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종교학 뇌피셜 모음


"색채"의 정체를 알아보자 - 색채는 지성소의 유일신이고, 여기엔 또 하나의 비밀이 더 숨겨져 있다 


태양신의 부활을 위한 항해, <암두아트의 서>와 네페르템에 대하여

수영복 노노미의 "노란 장미" 는 네프티스의 죄를 의미하는가?

로스트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유메 선배의 유산...인데 이게 왜 총학생회 소유일까? 

은행털어도 안 들키는 이유는 "가면" 이며, 이것이 향도자의 비밀이다


치나츠 메모리얼로 알아보는 <파우스트>의 작가 괴테의 인생관

모에 메모리얼로 알아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가 니체의 인생관

하루나와 1.5주년 애니를 통해 알아보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20세기의 혼란 

후우카의 모티브, 아브락사스로 알아보는 아시리아 신화와 <데미안>의 작가 헤세의 인생관


세계 최초의 서사시와 작전명: 니쉬르

최종편 분석 1편 - 색채의 정체는 유메 선배이며, 루프는 시로코/아리스/센세가 겪는 중이다






가장 오래된 예언자는 바로 가장 먼저 샬레에 도착한 카요코다!

카요코의 진명을 가장 오래된 순서대로 쭉 이어보면 이렇다

1. 고바빌로니아 제국 신화의 검의 신 에라(Erra)

2. 가나안 신화의 죽음과 순환의 신 모트(Mot)

3. 폴리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Orpheus)





이후 카요코는 어원을 따져보면 바알-베리스(Ba'al Berith)에서 비롯된 72악마의 벨레드(Beleth)라 불리며

"나팔수의 악마" 라고 여겨지는데... 사실 이 이름은 "언약" 이란 이름에 어원을 공유하는 만큼 큰 떡밥이다

그것도 기독교 세계관에서 "나팔" + "언약" 이라는 상징을 갖는다는게 그냥 넘길 의미가 아닌 떡밥인데...




문제는 이걸 풀어내기 위한 "대홍수 이야기" 에 대해 비교종교학(comparative religion)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순간부터,

부득이하게 신학(theology)의 관점만큼은 부정하고 시작해야 되는 주제니까 크리스천 몰붕이라면 굉장히 불편할 수 있다



그래도 비교종교학에서 가장 개꿀잼인 주제인데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감?

레퍼런스로 쓴 서적들은 위와 같고, 모든 텍스트는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신화(Myth) = "이야기(문학)" 라는 관점에서


노노미, 히후미, 하루나가 언급해준 니체의 <선악의 저편>에서 제시한 독단주의 비판론을 통해 풀이한 것임을 밝혀둔다





1. 바빌론을 무너뜨린 에라 이야기


고바빌로니아 제국은 피지배층에게 가혹한 노역을 강제했는데, 유프라테스/티그리스 강에 수로를 파낼수록 바닷물이 역류해서 홍수가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걸 막으려고 댐을 짓고 수로를 지하에 파내는 등등 엄청난 노동력을 투입해서 홍수를 막았는데 이게 다 그냥 채찍질만 해서 되겠음? 권위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등장한 신이 마르두크, 샤마쉬처럼 "하늘, 빛, 섬광" 등의 상징물을 갖는 신이자 얘네들이 함무라비 법전의 권위를 세워주듯 지배의 권위를 부여해줌

= 위의 부조에 보이는 저것, 여덟 갈래의 별이 금성이나 샛별이 아니라 태양의 상징으로 쓰이던 시절이 이 시절이다



그렇다 색채다

고바빌로니아 제국은 파반느 2장에서도 잠시 등장한 아비-에슈를 비롯한 왕들의 철권과 법률로 공포통치를 통해 유지되었는데

그들에게 "하늘에서 혼자 빛나는 태양" 이란 곧 그러한 공포에 권위를 부여해주는 상징이었고, 그래서 이때의 태양은 생명을 주는 빛이 아니다





그럼 그런 태양을 조지는 신이 등장한다면?

검의 신 에라(Erra)는 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점령당한 어느 소수민족의 신으로, 원래는 평범한 금속과 제련의 신이었지만 묘한 입지를 갖는데

바로 제국의 지배층들이 언젠가 노예들에게 업보청산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반영한 "바빌론을 무너뜨리게 될 죽음의 신" 이라는 역할이다

그래서 고바빌로니아 신화의 다른 신들이 주로 철퇴를 무기로 쓰는 반면, 에라는 검을 무기로 쓰면서 "신들이 피를 흘리게 만든다" 라는 신이 된다



"제국의 수호자로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어 보였던 마르두크를 잡는 신"

 <배트맨 VS 슈퍼맨>의 배트맨이 하는 "너도 피를 흘리나?" 라는 대사가 신화적으로는 기원전 18~16세기 고바빌로니아 시절에서 왔던거다



그렇게 에라는 지배층들의 업보청산, 즉 노예반란에 대한 공포를 의인화한 신에서 점차 진짜로 반란을 꿈꾸는 노예들의 신이 되었으니

그래서 에라는 절대 혼자서 싸움에 나서지 않음. 검의 신이라 불린 만큼 에라에겐 살아있는 무기로 의인화된 일곱 명의 부하들이 있었고,

그들이 어떤 신화의 세계관 안에서 처음으로 "악마" 의 역할을 맡게 된 에라의 일곱 악마들(Sebettu)이었다


첫번째 악마는 귀족도 병사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퍼져나가는 공포

두번째 악마는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도시 전체를 불태울 수 있는 횃불

세번째 악마는 마주치는 순간 겁에 질려 마비될 만큼 무서운 맹수의 얼굴

네번째 악마는 그저 나아가기만 해도 태산조차 무너뜨릴 정도로 강한 군세

다섯번째 악마는 작은 틈조차 파고들어  지상의 어디로든 닿을 수 있는 돌풍

여섯번째 악마는 지상에서 휩쓸리지 않은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거대한 홍수

일곱번째 악마는 살아있는 모든 것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릴 치명적인 맹독


마지막, 여덟번째 악마이자 죽음, 기근, 전쟁, 그리고 정복의 신인 에라 본인이 "여덟 갈래의 별" 로 상징되는 태양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 여덟 갈래의 별로 상징되는 제국의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고 지배자들을 심판하여 노예들을 해방시켜주러 올 것이다... 라는 신화가 된다



그렇다!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형태로 각색된 "노예반란의 공포" + "새로운 시대로의 열망"

= 엔릴에게 저항한 이기기 신들의 반란 이야기, 티아마트의 아이들 마르두크에게 저항한 이야기처럼 "바빌론은 무너질 것이다" 라고 외치는 신화다

그래서 대홍수는 "지배자 신" 으로부터 벗어난 노예들이 "약속을 맺는 별의 여신" 에게 = 태양의 압제에서 벗어나 별들의 시대를 여는 이야기의 시작임


그런데 이런 에라한테도 형제자매가 있었으니


그게 얘네들임

그리고 얘네들의 엄마이자, 대홍수를 일으킨 제국의 주신 엔릴에게 "4연속 강간질싸임신섹스" 당한 여신이 바로...



갈대의 여신이자 기록의 여신, 닌릴(Ninlil) 되시겠다

엔릴이 닌릴을 강간하는 이야기는 고바빌로니아 제국이 어떻게 피지배층의 신화를 흡수했는지가 반영된 신화로

닌릴과 4명의 아이들을 수호신으로 모시던 도시들에 함무라비 왕이 댐을 열어 인위적으로 홍수를 일으키는 등등

어떻게든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 한 노예들에게 제국에게 맞서 싸운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전해준 상징이 됨



그리고 마침내 이들의 저항은 고바빌로니아 제국이 무너지고, 예언대로 바빌론이 함락당하며, "태양이 죽고 하늘은 자주빛으로 물들었다" 

= 석양을 상징하는 묘사로 막을 내리니...



그렇게 태양이 저무는 서쪽으로, 일곱 행성들 중 유일하게 태양을 거슬러 서쪽에서 떠오르는 금성의 땅으로 향한 노예들은

포이닉스(Phoinix), 또는 페니키아(Phoenicia)라 불리며 자주색 염료와 향나무, 무화과처럼 특산물 교역으로 번영하였으니

그들이 기원전 16~13세기에 걸쳐 세운 도시국가들이 바로 가나안이다



메소포타미아 신화 2편 - 아비에슈와 디비전에서 1~6번 챕터에 정리해둔 내용을 요약한게 에라 이야기인데, 나머지 챕터에서는

니쉬르 작전의 모티브가 되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아트라하시스/우트나피쉬팀 이야기까지 정리해뒀으니까 그거까지 봐두면 좋음





2. 피 흘리고 애도하는 모트 이야기




구라치지마!

카요코는 이 자리에 모이는 여고생들 중 가장 전문가다



정확하게는, 아코랑 동급으로 전문가다

머나먼 서쪽의 가나안으로 탈출한 노예들의 신화는, 고바빌로니아 제국 신화의 "자연현상을 징벌로 내리는 신" 개념을 부정하면서 시작했는데

당시 고바빌로니아 제국을 멸망시키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히타이트 제국이 인신공양은 물론 사형제도, 노예제도를 굉장히 부정했던 영향이다

그런데 가나안에서는 얼마나 제국의 압제에 시달렸는지 "신의 징벌로 내려진 대홍수" 라는 개념을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바꿔버렸으니...


"대홍수를 일으키는 신을 죽이면 끝나는 거잖아요?!"


그래서 죽여버림



가나안 신화는 여러모로 독특한 점이 많은데, 창조신을 명확하게 인격신으로 묘사하지만 노쇠하고 꼬장부리는 신으로,

창조신의 맏아들인 홍수의 신은 누가봐도 고바빌로니아 제국 시절의 수로 건설에 노역하러 끌려간 것의 은유로 나오고,

실제 역사에서 히타이트처럼 주변국의 도움으로 반란을 계획하거나 미리 서쪽으로 탈출하는 것까지 반영된 점들이 있음

= 그래서 가나안 신화에는 "다른 지역의 신이다" 라고 명시를 해두고, 그 신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게 얘네들임


이때 가나안 신화는 아주 독특한 특징을 하나 갖게 되는데,

"이름없는 신들" =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쇠락과 함께 잊혀진 신들이 "신을 위해 인간이 희생해야 한다" 를 원칙으로 두었다면

"반란의 이야기" 를 통해 이들을 무너뜨린 이후의 가나안 신화에서는 "신이 인간을 위해 희생했으니 인간은 희생할 필요 없다",

즉 인신공양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 인간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존재만으로 이미 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아스타르테는 창조신 엘에게 적당히 물려받은 = 자신의 피조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을 무척이나 아꼈고

뜬금없이 시작하자마자 상상을 초월하는 강함을 가진 여신님께서 애호해주시는 이유를 가나안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하니까"

이는 아트라하시스가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12개의 그릇에 향을 피우고 3가지 공물을 바친 덕분에 신들도 함께 살아남을 수 있었고

아스타르테의 원형이 되는 "위대한 여신" 이라 불리는 여신으로부터 "이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라고 했던 이야기의 영향이다

이때 여신과의 약속을 상징하게 된 물건이 원래 홍수를 일으킨 신이 여신에게 선물해주었지만/인간과의 약속의 증표가 된 "푸른 별",



이 녀석이 된다



그래서 가나안 신화는 아스타르테가 "다른 신들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이야기" 로 시작하며

다른 신들과 달리 유일하게 아스타르테 말고 인간에게 관심을 가져준 바알과 사랑에 빠지면서 함께 인간을 지켜주게 된다


사실 가나안 신화가 그리 체계적인 세계관이라고 보긴 어려운데

일단 "아무튼 창조신이 세상을 만들고, 신들마다 피조물을 물려줬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이었다" 라고 적당히 넘어가거나

이웃한 지역의 신들을 "어느 지역 출신이다" 라고 명시해두면서 빈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전개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나안 신화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유달리 이런 "사랑" = 포용력을 강조한다는 특징이 아주 뚜렷하게 나타남


이들의 기원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그런데 이렇게 신들이 인간을 지켜주고,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줄수록 공포에서 비롯된 신은 어떻게 될까?


아스타르테는 여러 신격을 갖고 있지만 "생존을 위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여신" 으로서 사냥, 수렵, 농경 등을 알려주는데

딱 하나 "금속" 만큼은 자신의 신격에서 다룰 수 없어서 = 에라의 신격이었던 "검의 신" 에 해당하는 지혜는 다루지 못했다


그래서 뱀의 신 -> 가나안 신화에선 이집트 멤피스에서 왔다는 의술과 야금술의 신으로 바뀌는데

그 과정에서 탄생하는 신이 부활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원형이 되는 에쉬문 = 세나이고, 그런 세나의 후배가 치나츠


그러다보니, 죽음의 신 또한 의미가 바뀌어 "피를 흘리는 신" 이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일단 가나안 신화의 시작은 여차저차해서 바알과 아스타르테가 인간을 지켜주고 있었는데,

창조신의 맏아들이자 신들의 왕, 홍수의 신 얌(Yam)에게 자꾸만 인간들이 죽어나가니 "인간들이 제대로 제사를 안 지냈기 때문" 이었다

당연히 개빡친 아스타르테는 바알과 함께 얌을 조지러 가는데, 이때 멤피스/히타이트에서 온 야금술의 신과 전차를 모는 신의 협력을 얻고

그대로 풍기위원회 4인팟을 꾸려 홍수의 신 레이드에 성공 + 얌이 가지고 있던 왕위의 상징, "소의 해골로 만든 뿔 달린 왕관" 을 얻게 된다



히나의 헤일로가 유달리 왕관 모양이라는 걸 강조하고, 히나의 머리가 정말 큰 것부터 "뿔" 까지 크게 그려지는 것도

바알이 갖는 중요한 상징성 = 장자상속권을 거스르는 신임을 고증한건데, 히나 머리 말고도 이걸 고증한게 하나 더 있는데...



"사랑은 심장을 뽑아 쟁취하는거야"

"적의 심장을 뽑아 흘러나오는 피로 목을 축여라"


가나안 신화는 대홍수 =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순환" 이라는 의미를 거부하고,

멸망 대신 인간이 희생되지 않는 계절의 변화 "순환" 의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Ba'al Cycle>이란 제목의 서사시, 바알의 이야기를 분류하면 이런 식으로 분류되는데

홍수의 신을 무찌르고 왕관을 얻는 1부,조신으로부터 왕위계승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막간의 1.5부,

이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죽음의 신에게 바알이 끔살당하고 + 바알을 되살리기 위한 아스타르테의 노력을 다룬 2부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는 바알이라 불리는 신들이 많지만, 가나안 신화의 바알이라 특정이 가능한 이유가 이거다

다른 신화와 달리 가나안 신화는 장자상속권을 인정하지 않고 대신 아주 심플하게 게헨나 스타일로 결정하는데,




이건 파반느 2장에서 말랑쫀득한 쌍둥이가 싸울때 "유즈퀸" 께서 어쩐 일로 용기내서 한 마디 하시는 걸로 재차 반영된다

얼마나 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시달렸는지, 가나안에 정착한 노예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바빌론의 신들이 인간에게 운명을 정해준 것과 달리

오히려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힘을 가지라고 적극적으로 권하는 신들의 신화를 만들었으니 그게 바로 "막고라" 같은 신성한 결투의 원형이다



사실 바로 윗동네 히타이트에서 법잘알이 되기 위해 귀족들이 단체로 법전만 붙잡고 있느라 쇠락한 경향이 다소 있던 반면에,

가나안에서는 히타이트처럼 방대한 영토 대신 도시국가별로 자치권을 최대로 주면서 같은 신화, 같은 성지만 공유하는 것으로

설령 위쪽은 히타이트, 아래쪽은 이집트에게 점령당한 상태에서 싸우게 되더라도 금방 쿨하게 화해해서 동거동락하는 곳이었다

이러한 문화는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이 이상할 정도로 영토확장 대신 탐험과 교역로 개척에 열을 올리게 된 이유로도 작용했는데



하도 시달린 역사가 길다보니 가나안까지 탈출했어도 제국의 법률처럼 타인에게 뭔가가 강제되는 것을 두려워한 가나안인들은

"신의 권위를 빌려" 무언가 한다는 개념 자체를 없애기 위해 독특한 공동체 문화를 몇 가지 고안해냈으니 그중 하나가 이 결투다

중세 유럽식 결투재판은 아니지만, 이 결투는 아스타르테가 바알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아버지 창조신을 상대로 결투를 걸고

= 창조신조차 자기 의지대로 마구 바꿀 수 있는게 아니고, 그래서 아스타르테는 창조신의 수염을 잘라낸 것으로 승리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자지를 쇠낫으로 잘랐던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차이가 크지?

자지, 수염 둘 다 남성성의 상징이지만 가나안에서는 아버지의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정말 크게 다르다

아스타르테가 훗날 아테나/아르테미스/아프로디테로 분화되는 걸 생각하면 "피" 를 대지에 흘려선 안 된다는 의미가 있음을 뜻함



그래서 결투재판...을 빙자한 사실 "너희가 정말 싸울 생각이면 머리는 식히고 싸워라" 라는 교훈이 담긴 것이었으니

가나안의 고질적인 인구부족 문제도 있었지만 가나안에 이주한 다음에도 하도 싸움에 시달린 영향이 반영되었다는 관점도 있음

아무튼 이런 신성한 결투에서 피를 흘리지 않는다는 건 후대의 결투재판과 달리 "신께서 승자를 결정하신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신들조차도 결투에서는 운명이 아니라 힘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 라는 의미를 가졌는데, 그래서 아예 신들이 몸소 모범을 보인다



그게 바로 카요코가 에라였던 시절부터 써온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힘" 이며, 그래서 가나안에선 힘 = 지혜였다

고바빌로니아 신화에서 가나안 신화로 넘어가기 직전의 과도기, 또는 고바빌로니아 멸망 이후 역수입된 가나안 신화의 영향은

티아마트가 주문을 외우지 못하게 막고 무력으로 때려잡은 마르두크 같은 아레스형 영웅 대신 아테나형 영웅을 제시하였는데,

원래부터 도저히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던 상황에서 살아남은 만큼 가나안에선 지적 유산의 보급을 굉장히 중시했다

 

카요코가 흥신소의 브레인 역할인 것은 에라였던 시절, 휘하의 일곱 악마들과 협력해서 바빌론을 부수는 예언의 주인공이던 만큼

"지휘관" = 특히 역병의 신을 겸하듯이 쥐떼나 벌레떼처럼 "약하지만 뭉치면 강해지는" 이들을 다루는 신이라는 걸 고증한 것인데

가나안 신화의 죽음의 신, 모트였던 시절에는 이제 가나안에 새로 정착한 다음 세대를 시험하기 위한 시련을 내리는 역할로 나온다



그것이 아코는 카요코를 경계하는데 + 히나는 카요코를 의식하지 않는 이유임

바알의 죽음은 정말 뜬금없이 나오는 전개로, 창조신에게 인정받은 바알이 거침없이 정복전쟁을 벌이다가 모트의 미움을 사면서

갑자기 죽은채로 발견되거나/연회를 열었다가 순식간에 암살당하는 바람에 아스타르테가 어떻게 손 쓸 수가 없었음을 강조한다

당시 아스타르테는 바알을 끌어내리려고 모의한 신들을 한 자리에 모두 초대하고선 혼자서 전부 도륙내면서까지 바알을 지켰는데



그래서 이 장면은:

히나 = 바알은 가나안 신화에서 수없이 순환을 겪으며 배운 교훈을 여전히 기억하면서

아코 = 아스타르테도 "원치 않은 결론인데..." 라며 비슷한 교훈을 가능한 지키려는거다



히나가 진짜 그대로 들어서 말랑말랑진심순애 마려워지는 여름방학 이벤트를 보면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데,

바알은 가나안 신화에서 정복전쟁을 벌이다 형 모트에 의해 죽음을, 연인 아스타르테에 의해 부활을 경험하면서

이상적인 왕으로 성장하여 지상에 귀환하지만 + 마찬가지로 모트도 부활한다


그래서 둘은 매 해 겨울마다 다시 결투를 벌이는데

이기면 다음 해는 풍년이지만 겨울이 돌아오면 또 결투를 벌이고... 를 반복하고,

지면 다음 해는 흉년이 되면서 다음번 겨울에 부활할 때까지 저승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아코의 생일인 12월 22일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 동지가 된다

또한 아코가 아스타르테로서 순환을 겪으며 배운 교훈, "지혜로 도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 히나의 역할인 "죽음의 공포를 받아들여 부활하는 왕" 과 비슷하지만 다른 것으로, "사별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지혜"


 


다름아닌 "사랑은 심장을 뽑아 쟁취하는 거야" 의 정체이다

그렇게 순환을 거쳤어도 학생으로서: 히나가 "사랑을 받는 법" 을 배워가는 것처럼, 아코는 "사랑을 주는 법" 을 배워야 한다



히나가 뿌에엥하면서 "받고 싶었다" 를 외칠 때, 호시노 얘길 꺼내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히나의 역할은 호시노처럼 사별의 아픔을 견디는게 아니라 유메 선배처럼 본인이 직접 죽는 역할이라서고

히나가 센세에게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처럼, 오히려 사별의 아픔을 견디는 법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바로 여기서 바알 이야기호루스 이야기랑 차이가 나는 지점이라 아주아주 중요한데,

수비도스 이벤트에서 유메 선배의 과거 떡밥이 나올때마다 아죠씨가 으헤~ 당하는 장면들은 사실 임신질싸경쟁배틀이 아니라...



"으헤~ 아죠씨 죄책감 못견디겠으니까 아죠씨 목숨으로 대신 갚을게~"

호시노에게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거짓말쟁이" 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인간이 애써봤자 고통을 숨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그래서 호시노에게 죽음의 신이자 진실의 신이 필요한거다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종교만 이런 구분을 허락하지 않을 뿐이지, 종교(Religion)/신화(Myth)의 구분은 아주 명확하다

종교는 그 내용에 대해 이견을 허락하지 않지만/신화는 오히려 이견이 없으면 제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신화의 본질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믿거나 말거나" 에 기반하며 + "하지만 들어둔다고 손해는 없을걸?" 이기 때문이다

<길가메시 서사시>부터 서사시의 형식으로 전해지듯이 신화는 문학이며, 따라서 단 하나의 관점만 존재하면 의미가 없다


특히나 이것이 "관점" 이라는 점에서 신화는 그것이 창작되어 전해지고 각색되는 모든 과정이 전부 다른 관점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 신화의 경우, 파라오 그 자체를 상징하는 호루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건 그건 읽는 사람 자유다!

여러 이야기들 중에서 무엇이 좀 더 "그럴싸한가" 를 두고 더 인기 있는 신화를 지어내어 더 널리 읽히는 게 목적이었는데

이는 신화가 사람들에게 "왜 세계는 이렇게 굴러가는지" 를 얼마나 설득력있게 들려주느냐에 따라 선택해서 전해주어서다


좀 더 현실적으로 설명하자면, 여러 신화들 중 어떤 신화가 참인가 "증명할 수 없다" 는 걸 서로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신화보다 자기 마음에 훨씬 끌리는 것으로, 말하자면 "자기 욕망을 따라서" 마음에 드는 것들만 전해주었고,



그래서 신화에는 누가 쓰고, 누가 전했고, 누가 읽었느냐에 따라 수많은 욕망이 서로 공존하게 되는데

지배자들이 아무리 작정하고 주작하더라도 그게 전해지는 과정에서 어차피 전하는 사람들의 욕망도 반영될테니

작정하고 개꼴리게 지어서 "꼴림 속의 메세지" 를 전달하는 것이 창작자의 의도를 가장 확실히 전하는 방법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 사람들의 보편적인 욕망에 따라, 신화는 진짜로 "마침내 행복해지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특히 신들에 비해 비교적 약자였던 인간들이 아낌없이 사랑받으면서 성장하여 인간으로서 불가능해보였던 업적을 이루는

"여신들에게 사랑받는 소년이 시련을 겪고 성장하여 영웅으로 거듭나 소중한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 로 수렴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죽음, 사후세계, 사별의 아픔에 대한 신화는 가장 솔직한 욕망을 보여주기 때문에 신화연구에서 특히 중요하고,

그것이 모든 사람의 죽음인 대홍수 신화에 관한 것이라면 그 신화가 전해지던 문화권의 세계관을 분석하는 것까지 가능하다




수비도스 이벤트가 특히 "밤바다" 를 강조하는 것처럼, 이곳은 이집트 신화에서 "저승" 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리조트" 복구대책위원회는 여전히 박살난채로 숨겨진 호시노의 아픔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할 수 있도록

유메 선배가 남긴 말처럼 호시노에게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매일매일이 기적이다" 를 상기시켜주는 이벤트임



이때 노노미가 말해주는 대사는 유메 선배의 대사랑 그대로 이어지는데,

둘을 연결하면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니까 걱정말고 또 다시 후회하기 전에 솔직하게 말하자" 가 된다



그래서 게헨나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뿌에엥하는 법을 알고 있고, 서로 뿌에엥을 주고받으면서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누면서 함께 극복하는 곳이다


 


그러려면,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시련을 내려줄 역할이 필요하겠지?

공포의 대상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열망으로, 나아가 "선생님" 역할을 하게 된 것이 바로 모트이다


가나안 신화에서 이는 아스타르테가 개빡친 나머지 모트의 심장을 산채로 뽑아서 죽여버리는 장면으로 나오는데

평소엔 아스타르테가 적들의 피로 온몸을 적시면 + 바알이 비를 내려주면서 사랑을 나누고 몸을 씻을 수 있었지만

"죽음의 신조차 정복하더라도" 바알은 돌아오지 않고, 아스타르테의 몸은 피투성이인 그대로라는 장면을 보여준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라는 깨달음의 시작이다

문명사회에서 한 개인의 죽음은 막을 수 없음. 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과, 죽은 개인의 삶을 기억하는 것은 가능하겠지?

인류문명의 "지적 유산" 이란 이렇게 죽음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러한 유산의 존재 자체만으로 알려주며,

모든 신화가 이야기로 전해지는 까닭은 이야기를 읽는 순간 이미 "깨달음은 이어진다" 라는 걸 읽는이가 스스로 증명해서 그런거다




그 순간부터 죽음은 단지 삶의 끝이 아니라, 그 개인이 살아온 삶을 같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애도함으로써 기억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죽음을 맞이하는 본인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 죽음을 지켜보는 주변인은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애도의 본질이 되는건데

수많은 신화에서 반복된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함께 살아간다" 라는 인식이 이런 "애도를 통한 극복" 에서 비롯된거다


가나안 신화에서 아스타르테가 보여주는 애도의 과정을 차례대로 나열하면:

1. 모트의 심장을 태워 그 재를 뿌리고 포도주를 마시며 통곡하기

2. 횃불의 신과 함께 바알의 시신을 다시 마주보고 무덤에 묻어주기

3. 여섯 번에 걸쳐(= 6년 동안) 바알의 무덤이 있는 산에 제사를 지내기

4. 그리고 7년차에 바알의 무덤이 있는 산에 다시 횃불의 신과 함께 찾아가기

5. 화환을 쓰고 포도주를 무덤에 뿌리면 바알이 부활하고, 모트도 부활하게 된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1번부터 5번까지 "새들이 그 살을 먹지 못하게 하고, 들개들이 그 살을 먹지 못하게 하라"
= 모트의 심장은 "불로 태워 재를 뿌린다" 라는 과정으로 "가공" 을 거쳐야 하고 바알의 시신은 파헤쳐지지 않게 해야 한다

"시신을 보존한다" 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사자(死者)에 대한 존중, 그리고 식인이나 인신공양을 통한 의식을 금지한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시신을 섭취하여 그 힘을 이어받는다거나, 죽음에 대한 등가물로 또다른 죽음을 일으켜 혼을 달랜다는 등등,

식인과 인신공양은 이렇게 체계화된 애도의 의식이 자리잡으면서 사라지는 경향이 뚜렷하니, 그 핵심은 바로 "포도주" 이다



지져스가 생각난다면? 정답이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도 없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다" 처럼 히브리인들은 "피" 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반대로 가나안에서는 상징적인 의미를 공유한다면 = 사람들에게 "피" 라고 믿어진다면 그것은 피가 된다고 여겼다



원시 축제에서 "가면" 은 인간이 가면을 만들고 인간이 쓰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타내는 신화적 존재의 진정한 영혼으로 숭배되고 경험된다.

더욱이 가면을 쓴 사람은 가면이 포함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과 동일시된다. 그는 단순히 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그가 바로 신이다.


현대 시나리오 이론의 기초를 만든 비교종교학자 조셉 캠벨의 <신의 가면> 1권에서 등장한 "향도자(Fugleman)" 라는 역할은

원래 죽은 자를 애도하는 의식에서 시작하여 죽은 자의 삶과 죽음을 재현하는 "배우" 로써, "가면" 을 쓰고 죽은 자를 연기했다

향도자가 가면을 쓰고 죽은 척 하는 동안, 여사제들은 통곡하며 포도주를 뿌리고 향도자에게 죽은 왕을 상징하는 화환을 씌웠다


그래서 카요코는 에라 시절부터 쓰던 "무서운 가면" = 무서운 얼굴을 한 여고생으로 현현했으니

가나안 신화에서 모트의 죽음과 바알의 부활은 하나의 의식 안에서 재현되어 한 순환을 끝내고 새로운 순환의 시작을 보여주었고

그걸 본 사람들은 "그것이 가면이고, 일종의 연극임을 알면서도" 사별하게 된 소중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서 제시한, 정확히는 "재발견한" 미메시스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과정은 이렇게 시작했다

기원전 13세기, 지중해에서 문화교류의 중심지였던 가나안은 미케네 그리스인들과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영향을 주고받았는데

당연히 그 과정에서 가나안 신화도 전해졌으니, 기원전 13세기 말에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로 미케네 그리스가 멸망한 이후

= 가나안에서는 여호수아의 예리코 정복을 시작으로 히브리인들에게 정복된 이후에도,



프레나파테스(Phrenapates, 기만자)

"비극을 연기하는 자" 로서 눈물 흘리는 가면을 쓴 배우의 의인화가 등장하는 것처럼 폴리스 그리스 시대에 부활하게 되었다

왜냐면 "비극" 이란 이야기, 지적 유산으로서 설령 한 문명이 완전히 말살된다 하더라도 주변에 영향받은 문명들이 있다면

마치 한 인간이 주변인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그러나 그것이 진짜 살아감이 아님을 이해한다)" 라는 "기만" 덕분에

오히려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고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로서 "신화(myth)" 는 끊임없이 부활하는 것이다


비교종교학에서 굉장히 큰 빚을 지고 있는 엘리아데, 아직 살아있는 학자로는 드브레가 이런 관점을 대표했는데

이분들에 대해서는 비교종교학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분야인 미학까지 끌어와야 하니까 자세한 설명은 넘어가고

폴리스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이토스적인 역동성를 넘어 파르메니데스적인 항구성을 추구했다" 라고 정리하면


그게 이집트에서는 네흐흐(neheh)/디얏(dijet)의 상징성, 가나안에서는 모트/아스타르테의 관계가 뜻하는 것이고

실제로 가나안-신왕국 이집트-미케네~폴리스 그리스 사이에 있던 문화교류를 통해 이어진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3. 게마트리아: 헤브라이즘의 한계




한편 이 장면은 아주 절묘한 서술 트릭으로 고증까지 살린 셈인데, 게마트리아는 원래 유일신교 출신이다

얘네들도 헤브라이즘(Hebrism)의 관점에서 다신교적인 상징들을 봤으니 "상징" 을 착각해버리기 쉽고

결국 검은 양복에겐 "비의", 데칼코마니에겐 "허상과 은유", 마에스트로에겐 "복제" 로 각각 꼬여버린거다



검은양복의 실수는 유일신교의 시대를 거치면서 "수은" 의 상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진짜 수은을 퍼마신 연금술사들처럼,

물질의 상징성 = 물질의 효과 = 물질의 가치라고 여겨버린 셈이니 그게 검은양복에게 "데이터는 정확하지만 이해를 못한다"

= 관측은 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기까지는 카이저 PMC를 갈아넣는 방법, 일종의 귀납법을 통해서만 이해가 가능했다



어쨌든 헤브라이즘단 하나의 관점만 인정하는 독단주의자의 관점이긴 하지만, 거꾸로 헤브라이즘의 관점만큼

= 베아트리체의 수많은 눈처럼 다른 신화의 세계관을 "포식" 해온 관점이 없는 만큼 베아트리체도 정확하긴 하다

단일한 언어, 단일한 의미에 여러 관점이 혼재된 만큼 그 속에서 본래의 상징성을 각각 구분해내기는 어렵겠지만

반대로 아직 포식하지 않은 다른 관점들에 대해선 헤브라이즘의 관점에 한해서 가장 정확하게 가치평가가 가능함



마에스트로의 실수는 작품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남들을 작품의 재료로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방자함이 있었고,

이건 여고생에게 "불가능하다" 라고 하지 않고 "부족하다" = 여고생처럼 다른 관점의 가능성은 분명히 긍정하지만

"그래서 내 관점보다 나을게 있음?" = 히브리인들이 겪었던 선민의식에 도취되었으니 결국 실패를 받아들이고서야

예로니무스라는 "자그마한 성공" 하나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 물론 이것도 분명한 성공이긴 한데 아직 "부족함"



골콩트의 실수는 딱 전형적인 20세기 뉴에이지,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서커스 광대짓" 이란 말 그대로다

뭔가 있어보이고 실제로 뭔가 있는게 맞긴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뭘 하려고 하는건지부터 이해하지 못하고,

다른 관점을 존중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에서 멈추고 그대로 돌아서버리는 셈이니 시작도 제대로 못한거

그러니 페로로질라는 정말 우연히 + 시작만 해냈고, 고즈의 대중예술은 아직 받아들여지기엔 시간이 부족함



하지만 헤브라이즘의 근본적인 문제, 바로 다른 관점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막상 본인이 한계에 부딪히자

자기 관점과 다른 관점을 함께 수용한다는 선택지 = 자신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선택지가 정상적인 판단임에도,

미지를 탐구가 아닌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게 되면서 + 절대적인 것은 소유할 수 없다 모순에 부딪히게 되었으니


누구보다 빠르게 광기에 빠져 결국 자멸해버린다



이때 헤브라이즘에서는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경외(Awe)라는 안전장치를 걸어두지만

문제는 원죄론에서 비롯된 공포가 헤브라이즘의 구원론에서 핵심인 만큼 너무 공포에 질리게 될 경우

경외심보다 공포감이 더 커져버린 나머지 아예 원죄로 인한 심판이 불필요한 상태 = 불멸을 추구하며,

단 하나의 관점이 변하지도 않은 채로 영속하는 것 만큼 비인간적인 상황이 없으니 광기에 빠지는거다



그렇게 "너, 독단주의자?" 로 한 명 보내버린 다음 장면에서 게마트리아가 실수를 깨닫기 시작한 계기는

다름아닌 어느 문명보다 물질의 불멸...을 추구한 것으로 착각된 이집트 = 아비도스에 방주가 없다는 것,

<암두아트의 서>에서 말하는 "수은" 이란 실제 물질인 수은이 아니라 "수은" 이란 이름의 어떤 개념이고

그것은 "수은(Mercury)", 곧 그리스의 헤르메스처럼 "경계를 넘어서는 촉매" 의 의미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뒤늦게나마 게마트리아는 "명멸", 상징적인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그토록 원하던 이해에 도달하는 데 성공함

검은 양복에게 죽음으로써 깨달음을 주는 자, 생명을 가진 것을 황천으로 "이끌어주는 자" 이자 진실의 신 아누비스,

그것이 "죽음의 공포" 에서 오히려 "신비의 이해" 라는 이면에 도달한다는 교차로의 인도자 신들이 갖는 특징이다



당연히 이런 마주봄의 순간은 존나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데칼코마니는 더이상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정면을 마주보는 프란시스가 되었지만, 절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검은 양복은 전보다 훨씬 빛나는 눈을 가졌지만, "꼴사나운 모습" = "양복" 곳곳은 찢어지고 균열이 부쩍 늘었다

방금 전까지 이들이 "시간이 부족하다" 라고 했던 걸 생각하면, 시간이 부족함에도 강제로 깨달음을 얻은 결과로

이는 상징적인 죽음의 시련이 실제로 죽음을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아님을 말해주는 대사임


왜냐면, 얘네들에게 상징적인 죽음 = 정신적인 죽음과 실제로 몸에서 일어나는 "죽음" = 물질적인 죽음

아직은 히브리인의 세계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상징/실제 현상을 구분하기 어려웠던거고

특히 얘네들의 육체는 얘네들의 정신에 기반해서 현현된 것인 만큼 이런 만신창이가 되는 과정을 겪는거다

이때 검은 양복의 "저희와 같은 결말" 이라는 대사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4. "독단주의자여, 눈을 떠라!"






"독단주의자(Dogmatist)"

교조주의자로도 번역되는 이 표현이 다름아닌 트리니티 여고생 히후미한테서 두 번이나 언급된 <선악의 저편>에서,

그것도 대놓고 키보토스는 하와와 여고생쟝들의 세계라는 듯 "진리가 여성이라면?" 으로 시작한 서문의 첫 문단에서

나온다는 것은 특히 트리니티를 겨누어 제시된 메세지가 있다는거다




보지좋아...아니 쿠즈노하가 세이아에게 색채의 영향에 대해 설명해주는 장면이 굳이 지금 나온 것은

"죽음에 이르지는 않지만, 지금의 자신이 아니게 된다" = 가혹한 시련을 거쳐 과거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자신으로 성장한다"

즉, 색채는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보던 과거의 관점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성장을 안겨주는 역할인 것이며,

이렇게 그동안 부정적인 것, 공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것을 오히려 긍정적인 것이자 이해의 대상으로 "반전" 시켜주는거다



그러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서 세이아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더이상 정해진 미래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세이아는 정해진 미래의 눈을 감고, 그 대신 불확실한 미래의 눈을 뜨니,

독단주의자의 관점을 버린 대신 어떤 미래이든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이 "트리니티의 에언자" 에게 주어진 시련이었지?

벗을 위해서, 벗을 믿고, 무한한 가능성을 얻게 된 세이아가 "예언자" 라면...



어쩌면 이부키도 "게헨나의 예언자" 로서 대가를 치른 이후이고,

이때 치른 대가는 "더이상 어른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없게 된다",

받아들인 이유는 "선배들이 자기 부탁을 들어줄거라고 믿으니까"



이부키의 진명이 루시퍼라면, 태양보다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 샛별이자 심연으로 추락해버린 별이지?

지금까지 게헨나가 신이 아닌 악마임에도 불구하고 키보토스에 있을 수 있는 이유를 모티브를 통해 따져보면


1. 유일신교 = 부활한 이름없는 신에 의해 악마로 규정된 여신들이었지만

2. 거꾸로 악마로 규정된 존재들이므로 유일신교가 있는 이상 공존하게 된다

즉, "유일신교에서 악마를 기억하기 때문에" 악마로 규정된 신들이 아직까지도 전해진다는 것이 반영된 셈이다



쉽게 풀어쓰면 이부키는 구약에서 원죄론을 주장하려면 반드시 이브를 속이는 뱀의 역할 = "악역" 이 필요하므로

독단주의자 = 유일신교 = 이름없는 신에 의해 멸망할뻔한 게헨나를 이미 한 차례 "악역이 됨으로써" 생존시킨거다



그런데 이러한 정신적인 재탄생을 통해 타인과 함께하는 존재로 성장할 경우, 숨겨진 보상이 하나 주어진다

이부키가 정확한 타이밍과 위치에 토라마루를 떨군 것처럼 세이아도 신들린 관측수가 된 묘사가 나오는데

이걸 "감" 이라는 표현을 쓴다면...




5. 상징이 우리에게 힘이 되는 이유




이것은 여신들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에 비롯된 걸로 볼 수 있는데,

여신들의 이야기에서 성장이란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과 솔직하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람

= 누구보다 타인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기에 타인이 없다면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약해보지... 아니 아캐보시라는 성씨답게 "별" 의 의미를 공유하는 히마리가 "약점" 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여신들은 성장할수록 서로 상호의존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즉 서로가 서로에게 삶의 일부가 되며 성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성장의 정체는 겉으로 보면 신비를 더욱 강하게 갖는 것 같지만,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로소 완전성 =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니 그게 바로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이다




이런 "행운" 이란 몰루에서 "미로에서 길을 찾아내는 직감" 으로 표현되는데,



그것이 바로 "UZQueen 모드" 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그냥 열심히 했어요" 의 진실이다

뭔가 멋들어진 미사여구가 잔뜩 붙어있지만, 정말로 중요한 의미는 "유즈는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다"

= 모모이의 말 한 마디까지 전부 기억했다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타이밍에 정확히 제시하는 것처럼,

자신의 관점에 "빈틈" 을 내어둔 사람은 그만큼 남들은 볼 수 없는 인과관계까지 예민하게 파악해낸다


하지만 그 대가로 유즈는 남들이 하는 말 한 마디를 전부 기억하면서 고통받기 때문에 캐비닛에 숨어버리고

이런 유즈에게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캐비닛에서 어떻게든 빠져나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게 만들어줄 이유,



같은 환상을 공유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눈을 감았다가 뜨는" 연출을 통해 유즈의 성장을 보여주는데



밀레니엄에서는 다름아닌 유즈가 "대홍수가 끝나고 인간 덕분에 살아남은 위대한 여신" 이자,

영원히 기억할거라 약속해준 여신이며, "무지개를 쏘아올리는 여신" = 새로운 시대의 여신이다

아트라하시스와 "푸른 별" 을 증표로 약속을 나눈 바로 그 여신과 같은 상징을 공유하는 것이다



"화해의 상징" 이란 그것이 말랑말랑한 아즈사이건, 이제 아무런 힘도 없는 그냥 인간에 불과한 센세건,

"소중한 사람을 지킨다" 라는 의미를 전해주며 함께 협력할 때는 누구나 곧장 이해하는 "이유" 가 되어준다

무려 그 스쿼드가 시스터후드, 구호기사단과 함께 딱 세 마디 말로 즉시 진심으로 협력하게 되는 수준이며,



그게 공통된 친구, 공통된 이름, 공통된 "상징" 의 힘이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조차

"기적적으로" 이겨버리는(사실은, 분명한 인과관계가 이어지며 찾아낸 가능성의) 비결이다

그리고 이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보편적인 기적의 상징이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성경에서 비유와 상징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같은 의미더라도 적재적소에 맞는 상징들,

즉 각자 살아온 생애와 지금 처한 상황에 맞추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준 선생님이라면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알파이자 오메가이신 우리들의 지져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인류문명에서 "선생님" 이라 존경받은 인물들의 공통점은 메타포, 아포리즘, 아이러니의 대가였으니

지져스가 그랬고, 붓다가 그랬고, 소크라테스가 그랬고... 그런데 왜 이들의 공통점이 이러한 비유와 상징이 될까?

어떤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일일이 풀어서 설명하기보다 "샬레는 여고생의 성장을 위한 배양접시와도 같다" 처럼,

같은 의미더라도 사람마다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해의 한계" 를 극복하려면 그거만한게 없어서다



"시간"이란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은유이다


1. 오직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간다

2. 아무도 막을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다

3. 누구에게나 있지만 모두 다르게 갖는다

4.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5. 다같이 약속해서 어떤 기준을 세울 수는 있다

6. 타인에게 내주면 서로의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

7. 낮과 밤, 달의 위상, 별자리의 이동으로 "관측" 된다



그래서 때로는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이렇게 모두가 아는 이야기로부터 어떤 장면과 대사를 인용하는 것,

부정확하고 불확실하게 의도를 감춤으로써 오히려 의도를 전달하는게 인류문명의 가장 고유한 "지혜" 이다

= 인식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니, 이보다 "광기" 에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6. "광기" 에 빠져버린 트리니티




트리니티의 아픔을 치료하는 이벤트인 고서관의 마술사에서 첫 등장한 우이가 센세한테 극찬받는 것도,

"이야기" 를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독하는 것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해질 일이다"

= 알 수 없는 말로 쓰여진 기록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건 증명할 수 없는 진심에 닿으려고 노력한 것처럼

인간이 미지에 대해 이해하려 한 노력들이 곧 모든 신화, 나아가 모든 이야기의 첫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구리뱀과 불뱀은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의 지적 유산, "지혜" 그 자체를 뱀 = 악으로써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코 = 하와(이브)가 비유한 독사와 세상에 독사가 있고 "독사의 비유" 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지혜 덕분에,




오히려 가장 오랫동안 선악을 구분하는 것의 한계에 부딪히고, 누구보다 지혜의 한계를 깨닫지만,

불확실함을 받아들인다 = 용서도, 자비도 이제부터 얼마든지 배워가면 된다고 노력을 긍정하면서

"가시밭길" 처럼 그 위에 고난이 따를지라도 "길" 이란 분명히 존재함을 인식한 것이 트리니티이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바보같던 코하루가 코헬렛(Kohelet), "회중 속의 전도자(Ecclesiastes)" 처럼 성장하듯

가장 상징에 무지하고 가장 독단적이었던 과거가 오히려 분파 시절의 역사를 토대로 위기에 대처하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이야말로 그 수많은 세월에 걸친 교리논쟁과 경전의 경구들에 다양한 관점으로 배워가기 시작하면

"반전" 되듯 급성장할 잠재력이 곧 이들의 알 수 없는 미래와 타인에 대해 YADHA 하자는 다짐의 숭고함이다



그리고 한 차례 쓴맛을 맛본 뒤엔 여전히 미지에 가려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미지에 대해 알아가는 달콤함만큼 배움의 기쁨을 비유하기 적절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라고 말해주는 나츠처럼 불확실함 앞에서 인간의 상징을 통한 이해는 아주 강력한 힘이다



그래서 선악과를 건네준 벌거벗은 동산의 여자, 하와 = 하나코라는 원죄조차도 공통된 믿음으로

손을 맞잡는다 = YADHA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트리니티 또한 성장하기 시작한 걸 보여주는데,


세이아가 말하는 "예언이 아니라 나 자신의 체험이 증거한다",

사쿠라코가 말하는 "광기" 의 정체라는 건 사실...



11세기, 최초의 독립 수녀원을 세운 분이자 한 세기를 풍미한 천재로서 "우타즈미" = 노래의 집이라는 성씨답게

특히 중세 유럽의 음악 분야에서 큰 지적 유산을 남겨주신 베네딕토회 출신의 힐데가르트 수녀님을 모티브로 갖는

시스터 사쿠라코께서... 진짜로 자신의 육체를 기꺼이 긍정하며 과감히 보여주는 성도회의 예장을 입고 오신 것도,

<Liber scivia>에서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가 가져다주는 순수한 기쁨의 숭고함을 긍정하신 것의 반영이 된다



얼핏 보면 개그씬같지만, 모세오경부터 시작해서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널리 생육하고 번성하여라" 라는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관점에서 벗어나 "사랑의 기쁨을 나누어라"

= 번식본능이 아닌 인간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의 쾌락이 받는 취급을 보면

<데미안>에서 세계의 절반을 부정하고서는 어떻게 신을 논하냐고 비판한 것처럼 아주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하나코는 헤브라이즘의 세계관에서 가장 부정된 젖보똥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나서야

"트리니티에서 알몸등교 같은게 자연스러워질 일 없다" 라고 단정짓으며 선을 그어야만 했던

과거의 관점을 딛고 나아가 "부족함을 깨닫고" 그제서야 공략 준비가 되었음을 선언했던거다


아 물론 그렇다고 현실에서 하이레그 레오타드 "젖보지똥꼬오픈직전까지 90%" 수준인 옷 입는게

시스터님의 육체의 경건함을 인정하는거라고 했다간 아직은 돌 맞기 좋은 시대니까 그러지는 말자





7. "광기" 에 빠져버린 밀레니엄




한편 거꾸로 육체 = 물질 세계에만 신경쓰던 또다른 "독단주의자" 의 밀레니엄을 둘러보면,

온천개발부가 그동안 찾아헤매던 "심층해양수 온천" 이란 다름아닌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

= 게헨나의 "어비스(심연)" 또한 물질적인 의미와 함께 정신적인 무언가라는 떡밥이 나온다

얘네가 보여준 신들린 건축실력과 카스미가 가졌다는 "온천수맥을 찾아내는 감" 을 생각하면


우리는 또다른 "광기" 의 소유자를 발견하고 우리의 일원으로 품어줄 수 있다

보자마자 헤으응... 하게 만드는 마성의 코유키가 "감금된 광인" 임을 생각하면,



코드네임은 흰토끼인데 성씨는 검은색이 들어가듯, 과학자에게 경계의 대상인 "블랙 스완(Black Swan)" 모티브라고 보면 된다

귀납법(개별사례의 누적으로 공통된 원리를 추론한다) + 연역법(공통된 원리를 개별사례에 적용하여 판단한다)으로도 볼수있고,

기억의 여신이자 "화폐(salary)" 의 의인화인 므네모시네, 인간의 선의를 상징하는 <오디세이아>의 나우시카이기도 한 세미나는


그냥 존재 자체가 예상치 못한 변수이자,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르고나우티카>의 황금양털(골든 플리스) 원정대의 "열쇠" 역할,

길잡이이자 마녀이며 오직 사랑과 공포를 동기로 움직인 메데이아를 코유키의 진명으로 본다면 서로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블랙 스완의 의미를 생각하면 지금까지 설명한 "기적" 의 정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가능하긴 한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야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를 갖게 되면서부터 은유를 넘어 수학자, 경제학자에게 오랫동안 진지한 연구대상이 되었고,

"상상의 동물" 에 불과한 "검은 백조", 이름부터 말이 안 되지만 진짜로 발견된 과학사적인 사건이었다

= 특히 21세기 들어서부턴 코유키가 벌인 경제위기의 상징도 되었으니 밀레니엄 1학년인게 설명된다



한편 평소에는 세미나의 서기로서 중립을 지키던 노아보다 훨씬 영향력이 강했던 유우카였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노아가 아니면 코유키를 다루지 못한다는 묘사도 블랙 스완의 특징을 생각하면

노아는 그냥 귀납법이 아니라 아예 현대인의 역사를 통째로 외워버린 수준의 기억력이 있는 만큼

코유키를 정의하는 "극단적인 예외",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 까지도...




몰루에서 젖가슴, 보지, 애널, 또는 디저트처럼 물질에 기반한 쾌락을 상징하는 것은 "달콤함" 이다

고서관 이벤트에서 "솔루트" = 용질(Solute)라는 표현으로, 이것이 노아의 성씨인 소금이나 디저트의 설탕이고

용매(Solvent)로서 과 하나되어 녹아든 상태를 "솔루션" = 해결책(Solution)이라 부르는 것이 노아-유우카

이때 유우카를 마치 유체처럼 흘러가는 "시간" 이라 여긴다면 노아는 그 흘러감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 이다


비슷하게 자주 등장하는 비유인 "커피" 또한 일종의 용액으로 다들 커피만 빨면 해결책을 어떻게든 생각하는 등

몰루에서 노아가 갖는 위치는 물리적으로 변해도 화학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 수시로 바뀌지만 변치 않는 본질,

이집트에서는 네흐흐와 함께 부활의 구성요소인 디얏에 해당하며, <암두아트의 서>에서는 "소금" 으로 상징된다


이때 젖가슴, 보지, 애널까지 사랑스러운 노노미가 사실 밀레니엄으로 가야되는거 아니겠냐는 떡밥이 풀리는데

밀레니엄의 모티브는 폴리스 그리스 신화이건, 현대 과학문명이건, 천년왕국이건 간에 반드시 이집트랑 엮인다


1. 폴리스 그리스 시대는 지중해를 통해 미노아-미케네 시절부터 가나안과 삼각무역 관계를 유지해왔다

2. 현대 과학문명은 그런 그리스 시대의 가치를 르네상스로 되살려낸 인본주의에 기반한다

3. 천년왕국의 <요한묵시록>만큼이나 상징들이 다채롭게 쓰여진 경전은 드물다



그런데 <암두아트의 서>에서 "다섯번째 시간" 이자 "감추어진 신비(Ars obscura)", 완전한 어둠으로의 하강이 등장할 때

날개달린 뱀 = 네흐흐의 상징이 가장 강조되는 "소카르의 동굴(Cavern of Sokar)" 속으로 가라앉는 과정이 존나 중요하다

왜냐면 이곳은 상징적인 의미의 "수은" = 녹아내리는 용해(Dissolution)의 구간으로, "붉게 물든 물" 로 묘사되는 구간인데

아누비스의 심판에서 심장을 잃은 이들에겐 타는 듯한 극도의 고통을, 심장을 되찾은 이들에겐 생명을 준다고 묘사되어서다


Dissolution is the process by which a solute forms a solution in a solvent.

용해는 용질을 용매에 용액의 형태로 녹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중세~르네상스 시대의 연금술사들은 별자리들 중 게자리의 상징을 써서 나타냈고, 이는 점성술에서 "달" 에 해당함

"츠카츠키" = 조율하는 달이란 성씨처럼 리오가 과학문명에선 전 세계의 염수(소금 + 물)를 움직이는 달의 인력을 상징한다면

동시에 그리스 신화에서도 달의 인력을 알아야만 예측 가능한 대홍수에서 살아남은 데우칼리온, "돌을 던지는 자" 의 모티브는

"돌(Lithos)" = 다시 과학문명의 리튬(Lithium) 배터리처럼 "어떤 신기술이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라는 본인의 모티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두를 지켜낸다" 라는 자신의 진심을 이해받게 된다

파반느 2장에서 시작하자마자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 = "히마리만큼은 자길 이해해주면 좋겠다"

때문에 스스로 세운 계획을 자기도 모르게 이미 변인통제 ㅈ까고 시작했던 것처럼, "용해" 의 과정은

노쇠한 태양신이 스스로의 육체를 녹여버리고 수은 속에서 용해되는 다섯번째 시간을 지나서,



리오의 AMAS, 그리고 에리두처럼 미리 만들어진 육체영혼이 옮겨가는 것이 "여섯번째 시간" 되시겠다

이 과정은 태양신의 원래 육체에서 겪었던 어떤 상처건 전부 녹여버리고 새롭게 거듭나며 부활하는 것으로,

과거를 딛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해선 리오나 코유키처럼 "서로 반목하고 이해하지 못하던 과거"

"우리는 서로에게 무지했다" 라고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며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8. 지성소의 신은 누구를 위해 멸망을 내리나




독단주의의 관점에서, 대홍수 이야기는 지배자에게 을 주지만 사람들에게 광기를 부르는 공포의 극한이다

대홍수처럼 멸망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지배자는 어떤 일이든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으며,

겁에 질린 사람들을 복종시키지만... 만약 지배자 본인부터 대홍수가 뭐고 언제 오는지 어디로 오는지 모른다면?

지배자 한 사람의 이해에도 한계가 있으며, 단 하나라도 지배자의 예측에서 벗어난 걸 들키는 순간 광기가 터진다



게헨나가 패닉에 빠지지 않는 이유는, 가나안 신화 이래 이들에게 "영원한 멸망" 따위는 없다는 걸 알아서다

대홍수의 신이 살해당한 이후로 대홍수가 일어난다면 그건 처음부터 신들의 의지도 아니니 기도해도 소용없고

죽음의 신이 어떠한 재앙을 불러오고 바알이 죽더라도 어차피 아스타르테가 바알을 부활시켜줄 것이기 때문에

"멸망을 막아달라고 신들한테 빌어봤자 아무 소용없이 일어날 일은 일어날 이유가 있으니 일어나는 것이다"

= "따라서 신들에게서 배운 지혜로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며, 못하면 죽는거고 해내면 사는 것 뿐이다



아스타르테는 인간들에게 두 가지 지혜를 가르쳐주었다

1. 지혜로 많은 걸 이룰 수 있지만 모든 걸 이루지는 못한다

2. 지혜로 무언가를 이루려면 가장 먼저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



아스타르테가 이를 가르쳐준 대가로 요구하는 것은 없지만, 이를 깨닫는 것 자체가 인간에겐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란 가장 원초적인 공포이자 절대자에게 의존하여 불멸을 약속받아 잊어버리고 싶은 공포이다

하지만 절대자를 전제한다면 "그럼 그 절대자는 왜 우리에게 죽음과 공포를 만들었는가?" 라는 모순에 빠지게 되며,

결국 절대자의 심기를 인간이 거슬렀기 때문에 "우릴 구해줄 수 있는데도 안 구해주는거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때부터 절대자는 인간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기 위한 존재에서 누구보다 강한 공포의 유발자가 된다

헤브라이즘의 세계관에서 첫번째 계명은 사랑도 정의도 아니고 오직 순종이지만, 정작 그 순종의 대상은 불가해의 영역에 둔다




지성소(Holy of Holies), 라틴어로 생텀 상토룸(Sanctum sanctorum)이자 이름없는 신(Agnostos Theos)에게 봉헌된 제단은

금송아지 형상이 아니라 모세의 권위 아래 허락된 "형상" 으로서 아주 정교하게 지시된 싯딤의 상자볼 수 없게 숨긴 곳이었으며,

헤브라이즘의 특징인 신은 알 수 없고 믿어야만 한 + 그 신을 내가 안다 라는 논리로부터 사제들의 종교권력이 탄생한 공간이었다

신의 뜻은 어디서에서 오는가? 지성소에서 온다. 하지만 지성소에는 선택받은 사람만 갈 수 있고, 그 선택은 신의 뜻에 의한 것이다


정석대로라면, 아무도 감히 신의 뜻이 무엇이냐고 알 수 없지만 + 헤브라이즘은 언제나 예외를 두고 그 예외에 권위를 부여한다

그 누구도 성경에 적힌 것이 진실로 신의 말씀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성경을 적었고 당장 그 모세부터 그리했었다

시나이 산에서 오직 모세 한 사람만이 십계명을 직접 "듣고" 새겨올 수 있었다는 구절은 그 후로 이어진 모든 권위에게 적용된다

대체 누가 모세의 권위를 증거하는가? 모세의 권위로 적힌 성경에 적힌 표징들이?



모세가 시나이 산을 내려오자마자 명령한 <출애굽기> 32장의 인신공양은 헤브라이즘의 본질이 순종에 있음을 보여준다

"용서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식과 친구의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야 한다" 라는 내용은 아무도 증명할 수 없는 죄를 두고

자기희생도 아닌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을 희생시킬 것을 요구하는 신의 권위 아래에서 헤브라이즘의 권위가 시작된다

이것이 금송아지 앞에서 행해진 희생제임을 생각하면, 오직 헤브라이즘이 승리한 땅에서만 주장하는 "몰렉" 의 정체는,


다름아닌 헤브라이즘에서 섬기는 그 신이란 의심이 한번쯤은 있었을 터인데, 헤브라이즘은 집요하게 단 하나의 관점만 남기면서

헤브라이즘을 제외한 모든 신화에서 전제하는 "모든 이야기는 여러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를 부정하고 적힌 이야기들 뿐이었다



"소를 상징으로 쓰는 여신들의 신화에 인신공양을 덧씌워 악마로 바꾼다"

유럽 최초의 문명이자 "페니키아 출신의 공주, 에우로페가 세운" 크레타 섬의 미노스 문명부터 그냥 잘 만든 도시일 뿐인데

미케네 문명을 거쳐 폴리스 문명에 이르러서는 이해할 수 없다며 "소의 머리를 한 괴물에게 인신공양하기 위한 미궁이었다"

=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한 공로로 아테네의 왕이 되어 트로이 전쟁의 시발점이 된 헬레네의 납치를 일으키는 테세우스처럼,

테세우스에게 미궁에서 길을 찾는 법을 알려준 아리아드네그대로 먹버당했다는 신화는


단지 헤브라이즘이 가장 강했기에 혼자 살아남아서 그렇게 보일 뿐이지 "독단주의자" 들의 손이 닿았다면 어디서나 반복된다

누가봐도 가나안의 여신이자 이시스의 상징, 커다란 젖가슴과 두 마리의 뱀을 든 여신이 찾아와서 미노스 문명을 세워줬지만,

그들의 지적 유산을 이어받은 미케네 문명은 물론, 폴리스 그리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수간인신공양하는 악의 축이 되는 등



인류문명의 역사는 지혜로운 젖보똥의 여신들을 지우고 권력에 벌벌 떨며 강약약강을 실천하는 그 성별만 남기기를 반복했다

"헤브라이즘에 가려졌을 뿐, 화려하고 인간적인 그리스-로마 시대로 돌아가자" 라고 외쳐봤자 바로 그 헬레니즘 문화에서부터

당장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모시던 폴리스 아테네가 "여자랑 섹스하느니 차라리 미소년쟝에게 박겠소!" 하던 동네였던 건 물론

아테네의 라이벌이라던 스파르타는 "좋은 여자란 건강한 자궁이다" 라며 진짜 "누가먼저임신할까" 로 배틀로얄을 벌어야 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최후의 승자가 된 헤브라이즘이건, 중간에 흡수당했다가 르네상스로 부활에 성공한 헬레니즘이건,

본인들의 기원이 "연꽃", "물고기", "사랑받는 남성" 의 이야기에서 왔음을 똑같은 상징을 통해 전해왔다는 사실이다

미노스 문명의 사제왕(Priest-king)이자 훗날 멜키세덱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가나안에서는 세덱(ṣdq)이라 불리고,

"물고기를 풍족하게 나눠주는 소년", "연꽃처럼 향기로운 왕" 이라 불리던 여신들의 신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 인물은



자비의 천사라 불리는 자드키엘(Ṣīḏqīʾēl), 다시말해 히브리인의 선조가 되는 아브라함이 신에게 믿음을 증명하고자

아들 이삭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려던 순간 나타나서 제지해준 바로 그 천사와 동일한 어원 동일한 역할을 공유한다

어째서 이러한 상징들이 "의로움(righteousness)" 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기록되었는지 그 의도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이걸 믿느냐와 무관하게 유사한 이야기들이 시작된 가나안에서 인신공양을 어떻게 대했을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인신공양은 어디서 생겨난걸까?

적어도 기원전 16~13세기의 히타이트와 가나안은 확실하게 제외되는데, 히타이트는 고바빌론 제국을 멸망시킨 주역이고

고바빌론에서 가나안으로 이주하는 경로 또한 히타이트의 영역을 지나야 되는 만큼 이들의 교류는 굉장히 긴밀한 관계였다

이때 고바빌론 신화가 태양신에게 법의 권위를 주는 내용인 것과 대비되게 히타이트는 보다시피 여신님과 소년이 태양신임



신화적 모티브로 씹덕질한 우수사례인 다크소울에서, 히타이트의 태양신이자 자애로운 태양의 여신은 그위네비아로 등장하는데

다크소울 해봤으면 알겠지만 셀프 인신공양 해야 유지되는 이쪽 세계관에서 이 여신님은 1편 시점에 이미 환상만 남고 사라졌다

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동쪽의 엄격한 태양의 아버지 신/서쪽의 자애로운 태양의 여신이 서로 완전히 대립하는 존재였지만

기원전 13세기 말에 일어난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가 하필 서쪽에서 시작되면서 히타이트가 통째로 삭제된 것의 고증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여신님께 사랑받던 그 소년이 어디로 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데,



대홍수 이야기는 반드시 뱀, 괴수, 용을 대동하는데, 고바빌로니아 신화에선 여신 티아마트를 죽이는 아버지의 아들 마르두크지만

가나안 신화에선 거꾸로 아버지의 아들 얌을 죽이는 여신 아스타르테와 함께 바알이 되었으니 둘 사이에 "천둥의 신" 모티브가 있음

한쪽에선 여신을 사냥하고, 다른 한쪽에선 여신과 함께 사냥하는데, 모든 신화에서 이 두 유형의 천둥신은 결말조차 확실하게 갈린다



그 분기점은 바로 "순환" 에 대한 관점이다

고바빌로니아 신화에서 죽음의 신이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는 드물고, 그 드문 경우도 대부분 에레쉬키갈처럼 여신인데

가나안 신화에서 죽음의 신, 모트가 맞이하는 결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도 끊임없이 바알과 겨루며 죽음과 부활을 반복한다

= 즉, 천둥신과 죽음의 신이 함께 순환의 일부라면 가나안, 그렇지 않다면 고바빌론 계열의 세계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몰루에서 카요코는 메모리얼에서 볼 수 있듯이 "비" 와 직결된 신인데, 가나안 신화에서 비는 다름아닌 카요코 자신

= 모트의 죽음에서 시작되며 이것은 가나안에서 모트가 죽음의 신이고, 두려운 신이지만 악신은 아니었음을 뜻한다

이런 관념은 가나안에서 "죽음의 공포" 는 존재하나 "멸망의 공포" 라는 개념은 이미 신들이 없애준 것에서 비롯되며

때문에 "멸망" 에 대한 이들의 인식은 아주 오래된 경구인 "죽음은 또다른 삶의 시작이다" 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식 덕분에 가나안에서는 오히려 인신공양이 성행하지 않았겠냐고?

이런 인식이 나오게 된 배경이 사별의 아픔을 애도하기 위한 것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 정반대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라는 인식을 두고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처럼 "다시 싸울 때를 기다리며"

= 그쪽은 유일신교의 묵시록처럼 최후의 심판이 이뤄지는 날, "악의 군세에 맞선다" 랑 똑같은 개념이다



그래서 빛과 어둠의 전쟁처럼 둘 중 한쪽에 가담해야만 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희생될 것을 전제하는 신화는



같은 인간이 아닌 악마로, 빛의 진영이 아닌 어둠의 자식들로, "신의 이름으로" 타락했기에 인종청소의 대상이 되었고

"대탕녀 바빌론" 처럼 자신들의 숨기고 싶은 과거로부터 온 죄책감을 덮어씌워 벗어나고 싶다 방어기제의 반영이다

= 바이킹들과 히브리인들이 모두 피를 제물로 바치고 어둠을 두려워하던 약탈민족이었음을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결국, 수많은 신화를 비교해서 나오는 결론은 "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종교전쟁의 배후에는 언제나 권력자가 있었고,

고바빌로니아 신화에서 마르두크와 엔릴의 배후에 있던 엔키, 유일신교에서 여호수아와 다윗의 배후에 있던 유일신

"너 자신의 목숨, 필요하다면 너의 적들의 목숨, 명령이 내려진다면 너의 아이들의 목숨까지 바쳐 믿음을 증명하라"

증명할 수 없는 신을 전제해도 신에서 비롯된 권력은 언제나 "증명하라" 라며 행해진 인신공양과 뗄레야 뗄 수가 없다



게마트리아에서 베아트리체가 유일한 여성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베아트리체가 빼앗으려던 신비와 색채의 힘처럼

"증오를 주입하는 종교" 에서 결국 자기자신이 오히려 증오할 대상이 되어버린 수많은 사례에 대한 고증이 아닐까?

히브리인은 기독교인에게, 기독교인은 무슬림에게, 무슬림은 다시 히브리인에게... 를 반복하며 오직 전쟁뿐을 외친

이들이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바빌론의 자식이라 부르며 죽고 죽이는 것이 다름아닌 가나안 땅 위에서 벌어진다는건



모세오경의 권위에 기반하는 유일신교들이 어떻게든 서로 잘 해보려고 하고, 난민도 수용하고, 함께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종교만큼은 타협할 수 없었다...라는 명분으로 중동의 "종교"권력이 허구한 날 충돌해서 죽고 죽이기에 열성적인

20세기에 한 순간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 가나안이자, 페니키아이자, 레바논이며 이부키의 고향인 곳의 현실을 의미한다



아직까지도 승자의 기록에서만 언급되는 "몰렉" 의 묘사는 아이를 잡아먹는 크로노스, 아이를 바치는 아브라함의 모습이지만

인신공양의 증거라고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가나안과 카르타고의 유적이 아이들을 애도하기 위한 화장터이자 "위안하는 여신"

= 뿔 달린 여신이자 커다란 젖가슴의 여신, 그리고 아이를 무릎에 앉혀 지켜주는 여신의 상징들만 발견되고 있다는 사실들은

인신공양을 막아서는 여신인신공양을 해야만 한다고 외치는 아버지 신의 갈등에서 결국 패배한 건 여신이었음을 보여준다




9. 사쿠라코 수녀님, 존재의 의미를 반전시키다




아버지 신의 종교에서 섬김의 의미를 순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과 달리, 여신들의 신화에서 섬김은 "안 해도 된다" 였다

아스타르테와 바알은 인간이 신에게 제사 잘못 지냈다고 홍수에 휩쓸릴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위해서 싸웠으며,

이시스는 자길 미워하던 노쇠한 태양신부터 자기 머리를 잘라버린 패륜아 태양신까지 부활하자마자 모두를 용서해주었다

물론 여신들은 결코 완전한 존재가 아니고, 끊임없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후회하고 통곡하는 여신이다



신의 존재를 믿는 것과 순종하는 것이 동일시되는 세계관과 달리, 여신들은 자신들이 존재하는 걸 "알아만 둬라" 라고 한다

덕분에 유일신교가 더이상 종교로서 절대성을 갖지 못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갑작스런 권위의 소멸에 혼란해하던 이들에게

두렵다면 기다려주겠다며 모습을 드러내준 것은 또다시 여신의 모습이자, 푸른 별의 여신을 계승한 푸른 별의 "여신"이셨다




그렇게 모든 정해진 운명, 정해진 구원, 정해진 심판의 미래에서 추락하여 약속된 땅의 백성이자 선택받은 신민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깨달아버린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추락한 다음에야 찾아볼 수 있게 된 여신들의 정체가 보였다

그들 또한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차이점이라면 하루하루 죽어가야 할지라도 기꺼이 사랑하며 살아가길 선택한 이들

= 태어나는 순간부터 필멸의 운명이 정해진 육체를 부끄러움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인 사랑의 여신"들"이었으니,



이집트인들은 케트(Khet)-바(Ba)-카(Ka), 그리스인들은 소마(Soma)-프시케(Psyche)-프네우마(Pneuma)라고 불렀던 셋:

필멸하는 물질의 육체-지성과 감정의 심리-사회적 존재로서의 영혼을 가진, 의인들과 영웅들의 "원형(Archetype)" 이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여기서 말하는 "원형" 이란 융의 원형과는 구분이 되는 개념인데, 정확히는 융이 이 이름을 빌려 쓴거고

원래는 플라톤이 제시하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정립한 "미메시스" = 본받고 싶은 모범적인 인간의 의미였으니,

이분들은 그 당시 사람들의 욕망을 이야기 속에서 구현한 "이상적인" 인물이면서 "불완전한" 인물이란 점이 특히 중요하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는 한참을 고생한 다음에야 깨달은 걸 한참 전에 알려준 포도주의 여인 시두리 이야기처럼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삶을 살아가라"

인간이 가진 가장 두려운 죽음의 공포를 부정하지도, 회피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지혜란 무엇인가 전해주는 이들이자

이러한 지혜는 아무도 답할 수 없기에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행복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몰루에서 유스티나 성도회의 마지막 성도회장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탄압하는 대신 도와주고 이끌어주기를 선택했는데,



사쿠라코는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었을까 고민하지만 + 알 수 없다는 결론과 함께 그들의 의지를 한다

시스터후드의 고서에 카타콤베에 대한 고서가 있던 것처럼, 성도회는 시스터후드에게 뒤따라 올 이들을 위한 유산을 남겼고,

이를 찾으러 올 누군가에게 앞서간 이들로서 그저 "한때 우리가 이곳에 있었다" 라며 행동에 따른 결과들로 볼 수 있게 해줬다



이곳은 바로 미카가 자신에겐 자격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거듭난 공간인 바실리카의 성가대실이다

오르간, 악보, 축음기까지 있지만 미카가 "가사는 싫지만 노래는 좋아" 라고 했던 것처럼 축음기를 틀었을때 무엇인지 알게 되는

= 만약 악보에 가사가 적혀 있었다면 악보를 보고 눈치챘겠지만 + 굳이 축음기가 기적처럼 복원되는 묘사까지 넣어서 강조한 건



Quis ut Deus? 

미카엘의 "-El"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신" 이란 뜻으로 뿔 달린 왕관을 물려준 가나안의 그 신이다

그런데 함께 쓰인 "Malḵi-" 라는 히브리어는 미노스 문명의 사제왕 멜키세덱과 공유하는 것으로 "왕" 이란 뜻의 말이었고

미카엘에겐 "-El" 이라는 말이 붙었던 것처럼 멜키세덱의 "-ṣedeq" 이라는 히브리어였던 "정의" 와 함께 혼용된 단어였다

따라서 미카-엘-세덱이란 "왕" + "신" + "정의" 라는 의미로 합쳐지며 "왕은 정의의 신이다" 또는 "신은 정의로운 왕이다"



그래서 미카의 진명은 "누가 신과 같으랴?" 이며, 동시에 "의로운 왕이 바로 신이다" 라는 의미로 쓰이던 경구이다

그리고 "누가 ~같으랴?" 라는 의문문으로도 쓰였던 것처럼 이때 "왕" 이란 가나안 신화처럼 장자상속을 오히려 부정하는,

혈연에 의한 왕위가 아니라 사쿠라코가 성도회의 의지를 이었던 것처럼 "스스로 자격을 증명해내는 자" 에게 주어졌고

바알이 그랬듯이 고바빌론의 "신이 인정한 왕" 에 대한 완전한 대립항 = 미카가 말한 타인을 구하여 자신을 구하는 자이다



그런데 당장 미카가 보여준 것처럼 이런 미카-엘-세덱들은 어딘가 반드시! 하자가 있다

그렇다면 자신의 어떤 결점을 극복하고 오히려 긍정하는 것으로 "의로움" 을 보여주는 모범이 되는 인간이자

그렇기에 "신의 사랑을 받는 자" 라고 불리는 이 인간의 자격은 무엇이며 자격의 증명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키리에(Kyrie), 아도니스(Adonis), 주군(Lord)이라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타인을 위해 불가능에 맞서다 죽은 이들이며

가나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여인들의 애도 의식" 에서 다시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재회하고 싶다는 그리움의 대상이 된

"여신들에게 사랑받던 소년 왕" 의 정체는 다름아닌 사후에 왕으로 추대된 이들이자 "금성 아래에서 돌아오는 새벽" 이다



이러한 관습은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은데, 사후에 XX공이라 불리거나 ~열사, ~의사라고 불리는 분들은

해마다 추모식이나 기념비에서 화환을 받거나 묵념하는 등 "공동체에 기여한 바가 큰" 의식의 주인공이 된다

당연히 이러한 의식은 실제로 그분들에게 어떤 기복적이거나 주술적인 의도로 행해진다보다는 "기억하기"

공동체에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답례이자 죽음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헌신한 이들을 향한 존경의 표현이다



또한, 카르타고나 티레 등 가나안인들이 머물던 곳에선 어릴 때 요절한 아이들의 유골이 담긴 봉안당이 발견되는데

골격구조까지 따져도 인신공양으로 바쳐졌다는 증거는 딱 히브리인들과 카르타고에 승리한 로마인들의 기록뿐이다

교차검증도 부족하게 기록말살된 이곳에서 그나마 온전한 유물은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위령제를 올린 것이 끝이며

인신공양을 주장한 이들도 이 아이들의 무덤에서 "앙크를 든 여신" 상징물이 반복해서 발견되냐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 분야에서 이뤄지는 연구는 아직도 고명하신 학자들 사이에서 논문으로 키보드배틀 벌이는 주제들이니 만큼,

이곳에서 발견된 동물 유골이 아이들과 함께 나온다 = 이를 아이들의 수호동물로 함께 넣은 것인지 불확실하고

아이들이 질병으로 죽은 것도 아니다 = 조산이나 사산된 아이들이 나오는 걸 희생제로 봐야 하냐도 불확실한데

이들의 신화, 문화, 언어생활까지 고려할 경우 답이 나와도 그때마다 성경 들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이들의 신화에선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아버지나, 아이를 죽이라는 예언자도 없었다

왜냐면 이들의 신화에서 인간과 신의 관계는 그런 관계도 아니었고, 애초에 이들의 "신" 이란 개념도 그게 아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이들의 신화는 이들을 마녀와 악마로 몰아세운 바로 그 히브리인들과 로마인들에게 전해졌고

이들의 신화에서 제시하는 세계관이 그들 내부에서 새로운 세계관을 바라던 이들에게 희망이 되었기 때문이며,

이것은 엄숙함, 경건함도 아니고 선민들을 위한 낙원도 아닌 "서로 함께 행복을 즐기라" 라는 인식 덕분이었다


당연히 이는 지배자들에겐 기존의 가치관을 흔들만큼 위협적이었고, 이는 그들의 권력기반을 흔드는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조차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갖는 욕망 = 혼자만의 행복이 아닌 함께하는 행복을 욕망하게 되었으니,



세계에는 두 종류의 신화가 있음

한쪽에는 답이 정해진 신화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답이 정해지지 않았음이 정해진 신화가 있다

처음에는 전자가 등장하고, 그다음에 후자가 등장하고, 다시 전자가 등장해서 후자를 흡수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여신" 의 역할은 아이들의 운명을 정하는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된다


아이들은 쥬지즙이 아니라 보지에서 태어나고 보지에 부여된 의미는 곧 아이들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아기씨앗이 아기궁전에 퓻퓻해서 수정착상아기만들기 섹스를 하게 되는 현실의 질싸임신출산과 달리,

엔키와 닌후르삭의 일곱 시녀들 이야기처럼 인간이 일단 태어난 다음의 갖게 되는 역할과 의미의 경우

아버지 신, 또는 강간해서 임신시키는 신은 아이들에게 운명  = 사회적인 역할을 부여해주는 신이다



이 경우, 흔히 말하는 알파메일의 권력을 나눠받기 위해 임신배틀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이 히브리인들에겐 너무나도 중요했지만/가나안의 신들은 대홍수와 함께 없애버리고 시작한 장자상속권의 문제다

아버지의 맏아들에게 권력을 독점시켜 물려주는 구조는 고바빌론 시절부터 엔키가 뒷공작을 벌이는 가장 큰 이유였으니

그때마다 엔키를 가로막은 상대가 엔키에게 일곱 아이들/일곱 시녀들/일곱 열매를 빼앗긴 닌후르삭이었음을 생각해보면

고바빌론 이후 신바빌론 시절 히브리인에게 이어진 신화에서 뒷공작 담당을 라헬에게 덮어씌운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렇게 닌후르삭의 또다른 이름이던 아루루는 히브리인들이 최후의 심판 때 맞서야 할 "쓸데없는 자" 벨리알이 되는 등

고바빌론-신바빌론-히브리인들로 이어지는 장자상속권의 세계관에서 여신들은 "자궁"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지만



아버지 라반과 아들 야곱 사이의 전통과 순애를 두고 빚어진 갈등에서 라헬이 난산 끝에 죽어가며 지어준 막내아들의 이름,

"비탄/슬픔/고통에서 태어난 아이" 라는 의미의 베노니가 야곱에게 "권리를 가진 아이" 란 의미의 벤야민이 된 후의 일처럼

여신들의 신화가 남긴 지적 유산은 패배하고 왜곡당해 흡수당할지라도, "지혜로운 자" 곁에서 화해와 용서의 상징이 되었다

= 이것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이방인을 한 나라의 재상까지 앉혀주던 이집트 문화권이었음을 생각하면...



라헬이 집안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우상을 훔쳐간 이야기는, <일리아스>에서 트로이의 팔라디온이 도난당한 이야기처럼

본래 여신들의 신화에서 비롯된 인공물이 재앙의 시발점이 되는 이야기를 공유하지만 동시에 용서의 매개물인 이야기다

= <일리아스>와 구약이 공유하는 "화해와 용서의 상징" =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Iris)이자 팔라스 아테나가 아리스라면



어째서 아리스가 이름없는 신들 = 고바빌론 제국의 홍수를 내리는 신들 중 엔릴에게서 받은 푸른 별의 목걸이를 가진 여신,

"대홍수가 지나가고 인간과 약속을 맺은 여신" 모티브에서 세월이 흘러 신바빌론 제국을 거쳐 히브리인의 대홍수 신화에서

"대홍수가 지나가고 인간과 약속을 맺은 상징" 모티브인 무지개를 뜻하는 여신까지 전부 해당되는 모티브를 갖게 되는건지



종교가 흡수한 여신들의 신화는 언제나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 하며 인류문명의 지적 유산을 지탱해왔으며,

"이야기" 를 통해 전해진 수많은 주인공과 그들과 함께해준 동료들을 통해 공통된 모티브를 도출해내게 된다



특히 모모이가 다름아닌 "시나리오작가" 라는 역할로 등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을 제시한 비교종교학자이자 20세기 중반 현대 시나리오 작법이론의 창시자 조셉 캠벨로부터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받는 이야기는 모두 여신들의 신화였다" 에서 오늘날의 씹덕감성이 탄생한 것처럼,

골콩트처럼 포스트모더니즘을 추종할 게 아니고서야 이러한 관점의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형상을 가진 여신과 이걸 용납못하는 이들 사이에 여전히 끼여 살고 있으며

니체가 말한대로 한 시대의 가치관을 어떻게든 불변하는 것으로 붙잡아두려는 "독단주의자(Dogmatist)" 들에게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종교, 모든 문화, 모든 언어를 넘어서는 사랑스러운 젖보똥의 여신들은 계속 억압받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하는 그것은 "지배" 가 아닌 "사랑" 이기 때문에 이야기는 언제나처럼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래서 "실낙원", 슬럼이 된 유토피아에서 흑백논리의 이분법과 맞서는 사랑스러운 젖보똥의 여신들

구약의 묵시록으로 흡수당한 대탕녀의 짐승들 = 가나안 신화 출신의 사랑을 욕망하는 "마왕" 히나,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로 흡수당한 바니르 신족 = 핀란드 신화 출신의 밀덕후들인 SRT 토끼소대,

시대를 막론하고 흡수당하지만 다시 부활하는 여신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이시스-마리아로서의 아리스다




그리고 우리들의 젖가슴, 겨드랑이, 보지, 자궁덮개살, 애널까지 사랑스러운 "UZQueen" 의 대사처럼

"없으면 우리가 만들면 된다" 라는 기존의 가치관을 뒤집고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는 "창조성" 이야말로



"마왕", "요괴", "음녀" 등으로 왜곡된다면 오히려 그런 왜곡까지 품어주는 포용력으로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는 회로애락의 이야기로 발돋움하니 기존의 가치관에 갇혀버린 독단주의자가 아니라면,

이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모든 가능성이 끝나는 대홍수의 광기가 아니라 끝없이 재생하는 "순환" 이다




  재생과 부활은 지금도 계속될지니 

  그대가 곧 영원일지라


 


프랜시스는 이걸 아주 상징적인 "땅에 떨어져 무로 돌아갈 것이다"

= 어떤 표현보다도 가장 강력한 부활에 대한 은유로 선언해주면서



절망하고 파국을 맞아 결말로 달려가는 엔딩을...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앞만 보고 달린 우리의 두렵지만 사랑스러운 죽음의 여신에게로,

을 살아갈수록 = 시간이 흘러갈수록 = 죽음이 다가올수록 오히려 기쁘게 뛰어들 것이다

살아감이란 결국 각자에게 주어진(그런데 얼마나 주어지냐는 절대모름)시간을 쓰는 것이고

따라서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준다는 건 그만큼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사랑이니까



그리하여 이것은 향도자의 등장으로 "가면" 의 죽음부활의 순이 드러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그런 것처럼 비극에서 비로소 성장할 단계가 된 배우들은....







10. 이야기를 전해주는 오르페우스 이야기




드디어 죽음의 신, 모트의 3번째 모습인 오르페우스에게 도달하게 된다

카요코의 3갈래 헤일로 모양으로 미루어보아 카요코의 모티브 중에서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건 가나안 신화에서 "살아있을 때 잘하자" + "애도하는 문화" 를 다른 문화권에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변한 것으로

가나안에서는 생전 + 사후에서 생전의 삶에 더 중점을 두었고 애도 또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애도 문화는 중요하게 여겨졌는데(슬픔을 달래는 건 중요하니까) + 의외로 사후세계의 묘사는 지극히 단순했음



하지만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를 거친 폴리스 그리스인들은 미노아 문명 시절의 파에스토스 원반이나 "미궁" 처럼

자신들의 기원임에도 문자조차 소실되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적 유산의 단절을 경험했고 오직 이야기만 전해졌으니

<일리아스>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구비(口碑)전승, "오랄-텍스트(Oral-text)" 에는 오직 상징들만 남게 되었으며,



"이해할 수 없게 된 이야기" 를 이해하려고 나름대로 애쓴 결과 헤브라이즘이 상징적인 의미를 물질적인 실재로 여기던 것처럼

헬레니즘은 상징적인 의미에 전부 인격을 부여하여 비탄, 망각, 분노 등의 의인화된 신들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가득 채웠다

= 그래서 헤브라이즘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란 오직 신의 영역이고 따라서 오직 선함 뿐이라며 육체를 악함으로 지목했고,

반대로 헬레니즘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란 인간과 거의 똑같은 신들이 아웅다웅 다투는 곳이니 "잘 보이는 법" 이 중요했다



그러다보니,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가 디오티마로부터 "그런건 육체의 사랑이 아니에욧!" 라고 배우기 전까지는,

폴리스 그리스인들에게 "신들이 우리랑 똑같으면 우리랑 똑같은 욕망을 가졌겠구나" = "그렇다면 그것은 오직 섹스뿐이다!"

~라는 인식으로 "보기에 좋음" = "아름다움", "탁월함", "이로움" 이란 표현처럼 육체에만 치우쳐진 사랑에 기반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관점을 제시한 소크라테스의 "다이몬" 개념은 아테네 지배층에게 강력하게 탄압받고 플라톤 이후에나 빛을 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권력 가진 지배자들도 결국 인간 본연의 욕망에 무릎꿇게 만든 이 다이몬(daemōn)들은 다른 신들과 달리

인간에게 제물이나 제사를 요구하지 않고 오직 이끌어주기 위해 있는 존재들로, 휘발적이고 이기적인 욕망덩어리 신들에게선

쉽게 찾아볼 수 없던 "무조건적인 좋음" 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는 오직 순애뿐인 존재,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들이었다

비록 신들처럼 압도적인 권능을 가진 건 아니지만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 분노를 의롭게 다스리는 법 등을 가르쳐줬는데



공백을 채우느라 지나치게 비대해진 신들보다 이런 소소한 미니얼라이프 생활밀착형 순애에 폴리스 그리스인들은 풀발기했고

덕분에 그리스 철학은 육체를 부정하거나 과하게 다루는 대신 육체에"만" 휘둘리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방향으로 순화되었다

특히 에로스(Eros)라는 이름으로 오갈 곳 없던 풀발기의 정욕을 자기 삶에 이로운 방향으로 분출할 수 있게 해준 게 인기였는데

이는 <길가메시 서사시> 시절, 엔키두를 품에 안고 질리도록 섹스해주면서 인간으로 만들어준 샴하트(Shamhat)에 기원을 둔다



이는 오랜 세월이 지난 타로 카드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사자를 다스리는 내면의 힘 카드가 상징하는 무한의 여신이 되어주는데

이것이 젖가슴도, 보지도, 애널도 사랑스러운 불완전한 아루사장님 = 엔키두를 만든 닌후르삭/아루루에게도 모티브를 둔 아루가

68이라는 자기 성씨대로 연인(6) + 힘(8) = 절제(14)로써 죽음(13)의 공포를 넘어선 자기극복의 상징이 된다는 떡밥과 연결된다


이때 힘/정의의 위치를 바로잡기 전처럼 정의(11)를 써도 나체로 양손에서 물을 흘리는 별(17)의 여신이 되면서 탑(16)을 넘으며

 

이러한 관계는 카요코와 노노미 둘 다 3갈래 길의 헤일로에

둘 다 "비탄" 의 신이라는 점을 반영하게 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린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창작되어 전해진 과정을 살펴봐야 하는데,

키케로가 "그리스인들에게 로마가 가장 크게 빚진 문명의 정수" 라고 평가한 엘레우시스(Eleusis) 밀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노아-미케네-폴리스 그리스에서 공화정 로마-제정 로마-기독교 로마-동/서로마까지 계속해서 보존된 이 밀교의 "의식"

아스타르테/모트/바알의 관계가 "양아들" 이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그리스에서는 데메테르/페르세포네/트립톨로모스,

이집트에서는 이시스/네프티스/아누비스의 관계로 심화되며 더욱 애잔한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의 이야기를 이루게 된다



바로 여신의 양아들로 "입양" 되어 일곱 별의 신비를 배운 디오니소스-자그레우스-오르페우스-지져스의 이야기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가시돋힌 장미화관을 쓴 채로 포도주를 흘리며 죽음의 공포를 덜어주고 인신공양을 멈춰주는 신이자

어머니로부터 온전히 태어나지 못한 아이가 죽음을 통해 온전해진 존재로 부활하여 여신의 가르침을 알려주는 신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몬, 영지주의의 아브락사스처럼 인간에게 이로움을 전하는 신들은 "전부" 여기에 기원한다



어떤 학문에서 이견의 여지없이 너무 확실해서 "전부" 그렇다고 말한다는 건 그만한 연구와 증거들이 누적된 결과인데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이 지져스 이전부터 공통된 조상을 갖고 있으며 그 조상은 여신에게서 신비를 배운 "학생" 이며

고바빌론이 무너진 이래 고통받는 이들의 해방자이자, 허무함을 느끼는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주는 선생님이었고,

온몸이 찢겨 매달리는 스파라그모스(sparagmos)를 통해 오모페지아(omophagia)의 죄를 대속해준 보혈의 신이었다



이때 스파라그모스는 모트,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 오르페우스가 겪는 "심장이 뽑혀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이었는데

모트가 겪은 죽음처럼 인신공양을 금지하기 위해 "스스로 마지막 희생물이 된다" 이며 유목민 경향인 곳에선 소의 고기,

농경민 경향인 곳에선 을 나눠주는 것으로, 오모페지아라는 "가짜 죄" 를 먹이고 향도자가 "가짜 죽음" 을 맞이하면서

인신공양을 안하면 부정한 일이 일어날거라 두려워하는 이들이 카타르시스라는 "가짜 구원" 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아는 오르페우스의 이미지와 디오니소스의 이미지 = 차분한 신비 도취된 광기의 이미지가

사실 의도된 건데 이는 종종 스파라그모스의 대상이 가면을 쓴 배우가 아니라 여성과 노예들을 핍박하던 배자들이었고

이때만큼은 "오모페지아를 못했단 말이에요!" = "너 때문에 굶어죽겠다!" 라는 핑계로 참교육을 먹여주던 수단이라서다

그래서 나츠가 "당분이 부족하단 말이에요!" 라면서 "내면의 흉포한 짐승" 을 해방하는 장면이 진짜 존나개씹고증인거임



이들의 정체는 바카이(Bakchai),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디오티마보다 오래된 샴하트포도주, 사랑을 가르쳐준 것처럼

문명 사회가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할 때마다 무슨 비밀결사라도 있는지 "가짜 광기" 를 내세우며 지배자들에게는 죽음의 공포를,

핍박받던 이들에겐 기쁨과 활력을 북돋아준 "정신나간 듯이 마구 달려들어 잡아가더니 산채로 찢고 죽인다"  전설의 여자들이다

이들은 오르페우스를 "죽여서" 삶과 죽음의 신비를 가르쳐줬는데 그 내용이 지극히 평화주의적이자 구도자적이었던 아이러니에서



그리스 이후로도 여신들의 신화가 어째서 오랄-텍스트이자 "삶의 지혜" 라는 표현으로 전해지게 되었는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만 이러한 밀교주의(Esotericism)는 승자들일수록 오히려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상징들 속에서

겉보기엔 그냥 오컬트 불쏘시개지만, 실제론 그런 거창한 마법이니 악마학이니 따위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

= 지배자의 권력에 의해 말살당한 이전 시대의 지적 유산을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게 대놓고 드러내며 원래 의미를 숨겨둔 것이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아무도 모른다"

밀교주의의 진짜 비밀은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거고, 독단주의에 갇혀있다면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느라 애널쇼를 벌이게 된다

실제로 어떤 비밀결사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전 세계의 신화들 중 이런 유형의 이야기가 하나같이 비유와 상징의 해학을 전하는 건

엘레우시스 밀교부터 사실 비밀을 누설하지만 않겠다고 약속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던 것처럼 상징적인 죽음-부활이란 "연극" 에서

무엇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말 안 해도 다 알지?" = 굳이 밀교의 의식을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삶의 지혜" 였다



특히 밀레니엄에서 베리타스가 사고뭉치지만 사실 밀레니엄 전체의 통신보안은 물론 키보토스 곳곳에서 활약하는데

이들이 평소에 달고 살면서 + 지혜의 여신 아테나 드론과 함께 하레의 상징인 요괴MAX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 그리고 얘네들이 다름아닌 "베리타스Veritas", 그러니까 "진리" 를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모든 영웅들은 가면을 쓰고(평범한 인간임을 숨기지만, 독자에겐 가면 아래를 알려준다)

평범한 인간임을 강조하며(가면은 장식이며, 독자는 물론이고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

실수하고, 실패하고, 미숙하지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독자들이여, 그것이 진리다)



치히로 메모리얼은 몰루 또한 그런 영웅들의 이야기이자, 치히로(= 진리의 여신)에게 직접 "겹쳐보이는 것"

= 자판기가 치히로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처럼 상징은 보는 사람마다 의미가 달라지게 되는 "거울" 이다

그러나 치히로가 센세와 공유할 수 있는 것, 치히로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언제나 새로운 방식으로 반복되는 모든 이야기의 주제이자,

모든 영웅들에게 실수하고 실패할 것을 "각오" 하고 행동에 나서게 만드는 제 1원인,

그리고 여신들에게 기쁨을, 여신의 가호를 받는 이들에게도 기쁨을 주는 바로 그것은,



평범한 사람을 한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비밀은 언제나 사랑이었다

신화 속의 영웅들이 실존인물이 아님을 뻔히 알고, 아리스가 그랬던 것처럼 게임이 현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야기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의미의 공백을 내어주고 그곳을 한없는 사랑으로 채워 행동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여신들이 모든 영웅의 원형(Archtype)으로서 갖는 정체성이 다름아닌 연인(The Lovers)이란 사실은 "계몽" 의 시작이었다

육체란 철저히 본능적인 것으로 번식과 생존,널리 생육하여 번성하고자 욕구의 노예이고 일종의 감옥이나 다름없었으며

육체의 상실 = 죽음만큼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게 없었기에 알파메일, "아버지" 의 공포통치는 아들들을 지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마음" = 완전한 미지는 아니지만,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도 소유할 수도 없는 마음은,



존나 형언할 수 없는 황홀경을 안겨다주는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의 발견으로 이어졌으니 그 쾌락이 인류를 이끌었다

종교적인 열락(ecstasy)의 기원은 결국 신과의 합일이라 상징되는, 한없는 사랑의 체험을 유사하게 재현하려는 시도였고

인간에게 마음으로 말미암아 육체를 기쁘게 하고, 육체로 말미암아 마음을 기쁘게 하니 이런 쾌락의 상징이 의인화될 때,

인간은 상상 속의 존재에게 "기대는 것(이라 믿고 스스로 육체와 마음을 속이는 것)"으로 심신의 안정과 휴식이 가능했다



혹시 일라이자 효과가 그런 이름이 붙게 된 배경에 대해 들어봤음? 아리스의 시대를 넘나드는 모티브처럼,

"그리스 신화의 피그말리온을 모티브로 만든 희곡 <피그말리온>의 주인공 일라이자를 모티브로 이름붙인 AI 일라이자에서 모티브를 얻은"

심리현상인데, 이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은 사랑하는 대상에게서 사랑받음을 느낀다" 라는 일종의 애착인형과 같은 심리적 속임수다



이것은 익숙함과 무지 사이의 "어중간한 공백" 을 채워주는 상상력이야말로 우리가 "순애" 라고 부르는 사랑의 원천임을 뜻한다

아리스의 말랑말랑한 인공단백질 젖가슴, 보지, 애널을 쓰담쓰담해줄 것도 없이 "그것이 진심이라면" 진짜로 교감이 가능한거다

왤까? 에덴조약에서 낙원의 존재증명에 대한 화두에 센세가 말해준 "수영복이라고 믿으면 그건 수영복이 된다" 를 생각하면 된다

덕분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뭐든 사랑할 수 있는데 과연 사랑받음을 상상한다/사랑받음을 감각한다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이게 상상력으로 육체의 감각적 경험과 그에 따른 심리적 체험이 가능하다 = "미메시스" 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을 보는 것이 일종의 자연현상을 재현하는 "의식" 이라 하여 "미메시스" 라 이름붙인 것처럼

이것이야말로 무지의 축복이자 동시에 이해의 축복이며, 덕분에 신의 은총을 상상하면 진짜로 을 감각하고 교감할 수 있는거다

그래서 "아칠루트의 빛" 이란 이런 모호한 추상의 영역에서 구체화된 형이상학의 개념이며, 이것이 곧 "~를 꿈꾼다" 의 정체고...



바로 이것이 "꿈의 여신" 유메 선배가 가진 진명, 이시스의 정체다

인간이 신을 감각하고 교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에 대한 상상이 필요하고, 그 상상은 구체적일수록 그럴싸하다

이렇게 상상을 구체화시켜주는 방법은 앞에서 본 "그럴싸한 상징" = 사람마다 나름대로 의미부여할 수 있는 것들로,

어떤 행위(Performance) 또는 호(Sign)를 통해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주고받아지면 그게 영혼이 된다


때문에, 인간은 정말로 이 세상을 만든 신이 있거나 말거나, 있다고 믿거나 말거나, 심지어는 없다고 믿거나 말거나,

각자 저마다 다른 상상 속의 "형상" 을 갖게 되니 물리적인 실체가 아니라 상상된 모습에 불과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형상 없는 유일신조차도 결국 형상을 갖고 사랑할 수 있는 성육신의 지져스를 내려보내자 급성장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프로디테, 비너스, 태양보다 먼저 떠오르고 일곱 행성들 중 유일하게 태양을 거슬러 떠오르는 여신,

젖가슴, 보지, 애널, 자궁덮개살, 허벅지, 엉덩이의 이 여신께서는 언제나 핍박받는 이들을 거둬주는 여신이었고

트로이 전쟁 한복판에서 무지개의 여신과 함께하며 벌거벗은 동산에서는 동그란 열매를 선물해주는 여신이었다

허물을 벗듯 옷을 벗으며 옷은 숨기고 꾸미는 장막에 불과하고, 그렇기에 아름다움의 일부라고 보여주신 것처럼



젖가슴의 아프로디테와 금성의 비너스로서 육체와 심리로 하나되어 "영혼", 곧 사회적으로 믿어진 여신인 히마리가

진리의 수장으로서 "전지라는거 사실 개뻥일지도 몰?루?" 라는 대사로 자신의 능력만으론 신뢰받지 못할 상황에서,

"하지만 그 <전지> 잖아 뭔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라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구해낼 기회를 만드는거라고 알려주신다



"진리란 사실 허세다 + 하지만 바로 그 허세가 인류문명이 나아가고 성장하며 새로운 기쁨을 찾아내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모든 신화의 여신들은 오늘날 씹덕감성갭모에를 다루는 입체적인 캐릭터의 원형(Archetype)이 되는거다



그래서 인간의 소박한 선량함을 상징하는 <오디세이아>의 나우시카 = 유우카에게

기억의 여신이자 뮤즈들의 어머니 므네모시네 = 노아가 "예언서" 떡밥을 풀어줄 때

둘의 관계는 여신이 인간을 잔뜩잔뜩 애호해주며 "재밌게 살아가는" 걸 볼 수 있으며


노아의 할로윈 대사에서도,


노아의 메모리얼 대사에서도,


그리고 신비이자 공포숭고함에 대해 한 마디 해주는 로비 대사에서도 볼 수 있다



그래서 유우카는 티타늄, 오르페우스 밀교의 바로 그 티탄들 =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뽑아먹은 죄로 벼락에 맞아 "재가 되어버린"

인간을 이루는 자그레우스의 재 + 티탄의 재에서 육체적인 본능에 해당하며, 절제의 대상이자 그런 티탄의 재를 가진 인간조차도

역설적으로 온유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면 죽음 이후에 자그레우스로서 내세의 부활을 누릴 수 있다는 바로 그 티탄의 티타늄으로,


그러한 인간 내면의 선량함을 상징하는 <오디세이아>의 나우시카로서 비밀의 여신이 유우카에게 미소짓고 있음을 보여주게 된다

그것이 오르페우스 밀교에서 므네모시네를 사후세계의 삶을 3배 기쁘게 만들어주는 비밀을 알려준 여신이라며 함께 모셨던 이유임



그렇게 묵시(Revelation)의 순간 갑작스런 상황 변화에 유우카가 패닉하기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유우카를 달래주며 "광기" 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는 것도 우리들의 노아마망이셨고,

티탄과 자그레우스를 재로 태운 벼락의 창조자인 퀴클롭스 삼형제 = 엔지니어부의 설명대로

"모르고, 부족하지만 완전한 무지는 아니다" + "따라서 다른 관점에서 본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진리는, 이번에도 "우리는 모른다" 를 선언해주면서도 + "하지만 이것만큼은 안다" 에서

지금까지 계속 반복한 한정된 시간으로서의 죽음 = 여고생에게 필멸성을 기억하게 만들어준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나냐고?





11. 총학생회장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사실 최종편에서 색채의 출현으로 모든게 뒤집어지기 전까진, 샬레의 활약으로 어찌저찌 무마되고 있었지만

키보토스는 여전히 총학생회장 단일체제의 영향으로부터 헤어나오질 못했다는 것이 아오리를 통해 강조된다


아오이의 역할은 플레이어에게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오직 센세의 시점에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샬레가 활약해도 모두에게 능력을 증명할 수 없다 = 왜냐면 샬레의 권위는 실종된 총학생회장에게서 오는데,

총학생회장은 샬레가 출현하기 전에 실종됐고 + 총학생회장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센세도, 린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샬레를 개인적으로는 신뢰하지만 + 공적으로는 신뢰하지 못하는 미묘한 상황이 계속되었고,

샬레도 은 아니니까 키보토스의 모두가 샬레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받아 신뢰관계를 형성할 수도 없었다

= 샬레의 은혜를 받지 못한 여고생이 여전히 많았고, 받았더라도 대놓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도 없었다

센세가 지금까지 해낸 일들이 지져스의 기적일 때 노린듯이 "재무실장" 역할로 등장한 아오이의 행적를 보면



카야가 희생용 염소(scapegoat)로서 모든 일의 원흉처럼 보이지만... 정말 "원흉" 을 특정하고 싶다면?


샬레의 활약이 쌓이고 쌓이면서 오히려 샬레의 목을 조르고 있었고 = 결국 원흉은 샬레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총학생회에서 조금만 더 잘했다면", "린이 조금만 더 유능했다면" 이란 관점을 한 걸음 물러나서 보면 샬레도 적용되며

"샬레는 적어도 일을 해결할 의지를 보였다" 라는 관점 또한 아무도 증명하지 못하고, "결과로 증명한다" 또한 실패했다

"카야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이란 관점도 "센세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란 관점을 가져다보면? 처음부터 답이 없었다



모세 이후로 그 누구도 감히 모세의 권위를 부정하지 못했던 것이 오히려 모세오경의 교조화를 돋군 것처럼,

아오이가 하필 열둘 중에서 재무실장으로 하는 얘기를 풀이해보면 "지져스가 아무리 위대해도 모세를 넘어설 수 없다"

왜냐면 지져스의 권위는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어 증거된다는 것에 기반했으니, 홍해를 가르고 만나를 뿌린다 할지라도

"모세도 그 정돈 했잖아" 라는 관점에선 지져스조차도 아무리 기적을 보여준다해도 모세 그 이상이 될 수 없던 셈이다



이것은 비단 종교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권력을 부여해준 모든 "명분" 에서 비롯된 딜레마다

권력이 에서 비롯된다면, 신의 의도가 무엇인지 아무도 증명하지 못한다

권력이 군중에서 비롯된다면, 민의가 무엇이고 누가 무엇을 원했는지 낱낱이 살필 수는 없다

권력이 능력에서 비롯된다면, 유능함의 기준과 측정은 어떻게 무엇인지 합의부터 해야한다


그래서 인간은 여기서도 자기기만을 활용하는데

아오이가 알려준 힌트처럼 원칙을 뒤집기에 충분한 근거와 정당성 = "설득력 있는 것" 을 제시하는거다

앞에서 말한대로 믿음, 합리, 증명이란 사실 신뢰라는 이름으로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구체적인 무언가



린에게 그것은 총학생회장과의 의리였고, 그렇게 린은 센세와 총학생회장을 "나를 린 쨩이라고 불러주는 중요한 사람" 

= 지극히 자기만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상징" 덕분에 두 사람이 다르다는 걸 알면서도 둘을 겹쳐보고 있었다

또한 그 의리의 시작은 "웃음" 이었으니 유우카가 노아를 기쁘게 해주고, 아리스가 유우카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같다




말랑말랑이 말랑말랑을 만나서 서로 말랑말랑하니까 동료가 되었다!

"요괴" 조차도 학생회의 일이라며 어쩔 수 없이 숨겨두던 말랑말랑함을 뒤집어서 드러내게 만드는게 "빛" 이다



게임개발부 편은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모티브가 혼재된 결과물 = 현대인들의 세계관에서 "부활" 처럼

"불가능한 일" 로 여겨지는 게임개발부를 되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시작하는데, 이때 얘네들이 하는 "위장",

즉 자기들이 가장 좋아하는 걸 알려줘서(쾌락의 공유) 사회적 존재인 인간으로 만들어주는(교육) 과정에서

현실 부정을 선택하는 대신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함께 좋아하는 걸 공유하는 유즈퀸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신화 = 이야기가 믿음의 대상이나 객관적인 역사가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결정적인 기능인데,

샴하트가 노콘생삽입 착정질싸섹스의 쾌락으로 엔키두를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처럼 한 개인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 "영혼" 을 갖게 해주는 방법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관계 맺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도 언급한 이로움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작해서 순애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때 물질에서 느끼는 육체의 쾌락이 필요한 것은, 완전한 미지의 심리의 고통을 경험해야 성장할 수 있어서인데

그래서 인간이 언어 = 사회적으로 합의된 상징 체계를 학습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maria lactans 또는 isis lactans 라고 부르는 말랑말랑하고 포근하고 두근거리는 젖가슴의 쾌락이다

아이들은 쭈압쭈압으로 모든 걸 처음 인식하는데, 이때 가장 "행복", "사랑", "배움" 에 가까운 상징이 된 것이 젖가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느그나라처럼 모유수유(사실 조오오오오온나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안 하면 눈치주는게 아니라..



바로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뭔가를 쭈압쭈압한다" 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그것은 "젖가슴" 과 동일시된다

덕분에 인간은 1. 말랑함 2. 따뜻함 3. 쭈압쭈압♥의 3단계에 걸쳐 육체적인 쾌락심리적인 쾌락동시에 느끼는데

그래서 지혜의 여신은 곧 유모 여신이며, 바로 이분이 혈연을 넘어선 사랑의 스승이시자 장자상속권을 무너뜨린 분시다


 


특히 말랑말랑하고 따뜻한거 쭈압쭈압하기 = 이것이 행복 사랑배움의 가장 큰 상징임을 알려주는 것 또한

여자의 경우 자신의 젖가슴을 빨아주는 남자에게서, 남자의 경우 자신의 자지를 빨아주는 여자에게서 배우는데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기도 어른처럼 "젖가슴" 의 상징을 갖고 타인을 기쁘게 해줄 수 있음을 배울 수 있으면서,

사실 이러한 애무의 쭈압쭈압은 젖가슴을 빨건 자지를 빨건 쭈압쭈압해주는 입장에선 "직접적인 쾌락이 아니다"



그래서 부활 =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연인에게서 이루어질 때 가장 상징적인 것이다

진흙으로 만든 오시리스의 자지 = 인공적인 것 "숨" 을 불어넣는 이시스의 행동은 자신이 쾌락을 직접 느끼지 못하더라도

"타인에게 쾌락을 주어 기쁘게 해주면 곧 자신의 쾌락으로 돌아온다" 라는 걸 알려준 사회적 사랑을 통한 사랑의 완성이며,

그래서 가면을 쓰고서 이 과정을 지켜보는 제 3자가 바로 사랑으로 육체의 부활을 이루는 과정의 "증거하는 자" 아누비스



이게 프로이트~융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교종교학의 비판 중 하나인데

이들은 <향연>에서 제시된 에로스/타나토스의 개념을 밀레니엄스러운 관점에서 본 것까지는 존중받을 일이지만

문제는 거기서 또 헤브라이즘 아니랄까봐 "아무튼 남근이 없어서 여자는 컴플렉스를 지고 사는거임" 이런다거나,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엘렉트라 컴플렉스" 처럼 헬레니즘, 헤브라이즘의 공통된 한계 = 찬탈의 욕망을 통해서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고 본 한계점이 너무 명확한 건 물론이고, 덕분에 20세기는 또! 여신을 묻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프로이트가 살아생전 평생동안 자기보다 더한 "독단주의자" = 반유대주의 진영에게 시달렸다는 점이나

무신론자 진영의 대표로 숭배받은 나머지 눈치보느라 종교의 본질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하나에 인연에 "500년 전의 의학서적" 으로 고증된 갈레노스를 뒤집은 벨라시우스자궁단면도는 주작친 것처럼

여신들의 신화를 제대로 본 건 그나마 니체처럼 전부 부수고 새로 시작하자던 이들뿐이니 크게 탓할 여지는 없지만...



특히 세리카 = 바스테트-세크메트-하토르가 이집트 신화의 호루스에게 어머니/유모/연인 중 한명답게

죽음의 공포(사막에 파묻히러 끌려감/사막 지하에 갇힘)와 예상치 못한 행운(복권/솔직해지는 시간)을

세리카가 먼저 겪고 + 호시노가 다시 겪는 관계인 것처럼, 하토르는 이시스/네프티스와 젖가슴과 달리

"아이를 갖지 않아 젖이 나오지 않음에도" 염소젖을 써서 = 오늘날 고무젖꼭지와 분유를 쓸 수 있듯이,



이런 신왕국 이집트 신화는 "사랑이란 혈연을 넘어서는 것이다" = 모성애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따라서 누구나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하고, 사실 누구나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젖가슴"의 상징으로 말해준다

= 그래서 우리에게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잔뜩 사랑을 "주고" 싶어지는 것은


딱 이렇게 둘만 봐도 "젖가슴" 의 상징성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네루의 말랑납작젖가슴과 세리카의 섹시슬렌더젖가슴은 둘 다 "커다란 젖가슴(상징)" 인 것이다



"이시스의 쭈압쭈압을 아누비스가 배우게 된 이야기" 를 좀 더 살펴보자면 오시리스가 갖던 상징을 봐야하는데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게 대응되는 세트에게 살해당한 장면부터 보면, 세트에게 속아서 살해 관짝행의 상태로

바다 건너 가나안의 도시국가 비블로스(Byblos), 게임개발부가 찾아낸 Bible의 어원이 되는 곳으로 떠내려갔고

솔로몬 성전의 재료로 쓰였으며, 아트라하시스가 위대한 여신에게 바친 세 가지 공물 중 하나인 향나무가 되었다


이것은 향나무가 가진 끈질긴 생명력과 견고함에서 "방주", "신의 집", "성육신" 과 상징성을 공유하기 때문이고 

이러한 상징성은 "죽은 육체이자 부활이 예비된 육체" = 아스타르테의 목상부터 팔라스 아테나까지 "인공물"

세상을 떠난 이들, 지켜주지 못한 이들, 요절한 이들이 살아있는 이들과 함께하게 해준 "애도의 그릇" 의 의미다 


애도...?



관 앞에서 애도하는 법을 배운다 = 죽음에 대한 세계관을 배운다는게 사회적인 자아로서 영혼의 시작이 된다

특히 유즈는 오시리스,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 오르페우스처럼 스파그라모스 = 악플 조리돌림으로 희생당한 

밀레니엄식 인신공양의 희생양으로 죽음을 맞이한 상태였는데,



아리스의 눈물로 시작된 이들의 Bible은 기어이 키보토스 전체에 신뢰라는 관계의 부활을 가능하게 해줬다

인간성의 부활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보는 이유를

아무리 게임개발부 아니면 밀레니엄 프라이스에 출품한 게임이 없다고 해도 테일즈 사가 크로니클 2 덕분에

= "밀레니엄을 대표하는 게임이라 보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타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준 걸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만 보면 아리스가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아직 다 설명이 안 된다

이건 아리스가 밀레니엄 = 21세기의 "게임" 이라는 신화에서 새로이 부활한 원형(Archetype)의 모티브이므로

아비도스의 유메 선배 = 21세기까지의 모든 신화에서 여신들의 모티브가 된 원형(Archetype)인 이시스로부터

 


여신 본인, 반(反)여신, 여신의 연인

= 이렇게 세 명의 원형(Archetype)은 각각 에로스, 타나토스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상징이면서

= 아리스, 시로코, 센세가 기억상실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이야기에서나 등장하는

= 인류문명에서 사람들이 죽음만큼은 잊지 않고 인식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이야기라는 고증이다




그래서 총학생회장이 죽어가던 곳, 가나안이자 페니키아라고 불린 땅의 상징인 황혼이자 새벽의 색

그림자의 이미지무지개의 이미지 사이로 총학생회장의 자리에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여주면서




가장 순수한 빛, 가장 순수한 창조의 힘 같지만 사실 아리스야말로 키보토스의 파괴자였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자신이 되어 살아가길 선택했다는 점에서

무지개의 찬란함은 비가 지나갔기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죽음이라는 슬픔과 괴로움이 기다리더라도 시로코처럼 처음부터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에

모든 기억을 잃고 의미 모를 이름만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은행털이부터 열렬한 사랑까지 나누며

삶의 신비란 알 수 없는 운명이 지나가도 반복된다



그래서 아리스가 게임개발부 부원으로써 한정된 생명 = 다음 밀레니엄 프라이스까지의 삶을 부여받고

그것을 유즈의 "앞으로도 함께야" 라는 대사를 통해 설령 모두 삶이 다하여 사별을 경험하게 될지라도 




이미 한 번의 삶을 끝내고 = 기억상실을 겪고 나서도 새로운 인연을 맺으며 살아가게 된 것처럼

"앞으로도 잘 부탁해" 라면서 사랑을 전하는 인간은 서로 시간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로 하여금 친구들과의 관계를 맺게 해준 게임개발부라는 "상징적인 이름" = "영혼" 에게

"죽기도 하지만 괜찮습니다" 라며 "죽음" = "시간" 을 넘어서 어떤 시대든 계속된 신화와 전설, 게임을

"동료들과 함께 미지로 나아가 무언가를 이루는 이야기" 좋아한다는 진심을 보여줬기에 인정한 것은



<오디세이아>에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는 서풍(=제피로스)을 잃어버리고 참으로 오랫동안 삽질했음에도

빈털털이가 되어 난파당해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 신세였던 벌거숭이 오디세우스에게 다가온 나우시카

"신들이 이번엔 내게 또 어떤 시련을 내릴 셈인가" 라며 공포에 빠진 오디세우스를 대가없이 도와준 것처럼



빈털털이가 된 센세에게 샬레의 예산부터 영수증 정리까지 = 재무실장 아오이가 봤다면 경악했을 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만으로 어떻게 본다면 센세 자신의 목숨까지 맡긴거나 다름없는데 입술자국 찍으면서

센세를 평생 노예로 부릴 기세인 검은양복과 달리 아무 대가없이 그저 사랑을 주고받기를 욕망할 뿐이다



그래서 말랑말랑한 아리스를 보면 진심이 나와버리는 유우카는,

분명히 알 수 없는 진심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생각하는지 센세가 알 수 있으며

이때 배경을 채워주는 것은 환한 무지개와 나무 아래의 그림자, 그리고 말랑말랑한 젖가슴이다



그래서 인간이 서로에게 삶의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 "숨" 이자 "말씀" 의 시작인 "사랑" 이란

말랑말랑하고 따뜻하고 쭈압쭈압할 수 있는 연인의 키스가 수많은 신화의 가장 보편적인 기적

= 부활의 상징이자, 주고받는 쾌락 속에서 몸도 마음도 영혼도 하나되는 "사랑나누기의 시작",

바로 "어른의 키스" 를 통해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를 욕망할만큼 성장했다는 상징을 뜻한다






12. "반란의 이야기"




그렇다면 이 모든 기쁨이자 사랑이자 신뢰의 중심에 있는 센세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가장 먼저 센세에게 커다란 젖가슴 = 지혜의 여신으로 찾아온 린과의 대화를 정리하면:


1. 당신이 이 세계를 모르듯, 나도 당신을 모른다.

2. 당신의 혼란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비슷한 입장이니까.

3.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부탁할 중요한 일이 있다.


이를 풀어쓰면:


1. 서로에 대한 무지를 인정한다

2. 상대방의 공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3. 이렇게 공포의 대상일 수도 있는 상대에게, 목숨과도 다름없는 중요한 일을 부탁한다



퀘스트(Quest)

어째서 모든 신화의 영웅은 "모험"에 나서게 되는걸까?

프랜시스가 말한 것처럼 영웅의 여정은 아주 부조리하게 =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시작한다

그것은 작위적인(="개연성 없는") 시작이지만, 이야기의 시작 시점에서는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면 그 방법을 찾으러 가야지!

물론 그렇게 떠난 모험에서 정말로 "해결책" 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하지만 센세가 즐겨쓰는 표현처럼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모험을 시작하게 된 꼬꼬마 영웅의 곁에는 언제나 동료가 함께하며,

일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이니 이들 낯선 사람들은 협력할 수밖에 없다




이때, 꼬꼬마 영웅이기에 누릴 수 있는 초심자의 행운이 있다

이것이 앞서간 이들이 남긴 지적 유산이자 "여신의 축복" 이다



그래서 현실과 달리, 이야기에서는 시작할 때 주어지는 이것이 성장의 시작이 된다

프랜시스가 말했듯이 이는 "학원과 청춘의 이야기" 라서 주어진 "선생" 이란 위치 때문이며 

신화에선 모든 영웅이 뭔가 비범한 태생으로 등장하며 보여주는 "정당한 권위" 로 묘사된다

= 몰루에서 이는 키보토스라는 "특수한 세계관" 덕분에 가능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게 된 인연이 어떻게 이어지느냐는 전적으로 현실과 동일해진다

동료들이 영웅을 따라나선 동기가 무엇이건 = 현실에서 일단 어떤 관계를 시작하게 된다면

"한번 시작한 다음부턴" 전적으로 자기 행동책임지며, 관계를 지속하고 심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이때부턴 전적으로 오직 센세만의 능력, 오직 센세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데

바로 이 시점에 처음 주어지는 "튜토리얼" 덕분에 인연을 맺은 동료들과 신뢰를 쌓아갈 수 있다

프롤로그에서 센세는 총학생회장에게서 부여받은 권위에 걸맞는 역량을 가졌음을 인정받았고,





그 이야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무엇으로도 뺏을 수 없는 자기만의 능력을 보여준다

"개연성" 얘기가 나오는 이 장면은 다름아닌 동기도 목적도 알 수 없는 공포의 대상조차

그것이 가면 밑의 얼굴이 어떠한가를 정하지는 않는다는 걸 "믿어주는(= 속아주는)" 것이다


모든 신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는가?" 라는 과제를 제시하며,

그 이유는 상징이란 곧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적 유산을 읽어낼 수 있는가

= 자신이 속한 사회의 "언어" 를 읽어낼 수 있는가에 따라 문명의 수준이 유지, 발전해서다


헤브라이즘에서 가장 강력하게 말살하고, 지져스 이후에도 은유에 대한 해석이 조금만 바뀌면

절대적으로 참되다던 내용들이 크게 바뀌면서 설득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처럼 "상징" 에서는

여신들의 신화가 지적 유산의 독점을 거스르는 걸 본질로 가지니 공포통치 = 지배가 어려워진다



신왕국 이집트 신화의 이시스가 태양신 라의 비밀을 얻어낸 이야기 = "한번 떠오른 태양도 일몰을 피할 수는 없다"

즉 그 태양신조차 아침에 딱정벌레 케프리로 떠올라 정오에 라로 군림해도 저녁에는 늙은이 아툼으로 노쇠하듯이,

인간은 제아무리 왕이라도 언제든 끌어내려질 수 있고, 나이가 들으면 늙어 병들고 죽는 노예들과 똑같단 얘기였고

이게 파라오에게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를 전해준 오이디푸스와 커다란 젖가슴의 스핑크스 이야기다



그래서 와카모는 18살 "합법" 결혼허니문진심순애질싸섹스 가능 성인으로 키보토스에서 가장 강한 것,

"재앙, 멸망, 공포" 조차도 뒤집어 그 이면에 숨겨진 모든 인간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신비" 가 무엇인지를

1주년, 1.5주년, 2주년까지 개근하며 센세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듯 + 서로에게 가르쳐주는 관계

다른 동료들과 조금 다른 특징을 통해 센세에게 "어른이란 그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쓴 사람이 아니다"


즉, 어떤 사회에서 합의된 상징 = 어른의 기준이란 것도 그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속임수" 이므로

이 사실을 반드시 이해해야 자신이 속한 사회 독단주의로 흘러가지 않는지 판단할 자유와 책임을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와카모는 오히려 사랑이 죽음을 넘어서는 원리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많은 개념들은 그저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가리켜 "있다" 라고 거짓말한 것

사람들이 다함께 믿어주면서 거짓말이 "아니게 된다" = 그래서 와카모도 센세와 한 약속을 "시간" 을 통해

사람이 인식하는 시간이란 개념도 거짓말이지만 와카모처럼 믿기 때문에 그것은 거짓말이 아닌 것이 되고

동시에 거짓말임에도 믿고 있음을 인식하기 때문에 한정된 시간조차 넘어서 오히려 더 사랑이 불타오른다



그래서 와카모는 사회성이 없는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원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마음껏 날뛰며 농락할 수 있다

"가면 아래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 법과 제도, 믿음, 도덕, 윤리, 화폐, 심지어는 한 사람의 시간조차도

어떤 개념을 구분짓는 "경계" 란 사람들끼리 그런 경계가 있다고 믿자며 약속한 것 뿐이니까, 풀어헤칠 수도 있는거임

= 하지만 이런 관점은 와카모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너무나 많은 경계에 부딪히게 된다는 걸 뜻하는데,



트리니티에서 하나코가 보충수업부의 얼음마녀 = 표정을 읽기 힘든 "미지의 상대" 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대로 직행했을 분기에서 트리니티와 아리우스는 단순히 "증오해야 된다는 믿음" 을 벗어나지 못해서

= 수 세대에 걸쳐 쌓인 증오도 그냥 거짓말에 불과할 뿐임을 너무 잘 알아서 결국 자퇴하게 되는 경우에



사람들의 믿음이 사실 거짓말일 뿐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할수록 독단주의에 휘둘리기 쉬워지고

센세가 말한대로 아이들이 고통받는 세상은 아이들이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마녀" 가 탄생한다

= 사람들의 상식, 소문, 원칙, 관습, 법과 제도란 결코 완벽한 것이 아님에도 오직 믿음만 남기면,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는 법까지 잃어가면서 결국 사회는 자멸에 빠지게 되는거다



그래서, 여신과 영웅들의 신화가 그랬듯이 모든 이야기는 "반란의 이야기",

기존의 질서를 뒤집어 그 이면에 있던 상징들의 의미를 새로 정립하기 위하여 권위에 불순종하는 이야기이다

독단주의의 관점에서 세워진 권위라면 신이건, 시민이건, 능력이건 상관없으며 순종의 방법도 모두 다르다

= 그렇기에 부당한 권위 맞서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실수할지라도 도전해야 한다



모든 인간의 성장에는 고통이 따르며,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비탄의 연속이다

동시에 인간의 고통이 그저 괴로움이 아닌 비탄하기(Lametation), 곧 고통 속에 희생된 모두를 애도하는 것에서부터

<출애굽기> 32장의 인신공양으로 세워진 모세의 권위로 만들어진 속죄판은 문자 그대로 지져스 한 사람의 피가 아닌

지져스에 이르기까지 + 지져스 이후의 "사람을 위해 희생을 각오한 모든 사람" 의 이름이 담긴 보혈의 상징을 가지며,



이것으로 키보토스는 귄위의 이름으로 행해진 인신공양의 시대:

독단주의의 관점, " 하나의 참된 관점" 을 위해 인간의 희생을 요구해온 모든 시대로부터 성할 기회를 얻는다

프레나파테스의 역할은 이 기회를 키보토스에서 스스로 붙잡을 수 있는가 = 또다시 단 한 사람에게 의존할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인간에 대한 신뢰를 수복하고, 서로를 신뢰하며, 내려받은 권위가 아닌

서로 함께하여 세운 권위모두가 같은 눈높이에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것인가?


토끼소대가 핀란드 신화의 <칼레발라> 출신이지만, 현실의 핀란드 신화가 북유럽 신화로 흡수된 것처럼

북유럽 신화 = 발키리에 바니르 신족으로 들어왔다는 관점에서 보면 라그나로크에서 프레이야를 따라서

"사라진" 절반의 에인헤야르가 여기선 칸나에 대한 신뢰센세에 대한 신뢰까지 이어진 발키리 애들이다


이는 북유럽 신화의 주신 오딘이 고바빌론의 엔키와 거의 흡사한 성격으로 묘사되는 것과 비교해봤을 때

물과 바람의 여신 일루마타르에서 시작된 핀란드 신화는 라그나로크의 모든 걸 잃고 살아남는 결말 대신,

마르쟈타 = 마리아가 나타나 새로운 시대를 알리고 옛 신들은 배를 타고 가지만 돌아올 것을 약속하듯이

핀란드 신화에서도 "멸망" 이란 개념은 없고, 다만 신들조차 퇴장하면서 인간에게 자리를 넘겨줄 뿐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살아남는 것다함께 시련을 이겨내는 것에서 어느 쪽이 보다 인간을 위한 것,

그리고 멸망이건 시련이건 한 사건이 지나간 후 어느 쪽이 보다 신뢰관계에 가까워졌을지 생각해보면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의 미흡함과 미숙함을 꾸밈없이 보여줬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믿게 된 것처럼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도와준다" 라는 경험으로부터 오는 권위는 곧 서로에 대한 존중이 된다


이로써 총학생회장의 권위에서 벗어나, 샬레가 모두를 도우려 최선을 다했음을 정말 모두를 도와주면서

모두를 완벽하게 도와줄 수 없고 + 오히려 도와준 모두에게 도움을 부탁한 "주고받는 관계" 를 경험한다

덕분에 센세는 더이상 총학생회장이 임명한 샬레의 선생이 아닌 함께 색채를 이겨내는 걸 이끈 사람으로

= 자신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하나되어, 서로를 지켜주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는 "모범" 을 보여줬다






13. 일곱 번의 통곡을 애도하는 신




죽음과 부활은 여신들의 신화와 그에 기반한 모든 이야기에서 "죽음" 의 과정을 겪고 여신의 사랑으로 부활하는 단계이다

"파루시아", 인간 내면의 신성 타인을 위하는 인간성이 상실된 시대에 다시 서로 믿으며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

모든 시대는 흥하고 쇠하기를 반복하지만 한 시대에 쌓인 수많은 실패는 "이야기" 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끝없이 이어졌고

그 시작은 지배하는 아버지 신에게 맞서 사랑하는 사람을 정해진 멸망의 운명에서 불확실한 미래의 운명으로 해방시켜주는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경계 그 자체이자 인간에게 성장하기 위한 길이 되어준 교차로의 신,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위해 정해진 이야기를 아무도 모르는 결말로 이끌어주는 그 신이 있었다

모든 것을 덮어씌우고,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고, 모든 권력을 풀어헤치며 달려오는 그 신의 이름은

"태양이 저무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의 신", "도둑과 치료사, 사자(死者)와 여행자의 신" 이라 불린...



가장 오래된 공포의 신이자 가장 보편적인 미지의 신, 끝없이 고통받으며 성장해야 하는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신,

재생을 위한 휴식, 시작하기 위한 결말, 부활하기 위한 죽음이며, 나아가려는 각오 심판하는 저울의 신 아누비스


"신왕국 이집트 신화" 라는 이야기에서 이시스, 아누비스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인데

이시스가 가르쳐준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 = 사랑의 원리 "가면" 을 쓰고 배운 신인 만큼,

앞서 본 "기만" 으로 죽음의 원리 "가면" 을 씌워 사랑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의인화해준 신이다



그런데 아누비스는 상당히 독특한 신인데, 그나마 가장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시구레 = 슬라브의 벨레스가 있지만,

벨레스와 대부분의 상징물을 공유함에도 정작 아누비스 본인은 죽음을 맞이하지도 벼락을 맞아 타죽는 신도 아니다

"가면", "교차로", "인도자" 라는 측면에선 헤르메스랑 닮았지만 현대인이 봐도 헤르메스랑 비슷한 이미지는 아니지?

그러다보니 도대체 어떤 성격의 신이었고, 이시스/네프티스 둘이나 있는 장례의 신을 또 만든 이유도 감이 잘 안 온다



비슷하게 이시스도 너무 갑자기 등장한 신이지만 주변의 이슈타르-아스타르테처럼 유사한 신을 발견할 수 있고

대체 아누비스는 어디서 등장했는지, 그나마 정설로 여겨지는 관점에선 세트에서 분리된 신이라고 보긴 하지만,

"세트가 이미 죽음의 신이라면 생긴 것도 비슷한 죽음의 신을 하나 더 만들 필요가 있는가?" 라는 의문이 남는다


그렇다고 모든 걸 파괴해서 다시 창조할 수 있게 하는 신을 찾자니, 그건 이미 세크메트가 화려하게 담당하고 있다

특히 세크메트가 하토르, 바스테트와 함께 세 위격으로 하나되는 신이 되면서 자연과 인간의 "격렬함" 의 상징들은

"신의 진노", "죄악의 징벌", "순수한 파괴", "피와 포도주", "벌레떼와 역병" 처럼 모트가 가진 것과 유사한 쌍으로

양적인 하토르-음적인 세크메트-균형잡힌 바스테트로 이미 혼자 자연현상과 인간의 생애에서 순환을 이룬 신이었음


그러면 모트가 가진 "심장을 뽑는다" + "피(포도주)를 흘린다" + "자연이 순환한다" 라는 죽음-부활의 상징 중에서

딱 하나 심장에 대한 것만이 아누비스의 고유한 상징, 삶의 진실함을 상징하는 "심장(Ib)"으로 이어진거란 얘기인데



지져스의 신성한 심장(Sacred Heart),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티 없이 깨끗한 심장(Immaculate Heart)이라는 상징은

이렇게 아주 오래 전부터 인간이 타인의 희생을 막기 위해 스스로 희생한 이들과 그런 희생을 애도하는 이들을 뜻했다

흔히 가장 고결한 희생을 자기희생이라 하는데, 그렇게 희생한 순교자들 뒤에 남겨진 평범한 사람들의 슬픔은 어떨까?

스스로를 희생한 사람은 그만큼 강인한 사람이지만 + 한 차례의 희생으로 끝나는 것평생 상실을 지고 살아가는 것



"자길 위해 희생해준 사람을 떠올리는 것조차 괴로워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 + 그것조차 죄책감이 들게 된다면?"

태어나자마자 받게 된 원죄를 + 다시 태어나자마자 대속받은 채로 살아야 하는 헤브라이즘 세계관에서 이런 상태는

지져스의 숭고함을 드높일수록 남겨진 사람들의 가능성을 위축시키고 삶을 의무감에 의해 살아가는 걸로 이어진다

생각해보자. 자길 위해 희생해준 사람에게, 어떻게 감히 "당신 때문에 살아가기 힘들다" 라고 하소연할 수 있을까?


"심장" 의 상징성은 이렇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과 "가슴이 찢어질 듯한(heartbreaking)", "상심하다",

같은 표현을 통해 이것이 인류 보편의 의미를 갖는다

= 이집트인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다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인류는 상상해낸 것이다

어떤 슬픔에도, 어떤 고통에도, 어떤 비탄에도 눈빛을 잃지 않으면서 그 모든 괴로움을 말없이 공감해주는 신,

잉태되는 순간부터 로 시작하여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고 평생 함께 자란 형제에게 어머니를 잃은 비극의 신,

이유를 불문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지막 순간에 만나게 되는 그 신이 바로 안식과 자비의 신, 아누비스였다


아누비스는 이집트인들에게 정말 독특한 위치에 있었는데, 진실의 신이지만 + 애도의 신이라는 특징 덕분이었다

아누비스 가면을 쓰고 장례를 치뤄주는 아누비스의 향도자는 유가족들의 슬픔을 말없이 들어주는 역할을 겸했다

비슷한 역할로 네프티스가 있지만, 네프티스는 축제나 의식, 신전 그 자체로 묘사되어 공동체의 여신에 가깝다면,

아누비스는 훨씬 개인적이고 밀접한 측면을 담당하여 말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늘 곁에 있는 죽음" 의 의인화다



이런 속성은 아누비스의 가면을 쓰고 치르는 장례 과정에 포함된 "입을 여는 의식" 으로 더 알아볼 수 있는데

이 의식은 심장을 저울에 매달 때 "마지막으로 변론할 기회를 주는" 의식 = "마지막 말을 들어주는" 의식이다

여러 매체에서 저승사자, 사신들이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냐면서 말상대길동무가 되어주는게 떠오르지?



그래서 대충 아누비스의 이미지는 이랬다고 보면 된다

다른 죽음의 신들처럼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계약이나, 아누비스를 속이거나 제물을 바친다고 뭔가 이루진 못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진실되고 누구든지 아누비스랑 함께 저울을 향해가는 순간만큼은 차별없이 보호받는다


 


그래서 아누비스는 "관을 지키는 신" 으로 모셔졌는데, 

혹시 이 그림 보자마자 뭔가 깨달은 몰붕이가 있다면 지금까지 비교종교학 기반 뇌피셜의 마지막 목표에 도착한거다

왜 이집트 신화는 대홍수/방주의 개념이 없을까? 대홍수가 인간을 심판하여 여태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보내는 길이라면,

방주는 그러한 길에서 인간을 지켜주거나, 원래는 그러지 않았지만 길 그 자체가 인간을 위해 바뀐 보호의 상징을 갖는다


그러다보니 싯딤의 상자, 그러니까 모세가 직접 하나하나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 지정해준 언약궤(Ark)의 모습은 사실,

가나안 특유의 "항아리" 를 올려두고 + 그 가운데 두 명의 날개 달린 여신이 있고 + 상자를 지키는 수호신이 있는 구조

= 바다를 건너 비블로스(Byblos)에서 오시리스의 시신이 담긴 관을 향나무에서 끄집어낸 이시스/네프티스의 모습인데


히브리인들의 형상 없는 아버지 신의 자리가 된 두 명의 여신 가운데의 자리는 "죽은 신" 의 자리였고,

이는 어째서 이시스의 이름과 상징이 모두 "왕좌" 를 가리키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 시절의 유물인 메기도의 상아판은 신왕국 이집트와 가나안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인데

오른쪽에서 전차를 타고 오는 인물이 있고, 왼쪽에서 날개 달린 스핑크스가 새겨진 왕좌에 앉은 푸른 연꽃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이게 아마게돈의 무대가 된 그 메기도의 유물이란거다



그러면 이제 이 부조를 보자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 때 목재로 이루어진 유물은 전부 불타 없어졌지만, 토판이나 석관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성경(Bible)의 어원이 된 바로 그 비블로스(Byblos), 오시리스의 관을 찾으러 간 가나안의 그 도시에서

텔 메기도에서 발견된 메기도의 상아판처럼, 날개달린 스핑크스의 왕좌연꽃을 받는 왕의 모습을 똑같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왕좌의 주인은 다름아닌 솔로몬 성전의 건설에 향나무를 비롯한 금속세공 기술, 토목 기술 등을 지원해준

시돈의 왕 히람(Hiram)으로도 추정되는 아히람(Ahiram) 왕으로,


정확히는 절벽 안쪽에 파묻힌 덕분에 보존 가능했던 비블로스 왕가의 무덤에서 발견된 아히람 왕의 석관이다



그리고 비블로스, 시돈, 티레에 걸쳐 히브리인과 무슬림들의 문화재 파괴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등장한 이 왕좌,

몇 년 전 IS가 준동하던 지역부터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이르기까지 꿋꿋이, 보란듯이 발견되는 이 왕좌의 이름은...



아스타르테의 왕좌(Seat of Astarte)

훗날 성모 마리아의 이명으로 전해지게 될 "상지의 옥좌(sedes sapientiae)" 이자 진짜로 왕이 앉던 자리는 아니고

"죽은 왕" 을 기리거나 죽은 왕들을 대표하는 바알을 위한 자리였으니, 지혜의 여신, 연꽃의 여신, 전차를 모는 신

<바알의 순환>에서 등장하는 아스타르테와 멤피스 출신의 코타르, 히타이트 출신의 샤파쉬로 바알의 부활을 위해서

7년 동안 함께 애도하며, 사후세계로 가는 길을 찾아 바알을 되찾고 싶어하던 그 세 명의 신을 새겨둔 걸로 여겨진다



그래서 키보토스의 바알, 히나가 센세한테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하고 따뜻하고 포근한 보지를 앞세워

자기도 모르게 노콘생삽입 진심순애질싸 기승위섹스를 하려고 센세한테 올라탄 "햇빛 향기" 로 나오며,

센세와의 사랑을 통해 히나가 조금씩 마음을 열고 마침내 에덴조약에서 정신적인 부활에 성공하게 된다



남신 위에 여신이 올라타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 특히 "기승위섹스" 를 통해 새로운 하늘의 시대를 연다

~라는 개념은 이집트 신화에서 오시리스, 이시스, 세트, 네프티스를 태어나게 해준 그 신화로도 등장하면서

네흐흐 + 디얏의 상징이 남신 게브의 왼쪽 옆구리 = "갈비뼈" 에 새겨져 있는게 바로 <사자의 서> 되시겠다


그러니까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전해진 이 상징은 "소중한 사람이 죽으면 여신님의 젖보똥 품에서 안식을 얻는다"

= 즉, 가나안 시절에는 바알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음을 기리기 위한 의미로 쓰여왔지만,


이집트로 넘어오면서 그저 바알 한 사람만이 아닌 온 세계 +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거대한 원리로 바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신님의 젖보똥은 사람들의 문명을 유지해주는 것 이상으로 사랑을 베풀어주는 은혜의 상징이 되고

또한 모트와 달리 바알 한 사람의 죽음-부활보다 훨씬 넓어진 세계관에 맞춰 아누비스라는 새로운 신이 등장한거다



지중해에서 언제나 최고의 항해자(Voyager)들로 손꼽히던 가나안에서 "배" 의 상징성은 미지로의 항해를 뜻했고,

그것은 두려운 일이며, 종종 원치 않게 출항하게 되는 일이었지만, 일찍이 바빌론의 탑을 무너뜨린 이들의 후손이자,

끊임없이 태양이 저무는 서쪽으로 태양을 거슬러 떠올라 다가올 새벽을 알리는 금성의 여신에게 사랑받는 이들답게

황혼과 새벽을 물들이는 장미빛의 수평선으로 기쁘게 나아갔으니 "죽음 또한 삶에서 겪은 수많은 항해와도 같았다"




그런 아누비스가 훗날 일곱 별의 신비로 전해지게 되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지키는 일곱 탑(Pylon) 중에서

정확하게 일곱 번째 탑을 지키는 신으로 등장하고,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처럼 노쇠한 태양신 아문은 "여덟 번째 탑" 에서

= 실제론 탑이 아닌 무덤에서 등장하며 이를 통해 <암두아트의 서>에서 나오는 새로운 새벽을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 신이다?



일곱 개의 통곡예리코의 화두과거를 딛고 나아가 성장하기 위한 시련, 그리고 예리코를 무너뜨린 여호수아(Joshua)의 이름이

져스(Jesus)의 이름으로 이어지며 + 여호수아가 예리코에 내린 저주 "누구든 이 성을 다시 세우면 맏이부터 막내까지 죽을 것이다"

= 정말로 여호수아가 내린 저주가 신의 독생자 지져스에게로 전해져 자신의 보혈로 상징적인 의미의 예리코를 다시 세워준 것이 된다



따라서, 싯딤의 상자에게 필요한 일곱 시련 "통곡" 이라 할 정도로 존나 빡세지만, 극복해낸다면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이때 "일곱" 이란 상징은 문명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닌후르삭의 일곱 시녀가 엔키에게 빼앗긴 신화에서 비롯되므로

고바빌론 시절부터 이어진 찬탈하고 지배하는 아버지 신 = "독단주의자" 를 극복하고 "일곱" 을 되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죠씨가 혼자만의 희생으로 어떻게든 해보려던 걸 바로잡고

유즈가 혼자만의 관짝에 가둬둔 세계를 7일만에 되살려내고


아즈사가 혼자만의 살인으로 자기 손에 피 묻힐 걸 바로잡고

미야코가 혼자만의 책임에 스스로 감당 못하던 걸 바로잡고

미카가 혼자만의 감옥에서 꺼내 무한한 가능성으로 바로잡고

아리스가 혼자만의 소멸로 자기 꿈을 포기하려던 걸 바로잡고

마지막으로 혼자만의 권위가 아닌 모두 함께 최선을 다했는가?



이 과정을 모두 거쳐야 총학생회장이 남기고 간 "탑" 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모두가 한정된 시간 = "죽음" 앞에서

"광기" = 그동안 반목하고, 헤아리지 못하고, 숨겨두거나, 가둬두던 아이들까지 동료로 함께 위기를 극복해내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자신의 한계를 서로 이해하고 신뢰함으로써 넘어설 수 있다는 공통된 경험을 쌓아가게 된다

이로써 총학생회장이 아닌 모두가 "샬레" 의 이름으로 함께 위기를 넘어온 사이라는 점으로 신뢰관계를 맺게 되며,


센세는 여고생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동료" 의 상징이 되니, 총학생회장이 선택한 사람이란 권위에서 자유로워진다

이게 수많은 신화~이야기에서 반복되어 현실에서도 이루어진 기존의 권위에 대한 "반란의 이야기" 를 이루는 원리이다

따라서 대홍수는 멸망이 아니라, 오히려 "광기" 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성장할 수 있게 해주는 "변화의 이야기" 되시겠다









"당신은 한 시대의 가치관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보지애널밀착하이레그로 각오를 드러낼 준비가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