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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다. 지금 지휘관이 느낀 감상을 담백하게 표현한 단어였다.
내뱉은 말 한마디에 자리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지휘관은 자기도 모르게 이마에 손을 얹을 정도, 한숨도 내뱉고 있었다.
지휘관은 슬며시 눈동자를 굴렸다. 붉은 눈, 파란 눈, 자색 눈, 형형색색의 눈이 가라앉은 채로 자신을 향하고 있다.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한 번 뱉은 발언을 철회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목덜미에 땀을 흘리면서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고작 술 좀 못 마시게 한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는 거야?”
“고작 술이 아니다!”
쿵, 강구트가 탁자에 손을 내리치며 말했다. 술을 좋아하는 북련에서도 유독 음주를 즐기던 그녀였기에, 가장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아무리 지휘관의 말이라고 해도, 이번 건은 들어주기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말이야.”
“동감한다. 지휘관 동지, 조금 머리를 식히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건 어떤가.”
“그……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휘관님. 아무리 그래도 음주 금지는 조금…….”
차례대로 탈린, 소비에츠카야 러시아, 그리고 아브로라였다. 모두 부정의 뜻, 지휘관은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특히나 아브로라마저 부정의 뜻을 전한 것이 그에겐 약간의 상심으로 다가왔다. 북련 함선 소녀 중에서도 유독 부드러운 태도를 지니고 있던 만큼, 그녀라면 자기편을 들어주리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결국 찰나의 침묵을 고집하던 지휘관은 진한 한숨과 함께 몸을 돌려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모두가 당황했지만, 시선은 고정되어 있었다.
사락사락, 코트를 벗고, 툭, 툭,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면 드러나는 것은 답지 않게 하얀 피부, 그리고…….
“이게……무슨.”
이는 소비에츠카야 러시아의 목소리였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흔들리는 동공은 당황을 나타내고 있었고, 그것은 비단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하하, 멋쩍게 웃고 있는 강구트만 제외하고는.
“어제 강구트가 술에 취한 채로 찾아와 내 몸에 이런 걸 남겼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의 목에 선명히 남은 키스 마크, 그리고 등짝에 남은 손톱자국,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바보라도 알 수 있었다.
툭툭, 지휘관이 자기 허리를 두드리는 것으로 그 쐐기를 박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고, 그것을 깨버리는 이는 역시나 지휘관이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다고……나 아직도 허리가 아파……따로 책임을 묻진 않을 테니, 다들 조금만 자중해줘, 일주일이잖아. 일주일 금지라고, 응?”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 할 수도 있지! 한 번 봐줘라!”
지휘관의 억울한 목소리가 끝맺어지기 무섭게 강구트가 말했다. 입가의 미소는 여전했고, 목소리도 당당했다. 평소의 그녀와 다를 바 없었다.
“……그, 우리가 자중할테니, 이번 한 번만 넘어가주는 건 어떤가 지휘관 동지, 아무리 그래도 음주 금지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이번엔 러시아가 한 마디 덧붙였다. 미안하다는 뜻은 전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강구트와 다를 바 없는 논리였다. 지휘관 미간의 주름이 하나 늘었다.
“안 돼. 이미 선례가 생긴 이상, 누군가 이걸 빌미로 할 지도 모를 일이야. 일주일만 참아.”
“그, 그래도 너무하잖아! 우리는 뭐 마시고 살라고!”
“물 마셔 탈린, 응? 물 마시라고.”
“으으으…….”
이 뒤로는 의미없는 토론만 이어졌다.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지휘관은 완고했고, 그들도 물러섬은 없어 보였다.
다만, 지휘관쪽의 말이 더 옳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몇 함선 소녀들은 뒷목에 땀을 흘리고 있었으니까. 명백히 밀리고 있다는 증거였다.
“벨로루시아! 보지만 말고 너도 한 마디 해 봐라!”
와중, 벨로루시아는 지휘관실에 들어온 이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러시아가 이를 지적했다. 벨로루시아는 조용히 턱을 만졌고, 이윽고 입을 열였다.
“술을 마시고 덮쳐지는 게 두렵다면, 그냥 미리 우리의 욕구를 해소시켜주면 되는 게 아닌가?”
우뚝, 하고, 자리의 시간이 멈췄다. 단순한 한 마디였지만 그 파급력은 단순하지 않았다. 지휘관은 척추를 타고 오르는 위기감에 절로 소름이 끼쳤고, 등에는 이미 땀이 흐르고 있었다.
“…….”
함선 소녀들은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암묵적 합의를 시작한 거다. 물론 지휘관의 의사는 하등 상관 없이.
“……없던 일로 할까?”
“아니아니, 그래. 일주일, 한 번 참아보겠다. 그 대신--.”
천천히, 벨로루시아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다른 함선 소녀도 그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지휘관은 태어나 가장 큰 위기감에 손발이 떨리고 있었다.
“아, 아브로라! 아브로라!!!”
“아, 네! 지휘관님. 부르셨나요?”
지휘관이 마지막 희망을 담아 아브로라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브로라는 어느새 지휘관실의 문을 잠궈놓은 지 오래였다. 싱긋, 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하나 둘, 그를 향해 다가오는 여러 개의 손, 지휘관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이후, 북련 진형은 일주일간 금주 처벌을 달게 받아들였고, 지휘관은 요통을 이유로 2주 휴가를 냈다.
나가기전 30분 만에 쓴 거라 날림임 ㅈㅅ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