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삼일이 나오기 전에 했던 세션입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금요일 방과 후, 독서부실은 이제 '부실’이라기보다는 '콩나물시루’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였다.
기존 부원인 시아, 서림, 지은, 새벽, 세리, 예준, 은아에 더해, 이제는 거의 살다시피 하는 하람과 서윤까지. 좁은 공간에 9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사가 꽉 들어차 있으니, 에어컨이 풀가동 중임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예준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게임기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고, 하람은 한제후를 훔쳐보며 '초월자의 호흡 주기와 주식 시장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었다. 서림은 칠판에 낙서를 하며 낄낄거렸고, 시아는 이 북새통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차를 우리고 있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단정한 교복 차림에 지적인 인상을 주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시사토론 동아리의 부장이자 독서부원들과 친분이 깊은 강이혜였다.

이혜는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와 빈 의자(라고 해봤자 책상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이미 화요일에 100만 년 뒤의 미래를 다녀온 '공범’이었기에, 한제후를 보고도 자연스럽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학생은 키가 172cm로 훤칠하게 크고, 깡마른 체형에 후드티를 교복 위에 걸쳐 입은 여학생이었다. 뿔테 안경 너머의 눈매는 지적이지만 어딘가 피로해 보였고, 한 손에는 맥북이 들려 있었다. 서림의 절친이자 코딩 천재로 소문난 채윤아였다.

윤아는 들어서자마자 서림을 찾다가, 교탁 옆 상석에 앉아 있는 한제후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꾸벅 인사를 했다.

한제후는 과학 잡지를 덮으며 윤아를 흥미롭게 훑어보았다.


서림이 칠판 지우개를 던지고 달려와 윤아의 팔짱을 꼈다.
서림의 적극적인 추천에 한제후는 빙그레 웃으며 윤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윤아는 갑작스러운 면접 분위기에 당황했지만, 자신의 전문 분야가 나오자 눈빛이 차분해졌다.

한제후의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윤아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마치 벌레 씹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평소의 조용한 모습과는 달리, 혐오감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윤아의 적나라한 반응에 부원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윤아는 멈추지 않았다.
윤아는 안경을 신경질적으로 치켜올렸다.

서림이 윤아의 등을 토닥였다.

한제후는 윤아의 반응이 몹시 마음에 든다는 듯 껄껄 웃었다.

윤아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안경 너머로 깊게 가라앉았다. 감정적인 혐오를 거두고, 이성적인 프로그래머의 뇌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시작했다.

윤아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한제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었다.

윤아가 되묻기도 전에, 한제후는 허공에 파란 선을 그었다.


예준의 환호성과 함께 독서부실의 풍경이 젤리처럼 일그러졌다. 11명의 학생과 한 명의 과학자는 빛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낮게 깔리는 드론의 비행음과 함께 시야가 확보되었다.

윤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가 내려다보이는 서큘러 키(Circular Quay) 광장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알던 시드니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오페라 하우스의 지붕은 거대한 홀로그램 캔버스가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디지털 아트를 송출하고 있었고, 하버 브리지 위로는 바퀴 없는 자기부상 열차들이 빛의 궤적을 그리며 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윤아를 압도한 것은 거리의 풍경이었다.

서림이 가리킨 곳에는 이족보행 로봇이 진짜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고 있었다. 로봇의 움직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금속 재질만 아니었다면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공중에는 반투명한 홀로그램들이 둥둥 떠다니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중년 남성이 허공에 떠 있는 미소녀 홀로그램 비서와 친구처럼 대화하며 지나갔다.

한제후가 거리를 가리켰다.


윤아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지나가는 로봇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기술력은 그녀가 알던 코딩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어 있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홀로그램 비서들을 노려보았다.

시아는 로봇과 인간이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이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지나가는 로봇에게 말을 걸었다.
[전방 200미터 우측에 '뉴럴 다이브 카페’가 있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인간 님.]
로봇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예준은 "오, 매너 굿."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제후가 짓궂게 물었다. 윤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로봇이 버스킹 연주를 하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로봇의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정확했지만, 그 선율에는 묘한 감성이 묻어 있었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썼다.
윤아의 눈빛은 혐오가 아닌, 엔지니어로서의 순수한 호기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2085년의 시드니는 코딩 천재 소녀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있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2085년 시드니의 거리는 그야말로 기술의 향연장이었다. 하늘을 수놓는 홀로그램 고래, 중력을 무시하고 떠다니는 카페, 그리고 인간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정교한 안드로이드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윤아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연산되는 홀로그램 광고판의 픽셀 단위까지 뜯어보고 있었다. 코딩 천재인 그녀의 눈에도 이 시대의 기술은 마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로 옮겨갔을 때, 윤아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서림은 지나가는 로봇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낄낄거리고 있었고, 시아는 우아하게 뒷짐을 진 채 오페라 하우스의 홀로그램 아트를 감상하고 있었다. 지은은 벤치에 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고, 예준은 허공에 손가락질을 하며 AR 게임 인터페이스를 찾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60년 뒤의 미래에 처음 떨어진 21세기 고등학생들의 반응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평온했다.

윤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날카롭게 물었다.
윤아는 팔짱을 끼며 서림과 이혜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윤아의 돌직구 질문에 부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피식 웃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나 서림이었다.


시아가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지은이 수줍게 웃으며 덧붙였다.

윤아는 현기증을 느꼈다. 자신이 밤새워 서버 코드를 디버깅하고 있을 때, 친구들은 우주적 스케일의 현장 학습을 하고 있었다니.
하지만 윤아는 곧바로 이성적인 사고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개발자였다. 눈앞에 놓인 이 엄청난 '레거시 코드(Legacy Code)'들이 의미하는 바를 본능적으로 캐치했다.

윤아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빛났다.
윤아는 지나가는 안드로이드의 관절 구동부를 가리켰다.
윤아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개발자다운 실용적인 질문이었다. 미래의 정답지를 보고 과거로 돌아가서 시험을 치는 것과 같으니까.
하지만 서림은 피식 웃으며 윤아의 어깨를 툭 쳤다.

서림은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서림이 윤아 맞춤형 비유를 꺼내 들었다.
서림은 허공에 손가락으로 갈라지는 선을 그렸다.

시아가 차분하게 덧붙였다.

세리도 거들었다.

한제후가 박수를 치며 다가왔다.

한제후는 짓궂게 윙크했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지나가는 로봇과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윤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윤아는 맥북을 열었다. 2085년의 시드니, 그 찬란한 기술의 바다 앞에서 천재 개발자 소녀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시드니의 거리를 지나 일행이 도착한 곳은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시드니 중앙 시립 도서관’이었다.
2085년의 도서관은 종이책의 무덤이 아니었다. 그곳은 거대한 데이터의 성소였다. 투명한 크리스털로 지어진 건물 내부는 수천만 권의 장서가 홀로그램 데이터로 변환되어 공중에 부유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허공에 뜬 문장들을 손으로 넘기며 지식을 탐닉하고 있었다.

시아가 감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

한제후가 가리킨 곳에는 푸른 빛을 띠는 반투명한 여성 형태의 홀로그램 AI가 미소 짓고 있었다.
윤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2085년의 기술적 정점. 과연 60년 뒤의 인류는 어떤 마법 같은 알고리즘을 개발했을까. 그녀는 비장한 표정으로 맥북을 품에 안고 AI 앞으로 다가갔다.

[반갑습니다, 이용자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시드니 중앙 도서관의 지식 데이터베이스는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AI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자연스러웠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윤아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분명 자신이 상상도 못한 혁신적인 코드가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AI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현재 2085년의 표준 AI 아키텍처는

윤아는 당황했다. 60년이 지났는데 기본 구조가 그대로라니.
[네, 맞습니다. 경사 하강법(Gradient Descent)과 역전파 알고리즘은 여전히 가장 효율적인 학습 방법입니다. 다만, 그래핀 기반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활용해 수렴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을 뿐이죠.]
AI는 친절하게 덧붙였다.
[저희가 스스로 학습(Self-learning)하는 방식 또한, 인간의 개입 없이 웹상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제하여 파인튜닝(Fine-tuning)할 데이터셋을 스스로 구축하는 과정의 반복입니다.]

윤아의 표정이 복잡하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허탈함을 느꼈다. 60년 뒤의 미래 기술이라는 게, 결국 획기적인 소프트웨어의 혁명이 아니라, 무식할 정도로 거대한 하드웨어 성능과 압도적인 데이터 양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니.
윤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혐오하던 '확률적 앵무새’가 앵무새 주제에 너무 똑똑해져서 사람 흉내를 완벽하게 내게 된 셈이었다.

서림이 옆에서 쿡 찔렀다.
윤아는 마음을 다잡고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현재 기술적 정의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AGI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AI의 대답은 단호했다.
[저희와 같은 멀티모달 LLM(대규모 언어 모델)들이 인간의 튜링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하고, 창의적인 작업까지 수행하기 때문에 '유사 AGI(Pseudo-AGI)'로 분류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희에게는 생물학적 욕구나 자의식(Self-consciousness)이 없습니다. 저희는 그저 입력된 프롬프트에 최적의 반응을 출력하는 고도화된 시스템일 뿐입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수첩에 적었다.

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바였다. 기계가 인간이 되는 특이점은 오지 않았다. 그저 기계가 인간을 너무 잘 흉내 내서 구분이 안 가는 시대가 왔을 뿐.
그녀는 마지막으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윤아의 질문에 도서관 AI의 홀로그램이 잠시 깜빡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기계적인 미소 대신, 묘하게 인간적인 뉘앙스가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자아는 없습니다. 하지만… '옮겨진 자아’는 존재합니다.]

[네. 2085년 현재, 육체를 버리고 자신의 뇌 정보를 스캔하여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한, 소위
AI가 허공에 수치를 띄웠다.
[현재 클라우드 서버에 거주 중인 '디지털 인류’의 수는 약 2억 명입니다. 그들은 컴퓨터 안에서 영생을 누리며, 저희 AI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정적이 흘렀다.

세리는 입을 틀어막았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소름 돋아했다.

시아는 복잡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을 응시했다.

윤아는 멍하니 서 있었다.
AGI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인간은 그 한계를 우회했다. 기계를 인간처럼 만드는 게 너무 어려우니까, 그냥 인간을 기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윤아는 전율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동시에 느꼈다.

한제후가 다가와 윤아의 어깨를 짚었다.

윤아는 안경을 벗어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인터넷의 수많은 데이터 흐름 속에서, 2억 개의 인간 정신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윤아가 혐오하던 가짜 AI가 아닌, 진짜 지성체들의 새로운 거주지였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도서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윤아는 떨리는 손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접속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익명 채팅: 디지털 거주민과의 대화] 채널에 입장하자, 곧바로 매칭 알림이 떴다.
[연결 성공. 대화 상대: 로이스 타일러 (Lois Tyler)]
화면에 나타난 것은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금발 여성의 아바타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학생인가 보네요. 이런 늙은이와 대화해 줘서 고마워요.]

뒤에서 지켜보던 서림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윤아는 채팅창에 신중하게 타자를 쳤다. 물론 2025년에서 왔다는 사실은 철저히 숨긴 채였다.
[물론이죠. 여기선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윤아는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가장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로이스의 아바타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 그 기술 말인가요? 불행히도 그건 세포가 어느 정도 건강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예요. 저는 업로딩 당시 113세였거든요. 뇌세포의 노화가 너무 많이 진행돼서 생물학적 회춘이 불가능했죠.]
그녀는 담담하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제 이웃인 톰은 불치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들어왔고, 제 친구 사라는 스카이다이빙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미리 백업해 둔 데이터로 여기 부활했죠. 우리에게 이 가상현실은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생존 수단이었답니다.]

시아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세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윤아는 세리의 의문을 대신하듯 두 번째 질문을 입력했다.
로이스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가짜요? 천만에요. 지금 저는 최고급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타닌의 떫은맛과 오크 향이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져요. 이곳의 물리 엔진은 원자 단위까지 시뮬레이션하거든요.]
그녀는 와인잔을 들어 보이는 시늉을 했다.
[오히려 현실보다 낫죠. 관절염도 없고, 숙취도 없으니까요. 원한다면 하늘을 날 수도 있고, 심해를 걸을 수도 있어요. 이곳은 현실과 구분이 안 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초월한 현실(Hyper-reality)이에요.]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윤아는 마지막으로 기술적인, 그리고 현실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니요, 그럴 리가요. 저는 주말마다 '외출’을 한답니다.]
로이스가 윙크를 했다.
[현실 세계에 있는 '원격 조종 로봇(Shell)'에 접속하면 돼요. 제 의식을 로봇에 다운로드해서, 고손녀딸의 졸업식에도 가고, 바닷가 산책도 하죠. 로봇의 센서가 느끼는 촉감은 실시간으로 제 뇌에 전송되니까, 직접 안아주는 것과 똑같아요.]

이혜는 감탄했다.
윤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개발자로서 가장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로이스의 표정이 살짝 진지해졌다.
[아주 예리한 질문이네요. 맞아요. 우리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AI와는 달라요. AI는 결과값만 내놓으면 되지만, 우리는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를 가리켰다.
[제 뇌의 뉴런 860억 개, 그리고 시냅스 100조 개가 세포 단위로 실시간 시뮬레이션되고 있어요. 호르몬 분비, 전기 신호, 심지어 뇌세포의 미세한 떨림까지 전부 다요. 저 한 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연산량은, 도시 하나를 관리하는 AI보다 훨씬 많답니다.]

윤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단순한 코딩이 아니었다. 생물학을 디지털로 완벽하게 복제한, 무식할 정도로 거대하고 비효율적인, 그래서 더욱

한제후가 윤아의 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윤아는 채팅창을 종료했다. 화면 속 로이스 타일러가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윤아는 안경을 벗어 닦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윤은 스케치북에 로이스의 미소를 그리며 중얼거렸다.
2085년의 도서관, 데이터의 바다 한가운데서 11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첨단적이고도 원초적인 질문과 마주하고 있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도서관의 투명한 유리벽 너머로 2085년의 시드니 항구가 내려다보였다. 윤아는 맥북을 닫으며, 방금 나눈 대화의 여운을 곱씹었다. 2억 명의 디지털 인류. 그리고 AGI의 부재.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한제후를 올려다보았다. 개발자로서의 직감이 하나의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윤아의 목소리에는 허탈함과 납득이 섞여 있었다.

한제후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는 씁쓸하게 웃었다. 기술의 발전 방향이 낭만이 아니라 철저한 효율성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한제후가 도서관 출구 쪽으로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서림이 따라가며 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혜의 머릿속에서 번개 같은 깨달음이 스쳤다.

이혜는 걸음을 멈추고 한제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화요일에 다녀왔던 100만 년 뒤의 미래, 그리고 어제 다녀왔던 75세기의 풍경을 떠올렸다.
이혜의 눈빛이 확신으로 빛났다.
이혜는 주먹을 쥐었다.

한제후가 박수를 쳤다.


시아는 그 설명을 듣고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세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성호를 그었다.
일행은 도서관의 자동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시드니의 거리는 여전히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도서관 안에서의 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밖은 온갖 소음과 빛의 향연이었다.

서림이 하늘을 가리켰다. 수많은 드론들이 질서 정연하게 날아다니며 물류를 나르고 있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거리의 풍경을 게임 화면처럼 분석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지나가는 로봇 경찰을 노려보았다.

은아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윤은 스케치북에 거리의 네온사인과 홀로그램이 겹쳐지는 독특한 색감을 담아내느라 바빴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저들 중 누군가는 진짜 인간이고, 누군가는 정교한 안드로이드이며, 또 누군가는 방금 막 바이오 프린팅된 육체에 다운로드된 '옛날 사람’일 수도 있었다.
윤아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 표정은 이전처럼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

윤아의 말에 한제후가 흐뭇하게 웃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거대한 돛 모양 지붕은 2085년의 밤하늘 아래서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캔버스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제후가 일행을 이끈 곳은 외부가 아닌, 내부의 메인 콘서트홀이었다.
객석은 만석이었다.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무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제후가 VIP석으로 안내하며 속삭였다.

서림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무대를 바라보았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무대 장치를 스캔했다.
곧이어 조명이 어두워지고, 서곡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공에서 빛의 입자들이 뭉치더니,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나타났다.
그녀는 홀로그램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피부 질감, 드레스의 주름, 그리고 눈가에 맺힌 물기까지 모든 것이 소름 끼칠 정도로 리얼했다.
비올레타-7이 입을 열자, 콘서트홀은 순식간에 비탄에 잠겼다.

은아는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완벽한 발성과 호흡, 그리고 무엇보다 '떨림’을 가지고 있었다. 폐가 없는 존재가 숨을 몰아쉬고, 성대가 없는 존재가 목이 메어 소리를 쥐어짜고 있었다.

서윤은 무대 위 비올레타의 표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여인의 창백한 안색,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눈빛, 그리고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근육.
서윤은 스케치북을 펼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 압도적인 비극미를 담아내기엔 자신의 손이 너무 느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윤아였다. 그녀는 안경 너머로 비올레타-7을 노려보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코드를 분석하려 애썼다.
윤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저건 그냥 입력된 텍스트와 악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지만 비올레타가 무대 위에서 쓰러지며 마지막 고음을 내지르는 순간, 윤아의 가슴 한구석이 욱신거렸다.
알고리즘의 산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은 저 여인이 겪는 고통에 공명하고 있었다.


시아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세리는 복잡한 표정으로 무대를 응시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준은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서림이 훌쩍거리며 한제후의 가운 자락을 잡아당겼다.

한제후는 담담하게 무대를 바라보았다.

한제후가 윤아를 돌아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비올레타-7이 커튼콜을 위해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죽어가던 비련의 여주인공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임무를 완수한 시스템의 산뜻함만이 남아 있었다.

이혜는 박수를 치며 생각에 잠겼다.

윤아는 안경을 다시 썼다. 그녀의 눈빛은 혼란을 넘어선 어떤 결의로 차 있었다.
윤아는 무대 위의 홀로그램을 보며 중얼거렸다.
2085년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11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진짜’와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2085년 시드니의 아침은 21세기의 그것보다 훨씬 투명하고 선명했다.
한제후가 예약해 둔 최고급 캡슐 호텔에서 푹 자고 일어난 일행은 상쾌한 기분으로 거리로 나섰다. 나노 클리닝 시스템 덕분인지 공기 중에는 먼지 한 톨 느껴지지 않았고, 하늘을 나는 드론들은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고기 떼처럼 보였다.

한제후가 앞장서며 말했다. 그들이 멈춰 선 곳은 [안드로이드 컴패니언 대여 센터]라는 간판이 붙은 세련된 매장 앞이었다.

한제후가 키오스크를 조작하자, 매장 안쪽에서 캡슐 하나가 스르르 열렸다.
치이익-
압축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걸어 나온 존재는, 윤아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외형을 하고 있었다.

윤아는 무의식적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금발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깊은 바다 같은 푸른 눈동자, 그리고 티셔츠 위로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탄탄한 근육질 몸매. 185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에, 헐렁한 가죽 재킷을 걸친 남자가 삐딱하게 서 있었다.
그는 마치 20세기 반항아 영화의 주인공이 스크린을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이었다.
남자가 귀찮다는 듯 하품을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다.


서림이 입을 틀어막으며 환호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리처드를 스캔했다.

한제후가 짓궂게 윙크하며 윤아의 등을 떠밀었다.

윤아가 당황하여 버둥거리는 사이, 리처드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윤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피식 웃었다.

순간 윤아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잘생긴 얼굴에 혹할 뻔했던 마음이 싹 사라지고, 개발자의 투쟁심이 불타올랐다.
윤아는 주먹을 꽉 쥐고 리처드를 노려보았다.
리처드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앞장섰다. 그렇게 윤아와 안드로이드 리처드의 기묘한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시드니 하버 브리지가 보이는 해안 산책로. 윤아와 리처드는 나란히 걷고 있었고, 그 뒤로 10미터 정도 거리를 두고 나머지 일행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미행하고 있었다.

시아가 우아하게 평했다.

세리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리처드의 행동 패턴을 분석했다.
한편, 윤아는 리처드를 기술적으로 해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윤아가 날카롭게 지적하자, 리처드는 콧방귀를 뀌었다.
윤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리처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윤아 쪽으로 몸을 숙였다. 잘생긴 얼굴이 훅 들어오자 윤아는 흠칫 놀라 뒷걸음질 쳤다.

리처드는 윤아의 안경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리처드가 씨익 웃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과 푸른 눈동자가 지나치게 눈부셨다.

윤아는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머리로는 '저건 기계다, 저건 그래픽 덩어리다’라고 되뇌었지만, 눈앞의 피사체가 주는 시각적 정보는 뇌의 논리 회로를 자꾸만 우회해서 감정 중추를 타격하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서림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은아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윤아는 헛기침을 하며 다시 공격 태세를 갖췄다.
리처드는 난간에 기대어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리처드가 말을 끊었다. 그는 윤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윤아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자아가 없다고 했다. 유사 AGI라고 했다. 그런데 이 녀석의 반응은 예상 범위를 자꾸만 벗어났다. 정해진 대본을 읽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실시간으로 '재수 없음’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리처드는 근처 아이스크림 가판대로 걸어갔다.
리처드는 한제후가 있는 쪽을 가리키며 뻔뻔하게 웃었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리처드의 뒷모습을 보았다.
윤아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따라갔다.
2085년의 시드니 거리에서, 코딩 천재 소녀와 반항아 안드로이드의 데이트는 묘한 케미를 발산하며 계속되었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에 대한 경이로움과 투쟁심, 그리고 아주 약간의 설렘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교류였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시드니의 햇살이 오페라 하우스의 하얀 타일 위로 부서져 내렸다. 윤아는 한 손에 녹아가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든 채, 앞서 걷고 있는 리처드의 등짝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녀의 안경 너머 눈동자는 연인이 아닌, 버그를 찾는 디버거(Debugger)의 그것이었다.
리처드가 뒤를 돌아보며 핀잔을 주었다. 삐딱한 자세, 한쪽 입꼬리만 올리는 미소, 그리고 귀찮다는 듯한 손짓. 모든 것이 완벽했다. '반항적인 20대 미남’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생성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값이었다.
하지만 윤아는 바로 그 '완벽함’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윤아는 어제 도서관 서버실에서 만났던 디지털 인류, 로이스 타일러를 떠올렸다.
로이스는 육체가 없었다. 그녀는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였고, 모니터 속의 아바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와의 대화에는 묘한 '노이즈(Noise)'가 있었다.
그것은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 비효율성이야말로 그녀가 '인간’이라는 증거였다.
반면, 눈앞의 리처드는 달랐다.

윤아는 리처드가 걷는 보폭, 눈을 깜빡이는 주기, 그리고 대사를 칠 때의 타이밍을 분석했다.
리처드는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불규칙성을 연기하고 있었다. 가끔 발을 헛디디는 척하거나, 말을 더듬는 척했다. 하지만 윤아의 천재적인 감각은 그 불규칙성 안에 숨겨진 **
리처드의 모든 행동은 정규분포 곡선 안에서 놀고 있었다. 그는
로이스에게는 예측 불가능한 '튀는 값’이 있었다.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맥락 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그런 돌발성. 그것은 데이터의 오염이 아니라, 영혼의 흔적이었다.
하지만 리처드에게는 그게 없었다. 그의 반항심조차도 철저하게 계산된 '매력적인 반항’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거나, 진짜로 윤아를 기분 나쁘게 할 만한 '실수’를 하지 않았다.

윤아는 결론을 내렸다.
로이스 타일러는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데이터였고, 리처드는 노이즈 캔슬링이 완벽하게 적용된 마스터링 음원이었다. 인간적인 감성이 아니라, 차가운 통계학적 차이. 그것이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결정적인 경계선이었다.
리처드가 턱을 치켜들며 물었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피식 웃었다.

윤아는 자신이 발견한 차이점을 리처드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학습된 가중치에는 '자신의 완벽함이 가짜라는 증거’를 받아들이는 개념이 없을 테니까.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일행은 윤아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서림이 킬킬거리며 속삭였다.

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리처드의 움직임을 보았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수첩에 적었다.

한제후는 윤아의 눈빛을 읽고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제후가 박수를 짝 쳤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윤아는 안경을 검지로 치켜올리며, 삐딱하게 서 있는 리처드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리처드는 더 이상 미지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수조 개의 파라미터로 이루어진, 아주 복잡하고 정교한 함수(Function)였다. 입력값을 넣으면, 학습된 가중치(Weight)에 따라 가장 그럴듯한 결과값을 출력하는 기계.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사실에 실망하거나 섬뜩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아는 개발자였다. 그녀에게 '잘 짜인 코드’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하고 가지고 놀고 싶은 장난감이었다.

윤아의 입가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리처드의
리처드가 짝다리를 짚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윤아는 길가에 있는 액세서리 가판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가장 화려하고 유치찬란한, 핑크색 리본 머리띠를 집어 들었다.
리처드의 푸른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인공 신경망 내부에서 [반항적인 성격]과 [고객의 요구 순응]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명령어가 충돌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윤아가 까치발을 들고 리처드의 머리에 억지로 머리띠를 씌웠다. 리처드는
결국 금발의 반항아 머리 위에 핑크색 리본이 얹어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서림이 배를 잡고 뒹굴었다.

윤아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처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출력값은 '분노’와
윤아는 내친김에 더 과감한 입력을 시도했다. 그녀는 걷고 있는 리처드의 손을 덥석 잡았다.

리처드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의 인공 신경망이 '반항아 캐릭터가 갑작스러운 스킨십을 당했을 때’의 대응 반응을 출력하고 있을 터였다.
리처드는 투덜거렸지만, 역시나 손을 빼지는 않았다. 오히려 윤아의 보폭에 맞춰 걸음 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는 것이 윤아의 손끝에 느껴졌다.

윤아는 그 통계적 기만술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 뻔히 보이는 알고리즘이 귀엽게 느껴졌다.

시아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세리도 안도한 듯 미소 지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수첩에 적었다.
'관찰 기록: 채윤아, 안드로이드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해킹 중. 인간의 예측 불가능성이 AI의 연산 범위를 초과하여 과부하(부끄러움)를 유도하고 있음. 이것이 바로 인류가 기계에 대항할 유일한 무기,
윤아는 리처드를 이끌고 젤라또 가게, 오락실, 그리고 스티커 사진기 앞까지 끌고 다녔다. 리처드는 매번 "귀찮게 진짜…"라고 투덜대면서도, 윤아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고 있었다.
스티커 사진기 안에서, 윤아가 리처드의 볼을 콕 찌르자 리처드가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는 순간이 사진에 찍혔다.

윤아가 사진을 보며 칭찬하자, 리처드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윤아는 사진을 지갑에 넣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즐거운 시간도, 리처드의 반응도, 결국은 0과 1의 조합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더 편안했다. 상처받을 일도, 오해할 일도 없는, 완벽하게 통제 가능한 관계.

윤아는 리처드의 팔짱을 끼며 올려다보았다.
리처드가 거만하게 웃었다. 윤아도 따라 웃었다.

한제후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2085년의 시드니 거리, 인간 소녀와 안드로이드 청년의 데이트는 데이터와 감정 사이의 경계선에서 유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시드니의 하늘이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도시의 네온사인과 홀로그램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할 무렵. 윤아와 리처드는
짧지만 강렬했던 데이트의 끝이었다.
리처드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턱으로 매장 안쪽을 가리켰다.

윤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피식 웃었다.
리처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치이익-
압축 공기가 빠지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문이 닫혔다. 캡슐 내부의 조명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그것은 '초기화(Reset)'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였다.
방금 전까지 윤아와 투닥거리고, 손을 잡고, 웃었던 리처드의 '기억 데이터’는 이제 영구 삭제된다. 다음번에 깨어날 리처드는 윤아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다시 공장 초기화 상태의 반항아 캐릭터로 돌아가, 새로운 고객을 맞이할 것이다.

윤아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개발자로서 데이터의 생성과 소멸은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가슴 한구석이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때, 매장의 AI 점원이 윤아에게 다가왔다.
[고객님,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념으로 컴패니언의
윤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윤아는 건네받은 작은 칩을 손에 꽉 쥐었다.
이것은 2085년의 최첨단 데이터다. 2025년의 컴퓨터로는 호환성 문제 때문에 열어볼 수도, 실행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저 0과 1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디지털 쓰레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아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코드’였다.

윤아는 칩을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한제후가 일행을 모으며 펜을 꺼내 들었다.

한제후가 허공에 파란 선을 그었다. 2085년 시드니의 화려한 야경이 멀어지고, 시공간의 터널이 그들을 빨아들였다.
빛이 사라지자, 코끝을 맴돌던 미래 도시의 청량한 공기와 기계적인 소음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대신 묵은 책 냄새, 칠판 지우개의 분필 가루 냄새, 그리고 학교 복도 특유의 왁스 칠 냄새가 훅 끼쳐왔다. 창밖에서는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윤아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방금 전까지 그녀의 옆에는 금발의 안드로이드가 있었고, 눈앞에는 홀로그램 고래가 헤엄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낡은 책상과 의자가 놓인 좁은 독서부실에 서 있었다.

시아는 습관처럼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1분.
윤아가 부실에 들어와서 "미래를 보고 싶다"고 말하고 떠나기 직후의 시간. 그들이 2085년의 시드니에서 도서관을 가고, 오페라를 보고, 데이트를 하고 왔음에도, 현실의 시간은 고작 1분도 흐르지 않았다.

시아는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녀의 태도는 이제 어떤 초월적인 상황이 닥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구석에 있던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황급히 게임기를 살폈다.
예준은 게임기 화면에 뜬

서림은 기지개를 켜며 책상에 널브러졌다.

지은은 수첩을 덮으며 작게 웃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수첩에 무언가를 미친 듯이 적어 내려갔다.

세리는 성호를 그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서윤은 스케치북을 펼쳐 리처드의 미소와 비올레타의 눈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은아는 눈을 감고 오페라의 선율을 회상했다.

이혜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새벽은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모두가 각자의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윤아는 주머니 속의 USB 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윤아는 그 단어를 다시 곱씹었다. 예전에는 그 말이 AI를 비하하는 경멸의 언어였다. 영혼 없이 흉내만 내는 껍데기라고.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윤아는 안경을 벗어 닦으며 미소 지었다.
윤아는 칩을 소중히 쥐었다. 비록 2025년의 기술로는 열어볼 수 없는 데이터 덩어리지만, 그 안에는 그녀가 느꼈던 설렘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압축되어 있었다.


한제후는 만족스러운 듯 하얀 가운을 털며 교탁을 탁 쳤다.


서림이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한제후는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미닫이문을 열었다.

한제후는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둘러보며 눈인사를 건넸다.

드르륵.
문이 닫히고 한제후가 사라졌다. 남겨진 11명의 학생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호기심이 뒤섞인 이 작은 방은, 21세기의 어느 평범한 금요일 오후, 우주에서 가장 특별하고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