠으나, 박사보다 아래 위치한 사람들은 음주를 자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인 게 문제다. 박사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람 같지 않은 신체 능력을 가진 이들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또오 나만 이 모양이지, 진짜아."


술 내기가 하고 싶으면 너희들끼리 대작이나 할 것이지 왜 나를 끌어들이냐, 지는 일 다 끝났다고 이렇게 막 먹이면 되겠냐 안 되겠냐. 풀린 다리와 어눌한 발음으로 박사가 실버애쉬에게 투덜거렸다.


"내기 져 놓고 좋냐? 아으, 어지러어.."


이거만 마시고 그만 마시겠다, 이제 정말 더 마시면 안 된다는 박사의 잔에 계속 술을 채워 놓은 장본인은 휘청이는 그녀를 조용히 들어 올렸다.


내기에서 졌으니 박사를 방으로 데려다 놓는 건 그의 몫이다. 이기든 지든, 그는 이득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란의 주인은 손해 보는 거래는 하지 않는다. 너 이러려고 그렇게 먹인 거지. 원망하는 목소리에 대답할 말은 없었다.


"너어 이러는 거... 먼 생각인지 다 아는데, 하지 마."


"내가 무슨 생각을 했지."


"난 로도스의 박사야. 카란으로 갈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


"그런가, 아쉽게 됐군."


"아랏스면 이제 내려놔. 다 왔으니까."


그가 박사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오늘 박사는 지나치게 제정신이다. 역시 술을 좀 더 먹일 걸 그랬나. 입술을 핥는 설표를 뒤로하고 박사는 방 안에 들어와 문을 쾅 닫았다.


긴장이 풀린 다리가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저 식육목 고양이 새끼, 잡아먹히는 줄 알았네. 하여간..


로도스에서 자리 보전하고 있으려면 저 새끼부터 조심해야겠다. 박사의 마음에 굳건한 다짐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목마른 놈이 판 우물이 그렇게 인기 많을 줄은 몰랐다.. 2편 써왔음

그리고 씨발 늬들은 공연하는 동아리 가지 마라 축제가 코앞이라 하루에 5시간씩 연습하니까 글이고 뭐고 그냥 시간이 없더라.. 기다린 놈들이 있다면 미안하다

다음 편이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모르겠고 축제 끝나면 생각해봄 지금 시간 거지 새끼라 과제 할 시간도 모자라서 못해도 일주일은 걸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