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자체는 안습하나 가을야구에 올라가면 존나 쌔지는 구단이자 타자 친화적인 홈 구장이라 타자는 웃고 투수는 맞아죽는 게 일상이었지만 요즘은 둘다 웃는 중인 구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대해 알아보자.


약칭, 통칭: 東京ヤクルト, ヤクルト, スワローズ,야쿠르트, 야쿨(한국 내에서 약자. 대충 이렇게 말해도 다들 알아듣는다.)

창단:1950년

일본 시리즈 우승: 6회('78, '93, '95, '97, '01, '21)

리그 우승: 9회('78, '92~'93, '95, '97, '01, '15, '21~'22)

홈 구장: 메이지진구 구장

마스코트: 츠바쿠로(NPB 마스코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마스코트들의 개그 대다수는 얘 몫.), 츠바미


김경홍 스왈로즈(1950~1964)

(400승 투수이자 천황 카네다 마사이치. 통산 승리, 탈삼진, 이닝, 완투 1위 기록 보유자다. 비록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스스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던 재일교포였다.)


1950년, 일본국유철도가 노사단결을 목적으로 창단됐지만 정작 프로 출신은 거의 없을 정도로 안습했던 팀이었다. 스왈로즈란 이름은 당시 도쿄와 오사카를 횡단하는 열차인 츠바메(일본어로 제비)에서 따왔다.


창단 멤버로 카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을 빼면 도움되는 인원이 없었고 그 결과 김경홍 원맨팀이란 인식이 강했다. 류현진이 한창 날아다닐 한화도 최소한 김태균, 이범호 등 조금이나마 뒷바라지 해주던 타자들이 몇몇있었지만 얘넨 그런 타자도 거의 없었다.


이는 육성이 워낙 ㅈ망한 것도 있는데 무엇보다도 국영기업인 일본국철 사정이 워낙 안 좋았고 선수 영입이 원할하지 못했다. 민간 지역철도 회사한테도 후달리는 병신기업이 어떻게 돈이 많겠는가?


아무튼 1961년 A클래스에 잠깐 들어간 것 빼면은 성적이 나빴고 1964년을 끝으로 일본의 미디어회사 후지산케이(지상파 방속국 후지TV 모기업.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방영회사다.)에게 매각됐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천황 카네다 마사이치(한국명 김경홍)이 있다.


모기업이 바뀌면 뭐하냐(1965~1969)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썼던 산케이 아톰즈 유니폼.)


후지산케이에게 구단을 넘겨줬지만 화장한다고 예뻐지지 않듯이 구단 자체가 개막장이라서 딱히 성적이 나아지진 않았다. 스왈로즈 쓰다가 아톰즈로 바뀌었는데, 아톰즈라는 이름은 후지TV가 방영하던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철완아톰에서 따왔다. 한국에선 우주소년 아톰으로 방영됐다.


후지산케이도 그렇게 주머니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얼마 안 가 1969년, 야쿠르트와 공동운영을 했고 1년 뒤 야쿠르트에게 구단을 넘겨줬다.


이 시기도 워낙 열악해서 주요 선수가 많이 없지만 굳이 고르자면 국철 시절 최후의 선수인 후쿠토미 쿠니오, 뛰어난 타격에 비해 수비가 극악이던 토요다 야스미츠가 있다.


참는 자에겐 복이 올지도(1970~1980)

(스왈로즈 한 팀에서만 선수와 코치생활을 했고 선수 시절 리드오프로 맹활약한 와카마츠 츠토무)


야쿠르트에게 인수되고도 한동안 성적이 나빴지만 1978년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의 관리 야구로 드디어 창단 첫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아 그리고 아톰즈는 1974년까지만 쓰고 사용권이 만료돼 다시 스왈로즈라는 이름을 썼다.


근데 히로오카랑 구단간의 사이가 안 좋아서 우승감독인데도 금방 짤렸고 다음해 바로 꼴등으로 내려앉았다. 그나마 1980년 2위에 올라서며 가능성이 보이긴 했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와카마츠 츠토무, 에이스였던 마츠오카 히로무, 찰리 매뉴얼, 오스기 카츠오, 스기우라 토오루. 특히 찰리와 스기우라, 오스기는 클린업트리어였다.


비밀번호 시작(1981~1991)

(팀이 암흑기에 빠질 때 지탱해준 이케야마 타카히로. 호쾌한 스윙으로 양산하는 홈런과 삼진이 일품이라 ブンブン丸, 붕붕마루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1980년대 기존에 있던 우승멤버들이 싹 다 은퇴하자마자 이때부터 팀이 다시 막장가도를 걸었다.


일단 1980년대는 1981년부터 1989년까지 3위 위로는 못올라왔고 1990년도 5위에 머물르며 10자리 비밀번호를 썼다.


짧았던 황금기에비해 너무 길었던 암흑기였기에 전반적인 쇄신이 필요했고, 이런 상황속에서 약팀들 소생을 기가 막히게 잘해줬던 노무라 카츠야를 1990년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러나 리빌딩이란 과정이 하루 아침에 성과가 나타나진 않기에 5위에 그쳤다. 그리고 그 다음 해부터 스왈로즈의 신화가 시작됐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이케야마 타카히로, 히로사와 카츠미, 밥 호너 등이 있다.


홀수 스왈로즈, 그리고 황금기(1992~2001)

(일본 프로야구 포수계 GOAT 후루타 아츠야. 단일리그 통합을 저지해내는 데 결정적인 활약을 한 인물로, 먼 훗날 감독까지 맡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짤렸다. 이후로 해설로만 활동 중.)


노무라 감독의 육성 능력과 더불어 지금의 데이터야구처럼 상대 선수의 모든 것을 분석하는 ID야구를 바탕으로 스왈로즈는 황금기를 맞이했다.


1991년 3위로 올라서며 비밀번호 탈출 이후 1992년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993년부터 1997년까지 2010년대 초의 MLB의 짝수 자이언츠 신화처럼 홀수해 우승 신화를 만들었다. 한 가지 웃긴 건 우승하고 나서는 바로 4위로 떨어졌다. 이걸 1998년까지 반복하고 1999년 다시 4위하면서 신화는 종료.


이게 왜 이렇냐면 노무라 감독의 노장수집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타 팀 퇴물 선수 영입 → 예토전생 후 1~2년 버닝 → 다시 퇴물되니 방출 이걸 반복하다보니 저런 롤로코스터가 가능했던 것이다.


2000년에도 4위를 하면서 다시 암흑기 가나 싶었지만 2001년 역전끝내기 만루홈런으로 분위기가 오른 킨테츠를 4승 1패로 이기면서 다시 한 번 일본 시리즈 우승을 이뤄냈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후루타 아츠야, 미스터제로 타카츠 신고(지금 감독인 타카츠 맞다), 개쩌는 고속 슬라이더를 가졌지만 부상으로 얼마 못간 비운의 에이스 이토 토모히로, 좌우완 에이스로 활약한 이시이 카즈히사, 카와사키 켄지로 등이 있다.


언제나 중박(2002~2012)

(야마다 테츠토 이전 스왈로즈 최고의 스타 아오키 노리치카. 이치로도 못해본 200안타 시즌 2번 달성이란 진기록을 갖고 있다.)


2001년 우승 이후론 늘 하위권이던 요코하마, 히로시마가 바닥을 깔아주고 1, 2등을 다투던 요미우리와 주니치 사이 중위권 경쟁을 한신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즌 전 평가는 늘 중박은 친다였고 그 평가에 맞게 매번 중박을 치긴 했다. 가끔 그게 엇나가 2007년과 2008년 꼴등, 5등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해 1등빼면 다 경험해본 시기였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2대 미스터제로 임창용, 아오키 노리치카, LG팬들에겐 페느님 로베르토 페타지니, 최초의 우타자 200안타 알렉스 라미레즈, 좌우완 에이스 다테야마 쇼헤이와 이시카와 마사노리, 아이카와 료지 등이 있다.


1년 잘하고 2년 못하고(2013~2020)

(뛰어난 실력, 훤칠한 외모덕에 지금도 스왈로즈 최고의 인기스타인 야마다 테츠토.)


다만 2013년부터 롤코를 심하게 탔다. 이 시기의 하이라이트로는 2015년, 2년 연속 꼴찌를 견뎌내며 만든 14년만의 리그 우승과 그거하고 2년 동안 또 ㅈ망한 거. 특히 2017년은 역대급 JOAT 시즌으로, 구단 최초 두 자릿수 연패 두번, 구단 최다 패인 97패 등 온갖 부정적인 기록들을 갈아치웠다.


이래놓고 2018년 교류전 우승으로 추진력 얻고 2위에 올랐는데, 가을야구에선 2패로 요미우리에게 따였다. 이때 스가노 토모유키한테 포시 최초의 노히트노런을 대줬다.


이후는 다 예상했듯 2년 연속으로 최하위를 보내며 존나게 우여곡절을 겪은 시기였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야마다 테츠토, 단신 에이스 오가와 야스히로, 나카무라 유헤이, 니시우라 나오미치, 사카구치 토모타카, 타카이 유헤이(등록명 유헤이), 이시카와 마사노리, 토니 버넷, 이시야마 타이치, 재일교포 우에다 츠요시(한국명 주강사), 블라디미르 발렌틴, 카와바타 신고, 하타케야마 카즈히로 등이 있다.


또 한번의 황금기(2021~현재)

(스왈로즈의 미래를 책임질 투타 영건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오쿠가와 야스노부. 스왈로즈 팬이거나 스왈로즈로 입문한다면 이 둘의 활약을 기대하자.)


이런 담금질을 거치고나서 2021년 야쿠르트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란을 이뤄내며 6년만에 리그 우승과 20년만의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이 해 모든 전문가들과 야구 유튜버들은 야쿠르트가 하위권에 안착할 것을 예상했으나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당당히 우승을 이뤄냈다.


이때부터 야쿠르트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강팀이자 우승후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새로운 프차 무라카미 무네타카, 오쿠가와 야스노부, 타카하시 케이지, 이번 WBC 우승포수 나카무라 유헤이, 주장 야마다 테츠토, 야마사키 코타로, 카와바타 신고, 시오미 야스타카, 단일 시즌 최다 홀드 기록 보유자 시미즈 노보루, 스캇 맥거프, 일본판 딸상사 타구치 카즈토 등이 있다.

홈 구장

메이지진구 야구장

현 NPB 홈 구장 중 고시엔에 이은 두 번째로 오래된 구장이며, 고교야구엔 고시엔이 있다면 대학야구엔 메이지진구가 있다고 볼만큼 학생야구, 특히 대학야구하면 가장 떠오르는 곳이다.

그거랑 별개로 한국의 문학 구장처럼 타자친화 구장인지라 타자들의 버프를 많이 받고 투수들은 자주 얻어맞는다. 특히 야마다 얜 진구빨 소리 듣는 중.


라이벌리


요미우리와 도쿄 시리즈를 이루고 있다.

같은 연고지라는 명분덕에 라이벌리가 형성됐다.

이 날만 되면 야쿠르트 팬들은 7회에 도쿄온도를 부를 때 간주하는 구간에 쿠타바레 요미우리(뒈져라 요미우리)라는 추임새를 섞어 불렀으나 요즘은 자재 중. 크보의 LG-두산, NC-롯데랑은 다르게 두 팬덤간 사이는 의외로 괜찮은 편.


한국인 선수(교포는 최대한 배제)

임창용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뛰었다.

야쿠르트는 아무 기대없이 로또 긁는 셈으로 30만달러 주고 데려왔는데, 어마어마한 가성비를 선보이며 스왈로즈의 수호신으로 맹활약했다. 이후 시카고 컵스로 이적.


이혜천이 2009년부터 2010년까지 뛰었다.

크보산 로또를 또 긁은 케이스고 그럭저럭 중박은 쳤다. 주니치와의 경기 도중 모리노 마사히코를 데드볼로 보내고 사과하라 요구한 모리노에게 '뭐 씨발놈아'라 외치며 벤클을 일으킨 일화가 유명하다.


하재훈이 2016년 딱 1년 뛰었다.

일본 독립리그 출신 용병이라 기대치도 없었고 성적이 좋지도 않아서 1년만에 바로 방출. 이때 등록명이 한자 河載勲, 가타가나 ハ・ジェフン대신 이름만 가타가나로 ジェフン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재일교포는 배제하려 했지만 번외로 한국 국적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우에다 츠요시(한국명 주강사)가 2008년부터 2020년까지 뛰었다. 빠른 발과 강한 어깨가 장점으로, 대주자, 대수비 등 1.5군 준주전 멤버로 13년동안 있었다. 방출 후 유튜버로 활동 중.


그 외

7회에 부르는 응원가 도쿄온도가 상당히 유명하다. 간주 부분마다 쿠타바레 요미우리(뒈져버려 요미우리)를 열창하는데, 야쿠르트 팬들이 좀 저급하니 자제하는 편이지만 그 외 팬들은 모두 열창한다. 특히 한신 팬들은 이 노래만 들으면 본능적으로 쿠타바레 요미우리를 외친다.


마스코트인 츠바쿠로가 존나 유명하다. 온갖 웃긴 드립이나 개그 등을 선보여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그리고 마스코트 주제에 FA를 신청한 경력이 있다. 야쿠르트 말로는 팀의 핵심 전력이라 한다.


다음은 전직 동네북 요코하마로.

5555자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