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운터사이드 단편


자신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뜹니다. 주어진 운명에 굴하지 않겠다고 그리 각오했을 겁니다. 하지만 깨우친 힘은 무력해졌고 도리어 제정신을 갉아먹는 지금. 그녀는 말 그대로 그 연령대의 처녀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검은 손아귀———

 

저 검고, 붉고, 끝을 모를 정도로 탐욕스럽고, 또한 아름다울 정도로 공허한 갈퀴에 굴복했던 것입니다. 

분함에 눈물을 흘리면서

눈을 감고, 모든 것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거겠죠. 

 

하지만, 눈을 뜹니다. 그렇지요. 그래야죠. 



































“———당신은——!”



처녀의 말에 웃어 보인다. 망가진 팔에 힘을 주고서.

희열에 차서, 이미 부러져 마디마디가 조각이 되어버린 손가락에 의지를 넣는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힘겨루기는커녕 잠시 막아서지도 못한다.

쏟아지는 우레를 팔로 막는 꼴이다. 빠드득, 지금 막 팔꿈치 관절이 전부 갈려 나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무언가를 들지도, 책장을 넘기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아무래도 좋다.




“———몰라, 원 해. 그 녀를원 해. 날깨 워 주는——

지 식의——그 녀만 이우 리를깨 워———왜방 해해?”




괴물의 물음. 언어가 아니라 마치 그에 맞는

짐승의 울음을

덕지덕지, 기워넣은 누더기.


남자는 쏟아지는 팔꿈치를 힘겹게 유지하며 입을 연다.

추론에 따른 답을 내놓는다. 이 결과에 대한 원인을 설명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능숙하게.


바들바들 떨면서도——




“저는——, 궁금합니다. 으으윽, 이 다음이요. 

 그대는 궁금하지 않다고요? 아아,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이 너무나 궁금하다.

그 호기심이 만약 호수라면 지금 당장 알몸으로 뛰어들고 싶다.

서슬퍼른 나이프로 목을 찌르라고 해도 얼마든지. 


이 모든 것이——


순간적인 충동임을 동생을 떨어트렸을 때 깨달았다.

끝없는 허기임을 수많은 지식을 쌓으며 깨우쳤다.


익힌 사회성이, 배운 윤리가, 습득한 도덕성이

아닐 거라고 몇 번이나 부정했다.

만약 그저 부정으로 그쳤다면, 그건 그거대로 좋았을 것이다.

어설픈 자기합리화라도 거기서 멈췄다면, 심연까지 들여다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성실했다.



부정하기 위해 전제를 찾았다.

부정하기 위해 과정을 쌓았다.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이르는 답을 찾는 오류를 수없이

저지르며 다다른 사실은——-


이만큼이나 부정해도 안 된다면, 이 명제는 참이다.



“교수——- 어째서——-”



어째서냐니


자신은 미쳐있다.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라는 걸 버리지 못하고, 안정을 바라지 못하고 여기에 있다. 


호기심을 메울 수만 있다면 수천, 아니 설령 인류 전체라해도 연옥의 구덩이에 밀어 넣고서 과정을 찬찬히 뜯어볼 것이다. 

그런 남자이기에——— 웃었다.



“으으으윽——후, 후후후후, 흐하하하하하———“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맞선 팔이 슬라이스 치즈처럼 나풀거리고 있다.

끈적하게, 무력하게 천천히 무너진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다 무의미하게 보일 정도로.


손에 그치지 않고, 팔, 팔뚝, 아니 오른팔 전체가 그대로 뜯겨 나가고 있다.



“말한 적——있었을겁니다, 교양시간이었나요?

아스파탐——, 학자들의 발견에 대해서——”



그 쌩뚱맞은 말에, 처녀는 떠올린다.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간 남자의 말을 떠올린다.

강단에 서서, 학생에게 건넨 이야기. 강의 도중 잠시 옆길로 샌 일화.


‘여러분이 열광하는 제로 음료에 들어간 아스파탐에 대해 아십니까?

 그건 호기심이 만든 우연의 산물이라고들 하죠.

 위궤양 치료 약을 개발 중이던 과학자가,

 우연히 손에 묻은 물질을 핥아서 탄생한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필연임을 말했었던 개인의 지론.

학생은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을 꺼낼 때의 남자를, 미치광이를, 광신도를, 

학자를, 교수를, 선생을,

———그저 좋아하는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는 순수한 소년을.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Curiosity killed the cat.)

 아뇨, 흐흐, 흐흐흐흐흐흐흐———”


“———but satisfaction brought it back.” (하지만, 만족감에 고양이는 되살아난다)



궁금했다. 그저 궁금했다. 그렇기에 기반이 되는 지식을 쌓고, 뼈대가 되는 이론을 재현해 보고, 도출되는 답을 디딤돌 삼아, 그 위로. 그다음은 그 위로. 다시 또 다시. 

설령 실패해 아래로 처박히든, 결국 전제가 틀렸음을 깨닫고 처음으로 되돌아가더라도 상관없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것이, 진리였다면 좋다. 아니어도 좋다. 

실패는 퇴적되어 자신 혹은, 또 다른 이들의 등불이 된다. 

그 등불의 구조가, 원리가, 현상이, 결과가, 사상이, 파생이, 활용이, 의의가, 

미치도록 궁금해서———


알고 싶었을 뿐이다.



“———자아, 가라. 걸어가라.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지식의 원천에 축복받았음에도———

 구태여 손에 묻은 물질을 핥아 보겠다면 좋다! 흐흐흐하하하하, 흐흐흐. 좋고말고!!!”




뒤에 선 은발의 소녀가 불쾌했다.

그녀의 혈육이 쌓아 온 숭배에도 얻지 못한 흥미를, 축복을 그 작은 몸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만 남겨둔 그녀가 몹시 경멸스러웠다.


앞에 앉은 학생이 흥미로웠다.

언제든 등 뒤에서 진리가 무수한 손을 건네지만, 스스로 걸어가겠다 하는 그 은빛 눈동자가

한없이 오만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너거 스르지마 방해하 지마———불 쾌해우 리를막 아서———

 뭉갠다———”




자신을 제치고서 달려 나가는 제자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기대되어 미칠 것 같다.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그럴 수가 없지요. 


그럴 리가 없지요.

왜냐하면———



“가라. 가———

 그대야말로 내 최대의 연구이자, 최고의 원천. 아아, 그렇군요. 아, 그래서 그랬어.

 흐, 흐흐흐흐흐——— 이러니———”




그 괴물도, 무진장의 지식조차도

그녀에게 끌린 것인가.




“교수———! 난, 아니——— 저는!”




등 뒤의 말에 반응할 새도 없다. 괴물의 말처럼 뭉개진다. 우두둑하는 소리조차 없다. 그냥 찰흙처럼, 혹은 부드러운 반죽처럼 뭉개진다. 그렇게나 많은 걸 쥐고 있었건만, 수없이 많은 이들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은 이기의 화신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업보라면 업보였다. 무엇하나 남길새 없이 곤죽이 되었다.


그가 자신의 이기로 죽였던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는 절망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저 희열에 가득 차 있다. 

그저 궁금하다.

소녀의 내일이.

학생의 미래가.

제자, 아니 동료의 선택이.


분명 미치고 팔짝 뛸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신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강의 도중에 방방 뛸 정도로.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갖고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몇 번이고 탭댄스를 췄으리라.

어색한 발놀림이지만, 강의실 전체가 무대인 것처럼 너무 행복해서, 즐거워서———



“———”



벌어진 일들의 당황을 거두고, 그녀가 입을 연다. 은발 아래 떨리던 눈동자는 침착을 되찾는다.

못다 한 말이 있다. 차갑고, 차갑게, 이성적으로 그녀가 입을 연다.



“———아뇨. 저는, 당신의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당신과는 달라요. 광인이, 광신도가 되기 싫어 도망치는게 아니라, 인간으로 살기 위해———

 제가 선택한 겁니다.”




고기가 된 그에게 일말의 동정도 없이.

그 말만을 남기고서 도망친다.

눈앞의 괴물이 신나는 찰흙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을 뒤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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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가 레지나 구해줄 때 진짜 소름 돋음.

레알진또배기 호기심천국인데

레지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그냥 궁금해서' 도와준 게 씹소름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