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사정을 가진 감염자들이 존재한다.

가족을 잃은 사람, 살아오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 일자리를 찾아서 도달한 사람. 이런 사람들의 사정은 하나하나 새기 힘들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한 케이스가 몇몇 존재한다.


케오베는 그런 특별한 케이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던 감염자였다.

그녀는 무기에 대한 광적인 집착, 오직 그 뿐으로 광석병에 걸린 몸을 이끌고 세계를 돌아다녔다. 오랜 시간동안 관리받지 못한 병세는 그 사이 겉잡을 수 없이 심해졌으며, 가족이나 조력자조차 없는 천애고아였던 탓에 기본적인 의식주 또한 보장받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녀는 로도스 아일랜드에 구조되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치료와 정신적인 케어를 받으며 안정되었다. 이미 진행된 병세가 심각해 여러모로 문제는 존재했지만, 그녀의 긍정적인 성격과 강인한 신체가 광석병의 진행을 막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언제나 이변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케오베는 전투원, 즉 오퍼레이터로서 존재하기를 희망했다.

케오베를 진료했던 메딕, 그녀와 사이가 가까운 몇몇 오퍼레이터들이 극구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쁜 사람은 혼내줘야 한다'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기를 모아왔다'며 그들의 걱정을 일축하곤 끝내 캐스터 오퍼레이터가 되었다.





* * * * *





   터벅─ 터벅─



"으앗, 큰일 날 뻔했네. 켈시한테 받은 서류를 다 엎을 뻔했어."



저번에 실수로 서류 한장을 잃어버렸을 때는, 정말 켈시한테 살해당하는 줄 알았다.

어떻게 표정만으로 사람을 죽일듯한 오라를 발산하는지.. 언제나 신기할 따름이다.



"──사"


"읏챠, 좋아. 이렇게 들면 괜찮겠지."



이렇게까지 소중히 앉고 있으면 웬만해서는 떨어뜨릴 일이 없겠지.

그나저나, 누가 이렇게 크게 떠들길레 목소리가 이렇게 퍼지는 걸까?



"───사─!"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는데?




"...? 무슨 소리─"


"바─악사아!"



   퍼어억!



"끄아아악!"



아프다. 턱이 아프다.

익숙한 고통과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땅을 짚은 손등 위에서 느껴지는 복실복실한 꼬리...



"박사! 나 임무 끝내고 돌아왔어! 잘했지? 잘했지?"


"케, 케오베... 임무를 끝마친 건 좋은데 박치기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어김없이 케오베, 그녀였다.

이상할 정도로 달라붙어오는 탓에, 그녀가 임무를 마칠 때면 항상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처음 임무를 맡을 때는 그렇게 걱정스러울 수 없었는데... 그녀도 성장한 걸까?


"응!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저번에 만났을 때도 똑같은 소리를 했었던 것 같은데..."


"아냐, 이번엔 진짜로 안 그럴게! 그러니까..."



아니, 역시 그럴리가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서류만 놓고 식당으로 가자."


"아싸! 벌꿀쿠키 주는 거 맞지? 맞지??"


"그래. 가서 밥도 먹고 쿠키도 먹자."


"아싸아─! 박사 조아! 완전 조아!"



어떻게 된 게 그녀는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결같이 천진난만하고, 아주 작은 보상에도 기뻐하며, 활기차다.

어느센가 나, 혹은 다른 대원들도 그녀를 보고 힐링할 만큼 말이다.


...그나저나, 왜 아까부터 소매를 잡고 있는거지?



"케오베,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없는데?"


"...그래?"



뭐, 그냥 그러고 싶은 기분이겠지.





* * * * *





시끄러울 정도였던 주변의 걱정과는 다르게, 케오베는 지휘를 착실히 따르며 오퍼레이터로서의 일에 적응해 나갔다.

비록 수동적이고, 임무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설명을 요구하지만... 그렇게 설명을 다 듣고 이해한 그녀의 임무수행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편에 속했다. 특히나 그녀 특유의 오리지늄 아츠 덕분에, 종종 등장하는 강적에게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지휘를 충실히 따르며,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 임무에 의욕적으로 임하며,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녀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채용할만한 가치가 충분한 오퍼레이터였다.


그렇게, 그녀를 필요로하는 임무와 작전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물론 그녀는 중증 광석병 환자이므로, 내가 직접 나서서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작전만을 맡겼다. 케오베는 따듯한 집과 맛있는 밥, 벌꿀 쿠키와 몇몇 친한 사람들만 있다면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성실히 임무를 수행했다.


그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는 그녀에게 확실히 의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녀가 나에게 의지해야 하는 입장이면서도, 나는 항상 활기찬 미소를 짓는 모습에 모른척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편이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편할 것이라 합리화하며 시간을 그저 흘려보냈다.


...이 때라도 늦지 않았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그녀를 말렸어야 했다.





* * * * *





"음... 이 문제는 직접 본인한테 상담해야겠는걸."



케오베의 정기검진 일정이 잡혔다.

뭐, 문제 없이 임무들을 수행하고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그녀에게 맡길 예정이었던 임무 하나를 취소해야겠네.



"어디 보자... 이 시간이면 분명 그 쪽에 있을텐데."



아, 찾았다. 역시 이 시간이면 식당 주변을 어슬렁거릴 타이밍이지.

정말이지 한결같다니까.



"케오베."


"끄으응...."



... 못 들었나?



"케오베?"


"이얍, 이얍...!"


"저기, 케오베... 모르는 척 하지 말아줄레?"



   스윽─



"히야아아앗! 깜짝아! 누구! ...박사?"


"으왓, 깜짝아. 진짜 몰랐던 거였구나..."



대체 얼마나 식당 문을 따는데 집중하고 있으면 몰랐던 거야?

어깨에 손 올리기 전까지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니..

역시 집중력 하나는 엄청나다니까.



"박사, 박사다! 왜 그래? 나 찾았어?"


"응. 케오베를 찾고 있었어."


"그렇구나! 왜 찾았어??"


"음, 이 서류를 한번──"



못 말린다니까.





* * * * *





꽤 긴 시간동안, 케오베는 아무런 문제 없이 순조롭게 임무를 수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인들도 그녀의 상태가 안정되었다 느낀 듯, 다소의 걱정은 머릿속에서 지워내곤 그녀를 뒤에서 받쳐주며 응원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 중 하나였고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은 차이점을 잡아내는 이들이 한명씩은 꼭 나타나곤 했다.



'요즘,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케오베와 특히나 가까웠던 벌컨에게서 묘한 소식이 들려왔다.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케오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 정확히는, 한 번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론 반응하지 않고, 몇번이고 불러여 반응한다던가, 글씨를 가르쳐줄 때 눈을 한껏 찡그린다던가... 일상적인 모습에 큰 변화는 없지만, 위화감이 느껴지도록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너무 무리를 시킨 탓이었을까, 병세가 진행 된 것처럼 보이는 증상이었다.

그렇기에 며칠 휴가를 주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녀의 임무수행 능력이나 일상적인 행동 자체는 큰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곧 정기검진이기도 하니 그 때 가면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겠지.


아아, 낙관적이네.

아주 낙관적이야.





* * * * *





"박사!"


"아, 케오베. 무슨 일이니?"



케오베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내 집무실로 찾아온다.

심심하거나, 벌컨이 바쁘거나, 할 일이 없거나 할 때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 사실상 한가할 때 찾아오는 것이나 다름 없다.



"박사! 벌컨 언니가 사람은 빛을 받으면서 살아야 한댔어. 불 키고 살아!"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우왓, 벌써 바깥이 어둑어둑하다.

나는 서둘러 일어서 방의 불을 켰다.

케오베는 그런 날 보고 귀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박사, 박사."


"으... 케오베. 내가 아직 좀 바쁜데..."


"으웅!"


"...바쁜....."


"으우우우웅!"


"...알았어."



손을 그녀의 머리에 살포시 올리곤 쓰다듬었다.

케오베는 내 손길이 그렇게나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맨살도 아니고, 장갑 낀 투박한 손이 뭐가 그리 좋은지... 뭐 나도 힐링되는 기분이라 나쁘지는 않지만, 바쁠 때 이러는 건 어떤가 싶다...



"헤헹, 흐헤헤."


"그렇게 좋아?"


"응, 조아! 박사가 불만 켰으면 더 좋았겠지만."



...?

켰는데, 분명 켜져 있는데?"



"케오베, 그래서 방금 켰잖아."


"무슨 소리야?"



...어?



"아직 불 안 켰잖아, 새까만걸!"





* * * * *





정기검진의 결과는, 케오베의 주변 인물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병세가 심각을 넘어설 정도로 진행되었다. 시야도, 청각도 점점 빼앗기고 있었으며, 좌우 분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앞으로는 균형감각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 한다. 촉각에도 문제가 있으며, 사실상 오감을 상실해가는 상태라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사력을 다해도 로도스의 기술력으로는 케오베의 상태를 안정화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상태를 안정화 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일련의 단어 나열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어째서?

지금까지 그런 기색은 없었을텐데.

분명 병의 진행은 멈췄었고, 저번 검진때만 해도 그녀의 상태는 매우 안정되어 있었다.

임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수행했고, 승진도 몇번 해서 봉급이 오를 정도였는데.


...이제서야 깨달은 거다.

어리석기 짝이 없네.





* * * * *





"케오베 씨, 어떤가요? 제 목소리가 들리나요?"


"응! 아미야, 갑자기 왜 그렇게 불러?"


"...휴, 박사님. 아직 케오베씨의 청각은 괜찮은 것 같아요."


"...응."



어째서 눈치채지 못 했지?

벌컨이 알려줬었잖아.

위화감 정도로 끝나? 아니, 변명일 뿐이지.

중증 광석병 환자의 행동에서 위화감이 느껴진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보통 일이 아니잖아.



"박사님, 박사님! 정신 차리세요, 박사님 탓이 아니에요."


"아미야..."


"로도스의 의료진이 온 힘을 다해서 케오베씨를 돌봐드리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뭐?

로도스의 기술력으로는 무리라며.

사력을 다해도 안 된다며.


내 탓이 아니라고? 장난치는 거야?

그녀를 임무에 배정하고, 배치한 건 나잖아.

내 탓이, 아닐리가 없잖아.



"...나 때문에....."


"박사, 울어?"


"케오베....."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저 가여운 아이를.

어째서 지키지 못했지?


나라면, 나라면 구할 수 있었잖아.

진즉 눈치채고 멈춰줄 수 있었잖아.



"박사, 뚝! 뚝 해! 벌컨 언니가 우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랬어!"


"마...맞아요, 박사님! 케오베씨도 그렇게 이야기 하잖아요."


"....."



구해줄 수, 있었잖아.....





* * * * *





케오베가 의무실에 입원한 지 일주일 째.

그녀는 결국 시각을 완전히 잃었다.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진행속도다.


케오베가 의무실에 입원한 지 한달 째.

그녀는 끝내 청각마저 대부분 상실했다. 보청기를 껴야 겨우 옆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 청력이 떨어져 버렸다.


케오베가 의무실에 입원한 지 두달 째.

그녀가 식사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아, 결국에는 미음과 수액으로 겨우겨우 연명시킬 수밖에 없었다.


...곧, 그녀가 입원한 지 세달째가 된다.





* * * * *





"...케오베, 나 왔어."


"....앗, 이 목소리는, 박사?!"


"응! 나야, 박사....."


"히히, 오늘도 와줬구나. 박사 조아!"



이런 나를, 너는 여전히 좋아해 준다.

한결같다. 이럴 때 까지도, 여전히 너는 한결같아.



"오늘은 오랜만에, 케오베가 좋아하는 벌꿀쿠키를 가져왔어."


"우와, 진짜!? 요즘 밥에서 아무 맛도 안 나서 싫었는데, 잘됐다!"



...아무 맛이, 안 난다고.



"아─ 할 태니까, 먹여줘, 먹여줘!"


"알았어. 자, 아─"


"아─!"



   와그작─!



"...으우, 끈적거려, 기분 나빠! 아무 맛도 안 나잖아, 박사 거짓말쟁이!"


"...기분 나쁘다고?"


"응! 끈적거리기만 하고, 벌꿀 쿠키는 이렇게 맛없지 않다구! 거짓말 친거지!"



아.


아아.



"미안해, 케오베."


"흥! 당연히 미안해야지! 다음번엔 진짜 안 봐줘!"


"미안해."


"...그래도! 사과했으니까, 이번엔 봐줄게. 박사는 조아하니까 봐주는거야!"


"미안해. 미안해..."


"...박사?"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이런 아무 맛도 안 나는 걸 줘서 미안해. 기분나쁜 걸 줘서 미안해.

멋대로 울어서 미안해. 한심한 어른이라 미안해.

이런 답답한 곳에 억지로 눕혀둬서 미안해.

불 안 키고 살아서 미안해. 잔소리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깜짝 놀래켜서 미안해. 멋대로 건드려서 미안해.

왜 소매를 잡았나, 눈치채지 못해줘서 미안해.



너무 늦어버려서 미안해.

늦게 눈치채서 미안해.

오퍼레이터로 만들어서 미안해.

말리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미안.



"박사... 어디 아파?"


"...아니. 안 아파."



미안해.

또 거짓말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