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운터사이드 단편




*

이 똥이야기는 메인 스토리 및, 관련 이야기의 스포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원하는대로 재창작했기에 완벽한 고증은 아닙니다.

배경은 리틀 빈센트 이후의 어느 시점입니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무언가를 만든다는 건늘⸻

그 뒷편을 한 번 생각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걸요.



그 말에 남자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던 손을 빼내었다. 샤레이드의 슬럼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이, 위태위태한 건물. 포장이 벗겨지고, 누수로 곳곳이 물웅덩이인 고르지 못한 지면 위로 곧게, 모노톤의 여신이 서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느 이야기의 작자라면혹은 어느 음악의 작곡가라면

퇴고⋯⋯ 편곡 이후의 것도 당연히 생각해둬야 한다는 말이에요. 네, 그렇겠네요.

세상에 드러나고 난 뒤의 일들을요.



그렇겠군하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여자를 알고 있다.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지식으로써.

이렇게 독대하는 것은 둘 다 처음이다.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남자의 손이 말끔하게 정돈된 턱 아래를 짚자 여자의 동공, 라일락과 마젠타 사이를 오가며 촉촉이 젖은 눈동자가 꾀어내듯 남자를 물끄러미.


누구지? 라는 분위기에 걸맞지 않은 말을 남자가 삼켰다. 분위기? 우스운 말이다. 샤레이드의 슬럼가. 거리 전체가 녹슨 황혼. 꿉꿉한 노랑. 쇠와 석면의 내음. 습기 찬 쓰레기 소리. 어디에 분위기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거기에 여자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충 바른 시멘트 포장의 바닥조차, 그 뭉개진 수평을 곧게 보이게 하고 있다.

존재의 위압감. 그것은 찍어 누르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호수. 잔잔한 호수. 그렇기에, 수면 아래를 가늠할 수 없는 부류의 무언가. 


“⸻그럼, 자네도 그런가?”


여자의 우아한 다리를 감싼 스타킹보다 더 짙은 칠흑우산보다는

양산에 가까운 것은 여전히 샤레이드 슬럼가정돈되지 못한 울퉁불퉁한 지면 위에서

곧게 서 있다. 호수 위의 백조가 유유히 떠가듯. 홀로, 호수의 격을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왈츠 리듬처럼 고상하게 고개가 저어진다. 



네, 물론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이죠.

당신은 더는 작곡자가 아닙니다작곡과 편곡, 믹스와 마스터링까지 마친 당신의 곡을 두고

이제 그다음. 당신은 이제는 연주하는 연주자플레이어가 되기로 했을 겁니다.

⸻세상에는 신 따윈 없지만아 그렇죠물론여기서 제가 말하는 신은 인간 정서의 관념입니다.



"알고 있네."


남자의 말에 칠흑의 장갑이 자신의 가느다란 입술 위로 오른다. 명필이 정말로 간단히 일필휘지한 듯한 선. 얼핏 보면 대충 그은 듯한, 하지만 흠을 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입. 그 꼬리는 일말의 곡선조차 만들지 않고 열린다.



⸻신은 없지만비유를 들자면 당신은 신들끼리의 체스에서 이겼습니다. 신과 신의 게임에서요.

그리고 지금은 신에서인간 세상으로 내려왔죠그 순간부터 이 지옥의 중력은 당신에게도 작용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남자는 전혀 뜬구름 잡는 소리지만이라고 농을 던지려다가 거둔다농을 던지고반응으로 미루어보아 대응하는 것은 남자의 기술이고, ''의 기술이다눈앞의 여자는 그 행위를 무척이나 혐오할 것이라고피부로 알고 있다. 아니, 모른다. 그건 어쩌면 본능의 부류였을지도 모른다. 반면 무척이나 특이한 일이었다. 남자는 슬금슬금 깨닫고는 있었지만, 자신의 행동 양식. 말을 꺼내는 방식이 무척이나 누군가와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그것 외에 없으니, 그러니 눈앞의 여자에게 남자 본연의 대화법이 무척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충분히 이상했다. 애초에 ‘그’ 란 누구지?


다만, 이 순간 직감으로써. 아, 물론이네. 이 직감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 라고 단언할 것만큼, 이 방법이 여기에서만큼은 걸맞지 않다고 확신하고서 눈앞의 여자를 바라본다. 


"매사에 주의하라는 말이로군감사히 받지그런데, 분명히 우리는 처음 만나는 걸 텐데 말이야. 자넨⸻

나에 대해서 잘 아는 모양이로군.”


남자가 팔짱을 끼며, 살짝 고개를 기울인다. 이유라면 대충 가늠하고 있다. 남자의⸻, 그들의 종착점에 닿고 나서부터 이렇게 될 것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 결과로 남자는 지금 샤레이드에 서 있다. 

그리고 아직 도중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의 결실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코핀 컴퍼니. 카나리아 스쿼드의 본선 진출. 그 축하를 위해 발악하는 펠리세트와 흥에 겨운 노엘. 유미나를 먼저 회식 자리에 보낸 순간. 이렇게 누군가가 찾아올 거라는 것쯤은 충분히 예상 범주 내에 있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너무나 예상과 동떨어진 인물이었을 뿐.



아뇨, 당신 말대로. 잘 알지는 못합니다.



남자는 여자의 말에 추호의 거짓도 없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동시에 남자의 감각이 거부한다. 동족 혐오. 그런 부류의 감각. 그럴 수밖에는 없기에, 그렇게 답하는 것. 거짓은 아니지만, 진실도 아니다. 눈앞의 여자는 흡사 런던의 음울한 비처럼, 혹은 끈적이는 스모그처럼 그 어디에도 있고 그 어디에도 없는 짜증 나는 것이라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나?”


남자의 말에, 여자가 살짝. 직선에서 벗어난다. 움직임. 땅을 짚은 양산이 떨리고 있다는 것을 남자는 모른다.

다만, 남자는 내뱉고 난 뒤에 이 화제를 돌리는 방법조차,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것이 아닐까 하고 되짚어 볼 뿐이다.



아뇨⸻, 다만⋯⋯



그 뒤가 길다. 하지만, 잠자코 이어질 다음 것을 기다리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목소리였다. 음표로 치면 앞의 끝 음은 8분음표. 뒤는 4분음표의 부점. 얽히는 호흡. 내뱉은 공기에 이도 저도 아닌 발성이 섞여 있다. 인간의 본성을 잘 유도하고 있다. 그야, 깔끔한 리듬과 소리가 이어지다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해 불안해지면 누구라도 신경 쓰일 수밖에.



비는, 이미 예전부터 쭉 내리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군.” 


이라고 남자가 답했지만, 솔직히, 영문 모를 소리였다. 확실한 것은 눈앞의 여자가 서 있고,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말이 된다. 어떻게 굴러가도, 훌륭한 결과물이 된다는 묘한 분위기.


실은⸻, 남자는 얼추 이해하고 있다.

여자의 말. 뒷편, 뒷일. 그리고, 감독과 배우. 뜻하는 바는 한결같다. 남자의 정체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왜 처음-은 아니지만, 적어도 남자에게는 같다- 본 여자에게서 나왔는지는 이른 아침, 젖은 풀잎을 추리하는 것보다 쉬운 일. 밤새 이슬이 내렸기 때문에. 


남자가 승리한 뒤, 스스로 감독의 자리에서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했고, 그것이 그들이 저지른 일에 대한 마땅한 책무이기에.


몇 가지 짐작은 할 수 있다. 자신을 시험하려고 한 샤레이드의 시니어 관리자. ‘리하르트’ 또는 그라운드 원의 ‘르네 말루프’ 그것 외에는 또⋯⋯에서, 생각은 멈춘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서 들었느냐가 아니다. 눈앞의 여자의 의향. 의도. 무엇을 품고 이 자리에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다.



⸻⸻어떠신가요? 관리자님.



뭐가 말인가? 라고 말하려던 것을 짓누르듯이, 다음 말이 이어진다.



연출, 그리고 감독의 자리에 내려와 실제 배우가 된 감상은?



“⋯⋯.”


남자가 주머니에 손으로 집어 넣는다. 이것은 일종의 습관. 마젠타와 라일락이 그 움직임을 처음 보았지만, 역순을 보았기에 감히 추측을 해가고 있다. 그 위에서 흔들리는 푸르른 은빛이 살짝, 연출을 더 한다.


“자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닐세. 제 앞가림조차 힘들지. 실제로 지금 운영하는 회사조차 어려운 상황이라서 말이야⸻”



그렇군요.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자네가 도와줘서 살았지.”


남자는 알고 있다. 경기 후에 유미나에게 들었다. 여자와 마주친 사실. 그리고 본선 진출 전의 그 계획을 부수는 데 일조한 것이 ‘정황상’ 여자라는 것도. 그렇기에, 경계하고 있다. 남자는 좋게 말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의중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그의 습관, 파악, 추론은 강박처럼 남자를 사람 위에 서게끔 하려 하고 있다. 자각하고 있지만 제어할 수는 없다. 그것이 생존전략이라면, 혹은 기억조차 못 하는 뭉개진 옛 결의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제 조언은 듣지 않은 모양이군요.



“⸻병든 병아리라고 했었지? 포기하는 사람도 있겠지. 자네는 경마를 좀 아나? 결과를 낸 말에게는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애정이 생긴다면 더는 인간과 가축의 분류가 아니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사람을 그렇게 가축처럼 취급하고 있지 않다. 라는 말은 이어지지 못한다. 눈동자가, 남자를 응시하고 있다. 두 개의 카메라가 스포트라이트를 남자에게 쬐고 있다. 남자는 감독이었다. 이 모든, 20년간의 세상만사. 그다음, 그 내일을 위한 프로듀서였지. 결코, 배우는 아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긴장하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오기가 생긴다. 남자도, 제 삶 속에서. 배우를 포기하고서, 떠맡겨진 감독 자리를 수행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남자는 남자의 다음을 이어 나가고 있는 훌륭한⸻


“그래서? 자네 같은 유명인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여자는 고개를 살짝 젖히며 웃는다. 분명 누군가는 그 움직임, 프레임을 청초하다 느꼈을 것이고, 뇌쇄적이다 느꼈을 것이고, 발정했을 것이고, 분노로 가득 찼을 것이며, 자연스러운 위압에 무너져내렸을 것이다.

인간만이 자아내는, 명확한 무기에 꿰뚫려 로망에 가득 찬 일순간이 되었을 것이다.



최고 관리자도 읽지 못하는 것이 있군요.



“난 평범한 인간일세.”



20년간 이 각본을 쓰시고, 수행했으면서?



“오롯이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무섭군요. 네, 이유 말이죠⸻



여자가 다가온다. 손에 우산을 들고, 천천히 남자에게 다가와서

무도회의 귀족 남성처럼 우아하게 건네는 손.



데이트를 하죠관리자.



"⸻그 정도야 쉬운 일이지."








남자가 말을 내뱉은 뒤에, 머리에 손을 올린다.

이 행동은 여자도 처음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귀중한 것.






"......? 아니자네 방금 뭐라고 했나?" 






***





샤레이드의 번화가. 노엘이 말했던 아침 식사가 맛있는 음식점. 슬럼가와 달리 사치스럽고 여유로운 햇살이 고개를 내밀다 말다, 테라스의 어닝(차양막)을 괴롭히듯이 장난스레 일렁인다. 햇살이 길어지고, 아침의 끝자락에서 멀어지는 만큼 장난기는 더 거세게 이어져간다. 그와 동시에 남자와 테이블을 건너뛰고 앉은 항성도 마찬가지. 주변의 행성들이 여자를 따르며 찰칵, 찰칵하고 발하며 이동하는 빛은 오히려 머리 위의 태양보다 더 눈부신 무언가였다. 하지만 여자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티를 들어 올린다.



이곳은 베이커가와 닮았군요.



“베이커가? 묘한 비유로군. 자네 런던에 가본 적이 있나?”



아뇨.



여자는 어느 가을 불어오는 바람에 코스모스가 살짝 춤을 추듯 고개를 젓는다.

꽃이 그저 흔들릴 뿐이어도, 그 향이 시인에게 영감을 주듯 하나의 뮤즈처럼 우아했다. 그 덕분에 행성들이 여자를 바라보며 또 조명처럼 빛을 반사한다. 



그런 세트장에서 연기한 적이 있었죠.



“그렇군.”



과연, 대배우. 남자가 끄덕인다. 또 찰칵, 찰칵. 이쯤 오면 남자도 슬슬 견디기 어렵다. 과연, 대배우. 하고 한 번 더 여자를 따라 찻잔을 들어 올리지만, 그래도 한계였다. 반면, 여자는 항성의 움직임에 행성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랑곳하지 않고 잔을 내려놓는다.



긴장하셨나요?



“⸻긴장하지 말라는게 이상하지 않나?”



“귀엽네요.”



그 말에, 남자가 오른손으로 귀밑을 긁는다. 앓는 소리는 그다음. 그야, 남자는 본래라면 이러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즐길 수 있냐 없냐고 한다면 거북하다. 목적을 달성하고 싶어질 뿐이지, 그에 걸맞은 대가와 관심을 바라지는 않는다. 이 불빛은 전에 다른 경험으로, 예를 들면 그라운드 원에서 남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녀로 인해 겪어본 적은 있지만 지금은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더더욱 거북하다. 왜냐하면, 지금도 반짝이는 빛은 남자를 향한 것이 아니다. 눈앞의 여자를 향한 것. 어디까지나 남자는 위성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렇다.


⸻항성을 따라다니는 행성들은 늘, 더 가까이 있는 작은 별에도 관심을 갖고 마는 것이다.

그게 항성을 이해할 요소가 될지도 모르기에.



누구지?

그 열애설 났던 건틀렛 선수 아냐?

아니야 딱 봐도 사업가 얼굴이잖아.

그게 문제냐 그동안 파파라치에게도 사생활이 잡힌 적 없던 사람이 이성을 만나고 있잖아

그러니까 이상하다고! 상대역의 배우 아냐?

신작! 신작이다! 새로운 각본! 배우의 오디션이고, 면접이라고!

유혹의 함교 이후로 또 명작이 나온다고?!



꽤나, 침착하시군요.



“그렇게 보이나? 실은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다네. 이렇게 앉은 자리에서 수도 없이 사진을 찍히고 있는데 초상권을 요구하지도 못하겠어. 곤란하군. 사람들을 물러 줄 수 있나?”


남자의 말에 여자는 입을 가리고 쿡쿡, 하고 웃는다. 남자는 한 번에 알아챈다. 그것 또한 노림수라고. 여자의 말은 사실이다. 남자는 어떤 의미로 여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일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뒷편에 있었던 인물. 굳이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남자의 성격에도, 대의에서 걸맞았기에 그렇게 행동한 사람. 그야, 버섯이 밤새 모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습하고 어두운 곳이 딱 좋을 테니까. 생물의 사체 위에서 균사를 펼치고 이윽고 이 숲을 생명이 가득하게끔 움직인 데는 이 방식이 알맞았을 뿐이다. 난처럼 지나친 관심 속에서만 자라는 것과는 분류상의 계부터 다르다.



태양이 따르는 별이 싫다고 한다고 해서 떼어 놓을 수 있을까요?



남자가 여자의 말에, 크흠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그럴 수는 없죠. 



그러니, 방치하겠다고. 혹은 이것조차 즐기라는 식으로 여자가 프렌치토스트를 포크로 찌른다. 테이블 위로 놓인 그녀의 양 팔꿈치. 흡사 타워 브릿지처럼 깔끔한 교량. 그 끝에 달린 팔이 우아하게 프렌치토스트를 낚아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 들어가지 않고, 서서히 남자를 향해서 다가간다. 다시 행성들이 들썩이기 시작한다.


“⸻이건, 도대체⋯⋯.”

“자요, 아앙.”


아앙? 하고, 남자가 고개를 기울인다. 점점 자신의 입가에 다가오는 프렌치 토스 조각. 포크에 꿰뚫려 끝이 늘어진 모습은 자신의 신세와 꽤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영문을 모르겠군.”

“⸻데이트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자, 아앙.”


데이트. 남자는 지끈거리는 머리, 뇌의 명령에 따라 두 눈을 감는다. 데이트라. 얼떨결에 따라오긴 했지만, 진짜 그런 류의 데이트인가. 라고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다. 찰칵, 찰칵. 재촉하듯 이 순간을 주변이 사진으로 고정해대고 있다. 


남자는 대충은 이 도시에 대해서 알고 있다. 개요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 도시의 시니어 관리자. 리하르트의 대화에서 흐름의 구조를 꿰었다. 돈과 권력이 있다면 해결되는 직할령. 이런 사소한 문제는 비록 다소의 잡음은 있을지언정 알아서 도시 관리국이 해결해줄 것이다. 그들 또한 주시하고 있는 최고 관리자가 이런 스캔들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 그런데도 주저하고 만다. 그것은 남자 본연의 감성.


⸻⸻부끄럽다.

이에 따라 어떤 변수가 발생할 것인가.


습관처럼 남자는 뒷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 남자의 본성은 늘 신사였다. 이토록 자신의 입가에 떠오른 채로 기다리고 있는 레이디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다. 좋은 의미로 남자는 다정한 부류이기에.


입을 벌린다. 입 안에 다정히 파고드는 프렌치토스트. 포슬포슬한 계란의 촉감. 그리고 곧 파고드는 은은한 버터 향. 부드러운 식감. 포크는 그의 입술을 건드리지 않고 능숙하게 빠져나간다. 남자의 저작 작용이 끊어질 때 즈음, 정말 타이밍 좋게 여자가 턱을 괴고 입을 연다.


“어떤가요? 각별한가요?”

살짝, 들어 올려진 푸르른 은빛의 눈썹이 싫어도 좋은 대답을 촉구하고 있다.


“꽤, 능숙해서 놀랐네.”
“그럼요. 일전에 이러한 장면은 몇 번이나 찍은 적이 있었죠.”

자신이 우위에 섰다는 것처럼 득의양양한 입가에 남자가 입가에 묻은 것을 테이블 티슈로 닦아 내고서 받아친다.


“그렇군.”

“그럼, 다음은 그쪽이네요.”
“⸻⸻⸻뭐?”


남자의 말에 여자는 능숙하게, 자신이 썼던 포크를 남자에게 건넨다. 그리고 마젠타와 라일락의 눈동자가 유유히 움직인 곳은 남자의 접시. 피시 앤 치스. 개중의 칩스. 감자 쪽. 결코 남자의 주문은 아니었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남자의 것까지 주문한 것은 여자 쪽이었기에.


“아앙.”


하고, 눈을 감고 입을 벌리는 여자. 남자에게 건네진 포크. 찰칵, 찰칵. 그것만으로도 행성들은 열광한다.

이것은 그 어느 작품의 어느 신이라며, 혹은 또 다른 작품의 다른 신이라며 제멋대로 다투기 시작하고 있다. 남자는 습관처럼 오른손을 목덜미로 올려, 자신의 목젖을 어루만진다. 


“아아아앙.”


어린아이처럼, 혹은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리고 눈을 감고서 기다리는 여자. 그 모습은 무척이나 고혹적이고, 또 순수해 보였다. 여자의 행적을 아는 이라면 지금의 이 모습이 매우 귀중할 것이다. 사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 무엇조차 연기하고 있지 않거나, 혹은 그렇게 보이거나, 아니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기에.


“⋯⋯.”


남자는 생선튀김을 포크로 폭 하고 찌른다. 그리고 한숨. 길게⸻,

혀가 입천장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 올린다. 이 세상, 아니 혹은 이 순간 가장 순수하고, 매력적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아기 새에게 포크를 아무렇게나 집어넣는다.

아기 새는 진짜인 것처럼 그 커다란 생선튀김을 한입에 숨기고서 포크째로 한참이나 우물거린다.

놓치기 싫은 것이 지금 여자의 이를 넘어, 잇몸을 간질이는 튀김인지 혹은 포크인지 모를 정도로.


혀와 이의 움직임은 남자의 포크가 역할을 마치고 빠지려는 것을 막아 세우듯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남자는 들어 올린 손을 어쩌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그녀의 끝을 기다린다. 하지만, 1초. 2초. 3초. 계속해서 쭈욱, 포크를 문 입술의 세기는, 조임은 여전하다. 이윽고 남자는 한숨과 함께 말을 내뱉는다.


“후우, 말해두지만 자네⸻.”


여자는 남자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자연스레 포크를 압박하던 것을 푼다. 여자의 입술 속에서 은색 포크가 삐져나온다. 살짝 떨리는 그 입술의 움직임이 또 행성들을 자극하며, 조명을 자아낸다.


“뭘 생각하는지는 몰라도, 이런 짓은 내 취향이 아니네.”

“그런가요?”


우물거리는 것조차 연기였던 것처럼 여자가 입가를 검은 장갑으로 우아하게 가리며 말을 이어 나간다.

아직 음식이 입 안에 있을 텐데도 명확한 발음이다. 남자가 팔짱을 끼며, 웃는다.

그건, 일종의 사회적인 표현. 


“그야, 그렇지 않나. 애정의 표현이란, 서로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거지. 형식만 흉내 내봤자, 거짓. 연기에 지나지 않지.”


⸻정말, 그러네요. 예리하시네요.



남자는 여자의 말에 오른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긁는다.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것과 같은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확신한다. 여자는 자신을 시험하고 있다. 밑, 밑바닥. 근저를 긁어내며, 빨아 먹을 수 있는 것을 모조리 빨아먹을 심산으로, 훑어내려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주어진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것은 무대 위에 올라선 배우로서는 낙제점이죠.”

“뭐?”
“다음으로 가죠.”


여자가 일어선다. 당황한 남자에게 다가와, 우산을 쥔 반대편 손을 뻗는다.

손을 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워, 다음으로.





***




샤레이드의 아쿠아리움은 그저 즐기기 위한 곳이 아니다. 침식재해. 그 재해에서 오염 된 것은 대지뿐만이 아니라 해양도 똑같다. 20년 전, 관리실패가 일어나기 전의 인류는 감히⸻, 오만하게도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며 멸종시킨 보호종들을 보관했었다. 아니다, 본래의 의도는 지적생명체 미만의 것들의 감상. 풍경. 생명의 풍경화(化), 신이라도 된 듯⸻ 오만의 극치.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는 유일한 생명줄.


멸종위기 생물의 복원 과정을 담아, 그리고 지금 이곳에서 살아 숨쉬며, 헤엄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우리의 우월함이라고 과시하기 위한 것.



어떠신가요.



여자는 눈앞. 남자의 머리 위를 지금도 헤엄치는 개복치와 해파리를 두고서 돌아본다. 먹이와 같은 곳을 헤엄치게 해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남자가 이 시설의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주변에 또 행성이 몰려들어 빛을 반사하고 있다.


“어떠냐니, ⸻아름답군.”

“그건, 어딜 보고 말씀하시는 거죠?”


여자가 남자에게 천천히 걸어온다. 마치, 프레임을 잘라낸 것처럼 순간순간이 멈추지만 그러기에 더 우아하다. 그녀에게 인간의 안구가 허락한 60프레임은 너무 정밀하다는 듯이. 능숙했다.


“글쎄.”


남자는 겨우 여자의 의도를 깨닫는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여자는 연기를 하고 있다. 자신의 각본에 따라, 충실히. 그렇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뿐.

여자의 각본에 맞춰, 같이 론도(rondeau)를 출 것인가. 아니면⸻⸻


“⸻⸻대담하시네요. 첫 만남인데요.”


남자가 여자의 손을 낚아챈다. 남자는 오른손. 여자는 왼손. 서로 얽힌다.


“때로는 공세로 나가야지, 데이트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공세와 수세가 있나요?”

“미만으로 하지. 그렇기에, 손을 쥐어보는걸세. 서로의 온도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지 않나?”


실제로. 달랐다.

하지만 같았다. 생물체인 이상 결코 넘을 수 없는 온도. 거기에는 둘 다 다다를 수 없다.

하지만 달랐다. 생물체인 이상 결코 같을 수 없는 온도. 거기에는 둘 다 다다를 수 없다.


주변은 여전히 셔터음으로 반짝이고, 시끄럽고, 공기청정기가 울고, 관람객이 웅성거리고, 아쿠아리움 특유의 묘한 진동음. 물과 아크릴과의 반발.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다른 온도를 느끼고 있다.

한 부분으로⸻, 자신과 닮았지만 너무나도 다른 온도.


지금도 둘의 머리 위를 헤엄치는 먹이와 또 먹이. 진작 죽었어야 했고, 바닷속이라면

생존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무수한 생명들이 둘을 꾸미고 있다. 조명을 이리저리 어지럽히며, 둘을 비춰내고 있다. 끼어드는 행성의 의도가 너무나 불순하게 만드는 움직임으로.

생명의 움직임으로. 


그렇기에 둘.

남자와 여자가 맞잡은 손은 너무나 아슬아슬하게, 빛과 일렁임에 먹혀가고 있었다.



그렇군요. 펭귄과, 바다거북이 남았습니다. 모처럼이니, 보러 가실까요?

⸻⸻⸻⸻이렇게, 손을 잡고.


연인(聯人)처럼⸻⸻


























=========================================

원문 2만자가 안 올라가서 자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