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짤 출처 - https://arca.live/b/counterside/25536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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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 나나하라 가문 연합 ~ Fenrir platoon in Japan ~
P.M. 05:55 고등학교 궁도부실
오늘따라 활이 잘 맞질 않는다.
컨디션의 문제도 있겠지만 잡념이 집중력을 흐뜨려서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다.
궁도부 소년은 검도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아까 전에 봤던 치후유의 대련은 검도 문외한이 보더라도 굉장했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침식체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충분히 필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보였고, 가문 연합원들은 보통 다 그 정도로 강하기에 나나하라 가문 연합은 미나토가 없더라도 충분히 큐슈 일대를 침식체와 침식현상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나츠가 지속적으로 반쯤 연을 끊은 나나하라 가문으로 회유하러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정면으로 마주쳤음에도 회유하지 않은 이유는 아까 치후유와 대련하던 사람이 미나토를 대신해 영입했기에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였을까.
목판 과녁에 화살이 박히는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결과는 과녁 중앙에서 한참 떨어진 목판 변두리에 맞았다.
하아….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크게 한숨을 내쉬자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이런 엉망이구만 미나토여."
"타테미야 오늘은 장난칠 기분 아니다…."
"타테미야가 아니라 오오카미다!"
"그거 이젠 그만할 나이 되지 않았냐? 슬슬 중2 졸업하라고."
한심하다는 듯 말하며 과녁에 박힌 화살을 회수하러 과녁에 다가가자 오오카미 마사키는 평소와 달리 받아주지 않는 먼 사촌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뭔 일 있었냐?"
"뭔 일은. 그냥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래."
"고민 있으면 말해 봐."
"중2한테 말해서 해결될 거였으면 다른 애들한테 상담 받았지."
나 그렇게 의지가 안 되나…? 살짝 마음에 상처를 입은 오오카미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릴 때 궁도부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한 사람의 발소리가 아닌, 다수의 발소리였다.
"안녕하세요 타테미야 군?"
"타테미야가 아니라 오오카미다!"
화살을 회수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2병 대사를 외치는 오오카미 너머, 달갑지 않은 손님── 나나하라 자매와 그 외 한 명이 찾아온 것을 보고는 미나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결국 오늘은 점심시간이 아니라 방과후에 오시려고 하셨나보군요 나나하라 선배."
"동아리 활동은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네요."
"끝났습니다."
"그러면 잠깐 이야기를……."
"──죄송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어서요. 곧바로 알바 가야해서."
"카즈토 군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알바가 없다고 하더군요."
카즈토 이놈이…. 멋대로 자신의 스케줄을 유출한 친구 덕분에 변명거리가 사라지자 소년은 관자머리에 핏대를 세웠다.
"아뇨, 평소에 가는 알바가 아니라 타테미야하고 가야할 곳이 있어서요."
"응? 나랑?"
오오카미는 처음 듣는 이야기를 듣자 눈을 휘둥그래 뜨며 검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타테미야 군이라면 금일 7시에 본가에 모이기로 했는데 본가에 오실 생각이신가요?"
외통수다. 더 이상 뭐라고 할 변명이 없다. 이렇게 된 이상──
"솔직히 말씀드리죠. 나나하라 선배 민폐입니다. 매일 같이 찾아오시는 것도 그렇고 가문 연합이 어쨌다니 뭐라하시는 거, 저 전혀 관심도, 흥미도 없습니다.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요."
"나유카 너 지금 네 입장이 무슨 입장인줄 알고…."
"괜찮아 치후유 내가 얘기할 게. 민폐라고 느꼈다면 사과드리죠. 하지만 연합에서는 나유카 가문이 꼭 필요합니다."
"필요한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저는 싫습니다."
"세상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어도요?"
"세상을 위해서라는 거창하고 그럴싸한 이야기로 회유하시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거창한 모험을 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애초에 고등학생이 세상을 위해 싸운다느리 뭐라니, 현실이 만화나 라노벨이 아니잖아요."
"나유카 군이 평범한 삶을 지향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너무 이기적인게 아닐까요? 자신의 안위와 안녕을 위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타인의 삶을 방관하는 것은."
빠드득. 미나토의 이를 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리고 동공이 축소된다.
"조부모님, 부모님 세대의 연합원들의 말로를 생각해보세요! 다들 '봉인'을 지키려고 하다가 당시에 죽거나 선대 당주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다 죽었어요! 물론 숭고한 희생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지금 어느 누구가 선대 당주에게 감사하다고 하면서 살고 있나요? 단 한 명이라도 외부에서 선대 당주의 묘를 찾아와 '세상을, 우리들의 삶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참배한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냐고요?! 그렇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허망하게, 어이없게 가버리면 결국 남는 게 뭐냐고요!"
별안간 고함을 지르는 미나토의 모습에 오오카미는 놀란 듯 당황한 기색이 얼굴에 그대로 들어났지만 치나츠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냉랭했던 분위기가 한순간 얼어붙는다.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없던 일로 해주세요."
"외부인이 이렇다저렇다 이야기하는 건 좀 그렇긴 한데,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개죽음인 듯이 얘기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뒤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검은 긴 생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외부인이 방금 전 미나토가 한 말에 반박했다.
"누구든지 자기 안위만 생각하면서 살고 싶겠지. 당연한 거야 사람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손해보기 싫어하고 아픈 건 싫어하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감내하고 양보하고 희생했기에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거야. 당장 너희 가문이 아니더라도 소방관 같은 분들을 생각해보는게 어떨까?"
"맞는 말이네요. 제가 실언했네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그쪽 말이 맞네요."
"그러니까 가문 연합에 힘을──"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소년은 맨주먹을 강하게 쥐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아까 전에 봤어요 나나하라하고 검도 대련하는 거. 솔직히 감탄했어요. 누구든지 감탄할 수밖에 없을거에요 누가 봐도 대단하거든요. 그런 사람이, 그런 카운터가 침식체로부터 지켜준다 하면 든든하겠죠. 그에 비해 저도 카운터라고는 하지만 1종 침식체도 혼자서 쓰러뜨릴 수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하죠. 연합원의 일원이 된다 하더라도 침식체 토벌에 함께 나간다면 짐짝 말고 더 될까요?"
'핑계도 가지가지네…….'
유미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에 반해 치나츠는 지긋히 눈을 감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쟁에는 여러 병과가 필요하죠. 검과 창을 들고 직접 최전방에서 싸우는 살수, 백병전을 벌이기 이전에 군진을 지키는 방패수, 원거리에서 적들을 섬멸시키는 사수, 별도로 움직여서 적을 교란 시키는 별동대, 그리고 그들이 잘 싸울 수 있도록 보급품을 조달하는 보급병. 이외에도 기병이나 공성 무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공성병이나 다친 병사를 치료하는 의무병도 있지요. 이들이 모두 기계의 한 부품처럼 잘 움직여줘야 그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고, 어느 병과가 하나라도 빠지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죠."
소녀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나나하라 가문 연합도 마찬가지입니다. 아까 전에 나유카 군은 치후유 같은 카운터만이 침식체로부터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다고 했지만, 치후유와 같은 살수들로만 이루어진 연합은 결코 침식체로들부터 이겨낼 수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으신거죠?"
"나나하라 가문에서 갈라져 나온 분가들의 본래 성씨의 뜻을 잘 헤아려 보세요."
말이 끝나자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오기 전 지지직거리는 노이즈가 한 번 울리더니 곧이어 완전 하교 시간을 알리는 교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완전 하교시간입니다. 교내에 있는 학생들은 신속히 하교해주시길 바랍니다. 반복 전달합니다. 완전 하교시간입니다. 교내에 있는 학생들은 신속히 하교해주시길 바랍니다.》
"완전 하교시간인가보네요.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치나츠는 자신이 상급생임에도 불구하고 후배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천천히 뒤돌아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두어 걸음 움직이다가,
"그리고 나유카 군에게 잠재된 나유카 가문의 힘은 생각보다 굉장하답니다. 자신을 너무 깎아내리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 * *
행간3
나나하라 가문 연합은 일곱 개의 가문으로 구성 돼 있고, 각 가문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정해 수행해왔다.
직접 전선에서 싸우는 살수 역할을 맡은 '야츠루기(八剣) 가문'
방패를 들고 방패수 역할을 맡은 '타테미야(盾宮) 가문'
누구보다 빠르게 원거리에서 적을 저격해 해치우는 저격수 역할을 맡은 '하야미(速水) 가문'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는 사수 역할을 맡은 '나유카(七弓家) 가문'
적이 틀어박혀 수성태세에 들어갔을 때 공성 역할을 맡은 '오토시(落) 가문'
열세에 몰려 수성태세에 들어갔을 때 수성을 책임진 아마모리(天守) 가문'
그리고 이 가문들을 총지휘하는 일곱 가문의 수장인 '나나하라(七原) 가문'
이 일곱 가문들은 지난 수천 년간 세토 내해에 봉인된 '거대한 뱀'의 '봉인'을 관리하였고, 침식체와 이면세계가 세상에 밝혀지기 이전까지 일본의 모든 침식 현상을 처리하였다.
구 관리국에서는 이들을 코드명 '고르디우스 전대'라고 명명했으며 구 관리국 내에서도 이들의 명성은 자자했다.
하지만 2022년── ADC-G1에서 일어난 초대규모 침식 균열 사태를 막기 위해 원병을 온 고르디우스 전대원들은 최악에 치닫은 침식 사태에 휘말려 전멸하고, 가까스로 후퇴하여 목숨을 부지한 이들도 대다수가 초기에는 괜찮은듯 싶었지만 고준위 침식파 후유증으로 점점 시름시름 앓다가 절명했다. 선대 당주 내외── 치나츠, 치후유의 양친도 이들 중 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으로 야츠루기, 오토시, 아마모리 가문이 대가 끊기고 연합이 붕괴 직전까지 이르자 선대 당주였던 나나하라 시게노부가 급히 수습해보려 하였으나 하늘이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렇게 길지 못하였고, 가문 재건 도중 치나츠가 당주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치나츠가 당주가 되었을 때 그녀의 주변에 남은 사람들이라고는 나이 들어 은퇴한 각 가문의 장로들과 왜인지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숙부, 그리고 동생 치후유 뿐이었다.
당주가 되고나서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노리는 숙부와 가문의 과거에 대해 무언가를 숨기고 자기들 멋대로 움직이는 몇 장로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치나츠는 남은 가문들로나마 자신의 세력, 새로운 나나하라 가문 연합을 만들고자 하였다.
동생인 치후유는 무조건적으로 치나츠를 따랐고, 타이밍 좋게 사나에가 본가에 돌아와 치나츠에게 힘이 되었다. 그리고 타테미야 가문의 적장자, 자칭 오오카미 마사키는 겉으로는 중2병에 나나하라 가문의 비선실세와 흑막이 되겠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녔지만 줄곧 치나츠의 말을 잘 들어주었다.
하지만 나유카 가문의 적장자, 나유카 미나토는 생각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치나츠가 설득을 해도, 오오카미가 설득을 해도 미나토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치나츠는 포기하지 않고 소년에게 매일 같이 찾아가 열심히 설득했다.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나토는 평범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이를 피해다녔고 그러는 동안 '봉인'은 세토내해 바다 밑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 * *
행간 4
P.M. 6:00 나나하라 본가 저택 힐데 투숙방
"생각 이상으로 상당히 부패한 사람이던데요."
주시윤은 코타츠에 앉아 귤을 까면서 힐데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미리 귀띔은 해주셨지만… 그게 어디까지나 심증이라고 하셨는데 다 진짜일줄은 몰랐네요."
"어딜가나 정치인들은 부정부패가 패시브처럼 딸린 모양인가보군."
주시윤에게 건내 받은 휴대전화 속에는 나나하라 지로의 부정부패 증거들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겨 있었고, 펜릴 소대 소대장은 그걸 하나 씩 천천히 넘겨보았다.
"뇌물 수수에, 야쿠자와 연류, 폭행, 모욕, 협박, 직권남용 그것도 모자라 가문 내에 쿠데타까지 일으키려고 한다고? 쓰레기 종합세트가 따로 없구만."
혀를 차며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눈을 하며 휴대전화를 다시 주시윤에게 넘겨줬다.
"시키신대로 음성녹취록, 사진, 동영상은 의뢰인인 하야미 씨에게 보내놨습니다만 하야미 씨는 이걸로 뭘 하시려고 하는걸까요?"
"그것까진 우리가 알 필요는 없겠지. 다만, '안이 썩으면 바깥도 썩는다'고 내부에 있는 암덩어리를 미리 제거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하려는 건 분명하겠지."
"나나하라 가문에도, 일본이라는 나라에도 암덩어리인 건 확실하네요."
주시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나저나 신입은 어디갔길래 오질 않는거지?"
"아─ 의뢰인의 동생분하고 완전히 친해진 모양인가봐요. 그 사교성 없던 미나 양이 친구까지 생긴 거 보면 선배로서 기쁠 따름이네요."
흐음… 힐데가 뭔가 걱정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자,
"너무 정 주지 말라고 일러둘까요?"
"아니, 신입에게 친구가 생기는 건 분명 좋은 변화는 맞는 거니까 상관은 없는데 박정자 교수가 준 약… 아무래도 뭔가 꺼림직해서 말이지……."
4
P.M. 7:00 나나하라 본가 저택 회의실
어전회의가 열린 것처럼 치나츠를 중심으로 좌우로 길게 연합원들이 앉아 있다.
"히로시마에서 봉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금일 회의 주제는 '봉인'이다.
"봉인은 약해질 때마다 보수는 하고 있습니다만……."
아마모리 가문의 장로가 골골대며 말했다.
"네, 말씀하신대로 장로님들이 연로하신 몸으로 봉인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주시고 계시는 것은 저도 알고 있으며 항상 장로님들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심한 순간 어찌되는지는 저보다 장로님들이 더 잘알고 계실 것입니다."
장로들은 다들 눈을 감으며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 대참사를 잊으려고 했지만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어느 이는 헛기침을 하기도, 어느 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침식현상이 일반인에게 알려지기 이전인 1995년, 봉인 관리를 방심했다가 일어난 고베 대지진은 나나하라 가문 연합의 크나 큰 실수였다.
"봉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크게 약해졌고, 무엇보다 관리실패 사건 이후 해를 거듭할 수록 약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신경을 써주셔야합니다."
"신경은 쓰고 있습니다만……."
말끝을 흐리는 아마모리 장로를 뒤로 오오카미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되는거죠?"
"어찌되긴! ADC-G1처럼 되는 것 아니겠냐!"
그런 것도 모르냐며 한심하다는 듯 야츠루기 가문의 장로가 오오카미에게 쏘아붙이듯 말하자 주눅이 들어 시무룩해진다.
"침식 규모는 관리실패 사건 때 규모로 가정은 하고 있지만 사후 결과는 그 때 이후보다 더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만일의 위해서라도 나유카 가문이 있어야할텐데 말이지요……."
오토시 가문의 장로의 발언에 모두가 나유카 가문의 공석으로 시선이 쏠리자 "하하하하하!!"하며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그 웃음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곳에는 나나하라 지로가 한쪽 무릎을 세우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런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벌써부터 겁먹고 걱정들 하고 계시면 어찌합니까? 뭐, 유비무환이라고 대비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요. 그것보다, 아직도 우리 가문들이 그런 거에 신경 써야겠습니까? 시대가 시대입니다. 이터니움 기술도 많이 발전했으니 봉인이 풀리더라도 자위대가 다 알아서 할겁니다."
"지로 자네는 침식체를 너무 얕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오토시 장로님께서는 현대 과학 기술과 자위대를 폄하하시는 게 아닌지요?"
"자네 지금 나를 조롱하려 드는 건가!"
"카운터니, 가문 연합이니… 이젠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식으로 탈바꿈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카운터가 아닌 자네가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건 선대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당주가 허용해준 것인데 이젠 주제 넘게 가문 연합까지 들먹이는건가!"
"그런 고리타분한 사고방식 때문에 일반인들이 침식체들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는겁니다. 저 뿐만이 아닌 다른 일반인들도 이런 정보를 알아야 사전에 멀리 도망을 치든, 벙커로 숨든 할 것 아닌가요?"
"이 놈이……!!"
"두 분 다 고정해주십시오."
다소 격앙되는 분위기를 당주가 중재했지만 나나하라 지로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한 쪽 입꼬리를 올려 무언의 도발을 계속했다.
"뭐, 의원님 얘기도 틀린 얘기는 아니지요. 우리 연합이 존재했던 이유는 이면세계와 침식현상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이전에 은밀하게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존재했던 조직이고, 이젠 만인에게 알려진 이상 더 이상 우리들이 아닌 국가에서 도맡아서 해결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타테미야 공의 말이 옳습니다. 가문 연합이 붕괴된 이후 아이에 대가 끊긴 가문도 있을 분더러, 대가 끊기지 않았음에도 뻔뻔스럽게 불참까지 하는 가문도 있는데 어찌 우리들의 힘만으로 봉인과 침식현상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당주께서도 아직 어리시기에 역량이 조금…."
"당주께서 어리시다고 역량을 운운하는 건 천부당만부당하고 불경하기 짝이 없는 언동아닙니까! 말을 가려서 하시지요!"
"허어, 참! 내 틀린 말 했습니까! 당주께서 나유카 가문을 불러온다고 한지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 보십시오! 오토시 공, 당주를 두둔하는 것만이 충심이 아닙니다!"
"야츠루기 네 이놈!!!"
"그만, 그만! 제발 그만들 하세요!"
평소에는 침착하고 냉정한 치나츠지만 압박이 계속된다면 이를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어느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비록 나나하라 가문의 당주라고는 하지만 치나츠도 당주 이전에 소녀이기에 그간 억눌러왔던 감정이 순간적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허허, 우리 조카님이 아직 어려서 감정을 조절하기엔 무리가 있겠죠. 공들도 적당히 해주세요. 당주라고 하지만 이전에 아직 '어린 소녀'니까요."
나나하라 지로는 얼굴에 그늘이 서린 채 고개 숙인 조카를 두둔했지만 말뿐만이었고, 표정은 비열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다. 사나에는 그 광경을 고개는 정면으로 향한 채 곁눈질로 노려보고 잠자코 있었다.
"금일 큐슈 일대 침식체 토벌 결과 보고입니다. 그제 유후인에서 목격됐다하는 침식체들은 확인해본 바 대다수 1종, 2종이었지만 3종도 섞여 있어 자칫 잘못했으면 더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했습니다만 금일 오전 중 모두 토벌하였습다."
"확실히 다 처리한 것이겠지 하야미?"
"예 확실합니다."
야츠루기 가문의 원로는 미심쩍은 눈으로 사나에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우린 말이야… 자네 모친이 한 행동도 그렇고, 자네가 한 행동도 그렇고, 자네 하야미 가문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워. 믿음이 안 간단 말이야."
"송구합니다. 허나, 이번 일은 확실하오니 의심을 거두어주시길 바랍니다."
에잉 쯧쯧…. 탐탁치 않은 원로는 혀를 차며 노골적으로 사나에를 무시한다.
"당주의 컨디션이 영 좋지 않은 것 같으니 금일 회의는 이걸로 마치는 걸로 하지요. 자, 해산합니다."
회의의 시작과 끝을 정하는 것은 당주의 권한이고 당주 이외의 자가 이를 정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 행위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나나하라 지로는 치나츠의 의중을 물어보지도 않은 채 멋대로 회의를 마무리 짓는다.
"별 내용도 없구만 괜히 불러내서…."
"자자, 돌아가시는 길에 한 잔 어떠십니까? 저 지로가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 여기서 치나츠를 진정 당주로 인정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명백하게 구분된다.
"……이걸로 이번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자리를 떠나셔도 좋습니다……."
치나츠의 입에서 해산령이 떨어지자 모든 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살얼음장 같았던 회의는 공식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 * *
행간 5
[아버지, 왜 우리는 할아버지와 성씨 쓰는 법이 다른가요?]
어렸을 때부터 미나토의 궁금증이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양자로 들어온 자식으로 착각도 했지만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친아들이 맞았다.
할아버지의 성은 '七弓家 '라고 썼지만, 아버지와 자신의 성은 '南裕夏'라고 썼다.
미나토의 아버지는 끝까지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여름, 할아버지로부터 카운터 워치를 받으며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미나토의 아버지는 카운터였던 먼 친척들── 가문의 연합원들이 카운터로 삶을 살며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인생의 말로를 맞이한 것을 보고 아들을 위해 스스로 가문 연합과 등지고 연을 끊기 위해 도쿄로 이사를 가고 성을 쓰는 법까지 바꿨다고 한다.
도쿄로 도피했던 것도 잠시, 초등학교 입학 직전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외아들인 아버지는 차마 할아버지를 혼자 둘 수 없자, 할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다시 오이타로 돌아왔지만 미나토의 아버지는 여전히 본가 사람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미나토가 나나하라 본가에 가본 것은 할아버지가 데리고 갔을 때 몇 번이 전부였다.
"나나하라의 궁병 가문이라서 나유카(七弓家)인가……."
할아버지의 임종 직전 받은 시계 때문에 미나토가 카운터로 각성하자 미나토의 부모님은 주먹으로 본인들의 가슴을 치며 시계를 받지 못하게 할 것을 후회하였다.
이미 카운터가 돼 버린 것은 어찌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 것인가, 나유카 가문의 카운터의 숙명대로 살 것인가의 선택은 미나토의 선택 나름이다.
아직까지는 더 이상 부모 가슴에 대못을 박기 싫은 착한 아들로 남고 싶기에 미나토는 평범한 삶을 택하고 있지만 마음 속 한켠에서 알 수 없는 망설임이 움직이고 있었다.
각주
- 카사 인겜 클래스 종류가 딱 일곱 종류고, 나나하라(七原)가 일곱 언덕이라는 뜻이라 가문 연합이 일곱 가문으로 이루어졌겠거니 하고 대충 끼워 맞춰봄
- 야츠루기(八剣)는 칼 검(剣)자 넣어서 스트라이커
타테미야(盾宮)는 방패 순(盾)자 넣어서 디펜더
하야미(速水)는 사나에가 원래 스나이퍼니까 그냥 뒀고
나유카(七弓家)는 활 궁(弓)자 써서 레인저
오토시(落)는 일본어로 '함락시키다'라는 뜻인 오토스(落とす)에서 따와서 시즈
아마모리(天守)는 지킬 수(守)자 써서 타워
나나하라(七原)는 당주인 치나츠가 서포터 클래스니까 그냥 둠
나유카 빼고 다 실존하는 일본 성씨임
- 나유카 미나토 공식 설정 보니까 '南裕夏'라서, 내가 임의로 정한 '七弓家'하고 맞아 떨어지지 않아서 억지로 끼워 맞춤
설정 오류 있으면 지적 부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