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나는 그때부터 이미 tv보다는 컴퓨터를 보는 걸 더 좋아했고, 운동도 별로 안 좋아했을 뿐더러, 마침 찾아온 중2병까지 겹쳐서, 남들이 다 축구에 미쳐 있던 월드컵 당시에 축구 경기를 딱 한 경기만 봤음. 그 유일하게 봤던 경기는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라고 틀어줘서 본 거니까, 직접 찾아본 경기는 그냥 없는 셈이지. 그래도 월드컵을 좋아하긴 했는데, 학교에서 축구 보라고 단축수업하고 일찍 집에 보내줬거든.

뭐 그래서 그렇게 즐겁게 단축수업 끝나자마자 집구석으로 틀어박혔던 어느날, 갑자기 북한이 서해에서 우리 해군한테 총질을 했다네?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마침 딱 그 날도 무슨 한국팀 축구경기(지금 찾아보니 한국-터키 3,4위 결정전이라는 듯?)가 있던 날인데, 갑자기 그런 뉴스가 들려오는 거임. 일단 빡이 안 칠수가 없지. 월드컵을 소 닭보듯 하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주변이 다 축제판인 건 딱히 싫지는 않았는데, 하필이면 그런 때에 얘들이 시비를 털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차마 그 기분을 형용하기 어려웠음. 


그리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미 전에도 한번 연평도에서 시비를 털었던 적이 있다 그러더라고. 그래서 서해해전(당시 용어)이 아니라 제2서해해전이라네? 이미 그 이전부터 뭐 북한에 정주영 현대회장이 소떼를 보낸다느니, 햇볓정책으로 뭘 보내준다더니 하고 있었던 판에, 북괴놈들이 그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생각이 딱 드니까 원래 별로 없던 정나미도 싹 떨어졌음.

지구 반대편에 살아서 소식도 별로 못 듣고 살던 터키는 6.25때 UN군 파병했던 그 얼마 안되는 인연을 가지고 형제의 나라이니 뭐니 하면서 훈훈한 미담이 들려오는데, 그러는 와중에 진짜 피가 이어졌다는 북한이 그따위로 하고 있는 걸 보니 배신감 장난 아니더라.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나는 휴전선 이북에 사는 이들에게 동족의식을 버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