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데레 단편집. 

등장 오퍼레이터: 크루아상, 소라, 모스티마, 안젤리나, 골든글로우




『크루아상』



"사장님! 요게 이번 주 분량이데이!" 



툭, 내 책상 위에 무게감이 느껴지는 봉투가 놓여졌다. 내용물은... 상상이 간다. 



"............" 


"이야― 이번 거는 꽤 힘들었데이? 평소보다 좀 더 넉넉하게 넣어놨으니께, 확인해보그라!" 



그렇게 말하며 기쁜 듯 웃는 그녀... 크루아상이었으나, 나는 그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봉투 안에는 꽤 많은 용문폐가 들어있다. 

두께를 보아, 확실히 요전번보다 좀 더 두둑하게 넣어준 것 같다. 



"...크루아상" 


"응?" 


"이제 이런 건 그만해. 내가 네게 이런 일을 시키려고 사귄 건 아니니까" 


"에이~ 먼 말을 그렇게 하나!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진심으로 부탁함에도,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말해온다.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다. 대체 어째서 날 위해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걸까. 


그러나,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조금,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을까?" 


"응, 물론이제! 사장님 이야기라면 뭐든 들을게!" 


"고마워. ...소파로 갈까." 



그리고 우리들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두 명의 무게를 받은 소파가 끼익 소리를 냈다. 



"그래, 얘기하고 싶은 거이 머고?" 



옆에 앉은 그녀가 이쪽을 올려다본다. 그 눈동자에는 기대하는 기색이 비쳤다. 

난 결심한 뒤, 이내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난 이제 이런 거 그만하고 싶어." 


"......이런 거라니, 머 말이가?" 


"...나한테 이런저런 걸 갖다주는 거 말야. 요즘은 용문폐뿐만 아니라, 다른 것까지 갖다주고 있잖아." 


"아아, 그 얘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그녀는 시선을 떨궜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고, 태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 마라! 내는 좋아서 하고 있는 거니께. 사장님한테 주기 위해서라 생각하면 즐거운걸. 일 할 기운도 난다 아이가!" 


"......그렇지만..." 


"그리 깊게 생각 안해도 됀다잖나. 자 바라,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했잖나? 다음주도 가져올 테니께 안심하그라! ...혹시 부족해서 그르나? 그라믄 내가 어떻게든......"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흥분하는 그녀를 제지하듯 목소리를 높이자 그녀는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시작했다. 



"넌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난 네 밝은 성격과 다른 사람을 잘 보살펴주는 모습이 좋았던 거야. 그러니 이렇게 말고, 좀 더 평범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해주니 윽수로 기쁘지만, 무리데이" 


"......어째서야!?" 



예상치 못한 답변에 큰 소리를 내고 만다. 그녀는 그것을 신경쓰는 척조차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간다. 



"내는 진심으로 내가 하고 싶으니께 하는기라. 사장님도 돈이 있으면 곤란할 일은 읎잖나?" 


"그, 그건 그렇지만......" 


"내는 별로 보답을 바라고 하는 거 아이다. 사장님이 기뻐하시는 거를 보는 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 그렇데이." 


"......" 



그녀의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귀기 전에는 좀 더 편하고, 함께 여러 가지를 즐기며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이렇다. 이런 관계가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정답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나는 마음을 굳히고 그녀에게 말하기로 했다. 



"...그럼, 앞으로도 이렇게 나한테 바칠 셈이야?" 


"응― 바친다는 표현은 쪼매 그렇지마는, 머 이렇게는 계속 하려나~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사장님이 좋으니께!" 



꾸밈없이 웃으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다시 한번 결심을 굳혔다. 

분명 이게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알았어." 



짧게 대답한 뒤 일어섰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걸어나갔다. 


향한 곳은 내 책상. 그리고 그 서랍을 열어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 뒤, 그녀의 앞으로 돌아갔다. 



"오, 뭐고?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 



흥미진진해하며 몸을 내미는 그녀를 무시하고, 나는 서랍에서 꺼낸 주머니를 내밀었다. 



"주는 기가? 사장님한테서 선물이라니... 윽수로 기쁘데이!" 


"......확인해봐." 


"그래 말한다면야! 어디보자~..." 



기쁜 듯이 받아든 주머니를 열어 안을 확인해본다. 그리고, 나온 것을 보고, 그녀의 움직임이 멈췄다. 



"......에?" 



그녀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요게, 뭐꼬?" 


"...지금까지 너한테 받았던 것들이야." 



내가 준 것은 그동안 그녀가 주었던 용문폐, 명품 시계, 치장품 등이 든 주머니였다. 언젠가 그녀에게 돌려주려고 사용하지 않은 채 계속 보관하고 있었다. 


그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지만 나는 무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왜, 왜 하나도 안 썼나?! 게다가 이거... 내가 여태 준 것들 아이가. 왜? 왜?" 


"......아까도 말했지만, 난 이런 건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야. 계속 네게 돌려주려고 기회를 보고 있었어." 


"거짓말이제...... 말도 안댄다카이. 그기, 그기...... 사장님도 받았을 때 기뻐했잖나! 근데, 어째서......?" 



믿을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 그러나,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나는 숨김없이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확실히, 처음에는 네 호의에 보답하기 위해 기뻐하는 척 했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 어떻게든 네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왔지만... 이젠 한계야." 


"...한계...? 무슨 소리?" 



그녀는 불안한 듯 물어온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킨 뒤, 각오를 다지고 입을 열었다. 



"헤어지자. 이런 관계가 계속되어봤자 의미는 없어." 


"...하...?" 


"넌 날 위해 많은 고생을 했지만, 난... 좀더 너와 대등한 사이로 있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녀가 뭔가를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부족했나?" 


"어?" 


"내한테 대체 뭣이 부족했나? 돈? 물건? 아니면 사랑? 몸인가? 내는 대체 뭘 해야 좋았던 것이고!?" 



엄청난 속도로 질문을 부딛쳐오는 그녀에게 당황했다. 평소와는 뭔가 다르다. 분명히 뭔가 망가져 있다. 



"자, 잠깐 기다려. 일단 진정......" 


"아, 그래, 돈이 부족하구나? 그런 푼돈으로 사장님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데이... 더 벌어올테니 이제 용서해도" 


"아, 아니......!" 


"개안타, 안심하그라.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할 테니까...... 그라믄 분명 사장님도 나를 다시 보게 될 끼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고, 비틀거리며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황급히 그녀를 부르자 휙 돌아선다. 



"야... 야! 어디 가는 거야!?" 


"어디 가냐니...... 당연히 좀 더 벌이가 되는 일을 찾으러제. 사장님도 좀 더 나한테 일을 시켜도 된데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기, 기다려!" 



나는 그녀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그러자 그녀는 멈춰서며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 눈동자에 깃든 것은― 광기였다. 

어떻게든 내게 매달리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런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사장님... 걱정해 주는기가? 기쁘구마... 그래도, 내는 괜찮데이. 이래봬도 의외로 터프하니께! 그리고...... 사장님이 기뻐하는 것만 볼 수 있다믄, 정말로 내는 뭐든지 할 수 있데이... 그러니..." 



천천히, 내 손을 감싸오는 그녀. 그 힘은, 떨쳐낼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이제 헤어지자는 말은 하지 마라. 내는 사장님이 너무 좋으니께..."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깨닫고 말았다. 그녀는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곳까지 가버린 것이라고. 



"..........크루아상..." 



그녀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이 이런 것이라니. 어딜 봐도 망가져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밖에 그녀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뿌리칠 수 없었다. 



"...박사, 왜 아무 말도 안 해줘?" 



천진난만하고, 늘 밝고 힘차게 행동했던 그녀는 이제 없었다. 




『소라』



"야호~ 박사~" 


"소라......!?" 



깊은 밤. 갑작스레 집무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울림과 함께 열리니, 그곳에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라. 로도스와 제휴 관계인 펭귄 로지스틱스의 직원이자, 동시에 용문의 유명한 아이돌이기도 하다. 그녀가 이런 시간에 내 집무실에 오는 건 본래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라고 생각한 나는 이미 행동으로 옮기고 있었다. 



"흡!" 


"꺅!?" 



나는 황급히 그 가느다란 팔을 붙잡아, 집무실과 연결된 나의 방으로 끌고 들어간 후 문을 급히 닫았다.

누군가 보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문을 조금 열어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인적은 없었다. 



"...박사... 적극적이네? 갑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가다니, 깜짝 놀랐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직까지도 쿵쿵 뛰고 있는 심장을 누르며, 애써 냉정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는다. 그러나 그녀는 내 그런 상태를 신경쓰지도 않는다는 듯,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태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난 그냥, 박사가 보고 싶어서 왔을 뿐인걸? 연인 사이니까, 별로 문제될 것도 없잖아?" 


"......그건 예전 이야기잖아" 



그렇게 말하며 뿌리치려 해봐도, 반대로 그녀는 내 팔을 강하게 끌어안아왔다. 평소라면 뿌리칠 수 있을 정도의 힘이었을텐데, 지금의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와 나는 연인 사이였다. 

둘이서 용문 외출을 나가거나, 함께 식사를 하러 가거나, 보통 연인다운 일을 해왔다. 


단, 그것도 얼마 전까지의 이야기일 뿐, 지금은 아니다. 얼마 전, 그녀의 소속사 매니저가 찾아와 우리의 관계를 끝내줄 것을 요청해왔다. 한창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과 교제하고 있는 남자가 있다는 스캔들이 퍼질 수 있으니까라는 등, 그럴듯한 이유를 나열해왔다. 


외출 때마다 확실히 그녀를 변장시키고, 나도 주의를 가했음에도 어딘가에서 나와 그녀의 관계가 들통나버린 것 같았다. 허나 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사무소의 극히 일부뿐으로, 관계를 끝내주기만 한다면 더 이상은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녀의 꿈을 망가뜨리는 일만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그 말이 내가 그녀와의 관계를 끝내겠다고 마음먹은 결정타였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모두 버리더라도 그것만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러한 사정들을 그녀에게 일절 설명하지 않고 작별을 고했다. 그 편이 그녀에게 부담을 덜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 그녀의 표정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여기 있는 그녀의 얼굴은...... 그때와 같은 비참한 표정이 아닌, 오히려 어딘가 기뻐보이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너무나도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알겠어? 다시 한 번 말할게. 나와 넌 이제 그냥 지휘관과 오퍼레이터 관계로 돌아온 거야. 그러니까......" 


"박사" 



그 말을 막듯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른다. 

평소처럼 밝은 목소리지만, 어딘가 차가운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대로 나를 끌어안아왔다. 달콤한 향기와 부드러운 감촉에 휩싸여 순간 사고가 멈춰버렸다. 



"!?" 


"......나, 전부 알고 있는걸. 박사가 나한테 그렇게 갑자기 헤어지자고 한 이유 말야." 



귓가에 속삭여오는 말에 온 몸이 얼어붙는듯한 감각을 느꼈다. 어째서지, 라는 생각이 듦에도 뭄은 움직이지 않는다. 

공포심 때문인지 떨리기 시작한 손을 진정시키려 해도 잘 되지 않는다. 

왜일까. 눈 앞에 있는 소녀가 너무나도 무섭게 느껴졌다. 



"매니저한테서 들었어. 나랑 헤어지라고 요구했다는 거. 그리고 박사는 그래서 했던 것뿐이지?" 


".........아니" 


"거짓말. 매니저한테 직접 물어봤어. 몇번이고 몇번이고, 그랬더니 드디어 가르쳐주던걸" 


"......그만 놔" 



머릿속에 경보가 울린다. 이 이상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간 돌이킬 수 없게 될 거라고, 그런 예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내 입에서 나오는, 떨리는 목소리의 거절들을 무시하며, 그녀는 계속 말한다. 



"박사는 너무 상냥하니까, 날 지켜주려고 일부러 희생해준거지? 그래도 괜찮아. 아이돌이라는 입장이 방해된다면, 그걸 떼어내버리면 되니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였다면 안정감을 주는 것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 반대의 효과밖에 주지 않고 있었다. 



"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녀의 꿈...... 최고의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은 거칠고 험난한 길이다. 그녀는 그것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다. 심지어 로도스의 오퍼레이터로서 싸우기도 하면서, 펭귄 로지스틱스의 일도 해나가면서. 


그 노력과 꿈을 간단히 버리게 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녀를 위해 이별을 선택한 거였는데, 그녀는 그 선택을 부정하는 발언을 해왔다. 



"날 위해 네 꿈을 버리겠다고!?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하는 거야!!" 


"......응, 그렇네. 아이돌을 그만두는 건 정말, 너무나도 싫어. 로도스도, 펭귄 로지스틱스도, 팬도... 매니저도 전부 배신하는 꼴이니까" 


"그럼, 어째서......!" 


"박사를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어온다. 자신의 거처를 확인하는 듯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았는걸? 아이돌이고, 딱히 누구랑 사귀고 싶지도 않았고, 연애같은 건 이야깃거리 정도였는데." 


"............" 


"그래도, 박사와 함께 지내면서, 박사가 좋아져서, 고백하고, 연인이 되고부터 점점 욕심이 많아졌어. 좀 더 함께 있고 싶고, 데이트 하고 싶고, 키스도, 그 이상도..." 


"그만 해......" 


"그래서 박사한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괴로웠어...... 그래도, 박사가 날 위해 그런 말을 한 거고, 날 소중히 여겨준다는 걸 알았으니까, 이젠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 


"부탁이니까, 그 이상은...... 제발 하지 마" 


"난 박사가 좋아. 정말 좋아. 사랑해. 그러니까, 박사는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 어떤 꿈일지라도 박사가 없는 인생과 비교하면 부족하니까." 



그녀의 말이, 마음이, 열기가, 직접적으로 전해져와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다. 

나는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그렇게 입 밖에 낸 것은, 아마도 최악의 대처였을 것이다. 



"텍사스... 텍사스는 어쩌게, 그 누구보다도 너를 응원해준 건 텍사스잖아. 네 목숨도 구해준 적 있다며...... 텍사스도 배신할 셈이야?" 


"........................" 



그녀가 멈췄다. 

이걸로 끝낼 수 있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가 머리를 들어올려, 똑바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검게 굳어 있었고, 뭔가 정체 모를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작게 입을 열었다. 

이윽고 나온 말은, 너무나도 차가운 것이었다. 



"......어째서, 텍사스 씨 얘기가 나와?" 


"뭐......?" 


"텍사스 씨는 상관없잖아. 나와 박사 이야기인데, 왜 텍사스 씨 이름이 나오는거야!?" 



예상치 못한 대답에 곤혹스러워진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 모습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지극히 차가운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여온다. 



"혹시, 텍사스 씨가 좋은 거야? 그래서 내가 방해되는거야? 저기, 대답해줘." 


"아니......" 


"아니라면 확실히 부정해주는거지? 박사는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증명해주는 거지?" 



반론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형체 모를 위압감 때문에, 무심코 입을 다물고 만다. 



"박사, 날 봐줘." 


"......!"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녀가 내 뺨에 손을 대어 강제로 정면을 향하게 했다. 



"나는 새로운 꿈을 위해 소중한 꿈을 포기했는데, 어떻게 하면 박사는 텍사스 씨가 아니라 나를 선택해줄 거야?" 



끝 모를 어둠만이 그녀의 눈동자에 펼쳐져있을 뿐.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내가 잘못한 걸까? 나도 모르는 새에 그녀가 이렇게까지 되어버릴 정도로 몰아붙였던 걸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소녀는 예전처럼 꿈을 쫓고, 빛나는 미소를 짓던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뿐이었다. 




『모스티마』



평소 운동을 잘 하지 않는 탓에 금방 숨이 차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이대로 발을 멈출 수는 없다. 



"대체 어디있는 거야...!" 



신출귀몰한 그녀지만, 분명 로도스 안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허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식당, 숙소, 

넓은 로도스 함내를 일일이 직접 뛰어다니며 찾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과하고, 결국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 



"...젠장"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속으로 험담을 해보지만, 이제와서 그런 짓을 해도 변하는 건 없다. 

어찌됐건 집무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집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자─ 거기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방 한가운데 있던 그 인물은 들어온 나를 보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나는 무심코 목소리를 높인다. 



"모스티마...!?" 


"여어, 박사. 고생이 많아."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그녀는, 내가 그렇게나 찾아다니고 있던 인물이었다. 



"어쩐 일이야?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고. 누구라도 찾고 있었어?" 



다 알고 있을 텐데 일부러 물어보는 그녀에게 짜증을 느낀다. 하지만 그런 걸 생각해도 별 수 없다. 왜 내 집무실에 들어와있었는지에 대한 질문도 일단 접어둔다. 


그것보다 먼저 확인해야만 할 게 있기 때문이다. 



"모스티마... 이번에도 로도스의 여성 오퍼레이터를 농락한 거, 너지...!" 


"농락이라니... 말이 심한걸, 박사. 난 그냥 원만한 관계를 위해 말을 건 것 뿐인데. 딱히 뭔가 특별한 짓 같은 건 하지 않았어."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손에 든 컵을 기울여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다리를 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파악하기 어렵고 수수께끼가 많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 자태와 행동에서 나오는 신비한 매력이 있어, 그녀에게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 같은 것이 느껴지고, 그것은 때로 사람을 현혹시키기도 한다. 


예전의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감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것을 자제하지 않고 특정 인물에 대해서만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 특정 인물은 모두 나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던 여성 오퍼레이터였다. 이제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왜 항상 나와 사이좋은 여성에게만 손대는 거야!" 


"그건 네가 제일 잘 알지 않을까? 박사."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 


"흐ー응......"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 말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리고 그녀는 테이블 위에 차려져있던 과자를 하나 집어 입으로 가져간 후, 그것을 천천히 음미하고 삼킨 뒤 입을 열었다. 



"...너에게 그 애들은 어울리지 않았어. 좀 더 제대로 된 상대를 골라야 하지 않을까?" 


"무슨 소리야......?"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가 한걸음 한걸음 걸어올 때마다, 그 움직임에 맞춰 푸른 장발이 찰랑거렸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멈춘 그녀. 키 차이 때문에 나를 조금 올려다보는 모습이 된 그녀와 시선이 교차한다. 



"역시 나와 예전 사이로 돌아가야겠지, 박사?" 


"......" 



섬뜩한 감각이 몰려왔다. 그건 단순한 공포라기엔 뭔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 깊은 곳에 있던 끝 모를 어둠을 건드려버렸다는 느낌이었다. 



"나와 넌 한 번 헤어졌지만, 그 기간은 서로 성장하기 위한 시간이었다고 여기고 있어. ...너와 거리를 두는 것도 참으면서 말야." 


"......" 



나와 그녀는 이전에 연인 관계였다. 그리고, 어느 날을 기점으로 나는 그녀와 헤어지겠다고 결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의 업무관계상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기도 했고, 그것이 몇 달 정도 계속되며 이대로 사귀는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헤어지자고 했을 때, 그녀는 태연하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랬기에 지금 그녀의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널 외롭게 해버린 건 너무나 후회되고, 헤어지잔 말을 하게 만든 것도 미안하게 생각해. 그래도, 지금이라면 괜찮아. 황제한테 제대로 말해서, 로도스에 언제든지 올 수 있게 됐으니까" 


"........." 


"그러니까, 이제 다른 여자들과 무리해서 관계를 맺지 않아도 돼. 내가 네 옆에 계속 있어줄테니까. 박사." 



그녀는 내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후, 그대로 입술을 포개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촉에 머릿속이 녹는듯한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나는 저항하듯 그녀의 어깨를 밀어냈다. 



"......왜 그래?" 


"...적당히 해줘. 나와 넌 이제 끝났잖아." 


"그런 슬픈 말 하지 마. 우리들, 그렇게 사랑했는데." 


"그래. 나도 널 진심으로 사랑했어. 하지만 지금은 아냐. 지금 너는... 내게 부담밖에 되지 않아."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이윽고 뭔가 납득한 듯 작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알아준 것 같다. 

이걸로 이제 정리됐구나.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 



팔을 붙잡혀 끌어당겨졌다. 그리고 그대로 그녀는 내 귓가에 얼굴을 대었다. 



"거짓말쟁이네, 박사" 


"뭐, 뭐......?" 


"날 잊지 못하고 있는 주제에" 


"......읏!!" 


"사실은 아직도 미련이 있는 거지? 그런데, 왜 날 거부하는 척 하는 거야?" 



푸른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보듯 바라본다. 나는 무심코 눈을 피했으나, 그래도 그녀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박사. 나는 너를 사랑해." 


"......" 


"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난 언제라도 너를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고, 널 위해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날 위해서... 라고...? 그렇다면 나한테서 다른 오퍼레이터들을 떨어뜨리는 것도 날 위해서라고 할 셈이야!?" 


"물론이야. 그 애들은 널 만족시켜줄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 잠깐 얘기한 것뿐이야." 



그 때, 그 오퍼레이터들은 모스티마에게 거역하지 못한 채로 농락당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는 내 몸을 껴안으며 계속했다. 

마치 나를 놓아주지 않겠다는 것처럼 강하게,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렇게 하며 그녀는 내게 타이르듯 속삭였다. 



"나와 헤어지고 넌 몇몇 다른 여성과 관계를 맺었던 것 같은데, 전부 오래가지 못했잖아. ...내가 관여하지 않았어도 결국 이렇게 되었을 거야" 


"......" 


"아무리 내 대체품을 마련해도 소용없어. 왜냐면 넌 이미 내게 타락해버렸으니까. 널 만족시킬 수 있는 건 나뿐, 그리고, 날 만족시켜주는 것도 너야. ...내가 이런 감정을 갖게 하는 것도, 너뿐이야"


"......그럴... 리... 가"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머리로는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와 이별 후 계속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걸 어떻게든 메우기 위해 다른 여성들과 관계를 가지려고 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제서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나는 그녀에게 사로잡혀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어째선가 안도하고 있는 자신이 있다. 


헤어지잔 말을 했을 때 그녀가 태연했던 것도,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그녀의 손바닥 위였던 것인가라고 생각하면 비참한 꼴이지만, 이상하게도 나쁜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등에 손을 둘러, 그녀의 몸을 껴안고 있었다. 



"......이제야 솔직해졌네, 박사"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저 그녀의 체온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이젠 그녀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안젤리나』



"......박사" 


".................." 



앞 소파에 앉아, 조심스럽게 나를 부르는 그녀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보다도 몸가짐에 신경을 쓰던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는 머리가 군데군데 헝클어져 있거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다 드러나고 있다. 어떻게든 그것을 가리려고 꾸미기는 했지만, 그 변화를 놓칠 만큼 둔하지는 않았다. ......전 연인으로서. 



"미, 미안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와버려서...... 어떻게든 만나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바쁜 와중에 성가시게 했으려나......" 


"......아니, 문제없어" 


"정말......? 다행이다...... 몇번이고 어시스턴트 씨한테 괜찮다고 확인받았지만 그래도 불안해서...... 뭐, 이 이야기는 됐어! 나만 떠들어서 미안해!" 


".................." 



평소였다면 그녀의 말을 듣는 데 거부감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런 모습에 위화감이 들었는제, 조금 당황한 듯 그녀가 입을 연다. 



"바, 박사? 왜 그래?" 


"...여기 왜 온거야?" 



드디어 나온 말. 

자신의 미숙함에 싫증이 났지만, 한 번 해 버린 말은 되돌릴 수 없다. 



"왜, 왜냐니......" 


"...너랑 나는 이제 연인이 아니야.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만나러 올 리가 없잖아" 


"읏......"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무릎 위에서 주먹을 꾹 쥐고 있다. 그 모습만 봐도 가슴 속에서 후회가 밀려오지만,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침묵이 이어지는 와중, 드디어 그녀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박사, 그 얘기 말인데...... 역시 우리들, 다시 시작할 수 없을까?" 


"...............안젤리나" 



이번이 몇 번째일까. 그녀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말을 들은 건. 

헤어진 이후로부터, 만날 때마다 이런 말을 들어오고 있다. 



"나, 나 말야, 좀 더 박사 취향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 요리나, 청소같은 거... 그리고 박사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이것저것 공부하고, 일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또 같이 있게 해준다면 박사가 좋아하는 거 많이 만들어 줄게? 그러니까 다시 예전처럼......" 


"........." 



그녀는 나와 다시 이어지는 걸 원하는 것 같지만, 무리한 일이다. 

내가 그녀와 헤어진 이유는 하나. 그녀에게 부응하기 어려워젔기 때문이다. 


그녀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솔선수범하여 처리해주고 있었다. 비서 업무와 스케쥴 관리는 물론, 식사나 수면시간 확보까지 철저히 지원해준 것이다.

물론 너무나 기뻤지만, 그 이상으로 미안한 마음이 강해져 있었다.

그녀의 호의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수록 자괴감 또한 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한계가 찾아왔을 때 나는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있잖아, 박사. ......다시 한 번 생각해 줄 수 있어? 박사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나도 더 더 열심히 할 테니까! 박사도 분명 좋아할 거야......" 


"......" 


"박사? 듣고 있지? 부탁이야, 이쪽 봐줘......" 


"......미안해" 



내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사과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것이 예상 외였는지,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몇 초 후에야 제정신을 차린 건지 그녀는 다시 내게 호소해왔다. 



"왜, 왜 사과해!? 나한테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다면 고칠게! 제대로 말해주면 반드시 고칠 수 있어!" 


"...안젤리나, 그거야." 


"에......?" 



나는 시선을 떨군 채로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에. 



"난 그런 거에 지쳐버린 거야... 넌 언제나 날 위해서 애써주니까, 충분히 감사하고 기뻐. 그렇지만 동시에 죄악감이 느껴져. 갈수록 네 마음에 보답할 수 없다고 느끼니까. ...그게 너와 헤어진 이유야" 



말을 마치자, 방은 다시 정적으로 휩싸였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시계 초침소리 뿐. 

정적 속에서,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너무나도 작은 소리라 잘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거짓말... 이지..." 


"......뭐?" 


"전부 거짓말이지? 박사가 그런 걸로 날 내칠 리가 없잖아. 뭔가 사정이 있는 거지? 그런 거지?" 


"...아니" 


"으응, 아니잖아? 이상하잖아! 박사가 그런 이유로 날 버릴 리가 없잖아!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사실대로 말해줘...... 응?" 


"하...... 정말이야...... 이제 너와는 끝났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이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 이야기할 때마다 점점 감정이 안좋아지는 감각이 든다. 그 감정에 휩쓸리기 전에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 생각 뿐이었다. 



"박사......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괜찮아, 난 어떤 박사라도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한번만 더 믿어줘......" 


"그만 좀 해......" 



귓가에 울리는 달콤한 말에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박사... 부탁이야..." 


"이제 그만 하라니까!!!" 



참지 못하고 소리를 치자, 그녀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윽고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면서도 계속 입을 열었다. 

듣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차마 그것을 막지 못했다. 



"미, 미안해! 미안해...! 내가 귀찮게 굴어서 화났어? 이제 다시는 이런 말 안 할게, 방해도 안 할게! 두 번 다시 이런 소리 안 할테니까...!" 


"..." 


"박사가 힘들거나 괴로우면 얼마든지 날 써도 돼...... 아파도 얼마든지 참을 거야, 심한 짓을 해도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그녀는 벌벌 떨면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은 초조와 공포가 뒤섞인 듯한 복잡한 빛을 띠고 있었다. 



"부탁이야... 날 버리지 말아줘..."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퍼지는 후회를 억누르며 그저 잠자코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었을까. 그녀의 헌신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문도 갖지 않으며, 계속 받아들여야만 했던 걸까? 아니면 외면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어느 쪽이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다. 눈앞의 그녀의 모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골든글로우』



"......" 



복도를 걸어가며 주머니 속에서 단말기를 꺼낸다. 아까 보낸 메시지는 아직도 읽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그럴 지도 모른다. 얼굴도 보기 싫은 상대로부터의 연락은 보통 무시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어느 방 앞에 도착해있었다. 



"......" 



똑똑, 가볍게 노크를 한다. 

반응은 없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고 그대로 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방에 들어오니, 어두운 공간 속 희미한 빛이 떠올라있었다. 



"...수지, 거기 있어?" 


"......"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천천히 걸어가며 그 빛에 가까워지자, 거기에는 수지... 골든글로우의 모습이 있었다. 


침대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쭈그려 앉아있는 그녀의 머리는 이리저리 헝클어져 있고, 뺨에는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어 애처로운 모습이었다. 



"...읏!? ...바, 박사님..." 



그제서야 나를 알아챈 그녀는 겁에 질린 듯 몸을 움찔 떨었다. 



"...수지" 


"시, 싫어... 요... 오지 마...!" 



가냘프게 거절하는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수지는 그만큼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린다. 



"......괜찮아, 아무 것도 안 할 거야" 


"싫어... 싫어!! 이젠 듣고 싶지 않아요! 이 이상 괴롭히지 마세요!" 


"...그라니랑 퀘르쿠스... 그리고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널 걱정하고 있어. 계속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한테 상태를 봐달라고 부탁해서 온 거야. 그러니까..." 


"...그만해주세요... 부탁이에요...!" 



귀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흔드는 그녀를 보고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린다. 아마 방금 한 말도 제대로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된 원인은 다름아닌 내게 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몰아붙인 것이다. 



나와 그녀는 별 거 아닌 계기... 예를 들어 그녀에게 머리를 손질받거나, 어시스턴트로서 일을 도움받거나... 그런 일상을 통해 사이가 좋아지게 되었다. 



'저, 저... 박사님을...... 좋아해요!' 



그런 날들 속에서 갑자기 고백을 받았을 때는 놀랐다. 일하는 도중이었던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동요했던 기억이 난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휘관과 오퍼레이터라는 입장인 이상 공식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는 관계였지만, 그래도 그녀와 지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사, 네가 어떤 오퍼레이터와 특히 친밀한 관계라는 보고가 있더군' 



어느 날, 집무실에 켈시가 찾아와 그렇게 말했다.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실이긴 했다. 어떻게든 감추려 했지만 오히려 그게 불신감을 키우게 되어, 결국에는 켈시에게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말았다. 



'조직이란 건 단 하나의 마찰로 인해 붕괴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다. 너희들의 관계가 다른 오퍼레이터들에게 알려진다면... 짐작할 수 있겠지.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나머지는 행동으로 보여주길 기대하지... 박사.' 



그렇게 말하고 떠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올바른 말을 했다는 것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럴듯한 이유를 꾸며내어 그녀에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수지는 당연히 당혹스러워했다.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이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녀는 그 이후부터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평소 친하게 지내던 그라니나 퀘르쿠스와도 만나지 않게 됐다. 



"............" 


"......싫어요...... 이제 괴로운 일은... 왜 항상 이렇게 되는 거야...?" 



그녀는 오열 섞인 목소리를 내며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만 봐도 가슴이 옥죄여오는듯한 괴로움이 엄습해왔다. 



"그린 스파크도... 박사님도... 이제야 희망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없어져버려서... 전부 없어져서...! 이제...... 견딜 수가 없어요......" 


"......" 


"......윽...... 흐윽...... 이젠...... 싫어어......엇!" 



파직파직, 그녀의 몸에서 방전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그녀의 아츠는 불안정해서 그녀 자신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지금 같은 상태라면 더욱 그렇다. 

그걸 제어하기 위한 아츠 유닛도 지금 그녀는 장비하고 있지 않다. 

아마 지금 가까이 가면 부상을 입게 될 것이다. 



"...수지" 


"......읏!" 



한 걸음, 다시 한 걸음 천천히 다가간다. 



"오지 말라고...... 말했잖아요...! 박사님도 무섭죠... 이렇게 아츠도 제어 못하고 폭주시키는 여자같은 건......!" 


"........." 



부정하기는 쉽다. 하지만 여기에서 서투른 거짓말을 한다면 그녀는 더욱 상처입고 말 것이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읏!" 



파직, 큰 소리를 내며 내 손에 전류가 흘렀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그녀를 그대로 끌어당겨 부드럽게 안아준다.



"크... 으..."



온몸에 통증이 가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은 이렇게 조금이라도 안심시켜주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닿은 곳에서 전기가 흐르는 감촉이 전해져 온다.



"하, 하지 마세요! 놓으세요! 이대로 있으면...... 박사님이......!"


"괜찮아."


"흣!...... 하지만......"


"괜찮다니까"


"...박사... 님..." 



꽉 끌어안은 채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이자 조금씩이나마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전격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끌어안긴 수지는 처음엔 저항했지만 점차 힘은 약해져 갔다.

그리고 그녀는 멍하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러신 거예요? 박사님 같은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을 거라니...? 그런 걸로 납득이 될 리가 없잖아요... 왜냐면, 저에게는 박사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포기할 수 없어요…"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바람에 그녀를 이렇게까지 괴롭게 하고 말았다. 


그녀가 소중한 것을 잃는다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을 텐데. 그럼에도 자신의 입장을 우선시하고 만 것이다.

사과해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에헤헤, 박사님. 머리가 흐트러졌네요. 저 때문에...... 죄송해요...... 바로 다듬어드릴게요..."


"......"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의 목소리는 몹시 차분하고 어딘가 기쁜 듯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박사님은 저를 떠나지 않을 거죠... 계속 곁에 있어주실 거죠......?"


"......그래, 약속할게" 


"정말이죠......? 만약 어기시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알고 있어, 이제 절대 떠나지 않을 거야."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어 왔다.

약간 안정된 것 같아 여유를 느끼면서, 그녀의 말을 받아주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이 나 때문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던 중, 그녀의 손이 내 옷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돌발스러운 행동에 놀라 그녀의 손을 잡고 멈췄다.



"뭐 하는 거야...... 수지"


"...박사님은 제 거라고 증거를 남기려는 것뿐이에요. 아무한테도 주지 않고, 이번엔 아무도 부수게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결심했어요. 박사님만은...... 오직 저만의 것으로 두고 싶어요. 그러니까...... 부디 받아주세요......"


"............알았어. 마음대로 해" 


"고마워요, 박사님......" 



그녀는 내 말을 듣자 기쁜 듯 다시 내 목덜미로 얼굴을 대고, 혀끝으로 조금씩 핥기 시작했다. 



"..." 



그 감촉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쪽, 하는 입술 소리가 들렸다. 키스 마크를 남긴 걸 아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에도 그녀는 몇번이고 같은 곳에 붙으며 흔적을 남겼다. 



"......이제 떠나지 말아주세요"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박사... 내 충고를 듣지 않았나? 한 명의 오퍼레이터만 우대하는 행동은 삼가라고 했을텐데." 


"..............." 



그 뒤로 며칠 후, 켈시에게 불려나간 나는 그녀로부터 질책을 받게 되었다. 

확실히 그녀의 말은 맞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상태의 그녀를 내버려둘 순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최악이었다. 



"......너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거다. 그녀는 아직 다시 일어설 기회가 있었고, 그것을 딛고 더욱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넌 그걸 저해하고, 네게 의존하게 만든 거야." 


"......" 


"......이미 그녀는 늦었다. 네 말이 절대적이라고 믿으며,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는 채로 행동하게 되겠지" 


"......난...... 그저......" 


"......넌 대체 몇 번이나 틀려야 제대로 되는 건가. 이제 됐다. 집무실로 돌아가도록 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업무 데스크로 돌아간다. 

더 이상 여기 있어도 소용없다는 건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큰 한숨이 나왔다. 비틀거리는 걸음거리로 복도를 걸었다. 



"..............." 



켈시의 지적은 너무나 적확한 것이었기에 반론의 여지조차 없었다. 그녀의 미래를 한때의 감정으로 망가뜨린 것은...... 바로 나다. 



"박사님" 


"헉!?" 



갑자기 등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와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고 만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수지가 있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미소에는 어딘가 공허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졌다. 



"...왜...... 켈시 선생님 방에 계셨던 거예요? 저, 못 들었는데......" 


"그건......" 


"역시 저같은 여자는 싫어진 건가요? 이젠 아무래도 좋은 건가요?" 


"아냐! 그런 거 아냐!" 


"그럼 어째서...... 저 말고 다른 여자랑 단둘이 계셨던 거예요......? 저로는 만족하실 수 없으신 거예요... 또...... 버리시는 거예요......?" 


"수지! 진정해......!" 


"싫어... 싫어어......! 버리지 마세요...... 절 놓고 가버리지 마세요...... 박사님......!!" 


"괜찮아...... 괜찮다니까...... 수지.........!" 



전류를 견디고 그녀의 몸을 끌어안으며 등을 쓰다듬어준다. 

잠시 후 그녀의 방전은 가라앉고 점차 진정하기 시작했다. 



"박사님...... 죄송해요...... 저......" 


"..............." 



그 날 이후로 이렇다. 

내게서 떨어지는 걸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조금이라도 멀어지면 바로 이렇게 되어버리고, 아직도 아츠의 컨트롤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전까지의 그녀는 칼라돈 시티 때 같은 고난을 겪어왔지만, 주변 인물들의 협조를 얻으며 가까스로 이겨내왔다. 허나 지금은 내가 옆에 없다는 것뿐임에도 이렇게 되어버린다. 이제 그녀는 내가 없다면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박사님......?" 



잠자코 있는 나를 걱정했는지 그녀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기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기분좋은 소리를 냈다. 



"......죄송해요...... 또 박사님께 폐를 끼쳐서...... 계속 떨어지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셨는데......" 


"......그렇지" 



그때의 약속은 우리를 묶은 저주가 되어버렸다. 만약 이걸 깨려고 한다면 그녀는 미쳐버릴 것이다. 그 정도로 무거운 것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더 이상 그녀가 망가지지 않도록.



"아아, 행복해......"



가슴속으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우리는 이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 이 소설은 원작자 「age11425」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8278896 



전편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2편도 가져와봄. 

이틀 뒤 쯤에 올릴 생각이었는데 기세를 타고 순식간에 번역해버렸다


오역 의역 어색한 문장


특히 크루아상 사투리 표현 지적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