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카운터사이드 단편


https://www.youtube.com/watch?v=iCW454anEvo&list=PLmOZRUfLcO3xojkzj2K5ZmLHUcAiLRFvq&index=54






댕- 대앵.


정각을 알리는 두터운 소리가 그로니아 수도, 타나베린을 뒤덮는다. 시계탑 위에 매달린 종이 용케 망가지지 않고서, 살을 에는 바람보다 더 무겁게 흔들린다. 아래의 구시가지에는 그 무거움을 날려 보내려는 듯 바람에 나부끼는 징글벨. 그 둘을 건물 4층 높이에서 들었다면, 정말 딱 듣기 좋은 왈츠 리듬으로 ‘둔짯짜’하고 귀에 들려왔을 정도로. 하지만, 창을 열 용기는 생기지 않을 정도의 바람이 굳게 닫힌 창문을 두들기고 있다.


벌써 일 년이 흘렀다.

그로니아 구 정부가 침식체와 결탁하여 타나베린에 침식파를 모아 정화하겠다는, 돌고 돌아 리플레이서들과 결이 같은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그 후 타나베린에는 침식의 지옥만큼은 아니지만 인간의 지옥도가 열렸다. 었다. 지금도 그 잔불은 계속 살아있다. 아니,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반군과의 평화협상 아래의 음모. 전혀 상관없었던 영웅의 총구가 상황에 떠밀려 불을 뿜었다. 구 정부의 축출을 계기로 신정부가 생겨나고, 반군 세력 또한 둘로 나뉘었다. 여전히 체제변혁을 부르짖는 이들과 신정부에 의탁한 이들. 분열. 끝나지 않는 쳇바퀴. 마치 그로니아는 삶과의 투쟁에 죽어서 간 이들이 또, 영원히 싸우기 위한 발할라였을지도 모른다고 무너진 벽면을 걸어가던 여성이 쓴웃음을 짓는다.


실제로 그랬다. 그러니 용케 저 시계탑만은 홀로, 우뚝 서서 포탄에 무너진 건물잔해, 아직 재건하지 못한 시가지의 과거 윤곽인 듯, 그리고 그 아래의 그녀도 마찬가지. 


댕- 댕



“———벌써, 성야제네요.”



누군가에게 건네듯 말을 내뱉는다. 밤색 머리칼은 티라미수 케익의 바닥이 말라붙은 것 같은 질감이었다. 겨울바람이 더 건조하게 만들며 흔들고 있다. 그런 바람에 조금의 미동도 없이 바람을 맞으며 금색 눈동자를 치켜들고 걷고 있다. 그러다가 왼손을 들어 올린다. 무너져, 군데군데가 벽면에 손을 댄다.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검은 장갑이 그 무너짐을 따라,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건조한 벽면에 자욱을 새긴다. 먼지와 부스러기, 바람이 차마 날리지 못한 것들. 길게 선이 된다.



“———사육제(Carnival) 다음은, 사순제잖아요?”


“정말———, 진작에 끝났을 거 같은데.”


“그러게요. 정말, 기네요. 날은 벌써 성야인데 말이에요. 딸기, 딸기가 먹고 싶네요.”



건넨 말은 혼잣말이라기에는 너무, 구어(口語)였고, 답 말에 가까운 흐름이었다. 사순이라고 표현한 그녀와 달리, 귓가를 이브의 바람이 스치고, 잘게 부수어진 징글벨이 끼어든다. 무너진 폐허투성이지만, 따스한 활기가 길 건너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포화와 잔해 속에서도 살아남은 가로수. 군데군데, 박살 난 가로등이 껌뻑껌뻑, 어둡기만 한 길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장식한, 불빛과 즐거운 듯한 목소리는 분명히 따뜻했다. 그녀가 눈을 흘긴다. 검은 장갑이 이제는 더는 내려갈 데가 없어서 멈춘다.


즐거운 듯한 가로수길이 어디론가 이어지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모르는 얼굴이다. 거리는 마치, 장난감 상자 속 요술처럼 그녀를 속이려는 듯, 감추려는 듯 반짝반짝. 버스 건너편에서 기도하는 노랫소리.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 털모자의 실. 하늘의 별을 따서 꾸며둔 듯 흔들리고 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멀어진다.

기다리다 못해, 몇 번이고 둘러보는 손목시계와 그 밴드 색을 닮은 붉은 뺨과 손.

새하얀 입김으로 녹여내다, ‘아’ 하고 활짝 흔들고 있다.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외롭다뇨.”


“그냥, 평소보다 좀 더 그럴 뿐이에요. 여느 때하곤 다르잖아요? 성야, 이브고요.”

“———비교, 그렇겠네요. 평소보다는요. 그렇겠네요.”



쓴웃음을 남기고서, 검은 장갑이 멈춘다. 왼손 엄지가 몇 번이고 검지와 중지를 훑어내, 무너진 벽을 만졌던 결과들을 털어내고서 걷는다. 그래도 부족한지, 왼손을 입가로 들어 올려 ‘후’하고 불고서 계속.

허벅지 아래까지 올라오는 부츠, 군화가 계속해서 저벅, 저벅. 그녀의 체구와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남기며, 구시가지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if

끝나지 않는 사순제.









추위 속에서도 따스한 거리의 활기, 골목의 들뜸, 웃음을 벗어나 그녀가 도착한 곳은 한 교회.

진작에 무너진, 과거 정교회의 건물. 타나베린은 위치상, 가톨릭보다는 정교회가 득세한 곳이다. 그 양식에 따라, 바실리카 양식 위에 오른 돔. 그리고 날아든 포탄. 내전의 대피소에도 찾아든 눈먼 포화. 작은 교회지만, 돔 내부, 천장에 그려졌던 성인의 자애로운 얼굴은 반신이 날아가 어딘가 음울하다. 그 아래, 터벅터벅. 타일 위로 군홧발이 건조하게 나아가고 있다.


정교회 특성상, 길게 늘어진 의자가 없어 돔(지붕)이 날아간 회랑 안은 더더욱 황량하게 보인다. 다행히 무너진 것은 돔과 오른쪽 고해소뿐. 그 외의 기능은 멀쩡했다. 



“———향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네요.”



그녀는 작은 입술을 움직여, 또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뭐, 애초에 예법도 잘 모르지만요.’ 하고 가느다란 눈썹을 들어 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남기며 계속 걸어간다. 이 난리 속에서 아직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먼지가 좀 쌓이긴 했지만, 한쪽 축을 잃어도 금빛으로 남아 있다. 그녀가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린다. 보수한 흔적. 응급처치이긴 하지만, 무너지고 남은 곳에 새로이 사슬을 걸어둔 흔적을 발견한다. 샹들리에 위의 초는 위태위태하게, 붙은 불을 떨며 교회 안에 파고드는 바람 속에서도 버티고 있다. 그녀는 그 아래를 지나, 계속해서 걷는다. 발걸음을 멈춘 곳은 이미 진작에 무너진 고해소. 


카톨릭의 고해소와 달리,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정교회 특유의 장소. 다 무너졌지만, 그래도 신부와 나란히 서는 단상은 흔적을 남겨두고 있다. 그 위에, 그녀는 선다.



“———”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하는 말을, 그녀는 모른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그건 진작에 잊혀졌다. 어쩌면 이 교회를 덮은 포화에 쓸려갔을지도 모르겠다며, 혀가 윗니를 살짝 핥는다. 혀가 필요한 곳은 건조한 입술이지만, 입 밖으로 혀가 나오지는 않고 내뱉어진 말.



“역시, 그때 도망쳤어야 했나 봐요.”



“———맞아요, 그때. 도망칠 걸 그랬어.”



그녀의 금색 눈동자가 빛을 잃는다. 내려온 눈꺼풀은 떨궈진 고개와 함께 움직였다. 작은 입이 주머니 속, 검은 장갑을 낀 오른손의 차가운 무언가를 만지고서 다시 열린다.




“———오빠가, 그렇게 되고 나서———”



“억울하게 반군으로 몰려서, 그렇게 고문을 받고 나온 뒤에———”



“징집 통지서가 우리 집에 날아들었을 때, 그때———”




도망쳐야 했다고.

그녀는 마지막 말을 흐린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도 여기에 있다.

타나베린, 그로니아의 수도. 침식에 의한 피해를 미연에 막아내는 바람에, 인간에 의한 피해가 뒤덮은 이 도시 위에.




“하하, 그러지 마세요. 전, 나름대로 열심히 한 거라고요.”



너스레를 떨며, 그녀의 목소리가 고해의 단상 위로 퍼지고 있다. 하지만 목소리와 달리 굳은 표정.




“죽이지 않고, 죽지 않는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죠.”

“그래서 생각한 게,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오고, 부상자를 구하는 길이었을 뿐이에요.”
“정말, 그것뿐———”



길게, 누군가의 말을 듣고서, 그녀가 다시 답한다.



“———그러네요. 그 탓에, 훈장도 받았죠. 그래서 더 도망치고 싶었어요.”



눈을 감고서, 그녀 자신도 깨닫지 못한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내뱉은 한숨.




“다정한 오빠였어요. 그렇게 되기 전에는요. 엄마도 기대 많이 하셨죠. 그럼요. 저랑은 달랐어요. 팬케이크도 잘 구웠어요. 그 반숙에 가까운 식감을 다른 사람들은 잘 해주지 않더라고요. 또, 대학에서도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지———”



“———후회, 는 늘 하고 있어요. 아시면서 그러시네.”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요.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모든 건 확, 확하고 움직인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놓치고 마는걸요. 


그녀의 한마디 다음은 늘, 텀이 생긴다. 바람이 불어올 틈새. 차갑고, 건조하고, 잔해를 잔뜩 머금은 먼지들이 그녀의 코트 자락을 뒤흔들기에 충분한 시간. 그런 뒤에 그녀는 입을 열고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신과 대화하는 성자 같아 보이면서도, 얼핏 자신이 만들어낸 누군가와 대화는 미치광이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로 발걸음 하나가 찾아든다.



“———이런, 수리 중인지라 설마 고해하러 찾아오실 줄은 몰랐군요.”



그녀가 입구로 고개를 돌린다. 정교회 신부 복장을 한 남자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는 손에 든 과일바구니를 내려놓고, 걷는다. 반이 날아간 고해소의 단상을 향해. 차분한 발걸음으로 걸어오며, 가볍게 고개를 숙인 남자의 소갈머리는 옹골찼다. 잔뜩 지쳐, 지금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은 입가와 달리. 신부는 정모를 쓰지 않은 머리는 나풀거리고 있었다.



“불러주셨다면 좋았을 텐데요. 신께 고백성사를 드리는 중이셨다면, 저는 이 영대만 빌려드리는 거로 할까요?”



신부는 몸에 두른 영대를 벗어들며, 걸어온다.



“아뇨, 전 어차피 정교회 신자도 아니라 잘 몰라요. 그리고 딱히, 누구라도 상관없거든요.”

“———그렇군요.”


신부가 단상 위로 오른다. 그런 뒤에 품을 가다듬고서, 복음서와 십자가를 내려놓는다. 내려놓을 단상 위, 테이블이 무너져있기에 지면 아래에 내려놓고서 무릎을 꿂는다. 그런 뒤에 성호를 그리고, 모은 양손. 



“하느님의 주권으로 하느님의 종 크리스티나 브레히트를 용서하소서.”


정면에는 성자의 이콘이 무너진 얼굴로 신부와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신부가 몇 절이고 이어지는 절차를 간단히 생략한 체 일어서자, 그녀의 눈이 신부를 향한다.



“제 이름을 아시네요.”

“그럼요. 이 타나베린에서 당신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크리스 상사님.”



신부의 말에, 크리스 상사라고 불린 여성은 검은 장갑, 왼손을 목덜미에 올린다. 방해되는 머리칼 너머로 가느다란 목을 긁기 시작한다. 슬슬, 그녀의 절여진 신경세포가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다. 결코, 쑥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징집병으로 참전했지만, 누구보다 활약했다는 사실은 누구나가 알죠. 건국 이래 아무도 살아서 받지 못한 무공훈장을 받으신 분. 그리고———”



신부가 크리스를 바라보며, 처진 입가를 들어올린다. 



“구 정부가 꾸민 무시무시한 계획을, 저지한 영웅이지 않습니까.”



“———”



그 말에, 크리스는 짙게 드리운 눈 밑의 검은 두덩을 오른손으로 집어 든다. 꾸욱하고, 밑에서부터 누르면서.



“네, 죽였죠.”


“큰일을 하신 겁니다.”


“———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미묘하게 엇갈리는 대화 속에서, 크리스가 주머니 속 왼손을 부산히 움직인다. 비닐에 쌓인 종이 곽이 손에 잡힌다. 호흡이 거칠게 몇 번 왔다 갔다. 그럴 때마다 그녀가 걸친 코트의 훈장들이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건, 일종의 신호였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크리스는 눈을 감고서, 길게 한숨을 내뱉고서 날려 보낸다.



“큰일이죠. 무려, 이 타나베린 전체를 침식지대로 만들 수도 있는 5종 침식체의 부활을 저지한 거니까요.”


“영웅 본인께서는, 역시 잘 실감이 되지 않으실까요? 그런 법이죠. 누구든, 자신이 해낸 위업을 실감하기엔 어렵죠. 그러니, 신을 찾게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신부의 말에, 한참의 정적이 교회를 메운다. 그걸 깨트린 것은 반쪽짜리 천장을 파고드는 건조한 바람. 그리고 그녀의 탁한 금색의 눈동자. 힘겹게 입가의 주름을 들어 올린 입술.



“———아뇨, 정말, 음———”



“———간단했거든요. 그 전모를 듣고서, 그 음모를 듣고서요.”



크리스가 오른손을 빼내어, 들어 올린다. 손에 들린 것은 없지만, 마치 총을 든 것처럼 정확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콘. 그 정수리를 향해. 

눈을 감으면, 그 당시의 냄새마저 떠올릴 정도로 선명히.



“이렇게, 당겼거든요.”



로모(老母)와 함께, 건국제를 지켜보던 여성의 머리. 정수리.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도망칠 유일한 기회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도 말했다. 잘못되었다는 건 안다. 하지만 더 큰, 재앙이 다가올 거라고 모두가 말했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모두가 죽는다고. 몰랐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알아버렸다.

자의든 타의든, 결말을 알아버린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그만큼, 떨어진 흥미를 그 누구도 채워주지 않을 테니까.

적어도 그녀의 삶에서는 늘 그랬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그날. 성야, 그녀의 오빠가 그녀를 위해 팬케이크를 굽는 것을 말렸을 것이다. 부족한 시럽을 사러 가는 것을 말렸을 것이다. 지나치는 길에, 그 선량한 성품 때문에 걸인을 돕는 것을 말렸을 것이다. 감사의 표시로 받은 쪽지를 당장에 버리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 팬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말한, 시럽이 없으며 안 된다고 떼를 쓴———



그녀 자신을 말렸을 것이다.

가능하다면, 당겼을 것이다. 그때처럼.

쉽게. 간단히.




“———그렇군요. 모두를 위한 길이라도, 살인은 살인이죠. 그게 걸리셨던 겁니까?”



크리스는 덜 익은 팬케이크가 늘어지는 듯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연다.



“아뇨.”


“———진작에, 아무래도 좋아졌거든요.”


“⋯⋯그렇군요.”




신부의 말에, 크리스가 올렸던 오른손을 내린다. 반쪽이 된 얼굴로, 성인은 여전히 둘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금, 바람이 그 잔해를 두들긴다. 




“———그럼, 따로 고백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셨습니까? 그로니아의 영웅님께서는?”



“적어도, 신에게는 고백할 게 없네요. 늘 아무것도, 이뤄주시지 않으셨거든요.”



그 말에, 신부가 일어선다. 일어서고서, 뒷짐을 지고서 단상을 내려가, 조금 걷고 있다.



“정교회에서———, 고해, 고백성사라 함은 ‘대사’로써의 잠벌을 경감하는 일은 아니라고 여기는 부류도 있지요. 단순히 치료의 도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혼의 치료. 당신의 지친 영혼을 치유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말이죠. 결코 그 ‘잠벌을 탕감해주는’ 일은 없다고———”



신부의 말을 싸늘하게, 크리스가 듣고 있다. 다 깨어진, 지금 그들을 덮고 있는 돔처럼 허망한 ‘그래요?’라는 대답은 하지 않는다.



“그저, 듣기만 할 뿐입니다. 어떤 마음속 깊은 일을 내뱉는 걸로 가끔, 후련해지기도 하지요. 그걸로 된 겁니다. 그걸로, 다음 무언가를 위해서 나아가는 거죠. 예를 들면, 더 좋은 일로 덮는다던가.”


“죽인만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라, 당신은 군인이죠? 어차피 죽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일을 위해서 죽이는 거죠. 그렇게,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요?”



“———”



“이런, 성직자로서 해선 안 될 말이군요. 하지만, 이걸로 당신이 조금이나마 편해진다면 이 고백성사도 하나의 수단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볼 수 있겠죠.”


신부의 웃음에, 크리스의 금색 눈이 빛난다. 잔뜩 바랜 돔 천장의 성인, 그 성인의 눈을 칠한 색처럼 광채 잃은 황금. 짙어진, 먼지 쌓인 어스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네, 모처럼 성야이니 마음 가볍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셔도 될 겁니다. 억울하게 반군으로 몰린 오빠분에 대한 울분도, 그런 오빠를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친 어머님의 이야기도, 얼마든지요. 신께서는 다 이해하실 겁니다.”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크리스의 말에, 신부는 웃음과 함께 돌아보며, 걸어온다.



“지금이라도 다시, 고백성사를 하시겠습니까? 영대를 덮고서, 당신 마음속에 응어리 진 것을 주 앞에서 말씀해보시는 겁니다. 제가, 신과 함께 듣겠습니다. 증언자가 되겠네. ——아, 얼마든지, 도와드리죠. 걱정 마시길. 저 또한 독실한 신자니까———”



만면의 웃음. 단상으로 다시 올라오는 이의 웃음에, 크리스는 집어넣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뺀다. 이번에는 들려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이유라면 있었다. 적어도 그녀에게 세가지.


첫째. 엉터리 신부. 애초에, 정교회면 정교회지, 계속 뒤섞인 말을 할리가 없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총을 겨누는 그 자세부터가 처



탕.



“이, 이게 도대체, 당신은 누구의 말을 받고⋯⋯!”




탕, 탕.




기분 좋게, 3연음으로 박자 맞추어, 권총이 불을 뿜었다.

처음에는 가슴. 쓰러지는 순간, 혹시 모르니 허벅지. 펄떡이는 생선을 향해 마지막으로 이마. 피가 터지고, 순식간에 활어가 머리를 내려친 것처럼 생명을 잃는다. 벌써, 싸늘하게 굳어가고 있다.




“———구 정보부 부장. 사살 완료.”




아직 총구를 떠나지 못한, 탄연(彈煙)을 날려 보내듯 크리스가 총구를 내린다.

그리고, 짙은 다크서클 아래의 입가를 움직이며, 입을 연다.




“현 정부의 체제에 불응하며, 반군과의 접촉을 꾀한 혐의. 현 정부의 소환에 불응하고서, 도주한 혐의. 그로니아 전복을 위해, 관리국 직할령 샤레이드와 접촉을 한 혐의.”



그 외에도———, 수많은 만들어진, 혐의를 입에 올리려다가 그만둔다.

바람이 분다. 뭉개진 얼굴로 주의 아들이 크리스를 내려다보고 있고, 벽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만약, 당신이 그녀를 거기에 몰아넣지만 않았으면———”




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일은 끝났다. 결과는 여기에 있다. 남은 건 증명뿐. 사진이 필요하다. 확실하게 죽였다는. 크리스가 단상을 내려간다. 푸석푸석한 밤색 머리칼이, 건조한 볼을 스친다. 내려가서, 군홧발로 쓰러진 신부를 정면으로 돌려세운다. 눈을 채 감지도 못하고, 천장의 무너진 신을 바라보고 있다. 크리스는 총을 집어넣고서, 단말을 꺼낸다.

찰칵, 너무 건조한 소리가 교회를 채우다가도 바람에 나풀거리고, 그녀는 목 안쪽에 가득 찼던 가래를 뱉어낸다.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일까, 고개 돌려 왼쪽으로 내뱉은 가래. 마구잡이로 떨리는 왼손. 



“———네, 전송했어요. 이걸로 일은 끝이네요.”


잠시, 기다린 후에.



“———그러네요. 솔직히, 너무 빤히 보이는 연기라 중간부터 웃음이 나오질 뭐에요.”



“당신도 그랬죠?”



“상상친구씨.”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친구에게 말을 건넨 뒤에. 그녀는 오른발로, 사체를 민다. 교회의 입구가 아닌, 정면. 무너진 벽을 통해, 걸어간다. 빠져나간다. 손이 떨린다. 차갑다. 귀 뒤편이 아려오는 듯한, 맹렬히 갈구하는 외침에 겨우———

답할 수 있다.


가슴 포켓에, 떨리는 오른손을 집어넣어 꺼낸다.

여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그녀의 체감으로는 10분 이상. 꺼낸 것은 금속제 지포 라이터. 불을 붙인다. 하지만, 정작 태울 것이 없다.



“아, 정말 말렸나 보네요. 그쵸?”


“———아아, 진짜. 안다니까요. 바보라고 하지 마세요 좀.”


불을 끄고, 오른손을 코트에 집어넣는다. 꺼낸 것은 담뱃갑. 잔뜩 뭉개지고, 찌그러진 곳에서, 그나마 멀쩡한 한 개비를 입가에 가져다 댄다. 건조한 혀로 하나를 뽑아내고, 윗입술로 물어 빼낸다. 


그러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건조한 입술에 겨우 닿은 씁쓸한 종이를 물고, 라이터를 다시 꺼낸다. 칙, 치익. 코를 찌르는 기름내가 그녀의 군화와 코트에 튄 철 내음을 덮고 있다. 탁, 타악. 하고 담배에 불이 붙자, 그녀는 우선 숨을 한 번 들이마신다. 역겨운 탄내와 함께, 피를 둔하게 만드는 연기가 그녀의 코끝을 스치고 있다. 이윽고, 코와 입가를 통해 빠져나가는 지루한 향. 하지만, 깊게 안정되는 내음. 



“———”



불은 이미 붙었다.

그녀의 담배의 불은, 시시각각 제 생명을 깎아내리고 있다. 그러니, 불은 이제 필요 없다. 하지만, 그녀는 심지에 붙은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저 멍하니, 계속해서———







불꽃을 보고 있다.



오빠는, 이미 망가져서 이제 없어요.

엄마는, 떠나서 이제 없어요.

레아도, 내가 죽여서 이제 없어요.

도망도, 이제는 못 쳐.

갈 곳은 없는데———





댕, 대앵.



교회 건물 바깥으로 나오자, 이제는 들려온다. 정각을 알리는 시계탑의 종소리.

앞으로 4번이면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이 끝나고, 전야가 끝나고, 성자의 탄생일이다. 모두가, 기뻐하자. 구주 오셨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만인의 죄를 덜어주기 위해, 아직 원죄를 깨닫지도 못한 이들을 위해,




기쁘다. 구주 오셨네.

울려라, 울려.




“———하.”



그녀는 불을 켜둔 채로, 웃고 만다.

찰칵, 지포 라이터가 덮인다.




“진짜, 얼어 죽을 소리예요. 구세주 같은 건 없어요. 그렇죠?”



“———아뇨, 상상친구씨. 저는 멀쩡해요. 그도 그렇잖아요?”

“있었다면, 진작에———”




그때, 두 사람이 지나간다. 성인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의 손. 털실 장갑에, 남자 손을 꽉 쥐고서 들떠서 막 점프하고 있다. 



오빠, 이브니까 돌아가면 팬케이크 먹자! 시럽 잔뜩 올려서! 딸기! 딸기!
야, 딸기가 어디 있어. 시럽이랑 과일값이 금보다 비싸!

딸기이이~ 딸기! 시럽! 안 주면 나 울 거야? 안 울면 선물 준댔는데!

어어어? 어? 운다. 울면, 안 준다? 울면 안 주지

그, 그럼 참을래.



그런 남매에게 연기를 내뿜으며, 고개를 숙인 크리스가 걷는다.




“———상상친구씨.”



“———이제, 적당히 하고 말동무나 되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잖아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 없는 친구에게 계속 말을 건다니. 무슨 식물인간이라도 되나 봐. 뭐든 말해보라고요. 크리스, 넌 뭐, 미쳤다던가. 완전, 쓰레기라던가. 크리스, 크리스티나.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뭘 먹고 싶니라던가.”



순간, 그녀는 휘청인다. 벽을 짚고, 쓰러진다. 다행히, 포탄을 피한 벽면은 그렇게 그녀를 미끄러트릴 수 있었다. 



“제발, 제발———제발, 말 좀 하라고요.”



하지만, 그녀의 상상친구는 대답하지 않는다. 안다. 알고 있다. 전부 다, 잘못되어있음을. 그녀는 ‘도망쳐야 할 때, 도망쳤어야 했다.’ ‘맞설 때를 착각했다.’ 그건 언제인가? 처음으로 징집되어, 반군과의 전쟁에 내몰렸을 때? 지휘관이 그녀를 버리고, 사지로 내몰았을 때? 겨우 부상자를 데리고 귀환했지만, 상급자가 뺨을 후렸을 때? 죽어가는 병사에게, 괜찮을 거라고 떨리는 팔다리로 말을 내뱉었을 때?

병신이 되어, 매일 죽여달라고 애원하는 오빠의 목을 조르지 못했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것에 지쳐, 




‘레아가, 핵심이다. 레버넌트를 죽여라.’

‘놓치면, 5종 침식체가 태어난다!’

‘엄마를———, 사랑하거든.’

‘너도, 고생했구나. 중사.’

‘지금이다. 중사, 안 그러면 타나베린이———’





입에 문 담배가 떨어진다. 벽면을 쥐면서 미끄러진 크리스가, 손을 뻗는다.

먼지 묻은 입가, 필터를 다시 문다. 흙내음과 역겨운 탄내가 다시금 그녀의 입 안을 채운다. 그런 그녀를 스치며, 아이들이 달려간다. 



“빨리, 신부님이 기다려!”

“신부님은 어차피 교회 고치시느라 바쁠 텐데 왜 그래?”
“팬케이크 해주신다고 하셨단 말야! 딸기까지 올려서!”

“바보야, 그거 말한 지가 4년은 넘었는데 해주시겠냐?”
“아, 내가 사는 거 봤다니까? 크리스마스라고!”




그런 이들을 돌아보며, 크리스가 괴상한 웃음을 짓는다.

입에 물린, 담배는 한 번도 빨리는 일 없이, 시시각각 제 명을 태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반쪽짜리 얼굴의 성자가 지켜보고 있고, 그 말씀처럼 두터운 종이 몇 번. 잘게 부수어진 징글이 몇 번. 타나베린 구시가지를 덮는다.


조금이면 멈출 것이다.

그녀의 입에 물린 역겨운 탄내보다 느리게.

그녀의 입에 물린 종이보다 빠르게.


푸석한 머리칼 위에 얹힌 십자의 핀보다 천천히.




“———우, 우우으읏——제발—-”




그럼에도 그녀의 상상친구는, 대답하지 않겠지만.

기쁘다. 기쁘구나. 구주가 오시니까.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티나.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 


선물은, 이제 필요 없겠지?

그야, 넌 이미, 아무것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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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o가 금지어라 로모로 했음.





크리스마스고, 이 짤 보고 피폐 크리스가 떠올라서 해봤음.

사육제 당시에 레아, 레버넌트를 저격해서 네퀴티아 부활을 저지 했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이 망가진 크리스.



결국,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을 죽이고 다니며

대답하지 않는 상상친구(그녀의 가능성이자, 마음)를 계속해서 찾는 망가진 피폐 크리스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좀 더 길게 풀어서 하면 좋을텐데, 그러기엔 제가 부족하네요. 동유럽권이라, 동유럽 느낌도 살려보고 싶었는데 망한듯.



무튼,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에오.

카챈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