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뻑꿈뻑, 비토리오 베네토는 작금의 상황에 두 눈을 깜빡이는 것 이외의 행동을 할 수 없었다. 손도, 발도, 머리도, 전부 굳어있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의 행동이라 판단했다. 적어도 지금은.
“……진짜인가?”
자신에게 최면 어플이랍시고 이상한 빛이 나는 휴대폰을 들이미는 그를 바라보며, 베네토는 깊디 깊은 생각의 늪에 빠져들었다.
***
시간은 조금 전으로 거슬러간다. 오늘따라 낯선 기류가 흐르는 지휘관실 안의 두 남녀, 베네토와 지휘관은 특수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자고 일어났는데 휴대폰에 이런 어플이 생겼다니까?”
말하며, 지휘관은 베네토에게 휴대폰을 건넸다. 함선 소녀들과 소통하기 위한 쥬스타그램이나 메신저 앱도 있었지만, 베네토의 눈동자가 쏠린 곳은 다른 쪽이었다.
“최면……어플?”
노골적인 핑크색, 그것이 지휘관의 휴대폰에 설치된 정체모를 어플의 성격을 나타냈다. 베네토는 지휘관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았으며, 지휘관은 가만히 모자를 눌러썼다.
“혹시 사용하신 적은…….”
“당연히 없지, 오늘 설치된 거고, 보여준 것도 네가 처음이야.”
“……그런가요.”
별거 아닌 일이지만, 이런 일을 자신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는 사실에 베네토는 약간의 기쁨을 느꼈다. 어쩐지 신뢰받는 느낌이 따라왔던 까닭이다.
“그냥 누가 장난 친 거겠지, 그래. 이런 걸로 고민하는 게 멍청한 거야.”
큭큭, 지휘관이 짧게 웃었다. 휴대폰은 다시금 그의 손으로 돌아갔으며, 망설임 없이 삭제 버튼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베네토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저한테 한 번 사용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응?”
의아한 표정, 베네토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 아, 아, 그, 절대 불순한 의도는 아닙니다. 그저……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한…….”
과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수준의 반응, 손짓 발짓으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모습은 썩 귀여웠다. 이는 지휘관의 감상이었다.
잘 보면 귀도 붉어져 있었다. 본인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절절히 자각하고 있던 탓이다.
“그……그럼 그냥 못들으신 걸로…….”
“아냐, 한 번 해볼까?”
“……네?”
“왜, 재밌을 거 같은데.”
스리슬쩍 입꼬리를 올리는 모습에 베네토의 동공이 크게 뜨였다. 이어 더 반응할 세도 없이, 지휘관은 휴대폰의 최면 어플을 눌러 베네토에게 화면을 돌렸다.
***
그리고 다시 현실로, 당연하지만, 최면 어플의 효과는 없었다. 그의 예상대로, 애초에 최면 어플은 누군가의 장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베네토는 마치 최면 어플에 걸린 척,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는 그냥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탓이다. 지금 상황에는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풀린 동공, 정자세, 그리고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표정, 이 세가지가 하나 되어 지휘관을 향한다. 지휘관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손 들어 봐.”
“…….”
갑작스런 명령에도 베네토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명령을 따랐다. 지휘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고, 베네토는 슬슬 기대에 차기 시작했다.
혹시 여기서 이상한, 음란한 명령을 내리면 어떡하지, 그, 그래도 지휘관님이면……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을 기대하고 움직인 게 아닌가?
그, 그, 오늘 속옷은 조금 부끄러운데…….
하며, 베네토의 귀가 붉어지려던 그 순간.
“재밌네. 다른 애들한테 써먹어야겠다.”
“……으에?”
베네토는 자기도 모르게 괴상한 소리를 내뿜고 말았다. 허나 지휘관은 듣지 못한 듯, 천천히 그녀를 지나쳐갔다.
쿵, 하고,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 베네토는 절망과 슬픔, 그리고 충격을 한 번에 느끼는 진귀한 경험을 맞이했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는 신세, 그녀는 생각했다. 그, 그래도 나, 용기를 낸 건데, 한 걸음, 어른의 계단을 넘어가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일인데.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걸까……?
하나, 둘, 눈물이 나왔다.
소리는 내지 못했다.
“……큭큭.”
당연하지만, 지휘관은 애초에 그녀가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애초에 가짜라고 믿었고, 결정적으로 최면 어플을 보여준 내내, 베네토의 귀는 미세하게 떨리길 반복했으니까.
때문에 보여준 행동 역시 장난, 지휘관은 그녀를 놀리기 위해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히끅……히끅…….”
다만, 이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자, 잠깐만! 베네토!”
마침내 그녀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휘관은 크게 당황하며 그녀를 불렀다. 마찬가지로 사태의 진실을 깨달은 그녀 역시, 슬픔을 양껏 표출하기 시작했다.
털썩, 자리에 앉아 손으로 눈물을 닦는다. 봇물 터지듯 한 번에 밀려나온 슬픔은 곧 목소리로도 나타났다.
“너, 너무해요……지휘관님…….”
“미, 미안해, 장난이었어, 응?”
토닥토닥, 여자로서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은 베네토를 위로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모하던 사람에게 무시당하는 경험은 그녀의 마음에 균열만을 남겼다.
토닥토닥, 여자로서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은 베네토를 위로하기란 쉽지 않았다. 지휘관은 온종일 베네토와 함께하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으며, 그날 밤 존나게 섹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