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재에 싹이 텄다. 펼친 부채를 한 손으로 접으면서 그는 입춘으로 부터 보름이 지났음을 떠올렸다.

 우수였다.

 봄의 초입은 이제야 들어섰음에라.


"서리가 녹았으니, 겨울도 이제 막바지로구나."


 대답은 없었고, 임소병은 창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

 녹은 눈 속에서 봄이 움트는 시기였다. 다람쥐가 잊어 싹이 튼 상수리 열매. 그 위를 작은 동물들이 쏘다니고, 먼 곳에서 불어온 바람은 빈 말로도 겨울에 비해 따뜻하지 않다고 할 수 없었다.

 이 해 겨울은 어떠했던가? 산의 겨울은 혹독한 것이 당연하나, 이번 해는 유난히 심했던 것이 떠오른다. 북해에서 불어온 바람에 얼어죽은 나무가 산채 주변에 몇 그루 있었다. 동사한 녹림도가 없는 것이 그저 천운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허나 혹독하기는 마찬가지라 따지고 본다면 얼어죽은 놈들이 없는 것은 얼어죽을 놈들은 그 전에 싸우다 죽었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만인방과의 충돌이 여럿 있었고, 겨울 산은 흰 색도 녹색도 아닌 적색으로 물들어 녹림이 기거한다기에는 어색할 지경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따지고 본 다 한들, 얼어죽은 놈들이 없는 것은 상당한 천운이었다. 산에 사는 놈들이 산에서 얼어죽는 것이야 우스운 촌극 같은 일이고, 때로는 마을에서 살았다면 몇은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 것이 몇 년 만의 일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도 산채들을 돌아다니며 동사한 녹림도를 처음 본 날 이후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없을 것이다.


"에잉, 쯧. 거 조심 좀 하지."


 새싹을 밟은 녹림도를 보면서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병서생인 그가 성질을 어떻게 부리겠는 가? 두어 번 투덜거린 뒤, 그는 함에서 종이와 백묵을 꺼내 탁자에 펼쳤다. 손 끝에 종이가 스쳐감에 따라서 웃음 따위가 지워지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봄 자체는 너그러운 계절이다. 구음절맥을 앓는 그조차도 한결 살만해졌으니 구구절절 붙일 말도 없다. 문제는 봄이 공평하다는 점에서 있다.

 들에서 개와 뛰노는 아이. 밭을 갈 채비를 하는 농부. 산으로 유량다니며 시를 쓰는 시인. 업무를 처리하기에 바쁜 관리. 이들의 봄은 사파 나부랭이인 녹림도의 봄과 같을 것이 분명하고, 애석하게도 만인방이나 수적들, 하오문의 봄과도 같을 것이 당연하다.

 봄은 살아있는 것들이 많은 동시에 죽는 것들 또한 많은 계절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준비할 것이 많다. 만인방의 책사도 그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라는 예상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묵을 간 뒤, 한참을 써내려가던 그는 붓을 놓았다. 바람이 목을 간질이는 듯 싶었고, 그는 낮이 좀 더 길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 밖을 내다봄에 따라 지끈거리는 머리는 나아지는 듯, 아닌 듯 싶었다. 봄은 봄이구나 따위의 실 없는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결국에 그는 바쁜 녹림도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봄의 초입에 들어섰던 날의 일이다.



+아슬아슬하게 세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