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보기: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캅카스의 산악국 조지아는 면적 69,700km²에 인구 400만 명으로 아래에 있는 두 나라보다는 인구밀도가 낮은 편. 북쪽으로는 슈하라 산(5193m)과 카즈베크 산(5033m)을 비롯해 만년설이 덮인 고봉이 즐비한 유럽 최고最高의 캅카스 산맥이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도 상대적으로 고도는 낮지만 2000-3000m급의 산들이 위치해 있는 사이로 므트크바리 강과 리오니 강 등의 하천들이 흘러 두 강 유역의 평지대에 많은 도시들이 분포해 있음.


북쪽 국경지대에 있는 압하지야(면적 8,660km² , 인구 24만 명)와 남오세티야(면적 3,900km², 인구 5만 명)는 사실상 독립 상태인데, 90년대 조지아가 독립과 함께 내전에 휩싸였다가 러시아의 중재로 전쟁이 끝나면서 소수민족 인구가 많았던 압하지야·남오세티야, 그리고 (소련 붕괴 이후 기독교 개종자가 늘어나면서 인구 구성이 역전되었지만) 무슬림 인구가 많았던 서남부의 아자리야는 실질적으로 독립 상태가 됨. 04년 아자리야는 다시 조지아 정부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으나,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는 08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여전히 독립 상태로 남아 있음.


지리적으로는 서아시아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많은 편이고(트빌리시는 495mm이나 쿠타이시는 1333mm, 바투미는 2435mm) 북캅카스나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의 삼림 면적이 10% 언저리인데 비해 조지아의 경우 국토 중 40% 가량이 삼림으로 덮여 있음. 아열대성 기후 덕에 세계 최고最古의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고, 조지아 요리 자체도 동구권에서는 상당히 메이저하다고. 더불어 위 지도에서 "조지아" 글자 바로 아래쪽에 찾아보면 보르조미라는 소도시가 있는데 요곳은 광천수로 유명한 곳.



앞서 언급한 대로 조지아의 인구는 서부의 리오니 강과 중동부의 므트크바리 강 주변의 평야를 따라 가늘고 길게 분포하는 편. 오른쪽 아래에 붉고 커다랗게(?) 표시된 수도 트빌리시의 인구가 110만 명이라 대략 전체 인구의 3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음.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인구밀도가 조지아보다 더 낮은데 이쪽은 상당부분 전쟁으로 인한 인구 감소의 영향.



조지아(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포함)의 인구 400만 중 다수를 차지하는 민족은 조지아인(81.7%)이고, 아제르바이잔인(5.8%)과 아르메니아인(5.2%), 압하스인(3.2%), 오세트인(1.6%), 그리고 러시아인(1.2%)이 뒤를 이음. 뒤의 세 민족은 대부분 미승인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에 거주하는고로 실질적으로 최대 소수민족은 남부 자바헤티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아르메니아인과 남동부 보르찰로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아제르바이잔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현재는 압하스인과 오세트인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데, 조지아인은 압하지야 남쪽의 구 UN 안전지대와 08년까진 조지아가 통제하고 있던 남오세티야 동쪽의 아할고리(오세티야 측 명칭은 레닌고르) 구에서 아직 다수를 차지하고 있음.



짤은 혼돈의 1993년 조지아 (빨간색: 조지아 정부, 파란색: 분리주의 세력, 녹색: 감사후르디아 전 대통령 지지 세력)


압하지야의 경우 2016년 인구조사 기준 압하스인 51% > 조지아인 19% > 아르메니아인 17% > 러시아인 9%라는 인구구성으로 압하스인이 다수민족이지만 절반 정도에 그치는 가운데 다른 소수민족들이 나머지를 채우고 있음. 원래 일대의 원주민은 압하스인이지만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 서부의 체르케스계 민족들에 대해 인종 청소를 자행하였고, 그 자리를 조지아인과 러시아인, 아르메니아인들이 대체하면서 1959년에는 조지아인 39% > 러시아인 21% > 아르메니아인 16% > 압하스인 15.1%로 압하스인들은 지역 내 소수 민족이 됨. 소련은 1921년 압하지야를 조지아 내의 공화국으로 편입시켰다가, 1931년에는 다시 자치공화국으로 격하시켰음.


1992년 압하지야 ㅡ 압하스인은 소수였으나 압하지야 최고소비에트에서는 가장 많았음 ㅡ 가 독립을 선언하자 곧바로 조지아군이 진격해 수도 수후미를 비롯해 압하지야의 대부분 지역을 접수했지만, 조지아가 혼란에 빠진 가운데 러시아 무장 세력의 지원을 받은 압하지야 반군이 93년에 다시 압하지야 전역을 장악하게 됨. 이후 08년 러시아와의 전쟁 당시 조지아가 마지막으로 장악하고 있던 코도리 계곡을 압하지야가 점령하면서 조지아는 압하지야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 92년 조지아군이 수후미에 입성했을 때 약탈과 학살이 자행되었는데, 이후 압하지야 반군의 반격 과정에서 최대 3만으로 추산되는 조지아인이 학살당했고 20만 명 이상의 조지아인이 추방되면서 압하지야의 인구는 89년(52만 명)의 절반 이하로 감소했고, 러시아인과 아르메니아인들 역시 전쟁을 피해 다수가 압하지야를 떠나면서 지금과 같은 인구 구성이 이루어짐.


남오세티야는 맨 위의 지도를 보면 북오세티야와는 캅카스 산맥으로 단절되어 있는데(80년대 터널 개통으로 비로소 연결됨) 이 지역은 17-18세기 카바르다이인을 피해 이주해 온 오세트 농민들이 조지아의 카르틀리 왕국 영토 내로 정착하면서 오세트인이 많이 거주하게 되었다고. 이 일대는 소련 시기인 1922년 남오세티야 자치주가 설치되었는데 압하지야와 달리 89년에도 오세트인이 인구 중 66%를 차지해 다수를 점하고 있었음. 남오세티야 역시 1990년 독립을 선언하면서 조지아와의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러시아의 압력으로 1992년 휴전이 성사되고 남오세티야 역시 실질적 독립 상태가 됨.


2004년 조지아의 대통령이 된 사카슈빌리는 국제법상으로는 자국 영토인 조지아 내 공화국들을 수복하겠다고 공약했고, 첫 번째 대상은 서남부에 위치한 아자리야였음. 아자리야는 91년 정권을 잡은 아바시제 대통령의 독재 하에 있었는데, 사카슈빌리는 아자리야에 무장해제 및 조지아 헌법 준수를 요구했고 아바시제는 이에 대항하려 했으나 정작 현지 주민들은 아바시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킴. 결국 아바시제는 사임하고 조지아군이 진주하면서 아자리야를 수복하게 됨. 이어서 조지아는 08년 8월 7일 남오세티야를 무력으로 침공했으나 이번에는 러시아가 즉각 개입하였고, 불과 4일 만에 조지아 서부와 동부를 잇는 요충지인 고리가 함락당하면서 전쟁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조지아의 패배로 종결. 남오세티야 역시 전쟁으로 인해 주민 상당수가 지역을 떠나면서 한때 10만 명에 가까웠던 인구가 5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오세트인의 비중은 89%로 높아지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