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나라의 제1 도시는 보통 둘 중 하나의 입지임. 첫째, 중앙 입지(국토 또는 인구 밀집 지역의 중앙에 있는 교통의 요지), 둘째, 관문 입지(국외로 가는 데 주로 통과하게 되는 곳). 보통 정치 중심지도 이 중 하나로 정하게 됨. 서울은 한반도에서 중앙 입지였기 때문에 수도로 간택이 됨. 


중앙 입지의 도시와 관문 입지의 도시가 둘 다 있으면서 뚜렷이 구분되는 나라는 러시아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에서 타 도시보다 각각의 입지에서 압도적임. 모스크바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3배 정도 인구인 것은 소련이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겼기 때문이고 중앙 입지가 관문 입지보다 유리하다는 뜻은 아님. 


두 입지가 겹치는 도시도 있는데 태국의 방콕이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임. 이런 도시는 수도가 될 수밖에 없고 그 이하 도시들보다 압도적인 제1도시가 됨. 런던도 이에 가까운데 영국 전체로 보면 전혀 중앙이 아닌 것 같지만 잉글랜드의 전통적인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중심적 위치이면서 유럽 대륙을 향한 관문이기도 함. 


그럼 분단 이후 남한에서 서울은 어떨까? 당연히 두 가지 입지 중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음. 경제적으로 보면 제1도시는 커녕 낙후되기에 딱 알맞은 위치임. 관문 입지는 부산, 더 넓게 봐서 동남권이고 중앙 입지는 대전이지. 그런데 현재 남한에서 서울은 초월적 제1도시임. 이로 인해서 한국은 여러 가지 경제적 비효율성을 겪게 되었는데 서울 입지의 군사적 문제점은 잘 알려져 있지만 경제적 문제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도리어 정반대로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음. 


첫째, 이동과 물류 비용이 증가함. 만일 서울이 대전 위치에 있었다면 전국 대부분에서 한 시간 안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임. 물류 비용도 절반이 되었을 것이고.


둘째, 해양 관문과 서울이 각각 국토의 끝에 위치하다보니 이동 거리로 인한 물류 비용의 부담도 부담이지만 경부축이라는 회랑에 지나치게 부담이 가해짐. 경부축에 철도, 고속도로, 고속철도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순차적으로 교통 시설을 투입함에도 늘 포화 상태에 이름. 이 비용만 해도 개도국이었던 한국에 만만찮은 부담이 됨. 경부고속도로를 지은 박정희의 혜안을 칭찬하는 사람이 많지만 더 근본적인 혜안은 수도 이전이었을 것임. 


셋째, 인천, 평택 등 서울에 가까운 항구를 개발하느라 쓸데 없는 비용을 낭비함. 서해안은 항구가 들어서기에 자연 조건도 안 좋지만 황해가 내해이기 때문에 경제적 조건은 더 나쁨. 서울이라는 사기적 배후지가 있는데도 한국의 해상 관문이 인천이 아닌 것이 이를 극명하게 입증함.


넷째, 호남이 지나치게 소외됨. 이걸 정치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은데, 호남의 정치적 소외는 경부축의 발전으로 인한 소외의 결과지 원인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함. 관문인 동남권은 불가피하게 제조업이라도 입지하게 되었지만 경부축에서 벗어난 호남 지역에는 어떤 것도 들어설만한 입지가 안됨. 동남권의 끄트머리인 여수 광양에 전형적인 항구 입지 산업(따라서 수도권에는 들어서기 곤란함)인 중화학 공업이 좀 들어선 거 말고는 경제 발전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함. 


만일 서울이 수도가 아니고 분단 이후 정부가 철저하게 경제적으로만 국토를 개발했다고 치자. 서울이 지금의 호남과 같은 낙후지가 되었을 것이고 동남 해안의 발전 수준은 지금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았을 것임. 왜냐하면 동남 해안에는 부지가 모자라서 대도시가 들어서기가 좀 곤란함. 더 내륙 배후지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을 것임. 물론 물류 비용이나 군사적 유리함을 생각하면 동남 해안의 항구에서 멀지 않은 지역이 주로 발전했을 것임. 부산, 울산, 포항의 배후지로 대구가, 여수 광양의 배후지로 전주, 광주 등이 지금보다 더 발전했을 것이며, 일제 시대나 박정희 시대의 원래 계획대로 삼천포도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배후지로 진주가 발전했을 것임. 내륙 교통의 중심지로 대전은 지금보다 더 발전했을 것이고 평택항은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며 인천항의 시설도 일제 시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임. 호남 서부, 충북 동부나 강원도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함.  즉 전반적으로 남부권이 중부권을 압도했을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