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경기도 지도. 서쪽으로 바닷가까지 툭 튀어나온 견아상입지가 보인다.



  위의 현대 지도상에서 연두색 상자에 해당한다. 자세히 살펴보자.



  이 최서단의 견아상입지는 3개의 면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서쪽부터 성곶면, 북방면, 월곡면이다.

  주변의 군은 좌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산, 시흥, 광주, 수원, 남양이다.

  파란 선은 당시의 해안선이다. 빨간 선은 현재의 법정동 경계를 기준으로 그린 것이기 때문에 당시의 경계선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안산시 상록구의 행정동 중에서 일(一)동, 이(二)동, 사(四)동, 사이(四二)동, 본오(本五)1~3동 등 숫자로만 이루어진 지명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경기광주 최서단 성곶면이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소속은 광주인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냥 일리, 이리, 삼리, 사리, 오리 이렇게 불렸던 것이 정식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중간에 오리는 둘로 나뉘어 본(本)오리, 분(分)오리로 되었다.


  이 3개의 면은 1906년 안산군으로 넘어갔고,

  1912년 동·리의 구역·명칭을 변경할 때 삼리는 사리에, 분오리는 본오리에 편입되었다.

  그래서 일리/이리/사리/본오리만 남았고, 이것이 오늘날의 일동/이동/사동/본오동으로 이어진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당시 안산군이 사라지면서

  위 3개의 면은 수원군으로 넘어감과 동시에 하나로 합쳐져 반월면(半月面)이 되었다.

  1949년 수원군이 수원부+화성군으로 나뉨에 따라 화성군 소속으로 바뀌었고,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반월면 땅은 안산, 군포, 의왕, 수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대충 50%는 안산 상록구, 30%는 군포, 10%는 의왕, 나머지 10%가 수원 권선구로 넘어감.



  한대앞역 이름이 불편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여기까지 왔다.

  다음에는 성곶면 관련 지명뇌절로 찾아오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