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월요일 방과 후, 독서부실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부원인 시아, 서림, 지은, 새벽, 세리, 예준, 은아까지 7명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시아는 우아하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서림은 칠판에 낙서를 하며 낄낄거렸다. 지은은 노트북으로 역사 포럼을 눈팅 중이었고, 새벽은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리는 성경을 필사하고 있었고, 은아는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감상 중이었다. 예준은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휴대용 게임기 버튼을 연타하고 있었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열리고, 단정한 교복 차림에 지적인 인상을 주는 여학생이 들어왔다. 시사토론 동아리의 부장이자 독서부원들과 친분이 깊은 강이혜였다.

이혜는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와 빈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녀는 이미 지난주에 100만 년 뒤의 미래를 다녀온 '공범’이었기에, 부실의 북적임이 낯설지 않았다.
잠시 후, 다시 한번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헐렁한 후드티에 베레모를 쓴 서윤과, 하얀 가운을 입은 한제후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를 뿔테 안경을 쓴 하람이 수첩을 들고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서윤은 시크하게 인사하며 구석으로 향했다.

한제후는 자연스럽게 교탁 옆 상석을 차지하고 앉아 과학 잡지를 펼쳤다. 하람은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안경을 번뜩이며 한제후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좁은 부실에 10명의 학생과 한 명의 교사가 꽉 들어차 있으니, 에어컨이 풀가동 중임에도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드르륵.
그때, 미닫이문이 다시 한번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학생은 체구가 작고 귀여운 인상의 남학생이었다. 품에는 낡은 노트 한 권을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1학년 한별이었다.

한별은 들어오자마자 씩씩하게 인사했다. 초등학교를 1년 일찍 조기 입학한 탓에 어리고 작아 보였지만, 눈빛만은 총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지은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한별은 지은과 친한 후배로, 가끔 독서부에 놀러 와 한자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한별은 부실 안으로 들어오려다, 교탁 앞에 앉아 있는 한제후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별은 배꼽 인사를 했다. 그 역시 학교 내에서 '물리 선생님이 독서부에 자주 출몰한다’는 소문, 아니 '낭설(浪說)'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한별이 사자성어를 섞어 인사하자, 한제후가 잡지를 덮으며 흥미롭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한제후는 지은을 돌아보며 물었다.


지은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서림이 아는 사자성어를 총동원해 환영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한제후는 한별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한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시공간 초월? 물리 선생님이라 그런지 질문이 심오하시네. '격물치지(格物致知)
한별은 품에 안고 있던 사자성어 노트를 만지작거렸다. 사실 그는 SF나 판타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아름다운 한자들의 획순과 의미로 가득 차 있었다.

한별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한별의 소박하면서도 확고한 대답에 한제후가 무릎을 탁 쳤다.

한제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었다.

한제후가 허공에 파란 선을 그었다.


한별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독서부실의 풍경이 젤리처럼 일그러졌다.

예준이 한별의 컨셉에 맞춰 비명을 질렀다.

한제후의 신호와 함께 11명의 학생과 한 명의 과학자는 빛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이 걷히자, 엄청난 인파의 소음과 함께 웅장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거대한 성문 앞이었다. 붉은 성벽과 황금빛 기와,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망루. 바로 자금성(紫禁城)의 정문인 오문(午門) 앞 광장이었다.
거리는 비단 옷을 입은 관리들과 짐을 나르는 상인들, 그리고 각지에서 몰려든 학자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별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거리의 모든 간판, 깃발, 벽보가 아름다운 한자로 가득 차 있었다.
[태평성대(太平聖代)]
[천하태평(天下泰平)]
[객잔(客棧)]
한별에게는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운, 텍스트의 천국이었다.

시아가 우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림이 한별의 눈치를 보며 아는 사자성어를 썼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자금성을 노려보았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중얼거렸다.

한제후가 부채(어느새 손에 들려 있었다)를 펼치며 웃었다.
한별은 감격에 겨워 노트를 펼쳤다.

1429년의 북경, 한자 덕후 소년에게는 천국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12명의 시간 여행자들의 새로운 모험이 시작되고 있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북경의 거리는 그야말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붉은색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건물들, 비단 옷을 입고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거리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향신료 냄새가 15세기의 공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별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하나, 사방천지에 널려 있는 '한자(漢字)'들뿐이었다.

한별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곁에 있는 지은을 바라보았다. 자신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지은을 비롯한 다른 선배들은 마치 동네 시장에 온 것처럼 너무나도 태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한별의 질문에 지은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별은 감탄하며 노트를 꽉 쥐었다. 자신이 존경하는 지은 선배가 이런 엄청난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니, 존경심이 한층 더 깊어지는 기분이었다.

한제후가 부채를 펴들고 앞장섰다. 12명의 일행은 1429년 북경의 번화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를 걷는 동안, 한별은 고개를 쉴 새 없이 돌려대느라 바빴다.
[천하제일(天下第一) 만두]
[약방(藥房)]
[금은방(金銀房)]
간판 하나하나가 그에게는 예술 작품이었다.

한별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조차 주워 들고 감격했다.

서림은 그런 한별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서림의 말대로였다. 한제후의 기술 덕분에 일행의 눈과 귀에는 모든 중국어가 모국어처럼 자동 번역되어 인식되고 있었다. 굳이 한자를 해독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한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아는 한별의 열변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주막(객잔)을 기웃거렸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거리의 배치를 살폈다.

이혜는 지나가는 관료들의 복장을 보며 분석했다.

세리는 거리 한쪽에서 불상을 모시고 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은아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비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윤은 붉은색과 황금색이 주를 이루는 거리의 색감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한제후가 부채로 한별의 어깨를 톡 쳤다. 한별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림이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1429년의 북경, 각자의 시선으로 과거를 즐기는 12명의 시간 여행자들 사이로, 명나라의 태평성대가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
한제후가 부채를 접으며 한 건물의 입구를 가리켰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목조 건물이지만, 안에서 풍겨 나오는 묵직한 먹 냄새와 종이 향기는 이곳이 지식의 보고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일행이 발을 들여놓자마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역시 한별이었다.

한별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21세기의 박물관 유리장 너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누렇게 바래고 삭아가는 고서들이 아니었다.
방금 막 인쇄되어 나온 듯 빳빳하고 하얀 종이, 선명하고 윤기 흐르는 검은 먹 글씨, 그리고 튼튼하게 제본된 실 매듭까지. 모든 책들이 '신상(新品)'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한별은 떨리는 손으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에게는 수백 년 된 보물이 눈앞에서 새것으로 환생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한별이 책에 얼굴을 파묻고 킁킁거리는 사이, 다른 부원들도 각자의 취향에 맞춰 서가로 흩어졌다.

시아는 시집 코너에서 두보(杜甫)의 시집을 꺼내 들었다.

지은은 역사서 코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서림은 과학 기술 서적을 뒤적거렸다.

새벽은 유교 경전들이 쌓인 곳에서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세리는 도교와 불교 관련 서적들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은아는 고금(古琴) 악보가 적힌 책을 발견하고 흥미로워했다.

이혜는 법전과 행정 관련 서적을 훑어보고 있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무술 비급처럼 생긴 책을 찾고 있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책들 사이에 숨겨진 암호를 찾으려 애썼다.
모두가 각자의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있을 때, 구석진 서가에서 무언가를 뒤적이던 서윤이 무심한 목소리로 일행을 불렀다.

서윤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해 보였지만, 그녀가 펼친 페이지에는 글자 대신 적나라한 그림이 가득했다.

서윤이 보여준 것은 당대에 유행하던 춘화(春畵), 즉 성적인 묘사가 담긴 서적이었다. 남녀가 얽혀 있는 모습이 꽤나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한별이었다. 그는 책의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며 뒷걸음질 쳤다.
한별은 눈을 가리면서도 손가락 사이로 힐끔거렸다. 유교 보이에게는 너무나 자극적인 시각 정보였다.

서림은 박장대소했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헛기침을 했다.

시아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짐짓 놀란 척했지만, 눈은 호기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리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성호를 그었다.

이혜는 팔짱을 끼고 분석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그림 속의 자세를 분석했다.

한제후가 껄껄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한별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1429년의 서점 구석, 점잖은 서적들 사이에서 발견된 뜨거운 책 한 권이 시간 여행자들에게 색다른 충격과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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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후가 부채로 손바닥을 탁 치며 감탄했다.


서윤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한별은 여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자신이 고른 『논어』와 『맹자』를 방패처럼 가슴 앞에 꼭 껴안고 있었다.

한제후가 품에서 묵직한 은괴(은자) 몇 덩이를 꺼내 주인장에게 건넸다. 서점 주인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21세기의 종이책 가격과는 비교도 안 될 거금을 치른 셈이었다.
일행은 각자 한 아름씩 책을 안고 서점을 나섰다. 한별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한 표정으로 책 냄새를 맡았고, 지은과 시아도 귀한 사료를 얻었다며 만족해했다. 서윤은 문제의 그 책을 검은 비단 보자기에 싸서 소중히 챙겼다.

한제후가 앞장서자, 11명의 학생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북경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한, 으리으리한 3층짜리 목조 건물이었다.
입구에는 붉은 등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용과 봉황이 조각된 기둥은 황금색 칠이 되어 번쩍거렸다. 안에서 풍겨 나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와 향신료 향기가 식욕을 자극했다.

서림이 입을 딱 벌리며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식당의 등급을 매겼다.

한제후는 점소이(종업원)에게 은자 하나를 슬쩍 쥐여주었다. 그러자 점소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지며, 그들을 가장 전망 좋은 3층의 별실(VIP룸)로 안내했다.
별실 내부는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극치였다. 바닥에는 푹신한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벽에는 명필의 글씨와 산수화가 걸려 있었다. 창밖으로는 자금성의 기와지붕과 북경 시내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시아가 감탄하며 자리에 앉았다.

세리는 화려한 식기들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

이혜는 식당 내부를 둘러보며 분석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젓가락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한별은 메뉴판(죽간으로 되어 있었다)을 펼치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한제후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은아는 식당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악기 연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서윤은 창밖의 붉은 등불들을 스케치북에 담으며 중얼거렸다.
1429년 북경의 최고급 식당, 12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역사책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닌, 살아있는 맛과 향기를 즐길 준비를 마쳤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기름진 북경오리의 껍질과 향긋한 동파육, 그리고 각종 딤섬이 담겨 있던 접시들이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12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한제후가 부채를 접으며 물었다.

서림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제후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그는 창밖의 어두워진 하늘을 가리켰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역사와 날짜에 민감한 두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지은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탄성을 질렀다.

한별 역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기세였다.
한별은 감격에 겨워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제후가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제후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시원한 밤바람과 함께, 거리의 웅성거림이 한층 더 크게 들려왔다.


서림이 환호성을 질렀다.

시아는 우아하게 미소 지으며 창가로 다가갔다.

세리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제후의 안내에 따라 12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식당의 넓은 테라스로 나갔다. 발아래로는 수만 개의 붉은 등불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고, 머리 위로는 1429년의 맑고 깊은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피유우우웅-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첫 번째 불꽃이 밤하늘을 갈랐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펑-! 퍼어엉-!
밤하늘을 찢는 굉음과 함께, 칠흑 같던 어둠이 순식간에 오색찬란한 빛으로 물들었다.
21세기의 컴퓨터로 제어되는 정교한 불꽃놀이와는 달랐다. 조금은 투박하고 불규칙했지만, 그만큼 원초적이고 야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불꽃들이 자금성 위로 쏟아져 내렸다. 화약 냄새가 밤바람을 타고 테라스까지 밀려왔다.

서림이 난간에 매달려 방방 뛰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 불꽃이 팡팡 터지고 있었다.

한별은 감격에 겨워 두 손을 모았다.
한별은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사자성어로 번역하느라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시아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은아는 눈을 감고 불꽃이 터지는 소리에 집중했다.

서윤은 스케치북을 펼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은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광경을 즐겼다.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감탄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불꽃의 패턴을 분석하려 애썼다.
하람이 코를 막고 킁킁거렸지만, 맡아지는 건 고소한 만두 냄새와 매캐한 화약 냄새뿐이었다.

이혜는 자금성 쪽을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세리는 밤하늘을 수놓는 빛을 보며 성호를 그었다.

새벽은 난간에 기대어 피식 웃었다.
12명의 시간 여행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1429년의 밤을 즐기고 있었다. 서로 다른 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는 그들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한제후가 부채를 활짝 펴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의 하얀 가운이 불꽃 조명을 받아 붉게, 푸르게, 그리고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한별은 아쉬운 듯 품에 안은 책들을 고쳐 안았다.

서림이 한별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한제후가 윙크를 하며 허공에 파란 선을 그었다.

마지막 거대한 불꽃이 밤하늘을 하얗게 뒤덮는 순간, 12명의 일행은 빛 속으로 사라졌다. 1429년 북경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화약 냄새를 뒤로하고, 그들은 다시 21세기의 독서부실로 귀환했다.

Han Je-hoo
Gemini Pro 3 Preview익숙한 백색 소음과 함께 시야를 가득 채우던 1429년 북경의 밤하늘과 화려한 불꽃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코끝을 맴돌던 매캐한 화약 냄새와 고소한 기름 냄새 대신, 독서부실 특유의 묵은 책 냄새와 학교 복도의 왁스 칠 냄새가 훅 끼쳐왔다. 창밖에서는 여전히 해가 떠 있었고, 운동장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한별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방금 전까지 눈앞에서 오색찬란한 불꽃이 터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칠판과 책상이 놓인 좁은 부실에 서 있었다. 하지만 품에 안겨 있는 묵직한 책들의 무게감만큼은 생생했다.

시아는 습관처럼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5시 12분.
한별이 부실에 들어와서 "한자가 많은 곳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떠나기 직후의 시간. 그들이 1429년의 북경에서 서점을 털고, 최고급 요리를 먹고, 불꽃놀이까지 즐기고 왔음에도, 현실의 시간은 고작 1분도 흐르지 않았다.

시아는 찻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갔다. 그녀의 태도는 이제 어떤 초월적인 상황이 닥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구석에 있던 예준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황급히 게임기를 살폈다.
예준은 게임기 화면에 뜬

서림은 기지개를 켜며 책상에 널브러졌다.
서림이 배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지은은 품에 안은 역사서들을 소중히 쓰다듬으며 작게 웃었다.

하람은 안경을 번뜩이며 수첩에 무언가를 미친 듯이 적어 내려갔다.
하람의 중얼거림은 오늘도 멈추지 않았다.

세리는 성경책을 가슴에 품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서윤은 검은 보자기에 싸인 '그 책’을 슬쩍 확인하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은아는 눈을 감고 거리의 비파 소리를 회상했다.

이혜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새벽은 창가에 기대어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모두가 각자의 감상에 젖어 있는 사이, 한별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에 들린 책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별은 책에서 나는 묵직한 먹 냄새를 맡으며 울먹였다.

한제후는 만족스러운 듯 하얀 가운을 털며 교탁을 탁 쳤다.


서림이 투덜거렸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한제후는 짓궂은 미소를 남기고는, 하얀 가운 자락을 휘날리며 미닫이문을 열고 나갔다.
드르륵.
문이 닫히고 한제후가 사라졌다. 남겨진 11명의 학생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과거와 미래, 신화와 과학, 예술과 정치, 그리고 이제는 명나라의 불꽃놀이까지.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비밀이 모인 이 작은 방은, 21세기의 어느 평범한 월요일 오후, 우주에서 가장 특별하고 시끄러운 도서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