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지펴본 적이 있는가?


나도 그리 많이 지펴본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조난을 당했을 때 피워본 적이 있었다. 근데 불을 지피려고 했을 때 주변에 적당한 불쏘시개가 없었기에, 이제는 정말로 안 쓰겠지 싶은 수첩의 한 장을 뜯어서 불을 지펴서 모닥불을 지폈다. 마른 나뭇가지들을 넣고,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불을 키웠다. 아침에 일어나니 거의 꺼져갔지만, 다시 가지를 넣고 몇 번 뒤적이니 다시금 커다랗게 피어오르는, 별거 아니지만 시설에만 있는 동안에는 보기 힘든 광경 중 하나였다.


"괜찮아. 금방 낫는다니까?"


그래. 한계가 다가와도 다시금 맞서 싸우는 그녀와 같은



블레이즈.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불꽃같은




*




로도스의 업무는 종류가 많다. 제약회사랍시고 회사 내부의 의약팀을 운영하면서 환자들을 돌보는 우리 기업은 전투 오퍼레이터들을 차치해 두고서 이미 한참 제약회사의 범위는 넘지 않았나 싶지만, 그럼에도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제약회사다. 빅토리아에서도 그렇게 심사를 받아 통과되었으니, 틀림없을거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온갖 분쟁의 사이를 내달리는 우리 로도스 함선은 수많은 갈등 상황을 맞이하고, 평화롭게 해결하기도 하지만 꽤나 많은 경우에 전투로 문제를 해결한다. 사실 우리 회사의 수입의 (사내비밀)%는 오퍼레이터들의 분쟁 파견에서 오고 있다는 심히 말하기 힘든 현실도 존재한다.


이렇든 저렇든 오퍼레이터들의 대한 수요는 높고, 내가 지휘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나 혼자만 맡기에는 너무나 벅찬 양이기에 승진 제도를 통해서 개인의 판단 역량을 늘려, 한 소대의 과반이 승진을 달성하면 팀장에게 대리를 맡기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이번 보고는 그런 상황에서 터졌다.



*



로도스에 있는 개인 병실 중 한 곳에 노크를 한다. 다친 오퍼레이터들을 병문 오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이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 느껴지는 감각이 문을 두드리는 것인지 가슴을 두드리는 것인지 하는 심숭거림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잠시간의 정적에 다시 노크를 해야하나 고민하는 사이에 들어오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차분한 목소리. 그레이슬롯이 옆에서 병문하고 있던 모양이다.


"박사 왔어?"


"어. 블레이즈는?"


"조금 전에 잠에 들었어. 겨우 깨어난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날뛰는지."


이 말이 빈 말이 아님을 증명하듯, 그레이슬롯의 모습에 피곤함이 묻어져나온다. 아마 둘 사이에 감정적으로 갈등도 있었던거 아닌가 싶은 느낌의 표정도 섞여보인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서 나에게 앉으라고 블레이즈의 침상 근처에 다른 의자를 하나 꺼내온다. 감사의 말을 말하고서 의자에 앉는다.


"얼마나 심해?"


"하마터면 5분을 지날뻔 했어. 다행이 재정비를 위해 떠났던 요원이 소식을 듣고 바로 내달려 와줘서 늦지 않게 심폐소생에 성공했지."


이번 작전 임무에서 맞닥뜨린 적이 전기 아츠를 사용하는 사람이 화근이었다. 평상시라면 그냥 우격다짐으로 버티면 발동했을 제세동기가 전기 아츠를 사용하는 적에게 지속적으로 노출 된 나머지 작동불능 상태에 빠졌고, 그 상황에서 전투불능 상황에 빠진거다.


임무에서의 주요 지휘를 블레이즈가 맡았고, 블레이즈는 자신이 돌격한 후에 후속대가 들어오도록 전체 구상을 짰기에 뒤에 배치 된 후속대는 너무 전진한 블레이즈를 회수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다행이도 시간이 완전히 지나기 전에 블레이즈와 접촉하고 심폐소생을 하는데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그대로 강을 넘을 상황이었다.


"...병상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전반적 손해는?"


"그런 말은 됐어. 아까전에도 그거 가지고 블레이즈랑 실랑이를 했으니까. 문제의 해결까지는 못 했지만 후속조치는 충분히 하고 와서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았어. 적대세력도 충분히 뒤로 뺐기에 다시 그 지역에 분쟁이 일어날 확률은 낮다고 보여. 계약자도 모두 지불하겠다고 했고, 마을에 딱히 피해는 없으니까 손해는 없어. 그저..."


아래를 보던 그레이슬롯의 눈이 자연스레 블레이즈를 향한다. 핏기가 가셔 하얀 피부를 띈 필라인이 숨소리도 내지 않고 누워있다. 평상시라면 문제 없다고 과시를 해주는데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머리를 지나친다. 아픈 사람을 두고 무슨 생각인지 자책을 하며 머리를 흔든다. 정신차리자. 이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닌데 왜 이러는지.


"상황은 잘 알았어. 보고서도 작성하고 수고 많았어. 너도 옆에 침대를 펼치고 잠시 쉬어."


"조금만 더 이렇게 있다가. 지금은 좀...그렇네."


침대의 곁에 놓여진 탁상시계는 소리가 없는 타입이다. 잠에 든 환자가 깨지 않도록 신경을 쓴 배치다. 덕분에 우리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도 모르고 각자 자책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



"켈시."


"박사인가? 무슨 일이지."


블레이즈의 병실을 떠나서 조금 걷자니 복도를 걷던 켈시랑 마주쳤다. 가던 방향으로 보자니 블레이즈를 한 번 볼려던 모양이다.


"......이번 작전을 넌 어떻게 생각해?"


"...안타까운 작전상의 손실이 일어났다. 하지만 오퍼레이터를 잃지 않았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지. 그리고 우리와 계약을 맺은 곳도 우리에게 불만을 토로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감사를 하고 있다. 우리 로도스의 명망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더욱이 다행인 상황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우리가 검토할 상황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내일 아침 미팅에서 이 사안을 가지고 면밀히 검토하고자 생각하고 있고, 아미야도 이미 이 사안에는 동의했다. 자세한 내용은 내일 부탁하지 박사."


화법을 알고 있음에도 순간적인 화가 올라왔다. 그래도 금방 참기로 했다. 말하는 켈시의 목소리도 어디까지나 일부러 차분하게 하고자 노력하는 목소리인데, 나라고 화를 내야겠냐는 생각이 지나가서다. 살짝 바닥을 보는 그녀의 시선이 그녀가 얼마나 이 사안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말해주고 있다. 아마 직접 봐서 살아있다는 안심을 얻고 싶은거겠지.


"내일 10시지?"


"그래."


떠오르는 많은 말들을 집어놓고 상투적인 예정만을 확인하는 답변을 던진다. 각자 이 이상의 말을 꺼내지 않고서 복도를 다시 걸어간다.


또각거리는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운다.



*



"박사님."


"아미야."


어딘가 울음이 나올 것 같은 표정의 아미야가 마중 나와준다. 혹시나 해서 왔지만 오길 잘 했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아미야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고, 말을 고르는게 보인다. 평상시라면 기운 좋게 올라가 있었을 토끼 귀가 반절넘게 기운 없이 쳐져있다.


말 없이 다가가서 아미야를 안아준다.


"............전..."


"괜찮아. 나도 아마 그러니까."


틱, 틱 거리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탁상시계의 리듬을 귀에 담으면서 그렇게 몇 분 정도 아미야를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나고 다시 아미야를 바라보니 조금이지만 귀가 다시 세워진 그녀의 얼굴이 보인다.


"좀 낫니?"


"네. 혼자보다는 더욱 나아요."


"켈시가 너한테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박사님이 켈시 선생님께 하는게 가장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럴려나?"


아미야를 소파에 앉게 하고서 난 커피와 코코아를 타고자 탕비실로 발을 옮겼다. 평상시라면 건강을 신경쓰라는 말에 블랙으로 마시지만, 지금 만큼은 설탕을 듬뿍 넣어야겠다. 안 그러면 못 버티겠으니.


커피랑 코코아를 한 손에 들고 소파를 향하니 담요를 꺼내온 아미야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꺼이 아미야의 옆에 앉아서 코코아를 건내주고 담요를 무릎에 걸친다. 어딘가 마음 속에 있던걸 쓸어내릴 준비가 된 자세가 되니, 절로 한숨이 길게 내어진다. 아미야랑 겹쳤기에, 절로 서로 씁쓸한 미소를 짓게된다.


"오늘 일은 잘 되었니?"


"전혀요. 마음이 심숭생숭해서 전혀 안 잡히더라고요."


"나도 보고를 받고는 그러더라. 아침에 왤케 기분이 안 좋냐 하면서도 억지로 했었는데 말이야. 보고를 받으니 아예 못 하겠더라고."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미야까지 보고 나는 곧 일을 하러 돌아가야한다. 아미야도, 나도, 더욱이 켈시도 많이 본 상황이고 겪었어도 이런 일은 정말 익숙해지지 않는다. 따뜻한 커피가 나의 가슴팍을 넘어가는 사실이 느껴진다. 가슴팍을 차갑게 하는 무언가를 느끼지만, 안타까운 일로 커피로 씻기지 않는다. 그래도 따뜻한게 들어가니 한결 나아진다.


"블레이즈씨는..."


아미야가 나올려던 말을 한 번 머금고 밑을 바라본다.


"...블레이즈씨는... 분명 일어나시겠죠?"


"아까 갔었는데, 그레이슬롯이 한 번 실랑이를 했다고 하더라고. 분명 금방 건강히 일어날거야."


"......네."


말을 마치고 아미야의 손을 잡는다. 아미야도 핏기가 가셨는지 손이 하얘지고, 손이 한 겨울마냥 차가운 상황이다. 컵에 남은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고서 손을 뗀다.


"많이 힘들면 오늘 하루는 쉬어도 괜찮아. 따뜻하게. 무리하면 탈나기 좋을 것 같네."


"...네."


담요를 치우고서 자리를 일어났다.



*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모닥불을 다시 보니 그 자리에는 재만 있고 불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것도 체온이 떨어져 추운 상황이니 저절로 눈을 떠진걸 생각하니 어딘가 야박한 느낌이 든다.


"아 여깄었네."


활발하게 기운을 불어주는 필라인의 목소리. 태양을 등에 지고 나타난 그녀가 나의 손을 한 번 잡는다.


"손이 차갑네. 이러면 병 걸리기 딱이야."


무전기를 꺼내서 나를 찾아낸 위치를 보고한다. 바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내가 추운 상황인 것을 보고 구조팀이 여기로 오게 작전을 바꾼 모양이다.


그녀는 주변에 늘어진 나무가지를 몇 개 집고서 걔 중 하나로 재를 뒤적인다. 그러자 재 속에서 자고 있던 불씨가 다시금 얼굴을 내밀었고, 그 위에 나뭇가지를 얹으니 조금씩 불을 피우는게 보여온다.


"불 잘 지폈네. 박사."



*



"그래서 술은 안 돼?"


"아미야. 손을 블레이즈의 머리에 얹어라. 그레이슬롯은 석궁가방을 내리고. 이쪽이 더 효율이 좋다."


"죄송합니다! 제발! 살려줘!!!"


핏기가 살짝 돌아오기 시작한 필라인이 시작부터 꺼내는 헛소리에 켈시는 아미야에게 손을 쓰라고 한다. 그러자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블레이즈가 바로 머리를 내리고 살려달라고 소리친다. 이 왁자지껄함에 모두의 얼굴이 살짝 펴진다.


"헛소리를 할 기운이 있다고 잘 알겠다. 그러니, 그 기운을 살리고자 이번 임무와 관련된 보고서 제출을 요청하지. 무리는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보고를 해야겠다 싶은 부분들만 보고를 해 주면 괜찮아. 그저 나랑 박사가 여러번 검토를 할 테니 잘 작성하길 바라지."


미팅을 하는 도중 들려온 블레이즈가 눈을 떴다는 소식에 다들 버선발로 블레이즈를 찾아왔고, 패닉 상태로 눈을 뜬게 아니라 회복하고서 눈을 뜬 블레이즈가 꺼낸 농담(?)에 다들 마음을 좀 놓은거다.


물론 이 농담의 대가로 블레이즈는 꽤나 힘든 보고서 작성을 해야한다. 하지만 뭐, 옆에 그레이슬롯이 붙어 있고 괜찮겠지. 도와달라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오지만, 이번엔 나도 검수를 해야하는 입장이다. 눈을 돌려서 대답을 회피한다.


그런 분위기에 아미야가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다음엔 나도, 그레이슬롯, 마지막에는 켈시까지 웃음을 내기 시작했다.


"농담이다. 우선 푹 쉬어라. 어느 상황이었는지는 그레이슬롯에게서 들었으니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도 괜찮지. 하지만 평소에 몸을 험하게 다뤘으니, 이번 기회에 그것들을 포함해서 관리를 받을거라는 사실은 잘 알고있도록."


"넵..."


"우리는 지금 미팅중이었으니 다시 미팅으로 돌아가지. 그레이슬롯은 다시 블레이즈를 봐 주도록. 쓸데없는 짓을 하면 바로 보고해도 좋다."


"네."


"블레이즈씨. 저희는 돌아갈게요. 푹 쉬셔야 해요."


"그야 당연하지."


"블레이즈."


"?"


미팅에 관한 얘기는 켈시가 꺼냈다. 잘 쉬라는 얘기는 아미야가 썼다. 그냥 똑같이 잘 쉬라고 얘기하면 되는데 뭔가 다른 말할 것이 없나라는 생각에 말문이 막혀서 잠시 고민하게된다.


"음... 이번 기회에 푹 쉬라고. 기회 있으면 책이라도 추천해줄게. 괜찮은걸 많이 소개받았거든."


"그거 나 놀리는거야? 나도 읽는다고."


"같이 보면 재밌는거 많잖아. 이번에 그런 얘기를 하자."


"그도 그렇네. 침대에서 심심한 동안 잘 읽을게."


이 말을 마지막으로 서로 손을 흔들어 작별을 했고, 나는 병실의 문을 닫고 미팅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블레이즈, 꺼져가는 줄 알았던 잿 속에서도 타오르는 불꽃이 다시 나왔을 때의 따스함 같이, 그녀가 건강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다들 마음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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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분명 블레이즈랑 순애를 쓰고 싶다 생각해서 좀 건들거렸는데, 나온건 그냥 블레이즈가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는가 이야기.


근데 블레이즈가 엘리트 오퍼레이터인 것도 가장 신뢰를 받는 인물이라는 의미니 그리 틀리지는 않을려나?


사실 알고 있어도 자기가 매우 믿는 사람이 곤란에 처했다는 소식은 다들 어쩌지?라는 반응을 보이잖아?

그러니 블레이즈쯤 되는 정말 언제나 힘내는 사람이 빈사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아무리 그래도 다들 한 번 쯤 힘들어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실제로 그런 식의 전술을 블레이즈가 주로 사용하고.


이런 따뜻한 식의 이야기를 좋아하니 한 번 떠오르는데로 그냥 간 이야기. 근데 그렇게 보일려나? 필력이 부족하니.


재미가 있었기를 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