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테라브레인 GAP 166774 온라인. 최고 관리자의 접속을 확인합니다.


ㅡ 현재 장비 정밀화율 95%, 튜닝 바이너리 삽입.

ㅡ 초열제어엔진 레바테인 정밀화를 위한 재기동 대기 중.


ㅡ 장비 적합자 로자리아 르 프리데. 최종 조정까지 앞으로..


"그대의 취향은 항상 그렇지만 절망적이구나."


나태에 흠뻑 젖은 나긋한 목소리. 어느새 그녀는 관리자의 옆에 있었다.


여전히 일주일 중 하루를 겨우 일할까 싶은 히키코모리의 모습 그대로였으나,

관리자는 눈을 마주본 것 만으로 로자리아가 준비를 끝마쳤음을 확인했다.


"때늦은 동심은 존중해주겠으나, 이걸 입고 싸워야 하는건 나다만."


" 중장갑은 로망일세. 모름지기 외부 장갑은 두껍고 큼직해야지."


"가녀린 내게 어울리는 모습은 아닌데. 휘두르기엔 모양새가 별로잖아."


"어차피 이보다 더 무거워도 솜털같이 느끼지 않던가?"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샐쭉 웃었다. 관리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중요한 국면이니 실수 없이 처리할 거라 믿네. 미나 양의 가치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지 않나. 걱정할 필요 없겠지?"


이번 세계 전까지는. 


그녀는 이 딱딱하고 재미없는, 항상 종말에게 쫒기듯 달리는 남자의 태도가 항상 맘에 들지 않았다.

허나 이번 회차에서 내린 그의 결정이 신선했기 때문에, 드라마의 배역 중 하나가 되어주기로 결정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직접 춤추는 지휘자라니. 이리도 흥미로울수가.


"쓸데없는 질문이구나."


로자리아는 뒷짐을 진 채 분주히 움직이는 장비들 앞을 거닐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싹을 틔운 작은 불씨들이 꽃송이처럼 하나, 둘 휘날렸다. 


"그래. 본래는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를 즐기는 게 내 취향이지만..."


한때 구 관리국 최강의 전대를 이끌었던 홍련의 마녀가 웃음기를 숨기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몸이 아니면 감히 누가 할 수 있겠느냐?"


 * *


"정말 나서실겁니까. 스승님."


코핀함에서는 분주하게 강하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작전의 주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델타 세븐은 눈부신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리플레이서 진영의 최강자인 퀸이 나선 만큼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 지는 모를 일이었다.


만약 호각에 가까운 형태로 시간 싸움이 이뤄진다면 유리한 쪽은 당연히 리플레이서 쪽이었다. 

테라사이드 프로젝트는 실시되기까지 초읽기만 남겨둔 상태였으니 인류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해도 좋았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도 나유빈은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모든 일들은 아직도 상정 범위 내였다.

말은 전부 판 위에 올려졌다. '깔끔한' 마무리가 이뤄질 시간이었다. 관리자와 그의 계획은 섬세하고 완벽하게 진행되어야만 했다. 


때문에, 압도적이고 신속하게. 

그 힘을 발휘해 줄 그녀가 여기 있었다. 


꽤나 웃기는 바디슈트 차림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푸흡. 역시 관리자님의 취향은 한결같군요. 쫄쫄이라니."


로자리아는 시건방진 제자의 말에 그의 비어있는 헐렁한 왼팔을 발로 툭 올려 친 다음,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내 미모가 아니었으면 소화하기 힘든 디자인이지. 그래도 저 아래 헐벗은 리플레이서보단 낫지 않으냐? 저것도 참 이해하기 힘든 취향이구나."


"이해하지 못해도 돼요. 어차피 사라질테니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은 사제는 아주 잠깐, 정적에 빠졌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분주했기에, 격납고에는 단 둘뿐이었다.

로자리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 안다는 표정이구나.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묻지도 않는군."


"능력있는 부사장이라면 당연히 사장님이 펼쳐놓으신 일은 알아야죠."


관리자와 그의 관계는 정확히는 공범자에 가까웠다.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도 없고, 어떠한 보험도 없는 일을 저지른 공범자들.


기지개를 피듯 온 몸을 쭉 편 그녀는, '타고' 온 의자에서 드디어 몸을 일으켜며 물었다.


"나유빈. 테라사이드 시스템이 다 무어냐?"


"클리포트 인자의 복제체를.."


"그래. 어쩌고 저쩌고 장황하긴 하나, 핵심은 결국 잡스러운 복제체 따위나 만들자는 꼴이지."


오늘 그녀의 가녀린 몸을 감싼 슈트는 원래 입던 드레스와는 다른 의미에서 파격적으로 몸매를 드러낸다.


평소에는 꽤나 많은 살갗을 여유롭게 노출했다면, 지금의 복장은 딱 달라붙는 형태의 바디슈트로 몸을 꽁꽁 싸맸다. 

그럼에도 로자리아의 미려한 곡선들이 전부 드러났기에 조금 더 외설적이었다.


함께 강하할 소년 취향이 가득한 외부 장갑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그녀를 지키기 위한 형태로 보였다.

물론, 실제로는 앞으로 뿜어낼 초열이 주변을 완전히 태워버리지 않게끔 힘을 제어하는 수단이었다.


"허나 하찮은 열화판이라도, 클리포트 인자가 기원이라면 변수가 될 수 있는 법."


딸깍. 딸깍. 외부 장갑들의 점멸을 확인하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실제로 연쇄반응이 시작되고 있지 않느냐. 이 사태를 정리하려면 귀찮은 벌레들을 압도적으로 태워버리는 것이 가장 신속하지."


이어서 로자리아는 팔과 다리를 까딱였다. 굳은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동작이었다. 

그래도 나유빈은 그녀가 무거운 엉덩이를 떼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녀에게 준비는 필요없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로자리아 르 프리데는 언제나. 완성되어 있었으니까.


말씀은 잘 하십니다. 이렇게 강하면서도 우리는 구해주지 않았으면서. 


분명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한구석에서 해묵은 질투심이 솟아올랐다.


"그건 미나 양을 구하기 위한 변명 같은데요. 애초에 수연이를 요격하는 대신 여기로 오신 것 자체가 말이죠."


"흥. 그 맹랑한 신입은 시끄러워도 과자 고르는 취향이 제법이거든. 시간이다. 함교! 내려가겠다. 램프도어 개방!"


아무런 동요도 없나. 하긴 그런 사람이었지. 


도어가 열리며 매서운 바람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사납게 휘도는 바람이 로자리아의 군청색 머리카락을 헤집어 그녀가 품고 있던 불씨를 가득 쏟아냈다.


나유빈도, 이수연도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구 관리국 시절로 홀로 돌아온 전장의 여신이 미소지었다.


"자, 전부 불태우고 오마."


훌쩍, 불꽃은 떠났다. 


나유빈은 떠다니는 불씨를 장갑을 낀 손으로 비벼 끄고는 쓰게 웃었다.

어린 날 꿈꾸었던 전부가 끔찍히 변해버린 지금도, 여전히 그녀만은 변함없었다.


그게 너무나 기쁘면서도,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 *


"카일! 방금 뭐가 강하한 거지? 적인가? 아니면.."


"참관선으로부터 강하 궤적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건 아마도 펜릴 소대의.."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유미나는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을 오가는 고성이 어지러웠다.

멍하니 눈을 몇번 끔뻑이고 나서야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과, 주변 공기가 확 뜨거워졌다는 사실을 겨우 인지했다.


"콜록, 콜록..소대장?"


위기의 순간. 그녀와 리플레이서 퀸 사이로 무언가가 강하했다. 유미나가 아는 사람이었지만, 또한 다른 사람이었다.


항상 트레이드 마크처럼 따라다니던 쓸데없이 화려한 의자가 없다.

하루 종일 의자, 혹은 소파에서 뒹굴기나 하는 주제에 차려입었던 드레스 대신 딱 달라붙는 붉은색의 바디슈트로 몸을 감쌌다.

조금 이해하기 힘든 디자인의 외부장갑들이 그녀의 주변을 반딧불처럼 날아다녔다.


가장 다른 것은 눈. 


유미나가 어떤 핀잔을 주건, 주시윤이 능글맞게 놀려대건 권태와 나태로움만을 담았던 남색이 아니었다.

끓어오르는 가학심을 숨기지 않는, 타오르는 붉은 색이다.


"....뭐지? 뭐가 내 공격을 튕..."


사령관님의 계획은 완벽했다. 분명 다 된 밥이었다. 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끝을 내야 할 일격이 사라졌다. 말을 다 잇지 못한 이유는 공격이 튕겨나갔다기보단 '증발했다'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마치, 더 큰 열량 앞에 흡수되듯이.


"이 힘의 파장은...설마?


순식간에 주위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었다. 

드라이 아이스를 물에 한바탕 쏟아부은것처럼 아지랑이가 강하지점 주변에서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퀸은 금세 생각을 정정했다. 아지랑이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다. 


너울거리며, 비명을 지르며 대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공기가 찢어지듯 일렁거려 끼어든 적의 모습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눈가로 날아드는 불씨를 손을 내저어 밀어냈다. 


그리고 일렁임 너머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새빨간 눈동자를 마주했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퀸은 불에 데인 것처럼 뒷걸음치고 말았다. 시선만으로 솜털이 전부 쭈뼛 곤두섰다.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작열감을 느꼈다. 처음 느껴보는, 마치 맹수 우리 안에 던져진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

퀸은 본능적인 공포로부터 도망치려는 몸에 의식적으로 힘을 넣었다.  


전신이 미증유의 감정으로 떨렸으나 우습게도 식은땀조차 나지 않았다.

아니면 그녀가 느끼기도 전에 전부 증발해버렸는지도.


퀸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몸이 느끼는 힘의 파장은 '진짜'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리플레이서 프로젝트는 완벽했으며 준비한 힘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만약 이게 '진짜'에 가깝다면...


우리의 계획은 어쩌면,

무언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령관님.



ㅡ 제어 시스템 가동.


ㅡ 제 1 운명구속구 라그나로크, 해제.

ㅡ 제 2 숙명구속구 무스펠하임, 해제.


ㅡ 클리포트 타입: 수르트 - 기동.


ㅡ 유사 클리포트 인자 조합체 완전 소각시까지 한정 승인.



 소각 개시.



"감히, 날 일어서게 만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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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시간 조지다가 챈에서 힐데랑 로자리아 바뀌면 어떻겟냐는 글 봤던거 생각남 --->

대충 상상력 돌려서 유튜브 각힐 출시 이벤트 씬 보고 써 봄

설정오류같은건 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