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한국의 진보진영 페미니스트들과 대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가고, 또 실제로 대화를 하면 내가 모르고 있던 것이나, 혹은 인지 못했던 편견을 걸러 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실망과 의심만 더 늘어났을 뿐입니다. 페미들의 주장이 어딘가 익숙하고 불편한 관념들과 너무 닮았거든요. 


저는 주로 서구 주류 페미니즘에 대해 배운 뒤 대화에 임했는데, 한국의 페미니즘과 서구의 페미니즘 사이의 괴리를 느꼈습니다. 


여성의 순수성에 대한 집착, 그리고 기존 사회에서 남성이 향유했던 가부장적 지위들을 성별만 바꾼 채 여성이 차지하길 바라는 그 모습에서 


이것은 여성 해방인가? 아니면 '성별을 반전시킨 가부장 사회'를 바라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가 살펴본 서구 페미니즘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순수성에 대한 집착을 끊어내고 경계를 넘어서자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급진적으로 트랜스휴머니즘과 트랜스젠더리즘을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미래에 육신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성별 구분이 무의미해지지 않겠냐는 논리죠. 


한국의 페미들은 반대로 '여성의 순수성'을 지키고, 남성에게 순수한 남성성을 강요하는 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가부장적인 남성들이 남성의 순수성을 지키고 강요하던 것 처럼 말이죠. 


여기서 먼저 알고 가야할 것은, 한국 페미들이 말하는 여성의 순수성과 가부장주의 남성들이 말하는 여성의 순수성은 다릅니다. 


한국 페미들이 말하는 여성의 순수성은 남성보다 더욱 존귀하고 능동적인 존재로서의 순수성


가부장주의 남성들이 말하는 여성의 순수성은 순종, 처녀성, 절도있는 모습을 지닌 수동적이고 깨끗한 존재로서의 순수성입니다.


그리고 그 둘이 남성에게 요구하는 순수한 남성성은 공통점을 지닙니다. 


무거운 책임을 지고, 생존을 위해 강인하고 능동적이어야하며, 동시에 자신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순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개새끼들


기존 가부장제나, 한국의 페미니즘이나 성별의 순수성을 강요하고 정체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이 작자들은 20세기 세계관에 갇혀서, 사회적 성 역할을 강제하는 주도권(헤게모니)를 두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순수성을 지니고 상대가 종속되길 바라기에, 똑같은 방식의 억압, 똑같은 방식의 전체주의, 똑같은 방식의 폭력을 자행합니다. 


한국 페미니즘이 정말로 성 역할로부터 해방을 원한다면, 어떤 여성이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기른다고 해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해주고


반대로 한국의 남성주의가 남성의 인권을 바란다면, 어떤 남성이 공격성과 호승심을 포기하고 수동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삶에 만족한다고 해도 개인의 선택이라고 존중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페미니즘은 가모장을, 한국의 가부장제는 가부장을 강요합니다. 


이런 더러운 풍경에서, 정말로 성 해방을 추구하는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