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27 - 2024.02.25
찬호박입니다. 현생이 바쁜 탓에 꽤 오랫동안 답사기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최근 소재들이 크게 인기를 끌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 최근에 4월 중순에 생긴 시간적 여유를 틈타 짧게 향항에 다녀오려던 계획을 피치 못하게 학식 졸업 직전인 내년으로 미뤄야 했던 일이 있어 힘이 더 빠진 면도 있었죠. 하지만 싱가포르 답사기는 끝내야 하는 법. 답사기를 재개하는 김에 제목도 좀 더 직관적으로 바꿨습니다. 이제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싱가포르 이야기만 해야 하니까요.
다들 싱가포르 하면 가장 떠올리기 쉬운 모습이
싱가포르의 상징으로서 시선을 강탈하는 마리나베이 샌즈와 그 주변 도심지일 겁니다. 사실 마리나베이 샌즈와 그 주변 싱가포르의 CBD는 4주간 있으면서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진짜 지겹다 싶을 정도로 많이 보고 갔던 곳이기에 조만간 한 번에 정리할 계획입니다.
마리나 베이에서 더 남쪽으로 가면 싱가포르의 또다른 상징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로 지겹다 싶을 정도로 자주 봤던 곳인지라 나중에 소급해서 다룰 예정입니다.
오늘 답사기의 핵심은 그보다 더 남쪽에 있는
마리나 바라지 (Marina Barrage)라는 곳 되겠습니다.
사실 싱가포르의 CBD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마리나 베이의 물 자체는 바다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 마리나 바라지라는 댐이, 싱가포르 강을 포함한 다섯 개의 강물이 바다로 나가는 길목을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바로 남쪽에서 그대로 막고 있기 때문이죠. 싱가포르가 국토는 좁고, 우기의 강수 집중률은 높다 보니 아직도 말레이시아에서 물을 어느 정도 수입할 정도로 수자원 자급률이 열악한 편인데, 이를 일찌감치부터 직시하고 있던 리콴유가 1987년부터 생각해 놨던 것이 마리나 베이의 본격적 개발이 이루어지던 2008년쯤 완공한 게 저 마리나 바라지 되겠습니다.
젠장 또 대콴유야
그래서 마리나 바라지로 가려면 싱가포르 MRT를 타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방향으로 가야겠죠. 보통은 이쪽으로 올 때 마리나 베이 샌즈와 연결된 베이프런트 역으로 많이 가지만, 마리나 바라지만큼은 비교적 새 것 티가 나는 톰슨이스트코스트 선의 (2024년 1월 기준) 종착역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역으로 가야 합니다. 5월이면 드디어 마리나 베이 건너편으로 연장이 된다고 하더군요...
출구가 3개뿐이고 그마저도 가든스 바이 더 베이까지 가는 출구는 수백 미터짜리 환승통로를 걸어가야 해서, 그냥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가려면 베이프런트 역으로 가는 게 훨씬 속이 편합니다. 그래도 확실히 지하철 노선 자체가 최신이라 그런지 역이 깔끔하군요.
1번 출구에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옆에 있는 아이콘이 마리나 바라지 되겠습니다.
역의 1번 출구가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덜 알려진 남쪽 입구로 연결됩니다.
아까 지하철역에서는 출구에 아이콘도 표시해 주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못지않은 곳으로 홍보하고 싶어하는 것 같던데, 솔직히 모르고 가면 그냥 '잔디밭 지붕인 공공시설 1' 정도의 존재감이고 하필이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바로 옆이라 생각보다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반도 안 올라갔는데, 벌써부터 비주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잔디밭이 나선을 그리며 반대쪽까지 쭉 이어지며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진짜 댐과 같은 구조물이 마리나 베이와 바다를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역시 오늘도 싱가포르 앞바다는 배들이 빼곡합니다.
반대쪽으로 잠시 돌아봤는데 맙소사, 마리나 베이 샌즈를 포함해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이 남쪽에서 이런 뷰로도 잡힐 수가 있습니다. 잔디밭으로 덮여 있고 사람들이 여기서 피크닉을 하거나 연을 날리는 모습이 근경에, 원경에 스카이라인이 펼쳐지는 걸 보니 한편으로는 목가적이면서 한편으로는 국제도시로서 싱가포르의 위상을 한 컷에 잡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해질녘에 와서 그런지 뷰가 장관입니다.
남쪽으로 돌아봅니다. 돗자리를 깔아도 될 법한데, 잔디가 깨끗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그냥 잔디에 그대로 눕거나 앉아서 경치를 감상하고 있습니다. 쭉 둘러보니 주로 현지인들이더군요.
다른 날, 한 번 더 와 봤습니다. 이번에는 아예 마리나 바라지를 건너 동쪽으로 넘어가려는 계획입니다.
역시 이날도 싱가포르의 앞바다는 수평선이 거의 통째로 배들로 막혀 있을 정도로 붐빕니다.
특정 시간대에는 마리나 바라지를 통해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통제한다고는 하는데, 제가 갔을 때는 크게 막는 게 없던 거 보면 괜찮은 듯합니다.
수문들의 존재는 여기가 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중턱에서 싱가포르 방면으로 돌아보면, 싱가포르 도심에서는 잡을 수 없는 스카이라인 구도를 잡을 수 있습니다.
드디어 마리나 베이 동쪽입니다. 사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동쪽으로 건넌 곳도 나름 제2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개발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적어도 현 시점에서는 특히 서쪽 가든스 바이 더 베이와 비교하면 확실히 잔디가 좀 무성한 한강공원 느낌입니다.
몇년 뒤에 여기 Founders' Memorial이라는 일종의 건국 기념관을 짓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친구는 일단 2027년에 완공된다 합니다. 2027년 이후에 싱가포르에 한 번 더 올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와 별개로 싱가포르 플라이어와 마리나 베이 샌즈, 그리고 스카이라인 전체를 특이한 구도에서 담으려면 여기만한 위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마리나 바라지 쪽으로 내려온 두 번 다 주중에 왔던지라 의도치 않게 해질녘의 모습을 잡았는데, 확실히 운치 있습니다.
해가 지기 직전, 마리나 베이 샌즈가 비스듬하게 보이는 방면으로 구도가 나오는군요.
적당히 보고 돌아가는 길, 드디어 마리나 베이 샌즈와 싱가포르의 CBD에도 불이 켜집니다.
아직 마리나 바라지에서 야경은 본 적이 없는지라 한 번 찍고 갑니다.
마리나 바라지를 두번째로 간 것은 4주차의 일이라 이쯤되면 싱가포르의 야경은 지겹다 싶을 정도로 많이 봤지만, 싱가포르의 야간 스카이라인을이런 구도에서 본 건 참 새롭더군요.
해가 거의 진 19시 45분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유명한 슈퍼트리 쇼가 시작될 때쯤입니다. 다들 싱가포르에 오면 저건 꼭 보고 가더군요. 저걸 마리나 바라지에서 보는 게 나름 거리가 있는 곳에서 보는지라 비교적 마이너한 각도이긴 한데, 역시 운치가 있습니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역으로 내려옵니다. 지금은 싱가포르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두 곳인 마리나 베이 샌즈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있는 땅이 1976년 전까지는 존재하지조차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참 격세지감이죠.
바로 옆에 있는 싱가포르의 상징 그 자체에 묻히는 감이 있어 현지인들이나 아는 비교적 마이너한 스팟이긴 하지만, 마리나 바라지 쪽에서 바라본 싱가포르 전망은 원체 새롭다 보니 싱가포르에서 가장 인상적이던 곳 중 하나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봐 주셔서 감사드리고, 다음 답사기로는 싱가포르 하면 흔히들 떠올리는 곳 중 하나로 돌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