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에게 있어 구원이었다.

 

 

 

 

“이, 이봐. 말로하자고.”

“닥쳐. 말로 하자고 해서 기다린 게 벌써 2주 째다.”

“으윽..”

 

딱히 이녀석에게 원한이 있거나 한건 아니다. 이자식은 돈을 빌렸고 그것을 제때에 갚지 않았다. 그저 그런 간단한 이유에서 벌어진, 아주 사소한 트러블일 뿐이다.

 

“리타 양. 폭력은 좋지 못합니다만. 기계인 저조차도 이해하는 걸 인간인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시끄러운 잔소리.

 

“다음엔 주의하지, 사장님.”

“다음이 대체 언제인 겁니까? 저번에도 그랬고 저저번에도 그랬고..”

 

어쨌거나 좋다. 이런 잔소리에서 나오는 일상감은 생을 실감하게 만들어준다. 다만 너무 효과가 짧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건 그렇고, 다시 일이다.

 

“내일까지 사무실로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다이브하는 함선 외벽에 산채로 묶어서 이면세계 구경을 시켜주지. 오베르타!”

 

총알보다도 작은 금속 무기질이 날아와 상대의 어깨에 박힌다. 

 

“끄아아아아악!"

“표식이다. 돈을 가져오면 없애주지. 그건 네가 죽을때까지 제거하지 못해. 그리고 그게 박혀있는 이상 나는 네 위치를 언제든지 파악할수 있고.”

“예...예..”

 

바닥을 기며 고분고분해지는 상대의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절로 더러워진다.

 

“어쨌든 이건 이정도로 하고, 다음은 어디지?"

 

호라이즌 AI를 탑재하고 있던 드론에서 붉은빛이 몇번 깜빡이더니 곧 먼저 움직인다.

 

“조금 멀군요. 서두르도록 하죠. 오늘은 당신의 생일 아닙니까? 생일 축하파티 정도는...”

“시끄러워. 그딴 거...”

 

뒷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왜였을까. 생일을 축하한다는 것 자체에 묘한 거부감이 있다. 사는 의미를 몰라서, 라거나, 왜 낳았어! 하는 어린아이들의 치기와는 다르다. 그저...

 

“...일이나 하자고."

“예.”

 

잠시 말이 없던 사장은 곧 움직이고 그 뒤를 따랐다.

 

 

 

 

 

어두컴컴한 방. 낡은 백열전등.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한껏 흔들리며 틈새로 외풍의 침입을 허용하는 낡은창틀.

요즘 같은 시대에 백열전구라니. 절로 쓴웃음이 나오는 장면이다. 

가난의 클리셰를 몽땅 박아넣은 듯한 집구석에서 어린아이 혼자 일을 하고 있다. 인형에 눈 붙이기. 거의 모든 게 자동화된 시기에 저런 잡일을 잘도 구했구나, 묘한 감탄을 하며 입을 열었다.

 

“꼬마야. 부모는?”

 

집중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들어온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군청빛 머리칼의 소녀는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어..아? 넹? 아까 저녁에 나가시더니 아직... 그런데 누구세요?"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소녀는 얼굴을 붉혔다.

 

“빚쟁이. 언제 들어오는지는 알고 있지?"

 

조금, 소녀의 낯빛이 변했다.

 

“저도 잘.. 매일매일 달라서요."

 

헤헷, 하면서 천진난만하게 웃는 소녀의 모습을 보자니 기분이 나빠졌다. 저녁도 굶은 채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천진난만하게 구는 것은 연기일까, 천성일까. 대부분 만났던 놈들은 연기였지만 이 꼬마는 조금 달랐다. 이것조차 연기라면 속아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순진해보인다.

 

찰칵,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좁은 방안에는 금세 연기가 가득차 시야를 자욱하게 가린다. 그럼에도 소녀는 묵묵히 일을 한다.

 

“꼬마야, 저녁은?"

“넹? 아.. 먹을 게 없어서.. 그래도 내일이면 이거 보내고 돈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기엔 혼자서 하기에는 한참 많은 양이다. 밤을 새지 않고서야 도저히 할 수 없는 수량.

 

“일은 누가 갖다주는 거냐.”

 

담배를 비벼끄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묻자 소녀는 눈치를 보았다.

 

“그, 그게.. 아버지가.."

“그리고 그놈은 지금 어딘가에 나가있고? 먹을거 하나 없는 곳에 너 혼자 냅두고?"

 

비난이라고 느낀걸까. 소녀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따라와. 저녁 정도는 사주지."

“하, 하지만 일이.."

“됐으니까 빨리."

 

내심 후회했다. 좀더 다정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잘못은 이녀석의 아비가 저지른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