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얀순이라는 여자애가 살았어요. 풍성하고 광택이 나는 긴 흑발을 붉은색 나뭇가지로 틀어올리고, 눈은 장인이 정성스레 세공한 흑요석을 밖아놓은 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답니다.


일부러 남자같이 옷을 입었건만, 얀순이의 미모는 숨길수가 없었어요. 가슴이 드러나는 것이 싫어 압박붕대로 칭칭 동여맸건만, 그래도 얀순이의 가슴은 특유의 탄력을 잃지 않고 아름답게 봉긋 솟아있었고, 너무나도 투명하고 잡티 하나 없는 피부는 바다 건너에서 온 고급 화선지와도 같이 하얀 광택을 내고 있었어요.


얀순이의 모습에 매혹된 많은 이들이 프로포즈를 하였지만, 그 누구도 얀순이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수는 없었어요.


'남자들은 다 시시해! 상대할 가치도 없어!'


억만금을 준다던 이국의 대상인도, 평생을 걱정없이 권력을 누리게 해 준다는 대국의 황자도 얀순이의 시선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어요. 길거리를 지나던 얀순이는 어떤 사내가 길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죠.


거만한 걸음걸이.

울뚝불뚝한 근육.

훤칠한 키.


하지만 무엇보다도 얀순이의 시선을 끈 것은, 그 사내가 풍기는 기운이었어요. 그건 얀순이가 여태 봐 왔던 남정네들에게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느낌이었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얀순이는 그 사내에게 다가갔어요. 그리고는 말을 건넸죠.


"저기... 안녕하세요?"


얀순이는 자기 입에서 나온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평생 자신이 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교태와 아양이 자기도 모르게 잔뜩 묻어나왔기 때문이었어요.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얀순이는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어요.


하지만 사내는 얀순이에게 퍽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저 곁눈질로 눈길 한번 주더니, 그새 홱! 하고 시선을 돌리며 자기 갈 길을 가는 것 아니겠어요?


순간, 얀순이는 자존심이 몹시 상했어요. 얀순이가 만난 남자들은 모두 얀순이에게 어떻게든 말을 걸어보고, 그 아름다운 손과 발을 한번이라도 보기 위해 억만금을 가져오기도 했거든요. 이렇게 무시당한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어요. 하지만 얀순이는 참기로 했죠. 얀순이는 다시금 말을 걸어보기로 했어요.


"저는 얀순이라고 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얀순이는 사내의 앞을 막으며 다시금 아양을 부렸어요. 그 모습은 마치 발정기에 미친듯 수컷을 찾아다니는 암코양이와도 같았죠. 연달아 앞을 막힌 사내는 그제서야 얀순이를 내려다보았어요.


'성공이다!'


얀순이가 생각했어요. 여태 얀순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고서 멀쩡한 남자들이 없었거든요. 이윽고 사내의 입이 들썩거리자, 얀순이는 방긋 웃으며 사내의 입가를 주시했어요. 그런 얀순이를 보던 사내가 말했죠.


"방해된다. 꺼져라."

"... 예?"


사내 입에서 나온 말을 얀순이는 얼른 이해하지 못했어요. 옅태 얀순이에게 거친 말을 하는 남자는 없었거든요. 난생 처음으로 남자에게 욕을 먹은 얀순이는 상황이 얼른 이해되지 않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 모습은 누구라도 눈에 새기고 잊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최소한 그 사내만큼은 그렇지 않았나봐요.


"비실해보이는데다 아둔하기까지 하군. 꺼져라!"

"... 예."


얀순이는 고개를 숙인 채 얼른 옆으로 비켰어요. 사내는 고개를 뻣뻣이 든 채, 곁눈질도 주지 않고 지나가버렸죠. 하지만 얀순이는 그 사내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었어요.


"하찮은 여인네..."


얀순이의 가슴에는 조그만 불씨가 생기고야 말았어요. 그 사내에게 느낀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까요? 그 불씨는 이윽고 거대한 증오의 업화가 되었답니다. 멍하니 있던 얀순이는 바닥에 스러지듯 꿇어앉고야 말았어요.


"너무해..."


얀순이의 큰 눈에서 맑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리기 시작했어요. 몽글몽글 맺힌 눈물이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조용히 굴러내렸죠. 하늘을 날아가던 솔개가 그 모습을 보고 영문모를 슬픔을 느낄 정도로, 얀순이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어요.


"... 나를... 나를 보게 할거야..."


얀순이가 나지막히 읊조렸어요. 아름다운 얼굴은 그새 무표정한 모습으로 바뀌었죠. 가슴에서 인 불꽃이 이윽고 얀순이의 마음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어요. 난생 처음 느낀 호감이 무시당한 얀순이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손님이 왔다는 소리에, 경찰청장은 관사 밖으로 나왔어요. 동네 유력자들과 즐거이 술을 즐기다 끌려나온 상황이라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경찰청장은 길 한복판에 꿇어앉아 있는 사람을 곱지 못하게 흘겨보았죠.


"저를 보자고 한 사람이 있다던데... 누구십니까?" 


경찰청장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살포시 들었어요.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경찰청장은 자신의 입에서 낮게 흘러나오는 감탄사를 막을 수 없었죠.


그래요... 그 사람은 얀순이었어요.


얀순이는 아까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경찰청장에게 하소연하기 시작했어요. 물론 낮의 사내가 '나빠보이도록' 약간의 살을 섞기는 했죠. 얀순이의 하소연에 경찰청장은 물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나와본 동네 유력자들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요.


"그게 사실입니까? 얀순씨?"

"그 사람이 그렇게 수치와 모욕을 주었다고요?"

"어찌 이리 아름답고 가련한 여인에게 그런..."


곳곳에서 침음성이 퍼졌어요. 하지만 얀순이는 그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아꼈답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본 얀순이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남자들이 더 화를 내고 가슴아파하는지 잘 알고 있었어요.


한참을 뜸을 드린 얀순이는 그저 이렇게 덧붙였어요.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흑흑..."


얀순이의 모습에, 경찰청장은 물론, 동네 유력자들도 얀순이를 적극 돕겠노라 약조했습니다.


조금 후, 할 일이 퍽이나 없는지 사내는 여전히 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런 사내 앞에 경관들과 유력자들의 부하들이 나타났죠.


"당신은 지금 부녀자 희롱에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잠시 따라오시죠?"


하지만 사내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했어요. 그러자 다른 사내가 외쳤어요.


"남자가 가련한 여자 하나를 욕보이고! 쪽팔리지도 않냐?"


하지만 사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 갈 길을 가려 했죠. 사내의 오만방자한 모습에, 모두들 화가 잔뜩 났어요. 이윽고 사내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날아들기 시작했죠.


어이가 없다는 듯, 사내는 벽에 기대서며 말했어요.


그만 짖고 덤벼봐.


그 후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여러분?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에요. 모두 좋은 하루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