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뇌피셜 모음


"색채"의 정체를 알아보자 - 색채는 지성소의 유일신이고, 여기엔 또 하나의 비밀이 더 숨겨져 있음 

키보토스에 여고생만 태어나게 된 이유: 키보토스에는 천왕성, 우라노스가 없다
스미레의 모티브 분석과 세피로트의 나무: 최종 목표는 호크마다 


태양신의 부활을 위한 항해, <암두아트의 서>와 네페르템에 대하여

수영복 노노미의 "노란 장미" 는 네프티스의 죄를 의미하는가?

로스트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유메 선배의 유산...인데 이게 왜 총학생회 소유일까? 

은행털어도 안 들키는 이유는 "가면" 이며, 이것이 향도자의 비밀이다


치나츠 메모리얼로 알아보는 <파우스트>의 작가 괴테의 인생관

모에 메모리얼로 알아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작가 니체의 인생관

하루나와 1.5주년 애니를 통해 알아보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과 20세기의 혼란 

후우카의 모티브, 아브락사스로 알아보는 아시리아 신화와 <데미안>의 작가 헤세의 인생관


가나안 신화 1편 - 홍수의 신에 맞선 바알과 아스타르테 

가나안 신화 2편 - 코타르와 샤파쉬, 그리고 은빛조약

가나안 신화 3편 -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와 메시아니즘

부록1 - 짤 3장으로 보는 게헨나 학생들 모티브

부록2 - 신춘광상곡 새해픽업 배너로 알아보는 지금까지의 이야기


잊혀진 신들을 위한 키리에 엔딩 추측하기 1편 - 14지역의 폐교들

잊혀진 신들을 위한 키리에 엔딩 추측하기 2편 - 4대 천사와 미카의 정체

부록1 - 스즈미/세리나/하나에로 알아보는 에덴조약과 제언

부록2 - 카스팔루그의 모티브와 에덴조약 이후의 이야기


토모에의 숨겨진 비밀에 대해 알아보자

키보토스에서 식경(食頃)은 상대적이다

게마트리아가 뭔소리를 하는지 알아보자

짤 2장으로 분석하는 게마트리아와 키보토스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문명까지 - 노아와 엔지니어부의 모티브


메소포타미아 신화 1편 - 미모리의 모티브와 파반느

메소포타미아 신화 2편 - 아비에슈와 디비전

부록 - <요한묵시록>의 아폴리욘 = 심연의 열쇠쟝은 다시 등장할까?


단테의 <신곡> 지옥 편으로 보는 이부키의 어둠공포증


크리스마스 세리나의 애틋한 디테일

별의 모티브로 알아보는 히마리부터 하나에까지 1편

별의 모티브로 알아보는 히마리부터 하나에까지 2편


미네의 모티브, 파우스트와 에덴조약, 그리고 진명 이야기 1편

미네의 모티브, 파우스트와 에덴조약, 그리고 진명 이야기 2편




드디어 1주년 때부터 뿌린 떡밥이 착실하게 회수되는 중이다

그만큼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쓴 뇌피셜을 위에 링크해둔 것만이라도 모두 읽은 상태로 봐야 이사쿠상이 준비한 2년치 디테일의 참맛을 느낄 수 있고

그게 어렵더라면 가나안 신화, 메소포타미아 신화, 별의 모티브, 진명 이야기까지는 순서대로 읽고 아래 내용을 봐야 어떤 흐름인지 따라올 수 있을거임 


그러면 시작해보자. "디테일" 에는 "꼴림" 이 있다!





1. 색채에 대하여 




첫번째 단서, "색채"

<우주에서 온 색채> 라고 생각한 몰붕이가 많은데, 문제는 적어도 검은양복과 토모에는 둘 다 몰붕이네 현실에 있는 작품(대부, 사신의 정도)에서 명대사를 인용할만큼 몰붕이네 현실의 작품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그건 제외임

하지만 "광기" 라는 측면에선 어느 정도 일치하고 이때의 광기란 베아트리체가 그랬던 것처럼 "닿을 수 없는 것에 강제로 닿았을 경우" 를 상징하는, 인간이 가진 지혜/믿음의 폭주라 생각하면 됨. "가장 두려운 것은 인간 자신이다" ㅇㅋ?

아무튼 이건 키보토스에서 남자인간이 없는데도 떡인지가 만들어지고, 남자인간과의 순애섹스에 대한 로망이 여고생들에게 보편적인 이유 = 어떤 식으로든 플레이어가 사는 현실의 문물이 키보토스에 유입되고 있다는 떡밥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센세랑 검은양복이 둘 다 외부의 존재이긴 하지만 서로 불가해한 존재라면서 서로 다른 영역에서 왔다고 한 것처럼 키보토스는 어떤 식으로든 여러 현실과 연결되어 있고, 총학생회장은 그렇게 특정한 현실과 연결해서 센세를 불러냈다



이건 골콩트가 키보토스를 보면서 "게마트리아가 자신의 텍스트를 외형에 현현하는 것과 키보토스의 모습은 같다"

= 키보토스는 사실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세계인데 어째서인지 지금의 "학원도시" 라는 기호를 고집하고 있다는 떡밥과 연결된다

특히 골콩트가 이번에 프랜시스로 끼요오오옷 해버리면서 말해준 "원래부터 이 세계는 그렇게 존재했다. 그것을 잊고 있었을 뿐." 이라는 대사와 함께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계" 라는 초대형 떡밥을 하나 투척해줬다



"잊고 있었다" 라는 대사, 익숙하지?

여기서 우리는 발상을 전환을 한번 해야 함. 바로 학원도시 키보토스라는 현재 모습 = 프롤로그에서 총학생회장의 망각을 대가로 만들어진 지금의 모습은 거짓이고, 



이집트 신화에서는 죽음과 심판, 그리고 진실의 신이며 저울에 심장의 무게를 달아 "거짓말의 무게" 를 재는 신,

이것이 아누비스의 진정한 모습이자 모두가 두려워하던 공포(테러)의 모습이자 다른 신화에서 "교차로", "십자가", "검" 의 상징이 뜻하는 모습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색채의 정체에 대해서 특정할 수 있다

힌트는 두 가지, 하나는 이것이 스테인드글라스이며, 다른 하나는 색채가 행성기호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첫번째 힌트는 쉽게 풀이할 수 있음. 베아트리체가 말한대로 색채의 본질은 "빛" 이다.

따라서 색채는 백색광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연속적인 스펙트럼(Spectrum)을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스펙트럼의 어원이 된 "유령(Specter)" 처럼, 자신이 비추는 대상의 또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본질이다



즉, 색채는 우리가 "잊고 있던 진실" 일깨워주는 존재

그리고 여기서 베아트리체는 이걸 언급한다. "파괴하고 창조하는 절대자. 그것만이 유일한 방책"



여기서 우리는 "게마트리아" 란 집단의 본질을 기억해봐야 한다

유일신교에서 유일신, 테트라그라마톤이란 누구인가? 정답은 "너가 알아도 감히 안다고 하면 안 된다"

하지만 게마트리아는 그걸 ㅈ까쇼 해버리고, 그래서 얘네들은 "빌린 이름으로" 세계의 룰을 지키되 "구도자", "탐구자" 로서의 위치에 올라선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얘네들이 언급하는 세피로트의 나무부터 신왕국 이집트의 생명의 꽃과 아시리아의 생명나무처럼 진짜배기 이교 출신인데

심지어 지져스 이후로는 대놓고 영지주의 계열로 빠져버린 이단 출신일 뿐더러, 중세시대에 유대교 밀교주의 쪽에서 보존해오던걸 르네상스 이후로

교리상으로는 아니지만 검은양복(연금술 - 자연과학 및 실용학문), 마에스트로(회화 - 서양화 속 상징들), 골콩트(문학 - 서사시, 단테나 베르길리우스)

= 유일신교의 경전을 두고 사제들이 아닌 은근슬쩍 다른 관점에서 세계관을 구축해온 학자들이 바로 게마트리아다


그런 이들에게 오직 신도, 인간도 그저 지배의 수단으로만 쓰인 종교권은 당연히 숭고하지도 않고, 추태하기 짝이 없는 상대임

쉽게 생각해서 지금 게마트리아가 베아트리체를 쓱싹해버린 상황은...



모든 인간이 가진 너무나 뻔한 욕구, 즉 권력을 탐닉하는 지배욕구 오히려 색채에 의해 "밝혀진" 상태다



이때 베아트리체가 너무나 쉽게 끔살당한 이유를 풀이해보면, 게마트리아가 오늘날에는 현실의 학문 분야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쉽다

이건 골콩트가 집행한 것이며, 세 사람 중 골콩트가 언급하는 "기호와 텍스트" 포스트모더니즘(유즈가 언급한 다다이즘) 철학자들의 이론이다



베아트리체의 상징은 경전이고, 베아트리체가 소멸당하는 장면에서 들리는 소리는 "종이를 구겨버리는 소리" 이다

따라서 이들이 준비한 대항수단이란 헤일로를 파괴하는 폭탄보다 훨씬 확실한 수단:



진실로 나는 그대들에게 충고한다. 내게서 떠나라.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를 경계하라! 차라투스트라를 수치로 여기라! 그것이 더 바람직한 일이다. 그는 그대들을 기만했을지도 모른다.

인식한 자는 자기의 적을 사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친구를 증오할 수도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제자로만 머무러 있는 것은 스승에 대한 올바른 보답이 아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의 월계관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가?

그대들은 나를 숭배한다. 그러나 언젠가 그대들의 존경이 무너지게 되면 그때는 어찌하려는가? 쓰러지는 입상에 깔려죽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대들은 이 차라투스트라를 믿는다고 말하는가? 그렇지만 차라투스트라가 무슨 소용 있는가? 그대들은 나를 믿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믿는 자가 무슨 소용인가?

그대들이 나를 발견했을 때 그대들은 아직 그대들 자신을 찾지 못했다. 모든 신자들이 그렇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은 매우 하찮은 것이다.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나를 버리고 자신을 찾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했을 때, 비로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진실로 형제들이여, 그때 나는 다른 눈으로 나의 잃어버린 형제들을 찾으리라, 그때 나는 다른 사랑으로 그대들을 사랑하리라.

그리하여 그대들은 다시 나의 친구가 될 것이며, 똑같은 희망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때 나는 세 번째로 그대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대들과 함께 위대한 정오를 축하할 것이다.

위대한 정오란 인간이 동물과 초인의 중간행로에 서서 저녁으로 향하는 자신의 여행을 최고의 희망으로 축복할 때이다. 그것은 새로운 아침으로 향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때 몰락해가는 자는 자기 자신을 축복할 것이다. 그는 저편으로 건너가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인식의 태양은 정오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원하나 ㅡ 이것이 어느 날 위대한 정오에 우리의 마지막 의지가 되기를.




이때 니체가 말하는 신이란 지금까지 메인스토리에서 두번이나 언급된 <선악의 저편> 서문에서 "독단주의자" 되시겠다

특히 니체는 여기서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이란 문장으로 시작해서 그리스-로마 시대의 가치관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알다시피 그 시대는 "진리가 젖보똥 = 아름다움이라면?" 이란 관점에서 접근했으며, 이는 폴리스 그리스 이전 = 트로이 전쟁 이전의 가치를 수복하기 위해서였다


반대로, 베아트리체는 "진리" = "젖가슴, 보지, 애널을 가진 여고생" 에 대해 전혀 잘못 짚고서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만이 옳다" 라며 강제한 그분들과 같다

<일리아스>의 아가멤논이 그랬고, <길가메쉬 서사시>의 엔릴이 그랬고,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가 그랬던 이들이 바로 "다른 관점을 거부한 독단주의자" 이다




그러면 두번째 힌트도 쉽게 풀어낼 수 있으니, 바로 여덟 개의 세피라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오직 말쿠트 = 지구만큼은 반드시 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세피라,

아칠루트의 빛을 쏟아내며 태양의 행성기호를 가진 세피라 티페리트인데...


비나가 쓰는 그 아칠루트의 빛이 바로 이 색채좌한테서 오는 빛이다

그렇다고 이걸 색채 = 티페리트라고 보면 안되는게, 티페리트의 역할은 "문", "통로", "구멍❤️인거지(진짜로 상징화된 보지구멍이 맞다) 색채는 그 구멍으로 내려오는 신의 빛 그 자체다



그래서 지금까지 뇌피셜에서 여러 번 애용한 세피로트의 나무를 4그루 겹쳐서 만드는 야곱의 사다리를 펼쳐보면

가장 위쪽, 4번째 나무인 아칠루트 = 신성계에서 내려오는 빛이 티페리트(태양)의 위치에 있으면 + 아래쪽 3번째 나무인 브리아 = 영적/사회적 세계에선 케테르(우주)의 위치에서 빛이 내려오는걸로 보인다

그러므로 센세, 즉 물질-심리-사회가 한 점에서 만나는 시점이자 "달의 눈" 이라 부르는 지점에서 보면 "태양의 눈", 브리아계의 케테르에서 이 사단이 일어나버렸으니 야곱의 사다리를 기준으로 할 수 있는 해결책은...



지상에 내려온 태양신의 후손이자, 그 자체로 작은 태양이며, 스스로 저지른 죄를 다른 신들의 사랑으로 용서받는 과정에서 태양과 달의 눈을 모두 지닌 젖보똥말랑쫀득한 아죠씨를 따라가서,

메소포타미아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지구 + "일곱 행성들" + "황도 12궁의 바다" + "하늘의 천장" 을 뚫어서 아칠루트계에 진입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때 허무의 생텀타워 6개는 마지막 6번째로 잡을 비나(토성)을 잡으면

"빛의 고리" = 토성의 고리이자 세피로트의 나무에 쓰이는 비유로는 "어머니의 자궁" 으로 전해지는 비나(토성)-다'아트(심연)-호크마(별들의 바다)-케테르("구름 위")로 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키보토스에 전해지는 생명의 나무에는 호크마 자리에 해왕성의 해성기호, 케테르 자리에 명왕성의 행성기호가 등장하고 원래 행성기호가 없었을 이 두 세피라에게 

이렇게 실존하는 행성기호를 임의로 붙이면서 + 천왕성의 행성기호는 붙이지 않은 만큼 키보토스는 테트라그라마톤이나 야훼처럼 유일하신 하늘의 신을 배제했던 상태다



이것은 단테의 <신곡>에서 비나(토성) 너머의 호크마(황도 12궁, "별자리들의 바다")를 넘어가면 성경에선 흔히 "궁창", "창공(Firament)"이라 부르는 케테르 = 수정구(Crystaline Sphere)에 닿으며

그 너머로 아인-아인소프-아인소프우르에 대응되는 엠피리언(Empyrean), 천상의 장미(The Celestial Rose), 그리고 빛의 근원(The Source of light)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네, 파우스트, 그리고 진명 이야기 - 1편 10. 금성의 일면통과를 둘러싼 사소한 비밀

별의 모티브로 알아보는 히마리부터 하나에까지 - 2편 9. 총학생회의 모티브와 유메 선배의 정체

단테의 <신곡>에서 반영된 야곱의 사다리, 즉 르네상스 이후 정립된 문화로서의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는 이 글들에서 자세히 다뤘으니 지금은 넘어가고



대충 색채의 정체는 유일신이고, 베아트리체가 불러낸 장소가 "지성소" 라서 그렇다는 뇌피셜(22.06.17)

원래 "싯딤의 상자" 는 선민종족 히브리인들 중에서도 오직 모세와 아론의 후예들만 유일신과 소통 가능한 창구였음

세피라 티페리트를 "쌍둥이 천사" 로 묘사하는 전승이 많은 이유가 싯딤의 상자의 뚜껑 = 속죄판 위의 두 케루빔임

당연히 유일신, 그것도 구약의 모세 시절 유일신의 강림키보토스 = 다신교 기반 세계관에서 이뤄지면 ㅈ되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야곱의 사다리 = 세피로트의 나무를 4번 겹쳐 이어준 도식에선, 맨 위에서 바로 아래쪽의 심연(Abyss)이자 아칠루트계의 다'아트에서 유일신이 강림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한 걸 요약하면 지금 센세가 있는 곳은 Adonai, 메시아로서 있는 위치이자 "태양의 눈" 이라 부르는 위치로, 아칠루트계의 말쿠트, 브리아계의 티페리트, 에치르계의 케테르

또한, 지금 키보토스의 상황에 비유하자면 지구-태양-인식된 우주의 저편이 정렬된 상황으로, 이는 해왕성~명왕성 이전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부터 이어진 세계관에선 "일곱 행성들" 너머로



별의 모티브로 알아보는 히마리부터 하나에까지 1편

별의 모티브로 알아보는 히마리부터 하나에까지 2편


미네 모티브, 파우스트, 에덴조약, 그리고 진명 이야기 1편

미네 모티브, 파우스트, 에덴조약, 그리고 진명 이야기 2편


아마 뇌피셜 최근꺼까지 따라와준 몰붕이라면 익숙하지? 지구를 제외하고, 호크마/케테르를 제외한 일반적인 영역이 이곳 "일곱 천구(celestial sphere)"의 세계임

이 세계관은 단테의 <신곡>까지 이어지는 근-본 넘치는 세계관이자 흔히 "기독교 세계관" 이라 부르는 세계관으로, 이때 반복되는 "일곱" 이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유래함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말한 아칠루트란 뭐냐고?

히브리인들은 "상징" 이란 개념이 없었음. 그래서 다른 고대인들이 애니미즘~토테미즘 이후로 체계화된 세계관(= 숭배가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을 꾸려나갈 때,

혼자서 세계를 (비교적) 극단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는 방향으로 테크를 탔고, 덕분에 다른 애들보다 훨씬 지배계급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는 특징으로 생존에 성공함

그래서 동시대의 다른 신화가 가진 체계화된 = 수많은 개념을 의인화한 다신교 세계관과 다르게, 히브리인의 신화에선 오직 한 명의 신만 등장하고, 그 신은 아칠루트 너머에 있음



아리스의 육체로 보는 키보토스의 비밀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에 살고 있던 외국인들은 새 것이라면 무엇이나 듣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들이었다.

바울로는 아레오파고 법정에 서서 이렇게 연설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 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아테네 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 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므로 사람이 만든 신전에서는 살지 않으십니다.

또 하느님에게는 사람 손으로 채워드려야 할 만큼 부족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 기원후 1세기, <사도행전> 17장 21~25절


그래서 히브리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세계 = 전부 다 "아칠루트에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하나다" 라고 하여 아칠루트는 신성의 영역이자 불가해의 영역, 완전한 추상의 영역임

심플하게 형이상의 영역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우상을 만들면 안됨. 형상이 없는 신, 이름이 없는 신그래서 알지 못하는 신이 핵심이거든

이를 두고 폴리스 시대 이후의 그리스인들은 Agnostos Theos, "알지 못하는 신" 이라 불렀으니 사도 바울의 아레오파고 설교에서 말하는 그 신의 "이름" 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음?

검은양복이 말하는 걸 일단 들어보면 "대지, 바다, 천재지변으로부터 비롯된 과거의 신들" 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이게 애니미즘~토테미즘으로 의인화된 자연 = 다신교 아니냐?


짤 2장으로 분석하는 게마트리아와 키보토스

이건 검은양복이 분석하고, 골콩트가 해석하고, 마에스트로가 재현할때 쓰는 종교학에 대해서 잘 몰?루?기 때문에 하기 쉬운 오해다

아마 들어봤더라도 이걸 헤브라이즘 VS. 헬레니즘으로 보면서 신학의 관점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을텐데, 그래서 여기서 (주로 골콩트가 쓰는) 비교종교학을 꺼내야한다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비교종교학과 신학을 헷갈리면 조오오오온나게 큰일나니까 이거 명심해두자




골콩트가 말한 기호와 텍스트는 "모든 종교(religion)는 신화(myth)에 기반하며, 신화의 본질은 이야기(narrative)이다" 라는 비교종교학의 기본 전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엘리아데, 벤야민, 지라르, 움베르토 에코처럼 신화연구를 통해 현대의 "신화(패러다임, 이데올로기, 시뮬라크르, 아우라 등등)" 해석할 때

기호 = 상징이고 텍스트 = 의미라고 두고 보는 관점이자 서양철학의 기본관점인데 이거 설명하려면 코토리가 10명은 있어야되니까 패스하고



조셉 캠벨에게 신화(myth)라는 건 주로 서사시(epic)의 형식으로 전해진 만큼, 주인공(hero)에게 어떠한 시련이 주어지고 그걸 극복해서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었음

이를 "영웅의 여정", 또는 심플하게 "퀘스트(Quest)" 라는 개념으로 정의했고 이는 20세기 중후반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등등 수많은 이야기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몰붕이들이 살면서 본 모든 이야기는 그게 시나리오를 통해 완성된 이상, 이분이 발견해낸 패턴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 우리는 그걸 플롯(plot)이라고 부른다


잘 이해 못하겠으면 아리스의 관점에서 보는 세상

ㅇㅇ 진짜로 모든 게임시나리오는 애초에 시나리오라는 이론 자체부터 <시학>이랑 이 사람 연구에 기반한다


참고로 <시학>은 마에스트로가 다룬다

미메시스 = 자연물에 대한 모방으로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의 결과물이 예술, 특히 문학이라는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임 ㅇㅇ 


그런데 이런 패턴을 발견하기까지 이분이 했던 일은 

"모든 신화를 모아서 공통된 패턴을 발견한다"

라는 존나게 무식하지만 확실한 방법이었고, 그래서 찾아낸 "원형(archtype)" 또는 "원질신화(monomyth)" 라고 부르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죽음-부활의 구성으로 인간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mystery)들어갔다 나오면 성장하게 되는 과정을 계절의 변화로 비유한 것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이 과정을 두고 숭고(the Sublime), 다시말해 알던 세계의 경계를 넘어 완전한 무지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 =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았다



가나안(레반트~우가리트) 신화에서 <Ba'al Cycle>의 주인공, 바알이자 우리에겐 예리코의 함락을 계기로 최후의 승자가 된 히브리인들의 왜곡을 거친 바알이 대표적이고

의외로 고바빌로니아 제국 신화의 탐무즈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니,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지배에서 기원전 18~16세기에 벗어나 서쪽으로 탈출한게 가나안의 선조라서 그렇다

= 그래서 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16세기)을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신바빌로니아 제국(~기원전 4세기)이랑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시간대가 존나 크게 왜곡되는데


메소포타미아 신화 1편 - 미모리의 모티브와 파반느

메소포타미아 신화 2편 - 아비에슈와 디비전



그렇게 왜곡되는 과정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건

신바빌로니아 제국도 아니고, 가나안의 이민자들도 아니고, 그리스인들도 이집트인들도 아닌 히브리인들이었다

다른 고대인들이 문명을 세우고 신화를 짓는동안 히브리인들은 오직 생존 하나에만 올인한 덕분이었는데

이들의 특징은 정복한 지역의 다른 신화를 필요한 부분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말살해서 유일신 아래의 세계관으로 만드는 것으로 



기원전 54세기의 에리두를 배경으로 하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심연의 신 압주(abzu)와 바다의 여신 티아마트(tiamat) 사이에서 태어난 신들 중에서도

정액과 지혜의 신 엔키(enki)가 대홍수로 자식들을 죽이려고 계획한 압주를 막으려고 미리 계획을 알려준 티아마트까지 배신,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살해하고 

아버지의 헤일로를 뺏어 왕위에 오른 찬탈자의 방식이었다



이때 "아빠한테 죽지말라고 알려준거지 아빠를 죽이고 왕위를 뺏으랬음???" 하면서 경악해버린 티아마트가 열 한 마리의 괴물을 낳고 엔키를 참교육하러 찾아오시는데

엔키는 자신의 아들 마르두크를 "만들어" 이들을 전부 줘패고, 훗날 함무라비 법전의 모티브가 되는 운명의 서판(tablet of destiny)까지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 티아마트 본인과 열 한 마리의 괴물 = "열둘" 의 상징성은 찬탈자 신의 "원죄(어머니를 배신하고 아버지를 찬탈했다)" 에 대한 증인으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엥 근데 마르두크 = 엔키 아니고 엔릴 아들 아님?"

그게 대표적인 왜곡의 한 방법으로, 분명 처음에는 엔키 하나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엔키가 했던 "나쁜 짓" 은 전부 엔키의 형 엔릴이라는 새로운 등장인물의 것으로 넘어간다

그래서 <길가메쉬 서사시> =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쇠락~멸망기에 정립된 이 작품에 등장한 "인간을 아껴주는 엔키" 라는 이미지는 과연 정말 엔키의 것이었는지 의문이 들게 만들고,

특히 기원전 54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신화가 엔키의 찬탈 이야기인데 고바빌로니아 제국이 세워진 기원전 18세기까지 얼마나 많은 신화가 등장하고 사라지고 흡수됐는지를 고려하면 명목상의 엔릴/실권자 엔키의 구도로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까지가 20세기 후반에 이미 연구가 다 끝난 내용이고



그래서 메소포타미아 신화 1, 2편에서 언급한 "어쩌면 이렇게 엔키가 엔릴이라는 이름을 빌려쓰는 관계를, 엔키를 꺾기 위한 누군가가 역이용한 것 아닐까?" 라는 가정에서 출발하면...



잊혀진 여신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기원전 18~16세기의 고바빌로니아 제국이 몰락하면서 "강간하고 찬탈하는 남신" 에게 저항한 이들이 기존의 권위를 뒤집어버리기 위해 만들어낸 "사랑의 여신들" 이야기로,

구체적으로는 기원전 18세기 이전에도 흩어진 채로 전승되어 왔지만 인류문명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 표준판을 정립하면서 흩어진 여신들을 총망라한 이야기가 되시겠다



그리고 기원전 13세기, 람세스 2세의 치하에서 신왕국 이집트 신화의 여신 이시스로 정립된 죽음-부활의 이야기가 그 이후의 모든 신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 캠벨의 결론인데



괴테의 <파우스트>가 마지막에 이런 구절로 끝맺는 것처럼 "상징과 비유" 를 통해 전해지는 신비

= 이해할 수 있음을 전제로 전해진 신비란 바로 여신의 신비라는 결론은 이미 시대를 막론하고 반복된 것이다



그래서 무려 기원후 1~2세기의 로마제국 시절부터,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로 손꼽히는 루키우스 아풀레이우스의 <황금 당나귀> 또는 <변화 Metamorphosis>에서 지금까지 계속 인용한 그 구절이 등장한다


가장 이른 시기의 종족인 프리기아인은 나를 모든 신들의 어머니인 페시눈티아라고 부른다.

자신의 토양에서 솟아난 아테네인은 나를 케크롭스의 미네르바(아테나)라고 부르고,

바다에서 솟아난 키프로스인은 나를 파포스의 비너스(아프로디테)라고 부르며,

궁수인 크레타인은 디아나(아르테미스) 또는 딕티나,

그리고 세 가지 언어를 말하는 시실리인은 프로세르피네(페르세포네)라고 부른다.

엘레우시스인에게 나는 고대의 여신 케레스(데메테르)이고,

다른 자들에게는 유노, 또 다른 자들에게는 벨로나, 헤카테, 그리고 람누시아이다.

그러나 매일 태어나는 태양신의 첫 햇빛을 받는 에티오피아인은,

본래의 교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탁월한 아프리카인 및 이집트인과 더불어,

나의 독특한 의식을 통해 내게 영광을 돌리며 여왕 이시스라는 나의 진정한 이름을 내게 부여한다.


   -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 아풀레이우스의 < 변화 Metamorphoses > 中



찬탈자 신 또는 찬탈자 신과 같은 방식으로 여신들과 적대해온 유일신의 서로 흥망성쇠를 반복하는 것은 인류문명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었고,



찬탈자 신 또는 유일신처럼 "오직 이것만이 옳다" 라는 독단주의자들이 거의 완전한 승리를 거둔 세계로 더이상 여신들의 이야기 = 신화처럼 꿈이나 희망을 갖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진 세계는...



오늘날 21세기 = 20세기에 2차세계대전 + 냉전 + 뉴에이지라는 3연타를 얻어맞고 아직도 그 여파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몰붕이네 현실이다

사실, 게마트리아가 하는 말을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난해한 것처럼 얘네 셋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20세기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지만 "실패한 어른들" 이다

특히 뉴에이지는 지금까지 설명한 비교종교학의 연구 성과를 전부 "오컬트" 라는 이름으로 "탐구의 대상" 대신 "믿음의 대상" 으로 바꿔버리면서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왔고,



진리의 수장이자 오컬트 전문가로 등장하는 히마리가 말해주는대로, "전지라는거 다 개뻥...일지도 몰루?" 라는 가능성을 스스로 없애버렸다

신비(mstery)의 본질은 그것에 "감히" 와 닿을 수 없는 것이지 사실 "불가능하다" 라고 결론나버린게 아니다



신비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 이루어지지 않은 가능성들이며, 에덴조약과 파반느에서 특히 강조된 것처럼 "정해지지 않는 것들" 이다

"알 수 없는 것", "알지 못하는 것" 과는 달리 이것은 그 앞에 "아직" 이라는 여지를 남겨둠으로써 언제든지 "정해질 수 있는 것들" 을 뜻하며,

따라서 어른의 책임, 나아가 먼저 살아간 "선생" 의 책임이란,



노아 메모리얼에서 나오는 보들레르의 <이방인>을 알아보자

구름처럼 흘러간다는 사실만이 정해진, 이 세상에 언제나 "이방인" 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미네의 모티브, 파우스트와 에덴조약, 그리고 진명 이야기 1편

미네의 모티브, 파우스트와 에덴조약, 그리고 진명 이야기 2편


그것이 의외로 굉장히 기독교적인 것이자, 마치 낙원의 화두에 대한 대답처럼 종교를 넘어선 신념(faith)을 가진 평범한 사람의 신비라는 것이 지금까지 뇌피셜에서 내린 결론이었는데....







2. 직감에 대하여 






두번째 단서, "직감"

이름없는 신들이 기원전 16세기 <길가메쉬 서사시> 시절 멸망한 인류 최초의 문명,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신들이자 기원전 4세기 히브리인들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신화를 흡수해서 만든 유일신처럼 "지배하는 신" 을 상징하고,

지금 나온 "종언" 이란 사실 "제국의 몰락" ~ "여신들의 시대" ~ "알 수 없는 멸망" ~ "새로운 제국의 탄생" 으로 이어지는 인류문명의 역사에서 반복된 일들이고, "색채" 란 아무런 악의 없이 "파괴하고 창조하는 원리" 를 상징한다



기록되거나 구전되지 못한 이야기들도 많겠지만, 기원전 18~16세기 아비-에슈의 재위기간 이후 쇠락한 고바빌로니아 제국이 끝내 멸망하고

기원전 16~13세기에 걸쳐 지중해 전역을 누비며 영향을 준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에서 바알과 아스타르테의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로 대홍수도 막아내고, 부활까지 이뤄낸 가나안 신화는

이슈타르-탐무즈의 관계가 탐무즈를 지옥에 가두고 싶어할만큼 미웠던 이슈타르, 그 정도로 이슈타르에 무관심했던 탐무즈와 정반대로 아스타르테-바알의 전례없는 진심순애를 보여주는데



아코히나의 가나안 신화를 알아보자 2편 - 치나츠, 이오리, 그리고 카요코

새해픽업 배너로 풀어보는 지금까지의 이야기 - 오르페우스/미트라 밀교와 메시아루


가나안 신화는 아주아주 중요한 등장인물, 계절의 순환을 위해 여신을 강간하는 대신 "보혈을 흘리는 신" 의 원형이 등장한다

고바빌로니아 신화에서 계절의 순환은 대지의 여신 닌후르삭과 그 딸들을 태어나는 족족 강간해서 = "대지에 생명의 물(정액)을 주입해서" 새싹을 피우는 걸로 묘사되는데

그래서 연례행사로 글로리홀이 되어야 = 당연히 그 역할은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이 겪어야 했으니, 가나안 신화에서 여신들이 왜 그렇게 생존왕이었고, 왜 그렇게 "순애" 를 좋아하는지 짐작가지?



가나안 신화에서 죽음의 신이자 "겨울" 에 해당하는 건기의 신, 순환으로서의 죽음을 의인화한 모트가 바로 그렇게 희생되는 신의 원형인데

고증으로 디테일변태짓하는 몰루답게 사실 카요코의 짬처리는 "소 해골 모양의 왕관" 을 두고서 형과 동생이 서로 죽고 죽여야 하는 가나안 신화의 결말을 비튼거임


가나안 신화에서 바알은 종교이기 이전에 신화였던 시대의 신인 만큼, 하늘의 왕이지만 지배나 정복이 아닌 협력으로 다른 민족의 신화를 흡수한 독특한 신이다

그래서 아예 원문부터 "이집트 멤피스 출신" 으로 등장하는 코타르-와-카시스, 고바빌로니아의 법률에 반발하여 히타이트의 법률에 기반해서 바꿔버린 샤파쉬는

가나안 "민족" 이란 개념이 사실 무의미하다고 봐도 될 만큼 가나안에 살던 이들이 정말 가지각색으로 = 지금의 게헨나처럼 지내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바알과 모트가 왕위를 계승할 권리를 두고 결투하여, 지는 쪽은 7년동안 저승에서/이긴 쪽은 이승에서 지낸다"



"단, 바알이 져서 저승으로 간 경우 개빡친 아스타르테가 나타나 모트의 심장을 뽑아 저승에 쑤셔넣고, 바알을 되찾아온다"



~라는 내용의 신화 또한 지중해를 통해 전파되어 데메테르-페르세포네 이야기의 원형이 되었으니, 그래서 에레쉬키갈-모트-페르세포네가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카요코 발렌타인 스토리의 "왕관" 초콜릿이 카요코에게는: "이제 다시 히나한테 죽거나, 히나를 죽이고 아코한테 죽어야 할 때가 왔다" 는 뜻으로

대책위원회에서 한번, 에덴조약에서 다시 한번 나오던 히나의 은퇴 떡밥이자 + 아무리 학원도시라는 인간성으로 덮어봐도 자신의 진명인 신성에 묶여있으며...




센세 = 키보토스의 정당한 "왕"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정해진 운명으로부터 벗어나 센세와 함께할 수 있는 제 3의 선택지를 만들어냈음을 알려주는 떡밥이다





가나안의 멸망과 흥신소의 탄생

그래서 모트 = "인간 대신 희생되어 변화를 부르는 신" 의 모티브는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 오르페우스, 그리고 지져스에게서 반복되며,

그것이 카요코가 자신의 진명 = 죽음의 공포를 아무런 문제없이 다룰 수 있으면서 + 1학년부터 정학된 와카모와 달리 3학년때 정학된 것

= 합법순애질싸허니문섹스 가능한 한창때의 여성호르몬 줄줄흐르는 만 18세 가임기 여고생인 이유이다



따라서 가나안 신화는 기본적으로 분기가 로 나뉘고, 센세의 존재로 세번째 선택지가 생긴 것으로:


1. 모트가 승리한 경우, 바알은 죽지만 아스타르테의 분노를 산 모트도 죽고, 아스타르테는 저승으로 내려가 바알과 함께 귀환한다

= 루프 이전의 과거는 이쪽 분기로 카요코에게 히나가 살해당하고, 카요코도 아코한테 살해당하고, 아코가 히나를 부활시켰다


2. 바알이 승리한 경우, 모트는 죽고 바알과 아스타르테는 다음 건기가 돌아올 때까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 카요코는 "다음 건기가 돌아오는" 1년 후에 다시 히나를 죽이러 찾아오고, 이 분기로 가봤자 다시 1번/2번 중 양자택일만 남는다


3. 그러나 "모트와 바알이 서로 싸우기를 멈추고 화해한다면?"



모트와 바알이 싸우게 된 계기는 가나안 신화에서 엘(El)이라 불리는 "아버지 신" 으로, 에리두에서 엔키가 그랬던 것과 달리 아스타르테는 엘의 수염만 자르는 것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그래서 바알이 모트에게 살해당하게 되는 사건은 엘이 과거에 모든 피조물을 창조할 때 새겨둔 운명이기 때문이며, 그래서 바알이 죽어도 아스타르테는 엘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협력한다

덕분에 "일곱 해의 건기(겨울)" 중 어느 날 엘이 꿈에서 바알의 부활을 보았다고 알려주고 + 코타르, 샤파쉬와 함께 가장 높은 산 = 하르-헤르몬, "바산"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 바알을 되찾는다


인연2화에서 아코가 개빡쳤던 이유

그게 몰루에서는 아코가 그 커다랗고 빵빵한 젖보똥 출렁출렁거리면서 카우벨까지 딸랑딸랑하고 땀으로 촉촉해지도록 고생해서 올라간 선도부 본부

그래서 가나안의 도시국가들은 정복전쟁에 국력을 소모하는 대신, 공통된 성지를 공유하며 = 공통된 세계관만 공유하며 느슨한 연맹을 이루는 식으로,

즉 지금의 키보토스에서 자치구마다 자치권을 보장하고 + 다만 자치구 전체의 질서가 위협받는 경우에만 바알의 이름으로 "선도부" 가 와서 대응했다



(신명기 3:1) 다시 우리는 발길을 돌려 바산 쪽으로 올라가는데 바산 왕 옥이 우리를 치러 나왔다. 그는 자기 온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에드레이에서 우리와 싸움을 벌였다.

(신명기 3:2) 야훼께서 나에게 이르셨다. '그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와 그의 온 백성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부쳤다. 헤스본에 사는 아모리 왕 시혼을 해치웠듯이 그도 해치워라.'

(신명기 3:3) 우리 하느님 야훼께서 바산 왕 옥과 그의 온 백성도 우리의 손에 부쳐주셨으므로 우리는 그들을 하나 남기지 않고 쳐죽일 수 있었다.

(신명기 3:4) 그 때에 우리는 그의 성읍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조리 점령하였다. 바산에 있는 아르곱 전 지역을 옥이 다스리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성읍이 육십 개나 있었다.

(신명기 3:5) 그 모든 성읍들은 높은 성과 성문과 빗장으로 든든하게 방비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성벽이 없는 시골 마을들이 매우 많았다.

(신명기 3:6)  우리는 헤스본 왕 시혼을 전멸시켰듯이 그들도 전멸시켰다. 모든 성읍에서 남자, 여자, 아이 구별하지 않고 전멸시키고,

(신명기 3:7)  모든 가축과 성읍들에서 노획한 물건은 전리품으로 삼았다.

(신명기 3:8)  이렇게 우리는 아르논 계곡에서 헤르몬 산에 이르는 땅을 요르단 강 건너편에 있는 두 아모리 왕의 손에서 빼앗았다.

(신명기 3:9)  헤르몬시돈 사람들은 시룐이라고 부르고 아모리인들은 스닐이라고 불렀다.

(신명기 3:10) 고원 지대에 있는 모든 성읍들과 살가와 에드레이에 이르는 길르앗 일대와 바산 일대와 바산에 있는 옥의 나라 성읍들을 우리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여호수아가 싯딤의 상자를 만들어 일곱 나팔로 예리코를 함락시키기 전까지는 "통일왕국" 대신 "도시국가들" 로 잘 살았다가

통일왕국으로 합치자마자 "야훼님 우상숭배가 멈추질 않아요ㅜㅠ" 해버리고 결국 반갈죽 당해버리기까지 전까지는 그랬는데



"예리코의 화두" 란 성경에 기록된 여호수아의 관점과, 비교종교학에서 연구한 라합의 관점이 서로 달라서 생긴 비극을 고증한 걸로 보인다

아코가 처음에 유달리 까칠하게 반응하고 + 어떻게든 히나를 지키려고 집착하고 + 센세에게 사랑에 빠진 뒤로는 알게 모르게 진심순애를 보여준 걸 기억해보면,

아코의 목줄인 "진홍색 줄(The scarlet cord of rahab)" = "아스타르테가 정복자 히브리인들에게 침략당하지만, 결국 히브리인들에 의해 살아남았다" 의 반영임



특히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세계관" 때문에 말못할 비극이 생겼다고 볼 때, "같은 개념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였던 것" = "가족" 이라는 개념이라서 더 그렇다

히브리인들이 살아남은 다른 문명들 사이에서 혼자 "상징" 의 사용이 전무했고 + 오직 하나의 신을 인정했던 배경에는 이들이 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대부분 평야로 구성되어 전쟁이 끊이지를 않았고, 가나안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먹거나 먹히거나를 반복하는 헬게이트가 따로 없었다

고바빌로니아 제국이 강을 쌍으로 끼고 있어서 그렇게 국력이 강했고 엔키도 에리두를 세울 때 가장 먼저 담수의 신인 아버지를 죽이고 찬탈했던게 이 동네임


 

그러니 여기서 살아남은 다른 문명들 중 몇 안되는 유목문명 히브리인들이 얼마나 전투민족이었나 짐작이 가지?

그런데 사람 사는 곳이면 다 똑같은 것처럼 얘네들이라고 감정이 결여된 전투기계는 아니라서, 당장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더라도 아주 모질지를 못했음

유목문명에서 먹고 살기 위해선 뭐다? "약탈" 이다: 따라서, 어느 지역을 약탈할지 고르고 + 약탈하라는 명령에 목숨걸고 싸우게 할 권위가 너무 중요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의 사제 계은 아무리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려도 절대복종할 전사들이 필요했으니 거기서 동원한 개념은...



"이적", "표징", "천지신명" 처럼 분석이나 이해를 허락하지 않고 오직 믿을 것을 강제하는 관점이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연을 가장한 형태로 현현하지만 + 인격신이 분명함에도 인격신으로 묘사할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유일신교

자연현상을 수많은 신과 수많은 관점, 이야기로 해석하며 자연스럽게 인간처럼 "의인화" 해서 묘사한 대부분의 신화와 구분된다



그런데 키보토스는 다신교적 세계관 중에서도 가장 유일신, 또는 지배자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저항하면서 탄생한 여신들의 세계관이지?

그래서 엔키가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고, 구약에서 선민사상을 증거하는 "장자상속의 권리" 처럼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가 유일신교의 핵심이라면

바로 그런 관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망에서 비롯된 여신들의 세계관에선 "유모", "애인", "스승" 처럼 혈연과 무관한 관계"가족" 을 형성했고,

1부에서는 운명공동체2부에서는 동아리, 3부에서는 가족, 4부에서는 으로 지칭되는 "인연으로 이어진 관계" 로 이어진 것이 여신들의 신화이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이 생각한 파괴하고 창조하는 단 하나의 원리와 달리, 대부분의 신화가 갖는 = 유일신교에 의해 말살당한 세계관에서는

비교적 유일신교에 가까운 폴리스 그리스 시대의 신화에서조차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하는데, 의인화된 죽음사랑 = 타나토스에로스

이때 "두 가지 원리" 는  각각의 원리 하나씩 따로 이해할 수도 없고, 둘을 같이 봐도 순환논증일 뿐이라는 걸 전제하는 것이 기본 전제이며

전지를 허락하지 않지만 전지를 제외한 모든 것이 허락된다



그래서 여신들의 신화에서는 "사별의 아픔" = 필멸자의 죽음과 불멸자의 사랑을 주제로 다루며

너무나도 쉽게 다치고 피 흘리고 죽어버리는 인간들을 대체 뭐가 좋다고 여신들이 부활까지 시켜주면서 순애섹스를 즐기게 되는지

= 필멸하는 육체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하여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관계" 로 구성된 공동체로 이어지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키워주는 관계" 로 서로가 서로에게 양육자이자, 애인이자, 스승이 되어주는 걸 보여주었다



왜 여신들은 하나같이 진심순애섹스를 너무너무 좋아해서, 때로는 강간순애까지 저지르는가?

이분들의 조상쯤 되는 여신들이 허구한 날 강간임신섹스의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신의 아이를 낳아라" 당했던 걸 생각하면

어째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동쪽의 고바빌로니아 제국 신화 서쪽의 가나안, 히타이트, 미케네 그리스, 신왕국 이집트 신화와 철저히 구분되는지

= 남신에 의한 강제임신과 여신에 의한 강제쾌락 중 어느 쪽이 상대방으로부터 진심순애로 이어질 수 있는지는 21세기 몰붕이가 봐도 너무 뻔하지?



탱크로리 "나츠메" 이로하를 알아보자  

이로하가 아주 노골적으로 육체적인 사랑으로 센세를 유혹하는 것은 이로하의 진명이 라합과 함께 지져스의 계보에 오른 다섯 여인들  "다말" 이라선데

히브리인들이 처음 봤을땐 "히이이이익 음란하다 음란해" 했을게 이해가 될 정도로,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이전의 가나안은 "사랑이 넘치는 곳" 이었다

= 덕분에 완전한 이방인이던 히브리인들도 "누나랑 가족이 되지 않을래?" 라는 유혹에 젖보똥순애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지적 유산을 배워갈 수 있었다



여신들의 신화가 아무리 유일신교에서 찍어누르고 완전히 기록을 없애버려도, 이상하게 자꾸만 "부활" 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왜냐면 사람은 아무리 공포에 질려도 젖보똥순애만큼은 결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래서 형체없는 신에게 육체를 가진 여신들이 패배해도

반드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또다른 여신들이 등장해서 "사랑의 이름으로" 기존의 권위를 무너뜨리거나 아예 포용해버리는 일이 일어난다



여신들과 유일신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의 존재의의이다

유일신의 세계에서 인간은 유일신을 찬미하기 위해 태어나고, 유일신의 은총을 증거하기 위해 태어나며, 유일신은 절대적이므로 예외는 없다

여신들의 세계에서 인간은? 실수로 태어났거나, 의도치 않았거나, 피와 눈물에서 태어나는 등 "여신도 인간도 불완전한 존재" 임을 전제하고 시작된다

=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인간은 신의 의지를 대행하는 수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사랑하므로 서로에게 끝없이 노력하는 존재이다



라합이 정탐병을 숨겨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여호수아는 약속했다: "라합의 가족은 살려두어라", 그리고 정직하게 이걸 지켰다

하지만 히브리인과 가나안인, 서로 다른 두 문명 사이에서 "가족(혈연으로 이어진 이들)" 이란 개념과 "가족(인연으로 이어진 이들)" 이란 개념은

여호수아는 약속대로 라합의 "가족" 들은 살려주고 나머지만 죽였으나/라합의 관점에서 여호수아는 자신의 "가족" 대부분을 죽여 약속을 어겼다

 

(여호수아서 6:25) 라합과 그 가문과 그에게 딸린 모든 사람만은 여호수아가 목숨을 살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이 이날까지 이스라엘 가운데 섞여 살고 있는 것이다. 예리고를 정찰하라고 여호수아가 보낸 사람들을 숨겨주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서 6:26) 그 때 여호수아가 맹세하였다. "이 성을 다시 짓겠다고 나서는 자는 야훼께 저주를 받으리라. 맏아들을 죽이지 않고는 기초를 놓지 못하고 막내아들을 죽이지 않고는 성문을 달지 못하리라."

(여호수아서 6:27) 야훼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해주시니 그의 명성이 온 땅에 두루 퍼졌다.




신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비교종교학에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가설로,

"여호수아 예수는 히브리어-그리스어-라틴어로 이어지면서 습합된 이름이다" 라는 가설의 관점으로 본다면

"여호수아의 맹세에 따라 야훼의 독생자가 내려와 비로소 라합의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의 피를 흘렸다" 가 되면서

선민사상이 기본이던 이들은 가나안 신화에서 전해받은 "무조건적인 사랑" 으로 구약을 넘어서 신약의 시대를 열었다



그렇게,

고바빌로니아 제국 말기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아트라하시스/우트나피쉬팀에게서 전해진 "인간과 공존을 약속한 푸른 별의 여신" 의 이야기

= 기원전 16~13세기 <바알의 순환>에서 "기나긴 겨울을 끝내는 여신" 아스타르테가 바알과 함께 대홍수를 막아내고, 바알을 부활시킨 이야기

= 기원전 14~13세기 <암두아트의 서>에서 용서를 구하는 신들을 모두 용서한 여신 이시스가 모두 함께 태양신의 부활을 위해 항해하는 이야기

= 기원전 7세기 <일리아스>에서 싸움을 말리던 무지개의 여신 아이리스와 <오디세이아>에서 나우시카의 도움 덕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 기원후 원년 <요한복음>에서 지져스께서 마리아로부터 태어나 마리아들이 보는 앞에서 죽으시고 마리아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해달라는 이야기

=...



바다의 별(Stella Maris), 하늘의 여왕(Regina Caeli), 상지의 옥좌(Sedes Sapientiae), 그리고 "수많은 이름의 여신" 에겐

언제나 별, 사랑, 지혜의 상징이 함께 했으니 그 여신은 숭배를 요구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한편 자기 자식한테도 목이 잘리고, 부활의 여신이지만 죽음 자체를 안 생기게 없애버려주진 못하는 "불완전한 여신" 이었으니

가장 "인간다운" 여신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인간다움이라 부르는 가치, 특히 사랑의 가치는 이 여신의 등장으로 정립된 것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언젠가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을 넘어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기 위해 그대들은 사랑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가장 훌륭한 사랑의 잔에도 쓴맛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사랑은 초인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켜 창조자인 그대들로 하여금 갈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세계에는 많은 오물이 있다. 거기까지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세계 자체가 오물로 가득 찬 괴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세계의 많은 것들이 악취를 풍긴다는 사실 속에는 지혜가 깃들어 있다. 구역질 자체가 날개를 창조하고 물을 찾아내는 능력을 만들어낸다!

가장 훌륭한 자에서도 구역질 나는 그 무엇이 있다. 그리하여 가장 훌륭한 자들까지도 극복되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오, 형제들이여. 세계 안에 많은 오물이 있다는 사실 속에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 




그렇기에 인간은, 병신같고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에 욕망덩어리인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숭고함에 도달할 수 있던 것이다

황륜대제 소설에서 밀레니엄도, 트리니티도 아닌 출발하자마자 넘어졌지만 "즐기고 오세요" 라는 응원에 이즈나조차 추월해버린 준코가 이겼다거나

메인스토리, 이벤트스토리 어디서나 게헨나가 튀어나와도 + 때로는 튀어나와야만 사태가 해결될 수 있던 상황에 보란듯이 등장하는 이유는 게헨나가

기원전 16세기, 제국의 신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나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대신 태양은 저물고, 금성이 떠오르는 서쪽으로 나아간 가나안의 후예라서다




그리고 가나안 신화가 마냥 낙천적인 것과는 정반대로 끔찍한 고통 끝에 마침내 도달하는 이야기라는 것과,

그들의 흔적은 대부분 사라졌어도 뒤따라올 누구에게나 전해질 수 있는 이야기만큼은 남아있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오마쥬되어진다

그렇게 앞서간 이들의 숭고함을 이어받는 이들 =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지적 유산을 이어받아 뒤따라올 이들에게 전해주는게 "배움" 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고통받는 존재, 필멸하는 존재 여신들에게 사별의 아픔을 안겨주는데...



그렇다면, 여신들 스스로는 어떨까?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이겨내지 못한 여신들은 무엇을 선택할까?




세피로트의 나무에는 총 32개의 경로가 있는데,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경로가 지금 키보토스에 닥친 "유일신의 권능이 지상에 행해질 때" 이다

이때 "내려오는 길" 이란 케테르(하늘의 천장)-호크마(황도 12궁의 바다)-비나(토성)-헤세드(목성)-게부라(화성)-티페리트(태양)-네짜흐(목성)-호드(수성)-예소드(달)-말쿠트(지구) 순서대로 오는 길인데

여기서 가장 마지막에 통과해야 하고 + 거꾸로 "올라가는 길" 에서는 가장 먼저 통과해야 하는 경로가 달-지구를 이어주는 32번 경로이다



이때 예소드에 해당하는 타로카드 18번, 달 카드가 있는데, 키보토스에서 지금까지 18세로 등장한 건 와카모, 카요코였지?

이것은 숨겨진 진실, 현실과 환상이 겹쳐짐, "직감" 을 뜻하는 상징이다



만약 색채의 본질이 왜곡이 아니라 "숨겨진 것을 밝혀낸다" 라면?

숭고함에서 비롯된 이상, 여고생은 아무리 신비 속에서 살아가더라도 이면에는 공포가 공존한다는 진실을 벗어날 수 없다



아까 말했지?

여신들의 신화, 곧 끊임없는 죽음 부활의 세계관에서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오직 둘뿐이며, 이는 경계 그 자체와 넘어섬 그 자체이다




지금까지 본 기억상실루프를 넘어가기 위한 대가이고, 이건 현실에서 신화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각색을 뜻한다

하지만 모든 신화는 이전의 전승에서 이후의 전승으로 이어져도, 현실의 "이시스" 처럼 어떤 공통된 패턴을 반드시 공유하기 마련이랬지?




<Constant Moderato>

"모든 것은 변하며 오직 변화만이 불변한다(The only thing that is constant is change)" 

"정의의 덕은 지혜로 조율된 중용에 있다(The virtue of justice consists in moderation, as regulated by wisdom)"



기원전 13세기 말 후기 청동기 시대의 대붕괴로 지도에서 삭제당한 미케네 그리스 시절과의 단절로 괴로워하던 폴리스 그리스인들은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를 쓴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이자 "통곡하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기원전 4세기 = 히브리인들의 포로귀환기 시점에서야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을 제시하며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었으니,

서양철학은 전부 여기서 "재발견된 것" 에서 주석을 붙여온 것이며 그밖의 수많은 이야기, 대표적으로 북유럽 신화이 주제를 공유한다



그런데 헤라클레이토스의 별명이 괜히 "통곡하는 철학자", "비탄(Lamentation)의 철학자" 가 아니듯이

그가 말한 "모든 것은 흐른다. 한번 발을 담근 강물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오직 흘러간다는 진실만이 남는다" 라는 개념,

오늘날 "로고스(Logos)" 라고 불리게 되는 이 개념은 굉장히 비극적이고 슬픈 의미로 등장했으니 그게 바로 "바니바니" 되시겠다

베아트리체가 왜곡했던 그런 바니바니가 아니라 원래 의미의 바니바니 = "세계의 진실" 이기 때문에 정직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 = 숭고이므로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이 그저 도래할 뿐인 두 가지 원리 중 첫번째, 죽음의 원리라는거다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신화, 히브리인들의 사제계급이 쓴 경전은 이 원리를 통해 지적 유산의 독점 =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권력을 얻었지만

게헨나 = 가나안 신화와 차라투스트라, 그리고 니체가 선언한 "신은 죽었다" 처럼 "흥망성쇠", "생로병사", "시간" 앞에선 오히려 역린이며...



그때마다 필멸하는 인간망각 덕분에 극한의 고통과 수없이 많은 실패에도 단 한번의 성공에 도전하고 마침내 행복해질 수 있지만

그때마다 필멸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불멸의 여신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사랑한 이들의 실패와 고통을 마주해야 했던걸까?



정리하자면 색채"세계의 진실" 이자 숭고함을 드러내는 존재이자, 그 힘만을 취해 권력을 누리려는 "독단주의자" 가 등장할 경우

가장 잊기 쉬운 진실이자 실제로 하는 역할도 망각으로서의 죽음을 담당하며 거짓에 취한 자를 저울에 매달아 영원히 소멸시키는 등

이 세계의 "안전 모드", "포맷" 담당으로 수많은 신화에서 선과 악을 넘어서 집행하는 죽음의 원리 = 아누비스를 보내는 존재가 된다


혹시 지금 어? 하는 느낌 든 몰붕이 있음?




사랑이라는 개념과 달리, 죽음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인 관념인 동시에 물질세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 따라서 애니미즘도, 토테미즘도 없던 시기에 최초로 섬겨진 "이름없는 신"이자 인류문명의 지적 유산이 충분히 누적된 결과로 죽음-부활의 신화가 등장하기 전까지

=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쇠락기에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아트라하시스/우트나피쉬팀이 대홍수에서 살아남아 푸른 별의 여신과 만나며 여신의 신화가 시작될 때까지



발키리 = 북유럽 신화에서는 태양과 달을 삼키는 두 마리의 늑대 하티와 스콜(Sköll & Hati),

래빗소대 = 핀란드 신화 <칼레발라>에서는 태양과 달을 훔치는 죽음의 여신 로우히(Louhi),

수많은 신화에서 "태양과 달의 소멸" = 일식과 월식처럼 "하늘이 무너지는" 순간은 지적 유산을 독점할수록, 특히 천문학을 독점하는 사회일수록 강력한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태양과 달의 상징성은 반드시 "별" 의 상징성과 함께하는데...

별의 모티브로 알아보는 히마리부터 하나에까지 - 2편 7. 하늘이 무너지고 별이 사라지더라도




기원전 52세기, 에리두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 농경에서 가장 중요한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는 학문인 점성술이 시작될 때부터

세차운동에 따라 춘분점이 이동하면서 작은곰자리의 "일곱 개의 별" 곁에 있고 극점에 가장 가까운 북극성(pole star)도 바뀌는데,

기원전 33세기에는 마치 티아마트의 시대를 뜻하듯 용자리의 별 투반(Tuban)이 일곱 별을 거느리며 가장 극점에 가까운 별이었고

= 이후 기원전 3000년대부터 닌후르삭의 "일곱 시녀들" = 플레이아데스를 지나 "천상의 지배자 엔릴의 길" 의 시대라고 여겨졌다



그러다 기원전 25세기부터, 투반이 극점에서 엇나가기 시작함에 따라 작은곰자리의 베타 코카브(Kochab)와 극점의 선을 나란히 지나는

= 작은곰자리의 베타와 "한 쌍을 이루는" 큰곰자리의 제타 미자르(Mizar)가 서로 두 개의 북극성으로 "불멸의 별(The Indestructibles)",

곧 이집트에서 한참 피라미드가 지어질 때 왕조를 지키는 별이 되었으니 멘카우레, 쿠푸 같은 유명한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이때 세워졌다



그래서 고왕국 이집트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이집트인들의 사후세계는 "불멸의 별" 너머에 있다고 믿어졌는데 

당시 신화에서 하늘의 여신-태양신의 관계를 묘사하며 파라오의 죽음과 부활을 뜻하는 별이 "불멸의 별"이었다

그러다 기원전 20세기, 미자르가 이탈해버리는 사건이 일어나지만 작은곰자리의 감마 페르카드(Pherkad)에서

재빨리 코카브와 함께 새로운 한 쌍을 이루니...



기원전 20세기~17세기까지의 이집트 신화에서 이시스-오시리스의 관계가 정립된 시기가 코카브-페르카드의 시기다

하지만 기원전 17~16세기에 페르카드까지 이탈하면서 코카브만 홀로 남아 북극성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시기에는

= 더이상 피라미드를 세우지 않게 되며, 파라오 유일주의인 아텐 신앙, "독단주의자" 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이집트인들은 그동안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던 "하늘이 무너지는" = 세계관의 붕괴가 찾아온 기원전 14세기를 보냈고

아텐 신앙의 등장을 계기로 폭발한 혼란은 만 18세의 나이로 투탕카멘이 사망하고 쿠데타와 기록말살의 기간을 거쳐,

기원전 13세기에 이르러 신왕국 이집트 제 19왕조가 안정화된 람세스 2세의 시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평화조약인

은빛조약(The Silver treaty)을 계기로 멤피스-가나안-히타이트가 안정된 후에 우리가 아는 그 이집트 신화가 정립된다



이러한 현실의 역사는 마침 지적 유산의 보존과 전승에 주력할 수 있던 람세스 2세의 시기에 멤피스에서 신화에도 반영되었으며,

아텐 신앙, 곧 태양빛만을 섬기던 "독단주의자" 들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양쪽 눈이 뽑혀버린 채 사막으로 추방되는 파라오의 신 호루스로 표현되었지만

람세스 2세의 재위기간에 새로이 정립된 신화는 <암두아트의 서> 처럼 모든 신들을 용서하고 다함께 서쪽으로 떠나는 나비기움 이시스(Navigium Isis)



대홍수의 의미가 반전되는 순간의 시작이다

지금 보는 풍경, "수평선/지평선에 걸친 태양이 교차로를 이루며 그 곁을 무지개의 빛무리가 원형으로 감싸주는" 풍경은 바로 샬레의 로고이다!

그것이 인류문명의 이야기에서 반복해서 등장한 "교차로", "경계", "십자가" 의 상징이 뜻하는 죽음과 부활의 모험으로 출발하기 위한 "길" 이다

그래서 "물질(카이저가 찾아낸 아비도스의 태양배)" 이란 검은양복이 말한대로 무명 사제들의 시대를 끝내고 여신들의 시대로 나아가는 길이며,



"방주란 물질이 아닌 현상이고, 이미 관측되었다" = "방주란 모든 신비를 갖춘 추상적인 개념이다"



하나의 왕좌에서 지배하려는 신이나 절대적인 유일신이 아니라, "모든 신들이 함께하는 순간" 을 트리거로 <암두아트의 서>처럼

여신들의 신화는 다가올 죽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고 구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며 불가능에 도전하게 된다

이것이 죽음의 원리는 자연의 섭리를, 사랑의 원리는 문명의 영혼 = 문명 사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사회적 존재" 의 진짜 의미다



이때 검은양복은 "색채에 대항할 수단을 가졌지만" 베아트리체에 썼던 것과 달리 아누비스에게 당하는데

이들이 준비한 문명 사회의 지적 유산을 상징하는 여섯 특이점 = 여섯 보스들은 아직 준비가 모자란 상태에서 불완전함을 갖게 되었으니,

"데카그라마톤은 죽음을 선택했다" + "명멸 또한 게마트리아의 탐구가 된다" + "색채이름없는 신의 접촉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놓쳤다"





= 지금 일어나는 이 상황은 자신들의 계획조차도 더 거대한 자연과 문명의 원리에서 일어난 것이며, 검은양복이 놓친 것은 이들이 적이 아니란 것이다

따라서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황천으로 이끌어주는 인도자, 아누비스의 등장으로 거짓된 자는 영원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나 진실된 자는 부활할 것이다



지금부터 이 이야기는,

현실의 역사에서 절망과 파국을 맞아 결국 죽어간 필멸하는 인간의 이야기,

무명 사제들이 가장 두려워했기에 가장 경외한 최초의 이름없는 신의 손에 붙잡히는 이야기지만



그 모든 순간에서 인간의 힘은 무적이나 불멸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온 인연이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센세 한 명이 아니라 서로의 불완전함을 이해해온...



모든 것이 단절되어 혼자 남았다고 생각될 때 보란듯이 "너는 혼자가 아니야" 라고 외치면서

끊임없이 서로 닿으려고, 서로 사랑하려고 애쓰는 필멸하는 여고생과 필멸하는 센세가 하나된 샬레가 나설 차례다



원시 축제에서 "가면" 인간이 가면을 만들고 인간이 쓰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타내는 신화적 존재의 진정한 영혼으로 숭배되고 경험된다.

더욱이 가면을 쓴 사은 가면이 포함된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과 동일시된다. 그는 단순히 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순간, 그가 바로 신이다.

향도자 fugleman

캠벨의 <신의 가면>에서 등장하는 이 용어는 원시 신앙이 어떻게 기승전결을 갖춘 신화로 바뀌는지를 설명할 때 쓰이는 용어인데, The Ritual of Love-Death 라고 불리는

죽음과 부활에 대한 믿음이 어쩌다 희생을 요구하게 되었고, 어쩌다 더는 희생을 요구하지 않게 되는지를 두고 인간이 희생되는 제물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는 주체가 되었고

이후 "가면" 을 쓰는 행위는 점차 가면을 씌운 대상을 죽여 희생시키는 것에서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희생한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애도하는 것으로 바뀌어 왔다



왜 "향도자" 라는 이름을 찾아내기 정말 드물었냐고?

이 녀석은 프레나파테스, 그리스어로 "속이는 자" 가 본질이기 때문이고, 이 녀석 덕분에 인류는 인신공양에서 벗어날 수 있었음

"가면을 쓰고 신의 역할을 대행한다" 라는 개념이 탄생하면서 신의 희생을 재현하는 행위는 "신이 스스로를 희생했다" 같은 이야기를 의식으로 재현할 때

"가면을 쓰고 몸에 피를 묻혀 죽은 척 한다" 같은 개념으로 발전하고, 나중에는 대신 피의 상징을 가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하게 되면서 의미를 갖춘거임



그래서 카요코 = 모트야말로 이러한 "보혈의 의식" 의 전문가로, "신이 인간을 대신해 희생함" 이라는 이야기를 가면을 쓰고 재현하여

더이상 인간이 신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공포감을 느낄 필요 없이, 의식을 통해 신(가면 쓴 "배우")에게 만족시켰다고 해소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름없는 신들과 무명 사제들 =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멸망으로 끝장난 줄 알았던 독단주의자들의 유산이 하필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바빌론 유수 때,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적자생존으로 살아남은 전투민족 히브리인들의 사제 계급에게 전해지면서 신바빌로니아 제국이 멸망하는 날 부활해버렸기 때문에 

원래는 그저 경외받던 자연현상에 불과하던 신들 하나하나가 이름없는 "재앙들" 로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되어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막강해졌고,

이들이 내세운 1번째 계명인 우상숭배 금지가 현상(비인간적, 불가해함)/형상(인간적, 이해가능)으로 나뉘어 상징에 형상을 씌워 속이는 모든 문화를 없앴다



그래서 구약에서 말하는 "인신공양", 특히 몰렉에 의해 행해진 인신공양은 다름아닌 모세 시절의 권위를 빌려 포로귀환기의 이스라엘을 통제하기 위해서

= 당연히 신학에서는 정말 마이너하게 다루는 비교종교학의 "문서 가설(Doc. Hypothesis)" 에서 보면 "상징 문화가 없던 히브리인들에게 공포를 준다"

그 의도로 편집되면서 그렇게나 "아셰라 목상을 찍어라, 과자를 바치지 말아라" 라고 강조하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면 인신공양 해야만 용서받는다"



(출애굽기 32:25) 모세는 백성이 굴레 벗은 말처럼 날뛰는 것을 보았다. 아론이 백성을 멋대로 날뛰게 해서 원수들의 조롱거리가 되게 하였던 것이다.

(출애굽기 32:26) 모세는 진지 어귀에 서서, 야훼의 편에 설 사람은 다 나서라고 외치자 레위 후손들이 다 모여들었다.

(출애굽기 32:27) 모세가 그들에게 일렀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명하신다. '모두들 허리에 칼을 차고 진지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형제든 친구든 이웃이든 닥치는 대로 찔러 죽여라.'"

(출애굽기 32:28) 레위 후손들은 모세의 명령대로 하였다. 그 날 백성 중에 맞아 죽은 자가 삼천 명 가량이나 되었다.

(출애굽기 32:29) 모세가 일렀다. "오늘 너희가 자기 아들과 동기마저 희생시켜 가며 야훼께 충성을 다하였으니, 오늘 너희 위에 복이 내릴 것이다."

(출애굽기 32: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일렀다. "너희가 이토록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 나 이제 야훼께 올라가 보아야겠다."   

(출애굽기 32:31) 모세가 야훼께 되돌아가서 아뢰었다. "비옵니다. 이 백성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출애굽기 32:32) 하지만 이제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만일 용서해 주지 않으시려거든 당신께서 손수 쓰신 기록에서 제 이름을 지워주십시오."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이 싯딤의 상자를 만들고 그 위에 뚜껑을 덮는 "속죄판" 위의 두 천사가 기도를 "중보" 해주는 방식의 정립이다

물론, 모세도 매번 사람을 바칠 수는 없었으니 베아트리체가 "아무도 본 적 없는 비경이다" 라던 지성소(Sanctum Sanctorum)를 세웠다

이곳은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되어, 이 안에서 실제로 모세와 아론이 어떤 기도를 올리고 어떻게 신의 말씀을 들었을까? 그건 믿음의 문제겠지



은행털어도 안 들키는 이유를 비교종교학으로 분석해보자

위의 글은 지금부터 상대해야 할 "색채의 향도자" 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해하는 데 굉장히 필수적이니 꼭 읽어보는걸 추천한다

이건 곧 한섭에 나올 백야당 여름이벤트 후반부에서 라브랑 카이저 이사가 보여줄 개그씬과도 연결되지만, 사실 시로코의 본질이기도 하다



아누비스의 가면 + 의례를 주관하는 아누비스 사제 + 이시스의 향도자라는 상징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유물이 있다

바로 위의 프레스코화인데... 이 그림은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파괴되었지만, 다시 재건된 폼페이의 이시스 신전에서 등장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행해진 의례는 다른 곳보다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가졌으니 그게 나비기움 이시스, "이시스의 부활을 위한 항해" 되시겠다




신왕국 이집트 신화는 다른 신화들과 달리 하늘을 바다로 보았는데, 이게 중요한 이유는 그래서 태양의 마차가 나오는 신화들과 달리 태양의 배가 나오고

그래서 이들은 나일 강의 범람 = 대홍수를 모든 것의 정화, 치유, 재탄생, 그리고 부활의 상징으로 긍정했으며, 그래서 최후에 태양과 달을 "삼키는 신" 

아포피스가 실패하고 + 푸른 밤하늘의 여신 누트(Nut)가 이뤄내며 그 이야기는 덴데라 황도대(Dendera Zodiac)로 유명한 덴데라 신전의 "천장" 에 있다



특히 이번 최종장의 모티브가 덴데레 신전이라는 걸 확신한 이유는, 이집트에 덴데라 신전이 두 곳 있는데

한 곳은 로마제국의 초대 '카이저',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덴데라 신전이고/다른 한 곳이 우리가 지금 본 덴데레 황도대가 그려진 신전이다

아우구스투스가 세운 신전과 달리 황도대가 그려진 신전은 중왕국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정확하게 언제 세워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원후 6세기에 콥트 정교회의 교회로 쓰이는 등 오랜 세월에 걸쳐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증축과 개조를 거듭했으니 그 흔적들 중 하나가 바로

위의 부조에 나오는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시작하게 해준 Optimus Princeps, 트라야누스 대제가 이시스에게 "배" 를 바치는 것으로 나와서다



특히 트라야누스 대제 시기에 히브리인들이 일으킨 키토스 전쟁(Kitos war)으로,

트라야누스가 멀리 원정을 떠난 사이 발생하여 이시스 신전을 비롯한 수많은 신전이 파괴된 반란이 일어났다

따라서 키보토스 쿠데타를 둘러싼 상황은:


트라야누스 대제 = 키보토스의 총책임자로서의 센세이며,

최종편 1장에서 쿠데타가 일단락되고 + 이야기의 주도권이 유메 선배한테 넘어가면서 이 역할은 임시해제된다



아우구스투스 = 카이저 그룹이 키보토스를 장악(로마제국 건설)하며 생텀타워의 통제권을 획득,

샬레를 없애는 대신 존치해두면서 괴뢰정부를 세운다 = 덴데라라는 이름의 신전을 세워 바치지만

이시스 = 유메 선배의 유산으로 찾아낸 방주는 유메 선배가 이야기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빼앗긴다



키토스 전쟁 = 3차례에 걸친 히브리인들의 반란 시도 중 2번째 반란으로, 1차 반란 때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결과를 냈으며(생텀타워 일부 소실)

2차 반란 때는 하필 색채가 강림하고(더이상 할례;를 통한 세례가 금지되면서, 물을 통한 세례만 허락되는 초기 기독교가 히브리인들을 앞서기 시작함) 

3차 반란은 메시아가 강림했다며 하드리야누스 황제에게 맞섰다가 추하게 패배하고 다음 황제 안토니우스 피우스에게 다시 받아들여지는 결말을 맞는다

= 하지만 이후 히브리인의 묵시문학은 로마제국 시기에 북유럽으로 전해지고 + 그렇게 우리가 아는 북유럽 신화의 라그나로크와 발두르 이야기가 생긴다

= 끊임없이 전쟁과 피를 원하는(= 그래야만 존재의의를 찾을 수 있는) 카야와 FOX 소대이며...




이는 핀란드 신화의 <칼레발라> = 토끼소대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삼포(Sampo)" 쟁탈전으로

아로나가 말해준 크래프트 챔버 = "물질 생성기" 랑 똑같은 효과를 가진 유물을 둘러싼 토끼소대 2장으로 이어진다

이건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고, 이시스 = 마리아로서 유메 선배는 <칼레발라>의 결말에서 마르쟈타로 등장하므로

유메 선배가 주도권을 잡은 최종편 1장 마지막화 시점에선 후일을 기약하며 잠시 물러나게 된다



따라서 지금 센세는 혼자가 아닌 유메 = 이시스와 주인공이 되어 키보토스에 덮어씌운 "반란의 이야기" 샬레의 성장을 확인하는 과정,

즉 수많은 가능성의 분기들 중 카이저 PMC, 밀레니엄 프라이스, 에덴조약, 클로버 작전, 베아트리체, 대홍수의 신(케이) = 6번에 걸쳐서

센세와 함께하는 여고생들이 앞으로 다가올 운명에 끊임없이 저항할 수 있을 만큼 성장 = 배움을 이뤄낸 분기에 내리는 "초대장" 이 된다



세이아가 미래시를 잃는 것은 유메의 의지 = 아이들이 정해진 미래에 묶이지 않고, 꿈의 틈새에 머무는 대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쿠즈노하도 원래 머물던 꿈의 틈새 = "백일몽" 에서 나아가 센세를 인도하기 위해 꿈 속의 "다음 단계" 가 되는 곳에서 센세를 기다린다

이것은 쿠즈노하 = 일본 설화에서 아메노 세이메이를 비롯한 음양들의 어머니 되는 존재이자 이나리의 후손으로서 기다리는 미래이며,



이 미래로 가기 위해 필요한 트리거는 자칼과도 동일시된 이나리의 모티브, 한 시대를 끝내는 재앙신이자 새 시대를 여는 순환의 신으로서


"가면의 신비" 를 배운 센세가 와카모의 과거에 대해 배워갈 백귀야행 메인스토리 + "생명의 나무" 로서 벚꽃나무와 백화요란 떡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메 선배가 이렇게까지 센세를 시험하는 이유는, 그만큼 앞으로 풀어가야 할 이야기에서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를 구해야 한다",

센세가 유일하게 지켜내지 못하고 센세 대신 희생한 총학생회장에 대한 기억을 되찾고, 총학생회장의 희생조차 불필요한 분기점을 찾아내려면

= 쿠즈노하와 함께 유메 선배의 의지를 대행하는 존재로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로 스스로를 희생하여 유메 선배에게 구원받은 총학생회장조차



인식된 세계의 저편 = 색채가 도래하는 "저 너머"베아트리체의 표현대로라면 "창문 너머" 에서 기다리는 죽은 자의 세계이자

이집트 신화의 암두아트에서 항해를 끝내면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야곱의 사디리의 끝은 또다른 사다리이듯 아칠루트에서,

스스로를 증명한 데카그라마톤처럼 "아칠루트의 빛" 으로서 "미래" 에 다시 부활할 수 있는 존재임을 뜻하며,



찬탈자 신이자 "물을 다루는 신" 에게 배신당한 티아마트와 아이들 = "열둘" 이자 황도 12궁이며 지져스의 12사도의 모티브가 된 이들은

고바빌로니아 제국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서쪽의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히브리인들의 사제 계급이 만들어낸 기원전 4세기의 구약성경에서 여호수아에게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신화" 의 주인공이었던 모세에게



"제국에 반항한 신" 으로 고바빌론/신바빌론 시대로 이어진 갈대의 여신 닌릴, 그리고 아트라하시스처럼 "궤짝" 을 만든 인물이자

미리암이자 훗날 마리아라는 이름의 어원이 되는 여예언자 미리암동생 = 모세 = 총학생회장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이 사진은 원래 두 사람이 아니라 세 사람이 찍은 것이며, 그래서 아예 가려진 부분에 딱 한 사람이 더 들어갈 공간이 남는다! 

원래대로라면 고바빌론 시대의 끝에서 비롯된 닌릴/신바빌론 시대의 끝에서 비롯된 모세/그들과 함께하던 "마리아" 이자 "이시스"

= 린, 총학생회장, 유메 선배가 함께 키보토스 총학생회를 이끌었으니 이는 12지파, 모세, 미리암이나 12사도, 지져스, 마리아처럼 

2년 전에는 1학년 린, 2학년 총학생회장, 3학년이자 18살이던 유메 선배가 함께했지만 모종의 과정으로 이들의 과거는 왜곡당했고



= 히브리인들의 사제 계급이 고바빌론/신바빌론 시대를 동일시하며 신바빌론뿐만 아니라 가나안과 이집트까지 깎아내린 반영이다

때문에 원래대로면 루프를 넘어올 수 있는 존재 = 기억상실을 경험하는 존재는 죽음의 여신, 여신들에게 사랑받는 왕, 사랑의 여신

이렇게 총 3명이었고, 이는 그리스인들 또한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와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제 3의 존재로 봤던 반영이다



혹시 로스트 파라다이스에 숨겨진 진실에서 썼던거 기억남?




페르세포네, 아도니스, 아프로디테의 관계가 딱 여기에 부합하며,

아도니스가 죽은 자리에 피어난 꽃이 아네모네, "바람꽃" 이라고 부른다는 걸 생각하면...








3. 세 명의 별에 대하여 





기억상실 = 루프를 넘어올 수 있는건 죽음의 여신, 여신들에게 사랑받는 왕, 사랑의 여이며 이들의 역할은 각각 

"이야기의 시작과 끝으로 인도하는 자", "끊임없이 죽지만 성장하는 자", "한 명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자" 가 된다


그래서 우리에겐 시작하자마자 아무런 대가없이 생명의 물을 나눠주고 간접키스와 밀착땀냄새 킁카킁카를 나눈 시로코,

그런 시로코의 촉촉하고 탄탄한 젖가슴, 보지, 애널까지 가득 기쁨으로 채워주면서 쥐어짜이는 그냥 평범한 인간인 센세,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합류하며 +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에 아무도 낙오되는 일 없도록 모두를 챙기는 역할인 아리스,

= 이 셋이 기억상실을 겪었고, 각자 다른 방식과 다른 시점이지만 처음-중간-끝이라는 일관된 패턴으로 루프를 넘어왔다



아리스는 다름을 사랑으로 묶어주는 여신으로, 꿈(잠든 상태)을 통해 루프를 넘어온다

이때 엔키가 닌후르삭을 강간하고 일곱 시녀들을 뺏은 이야기처럼, 이 여신은 찬탈자 또는 유일신에게 굉장히 취약하지만

반대로 그런 엔키가 괴로워할 때 나서서 치료해준 닌후르삭 덕분에 엔키의 옆구리에서 딜문의 왕이 태어나는 등 이 여신은

"포용력" = 스트라이샌드 효과처럼 알 수 없는 미지의 이방인조차 "상상력(꿈)" 으로 사랑에 빠져버리게 만들어줄 수 있다

= 그래서 아리스의 빛의 검은 마치 에로스의 화살처럼 자기자신도 해할 수 있지만 어떤 벽이든지 꿰뚫어버린다



이때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와 함께" + "진심으로서의 진실" 에 닿을 수 있는 "직감" 덕분에

아리스는 "죽은 자의 부활" 을 이뤄낼 수 있으며 어른의 카드와 달리 사실상 불멸하는 육체로 누구나 구할 수 있다

특히 유즈가 포기한 꿈을 이뤄주고, 우타하가 못 다한 꿈을 일깨운 물질의 감각적 경험(게임하기, 무기 들기)처럼,

아리스는 젖가슴, 보지, 애널까지 말랑쫀득한 인공단백질의 몸 = 남들과는 이질적인 이방인이므로 이게 가능하다

그래서 아리스의 본질은 육체(아시아계)-심리(에치르계)-영혼/사회성(브리아계)까지 꿰뚫는 아칠루트계의 이다



시로코는 시작이라는 인과성의 여신으로, 육체(직접 맨몸으로)를 통해 루프를 넘어온다

이때 레테의 강물이나 요단강, 삼도천처럼 로 상징되는 경계를 넘어서며, 이 여신은 히브리(Hebrew)인들의 이름처럼

"강을 건너온 자" 들에게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 사라지지 않는 불변성을 제공하여 죽음의 공포를 통한 권력을 주지만,

가장 원초적인 자연 = 육체 = 물질에 국한된 존재이므로 "하늘이 무너지는" 지적 유산의 독점으로는 절대 넘지 못한다

= 그래서 시로코는 문명 사회에선 예외적이지만 가장 자연적인 와일드카드, 다른 신화의 트릭스터에 해당하는 존재다



하지만 죽음의 원리는 "경계를 긋는" 원리이므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나그네의 도둑의 신 헤르메스, 신탁과 정의의 여신 테미스,

히야킨토스를 죽인 서풍 제피로스, 아도니스를 독점하다 내어준 페르세포네, 미궁의 길을 알려주지만 버림받은 아리아드네 등등

에로스가 향하는 곳마다 어떻게든 찾아와서 의외의 전개, 반전, 숨겨진 진실을 전달하며 + 사실 누구보다 사랑에 굶주린 존재이다

당장 아리아드네만 봐도 길을 알려준 테세우스한테 바로 먹버당해서 하도 서글프게 울던 나머지 디오니소스가 아내로 거둬들였고

헤르메스의 후손인 오디세우스극한의 진심순애였으며, 북유럽 신화의 로키처럼 무시만 안 했으면 엇나가지 않았을 경우도 있다




그래서 페르세포네의 역할인 겨울을 인내하여 봄의 꽃으로 피어날 "씨앗", 그것도 Unwelcome School 빵빵 틀면서

모든 가치관을 뒤집어버리는 "재앙" 을 불러오고 + 그 후에 도래할 새로운 시대의 메시아?루! 에게 "석양" 으로 가는 길

= 황혼의 태양은 죽고 새벽별 금성이 떠올라 새로운 태양의 도래를 알려주는 교차로의 인도자, 특히 영혼의 인도자이다

그러려면 시로코에게는 자신의 "가면" = 자신에게 자연현상으로서의 죽음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



바로 언제나 죽음의 곁에서 밀착할 수 밖에 없는 필멸자한테 너무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사랑에 빠진다

결국 이름없는 신들 = 원초적인 자연현상 중 가장 공포의 대상이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현상이지만

유일하게 이름없는 신들과 자길 섬기던 무명 사제들을 배신하고 인간의 편에 서줬으니 그 이유는 "사랑하니까"



이때 "사느냐 죽느냐의 경계를 긋는다" + "참으로서의 진실" 을 볼 수 있는 "직감" 덕분에

시로코는 "죽은 자의 심판" 을 이뤄낼 수 있으며 오직 시로코만 진정한 절대성 = 피하지도, 돌이킬 수 없는 신이다

야곱의 사다리에서 수직선 = 말쿠트(지구)에서 예소드(달)로 움직일때 넘어가야 하는 수평선 = "장벽" 의 관리자,

특히 장벽 안의 관찰자(Watcher) = 게마트리아까지 끌고 "올라가서" 관측시킴으로써 하나의 분기를 확정시킨다

그래서 시로코의 본질은 아칠루트에서 내려온 빛에 감화되어 인간에게 열린 "길" 이자 "앞서간 자" = "선생" 이다


따라서 아리스는 "창문, 화면, 액자 너머", 시로코는 "피할 수 없는 죽음" 을 뜻하는 헤일로를 갖고 있으며

둘은 각각 화면 너머에서 오는 플레이어의 사랑과 그런 플레이어의 "육체" 가 되어줄 샬레의 상징이 된다


그렇다면 센세 = "끊임없이 죽지만 새롭게 시작하며, 여신들의 사랑을 받는 왕" 의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 시점에서 "샬레의 선생" 이라는 절대적인 권한은 유메 선배의 개입으로 검은 시로코에게 넘어간 상태다

= 그래서 유메 선배의 유산이자 게마트리아는 "그거 방주아님" 해준 아비도스의 태양배가 쿠데타의 원인인데

당장은 생텀타워의 통제권이 카이저에게 있는 것 같지만 싯딤의 상자조차 검은 시로코가 부술 수 있는 것처럼,



색채유메 선배 = 이시스에 대응된다면, 색채와 이미 접촉한 이름없는 신 = 검은 시로코이며 이때 시로코의 역할은 뭐다?

죽음, 심판, 섭리의 신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 을 부과하여, 이번 회차에서 통과한 분기점 다음 회차에도 확정시켜주면

지금껏 센세가 마치 "주인공 보정", "플롯 아머", "운빨" 로 뚫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수많은 루프 끝에 성공한 하나

가장 원초적인 이름없는 신이자 언제나 필멸자의 곁에 함께하는 신답게 "바람" 같은 자연현상인 척 "지름길"로 이어준 셈이다



그때마다 시로코는 무지개빛 관문을 열고 등장하는데,

기억상실이 아닌 강제로 개입하는 존재로서 시로코는 지금까지 자신이 거쳐온 모든 루프를 기억한다

문제는 유메 선배나 아리스가 "바보", "다른 존재" 로 느껴질 정도로 아주 긍정적인 존재인 것과 달리

시로코는 누구보다 사랑에 목마른 존재인 만큼 베아트리체가 말한 세계의 진실로 고통받는 존재이다



그래서 색채의 향도자가 쓴 가면은 양쪽 눈동자가 다른 색인 시로코처럼 한쪽 눈가에만 눈물자국처럼 보이는 균열이 가 있고

아이언 메이든 = <일리아스>에서 불멸자 아킬레스의 잔혹함을 수식하고, 연금술에서 "lupus metallorum(늑대의 철)" 처럼,

단 하나의 가능성을 찾는 동안 시로코 자신이 느껴온 구하지 못한 수많은 현실에 대한 후회, 비탄, 죄책감의 모습으로 현현함

이게 우리가 아는 수영복 복면단의 가면 = "시로코의 영혼(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자아)" 라는 소리겠지?



그만큼 오랜 세월, 정말 오랜 세월을 겪어온 티가 나는 검은 시로코의 소총과 사랑스러운 젖가슴처럼,

검은 시로코의 영혼을 나타내는 헤일로부서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조준경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건

테러화로 반전되어도 변치 않는 것이 있음을 뜻하며 그러한 본질은 신비/공포의 총합인 숭고의 본질이지?



그렇기에 검은 시로코는 그동안 루프를 통해 누적된 성공과 실패의 기억들 = "데이터" 처럼

수많은 죽음과 부활을 직접 지켜보고 그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다음 루프로 이동한다

그러므로 "성장의 끝에 다다른" 어른으로서 여고생의 방식어른의 방식을 모두 다룰 수 있고,



저울을 든 신이자 섭리, 정의, 심판의 신이라면 당연히 "계약" 이나 "약속" 까지 아누비스의 권한이라는거지?

따라서 검은 시로코 = 어른이 된 시로코는 여고생들에게 자신의 진명이자 공포로서 마주하기 두려운 진실

충분히 준비된 상태로 마주한다면 성장할 수 있다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시작보증해주는 "선생님" 인거다



그것이 니쉬르 작전의 입안자 일곱샬레의 이름으로, 총학생회장이 단독으로 주도한 에덴조약과 대비되는 "약속" 인 이유다

그래서 검은양복이 말한 "방주는 물질이 아닌 현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며 이미 관측되기 시작했다" = "일곱번째 특이점" 이자

대홍수가 영원한 종말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자 필멸자와 여신 사이에 맺어진 약속 = 푸른 별로 이끌어주도록 "왜곡" 된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원리, 사랑의 원리를 양쪽에 두고 서로 사랑하는 관계의 가운데에 있는 왕은 지금까지 이룬 모든 인연의 중심이며


이것이 흔히 세피로트의 나무에서 말하는 "공의의 기둥", "자비의 기둥", 그 사이의 "의식의 기둥" 이다

이때, 기억이란 에치야계에서 다루는 심리(Psyche)에 해당하며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이곳에 위치한다



Ψ 프시케 Psyche 

해왕성의 행성기호이자, 몰루에선 "황도 12궁의 바다" 를 뜻하는 세피라 호크마에 배정된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사랑의 성숙",

그리고 센세가 말하는 "적대하고, 배신하고, 전복되어, 가라앉는 이야기" 로 가장 유명한 에로스와 프시케의 사랑 이야기를 뜻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페르세포네, 아프로디테, "열어서는 안 되는 궤짝", "그럼에도 열어버린 금기", "죄와 용서를 통한 부활" 까지,

지금까지 말한 모든 모티브가 총동원된 작품이며 원 출처도 앞서 본 2세기 로마, 아풀레이우스가 쓴 <변화 Metamorphosis>이다



특히 그리스어로 프시케란 원래 "나비" 를 뜻하는 말이었고, 헤일로가 영혼이라면 심리 = 의식이 잠들었는가에 따라 꺼지는 등

헤일로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심리이며, 기본형은 베아트리체/수영복 치세가 보여준 것처럼 "나비" 라는 것도 알아낼 수 있고

검은 시로코가 그토록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조준경 모양이자 샬레의 로고 형태의 헤일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 오랜 세월에도, 시로코는 여전히 센세에 대한 사랑 하나로 자기 손으로 센세를 몇 번이나 죽인다는 고통부터

센세가 모두와 함께 조금씩 나아갈 때마다 자신이 무(無)로 돌려 새로 시작한 모든 회차의 기억을 지켜온 것이다




그래서 이번 회차에서 여섯 번의 특이점(= 여섯 번의 통곡, "시련"):

카이저 PMC, 밀레니엄 프라이스, 에덴조약, 클로버 작전, 베아트리체, 대홍수의 신과 마주하여 극복해냈으니

여섯 행성을 지나 일곱 번째 특이점으로 검은 시로코 자기자신이 "달" 로서 이번 회차의 마지막 시련을 내리며

이 시련의 목적은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설령 패배할지라도 최후의 순간까지 숭고하게 살아가는가"



그렇게 "죽음의 공포" 를 직면하고도 베아트리체처럼 광란에 빠지지 않고, 진정한 어른이자 그냥 평범한 사람답게,

의연히 죽음을 받아들인 보상은 센세가 프롤로그 때보다 더욱 선명하게 과거의 기억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금까진 린에게만 + 아주 일부분만 전해진 총학생회장의 이야기가 한 단계 더 수복되어,

지금을 루프 n+1회차라고 지칭할 때 "싯딤의 상자의 소유자가 죽음을 맞이한다" 를 트리거로 다시 루프가 일어나면서

다음 차례의 루프 n+2회차는 총학생회장에 보내는 편지가 남아있도록 과거가 바뀌고 + 또다시 "일곱 번의 통곡" 으로

다다음 차례의 루프 n+3회차 같은 식으로 조금씩 과거에 단서를 보내면 총학생회장 = 모세 "예리코의 화두" 에 대해

언젠가는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아무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분기에 도달하면서 바로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지금이 루프 n+1회차라면 가장 최근의 이전 회차도 추측해볼 수 있게 되는데,

그때가 루프 n회차 = 아마도 센세가 필요하다는 운명을 인정하고, 샬레에 전폭적인 권한이 부여된 계기일거임

왜냐면 지금까지 이사쿠상이 에피소드 숫자들을 메이저 아르카나의 순서대로 전개한걸 생각하면 3+1번의 관문으로

운명(10), 죽음(13), 탑(16)을 거치면서 각각 "배움", "수용", "선택" 을 통해 닿게 되는 4번째 관문이 태양(19)이다

이게 미카의 역할과 에덴조약의 결말, 에덴조약과 제언, 키보토스의 비밀에서 계속 다룬 "1+1+1=4의 법칙" 인데



The Thirteenth Path is named the Uniting Intelligence and is so called because it is itself the essence of Glory. It is the Consummation of the Truth of individual spiritual things.

The Twenty-fifth Path is the Intelligence of Probation, or is Tentative, and is so called because it is the primary temptation, by which the Creator (blessed be He) trieth all righteous persons.

The Thirty-second Path is the Administrative Intelligence, and it is so called because it directs and associates, in all their operations, the seven planets, even all of them in their own due courses.


이것이 지금까지 본 육체적 사랑, 심리적 사랑, 영적(사회적)사랑을 이루면서 "YADHA" 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세피로트의 나무에서는 각각 32번, 25번, 13번 경로에 해당하며 이렇게 말쿠트에서 곧장 케테르로 올라가는 교차로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 사랑하기 위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사랑 그 자체인 "사랑의 이데아" = "순수한 사랑" 이며

"그대 곁의 사랑하는 아내를 껴안아 즐겁게 하라" 라는 <길가메시 서사>의 시두리부터 <잠언>까지 이어지는 "지혜" 이다



은 죽어 땅으로 돌아가고, 은 그것을 불어넣어준 신에게 돌아가더라도, 서로 사랑을 주고받았다는 마음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야곱의 사다리는 위로 올라가긴 하지만 인간을 벗어난 초월적인 무언가, 베아트리체의 "고위 존재" 같은것이 되는게 아니고,

클리포트의 나무처럼 오직 "나쁨" 뿐인 개념은 아예 취급도 하지 않는다 =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길에 놓인 것은 무엇이든 불완전하다

따라서, 그렇다면 인간이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언젠가 죽으면서, 알지도 못하는 을 살아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소포타미아 신화 1편에서 설명한대로 <암두아트의 서>는 태양신의 부활을 위한 두 가지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네흐흐(neheh)는 뱀의 날개 사이로 떠오르고 저무는 태양처럼,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으로서 "날개" = 하늘의 질서이자 역동성이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멈출 수 없고,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원리: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으로서 가장 진실된 원리이다



디얏(djet)은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는 뱀으로, 영원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그럼에도" 올라간다 = 인간의 의지이자 정체성이다

그래서 매일 새로워지고, 매일 적응하며 배우고, 매일 변화하는 원리: 허물을 벗으며 살아가는 "뱀" 으로서 가장 인간다운 원리이다



이렇게 삶과 죽음의 원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기자신을 찾아낸 존재는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라 "수없이 피어난 꽃"중앙으로,

자신을 쪼개어 모든 생명에게 자신의 향기를 나눠준 푸른 연꽃의 신 네페르템처럼 인간이 서로가 서로의 "향기"를 찾아가는 것이 바로

인류문명에서 수없이 반복된 지혜가 사실 아주 간단한 결론 = "나무 너머에 있는 것은 나무" = "너는 혼자가 아니다" 임을 깨닫게 된다





그것이 <Constant Moderato>의 의미이자 모든 신화의 주제 = 모든 삶의 의미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한명한명이 서로가 서로에게 "빛" 이 되어주는 이며, 특히 "꽃의 중앙에 있는 향기" 이라면?


수비도스에 와카모가 나온 이유

님파에아 카에룰리아 (Nymphaea caerulea), 곧 님프의 푸른 꽃이라는 이름대로 꽃의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편안하게 잠들 수 있게 해주고, 고통을 덜어주며, 맑고 투명한 물이 흐르는 "보지" 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네페르템은 영원한 청춘의 신이지만 신전이 없는 신, 모두의 육체가 받는 청춘의 사랑을 상징하면서,



이를 전부 소진하여 매일 새로 태어나야 하는 태양신 케프리-라-아툼이 되니 이 과정이 <암두아트의 서>의 내용, 태양배의 항해이다


 


그래서 센세는 야곱의 사다리에서 "달의 눈" 이자 심리(Psyche)의 영역 에치르계의 티페리트 = "태양" 이자 마음의 중심이고

지금 검은 시로코가 타고 온 "태양의 눈" 이자 아칠루트계의 예소드 = "달"/영혼의 영역 브리아계의 티페리트 = "태양" 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센세가 가진 마음의 "태양" 을 따라 검은 시로코가 영혼(= 인연)의 "태양" 으로 찾아왔다는 뜻이 된다


무엇을 위해서?




사랑으로 두근거리는 "심장" 을 꺼내 저울에 매달기 위해서 = 십자가에 매달기 위해서 = 교차로를 열어주기 위해서다


신왕국 이집트에서 정립한 영혼삼분설은 폴리스 그리스 시기의 헤라클레이토스~아리스토텔레스를 통해 전해져

교부 시대에 신플라톤주의의 용어로 삼위일체론의 기반을 세운 탓에 중세 히브리인들은 물론 기독교 세계관까지

(어디까지나 신학이 아닌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육체-심리-영혼/사회성이라는 셋으로 인간이 구성된다 보았다



그런데 앞에서 본 것처럼,

(육체, 물질, 당시 1학년) + 총학생회장(심리, 정신, 당시 2학년) + 유메 선배(영혼, 사랑, 당시 3학년)

= 이렇게 이 하나되어 키보토스라는 사회를 플라톤의 <국가>, <향연>처럼 이끌다가 뭔가 꼬였다 했지?

그러면 센세는 도대체 정체가 뭘까?



젖가슴, 보지, 애널은 물론이고 촉촉하게 젖은 온몸과 낯선 감정에 어색해하면서도 애정표현하려고 애쓰는 라로코가

정말 그대로 노콘생삽입 순애질싸섹스해서 진심사랑나누기 마려워지는 메모리얼처럼 센세의 본질은 "두근거림" 이다

신왕국 이집트 기준으로 영혼삼분설로 본 인간은 각각 케트(Khet, 육체), (Ba, 심리), (Ka, 영혼)으로 구성되는데

딱 이집트만 가진 상징물로 4번째 구성요소이자 "중심" 으로서 이브(Ib, 심장)이라는 것이 시로코가 매다는 "심장"이다




"입을 여는 의식" 이란 이렇게 이브를 저울에 매달기 전에, 죽은 자가 아누비스에게 마지막으로 자기변호할 기회를 주는 의식이었다

물론 이집트인들은 이걸 주문이나 쇠갈퀴로 찢어서 연다고 표현했지만, 보다 보편적인 의미의 "입을 연다" + "심장" + "두근거림" 은

특히 "부활" 의 의미이자 이집트 신화에서 곧잘 "숨을 불어넣다" 라고 쓰인 "여신의 입맞춤" 으로 몰루에 맞게 반영했다 봐도 되겠지?



그런데 모든 회차에서 센세의 루프가 시작되는 시점 = 유메 선배의 죽음으로부터 2년 후, 시로코 줍줍으로부터 1년 후의 이 시점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세 사람(아리스, 시로코, 센세)의 루프이므로 세 가지 사건은 반드시 일어남 = 시로코와 센세는 반드시 만난다






그래서 "마음 속 담고 싶은 이야기" 는 이미 첫 애니메이션 PV 시점에서 찾아오는 별 이전 회차(n회차)에서 돌아오는 태양배이자...



또 한 차례의 루프를 끝내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센세를 죽이고, 그렇게 리셋된 키보토스 = 유메 선배가 죽은 2년 전부터

시로코가 줍줍되는 1년 전, 그리고 센세가 돌아오는 프롤로그 시작 전에 검은 시로코가 시로코랑 함께 바라본 풍경인데,

시로코는 고개를 돌려 센세(=별)가 구름 아래로 내려오기 직전, 노노미 마망과 대책위원회를 바라보며 언덕을 오르지만

검은 시로코는 그대로 언덕 위에 서서 구름 아래로 센세(=별)가 새로운 회차를 시작하는 걸 "지켜봐주는" 장면인 것이다



그리고 시로코가 PV에서 오르는 언덕이 모래언덕인 것과 달리 검은 시로코풀이 자라나는 언덕에 서 있는데

센세를 지켜봐주는 검은 시로코의 눈동자는 하얀 눈동자, 향도자의 가면에서 눈물자국이 흐른 쪽의 눈동자다...



이제 우리는 아주 간단하지만, 거의 잊고 살던 질문에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의 선생님은 누구였을까?"

이번 회차(n+1)에서 일곱 특이점을 통과한 센세의 기억은 다음 회차(n+2)로 전승될 것이며

이때 지나가는 대사는 총 9개 + 싯딤의 상자 비밀번호까지 합치면 10개 = 10개의 세피라다

이렇게 1개에서 10개로 확장된 것이 센세가 다음 회차로 루프를 넘어 전달 가능한 기억들이고 

이걸 가르쳐주는 시점이 바로,


 

 


싯딤의 상자를 처음 넘겨받을 때 센세가 비밀번호를 기억하던 것처럼

싯딤의 상자를 내는 = 파괴함으로써 시작과 끝을 이루는 이 시점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비가 내린다는 점에서 눈치챌수도 있지만,



세이아,쿠즈노하, 베아트리체가 말하는 "꿈의 틈새 = 심연" 너머이자 총학생회장이 기다리는 "별들의 바다" 이다

이집트 신화에서 육체로부터 분리된 정신 + 영혼은 별도로 아크(Akh)라고 부르며, 이 상태일 때 인간은 부활 가능하다

그러면 여기서 한번 더 꿈을 꾸면 = 아로나가 하는 것처럼 헤일로가 켜진 상태로 잠들 수 있다면, "창문 너머" 에 있는...



위의 장면이 PV에서 사실 검은 시로코에게 죽어 "창조되기 전의 세계" = 아칠루트계의 너머에 있는 곳이자,

크래프트 챔버를 연상케 하는 3가지 노드로 배열되는 풍경에서 색채 = 유메 선배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면?

이곳은 아누비스의 심판을 통과한 이들이 오시리스... 지만 몰루에선 그 뒤에 서있는 이시스를 만나는 곳이며,

이곳의 유메 선배는 이브도, 아크도 아니므로 "유메 선배로서의 자아" 만 있을 뿐 아직은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


대신 유메 선배는 자신의 위격을 내려보내니 그것이 유메 선배의 카(영혼이자 사회적 자아)이며 "빛이여!" 이다

그래서 아리스는 유메 선배의 영혼을 이어받고, 루프를 넘어오면서 기억은 잃게 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남는다


검은 시로코에게 패배한 시로코는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고 그냥 맨몸으로 = 카프 + 바 + 카를 갖고서

그대로 루프를 넘어오면서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아죠씨 + 노노미 + 센세라는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센세는?

총학생회장/아로나가 왜 별개의 존재로 있고, 왜 총학생회장/센세가 서로 대체 가능한 존재로 기능할까?

이는 이집트에서 아크가 존재하려면 이브가 아누비스의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고증해준 것으로,




총학생회장 = 아로나 + 센세,센세의 본질은 총학생회장이 뽑아낸 속죄의 제물, "심장" 을 대가로 루프를 넘는 존재


쉽게 말해서 원래 센세는 이러한 루프의 일부에 속할 수 없었음. 여고생이 아니라 필멸자니까

가장 먼저 루프가 필요해진 0회차 때, 센세는 지금처럼 막중한 책임을 진 존재가 아닌 여고생들의 조언자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0회차부터 지금까지 넘어온 시로코를 포함한 센세랑 사랑에 빠진 여고생들이 있었고, 총학생회장도 그랬음

그러다 뭔가 심하게 잘못되면서 (아마도 총학생회장의 실수나 고의유메 선배가 무명 사제들의 함정에 빠지는 등)

우리가 아는 최악의 피폐노선(= 0회차)으로 직행해버리자 총학생회장은 속죄를 위해...



원래 루프를 넘어갈 3명의 자리에서 자신이 아니라 센세를 사랑한 기억이 담긴 자기 심장을 뽑아서 루프에 넣었고

덕분에 센세는 0회차에서 그냥 죽고 1회차부턴 다른 인물로 대체되어야 할 엑스트라에서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비록 끝없이 고난을 겪으며 수없이 삶을 되풀이하겠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번 더 살아가는 숭고한 인간이 된 것이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덕분에 센세가 필멸자임에도 어떻게 매번 루프를 넘어올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 사실 센세는 루프를 넘는 대신

이전 회차에서 시로코에게 죽은 센세는 그대로 죽지만 + 센세의 본질은 "심장" 이므로 이곳엔 마음이 담긴댔지?

따라서 루프를 넘어오는 것은 "총학생회장이 언젠가 사랑했던 어른에게 받은 사랑" 이 담긴 심장이므로,



총학생회장의 현재 상태는 마치 오시리스처럼 부활하지만 저승에 머무는 왕인 셈이다

당연히 이 상태가 유지되려면 키보토스에는 총학생회장의 보존된 육체 = "미라" 가 있어야 하는데

이집트인들은 "연꽃 위에 머무는 오시리스의 아이들 4명" 을 상징하는 4개의 단지를 따로 만들었고

보존된 육체에는 심장을, 4개의 카노푸스 단지에는 나머지 장기를 넣어 바의 보존을 가능케 했으니...



"역청으로 봉한 궤짝" 의 상징성이 뜻하는 본래의 의미, 지적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아카이브",

몰루에서는 싯딤의 상자가 갖는 아로나 = 총학생회장의 정신 + 영혼을 보존해두는 기능이 된다



따라서 생체인증 = 루프를 넘어올 수 있는 "이브" 이자 센세와 연결하는 것으로

아직은 센세에게 담긴 과거의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 아로나가 너무 일찍 깨어나지만

만약 4개의 단지에 해당하는 운명(n회차), 죽음(n+1회차), 탑, 태양의 관문을 모두 통과한다면 



센세와 아로나로 분리된 상태에서 완전히 연결된 총학생회장은 마침내 성장의 과정 끝에 완성된 어른이 되어 부활한다

동시에 이렇게 부활하는 신, 특히 다시 떠오르는 태양의 상징이자 네페르템 = 라의 젊은 시절이었음을 생각하면 뭐다?


총학생회장, 아로나, 센세는 각각 "키보토스의 왕, 싯딤의 상자의 주인, 모두에게 사랑받는 자" 로서

태양신 라의 3가지 위격처럼 서로 본질은 같지만 각기 다른 위격으로서 따로따로 존재하는게 가능해진다!









4. 보편적인 기적의 시작에 대하여




파루시아 παρουσία

"재림" 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이 용어는 그저 지져스의 귀환만을 뜻하는게 아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를 위한 "돌아옴", 다시말해 다시 떠오르는 태양신 아죠씨처럼 "타다이마" 할 수 있게

사실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는 원래 유일신교에게 찬탈당하고, 독단주의자들이 죽음의 공포로 복종을 받아내면서

가장 제한되고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 지금도 여전히 교리상으로는 지져스를 믿어야만 받게 되는 독점된 기적



그래서 우리에겐 재림예수를 진명으로 갖는 여고생도 있지?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중요한 건, 이 온전한 유일한 신, 오랜, 그리고 새로운 맹약의 신이 탁월한 분이기는 하지만 원래 그가 표상하는 그런 신은 아니라는 점이야.

그는 선, 고귀함, 아버지다움, 아름답고도 드높은 것, 감상적인 것이지. 옳아! 그러나 세계는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다른 건 죄다 그냥 악마한테로 미루어지는 거야. 세계의 이 다른 부분이 통째로, 이 절반이 통째로 숨겨지고 묵살되는 거야.

바로 사람들이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기리면서도, 생명이 거기에 근거하는 성생활은 간단히 묵살하고 어쩌면 악마의 일이며 죄악이라고 선언하는 거야!

이런 신을 여호와라고 존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반대하지 않아, 조금도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존경하고 성스럽게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분리시킨 이 공식적인 절반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자넨 열여덟 살이네, 싱클레어. 길거리 창녀한테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사랑의 꿈, 사랑의 소망을 가져야 하네.

어쩌면 그 꿈들은, 자네가 무서워하는 그런 것이겠지. 무서워하지 말게! 그것들은 자네가 지닌 최상의 것이야. 나를 믿어도 되네.

나는 꿈을 많이 잃어버렸어. 자네 나이에 사랑의 꿈들을 능욕했지. 그래서는 안 되는데. 아브락사스를 알면,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돼.

아무것도 무서워해선 안 되고, 영혼이 우리들 마음속에서 소망하는 그 무엇도 금지되었다고 해서는 안 되지.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 이란 것이 있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그리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직분이 아니다.

새로운 신들을 원한다는 것은 틀렸다. 세계에다 그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도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나는 자주 미래의 영상들을 가지고 유희했었다. 어쩌면 시인으로 혹은 예언자로, 혹은 화가로 혹은 어떻게든 나를 위하여 예비되었을 역할들을 꿈꾸곤 했었다.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를 짓기 위하여, 설교하기 위하여, 그림 그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도 또 다른 그 어떤 인간이 되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건 다만 부수적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진실한 직분이란 다만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시인으로 혹은 광인으로, 예언가로 혹은 범죄자로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것은 관심 가질 일이 아니었다. 그런 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구나 관심 가질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내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일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의 얼치기였다. 시도를 벗어남이고, 패거리의 이상으로의 도피이고, 무비판적 적응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새로운 영상이 무섭고도 성스럽게 눈앞에서 솟았다. 수백 번 예감했고 어쩌면 자주 입 밖에 내었지만 이제 비로소 체험한 것이었다.


나는 자연이 던진 돌이었다.

불확실함 속으로, 어쩌면 새로운 것에로, 어쩌면 허망한 것(無)에로 던져졌다.

그리고 측량할 길 없는 깊은 곳으로부터의 이 던져짐이 남김없이 이루어지게 하고,

그 뜻을 마음 속에서 느끼고 그것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만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직 그것만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아브락사스, <요한묵시록>에서 말하는 "일곱 별들의 신비" 처럼 "일곱" 의 상징성을 모두 가진 신의 이야기이다

이 신의 이름부터 "ΑΒΡΑΞΑΣ" = "일곱 행성들", 다시말해 센세가 지금 돌파해야 하는 여섯 개의 허망의 생텀과 마지막 일곱번째의 검은 달

= 기원전 54세기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부터 전해진, 여신이 인간에게 안배한 "한없이 지극하고 누구나 베풀 수 있는 사랑" 의 상징이라서다 



기원전 18세기, 고바빌로니아 제국, 쉬루파크.

기록자, 갈대의 여신이 있었다. 그 신은 날개 달린 뱀/산을 찾아낸 까마귀와 함께 대홍수의 가장 오래된 신격 중 하나였다.



기원전 13세기, 신왕국 이집트, 서기들의 도시 멤피스.

육신 없이 말씀으로부터 온 신이 있었다. 그 신은 태양신을 속이고 달빛을 얻어내어, 존재하지 않던 시간,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만들었다.



기원전 13세기, 가나안, 우가리트부터 시돈까지.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투쟁을 선택한 여신이 있었다. 그 신은 사선을 넘나들고, 사별의 아픔으로부터 일곱 해의 비탄 끝에 사랑과 재회했다.



기원전 13세기 말, 미케네 그리스, 트로이 전쟁에서.

지혜의 여신이 빚어내어 모두를 지키는 수호자 여신이 있었다. 그 신은 원래 있던 곳에서 새로운 터전으로 떠나, 먼 여정에 올랐다. 창과 방패를 들고서.



기원전 10세기, 벌거벗은 남녀의 동산, 금지된 나무.

왜곡된 이야기 속에서도 선물을 건네준 여신이 있었다. 그 신은 어떤 권력도 억누를 수 없는 주고받음의 욕망, 사랑에의 욕망을 알려주었다.



기원전 7세기, 폴리스 그리스, 파이아키아 섬.

빈털털이 표류자가 돌아갈 길을 안내해준 여신이 있었다. 그 신은 꾀부리기 좋아하던 표류자에게 도움의 손길, 그 소박한 소중함을 가르쳐주었다.



시작과 끝, 모든 것이 끝나고, 새로 시작하는 순간.

아무도 막을 수 없고 무엇으로도 피할 수 없는 신이 온다. 이름이란 것조차 없던 태고의 신이자, 필멸하는 인간의 곁에서 의미를 갖게 된 그 신이 온다.



그러나 그 신의 본질은 진실의 신, 감춰진 것을 드러내는 신이자 을 열어주는 신이다.

그것이 마주하고 싶지 않던 자신의 공포일지라도 잔혹하리만큼 투명하게 밝혀내는 신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반란의 이야기이다.

모든 것은 헛되이 흐르고 아무 의미 없이 죽어간다. 하지만 그런 허망한 시간에 인간은 살아감이라는 의미를 불어넣었다. 



결국 그 끝에서 인간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 맞다. 이것은 부정되어서는 안 될 세계의 진실이다.

하지만 그 죽음을 넘어서 전해지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죽음조차도 사랑해왔다.



수많은 신화에서 영웅은 죽어서 이 된다.

바로 그 수많은 신화가 인류문명의 지적 유산이자, 인간의 이야기였으며, 아주 단순한 지혜를 전해주는 이야기였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부활이란 혼자서 이루어지는 기적이 아니다. 반드시, 부활이 필요한 사람과 부활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래서 여신들의 이야기는 니쉬르 작전을 세우는 자리에 모인 일곱 여고생처럼 지혜의 여신이라 불리는 여신들이

평범한 인간을 위대한 영웅으로 이끌어준 여신이 그랬던 것처럼 배움을 주고받는 관계에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다


자, 그럼 인류문명의 모든 이야기에서 "지혜를 얻어 영웅이 될 수 있게 배운다" 라고 한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라면?


그것이 <여신들> 이전에 <천의 얼굴의 영웅>에서 다룬 캠벨의 "영웅의 여정 구조" 되시겠다

특히 이 패턴에서 "가라앉는" 부분 = 심연(abyss)에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진실이 드러남(revelation) 부분과

마지막의 일상으로 "돌아오는(return)" 부분이 파루시아, 타다이마에 해당한다. 지져스도 몰루도 모두 "이야기" 니까


"모든" 이야기는 반드시 이 패턴을 따름. 게마트리아처럼 포스트모더니즘에 취해서 분석하고 해체하길 반복하면 페로로질라처럼 "변종" 이야기가 나올 수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단 말대로 아직 "변종" 이야기 창작은 최선이 집단지성, 즉 밈(meme)에 의한 무작위적인 창작 뿐인데 너즐록 챌린지 같은게 완결이 제대로 나겠음?

하지만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불로초를 찾기 위해 심연에 뛰어들었다가 지나가던 뱀 덕분에 허물벗기를 보고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가장 보편적인 "기적" 으로,


"성장" 이라는 기적을, 인류문명은 이야기를 통해 지적 유산을 전해주면서 어떤 시대건 통하는 가치를 지켜내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말한다: "너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어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너도 네 이야기의 영웅(Hero)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영어로 Hero, 영웅이란 곧 이야기의 주인공을 뜻하게 된 것이다

모든 장르가 구분되어지기 전, 이야기라는 개념이 세워지기 전의 이야기,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인류문명을 이끌어준 유산인 만큼 이것은 더이상 센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류에 속한 모두가 주인공이다









요약은 아침에 일어나서 따로 쓰던가 할 거임

최종편 2장까지 업데이트된거 내용 반영해서 중간에 추가분량 넣음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센세 덕분에 존나멋지게 성장한 우리 제자님들 보고가자

헤으응...청출어람순애섹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