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입문 가이드 모아보기


마이크 트라웃, 오타니 쇼헤이.

현시대의 MLB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두 슈퍼스타가 활동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팬층과 인지도가 두터운 팀이다.

최전성기 배리 본즈를 누르고 팀의 유일한 월드 시리즈 왕좌를 차지하기도 했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는 어떤 역사가 남아있을까?

약칭 : LAA

연고지 :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

창단년도 :1961년

월드 시리즈 우승 1회

('02)

홈구장 : 에인절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

별칭 : 헤일로스(The Halos) 등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소속

통산 성적 4885승 4927패 승률 0.498



창단 초기 (1961년 ~ 1971년)

애너하임의 첫 프랜차이즈 스타 짐 프레고시

창단하기 한참 전부터 기존의 AL 구단이 로스앤젤레스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브루클린 다저스와 뉴욕 자이언츠가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로 연고이전하기 18년 전인 1940년에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AL 구단주들에게 연고이전의 허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된 바 있고, 1941년 시즌 종료 후 허가를 받아내는데 성공했으나 진주만 폭격으로 인해 서부 해안에서 메이저 리그 스포츠를 할 수 없게 되어 무산됐다.

브라운스는 1953년 시즌 종료 이후 로스앤젤레스로 연고이전하는 루머가 다시 불거졌으나 매각되어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되어 없던 일이 되었다.

또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가 캔자스시티로 연고이전한것도 로스앤젤레스로 가기 위한 발판이라는 소문도 당시에 무성했다.

결국 로스앤젤레스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된 것은 내셔널 리그였다.

다저스는 당시 퍼시픽 코스트 리그(PCL, 현재의 트리플 A 리그의 일원)의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를 사들이며 후에 로스앤젤레스 지역에서 아메리칸 리그의 존재를 배제하기 위해 메이저 리그 팀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그러다 1960년, 콘티넨털 리그라는 새로운 리그가 생겨날 움직임이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기존의 두 리그가 각 리그에 2개의 구단을 추가, 즉 확장하기로 합의했다.

내셔널 리그는 휴스턴, 그리고 MLB 구단이 사라진 뉴욕에 새로운 팀을 창단했고, 아메리칸 리그는 뉴욕과 마찬가지 신세였던 워싱턴과 로스앤젤레스에 구단을 창단하는데 이때 로스앤젤레스에 창단된 팀이 에인절스다.


아메리칸 리그가 10구단 체제로 처음으로 치른 1961년 시즌에 에인절스는 PCL 시절부터 오랫동안 지내온 홈구장을 사용하며 신생팀 세네터스와 애슬레틱스를 따돌리고 8위를 차지하며 발을 들인다.

시즌 후 에인절스는 다저스가 다저 스타디움으로 떠나 빈 구장이 된 로스앤젤레스 메모리얼 콜리세움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포드 프릭 커미셔너는 콜리세움의 불과 250피트(76미터) 밖에 되지 않는 좌측 담장 때문에 콜리세움이 임시 구장으로도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 후 결국 다저스의 홈구장 다저 스타디움을 공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저스와 구장을 공용하게 된 1962년 시즌에는 신인왕 출신 외야수 알비 피어슨과 창단 첫 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 올스타로 선정된 에이스 켄 맥브라이드에 구단 첫 노히터의 주인공 보 벨린스키의 등장과 딘 챈스가 각성하며 가세해 무려 창단한지 두 시즌만에 86승 .531로 3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듬해에는 힘이 빠져 창단 첫 시즌과 같은 성적을 기록해버렸지만 21살의 짐 프레고시가 두각을 드러내며 팀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고 1964년에는 딘 챈스의 사이 영 위너 퍼포먼스와 함께 다시 위닝 시즌을 만들며 신생팀 답지 않은 순항을 이어갔다.


하지만 에인절스는 가면 갈수록 새 경기장의 필요성이 더욱 분명해졌다.

다저스네 세입자로서 활동하는 것은 팬층의 확장으로 이어지는데 분명한 장애물이었고, 다저스 구단주 월터 오말리는 에인절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임대 조건을 부과했다.

한편 에인절스가 로스앤젤레스에 새 경기장을 얻으려는 시도는 꾸준히 방해받았는데, 이에 진 오트리 구단주는 LA 광역권의 다른 도시를 알아봤다.

첫 번째로 선택한 도시는 롱비치였는데, 시에서 팀의 명칭을 롱비치 에인절스라고 바꾸라고 주장했다.

이게 폼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지 롱비치를 거르고 애너하임을 선택, 1966년 시즌부터 사용할 애너하임 스타디움을 착공하고 1965년 시즌 후반기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로 팀의 이름을 변경했다.

에인절스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주에는 MLB 구단이 셋이나 존재했지만 당시 에인절스만이 유일한 AL 구단이었고, 후에 애슬레틱스의 이전과 파드리스의 창단으로 다섯 팀이 되자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6년까지 이 이름을 유지했다.


다저 스타디움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56만 명의 관중에 그쳤지만 애너하임에서의 첫 시즌은 140만 명의 관중을 불러모아 지역 야구팬들의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에 성공했으나 위닝 시즌과 90패 시즌을 넘나드는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1969년 지구 제도가 도입되고 나서도 지구 우승에는 번번히 실패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짐 프레고시, 알비 피어슨, 바비 커눕, 릭 라이카트, 딘 챈스, 앤디 메서스미스가 있다.



암흑기와 세 번의 가을 (1972년 ~ 1996년)

70년대를 대표하는 탈삼진 머신 프랭크 타나나와 놀란 라이언

1972년 시즌은 프레고시의 부재로 시작했다.

프레고시는 메츠와의 4대 1 트레이드로 정든 에인절스를 떠나게 되었고, 에인절스 팬들은 아쉬워해야 했다.

하지만 프레고시의 뒤를 이을 스타가 나타났으니 다름 아닌 프레고시의 트레이드로 건너온 놀란 라이언이었다.

라이언은 에인절스의 유니폼을 입자마자 329개의 탈삼진을 잡아내며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 올타임 리더의 탄생을 알렸으며 이듬해에는 383개의 탈삼진으로 샌디 코팩스의 382탈삼진을 경신, 라이브볼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며 역사에 에인절스를 새겼다.

거기다가 1974년 시즌에는 20살의 프랭크 타나나가 등장, 풀타임 2년차인 1975년에 라이언을 제치고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하는 등 젊으면서도 압도적인 원투펀치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에도 팀의 성적은 좋지 못했는데, 라이언의 에인절스 첫 시즌인 1972년부터 1977년까지 두 번의 지구 최하위를 포함 모두 루징 시즌을 기록했다.

1978년에는 시즌이 끝나기 직전에 스타 외야수 라이먼 보스톡의 총격 사망 사고가 벌어지는 비극에도 건재한 두 선발과 올스타 출신 2루수 바비 그리치가 에인절스 이적 후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며 87승 .537로 지구 2위를 차지하는데, 이듬해에는 지난 시즌 도중 부임한 왕년의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 짐 프레고시의 첫 풀타임 시즌을 보내고 돈 베일러, 버트 캄파네리스, 로드 커류, 댄 포드의 타선에 힘입어 창단 첫 지구 우승에 성공하고 만다.

비록 ALCS에서 오리올스에게 패배해 월드 시리즈를 밟진 못했지만 이 시즌은 1971년부터 1981년까지 AL 서부 지구의 압도적인 강자였던 애슬레틱스와 로열스가 우승에 실패한 유일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시즌 후 16승 14패를 기록한 놀란 라이언을 단장 버지 버베이시는 "얘 팔고 8승 7패 투수 두 명 굴리고 말지"라며 라이언을 FA로 풀게 놔두고 잡지 않았다.

라이언은 버베이시 단장 부임 이후 두 시즌 동안 26승 27패를 기록했고, 비록 이 두 시즌 모두 탈삼진 1위였지만 3점대 후반으로 높이 뛰어버린 평균 자책점과 팀이 호성적을 내기 시작하던 1978년부터 도리어 300탈삼진을 마구 잡아내던 그때와 좀 다른 성적을 기록한 것이 안 좋게 보였던 것 같다.

라이언의 이적 이후 팀은 와해되어 지구 우승팀의 위용은 온데간데없이 95패로 추락하고야 만다.

급기야 파업으로 단축된 1981년 시즌, 22승 25패의 성적을 기록 중이던 프레고시 감독을 경질하기도 한다.


1982년 시즌은 지난 시즌 도중 부임한 진 목이 이끌며 더그 데신세이, 브라이언 다우닝, 바비 그리치, 로드 커류에 프레드 린, 거기에 양키스에서 넘어온 레지 잭슨이라는 핵타선을 구축, 팀의 두 번째 가을을 일궈낸다.

하지만 브루어스와의 ALCS에서 먼저 2승을 선취한 뒤 3연패, 그니까 리버스 스윕을 당해주면서 월드 시리즈는 또 밟지 못했다. 어쩌면 이는 에인절스 포스트 시즌 잔혹사의 시작이었다.

1983년 시즌은 1980년처럼 또 성적이 급락했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위닝팀이 되어 1986년에 다시 지구 우승을 차지해냈다.

ALCS에서 맞붙은 AL 동부 지구의 우승팀은 한이 서린 레드삭스였다.

에인절스는 시리즈 3대 1로 레드삭스를 엘리미네이션 게임으로 몰아넣고 5차전을 치렀는데, 9회초 2사 2스트라이크 5대 4 상황에서 데이브 헨더슨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내주고 말았다.

비록 9회 말에 동점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헨더슨이 또 11회초에 희생 플라이로 결승 타점을 올려 결국 패배, 충격을 입고 레드삭스의 홈 펜웨이 파크로 원정을 가 참패하며 페넌트를 내줘야 했다.


물론 레드삭스 팬들에게 이 시즌은 월드 시리즈에서 빌 버크너의 그 실책으로 기억되겠지만 에인절스 팬들이 입은 충격도 상당했다.

헨더슨에게 그 홈런을 맞은 마무리 도니 무어는 팬들의 비난의 중심에 섰고, 과거 우울증을 앓았던지라 결국 1988년 시즌에 방출된 그 다음해에 자살하며 아픈 비극으로 남게 되었다.

에인절스는 1986년 ALCS 이후 16년 동안 플레이 오프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1992년 시즌 중에는 뉴욕에서 볼티모어로 가던 팀 버스의 교통사고로 감독을 포함한 12명이 부상당해 입원하는 사고도 있었다.

팀 역사상 최다패를 갈아 치울 것으로 기대?되던 1994년 시즌은 파업으로 중단돼 그럴 일은 없게 됐지만 1995년 시즌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지구 우승 직전까지 갔으나 매리너스와의 타이브레이커에서 패배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브라이언 다우닝, 바비 그리치, 월리 조이너, 더그 데신세이, 로드 커류, 짐 에드먼즈, 놀란 라이언, 마이크 위트, 척 핀리, 프랭크 타나나, 마크 랭스턴, 커크 맥카스킬, 짐 애보트, 돈 아시가 있다.



우승, 하지만 이어진 PS 잔혹사 (1997년 ~ 2011년)

암흑기 시절을 지탱하고 끝내 우승의 순간에도 함께한 팀 새먼

1982년과 1986년의 포스트 시즌 참사, 1995년의 지구 우승 실패, 라이먼 보스톡의 피살과 도니 무어의 자살과 같은 비극을 고려할 때, 에인절스에 대한 어떤 '저주'가 있을 거라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저주의 원인이 오트리 구단주였다고 제안하기도 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에인절스 스타디움이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 묘지 위에 지어졌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론도 제기됐다.

와중에 경기장 개보수 계약의 조건에 의해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팀의 세 번째 명칭으로 확정됐다.

그리고 1996년, 에인절스의 소유권은 월트 디즈니 컴퍼니로 넘어갔으며 진 오트리는 1998년 사망할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했다.


2002년 시즌은 디즈니 사가 디자인한 유니폼을 버리고 전통적인 유니폼에 더 부합하는 디자인, 그리고 처음으로 애너하임을 써넣은 유니폼으로 변경되며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4팀따리 농어촌지구에서 3등 정도나 할거라고 예측했으나, 머니볼 그 시즌을 보내던 애슬레틱스의 뒤를 이어 99승 .611로 와일드 카드 획득에 성공, 지구 우승은 아니었지만 도니 무어의 비극 이후 처음으로 포스트 시즌에 돌아오게 된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난 양키스를 3대 1로 꺾으며 에인절스의 첫 포스트 시즌 승리를 달성했으며, 이어지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트윈스를 꺾으며 창단 첫 페넌트를 차지, 월드 시리즈 무대에 발을 들이게 된다.

월드 시리즈의 상대는 자이언츠, 아니 배리 본즈였다.

에인절스는 3대 2로 몰린 상태에서 6차전을 맞이했으나 본즈의 실책이 겹친 극적인 역전승으로 7차전까지 승부를 끄는데 성공하고 7차전에서는 신인 투수 존 래키가 선발 등판해 호투해내며 승리투수가 되며 에인절스의 첫 우승을 가져오게 된다.


2003년 시즌 초반에 디즈니는 에인절스를 아트 모레노가 이끄는 그룹인 에인절스 베이스볼에 매각했다.

그리고 에인절스 베이스볼은 2005년 1월, 구단명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이라는 해괴한 이름으로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원래 리그 확장될 때 창단된 이름을 반영한다고는 했지만 LA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그러는게 뻔히 보여서 애너하임 시와 로스앤젤레스 시 지도자들 사이에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로스앤젤레스 시, 월트 디즈니 컴퍼니, 그리고 오렌지 카운티(애너하임, 어바인 등이 소속된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바로 남동쪽의 카운티)의 모든 도시의 지원으로 애너하임 시는 에인절스가 애너하임과의 임대 계약을 위반했다며 고소했고, 이에 구단은 구단명에 어찌됐건 애너하임이 포함되어 있지 않느냐며 반박한다.

배심원 재판은 끝내 에인절스의 편을 들어 결국 저 길고 긴 이름을 유지하는 게 허용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모든 야구 팬들과 미디어는 뒤의 '오브 애너하임'을 언젠가 떼버리고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라고 지칭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상했다.


그 전까지의 세 번의 포스트 시즌 진출 성공 후 다음 시즌이 모두 그랬듯, 2003년 시즌도 5할을 유지하지 못하며 추락한다.

2004년에는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영입해 1986년 이후 첫 지구 우승에 성공했으나 디비전 시리즈에서 1승도 거두지 못하고 끝마쳐야 했다.

그러나 2002년 우승은 에인절스 전성기의 시작임을 선언하기라도 하듯 2005년 시즌에도 지구 우승, 디비전 시리즈 승리에 성공했으나 1차전을 승리한 뒤 맞이한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에서 팀의 저주를 박살내기 위해 노력하던 우리 A.J. 피어진스키가 심판진들이 모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정당한 낫아웃 출루였지만 언론과 미디어에서 이를 사기극이라고 떠들어 대는 바람에 여론이 그를 악역으로 몰고 가서 이에 자신을 욕받이로 인정하는 눈물겨운 희생과 나중에 대통령 될 버락 오바마의 시구에 힘입은 화이트삭스에게 패배하게 된다.

에인절스 선수단과 팬들은 피어진스키에게 비난과 분노를 쏟아냈으나 이는 어찌됐던 정당한 행위와 문제될게 없는 출루였기 때문에 망연자실한 선수단은 2-3-4-5차전 모두 화이트삭스 선발진들에게 완투승을 헌납하는 모습을 보이며 탈락했다.


2006년 시즌에는 89승을 거두고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했지만 2007년부터 3년 연속 지구 우승에 성공, 특히 2008년에는 프랜차이즈 유일한 100승 시즌을 만들어내며 머니볼의 애슬레틱스의 뒤를 이은 서부 지구의 강자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2007, 08년 포스트 시즌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1승 6패, 2009년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4대 2로 패배하는 등 2002년 우승 이후에도 포스트 시즌에서의 잔혹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대린 어스태드, 개럿 앤더슨, 숀 피긴스, 팀 새먼, 트로이 글로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토리 헌터, 존 래키, 제러드 위버, 어빈 산타나, 켈빔 에스코바,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 스캇 실즈, 트로이 퍼시벌이 있다.



현재 (2012년 ~ )

MLB를 대표하는 두 슈퍼 스타 마이크 트라웃과 오타니 쇼헤이

마이크 트라웃, 알버트 푸홀스. 두 극명한 명암으로 설명되는 시기다.

2010년 시즌 이후, 갑자기 홈런 31개를 치며 부활한 것 같은 모습을 보인 블루제이스의 스타 버논 웰스를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결과야 뭐,,,

그리고 2011년 시즌 종료 후 알버트 푸홀스와 C.J. 윌슨을 영입하며 레인저스에게 도전했으나 결과야 뭐,,,

마이크 트라웃이 역대급 루키 시즌을 보내며 이 시대 최고의 슈퍼 스타의 등장을 알렸고 이에 힘입어 89승을 거두기는 했으나 지구 3위로 PS 진출에는 실패했다.

끝끝내 2014년 98승 .605로 AL 전체 승률 1위를 달성하지만 디비전에서 3대 0으로 참패한게 현재 에인절스의 마지막 포스트 시즌이다.


에인절스는 현재 보이는 것보다도 더 훨씬 아주 매우 팀이 심각한 수준이다.

앤서니 렌던 문제도 있고, 오타니 쇼헤이는 굳이굳이 안 팔기도 하고 마이크 트라웃을 역대급 장기계약으로 묶은 것 때문에 탱킹도 못하고 윈나우를 표명하지만 그저 윈나우 탱킹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마이크 트라웃이 하필 야구 역사상 최고의 페이스를 향해 달려가는 중인지라 그를 잡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다지만 트라웃의 전성기는 현재 낭비되고 있다.

거기다가 지난 10년간 BA 팜랭킹에서 5번이나 29, 30위를 기록할 정도로 팜이 황폐화 상태이며, 트레이드해서 데려오거나 오타니처럼 국제계약 하거나 하는게 아닌 자기네들이 키워서 만들어낸 제대로 된 선수가 없다는 거다.

지금 에인절스의 주전이 못 나올 때 이를 메꿀 선수들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점이 이 때문이다.

거기다가 마이너 리그의 전략과 코치진들이 무슨 스타인브레너 시절 양키스 감독마냥 자꾸 바뀌고 또 마이너 구장들의 시설도 상상 이상으로 열악해 마이너 리거들의 성장도 더딘데다가 LA 시장 내민 빅마켓이더래도 사온게 다들 푸홀스 렌던 꼴 나니까 악순환이 끊이질 않는다.


마이크 트라웃과 오타니 쇼헤이라는 두 슈퍼 스타가 존재함에도 PS 진출은 번번히 실패했다.

60경기짜리 단축 시즌에는 말린스마저도 포스트 시즌 무대를 밟아봤다.

특히 2022년 시즌은 이 둘이 건강?하게 시즌을 마쳤음에도 팀은 간신히 90패를 면했다.

2023년 시즌은 팀이 오타니 그 자체가 되었긴 하지만 그래도 현재 와일드 카드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하지만 팀이 못하면 오타니를 필요한 곳에 처분하고 두둑한 보상을 받아올 수 있겠지만 에인절스가 현재 경쟁력 있는 팀인지라 이 기세가 시즌 말미까지 유지된다면 오타니가 그때까지 에인절스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그칠 줄 모르고 치솟는 오타니의 몸값을 감수하고 재계약할지, 아무 보상 없이 다른 구단에게 빼앗길 지의 선택지가 남게 되어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난감한 상황이다.

일단은 에두아르도 에스코바, 루카스 지올리토 등을 트레이드해오는 등 에인절스는 달리려는 생각인 것 같다...

이 시기의 주요 선수로는 콜 칼훈, 안드렐톤 시몬스, 에릭 아이바, 알버트 푸홀스, 개럿 리처즈가 있고,

주요 현역 선수들로는 맷 타이스, C.J. 크론, 마이크 무스타커스, 브랜던 드루리, 루이스 렌히포, 앤서니 렌던, 지오 어셸라, 에두아르도 에스코바, 잭 네토, 데이비드 플레처, 테일러 워드, 마이크 트라웃, 헌터 렌프로, 미키 모니악, 랜달 그리칙, 조 아델, 오타니 쇼헤이, 패트릭 산도발, 루카스 지올리토, 리드 디트머스, 호세 수아레즈, 타일러 앤더슨, 그리핀 캐닝, 카를로스 에스테베스, 지미 허겟, 애런 루프, 도미닉 레온, 앤드류 왠츠, 하이메 바리아, 레이날도 로페즈, 제이콥 웹, 호세 키하다, 크리스 데븐스키, 맷 무어가 있다.



홈구장 변천사

현재의 홈구장 에인절 스타디움

'61 리글리 필드(우리가 아는 그 리글리 필드와는 다름)

'62~'65 다저 스타디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공용)

'66~현재 에인절 스타디움 오브 애너하임


신생팀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부각되지 않지만 의외로 에인절 스타디움은 MLB에서 4번째로 오래된 구장이다.

원래 좌측 담장 뒤에 상당히 커다란 에인절스 로고 모양 구조물이 있었고 이 때문에 이 구장의 별명은 The Big A다.

지금 이 구조물은 다른곳에 옮겨뒀고, 이기면 후광에 불이 켜진다.

명명권 때문에 에디슨 인터내셔널 필드 오브 애너하임이 됐을때는 The Big Ed라는 억지 별명이 붙었었으나 팬들과 선수단 사이에서는 쓰이지 않았다.

가운데 담장 뒤에 분수, 특히 돌산 구조물이 있어서 개성있는 구장으로 여겨진다.



라이벌리


에인절스 - 다저스 라이벌리

1999년 두 팀 간의 인터리그에서 발생한 난투극 장면

에인절스와 다저스의 인터리그 고정 매치업.

양키스와 메츠 간의 서브웨이 시리즈처럼 두 팀의 연고지도 고속도로로 맞닿아있기 때문에 프리웨이 시리즈라고 불린다.

에인절스가 창단 초기 다저 스타디움을 공용했을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다저스 팬들은 LA 안에 있지도 않은게 LA 팀을 사칭한다고 비아냥대며, 에인절스 팬들은 우린 그 동네 들어갈 생각 없다며 충돌한다.


통산 정규시즌 전적  LAA 73 - 67 LAD



에인절스 - 매리너스 라이벌리

2022년 두 팀 간의 경기에서 발생한 난투극 장면

매리너스가 창단되고 나서부터 꾸준히 같은 지구에서 경기를 해왔던 사이로, 에인절스의 흑역사인 1995년 타이브레이커 패배의 상대가 되는 팀이다.

그리고 마이크 트라웃이 매리너스 상대로 가장 많은 홈런을 쳐낸 선수가 되기도 하는 등 양팀 서로에게 별로 곱지 않은 감정의 요인이 충분하다.

2022년에도 두 팀 사이의 난투극이 벌어지는 등, 아무래도 같은 지구 소속이라 사이는 당연히 좋지 않다.


주요 경기

1995년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타이브레이커 게임 (매리너스 승리)


통산 정규시즌 전적  LAA 387 - 328 SEA



에인절스 - 레인저스 라이벌리

레인저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마이크 위트

현시점 에인절스의 주적이자 서로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주고받은 특이한 관계로, 이 두 구단 사이에서 활약한 선수들 때문에 적대감이 형성되었다.

놀란 라이언이 이 두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 되었으며, 대런 올리버, C.J. 윌슨, 블라디미르 게레로에 에인절스 팬들의 기분을 망친 조시 해밀턴까지 많다.

1984년 마이크 위트가 레인저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했으며, 레인저스는 1994년 케니 로저스가 에인절스를 상대로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며 복수를 했다.

또한 두 팀 모두 1961년 리그 확장으로 생겨난 아메리칸 리그 첫 신생팀이기도 하다.


통산 정규시즌 전적  LAA 503 - 477 TEX



한국인 선수

최지만이 2016년 시즌에 한 시즌 뛰었다. 최지만의 빅리그 데뷔가 이때 이루어졌다.



영구 결번

11
짐 프레고시
26
진 오트리
29
로드 커류
30
놀란 라이언
50
지미 리즈


에인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인물들

선수로서 헌액
바비 그리치짐 프레고시돈 베일러로드 커류놀란 라이언
브라이언 다우닝척 핀리바비 커눕딘 챈스팀 새먼
마이크 위트개럿 앤더슨블라디미르 게레로2002 월드 시리즈 선수단
구단 관계자로서 헌액
지미 리즈진 오트리


에인절스 소속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인물들

투표로 입성
놀란 라이언
1999년
98.79% (1회)
블라디미르 게레로
2018년
92.89% (2회)


개인 수상 이력

MVP
'79
돈 베일러
'04
블라디미르 게레로
'14, '16, '19
마이크 트라웃
'21
오타니 쇼헤이
사이 영 상
'64
딘 챈스
'05
바톨로 콜론
올해의 감독상
'02, '09
마이크 소시아
올해의 신인상
'93
팀 새먼
'12
마이크 트라웃
'18
오타니 쇼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