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운터사이드 단편











호오, 하고 노인과 같은 추임새. 거센 빗줄기를 맞아, 계속해서 흔들리는 머위 잎의 떨림. 그게 입가에서 목청까지 닿고나서야 그녀는 미소 지었다.





그야, 너희들이 200년이 지나도록 젊음을 유지하는 인간 마녀를 추하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속은 문드러진 할망구가, 가슴깨를 드러내고서 요부의 복장으로 어딜 감히? 라고 한 것은 너희지 않고?”



그렇게, 그녀는 테이블 앞으로 걸어 온다. 한 손에는 찻 잔. 뒤에서 춤을 추는 진홍색의 불꽃. 타닥, 하고 난로가 울자 방 안에는 건조함이 찾아든다.




“⋯그렇습니다.”




눈 앞의 남자가, 테이블에 앉은채로 고개를 숙이자 고양이가 운다. 코를 골듯이, 입을 닫고서 그녀가 앓다가 찻잔을 내려 놓는다. 


기이한 일이다.


주전자는 없다. 잔 안은 비어있다. 아니, 찻잎은 들어있다. 하지만 중요한 물이 없다. 마치,  그리 고급품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다기였다. 받침을 따라 그려진 구불구불한 문양은 그게 한 때 어떠한 그림이었겠지라고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자, 하고 그녀가 테이블의 남자에게로 찻잔을 밀자 소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에 드륵드륵. 이리저리 걸리며, 넘어간다.


그런 뒤에 웃기게도, 뿅하고.




“⋯마법 입니까? 이런데에 사용하시다니.”


“고럼, 썩어도 지식의 대마녀라 너네가 불렀지 않니? 비록 너희가 현자의 자리에는 못 앉게 했다만서도⋯”



테이블 위에 튀어나온 주전자가 쪼로로록, 하고 찻잔 위로 기운다. 50c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물. 찻잔 안을 때리다 튀어나갈법도 한데 그러는 일없이, 고이 차오른다. 아직 찻 잔안 의 잎을 녹이지 못했는데, 뒤에서 춤추는 불빛을 따라 붉게 춤을 추고 있다. 마치, 태어나서 처음으로 축제라는 것을 접한 여자아이. 겨울께 쯤의 새빨간 볼 같다고 남자가 생각을 흘리는 순간. 그녀가 그의 앞에 앉는다.



“이런 일쯤이야. 호호, 어떠니? 너도 홀린게야?”



흔히들 마녀라고 하면 알기 쉽듯이, 마을 처녀들이나 아이들을 홀리는 수법이냐는 듯 그녀는 웃는다.



“아뇨, 그⋯”



남자는 말을 삼킨다. 그도 그럴 것이, 주전자를 띄워 물을 따른다. 간단해보이지만, 그 간단한 일을 구태여 마나를 이용해서, 게다가 찻잔 안의 물이 튀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라고 생각한다. 번개신이 벼린 우레를 부르는 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 같은 비합리성. 


왕도 아카데미에서, 아니, 굳이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마나를 선천적으로 잘 다룰 수 있는 마족들이라도 이 광경을 보면 이 낭비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흐음, 그래서? 너는 왜 나를 찾았을꼬? 창부의 꼬라지라고 잔뜩 비난을 하셨던 아카데미 사람이?”


“⋯”



그녀는 일렁이고 있다. 뒤에서 타닥타닥, 어딘가 그리운 향. 온도를 높이기보다는 그저 공기를 데우고 있을 뿐인 난로가 춤을 출 때마다 아마도, 샛노랄 터인 머리칼도 같이. 붉게, 혹은 짙게, 아니면 분홍으로.



“⋯아이고”



앓는 소리를 내뱉는다. 노파의 목소리처럼 떨리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눈부실 정도로 몸에 선이 없다. 외곽선만이 있고, 안은 접힘이 없었다. 그 모습, 날렵한 턱선. 마치, 제비의 꼬리처럼 깔끔하게 빠진 눈꼬리. 은은하게 띈 미소는 저 멀리, 동쪽에서 가져 온 종이에 그려진 글 같다. 처음에는 두텁게, 그러다가 번뜩이며 사라진다. 




“⋯그렇지. 시덥잖으니 내가 읊으마.”



그녀는 웃는다. 웃으며, 테이블 위로 살짝 기운다. 남자가 그녀의 움직임에 허리가 서자, 그녀는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어느새 담배를 물고 있던 것이다. 기다란 파이프. 여자의 손목부터 팔꿈치 정도 될까, 금속에 입을 가져다 댄다.


이것도 마법. 남자가 눈가를 찌푸린다.



“내겐 지식만이 있고, 지혜가 없으니 그러지. 자네.”



“⋯네?”




쯧, 하고 혀를 찬다. 입 안에서 찬 혀. 동시에 반짝인다. 남자가 눈을 감을새도 없이, 파이프의 끝에는 불이 타오른다. 이것도 마법.


남자는 입을 닫은채로, 숨을 들이쉬고서 침을 삼킨다.





“이래뵈도 대마녀⋯라, 고 부르지 않았니? 그 왜, 작은 아이들도 그러고⋯ 그래. 음, 그렇지. 이래저래 100년은 넘었지 아마?”


“아직 정정하십니다.”



남자의 말은 옳다. 앞에 앉아있는 여자의 외형은, 여성이었다. 많이 쳐서 30. 아무리봐도 중년이라고 볼 수 없다. 이제 막 꽃 봉오리가 펴서, 머리를 튼지 2년. 그 정도의 젊음. 하지만 절대 되돌아갈 수 없다. 소녀로는 보이지 않는다. 원숙해보인다고도 할 수 없다. 남자가 봐왔던 여성이라고 하는 것의 기품.


그것이 없다.

지금도, 연기를 뿜어내며 힐끗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정정?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긴 놈일세. 이것 참. 정작 이 외형을 가지고 너희들은 나를 현자에는 못 미친다 하지 않았니?”

“그건, 어디까지나⋯”

“그래, 속은 문드러졌다. 축 쳐진 늙은 개의 눈덩이 마냥 늘어졌다 이 놈들아. 하하”



남자는 두 눈을 감았다가 뜬다. 찰나였다. 찡그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혜가 부족하다니요. 대마녀 메이님. 당신이 지혜가 부족할리가 없습니다.”

“오? 그럼?”

“지금 보여주고 계신 마법들, 간단해보이지만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 아무리 마법의 극치에 달했다고 하더라도 원소의 근원인 마나에서 물질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래서⋯”



대마녀 메이의 눈이 반짝인다.




“마나끼리 위치를 뒤바꿨지.”

“네, 아까 보여주신 주전자.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허공에 가득 찬 마나를 달군 주전자가 있던 곳과 뒤바꾸신 것이죠.”

“자네, 눈이 좋네 그래.”



자신의 입가에 눈을 꽃은채로 깊게 들이마시며 메이는 허리를 세운다. 



“기울게 한 것도, 마나의 위치 변환. 물이 하나도 튀지 않은 것도⋯”




남자는 찻잔을 들어 올린다. 남자의 말대로, 받침에도, 테이블 위에서 튄 물방울은 없다. 그 방울방울. 하나하나, 전부 메이가 옮겼으니까.

이것이 대마녀. 숨 쉬듯이 마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있다. 



“이게 지혜가 아니라면 뭐란 말입니까? 섬세한 조작은 차치하더라도 응용하는 방식이⋯”



“아니지. 틀리지 않니.”



“네?”








대마녀 메이는 웃는다. 그녀의 웃음에 난로가 춤을 춘다. 잘 보이지 않는다. 역광이 남자를 덮어서, 실루엣만이 번진다. 어린아이가 서툴게 웃는 호박을 만들려, 잭오 랜턴을 만들려 파 놓은 꼴. 그런 우둘투둘, 엉망진창의 웃음.







“나는 지혜라고 했지 않니. 자네가 말한 건 지식이고.”

“지식이 있어도, 이렇게⋯”

“틀리지.”




대마녀 메이는 단언한다. 그렇게 남자의 말을 끊는다. 남자는 다시 한 번 눈을 감았다가 뜬다. 찻잔은 여전히 입가로도, 받침 위로도 가지 못한 채 떨고 있다.





“자네,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의 이야기를 알고 있니?”


“⋯”



무슨 이야기를, 라고 하다가 머리에 닿는다. 그건 남자도 알고 있다. 왕도에 들어가기 위해 배운 적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먼 이야기. 어쩌면 왕도가 아닐 수도 있고, 저 멀리 동쪽 나라 이야기일 수도 있는, 그런 옛 이야기.



“지혜로운 왕 앞에 누가 진짜 아이의 어미인지를 가려달라고 했던 그 이야기 말입니까?”



메이는 대답하지 않고, 탁탁 파이프를 털어낸다.

남자는 그걸 대답으로 받고, 침을 삼킨다.



“한 아이를 두고, 두 어미가 다투었다. 누가 진짜 어미인지. 그리하여 두 어미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에게 여쭈었다지 않니.”

“⋯”



남자는 알고 있다. 가증스러운 위선자와 진짜 어머니 사이의 일을 알고 있다. 



“네, 현명한 왕은 그러면 공평하게 아이를 둘로 갈라 서로에게 나눠주라 했었고⋯”

“한 여자가 그러지 말아달라고 애원했지.”

“예, 그 사람이 진짜 어머니이기 때문에 아이가 다치는 걸 바라지 않아서⋯”




춉, 하고 파이프가 메이의 입에서 떨어진다. 파르르 떨리는 불꽃 같은 입술. 선홍빛이 춤을 춘다. 




“그것이 지혜라는 것이지 않니.”

“그렇죠. 현명한 왕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탁, 하고 테이블 위로 파이프의 끝이 떨어진다.

남자의 벌려진 입가로 파이프 끝의 재가 튀어들어갈 일은 없다. 이것도 마법. 남자는 두 눈을 꼭 감고, 이를 악문 뒤에 침을 삼키는 것을 감춘다.




“그 시절에도 궁정에 마법사는 있었을테지?”

“그렇겠죠. 옛 이야기에 마법사는 빠질래야 빠질 수 없고⋯”

“그래, 굳이  친자를 확인할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여도 마법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었을게야. 마나라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파장과 형태, 색은 부모를 닮는 법이니까. 뭣하면, 주변 사람을 불러 모아 대질하면 되지 않니.”



메이는 남자를 바라본다. 일렁인다. 춤을 춘다. 그러고보니, 파이프 담배를 피웠는데 천장에는 연기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나 짧은 시간. 몇 번이고 피웠을텐데. 남자는 이것도 마법인가 하고 이를 악문다.



“지혜로운 왕은 아이에 대한 애정으로 진짜 어미를 정한 것이지. 그 진위여부가 아니라.”

“⋯”


남자의 호흡이 가빠진다.


“잠깐, 메이님. 진실로 사랑하는 어미이기에 그리한 것입니다. 아이를 가로채기 위한 가짜니까 아이를 둘로 갈라서라도 그 상황을 모면하면 되니까. 그렇게 빠져나가려고⋯”

“그것은 누가 진짜 어미인지에 대한 대답이 아니지않니.”

“자신이 어미가 아니게 될지라도,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릎을 쥐어 뜯으며 행복을 비는 것이 어미가 아니라면 뭐가 어미입니까?”





깊게, 숨이 들이쉬어지고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다. 바람이 테이블을 때리고 나서야 남자는 자신이 어느샌가 찻잔을 놓지도 않았는데 받침 위에 찻잔이 있음을 깨닫는다.




흥분했다.

이러면 안 된다. 남자는 가빠진 숨을 몇 번이고 고르며, 메이를 바라본다.



뒷 편의 난로에게 댄스를 초청 받은 메이는 여전히 왈츠를 추고 있다. 웃기는 일이다. 대마녀. 궁정 마법사도 아닌 요부가 우아하게 춤을 추다니.




“그게 지혜이지 않니. 설령, 진실 된 어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로 그 아이를 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이를 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한 여자라고 왕은 생각한거지.”

“⋯지혜라구요?”

“지식만으로는 확연히 알 수 있지.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그 아이의 진짜 어미인지. 뭣하면 머리 속을 마나로 읽어 낳을 때의 기억을 알아볼 수도 있고. 왜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겠니?”


남자는 생각 이전에 말이 튀어나온다. 이건 진심이다.


“그건 당연합니다. 그런 사소한 일. 그렇게까지 하면 마법사들을 불러야하고⋯ 무엇보다, 간편하게 가릴 수 있다면⋯”




메이는 웃는다.

그 미소는 인자한 할머니 같기도 하고, 침대 밑의 괴물. 그래, 괴물의 웃음 같기도 하다.





“보렴. 지식은 모든 것을 확연히 나누지 않니. 우리가 배운 것, 확인할 수 있는 방법. 그렇게 하면⋯”



메이가 허공에 손을 올린 뒤, 부드럽게 손날로 벤다. 허공을 이제 막 부풀어 오른 카스테라를 베듯이.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쉬이 알게 되지. 애초에 그려려고 우리는 처음부터 익혀왔잖니. 이것은 먹을 수 있는 버섯, 그 외는 독이 있는 것.”


“그렇게, 우리는 앞 선 누군가가 죽어서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쌓아올리지 않니.”





“⋯그러면 지혜는 다르다고 하시는 겁니까?”





남자의 말에 메이는 입술을 누그러뜨린다. 테이블 위로 오르는 손. 하지만, 파이프는 그 곳에 없다.

다시 한 번 입 안에서 혀가 찬다.




“지식의 완성은 위험 가능성을 잘라내는 것에 있지. 무엇이 틀린지, 무엇이 다른지. 왜 그런지. 그렇게 나누고, 나눠서, 하나의 술식. 틀릴 수도 있을지언정, 절대 틀리지 않도록 만든 우리의 믿음이지.”


“지혜는⋯”


“틀리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방향. 설령, 틀렸어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쪽으로 만물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고.”

“환혹하려고 말을 뒤틀지 마십시오. 메이님.”



환혹이라고, 남자는 말했다.

메이 뒤에서 춤을 추던 불빛이 멈춘다. 장작이 타닥, 타닥. 하고 울더니 멎는다. 벌써 겉은 다 탔다.




“그럼 그 이야기 속의 왕은 자기가 편하도록, 진짜 어미가 누군지 알 방법이 있는데도 방치했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순 억지⋯”



“아니지. 틀리지 않니.”




그렇게, 메이가 또 말을 막는다.

남자는 찡그리며, 침을 삼킨다.




“다 아는데도, 설령 틀렸다 할지라도, 누가 더 아이를 사랑하는지를 본 것이지 않니. 아이를 가르지 말아달라고, 애원한 여자가 설령 진짜 어미가 아닐지라도.”



“그런 사람이라면, 응당 이 아이를 맡을만한 사람이라고. 그리 생각하여, 지혜로써 답을 낸 것이지.”




“⋯”




남자는 입을 다문다. 다시 한 번 두 눈을 꼭 감는다.

눈 앞의 여자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다. 아, 이래서인가. 이래서 대마녀라고 불리는 것인가.


물음에 대한 답을 얼렁뚱땅 넘기려다가, 말싸움으로 몰고 간다. 이래서야, 현자가 될래야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럼, 그 지혜로움을 당신은 갖추지 못 했다고 하시는 겁니까?”

“갖추었다면 진작에⋯현자든 뭐든 되었겠지 않니?”





메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이상한 일이다. 남자는 생각한다. 드르륵, 하고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없다. 그러고보니 이상하다. 여태껏 메이라는 여자는 어디에 앉았던 것이지? 아까의 마나변환으로 의자를 옮긴 것인가? 아니다. 그럴만한 낌새라면 남자는 눈치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식만 있지, 지혜라곤 없다고 하지 않았니.”




세상이, 돈다. 이상하다. 남자의 세상이 돈다. 귓가의 목소리. 달콤한 목소리. 마나의 울음. 고양이가 울더니, 늑대가 받는다.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어금니가 빠진다. 그건 정말 이상하게도, 쑤욱 빠져서, 어라 하고 올려다보니 눈알이 흐른다. 뭐야, 하고 테이블 위가 어느새 기울어진다. 점점 기운다. 하지만, 찻잔 위의 물은 넘치지 않고. 어라, 하고 남자는 도대체 언제, 찻잔을 받침에 내려 놓았는지를 의심한다. 





“현자에 입후보 한 것이 떨어지자마자, 찾아 온 아카데미의 추종자? 날던 새가 고꾸라지겠구나. 용사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뭐---, 무슨 짓을---”


“내겐 현자가 될 지혜는 없다고 했지 않니. 그러니,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채웠지.”



남자는 눈 앞의 형상을 드디어, 제대로 바라본다. 마력시, 왜 여태껏 보려고 하지 않았지? 왜 저걸 메이라고 생각했지? 왜 처음에, 이 곳에 다다랐을 때.


저 벽난로가.

그냥 벽난로라고만 생각 했지?


왜 중간부터 타닥, 타닥 하고 타지 않았지?



왜?




“너희 가증스러운 마족 놈들은 마나를 이용하는 것에 묘한 자존심이 있더구나. 바보인 것을. 지식은 지식인채로 운용하는 것이 그야 편하지 않니.”



아, 이 마녀는 처음부터.




남자는 깨닫는다.

이 공간, 이 상황, 이 자체.




아카데미 사람인 것으로 위장해서, 마녀를 부추겨서, 용사 일행과 아카데미의 반목을 일으키려고 한 것 자체. 그리고 현자 대행으로 용사와 함께 떠난 그 모든 것.


지식과 지혜.




“이 늙고, 요사스러운 할망구에게도 비원은 있지. 암, 당연히 있고 말고. 그걸 위해 100년, 아니 200년이었니? 버텼지 않니?”




누구한테 말 하는거야.

이미, 테이블은 엎어졌다. 근데 찻잔 위의 물은 떨어지지 않는다. 기울던 세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혔다. 근데 남자의 몸은, 인식은, 제어는 돌아오지 않는다. 처음 그 천장에 달라 붙은채로, 돌아오지 않아.



근데, 계속 기운다. 이제 기울면, 어디로 가지?







“홋, 홋홋, 홋. 너희들이 언제 나를 노릴까. 언제쯤은 노리겠지. 암, 그러겠지. 차순위라고 해도, 결국 후방에서 문제를 일으키는게 편하니까? 나도 그리 생각했지 않니.”




“이---- 이, 가증스러운----! 인족 버러지들이---!”





“지혜가 지식보다 뛰어날지 모르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지혜를 무자비하게 짓밟지   못하는 것은 아니란다. 얘야.”




남자는 손을 뻗는다. 동시에 목 안쪽에 기름이 가득찬다. 눈 앞의, 일렁임. 마녀의 분체. 환상에게 손을 뻗는다. 감히, 감히.



“마나의 일족인---! 우리 마족 앞에서 이런, 마나로 이런 장난질을---! 죽여 버리겠어, 두 눈을 도려내서, 그 노린내나는 겨드랑이에다가 박아서---!”



하지만, 닿질 않는다.

흡사, 천체 마법사들의 모형이다. 천체를 모방한 그 기구. 손을 뻗으면 닿는다. 하지만, 결국 모방한 것. 결코 닿지 않는다. 밤 하늘에는 닿지 않는다. 돈다. 세계가 돈다. 마나 째로 돈다.


그리고 남자는 깨닫는다.




마나의 전환.

마나끼리의 교체.



아, 하고.

머리 속에 이 추하고, 늙고, 기분 나쁜, 미친, 배덕자, 마나를 더럽히는 자가. 




무엇과 무얼 바꾼지.



깨닫고 만다.








세계는 도는데. 집 안이 계속해서 느리게, 오븐 안의 번처럼. 부풀어 오르는데, 벽난로만이 타오른다.

일렁인다. 그만이 이 세상에서 춤과 색을 가질 수 있다. 그 춤만이 이 공간에서 색을 입힐 수 있다.






그래.

대마녀는, 여기에는 없다.





지혜롭지 못하니까, 지식으로 채웠다. 온갖 가능성을 생각해서, 틀어막고, 그 가능성을, 생각해서, 열어젖혔다.





남자의 계획은 엉망진창. 인족 내부에서부터 반목을 일으키려던 계획은 엉망진창. 하지만, 뭘. 걱정 말아라. 지식의 대마녀가 이미 그를 앞질렀다.




이 미친 인족, 괴물이. 이 정신나간 할망구가, 그를 앞질러서 저기 저. 불구덩이로 달려나가고 있다.

눈 앞에는 이제 새하얗게 변해, 만지면 바스라지는 숯. 하지만 여전히 뜨거워서, 잘못해서 만지는게 아니라. 숨을 불어 넣으면, 그대로⋯






“뭘--- 꾸미고 있는거냐, 마녀---! 이 미친!!!”


“뭘, 지혜가 없어 현자가 못 되었으니 지식을 처발라서라도 지혜를 가져보려고 하는 것이지 않니.”


“너냐? 그 수습현자?! 이 미친 요물이!”


“호호, 마족이 요물이라고 하면 어쩔꼬.”




어쩔꼬, 이를 어쩔꼬.

이미, 그녀는.






지식으로, 남자의 주인 앞에 칼을 들이 밀었는데.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남자는 녹는다. 그대로 빙글빙글. 마치, 플레일 끝에 달린 살점처럼. 결국 녹아, 어디론가 날아가버린다. 돌고 돌아, 사라진다.
















지금은 용사 옆, 아카데미가 정한 수습 현자의 그림자에게 먹혀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