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싸우면서 건설한다’ - 1968-70년대 초



1968년은 ’현대 한국의 원년‘으로 불리는 해로, 세계적으로는 68혁명으로 인한 자유주의와 저항주의 열풍이 불었지만

한국은 군사독재 체제가 공고해지고 김신조 사태로 인해 반공이 매우 강력해져 집단주의적 사회분위기가 강해지고 있었음.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한국의 수많은 현대의 문화적 성향이 이때 형성된 게 많은데


도시와 건설에서도 이 성향은 계속되어, 과밀화되고 많은 문제를 낳았던 서울시를 새롭게 개발 건설하는 것이 곧 싸움이자 반공으로 여겨지게 되었음. 

지하철을 건설하고, 이미 폭발 직전이던 사대문안 도심을 여의도와 강남으로 분리하는 등 전투적인 건설이 일어나던 시기임. 

이 ’전투‘를 겪고 난 후,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서울 공간이 탄생함









‘자기피로써 지킨 조국을 복구건설하는데 적극참여하자!’ - 1953~1959


전후 평양시 복구에서 사용된 주요 표어임. 전후 북한의 최대 사업은 전쟁 중 깡그리 사라져버린 평양시를 새로 복구하는 것이었음. 

이때 전 인민이 동원되었고, 평양은 기존 모습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공산주의 도시로 탄생하게 됨. 


이 복구작업은 북한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데, 나중에 이어지는 천리마운동 등 모든 대중동원운동의 토대가 되는 사업이기 때문임. 

이때 모든 인민이 평양시 복구에 동원되었고, 북한에서 이때 세대를 ‘전후의 혁명세대’라 부르며 매우 높게 우대해주는 경향이 강함. 모든 세대의 본보기로 삼으라고 하지. 







북한이나 남한이나, 20세기에는 대중을 선동하고 사상을 고취시키는 방식으로 도시건설을 진행한 경우가 매우 많음. 


단 남한은 그를 통해 정밀한 기술력과 선진화로 이를 탈피했고

북한은 지금까지도 대중선동을 주 수단으로 이용하며 약발이 떨어지고 나라가 쇠퇴하는 결과를 맞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