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그러니까 일본에서 2번째로 큰 대도시권 지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자 인기 하나만큼은 전국구 인기구단 요미우리와 자웅을 겨루지만 현실은 일본 최고의 개그를 선사하는 개그 아니 야구 구단, 한신 타이거스에 대해 알아보자.


약칭, 통칭: 阪神, 한신, タイガース(즈 아니다 스다.), 虎(토라, 일본어로 호랑이라는 뜻.)

창단: 1935년

일본 시리즈 우승: 1회(1985)

리그 우승: 5회('62, '64, '85, '03, '05)

홈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교세라 돔 오사카(일본 고교야구 전국 대회기간 한정.)

마스코트: 토라키, 키타, 럭키


창단 초기(1935~1961)

(한신 초대 프렌차이즈 스타 후자와라 후미오. 후지와라의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이다.)


창단초기 오사카 타이거스란 이름으로 창단됐으나 얼마 안 가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때 반미감정이 한창 심할 때라 한신군으로 구단명을 바꿨다.


태평양 전쟁 패배 후부터는 다시 오사카 타이거스를 썼고 1961년, 지금의 한신 타이거스로 이름을 바꿨다.


이름과 별개로 성적은 꽤 잘나갔는데, 우승을 못해서 그렇지 양대리그 분리 후인 1950년부터 1961년까지 B클래스로 내려간 적이 단 2번('50, '61) 뿐이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후지와라 후미오, 정밀기계 코야마 마사이치, 카네다 마사야스, 한신의 영원한 23번 요시다 요시오 등이 있다.


요미우리, 주니치, 한신 삼파전(1962~1984)

(한신의 영원한 11번이자 세리그 통산 ERA 1위 무라야마 미노루. 온몸을 내던지는듯한 폭발적인 투구폼으로 체코의 육상선수 에밀 자토펙의 이름을 딴 자토펙 투수란 별명을 가졌다.)


1962년 리그 첫 우승을 경험한 한신은 1964년 다시 한 번 우승을 이뤄냈다. 이후 통칭 V9이라 불리는 1965년부터 1973년까지 9년 연속 우승한 요미우리의 같은 리그내 대항마같은 포지션이었고 이때동안 1971년을 빼면 매번 2~3위에 들었다.


그리고 일본을 주름잡던 요미우리의 독주가 끝나더니 이 팀의 성적이 갑자기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요미우리의 독제가 끝난 1974년부터 1984년까지 1975~76, 1981~82년을 빼면 B클라스에만 머물렀고, 특히 1978년엔 창단 첫 최하위라는 굴욕을 맛봤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나카무라 카츠히로, 한신 원클럽맨 최초 2000안타 기록 보유자 후지타 타이라, 홈런 아티스트 타부치 코이치, 우승청부사 에나츠 유타카, 감독이던 카네다 마사야스가 폭언을하자 개팼던 곤도 마사토시 등이 있다.


우주의 기운(1985~1993)

(한신팬들의 영원한 딸감, 백스크린 3연발. 이날의 백투백투백 홈런 이후 바스는 1할따리 폐급타자에서 한신팬들의 신같은 존재로 각성했다.)


리그 우승은 단 2번, 일본 시리즈 우승은 아예 없는 이 팀이 딱 1번 모든 if가 맞아 떨어진 즉, 우주의 기운을 몰빵받은 시즌이 있었다. 그때가 바로 1985년.


타격 5관왕이자 54홈런 랜디 바스, 40홈런 카케후 마사유키, 35홈런 오카다 아키노부가 클린업을 이루고 리드오프 주제에 34홈런을 친 마유미 아키노부, 이들에게 밀렸을 뿐 나름의 펀치력을 가진 사노 노리요시, 키도 카츠히코, 7홈런인데 타점은 53개인 극한의 클러치 능력을 자랑한 히라타 카츠오 등 어마어마한 핵타선을 무기로 가진 한신은


세이부를 4승 2패로 누르고 창단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날 오사카는 한신 선수와 닮은 사람들을 도톤보리 강에다 던져버릴 정도로 난리가 났고 우승에 너무 지나치게 뽕이찬 한신 팬들은 바스와 그나마 닮은 KFC의 샌더스 대령(KFC 로고에 있는 그 어르신.) 동상을 던져버리는 미친짓을 저질렀다.


이후 샌더스 대령은 빡쳤는지 지금도 이어지는 저주를 내리고 말았다.


1986년 3위를 거둔 한신은 1987년부터 1991년까지 B클래스에 머물렀고 1992년 요미우리와 공동 2위를 끝으로 나락에 빠졌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バース様(바스님) 랜디 바스, 현재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 카케후 마사유키, 마유미 아키노부, 히라타 카츠오, 키도 카츠히코, 나가사키 케이이치, 리치 게일 등이 있다.


병신 타이거스(1993~2002)

(90~00년대 뛰어난 외야수비력과 더 뛰어난 팬서비스로 전국구 인기를 누렸던 신조 츠요시. 현재는 니혼햄 감독으로 재직 중.)


사실 나락으로 빠지기 직전, 샌더스 대령의 저주로 조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3년부터 한신의 막장가도가 시작됐다.


이때 성적을 요약해주자면 4-4-6-6-5-6-6-6-6-4.

1997년 5등으로 끝나 망정이지 이때도 꼴등했으면 한신은 7년 연속 꼴등이라는 금자탑을 쌓을 뻔했다. 


이 병신 시절의 주요 원인은 FA 영입 실패와 외노자 농사 대실패, 성공한 외노자 못잡고 공백도 못메꿨고, 주축 선수들의 에이징 커브와 부상 등 온갖 안 좋은 if들이 다 터져나왔고 그 결과 비밀번호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호시노 센이치가 감독으로 올라선 2002년, 6위에서 4위까지 올라가며 어느정도 가능성을 있었던 게 위안거리.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신조 츠요시, 와다 유타카, 야기 히로시, 토마스 오말리, 최악의 먹튀 마이크 크린웰, 재일교포 히야마 신지로(한국명 황진환.), 최초의 무홈런 신인왕 쿠지 테루요시, 야노 아키히로 등이 있다.


흑역사 제조기(2003~2015)

(한신 레전드 카네모토 토모아키. 일본 최다인 1492경기 풀이닝 출장 기록 보유자다. 이닝으로 환산하면 '최소' 13428이닝. 연장전까지 포함하면 훨씬 더 많다.)


아깝게 4등한 게 아쉬웠는지 FA로 카네모토 토모아키(당시 한국명 김박성. 일본 귀화 후 김지헌.)를 영입한 한신은 카네모토를 필두로 암흑기 시절 모아둔 유망주들의 성장, 나름대로 성공한 외노자 농사덕에 2003년 리그 우승과 함께 비밀번호 생활을 청산했다.


문제는 이때부터 뭔 자신감이 생겼는지 겁없이 설레발을 자주 쳤다.


특히 2005년, 제프 윌리엄스, 후지카와 큐지, 쿠보타 토모유키의 앞글자를 딴 JFK 불펜진과 도루왕 아카호시 노리히로, 147타점 이마오카 마코토, 세리그 MVP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 '전력이 존나 쌔졌으니까 우승각이다!'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당시 오사카 지역 언론들과 팬들이 설레발을 쳤지만


보기전 한신팬이라면 PTSD 주의


롯데에게 33-4로 털리며 지금도 회자되는 밈으로 박제됐다. 이때 이마에 토시아키와 이승엽이 한신을 피떡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좀 흘러 2008년, 리그 우승각이라고 역대급으로 설레발을 쳤다.

제목을 해석하자면

08 세리그 우승 직전기념호 V(우승)이라카이! 타이거스


이외에 일부 헤드라인들을 해석하자면

행가래 개봉박두

너무 강해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당시 감독)오카다 아키노부, 명장으로 가는 길


한국의 타어강보다 한 술 더 뜬 설레발을 친 한신은 이승엽의 요미우리에게 리그 우승을 따이고, 클라이맥스 땐 주니치에게 연타석으로 따였다.


이런 대재앙이 지나가고 2014년, 이땐 워낙 데여서 클라이막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때 요미우리를 이기고 일본시리즈에 올라갔음에도 다들 어느정도 자중하는 분위기이긴 했다. 근데 문제는


( 2014년 일본시리즈 5차전 패배후 빡돈 한신아재들)


니시오카 츠요시가 끝내기 3피트 위반이라는 막장드라마에서도 안 나올 짓을 저질러버렸고 그렇게 한신의 우승은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했다.


아무튼 설레발과 헛짓거리로 온갖 밈과 흑역사를 만들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단일시즌 우타자 최다 안타 맷 머튼, 랜디 메신저, 봄쿠도메 후쿠도메 코스케, 수호신 오승환, 소뱅 레전드 니시오카 츠요시, 토리타니 타카시, 마에다 야마토(등록명 야마토), 노우미 아츠시, 후지나미 신타로, 마우로 고메즈, 아라이 타카히로, 우메노 류타로 등이 있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는 법(2016~현재)

(한신의 34대 감독 야노 아키히로. 선수로선 뛰어났고 감독으로선 정규시즌 운영을 괜찮게 했지만, 가을야구에선 부진이 심했다.)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 있다던가, 한신은 예나지금이나 전통적으로 이런 경향이 꽤 심하게 나타났다.


옛날 사례로는 카네다 마사야스, 무라야마 미노루 등이 있고 현재 가장 가까운 사례로는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있다. 시기가 시기이니 카네모토쪽을 한번 보자.


일단 카네모토는 3년간 4-3-6을 찍었다.


지도자 경력이 일천없는 양반이어도 저 기간동안 후지나미 벌투 논란, 실책으로 겜 터진 게 ㅈ같다는 이유로 남들 보는 앞에서 의자 걷어차기, 올드스쿨식 망언 등 아무리 팀 레전드여도 실드치기 어려운 행적으로 인해 3년 보장 기간이 끝나자마자 경질됐다.


이후로 야노 아키히로가 감독 자리에 올랐고 성적은 3-2-2-3. 강팀의 반열에 올랐으나 일본 시리즈 진출엔 실패하고 2022년을 끝으로 물러나겠다는 말대로 스스로 물러났다. 다음 감독은 오카다 아키노부. 14년만에 복직이다.


이 시기 주요 선수로는 이토이 요시오, 후지나미 신타로, 우메노 류타로, 이와자키 스구루, 치카모코 코지, 타카야마 슌, 시마다 카이리, 제프리 마르테, 사토 테루아키, 아오야기 코요, 니시 유키, 니시 준야, 아키야마 타쿠미, 이토 마사시, 나카노 타쿠무, 키나미 세이야, 오야마 유스케, 호조 후미야, 이토하라 켄토 등이 있다.


홈 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

일본 대학야구엔 메이지진구가 있다면 고교야구는 고시엔이 있다. 매년 2번씩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통칭 고시엔.)가 이곳에서 치뤄진다.

내야 흙이 상당히 푹신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그런지는 무슨 원래 수비 못하는 놈이 수비하기 어려운 곳에서 수비하니 실책이 많다.


라이벌리

요미우리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일명 전통의 일전이라 불리며 간사이 vs 간토 지역감정까지 더해져 일본 최고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는 중. 그래서 이때만큼은 양쪽 팬들이 다른 팀들과의 대결보다 훨씬 민감하다.


주요장면

1985년 4월 17일 백스크린 3연발

1999년 6월 12일 고의사구 끝내기 안타

2010년, 2014년 CS

등이 있다.


한국인 선수(교포는 배제)

(타격 연습하는 오승환. 세리그는 지타가 없어 투수가 타석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오승환이 2014년부터 2015년까지 2년간 뛰었다. 2년간 80세이브를 올리며 2년 연속 구원왕 자리에 올랐으나 이때 도박사건이 터져 쫓겨나듯 메이저로 진출했다.


그외

전통적으로 팬들이 강성인 걸로 유명하다. 한국의 대구아재, 부산아재 등 강성팬들도 한 수접을 막장력은 현재 진행중. 참고로 저 움짤은 어느 한신팬이 시비거는 요코하마팬한테 빡쳐서 자기 자식을 무기삼아 휘둘렀다.


여기서부터 병맛주의










한국으로 수출되는 일본야구 병맛짤 중 대다수가 얘네 작품이다.


다음은 J-악의 제국 요미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