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 대회] 안드로이드는 기계새의 꿈을 꾸는가


어느 순간이었다.

호라이즌은 우주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관측했다.

 

주변은 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고, 동시에 밤을 닮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아득하게 먼 거리에서 반짝이는 별들은 지구에서 관측되는 별자리 중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호라이즌은 생각했다. 이건 분명 휴먼들이 말하는 꿈일 거라고. 기계가 꿈을 꿀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본디 호라이즌의 인격모듈이 장착된 소체는 앳된 소녀의 외형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의식을 품은 건 거대한 은백색의 함선이었다. 유선형의 몸체를 따라 흐르는 청백광과 헤엄치는 것처럼 유려하게 흔들리는 꼬리. 날개를 쭉 뻗은 함선의 모습은 용이나 거대한 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녀의 등 뒤에선 강철의 색채가 차갑게 번뜩였다. 심해에서 무리 지어 움직이는 정어리 떼들과 같이. 우주 공간에 은빛의 실선을 남기며 비행하는 함선들은 차마 그 수를 셀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건, 앞서 말한 모든 배경을 한낱 먼지로 만들어버리는, 크기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회백색의 행성.

 

행성은 거대했으며 또한 황량했다. 산이나 계곡으로 보이는 굴곡이 없었고, 물이 흐른 흔적이 전무했으며, 지역에 따른 지표면의 차이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로지 회백색의 구체였고 어찌 보면 투박하게 연마된 쇠구슬을 연상시켰다. 

 

호라이즌이 행성을 훑어보는 와중에 행성의 중앙에서 무언가 반짝였다가 사라졌다. 그녀가 시선을 그곳으로 고정시켰을 때.

“그것”이 그녀를 봤다.

 

--!

 

동시에 모든 빛이 사라졌다. 밀물처럼 밀려온 어둠이 별빛을 집어삼키고, 미증유의 압력이 그녀가 있는 함선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것이 물었다.

 

-시무르그가 아니구나.

 

-넌 누구지?

 

공간을 으스러뜨리는 소리. 무어라 대답하지도 못한 채, 호라이즌은 우주의 저편에서 튕겨져 나왔다.

 

눈뜬 곳은 익숙한 사무실이었다.

 

 

 

 

 

*****

 

 

 

 

 

“꿈을 꾼 거 같다고?”

 

레이첼의 물음에 호라이즌은 고개를 기울였다. 간밤에 있었던 그걸 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대충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 새처럼 생긴 함선에 탑재되어 있었는데, 굉장히 거대한 구체가 저를 붙잡았습니다. 그리곤 제가 누구인지 묻더군요.”

“뭐야, 무슨 꿈이 그래? 로봇 아니랄까봐 꿈도 괴상하게 꾸네.”

 

손을 턱에 괸 채 곰곰이 생각하던 레이첼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개꿈 아냐?”

“회사 대표보고 개꿈이라니. 말 좀 곱게 하십시오.”

“그치만 생각해 봐. 엄청 커다란 공 같은 게 네 이름을 물어봤다니, 매니악한 소설에도 그런 건 안 나올걸.”

“제가 레이첼의 지능을 과대평가했군요. 물어본 제가 바보였습니다.”

 

호라이즌은 투덜대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낡은 모니터 화면엔 고전영화에 나오는 우주선의 설정화가 띄워져있었다. 몇 시간 동안이나 뭔가 연관이 있을법한 걸 찾아봤지만 겨우겨우 찾아낸 게 이 정도. 그나마도 쓸모는 없었다.

 

선반에서 스프레이를 꺼내던 레이철이 문득 물었다.

 

“근데 말이야, 그 꿈에 왜 그렇게 신경 쓰는 거야?”

“설명하기 복잡합니다만. 대충 설명하자면 그게 저를 알고 있었습니다.”

“응? 아깐 네가 누구인지 물었다며?”

“엄밀히 말하자면 여기 있는 저를 아는 게 아니지만... 복잡하니 더 이상 물어보지 마십쇼.”

“기껏 상담도 받아줬는데 이러기야?!”

 

귀찮게 앵겨드는 레이첼을 무시하며 호라이즌은 기억하는 꿈을 회상했다.

 

‘시무르그가 아니구나.’

 

‘넌 누구지?’

 

떠오르는 건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날이었다. 어느 빌딩의 옥상. 이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남자와 채무 관계를 청산하던 중, 샤레이드 상공에 생겨난 차원균열을 비집고 나오는 침식체의 무리를 격퇴하기 위해 교전 형태로 전환하던 순간의 기억.

 

-범인류 이민선단 호위용 공간도약 전투체. 시무르그 활성화.

 

시무르그. 전설 속의 신조. 그리고 호라이즌의 다른 이름. 동시에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이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 역시 자신을 시무르그라고 호칭했었다. 지금 그녀가 사용하고 있는 소체가 콜드케이스로 분류되던 걸 생각하면, 꿈속의 그것은 소체의 원래 주인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물론 이 모든 게 그녀의 상상일 수도 있다. 우주를 비행하던 기억은 사실 회로 손상으로 인한 버그일 뿐이고, 어젯밤에 그저 고장 난 채로 밤을 지새워 메모리가 마구잡이로 뒤엉켰을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기엔, 시선만으로 공간을 붙잡던 거대한 구체의 존재감은 분명 너무나 선명했다.

 

오랜만에 정비라도 받아야 하는 걸까.

 

호라이즌이 시선을 내리자 어느새 그녀의 무릎에 머리를 베고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는 레이첼이 보였다. 톡톡 건드리자 고개만 힐끔 돌려 눈을 마주쳐 온다.

 

“잠시 햄스워스에게 다녀오겠습니다. 사무실 잘 보고 계십시오.”




===
창작글은 오랜만이라... 암튼 잘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