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시는 혁명의 수도인것만큼 당을 옹호하는 사람밖에는 그 누구도 살 권리가 없습니다. 평양시에는 오직 당의 유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고 당정책을 받들고 한마음한뜻으로 살며 일하는 사람들만이 살수 있습니다."


"평양시는 당중앙위원회 가까이에 있고 보고 듣는것이 많기때문에 평양시 간부들은 다 지방에 있는 간부들보다 모든면에서 훨씬 나아야 합니다“


"특히 평양시에서는 좋은 간부들을 많이 양성하여 지방에 내려보내야 합니다. 평양시에서 어릴 때부터 문명한 것을 보고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배운 사람들을 간부로 키워 지방에 내려보내야 그들이 일을 하여도 통이 크게 할수 있고 선전선동사업도 잘할수 있으며 문화혁명, 봉사혁명을 하여 뒤떨어진것을 개명시킬수 있습니다. ... 이번에 덕천군에 가 보고 평양시에서 키운 간부를 지방에 내려보내야 하겠다는것을 절실히 느끼였습니다." 


"평양시에서 지방에 간부로 내보낸다고 불평불만을 부리는 사람은 혁명을 위하여 사는것이 아니라 평양에서 저 혼자 잘먹고 잘살자는 사람입니다."


"나는 평양시가 생산과 건설에서뿐만 아니라 문화혁명에서도 전국의 모범이 되여야 한다는것을 여러 번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평양시 청소년학생들이 외모를 단정히 하고 다니도록 하여야 합니다. 평양시는 혁명의 수도이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곳이므로 학생들이 외모를 단정히 하지 않고 되는대로 하고 다니면 나라망신을 시킬수 있습니다." 


“아무리 철저한 반공분자라 하더라도 몇번만 평양에 와서 북반부의 벅찬 현실을 보게 되면 우리 제도가 좋다는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평양시를 잘 도와주어 전국의 모범이 되게 꾸려놓고 다른 도들에서 평양시의 모범을 본받아 도시경영사업과 공급사업을 개선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평양시를 잘 꾸리기 위한 사업을 전국적으로 지원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든 도들에서 지방산업공장들에서 생산하는 생활필수품의 일정한 몫을 평양시에 보내야 하겠습니다. 지방산업공장들에서 생산하는 상품을 평양시에 가져다팔면 평양시에 대한 지원으로 될뿐아니라 도의 지방공업수준을 평양시민들앞에서 평가받게 되므로 지방공업의 발전을 자극하는데도 좋을것입니다." 


"솔직히 말하여 정전직후에 우리에게는 인민군대와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인민들의 높은 혁명적열의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 평양시에서는 로동자, 사무원들뿐 아니라 가정부인들과 할머니들까지 떨쳐나와 마사진 벽돌을 줏고 흙을 나르며 파괴된 거리와 집터를 정리하는 일을 도와나섰습니다."




이러한 김일성의 언급은 평양시가 특수한 수도로 발돋움하게 만드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음. 

평양시에는 아무나 살 수 없었으며, 김일성이 언급한 ‘수도시민의 품위’에 어긋나는 사람은 ‘추방’되는 문화가 생겨났지. 


그리고 그의 사후 제정된 ‘평양시관리법’에 의해, 저 교시들이 실제 법으로 명문화되게 됨. 

평양시민은 품위 유지에 대한 의무가 생겼으며, 동시에 전국의 모든 도시는 수도에 가장 먼저 최상급의 생산품을 보내고 수도를 아름답게 가꾸는 데에 나서는 것이 의무화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