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너무 건강하셨다.


90을 바라보시는 나이에도 혼자서 시골에서 양파 고구마 감자 마늘 토마토 키우는 밭 일 하시면서

가만히 있는 걸 못 참으시고 불과 두 달전에도 노인정 체육 대회 참가한다고 하셨고 

노화로 인한 관절염을 제외하면 여태 앓아 누우신 적도 없으셨다.


정말 무병장수 하실 거라 생각하셨던 할머니가 12월 4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

12월 5일 오전 9시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OOO씨 아들 맞으십니까? 밭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 되셨는데 휴대전화 번호 저장되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하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12월 3일 오후 8시에도 전화를 드렸었다. 

이제 겨울이고 날씨도 추워지니 밭 일 무리하게 하시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시라고

걱정해줘서 고맙다며 전화를 끊으셨었는데 

그 다음날 밭 일을 가셨다가 갑자기 심정지 상태가 되시고 

주변에 아무도 없이 그대로 사망하신 채 한 겨울 새벽 추위를 맞아가며 

아침에 인근 주민에의해 발견 되고 신고가 들어간 것이었다.


20대 초반에 결혼 하시고 30대에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30대 이른 나이에 다섯 자녀를 어떻게든 먹여 살리겠다며 아득바득 악착 같이 살아오셨고

그렇게 살아오신 할머니는 그 성격을 그대로 가진 채 100원 하나도 아까워 하며 아낄 건 아끼고 낭비를 싫어 하셨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할머니의 성격상 집에서 잔반을 남기는 것도 금지였고 혹여 잔반이 남으면 다음 날 모든 걸 섞어서 음식물 쓰레기 죽같은 비쥬얼의 음식이 나오면 나는 또 한끼를 굶고 야단 맞기를 반복했었다


그렇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할머니는 시골에 가진 땅에서 농사를 안 하면 세금이 더 나온다는 이유로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쉬지않고 매년 밭 일을 시작하셨다.

초기에 보내주신 작물은 씨알도 작고 여기저기 썩어 들어가서 어머니는 먹지 못해 전부 버렸어도 전화로는 감사히 잘 먹겠다는 감사인사를 전해드리곤 했다.

몇 해가 지나고부터는 제법 먹을만한 것들이 올라왔고 실제로도 찌든, 굽든 요리를 해먹었다.

14년이 흐른 올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다는 말이 무엇인지 살면서 처음으로 실감했다

관용적 표현으로 익히 들어온 말임에도 할머니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할머니의 성격 때문에 같이 살았던 시절엔 안좋은 기억밖에 없음에도 

거기에 하나의 악의도 없고 올곧게 살아오신 할머니의 성격이기 때문에 악감정은 없었다.

이른 나이에 홀몸이 되어 다섯 자녀를 모두 키우시다가 노년에도 세금이 아깝다며 홀몸으로 농사일을 하시다가

이 겨울 갑작스런 심정지를 맞아 주변에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한 겨울 새벽 서리를 맞으며 돌아가셨을 상황을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언제나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야한다,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져라 하시면서

거세고 강인하셨던 할머니도 

3년쯤 전부터는 전화를 드리면 허허실실 웃으며 

다 필요 없고 건강이 우선이다 건강이 최고다 돈 잘 벌고 뭐 하는 것보다 건강이 먼저라며 부드러운 말투로 바뀌셨었는데

그렇게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주변 사람의 죽음을 맞이한 건 처음이 아니지만 외할아버지는 원래도 몸이 안 좋으셨고 병원에 입원한 채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된 채로 임종 하셨다. 그때도 지금처럼 슬프긴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말 어떤 징조도 없이 들이닥친 할머니의 부고 소식은 너무나도 충격이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의 사망은 절차적으로 타살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검안이 진행되어야 한다하여 시신을 옮기지 못하고 있다. 자연사로 확인이 될 경우 오늘 서울로 시신을 옮기고 장례 절차를 시작한다.


무슨 얘기를 하고싶어서 이런 글을 썼는지 나도 모르겠다


다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맞이하게 된 할머니의 죽음이 너무 슬프고 충격이 크다. 

어디엔가라도 털어놓고싶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