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제목: 겨울의 에필로그(冬のエピローグ)

Song by: 구즈 하우스(Goose house)


1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5893541

2편 - https://arca.live/b/counterside/26019313



수능당일 오후 5시.


원래부터 수업은 열심히 듣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수업은 더더욱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학교가 끝나면 선배가 시험을 보고 있는 고사장으로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고, 종례가 끝나기가 무섭게 난 버스를 타고 고사장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언제 나오는거야……."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에서 수능당일 날이 춥다, 춥다 강조하듯 얘기는 했지만 벌써부터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울지는 몰랐다.


'11월에 추워봤자겠지.'라는 생각에 블라우스 위에 가디건 하나만 더 껴입고 나온 내 잘못이긴 하지만 탐구영역 시간이 끝난 후 하나 둘 시험을 마친 사람들이 재각각 웃상, 울상, 죽상, 잘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 나올 때 선배만 10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얼어붙을 것만 같은 손을 녹이려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입에 갔다대고 입김을 불자 새하얀 김이 춤추듯 하늘로 날아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천천히 올 걸이라고 생각할 즈음 고사장을 굳게 지키고 있던 철문이 삐그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열리고 그곳에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덤덤한 표정의 선배가 느린 걸음으로 나오고 있었다.


"왜이리 늦게 나왔어요?"


보통 때였다면 '시험 잘 봤나요?'라고 물으며 반겨주거나, 보나마나 잘봤을 것이 뻔하니 노브레인의 '재수가 좋아'라는 노래를 부르며 장난쳤을 것을, 제법 오랜 시간 추운 곳에 서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선배에게 분풀이를 하듯 퉁명스럽게 말하고 말았다.


"아… 미안… 오래 기다렸지?"


퉁명스러운 한 마디에 조금 노여움을 탔는지 방금 고사장에서 나온 수험생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요? 시험 망쳤어요?"


"아니… 아침부터 컨디션이 좀 그래서…."


"그럼 집으로 바로 가서 쉬어야하지 않을까요?"


"괜찮아. 방금 전에 계단에 앉아서 쉬었다 왔으니까… 괜찮으니까 저녁 먹으러 가자."


얼굴을 자세히 보니 약간 창백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갑작스런 한파에 밤새 감기라도 걸려서 그런건가, 아니면 아무리 자신했다한들 수능은 수능인 만큼 긴장이 갑자기 풀려서 그런 건가 의문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가 이유라기에는 11일 전후 기점으로 해서 선배의 컨디션이 왠지 점점 안 좋아지는 것만 같았고, 어제 수능 응원차 찹쌀떡을 전해줄 때도 얼굴에 핏기가 살짝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선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괜찮다니까…."


더 이상 물어보면 왠지 짜증을 낼 것만 같아서 괜찮냐는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날,


이 선택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저녁을 사주겠다며 간 곳은 호주 영어로 오지라는 뜻을 한 페밀리 레스토랑이었다.


안 그래도 비싼 가격이라 평소 부모님도 외식하는 곳으로는 엄두도 내지 않으시는 곳을 선배는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스테이크 두 개와 그 외 메뉴를 시켰고, 계산 전까지 돈은 있어서 저러나 걱정스러웠지만 다행스럽게(?) 계산할 때 잔액부족이나 한도초과나 그런 불상사는 없었다.


식사 후 선배는 카페를 가자고 했고, 부모님께는 오늘 저녁 먹고 들어간다는 얘기도 드렸고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에 권유에 응해 현재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차라고 해봤자 쓴 커피는 못 먹어서 핫초코지만.


그에 반해 선배는 평소에 자주 마셨는지 드립커피를 아무렇지 않게 마시고 있다. 도대체 저 쓴 걸 뭔 맛으로 먹는 건지….


식사 때 수능은 어쨌다니 저쨌다니, 학교에서 있던 사소한 일까지 다 얘기하다보니 지금은 대화 소재가 고갈돼 누가보면 이별직전 남녀처럼 어색한 분위기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찢은 것은 평소 같았다면 나였지만 웬일인지 이번에는 선배가 대화에 운을 띄웠다.


"소영이 넌 장래희망이 뭐야?"


평소에는 '너'라고만 부르던 사람이 이름까지 불러가며 다정다감하게 말하는게 어색했다. 하지만 그런 어색한 변화도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으음─ 글쎄요. 딱히 지금 생각해둔 건 없는데 아버지는 공무원이 철밥통이니까 공무원하시라고 하시고… 카레이서 같은 거 하고 싶긴 한데."


"카레이서?"


"멋있잖아요. 부아아아앙 질주하면서 자동차로 묘기부리는 거 보면 아드레날린이 치솟잖아요!"


"……너답다."


어이없었는지 실소를 터뜨린다.


실소도 웃음이라도 했던가, 선배가 웃는 걸 그 때 처음보았다.


"선배는 계속 경찰이죠? 대학도 그쪽이고."


"일단은."


일단은? 내가 의문형으로 반문하자 선배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더니 눈을 감고는,


"너도 알다시피 겉 껍대기는 멀쩡해보여도 속은 엉망이잖아."


세상에서 가장 뼈 아픈 얘기는 사실에 근거한 팩트 폭행이라 했다. 그런 잔혹하고도 잔인한 행동을 선배는 무덤덤하게 자신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체력검정이 되든 안 되든… 도전은 해볼거야. 되면 정말 좋지만 솔직히 안 될 것 같네."


"해보지도 않고 벌써부터…."


"내 몸상태는 내가 알아."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는 벽 아래 소년은 점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만약 선배가 안 되면 내가 경찰이 될게요."


"네가?"


"선배 경찰되려는 거, 그 나쁜 놈들 잡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제가 대신해서 잡아줄게요."


나는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했지만 선배는 일소로 붙이며 "그래주면 고맙지."라며 가볍게 넘겼다.



* * *



그 후에도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보니 시곗바늘은 8시를 지나고 있었다.


"그럼 내일 봐요 선배!"


선배가 근처 역까지 바래다줬을 때 아직 전철은 네 정거장 전이었다.


시간적으로는 여유는 있었지만 플랫홈에 먼저 서 있는 게 낫다는 생각에 미리 가 있기로 했다.


선배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며 뒤돌아섰을 때,


"소영아!"


처음으로 선배가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줬다.


이 때 직감적으로 왠지 선배가 고백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춘 멜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고백하는 건 솔직히 극혐이긴 했지만 그런 쪽팔림을 감당할 정도로 선배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그 짧은 찰나 굳게 마음 먹고 뒤돌아섰지만,


"네?"


"아…."


선배는 오른팔을 앞으로 뻗은 채 무언가 홀린 사람처럼 서 있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대실망.


쑥맥한테 큰 기대를 한 내 잘못도 있긴 하지만 이 때 솔직한 심정으로는 김이 새다 못해 남자답지 못하게 구는 선배에게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기에, 굳이 선배 쪽에서 다가와주지 않아도 졸업식날에 내가 먼저 다가갈 것이기에 이번만은 용서해주기로 했다.


"뭐에요… 저 그럼 진짜 갈게요!"


피식 웃으며 나는 플랫홈으로 내려가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가 씻고, 조금 공부하는둥 마는둥 하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평소 같은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잠들었지만───



다음날 학교는 선배의 죽음 소식으로 발칵 뒤집혔다.



선배의 직접적인 사인은 교통사고였다.



사고 경위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도중 불산가스 테러 후유증으로 인한 급성 호흡곤란증상이 발현, 숨이 쉬어지지 않아 그대로 주저 앉아 목과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하고 있을 때 신호가 바뀌고─ 주저 앉아 있던 선배를 보지 못한 승용차가 그대로 들이받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끼리 이야기하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 같았기에 나는 오늘도 미술실에 갔지만 선배는 없었다.


그렇게 허무하게 내 첫사랑은 끝났다.



* * *



에필로그 1


"라는 이야기랍니다~"


밝은 목소리로 끝맺어봤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유미의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라? 경정 님 울고 있는 거에요?"


"울긴 누가 울어! 그래서 결국 초콜렛은 언제 받은 건데!"

"아~ 그거 1학년에서 2학년 넘어갈 때 받았어요."


"그 얘기만 하면 되는 걸 왜 사족까지 붙인거야!!"


"데헷?"


"강소영 경위!!"


역정을 내는 상관을 뒤로 하고 빙글하고 돌아가던 도중 강 경위의 서류 폴더에서 묵직하게 무언가가 한 장 떨어진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게 나타난 체육복 차림의 소녀가 정면을 바라본 채 굳어있는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코팅한 그것에는 코팅지에 네임펜으로 '보물 1호☆'라고 적혀 있었다.




에필로그 2


"그럼 내일 봐요 선배!"


평소처럼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는 후배를 근처 역까지 바래다줬을 때 아직 전철은 네 정거장 전이었다.


시간적으로 여유는 있다.


그러기에 벌써 헤어지기는 섭섭하다.


아니─ 섭섭하다고 애둘러 표현하고 싶지 않다.


보내주기 싫었다.


조금이라도 함께 더 있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이 아니면 '좋아한다'라는 네 음절의 짧은 말을 더 이상 말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기에 후배를 불러세웠다.


"소영아!"


앞으로 나아가던 후배가 무슨 일인가 하는 의문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돌아섰다.


"네?"


"아…."


하지만 막상 뒤돌아봤을 때는 그 간단한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 것도 아니야……."


"뭐에요… 저 그럼 진짜 갈게요!"


만약 그 때─

내가 조금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그 손을 잡았더라면,

조금만 더 같이 있어달라고 말했더라면,

내 역사는 바뀌었을까──





후기


1편 후기에도 썼지만 이 스토리 원전은 따로 있고 거기는 해피 엔딩임


그리고 결말이 갑작스럽고 허무하게 느껴질텐데 의도한 거임


인연이라는게 가족이든, 친구든, 연인이든 처음 만남을 갖는 순간부터 서로 외줄타기 하듯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켜가며 함께하는 시간은 참 길고 힘든 법이지만


헤어지는 것, 특히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허무하더라. 그걸 표현하고 싶었는데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