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 이런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고려시대 전성기때 아라비아 상인들이 교역을 하러 드나들어 낙타를 매 놓은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는 야다리는 개성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다리였음. 박완서 소설에서 나왔던건데 박완서가 어렸을때 엄마말을 안들으면 엄마가 ''너는 내가 야다리 밑에서 줏어왔다''이러고 혼냈을때의 야다리가 그 다리.


개성에서 조금 올라가서 개풍이란 곳에 박완서의 집이 있었는데 개풍에서 개성시내까지 거리가 좀 있었다고 함.


박완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소개령을 내려서 서울에서 다니던 여자중학교에서 개성의 여자중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다시 고향에 왔는데 고향에서 어렸을때 놀던 친구들이 다 시집을 가버렸음. 시집을 안가면 위안부로 끌려간다고 하면서.



그러다가 일제가 패망하고 연합군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면서 다시 서울로 돌아가려던 중 개성에는 소련군과 미국군이 위에 나온 그 야다리를 중심으로 대치돼서 주둔했는데 이 나눠지는 선도 일정하지 않아서 언제는 저 뒷쪽으로 갔다가 언제는 더 앞쪽으로 갔다가 해서 자기가 있는곳에 언제는 소련군이 주둔하고 언제는 또 미군이 주둔하고 그랬는데 개성에 처음 온 건 미국군이었음. 미국군은 도대체 군기가 없는 군대같았음. 행진하는데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지나가는 아이가 귀엽다며 번쩍 들어올리고....


그러다가 또 삼팔선이 잘못 그어졌다 그러면서 미국군이 아무 말도 없이 아랫쪽으로 가고 소련군이 주둔하게 됐음


소련군이 주둔하던 때 시장통에서는 출처를 모르는 용어가 유행어가 됐는데 '다와이'라는 단어였음. 시장통에서 여자가 소련군한테 다와이를 당했다, 밭에 채소들이 다와이를 당했다 뭐 이런 얘기들이 막돌아다님.


※다와이는 러시아어로 겁탈이라는 뜻임. 그러니까 소련군들이 여자들에게 시장통에서 겁탈했다는 얘기고 물건을 막 뺏어갔다는 얘기.


막 이렇게 경계가 일관된것도 없이 왔다갔다하니까 사람들끼리 어디가 경계가 될까 하는 얘기는 화젯거리가 되었다.


자기가 서울로 돌아가려고 기차를 타기위해 개성시내 개성역으로 갔는데 거기가 또 소련군이 주둔하면서 서울가는 기차가 없어진거다. 개성역이 소련군이 주둔하는 지역이고 밑에 있는 봉동역이 미국군이 있는 지역이 된 것이었다. 미국군이 있는 봉동역에서 타야 서울로 갈 수 있었다고 하기 때문에 봉동역까지 걸어가는 중 박완서와 그밖에 서울로 가려던 사람들은 소련군과 미국군이 위에서 쓴 그 야다리를 사이에 두고 경계 했는데 검문을 하는것도 아니어서 그냥 건너가는 중 야다리 사이의 소련군이나 미국군이나 둘 다 노르스름한 눈에 뭔가 장난스러운 표정이었음. 야다리에 삼팔선이라 추정될만한 선이 그어진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표시가 없었다.


그렇게 미국군 주둔지역에 있던 봉동역에서 서울로 가려는 다른 사람들하고 오래 기다리다가 드디어 서울가는 기차가 오니 사람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기차를 탔다. 출입문보다 창문으로 기차안에 올라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인도 창문으로 기차에 올라탔고 안에 있던 엄마가 들어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래서 창문이 깨져버렸다. 사실 거기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본인 포함해서 표도 안사고 기차를 탄 무임승차자들이었다.(사실 봉동역에 기차표를 파는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차 안은 어느새에 형편이 없어졌는지 좌석이 훼손이 심했고 유리창도 성하지를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차를 탄 사람들은 이딴게 뭐가 해방이고 자시고냐며 비분강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차는 어디 섰다고 하면 오래 기다리기 일쑤라 서울로 진입하는데 오래걸렸다. 신촌에서 서울로 진입하기 전 사람들이 일제히 내렸는데 서울에서 내리면 표 안산게 문제가 됐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울로 도착했다.


박완서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