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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와 류현진, 역사상 최고의 한국인 투수라고 꼽을 수 있는 두 선수가 선수 생활을 보냈던 팀이다.

당연히 MLB 모든 팀들 중에서 국내에서의 인지도와 인기는 가장 많으며, KBO 11번째 구단이라는 농담이 돌아다닐 정도다.

미국 제2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의 첫 야구팀이자 내셔널 리그 최고의 명문팀 자리를 놓고 다투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대해서 소개한다.

약칭 : LAD, LA

연고지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창단년도 : 1884년

월드 시리즈 우승 7회

('55, '59, '63, '65, '81, '88, '20)

홈구장 : 다저 스타디움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 소속

통산 성적 11234승 9942패 승률 0.531



창단 초기 (1883년 ~ 1900년)

1899년 40승을 달성해 리그 우승의 주역이 된 밥 카루터스

1883년에 찰스 번이 조셉 도일과 퍼디넌드 아벨을 설득해 현재의 다저스를 창단하였다.

당시 입던 유니폼 때문에 기자들에게 "그레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첫 시즌인 1883년에 마이너 리그에서 뛰었다.

그레이스는 당해 7월 20일에 뉴저지에 있던 캠든 메리트 클럽이 해체되고, 그 클럽의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리그 우승을 해냈다.

이윽고 1884년에는, 내셔널 리그와 경쟁하기 위해 출범한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AA)에 초대되었다.

1889년에 결국 AA가 NL에 합병되고, 브루클린 구단은 내셔널 리그 소속이 된다.


아메리칸 리그가 출범하기 이전인 1900년까지 브루클린 구단은 1899년 101승 시즌을 포함해 리그 우승 4회를 이룬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마이크 그리핀, 조지 핑크니, 톰 데일리, 오이스터 번스, 아도니스 테리, 브릭야드 케네디, 밥 카루터스, 헨리 포터, 에드 스테인이 있다.



100년지기 원수지간의 시작, 뉴욕의 3인자 (1901년 ~ 1946년)

당대 최고의 'V'였던 대지 밴스

별개의 도시였던 브루클린은 1898년 뉴욕에 합병됐다.

옆동네 팀 사이였던 브루클린 슈퍼배스와 뉴욕 자이언츠는 졸지에 한 동네 이웃 사이가 되버렸으며, 기나긴 라이벌 사이는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1899년 101승을 거두고 이듬해에도 리그 우승을 해냈던 슈퍼배스는 그래도 70승씩은 해주면서 1903년까지 5할 이상 성적을 냈는데, 1904년 97패, 1905년 104패 .316을 찍고 그대로 멸망, 볼티모어에서 옮겨온 아메리칸 리그의 하이랜더스보다도 아래인 신세가 되어 뉴욕의 3인자로 전락한다.

그나마 1915년에 5할 승률 회복과 동시에 리그 3위라는 성적을 내고 이듬해 내셔널 리그 우승, 월드 시리즈 시작 이후 첫 월시 진출을 이뤄냈으나 베이브 루스의 레드삭스에게 처참히 깨진다.

이후 1920년에 한 번 더 리그 우승, 이번에야 월드 시리즈 우승을 노려봤으나 트리스 스피커와 스탠 코발레스키의 인디언스에게 또 깨진다.

1941년 다시 리그 우승을 하기 전까지 로빈스-다저스의 리그 순위는

56626666644366576732였다. 당시 양대 리그는 전부 8팀 체제라 꼴찌는 해본 적 없었지만,,, 30년대를 무관으로 보냈다.

1941년, 21년만에 다시 밟은 월드 시리즈 무대에서는 양키스와 만났다. 결과야 뭐,,,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잭 휘트, 딕시 워커, 돌프 카밀리, 제이크 도버트, 베이브 허먼, 지미 셰커드, 오기 갈란, 잭 포니어, 피트 라이저, 대지 밴스, 냅 루커, 벌리 그라임스, 왓슨 클락, 밴 먼고, 위트 와이엇, 제프 페퍼, 루브 마쿼드, 레온 카도어, 커트 데이비스, 루크 햄린이 있다.



흑인 선수에게 문호를 열다 (1947년 ~ 1957년)

베이브 루스는 야구를 바꿨고,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꿨다.

재키 로빈슨을 논하기 전에 꼭 등장해야 할 사람이 있다.

현대 야구에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최초로 고안한 전설적인 단장 브랜치 리키다.

자체적 선수 육성 시스템, 그러니까 팜 시스템이라는 혁신으로 이전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리키는 구단주와의 갈등으로 다저스 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시점엔 이미 팜 시스템은 보편화되었고, 리키가 할 수 있는 혁신은 없었다.


그러다가 1944년, 흑인 선수의 입성을 반대했던 메이저 리그 초대 커미셔너이자 독보적인 직위를 지녔던 케네소 랜디스가 사망하자, 오랜 친구인 명예의 전당 1루수인 조지 시슬러에게 흑인 선수를 발굴해달라고 부탁했고, 시슬러가 발굴해낸 선수가 바로 재키 로빈슨이다.

로빈슨의 데뷔 시즌인, 미국 역사에 남을 브루클린 다저스의 1947년 시즌은 다저스가 내셔널 리그 최고의 강팀 중 하나로 변신함을 알리는 시즌이 됐다.

당해 첫 제정되어 수상하기 시작한 메이저 리그 신인왕은 재키 로빈슨의 차지였으며, 다저스는 내셔널 리그 우승에 성공,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와 만난다.

다저스는 그렇게 미국 사회에 충격을 줬으며, 내셔널 리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기팀이 되었다.

로빈슨이 데뷔한지 3개월도 안 돼서 인디언스에 래리 도비가 데뷔해 아메리칸 리그에도 흑인 선수가 등장했으며, 이후 니그로 리그의 전설 사첼 페이지도 데뷔해 인디언스의 1948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기점으로 메이저 리그의 흑인 선수들에 대한 문호가 열렸다.

이후 다저스에 로빈슨 말고도 로이 캄파넬라, 돈 뉴컴, 짐 길리엄, 조 블랙 등 흑인 선수들이 대거 등장, 10년 동안 리그 우승 6회를 이루어 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재키 로빈슨, 듀크 스나이더, 피 위 리즈, 로이 캄파넬라, 길 호지스, 칼 퍼릴로, 돈 뉴컴, 칼 어스킨, 프리처 로, 랄프 브랑카, 클렘 러바인이 있다.



MLB 서부 확장의 첫 주자가 되다 (1958년 ~ 1980년)

뉴욕 시민들은 다저스와 자이언츠의 연고 이전을 필사적으로 말렸다.

다만 다들 알듯, 다저스의 전성기는 하필 그 양키스의 최전성기와 겹쳤다.

안 그래도 1941년에 양키스와 월드 시리즈에서 격돌해 무참히 패배했는데, '47, '49, '52, '53년도 월드 시리즈에서 또 양키스와 대결, 그렇게 양키스에게 5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헌납했다.

양키스와 다저스를 제외하고 월드 시리즈를 5회보다 많이 우승한 팀은 6팀밖에 없다!!

1955년에는 또 양키스와 만나서 7차전 자니 포드리스의 완봉승으로 간신히 제압, 창단 첫 월드 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리지만 이듬해 양키스의 돈 라슨에게 퍼펙트 게임을 당하면서 또 졌다.

양키스는 결국 다저스를 월드 시리즈 최다 준우승팀으로 만든 원흉이 되었다.

아예 "내년까지 기다려!"가 다저스의 비공식 슬로건이 됐을 정도.

1956년 월드 시리즈 종료 이후 기준으로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성적은 1회 우승 8회 준우승.


이렇게 성적이 좋아도 인기도, 우승도 모두 같은 동네 양키스에게 밀리고, 구장도 낡고 후져서 구단주 월터 오말리는 서부로 연고지 이전을 결심,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던 50년지기 원쑤 뉴욕 자이언츠를 꼬드겨 나란히 저 멀리 캘리포니아 주로 떠났다.

브루클린 다저스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가 된 첫 번째 시즌인 1958년에는 낯선 새 구장에 적응하는 문제, 오프시즌에 벌어진 로이 캄파넬라의 교통사고로 인한 이탈 등 문제가 겹쳐 7위로 고꾸라졌지만, 이듬해에는 바로 내셔널 리그 우승, 자그마치 40년 만에 월드 시리즈 무대에 돌아온 화이트삭스를 누르고 두 번째 우승이자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첫 우승을 달성했다.

MLB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전성기를 보낸 투수를 꼽을 때 항상 언급되는 샌디 코팩스

60년대 들어서는 샌디 코팩스가 대각성해 페드로 마르티네스, 드와이트 구든 등과 비견되는 메이저 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두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달성한다.

하지만 코팩스가 서른의 나이에 커리어 하이를 맞이한 1966년 시즌 이후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은퇴를 선언해 압도적인 에이스를 잃었다.

돈 드라이스데일, 돈 서튼, 클로드 오스틴 같은 투수들이 있어도 코팩스의 공백을 메꾸기는 힘들었으며, 그렇게 10팀 중 8위로 미끄러지는 참사를 겪는다.


1969년 NL와 AL가 동부/서부 지구로 나뉘게 된 후, 다저스는 1970년부터 1973년까지 4년 연속 지구 2위를 할 만큼 다시 성적을 끌어 올리더니, 1974년 지구 우승, 리그 우승으로 코팩스 은퇴 이후 월드 시리즈 무대에 다시 돌아왔다.

다만 상대는 '72~'74년 동안 무려 월드 시리즈 3연패를 달성한 최전성기의 애슬레틱스였고, 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1977년과 1978년에도 리그 우승으로 월드 시리즈 무대를 다시 밟지만, 또 양키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윌리 데이비스, 론 세이, 스티브 가비, 데이비 롭스, 모리 윌스, 빌 러셀, 자니 로즈보로, 웨스 파커, 레지 스미스, 짐 길리엄, 더스티 베이커, 돈 서튼, 돈 드라이스데일, 샌디 코팩스, 클로드 오스틴, 토미 존, 버트 후튼, 빌 싱어, 자니 포드리스, 더그 라우, 앤디 메서스미스, 스탠 윌리엄스, 짐 브루어, 론 페라노스키가 있다.



히스패닉 시장을 개척하다 (1981년 ~ 1993년)

유일무이한 신인왕 & 사이 영 상 동시 수상자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981년 시즌은 지난 1972년때 처럼, 파업이 심각해져 경기 수가 단축된 시즌이 됐다.

162경기를 치르던 여느때와 달리 다저스는 당해 110경기만을 치렀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MLB에 일약 신드롬을 일으킨 선수가 있었다.

바로 페르난도 발렌수엘라다.


1980년 데뷔한 발렌수엘라는 17.2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윽고 신인 자격을 유지한 채 맞이한 두 번째 시즌이자 20세가 되는 시즌인 1981년에 탈삼진 타이틀을 거머쥐고, 신인왕&사이 영 상&실버 슬러거 동시 석권에, 팀 우승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이뤄내고야 만다.

이 돌풍으로 '페르난도매니아'라는 말도 생겨날 정도였다. 20년 후 스즈키 이치로의 데뷔 시즌 열풍과 비슷하다 보면 된다.

이로써 다저스는 발렌수엘라의 등장과 우승으로 멕시코 계열 히스패닉 팬들의 인기를 대거 끌어 모으게 됐다.

그리고 1988년에 오렐 허샤이저, 커크 깁슨 등의 활약으로 다시 한번 월드 시리즈 우승에 성공, 팀의 여섯 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페드로 게레로, 마이크 소시아, 스티브 색스, 마이크 마셜, 브렛 버틀러, 에디 머레이, 커크 깁슨,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오렐 허샤이저, 밥 웰치, 제리 로이스, 팀 벨처, 알레한드로 페냐, 라몬 마르티네스, 제이 하웰이 있다.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다 (1994년 ~ 2012년)

본격적인 아시안 메이저리거의 시작을 알린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

1994년 1월 11일, 다저스에 계약금 120만 달러를 받고 정식으로 입단하게 된 선수가 있다. 그가 바로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다.

박찬호는 1994년 데뷔한 이후 1996년부터 풀타임 출장을 하게 된다.

이듬해인 1995년에는 NPB을 평정한 노모 히데오가 데뷔하게 되는데, 특유의 독특한 토네이도 투구폼으로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신인왕을 수상, 아시안 메이저리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라는 팀이 국내에서 비중있게 다뤄지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시점이 외환 위기와 박찬호의 전성기 때부터이며, 말로만 들었던 메이저 리그라는 무대가 국내에 잘 알려지게 된 시점이기도 하다.

노모 히데오의 1995년 신인왕 수상과 올스타전 출장에 이어 박찬호의 2001년 올스타전 출장으로 다저스는 아시아 시장을 개척하였음을 알렸다. 흑인 - 히스패닉에 이어 세 번째인 셈이다.


다만 이 시기 들어서 다저스는 침체에 빠지게 된다.

준우승게 그치긴 했지만 1998년에 파드리스가 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과 더불어 원수지간인 자이언츠마저도 2002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다저스는 '95,'96시즌 2년 연속 디비전 시리즈 3대0 광탈당한 이후로 2004년이 될 때까지 포스트 시즌에 나가보지 못했으며, 그 오랜만인 2004년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3대1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구 최하위까지 미끄러져보지는 않았지만, 한때 잘 나가던 팀과는 거리가 먼 성적이었다.

그 배경에는 구단주 프랭크 맥코트의 무능함이 있었으며, 팬들은 다저스가 하루 빨리 맥코트에게서 벗아나기를 원했다.

이후 클레이튼 커쇼의 화려한 등장과 2011년 시즌에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다저스의 미래에 파란 불이 켜졌으며, 시즌 종료 후 맥코트가 다저스에서 손을 떼면서 팬들이 앞날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마이크 피아자, 아드리안 벨트레, 러셀 마틴, 맷 켐프, 라울 몬데시, 에릭 캐로스, 숀 그린, 게리 셰필드, 안드레 이시어, 라파엘 퍼칼, 폴 로두카, 케빈 브라운, 노모 히데오, 채드 빌링슬리, 이스마엘 발데스, 박찬호, 에릭 가녜, 대런 드라이포트, 페드로 아스타시오가 있다.



서부 지구의 최강자 (2013년 ~ )

이미 다저스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된 클레이튼 커쇼

2013년 서부 지구 우승을 시작으로 현시점 가장 최근 시즌인 2021년까지 한 번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적이 없다.

월드 시리즈 우승 1회를 비롯 리그 우승 3회, 팀 역사상 최고 승률('20 .717), 최다 승('22, 111승) 등을 기록하며 서부 지구의 압도적인 강자로 군림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KBO를 평정하고 MLB에 직행한 류현진이 2013년에 데뷔했고, 때마침 과거 박찬호의 전성기를 보낸 다저스였기에 국내에서의 (MLB 팀 사이의)인기는 다시금 하늘을 찔렀다.

이 과정에서 소위 말하는 국뽕들로 인해 마찰을 빚어 국저스라는 별명 또한 얻게 되었다.

2023년 시즌이 시작되기 전 다저스는 오프시즌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는데, 이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 파드리스에게 지구의 왕좌를 넘겨줄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뚜껑을 열어보니 파드리스가 깊은 부진에 빠졌고, 다저스도 처음엔 주춤했으나 이내 폼을 되찾고 디백스와 자이언츠와 함께 지구 왕좌를 놓고 경쟁 중이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저스틴 터너, 코리 시거, 야스마니 그랜달, 야시엘 푸이그, 코디 벨린저, 켄리 잰슨, 류현진, 잭 그레인키가 있고,

주요 현역 선수들로는 윌 스미스, 오스틴 반스, 프레디 프리먼, 맥스 먼시, 미겔 로하스, 아메드 로사리오, 개빈 럭스, 크리스 테일러, 데이비드 페랄타, 제임스 아웃맨, 무키 베츠, 제이슨 헤이워드, 키케 에르난데스, 제이크 마리스닉, J.D. 마르티네스, 클레이튼 커쇼, 훌리오 유리아스, 토니 곤솔린, 워커 뷸러, 랜스 린, 더스틴 메이, 라이언 야브로, 에반 필립스, 케일럽 퍼거슨, 알렉스 레이예스, 옌시 알몬테, 조 켈리, 지미 넬슨, 대니얼 허드슨, 브루스더 그라테롤, 라이언 브레이저, 블레이크 트레이넨이 있다.



홈구장 변천사

브루클린에서 가장 오래 사용했던 에베츠 필드

현재의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

'84~'90 워싱턴 파크

'91~'97 이스턴 파크

'98~'12 워싱턴 파크

'13~'57 에베츠 필드

'58~'61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

'62~현재 다저 스타디움 ('65까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와 공용)


다저 스타디움은 1962년 준공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메이저 리그에서 손꼽히는 투수 친화적 구장이다.

이로 인해 다저스는 양키스와 달리 전통적으로 명투수들이 많았다.

같은 지구의 자이언츠, 파드리스의 홈구장도 투수 친화적이라 내셔널 리그 서부 지구는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투수 친화적인 지구로 꼽힌다.



라이벌리


다저스 - 자이언츠 라이벌리

미국 서부 프로 스포츠 최대의 라이벌 관계

방망이를 휘두르려 하는 선수는 자이언츠의 레전드 후안 마리샬, 말리려는 선수는 다저스의 레전드 샌디 코팩스다.

이쪽 관계는 양키스 - 레드삭스 라이벌리보다 더 오래 됐다.

브루클린이 뉴욕에 합병된 이래 같은 동네 라이벌 관계로 지냈고, 양키스가 뉴욕에 와서도 관계는 여전했다.

그도 그럴게 같은 내셔널 리그 소속이니 자주 만나게 될 사이 아닌가.

다저스와 자이언츠가 손잡고 캘리포니아 주로 연고 이전 한 후에는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지역 감정이 겹쳐 뉴욕 시절과는 조금 다른 성격의 라이벌리가 됐지만, 두 팀 사이의 관계는 여전하다.

지금도 양팀의 관계는 상당히 험악하며, 팬이 피살당하는 사건도 일어나기도 했었다.


주요 경기

1951년 리그 타이틀 결정전 (자이언츠 승리)

1962년 리그 타이틀 결정전 (자이언츠 승리)

2021년 NLDS (다저스 승리)


통산 정규시즌 전적 (1900년부터)  LAD 1198 - 14 - 1201 SF

통산 포스트시즌 전적  LAD 3 - 2 SF



다저스 - 양키스 라이벌리

기나긴 패배의 시간을 끝낸 1955년 월드 시리즈 우승의 순간

다저스를 월드 시리즈 최다 준우승 팀으로 만든 원흉이 바로 양키스다. 얘네 둘끼리 11번이나 만났으며, 양키스에게 8번의 우승을 내줘야 했다.

다저스가 브루클린에 있던 시절엔 한번 겨우 우승할 동안 양키스에게 여섯 번의 우승을 내줬다.


주요 경기

1941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47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49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52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53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55년 월드 시리즈 (다저스 승리)

1956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63년 월드 시리즈 (다저스 승리)

1977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78년 월드 시리즈 (양키스 승리)

1981년 월드 시리즈 (다저스 승리)


통산 정규시즌 전적  LAD 8 - 8 NYY

통산 포스트시즌 전적  LAD 29 - 37 NYY



다저스 - 에인절스 라이벌리

1999년 두 팀 간의 인터리그에서 발생한 난투극 장면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인터리그 고정 매치업.

양키스와 메츠 간의 서브웨이 시리즈처럼 두 팀의 연고지도 고속도로로 맞닿아있기 때문에 프리웨이 시리즈라고 불린다.

에인절스가 창단 초기 다저 스타디움을 공용했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에인절스가 다소 무리하게 팀명에 LA를 끼워 넣은것을 꼬투리 잡는 다저스 팬들도 많다.

실제로 에인절스가 로스앤젤레스를 팀 이름에 끼워 넣고 좋은 성적을 올리자 로스앤젤레스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시장 규모도 커졌기 때문이다.


통산 정규시즌 전적  LAD 67 - 73 LAA



다저스 - 애스트로스 라이벌리

그 장면

사인 훔치기 스캔들이 드러난 후 다저스 팬들에게 애스트로스는 자이언츠 급의 주적이 되었다.

다저스는 2010년대 NL 서부 지구의 강자로 자리매김했으나 번번히 월드 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는데, 2017년 다저스와 애스트로스 간의 월드 시리즈에서 사인 스틸 행각이 벌어졌다는 점 때문에 다저스 팬들의 증오를 받게 되었다.

현재 다저스가 스캔들에 연루되었다는 루머가 돌기 때문에 아직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다저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올스타전에 애스트로스 소속 선수들이 불참하고 마주칠 때마다 야유 세례를 퍼붓는 등 양팀의 분위기는 험악한 상태다.

또한 1981년 다저스가 애스트로스 상대로 NLDS에서 리버스 스윕을 달성하고 당해 우승을 차지한 적도 있었다.


주요 경기

1980년 내셔널 리그 서부지구 타이브레이커 게임 (애스트로스 승리)

1981년 NLDS (다저스 승리)

2017년 월드 시리즈 (애스트로스 승리)


통산 정규시즌 전적  LAD 394 - 328 HOU

통산 포스트시즌 전적  LAD 6 - 6 HOU



한국인 선수

박찬호는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다.

류현진은 박찬호의 뒤를 이은 한국인 에이스 투수가 됐다.

박찬호가 1994년부터 2001년까지 활약하며 올스타전 출장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후 2008년 불펜투수로써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최희섭이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활동했으며, 홈런 더비에 출전하기도 했다.

서재응이 2006년 시즌에 한 시즌 뛰었다. 당시 김병현과 선발 맞대결을 벌여 승리하기도 했다.

류현진이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활약하며 올스타전 출장,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 개인 타이틀 수상이라는 업적을 일궈냈다.



다저스라는 명칭의 유래


Dodge는 무언가를 기피하다, 피하다 라는 뜻이 있다.

거기에 -r이 붙으면 ~하는 사람 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럼 다저스라는 이름은 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무엇을 피하는 걸까? 자신에게 날아오는 야구공?

팀 이름이 다저스가 된 배경에는 당시 브루클린을 미국에서 안 좋은 의미로 주목받게한 노면전차 사고들이 있다.

1892년 브루클린시가 느릿느릿하던 트롤리(노면전차)를 더 빠르게 운행할 수 있게끔 했는데, 이후 1895년 말까지 상당한 인명피해가 발생하게 되었다.

미국 전역에서 집중되는 안 좋은 시선들과, 퍼져나가는 사고 수, 그리고 95년 초에 있었던 트롤리 파업은 사람들 마음 속에 브루클린과 트롤리 피하기 사이의 강한 연관성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스포츠 기자들이 1895년 초에 브루클린 그룸스를 브루클린 트롤리 다저스라고 지칭했는데, 그 명칭이 1898년에 브루클린 다저스로 단축되었다.

이후 1911년에 브루클린 슈퍼배스에서 브루클린 트롤리 다저스라는 이름으로 개칭한 후 실제로 두 시즌 동안 경기를 하다가, 1914년부터 1931년까지 브루클린 로빈스라는 팀 이름을 사용하다가, 1932년에 다시 다저스로 개칭,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913년에는 브루클린 다저스로 팀 이름을 단축해 한 시즌을 보냈다.)



영구 결번

1
피 위 리즈
2
토미 라소다
4
듀크 스나이더
14
길 호지스
19
짐 길리엄
20
돈 서튼
24
월터 앨스턴
32
샌디 코팩스
34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39
로이 캄파넬라
42
재키 로빈슨
53
돈 드라이스데일
빈 스컬리하이메 자린


다저스 소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인물들

투표로 입성
대지 밴스
1955년
81.67% (16회)
재키 로빈슨
1962년
77.50% (1회)
로이 캄파넬라
1969년
79.41% (5회)
샌디 코팩스
1972년
86.87% (1회)
듀크 스나이더
1980년
86.49% (11회)
돈 드라이스데일
1984년
78.41% (10회)
돈 서튼
1998년
81.60% (5회)

베테랑 위원회로 입성
잭 위트
1959년
벌리 그라임스
1964년
피 위 리즈
1985년
길 호지스
2022년
감독으로 입성
윌버트 로빈슨
1945년
월터 앨스턴
1983년
레오 듀로셔
1994년
토미 라소다
1997년
구단 관계자로 입성
월터 오말리
2008년


개인 수상 이력

MVP
'13
제이크 도버트
'24
대지 밴스
'41
돌프 카밀리
'49
재키 로빈슨
'51, '53, '55
로이 캄파넬라
'56
돈 뉴컴
'62
모리 윌스
'63
샌디 코팩스
'74
스티브 가비
'88
커크 깁슨
'14
클레이튼 커쇼
'19
코디 벨린저
사이 영 상
'56
돈 뉴컴
'62
돈 드라이스데일
'63, '65, '66
샌디 코팩스
'74
마이크 마셜
'81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88
오렐 허샤이저
'03
에릭 가녜
'11, '13, '14
클레이튼 커쇼
올해의 감독상
'83, '88
토미 라소다
'16
데이브 로버츠
올해의 신인상
'47
재키 로빈슨
'49
돈 뉴컴
'52
조 블랙
'53
짐 길리엄
'60
프랭크 하워드
'65
짐 러피버
'69
테드 사이즈모어
'79
릭 섯클리프
'80
스티브 하우
'81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82
스티브 색스
'92
에릭 캐로스
'93
마이크 피아자
'94
라울 몬데시
'95
노모 히데오
'96
토드 홀랜즈워스
'16
코리 시거
'17
코디 벨린저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81
스티브 가비
'12
클레이튼 커쇼
'22
저스틴 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