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https://arca.live/b/arknights/58442583

2화- https://arca.live/b/arknights/58848069




"아으, 대가리 깨지겠네.."

박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 서랍에서 응급 이성 회복제를 꺼냈다. 서랍 모서리에 내리찍어 단단한 포장을 제거하는 몸짓이 오늘따라 신경질적이다. 좀처럼 벗겨지지 않는 포장에서 엠플을 꺼낸 그는 얇은 유리병의 주둥이를 분질러 열고 안에 든 액체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다량의 카페인, 당분, 비타민C와 타우린, 그 외 많은 성분들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이거라도 있어야 오늘 하루 정신을 차릴 수 있다. 아미야나 켈시가 이걸 본다면 이성 회복제는 숙취 해소제가 아니라고 잔소리를 하겠지만.

세수로 아직 몽롱한 머리를 깨운다. 특별 배급 된 약물을 마신다. 이게 숙취 해소제라면 좋으련만. 시계를 흘긋 바라본 뒤 아침을 거르기로 결정한다. 특제 전신 방호복으로 온몸을 가리고, 박사는 어젯밤에 못한 업무를 위해 방을 나섰다.

이제 막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복도에 가벼운 발소리가 울린다. 불안한 얼굴로 푹신푹신한 보라색 꼬리를 흔들고 있던 프로방스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방 밖으로 나온 박사를 맞았다.

"어, 박사! 오늘은 좀 늦었네."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프로방-"

하늘에서 떨어진 붉은빛이 박사를 덮쳤다. 그의 세상이 잠시 검게 물들었다. 다음 순간 지끈거리는 머리에 들어온 것은 회색 머리카락과 로도스의 천장, 아미야의 신발..

"프로방스 씨! 박사님을 기절시키시면 어떡해요!"

"박사, 귀, 없다. 푹신푹신.. 없어."

"내려와, 레드."

웅성거리는 소리. 사방의 눈빛이 한 곳으로 집중된다. 자신을 깔아뭉갠 레드를 떨쳐낸 박사는 강제로 벗겨진 모자를 다시 눌러썼다. 수십 쌍의 끈질긴 시선을 무시하고 걸어가는 그녀의 뒤로 이 일을 주도한 몇몇 오퍼레이터들이 따라붙었다.

"박사~ 이번 주말에 같이 용문에 쇼핑하러 가자. 지난번에 내 푸딩 훔쳐먹은 거 용서해 줄 테니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미 용서한 거 아니었어?"

"어허.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려요. 평생 쫓아다니면서 저주하기 전에 얼르으은."

제길, 잘못 걸렸다. 이런 식으로 소문을 확인하려 들 줄이야. 박사의 걸음이 빨라지자 따라오는 우타게의 발도 덩달아 빨라졌다. 그녀의 뒤로도 여러 오퍼레이터들이 박사를 쫓아오며 각기 다른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엑시아, 텍사스, 크루아상에 소라. 오늘 펭귄 로지스틱스는 파업인가? 아미야에게 실컷 혼나고 있는 프로방스와 레드, 은근슬쩍 이 행렬에 따라붙은 안젤리나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오퍼레이터들이 여기에 가담한 건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쩐지 이상하더라! 얼라들이 대놓고 꼬실 때는 목석이 되던 이유가 이거였고만."

"크루아상, 방패 좀.. 많이 무겁거든."

"리더! 후드 벗고 다닐 생각 없어? 조금만 꾸미면 진짜 로도스의 모두를 후리고,"

"없어. 기각. 안 돼."

"그래서 요즘 실버애쉬 씨가.."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힘겹게 걷던 박사의 눈에 녹색 구세주가 보였다. 켈시가 나를 일로서 구원하리라. 박사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외쳤으나, 돌아온 것은 싸늘한 외면이었다.

"치정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라, 박사."

"그런 거 아니, 켈시! 켈시이이이!!!"

"..이번 주까지 해결해야 하는 일이 몇 개인지는 알고 있겠지."

네 평소 일정에 위기 협약, 섬멸 의뢰. 다른 때면 몰라도 이번 주는 어디 갈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켈시의 말에 뒤에 따라붙은 여성 오퍼레이터들의 입에서 아쉬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싫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도와주는 켈시에게 박사는 엄지를 척 들어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녹색 고양이는 그 소란스러운 현장을 무심하게 빠져나갈 뿐이었다.

"들었으면 다들 비켜줄래. 이제 일 안 하면 아미야한테 혼난다고."

"괜찮아, 우린 기다릴 수 있어! 이번 주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박사가 여성 진의 손길을 뿌리치고 집무실에 도착하기 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그가 제발 후드 한 번만 더 벗어달라는 엑시아를 끌고 버려진 섹터로 향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


"그래서 포기하기로 한 거야?"

"어. 끝도 없이 몰려들더라. 우르수스인을 내가 어떻게 이겨."

잘 정돈된 반묶음을 한 박사가 지친 표정으로 한 엘리트 오퍼레이터의 어깨에 기댔다. 단단한 어깨에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끝이 살짝 그을린 그녀의 머리칼과 대비됐다. 그녀들이 이걸 봤다면 기함을 했을 테니, 그녀로선 박사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제 목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대충 길러서 넘겼던 앞머리는 싹둑 잘려 이마를 덮었다. 고데기로 세팅된 머리카락이 탐스럽게 구불거리고, 머리 위를 덮고 있어야 할 후드는 직무를 유기한 채 주인의 얼굴을 훤히 내보이고 있다.

"근데 진짜 대단하긴 하네. 이게 전문가의 손길인가?"

"전문가.. 골든글로우... 나중엔 블루포이즌도 여기 끼는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지. 박사는 예쁘잖아."

일일 작전 지점에서 오늘 자 협약의 만점을 달성하는 것보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든 여고생들을 상대하기가 더 버겁다. 역시 여고생들을 오퍼레이터로 받는 게 아니었는데. 소파에 축 늘어진 박사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과거의 자신을 저주했다.

방공호 문짝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고 다니는 괴력의 소유자지만 여고생이다. 웃으면서 적을 도륙 낼 수 있는 실력자지만 여고생이다. 전장의 모든 적을 허공에 띄울 수 있는 대단한 아츠를 구사할 줄 알아도 여고생이다.

예쁜 여자를 더 예쁘게 꾸미는 데에 한창 관심 많을 나이. 전장보다는 용문의 쇼핑몰이, 스킬 개론보다 패션 잡지가, 상처와 흉터보다 반짝이는 장신구가 어울릴 아이들이다. 무기가 아니라 펜을 들게 했어야 했다. 전투가 아니라 사무적인 일들을 가르쳤어야 했는데.

"애들이 힘쓰는 법을 배우더니 이젠 어른도 이겨먹어. 당해낼 수가 없어. 어른 공경도 없고, 이 자식들이."

장난스럽게 덧붙여진 말에 엘리트 오퍼레이터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짧은 생각 끝에, 그녀는 박사의 말을 농담으로 받기로 결정했다.

"걔들이 사무직이어도 못 이겼을걸. 네 팔뚝 좀 봐. 굼이 살짝 쥐면 부서진다."

"과장이 지나친데. 그 정돈 아냐, 블레이즈."

"그래도 나름 괜찮지 않았어? 박사도 기분 좋아 보이던데."

"원래 어렵다는 재밌다의 다른 말이야."

그게 뭔 개소리냐고 말하는 듯한 시선이 박사를 쳐다봤다. 한마음으로 의기투합한 여고생들을 상대하긴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블레이즈는 눈을 한 바퀴 굴리고는 그녀의 궤변을 짧게 축약했다.

"그니까 박사도 이 상황이 내심 마음에 든다는 거지?"

"아니."

"재미있다며."

"아니라니까. 위기 협약 1주 차 만점도 재미는 있었어."

네네, 그러시겠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그녀는 성의 없이 고개를 까딱였다. 아까부터 이쪽을 계속 흘금거리는 몇몇 이들의 시선까지 포함해서, 박사는 이 상황이 생각보다 즐거운 듯했다.

예민한 필라인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프라마닉스와 수군거리는 클리프하트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있던 난 모르겠다.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힘내, 박사."

"너도 힘내, 좀 이따 다음 주 섬멸 의뢰 모의전 하러 갈 거니까."

그녀의 얼굴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박사는 블레이즈의 애잔한 눈빛을 보며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개추는 최고야 짜릿해 언제나 새로워
관심의 맛을 못 잊고 3편을 꾸역꾸역 쪄왔음

글쟁이들 존경한다 진짜 현생살기도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이틀에 한편씩 글을 찍어내는건지

축제 아직 시작도 안한 거 실화냐 증말 가슴이 웅장해진다 첫 공연이 엊그제 같은데 내일모래 또 공연이랜다 뒤진다 진짜 늬들은 응원단 같은 거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