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란 시간동안 7번이나 우승하고 그중 4번은 4년 연속으로 우승한 구단이자  찬란한 영광을 뒤로하고 20년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이라는 막장 기록을 쓴 구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대해 알아보자.


약칭, 통칭: ソ(중계 화면), ソフトバンク(주로 팬들이 씀), ホークス(주로 언론들이 씀), 소뱅(한국 한정 약자)

창단: 1938년

일본 시리즈 우승: 11회('59, '64, '99, '03, '14~15, '17~'20)

리그 우승: 19회('51~'53, '55, '59, '61, '64~'66, '73, '99~'20, '03, '10~'11, '14~'15, '17, '20)

홈 구장: 후쿠오카 PayPay 돔

마스코트: 해리 호크, 허니 호크


창단 초창기(1938~1949)

(딱히 쓸만한 구단 사진이 없어 당시 모기업인 난카이 철도에서 꽤 네임드해 보이는 난바역 사진 가져옴)


1938년, 일본의 철도회사 난카이가 난카이군이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후쿠오카에 있는 지금과는 달리 이땐 오사카가 연고지였다.


모기업이 1944년에 킨키라는 철도회사한테 통합되면서 킨키군으로 바뀌고 1946년엔 그레이트링으로 바꿨다. 차륜을 뜻하는 건데, 당시 그레이트링이 영어로는 여성의 뷰 그거를 뜻하는 단어이기도 했고 난카이가 다시 철도사업을 시작하면서 1947년, 난카이 호크스로 바뀌었다.


난카이의 황금기(1950~1973)

당시 모기업이 잘나가면서 영향을 받았는지 구단도 잘 나갔고 23년이나 독재 수준의 장기 집권을 했던 츠루오카 카즈토 아래에서 9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며 1950년대와 60년대 파리그를 주름잡는 강팀이었다. 참고로 23년이  대충 어느정도냐면, 21시즌 기준으로 크보 감독 10명 년차를 다 더해야 저 감독 짬이랑 똑같다. 1955년에 따낸 99승은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정작 이해엔 요미우리에게 3승 4패로 패하면서 일본 시리즈 우승은 놓쳤다.


그러나 1967년부터 모기업 상황에 따라 순위가 자이로드롭마냥 날뛰었다. 위안거리라면 1973년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거.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선수로선 일본 최고의 공격형 포수이자 감독으로선 약팀 소생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하고 2020년 고인이 된 노무라 카츠야, '단일' 일본 시리즈 '4연승' 기록 보유자 스기우라 타다시가 있다.


기나긴 암흑기와 난카이의 종말(1978~1988)

(암흑기의 시작을 알린 유니폼)


모기업 사정에 따라 순위가 오락가락해도 상위권에 들긴 했다. 문제는 1977년 4번타자이자 포수이자 감독인 노무라 카츠야가 떠나고나서 부터다.


1978년부터 6위를 찍더니 이후 성적이 5 6 5 6 5 5 6 6 4 5. 비밀번호를 찍어댔다.


그렇게 막장을 달리다 1988년 난카이가 운영 포기를 선언하자 일본의 유통업체인 다이에가 인수를 했고 오사카를 떠나 후쿠오카로 연고지를 옮겼다. 이때부터 우리가 아는 후쿠오카 팀이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구단주인 카와카츠 덴이 적자에다 기업에 도움도 안 되는 구단을 팔자는 이사회와 노조의 의견을 쌩까고 딴건 몰라도 구단은 못판다고 큰 소릴쳤는데, 이 양반이 1988년 4월에 죽었고 이젠 막을게 없다는 걸 알자 시즌 끝나고 바로 팔아버렸다.


이 시기 주요 선수는 워낙 병신팀인지라 많이 없지만, 몇몇만 알려주자면 우리가 아는 그 장명부의 일본 이름인 후쿠시 히로아키, 장명부와 같은 재일교포이자 테이블세터로서 팀의 암흑기를 지탱한 아라이 카네노리(한국명 박종률, 현재는 귀화 후의 이름은 아라이 히로마사)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다이에(1989~2003)-

다이에가 인수하고 연고지를 후쿠오카로 옮긴데다 800억이나 쏟아부어 지금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돔까지 개장했겠다, 그래서 성적이 좋아졌을까?


그렇게 돈을 쓰고도 좋아지지 않았다. 1997년까지 비밀번호를 연장하며 무려 20자리 비밀번호를 찍어냈다. 이 시기 동안 최하위인 6위를 무려 8번이나 기록했다. 한화가 창단 후 36년이 지나서야 8번 최하위를 했는데, 얘넨 20년만에 이뤘다.


그나마 1993년에 단장으로 영입된 네모토 리쿠오가 파격적인 선수 영입을 90년대 초중반부터 하면서 희망이 보이긴 했다. 1994년 당시 세이부의 대표 5툴 플레이어인 아키야마 코지를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쿠도 기미야스를 FA로 데려오고, 같은 해 메이저리그 최초의 아시아인 포수 조지마 켄지, 1997년, 헤이세이 시대 유일무이 타격 트리플크라운 달성자 마츠나카 노부히코 등의 특급 신인들까지 온갖 방법으로 선수들을 영입해서 가을야구를 위한 빌드업을 쌓긴 했다.


여기에 감독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지도력까지 더해져 신예들을 키웠고 이런 노력들이 모여 1998년, 드디어 비밀번호를 탈출했다.


그리고 1999년, 리그 우승을 하고 당시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등록명 삼손 리)이 있던 주니치를 상대로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란 말이 있던가, 기나긴 암흑기를 버틴 다이에는 꾸준히 포스트시즌이 갔고 특히 2003년, 단일 시즌 최고 팀타율인 .297, 규정타석 3할타자 6명, 20홈런 타자, 100타점 타자 4명에 이들 중 2명은 30홈런 타자를 배출한 일명 다이하드 타선으로 또 다시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했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다이에 호크스였지만, 정작 모기업 '다이에'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이게 왜 그렇냐면, 살짝 긴 얘긴데 그냥 어느정도 짤르고 얘기하겠음. 자세한 건 인터넷에다 일본 버블붕괴 찾아보자. 다이에는 안 나오지만 당시 일본 상황이 얼마나 극악이었는지 잘 나옴. 여기서 다에이는 손해본 케이스 중 하나고.


일본이 금융과 부동산업으로 경제를 어마어마하게 성장시켰고 이걸로 뇌절을 존나한 바람에 부동산값이 폭등 → 자민당 정부가 대처를 개못해서 집값이 폭락하고 불량 채권도 제대로 회수 못함 → 이러는 와중에 아시아에 IMF가 들이닥치면서 해외에 투자한 일본 기업들이 죄다 피를 봄 → 피를 본 일본 기업들이 줄줄히 도산


이 과정에서 소매업으로 먹고살던 다이에가 피해를 보며 파산해버리니 구단 운영을 포기했다.


거기에 킨테츠도 망해가는 사정이라 오릭스랑 합병 중이었고 이왕 이렇게 된거 요미우리 구단주인 와타나베 츠네오와 일부 보수적인 구단주들이 롯데랑 합병시키고 단일리그 10구단 체제로 가려했다.


여기서 선수협이 반발하고 라쿠텐이 창단되면서 단일리그 10구단 체제는 무산됐다. 자세한 건 오릭스쪽에서 보면 된다.


어쨌든 다이에 호크스는 일본의 통신사인 소프트뱅크에 인수되며 막을 내렸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훗날 소뱅 감독이 되는 아키야마 코지와 쿠도 기미야스, 롯데 감독이 되는 이구치 타다히토, 빠따도 대단했지만 주먹도 대단했던 홀리오 즐레타, 아까 말한 조지마 켄지 등이 있다.


소프트뱅크 시대와 가을호구(2004~2012)

(2006 플레이오프 최종전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하고 주저앉은 사이토 가즈미)


모기업이 흔들리긴 해도 전력 자체가 흔들린 건 아니였기에 성적 자체는 잘 나오긴 했다. 다만 기껏 정규시즌 1등을 해놓고 플레이오프에서 매번 개털리니 우승을 못했다. 2008년 잠깐 최하위한 거 빼면 꾸준히 참가했지만 그때마다 개털렸다.


플레이오프 제도는 결과에 따라 순위가 변동하는 크보랑 유사하지만 1위팀이 2위팀하고 5게임차날 땐 1승 어드밴티지를 주는 차이점이 있다.


2004년하고 2005년 딱 4.5게임차라 어드밴티지를 못받고 롯데한테 털려서 2006년부터 게임차에 관계없이 그냥 어드밴티지를 주기로 제정됐지만 정작 니혼햄이 1등해버리며 어드밴티지를 갖지 못한 채 이번엔 도전자 입장에서 털렸다. 그거랑 별개로 플레이어프는 2006년을 끝으로 폐지되고 2007년부터 클라이막스 시리즈로 대체됨과 더불어 결과에 따라 순위가 변동되지 않음.


2010년 드디어 정규시즌 1등을 달성해 3위인 롯데와 플레이오프를 했지만 어드밴티지 포함 3승 1패로 앞서가다 3연패를 당하는 등 가을호구의 절정을 선보이다 2011년에서야 가을호구짓을 그만두고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정작 이 해 아시아시리즈 땐 삼성한테 털렸지만 뭐 어떤가 간만에 우승했으면 됐지.


2012년과 13년에 니혼햄에게 가을야구 패배하고 다음 해 4등으로 내려앉은 것 빼면 딱히 별 일없었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앞선 짤의 주인공이자 지지않는 에이스 사이토 가즈미, 스기우치 토시야, 우치카와 세이지, 호소카와 토오루, 셋츠 타다시 등이 있다.


왕조를 넘어선 제국, 그리고 흥망성쇠(2014년~현재)

(파리그 최초 4년 연속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한 소뱅)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소뱅은 2016년 니혼햄에게 딱 한번 발목을 잡힌 것 빼고는 전부 일본 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사실상 왕조를 넘어서 제국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냥 많이 우승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2011년 주니치를 시작으로 2014년 한신, 2015년 야쿠르트, 2017년 요코하마, 2018년 히로시마, 2019~2020년 요미우리를 상대로 승리했다. 즉, 9년만에 상대 리그 올킬을 달성했다.


(2005년 33-4에 이은 2020년의 26-4)


그러나 너무 달려와서 지쳤는지, 2021년 4위로 끝내며 가을야구에서 탈락, 2022년엔 최종전 한 경기만 이겨도 우승인데 2경기를 모두 지며 눈앞에 놓인 우승을 놓쳤다. 클라이막스 파이널스테이지에서 오릭스한테 졌는데, 가을호구가 될지 아니면 그저 일시적 부진일지는 2023년을 해봐야 알 듯.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센가 코다이, 야나기타 유키, 이대호, 우치카와 세이치, 나카무라 아키라, 카이 타쿠야, 쿠리하라 료야, 마키하라 타이세이, 알프레도 데스파이네, 데니스 사파네, 유리스벨 그라시알, 마츠다 노부히로, 슈토 우쿄, 리반 모이넬로, 릭 벤덴헐크 등이 있다.


홈 구장

후쿠오카 페이페이 돔

현 일본프로야구 구단 홈 구장 중 유일하게 구단이 소유 중이다. 나머지 구단은 시의 소유라서 사용료를 내야된다.


도쿄돔을 뺀 일본의 돔 구장이 그렇듯 투수친화 구장이다. 그나마 펜스를 앞댕긴 덕에 어느정도 완화됐다.


라이벌리


세이부가 있긴한데, 딱히 적절한 짤을 못찾음.

예나 지금이나 세이부와 우승경쟁을 해온 덕에 상당히 치열했다. 근데 요즘은 가을만 올라가면 소뱅이 세이부를 일방적으로 패는 상황이라 이것도 옛말인 듯.


워낙 절묘하게 찍혀서 더 가져옴


가을야구 한정으론 니혼햄이 있다. 니혼햄이 강팀으로서 일어선 2000년대 중반하고 시기가 겹쳐서 자주 붙었다. 2006년을 시작으로 2012, 2014, 2016, 2018 등 매번 재밌게 승부했다. 다만 니혼햄이 2019년 이후로 계속 하위권에 머물러서 언제 다시 만날지는 미지수.


한국인 선수

소뱅 최초의 한국인 선수를 이범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은 김무영이다. 그렇게 성적이 좋진 않았고 2015년을 끝으로 방출되서 인지도가 적은 비운의 선수다.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해 규정(굳이 대학 졸업 안 해도 고등학교 졸업만 해도 일본인으로 간주됨)상으론 일본인 선수와 같은 자격이다.


2010년에 입단한 이범호가 있다.

타격도 타격인데 수비가 워낙 극악이라 팀에서 금새 푸대접받고 1년만에 크보로 돌아왔다. 의외로 당시 세이부의 에이스였던 와쿠이 히데아키의 노히트노런을 저지한 전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이대호가 있다.

2014년, 2015년 동안 몸 담그면서 팀의 2연패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특히 2015년 가을야구 때 롯데와 야쿠르트를 패며 일본 시리즈 MVP를 수상했다. 야나기타가 삽퍼고 우치카와가 부상 때문에 결장할 때 이대호가 캐리한게 킬포.


그외

구단주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가 어마어마한 야빠다. 끊임없는 지원과 열정적인 응원은 물론이고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선수단에게 이기면 페라리 쏜다고 말한 일화가 있을 정도로 상당한 야빠다. 정작 그 플레이오프에선 롯데한테 개털려 페라리를 못사줬다.


롤 프로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게이밍을 운영 중이다. 일본 롤 리그인 LJL에 소속돼 있다. 다만 성적은 야구단처럼 잘 나오진 않는 중. 그나마 최근들어 괜찮긴 한데 과거엔 투자 실패설도 나왔을 정도였다.


한화에서 쫓겨난 김성근이 2018년부터 은퇴 전까지 있었던 팀이 소프트뱅크다. 2021년까지는 코치 카운슬러란 직책으로 3군 코치에게 조언 건내는 정도였으나 2022년엔 감독부 특별 어드바이저로 직책이 변경되고 1군 코칭스테프에 합류, 1년 동안 있다가 은퇴했다.


다음은 세이부.

워낙 규모가 큰 팀이라 오릭스보다 분량이 많네.

세이부까지 쓰면 쉬어가는 타임으로 모아보기 만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