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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른 아침, 시리우스는 요리를 준비하다가 칼에 손을 베였다.


"이런, 피가...."


그녀는 손가락을 쪽쪽 빨며 서둘러 반창고를 붙였다.

당장의 출혈은 막았으니 됐다. 그녀는 다시 칼을 들고 요리를 이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만든 아침 식사가 지휘관의 아침상에 올라갔다.


"윽... 시리우스, 이거 간을 어떻게 한 거야?"

"....많이 이상한가요?"


시리우스는 지휘관의 옆에 공손이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포갠 손은 의도적으로 반창고를 가리고 있었다.


"아니, 뭐 이상한 것 까지는 아닌데 좀...."


지휘관이 수저를 내려놓는다.


"...적당한 식사는 건강의 기본입니다. 그러니 시리우스의 요리가 아무리 미흡하더라도 가리지 말아주십시오."

"음, 그래도 오늘은 뭔가 좀.... 너무 짠데?"


지휘관이 미간을 오므린다.

시리우스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또 간을 못 맞췄나요. 제가 맛을 보았을 땐 분명 적당했는데.'


재료는 분명 정량대로 넣었다.

어쩌면 손가락이 베였을 때 피가 들어간 탓일지도.

제대로 손을 씻고 다시 요리를 했어야 했는데, 라며 후회한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피 좀 들어간다고 저런 반응이 나올 리가 없다는 걸.

그냥 그녀가 간을 못 한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거두어가겠습니다, 주인님."


시리우스가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을 본 지휘관의 눈이 커졌다. 그가 다시 수저를 쥐며 말한다.


"아, 역시 배고프네. 다 먹을게. 그렇게 걱정해주는데 골고루 다 먹어야지."

"아.... 역시 저의 자랑스런 주인님이십니다."


시리우스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음, 좀 짤 뿐이지 맛있어, 시리우스. 고마워."

"...감사합니다."


시리우스는 담백하게 말했다. 하지만 심장은 전에 없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주인님이 맛있다고 해주셨어. 내 요리를....!'


얼마 만의 칭찬일까.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던 그녀에게는 절실한 위로이자 힘이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


손가락을 감싼 반창고가 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지휘관의 칭찬은 순수한 그녀의 요리 실력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


그녀는 재빨리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지휘관은 그걸 모르는 척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심장이 전에 없이 공허하게 두근거렸다.

약간의 허무와.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그러나 시리우스는 기 죽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요리가 안 되면, 다른 방법으로 어필하면 될 겁니다.'


메이드로써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녀는 청소라면 자신이 있었다.

적을 청소하는 것 말이다.


'그 외에는.....'


"어, 시리우스."


지휘관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주인님."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아뇨, 아무것도.... 그런데 주인님. 왜 지금 여기에...?"

"잠깐 눈 좀 붙일까 해서. 시리우스도 같이 쉴래?"


시리우스는 어깨에 얹어진 손길을 느꼈다.

눈 좀 붙이자는 말과 같이 쉬자는 언질까지.

그 힌트들이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만약 주인님께서 시리우스를 원하신다면....."

"어?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지휘관이 당황해서 손을 저었다.


"진짜로 잠깐 눈 좀 붙이려는 거였어. 일이 급해서 그럴 여유까지는... 미안해."

"그,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제 마음이 너무 급했군요."

"그럼 쉬어."

"주인님도 편히 쉬십시오."


지휘관이 발길을 재촉했다.


시리우스는 얼굴을 붉히며 얌전히 방으로 돌아갔다.


"하아.... 어쩌자고 그런 말을..."


그녀는 쪽팔림에 한숨을 푹 내쉬며 베개를 끌어안았다.

당장이라도 어디로 뛰어내려 사라지고 싶었다.


'너무 부끄러워. 이러면 다음에 주인님 얼굴을 어떻게 봐야.... 잠깐만.'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시리우스는 고개를 들었다.


-일이 급해서 그럴 여유까지는... 미안해


지휘관은 당황해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마음이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 않을까?


'.......'


시리우스는 주먹을 꼭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쪽팔림을 이겨낸 그녀는 옷장 앞에 섰다.


끼익-


문을 열자, 옷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덮개가 있었다.

명절을 위해 준비했던 치파오인데, 시리우스의 흑역사가 있는 옷이기도 했다.


-저기, 시리우스. 그 옷. 바람이 불면 위험하지 않을까?

-아... 시리우스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걱정을 끼치다니, 정말 죄송합니다.


당시 시리우스는 지휘관이 그녀가 감기에 걸릴 걸 걱정했다고 생각했고, 감격했다.


-이런 저를 걱정해주시다니, 역시 저의 자랑스런 주인님...!

-하하...


그때 지휘관은 멋쩍게 웃으며 넘어갔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건데, 지휘관은 감기를 걱정한 게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덮개'가 휘날려 가슴이 드러날 걸 말한 것이었다.

브래지어도 입지 않아서 덮개가 휘날리면 젖꼭지까지 다 보였을 테니까.


'이 옷이라면 분명....'


시리우스는 당시 지휘관이 이 옷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던 걸 기억한다.

이건 가슴을 가리는 옷이 아니라 가슴 위에 얹은 덮개, 또는 가리개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렸으니까.

그녀는 잘 몰랐지만 남심을 자극하는 복장이 분명했다.


'주인님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겁니다.'






다음날, 시리우스가 지휘관을 찾아갔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드실 차를 준비했습니다."

"아, 고맙- 콜록, 콜록!"


지휘관이 차를 받으려다가 시리우스를 보고 깜짝 놀라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녀가 고의적으로 발구름을 세게 해서 젖가리개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앉자 있는 각도에 따라서 살짝 보였을지도 모른다.


"...괜찮으십니까?"


시리우스는 부끄러움을 꾹 참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 음, 너 옷이....?"

"에? 제 옷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아니, 그.... 음.... 아무것도 아니야. 차 고마워, 잘 마실게."


지휘관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업무에 집중한다.

아니, 집중하려고 했다.


".....그거 명절 때 입는 옷 아니야?"

"맞습니다."

"왜 지금...? 오늘 무슨 날이야?"

"그건 아닙니다만, 원래 있던 복장을 세탁해서 입을 옷이 없었습니다."

"음....."

"왜 그러십니까, 주인님. 치파오를 입은 시리우스를 원하시는 건가요?"

"에....."


지휘관이 묘한 눈빛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시리우스는 느꼈다. 저 눈에 성욕이 없다는 걸.


"....제가 많이 나간 건가요?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는데."


지휘관이 빤히 바라본다.

어쩐지 진지한 시선이었이게, 시리우스는 살짝 겁이 났다.


"시리우스."

"예, 주인님."

"잠깐 얘기 좀 할까? 잠깐 내 옆에 앉아 볼래?"


지휘관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네, 주인님."


시리우스는 그가 시키는 대로 그의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혹시 무슨 일 있어?"

"....아무것도."

"아니, 절대로 무슨 일 있잖아. 누가 봐도 그렇게 보여."

"......"


시리우스는 치맛자락을 쥐며 외면했다.

그러자 지휘관이 그녀의 손을 살포시 쥐었다.


"너무 조바심내지 마."


그 말은 가장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었다.

시리우스는 저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졌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알아."

"하지만 주인님은... 저로는 만족하실 수 없는 건가요? 전 주인님을 만족시켜드릴 수 없나요?"

"......"

"저도 제가 부족함이 많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벨파스트만큼, 아니 벨파스트보다 더 열심히 주인님을 보좌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벨파스트보다 부족한 점이 있나요?"


그녀가 말하고도 깜짝 놀랐다.

평소에도 가끔 툭 던져보던 생각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감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아... 방금은... 실수-"

"없어."

"네...?"


시리우스는 멍하니 지휘관을 쳐다봤다.


"시리우스가 벨파스트보다 부족한 점은 없어."

".....그, 그런..."


시리우스는 고개를 숙였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러나 어쩐지 기쁘지가 않았다. 마음 한편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아마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일 거다.


"시리우스."


지휘관의 부드러운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자신감을 가져. 넌 너잖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말했었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환한 웃음으로 세계를 빛내 달라고."

"......네."


분명 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너도 그러면 돼. 넌 지금 이 모습 그대로, 내 자랑스러운 메이드이야."

".......!"

"그냥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있어줘도 돼. 언제나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날 대해줘."

"실수투성이인 저라도.... 괜찮으시다는 겁니까?"

"응."


그가 시리우스의 손 위에 손을 포갰다.

반창고가 붙은 손가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나는 시리우스의 이런 모습까지 전부 사랑하고 있으니까. 저번 요리는 좀 짰을 뿐이지, 맛있었어. 진짜로. 오늘 가져다준 차도 맛있고."

"....."


시리우스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피었다.


요리는 실패했다.

옷도 실패했다.

하지만 지휘관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내년 이맘때에는 반드시 주인님이 만족하실 만한 요리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내년까지 기다려야 해?"
"......"


시리우스의 표정이 굳어진다.


"농담이야. 언제까지라도 기다릴게, 시리우스."


지휘관은 웃음을 터트리며 그녀를 꼭 안았다.

그의 온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시리우스는 마음속부터 차오르는 그 온기를 느끼며 그에게 기대고 두 눈을 감았다.

입가에서는 은은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감사합니다. 저의 자랑스러운 주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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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우스 맹한 표정 너무 매력적임




벽람 그림, 단편문학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