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xx년도.
학교를 자퇴한 나는 처음의 포부와 약속은 잊었던 것이 분명하다.
매일매일 집에서 서든어택이나 하고 있었으니.
나는 서든어택에서 만나 키운,
서툰 사랑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지금은 토크온,
당시에는 네이버폰.
클랜에서 만나 보이스를 하던 그녀와 내가 서로에게 호감을 품은 일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둘 다 피 끓는 청춘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녀와 이어진 시간에는 몹시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남들이 충실한 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그녀와 나는 하루를 충실히 버리고 있었으니, 그만큼 즐거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아마 그쪽도 그러했겠지.
실없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인생을 허비하길 수개월.
우리는 얼굴도 보지 않고, 사귀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행복한 시간은 영원히 이어질것만 같았다.
낮에는 함께 게임을 하고, 밤이 새도록 온갖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노래.
대부분 실없는 대화였지만, 그만큼 생산적인 날들은 없었다.
물론, 영원이란건 없다.
세상에 문제 없는 가족 어디있고, 사연 없는 인생 없다지만, 유독 그녀는 가족 문제가 심했던 것으로 기억이 남아있다.
특히 씨다른 언니와의 사이가 무척이나 골이 깊었는데, 결국 그것이 원인이 되어 그녀는 집을 나오게 된다.
어디로 갈거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잘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이 걱정이 된 나는 나에게로 오기를 청했다.
수중에 한 푼도 없는 그녀를 위해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혼자 먼 길을 떠났다.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나는 그녀에게로 갔다.
모험을 떠나는 듯한 기분,
동심이 살아나는 듯한 설렘.
마침 날도 무척이나 맑았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xx역에 도착한 나는 그제야 엄청난 긴장을 느꼈다.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여러 불안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내가 취한 행동은 바로 메로나를 사는 일이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로에 가까워지는 와중에도 우린 계속 전화를 했다.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할 수단이 없었기에 중간에 끊어야 했지만...
다시금 핸드폰을 킨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역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역 근처 슈퍼에서 메로나를 산 것이다.
나는 스크류바를 좋아했지만, 그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메로나를 손에 들고 그녀가 기다리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햇살은 뜨겁고 나는 그녀를 처음으로 마주한다.
단언컨데 인생 전부를 통틀어 그보다 기뻤던 순간은 없을것이다.
-
힘들어서 담에 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