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힐데는 별도 별로 안 뜬 어둑한 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내뿜은 담배 연기에 시야가 뿌얘졌다. 담배연기가 매워서눈물이 났다. 담배연기 때문일 것이다.
'별 볼일 없군, 하늘도 나도.'
늘 그래왔듯, 맥주나 마시고 잊자. 그녀는 쉽게 취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싸디싼 맥주 한잔만 마셔도 비싼 독주를 마신 것처럼
금새 자신을 잃었다. 참으로 가성비 좋은 주량이 틀림 없었다.
'이런 이수연이나 좋아할 만한 이유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다니.'
힐데는 피식 웃고는 다시 한모금 깊게 담배를 빨았다.
"필멸자들은 울다가 웃으면 똥꼬에 털난대. 발키리."
높고 날카롭지만 장난스러운 소악마의 목소리가 그녀를 놀래켰다.
"뭐냐, 아스모데우스냐. 울다니 내가 언제!"
"방금 흘린 건 눈물 아냐? 그렇게 예쁘게 꾸미고 어딜 가는 거야?"
"맥주마시러 펍에 간다."
"평소처럼 칙칙하게 입어도 되는 펍에 굳이 한껏 치장하고 가는거야? 헌팅이라도 노리는 건가? 아하하하하."
"자꾸 걸리적 거리면 벤다."
"충고 하나 할게. 대부분 남자들은 담배피는 여자 안 좋아해."
힐데는 뜨끔해하며 담배를 발로 비벼껐다.
"히이~? 남자만나러 가는거 맞나 본데? 맞지, 맞지?"
"내가 남자를 만나든 여자를 만나든 네 알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니, 남자만나는 건 괜찮지만 나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는 건
안돼."
힐데는 순식간에 로자리아에게서 두걸음 물러났다.
"나는.. 그런 취향 없다 아스모데우스."
"아하하, 농담이야. 너는 그 반응이 너무 재밌다니까? 하아..
버릇될 것 같아.."
힐데는 그녀의 오랜 악우. 마왕 로자리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둥실 떠다니는 '옥좌'에 앉은 그녀는 힐데만큼이나 어려보이는
외모에, 빈약한 가슴과 그에 대비되는 준수한 골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앳된 외모라는 건 틀림 없었다.
"아스모데우스. 궁금한 게 있다."
"뭔데에? 내 취향이라면, 호박색 눈동자에 은회색 머리칼.."
"너 음모 있냐?"
"음모? 아니, 그냥 너 보러 온거라니까. 꾸미고 있는 거 없어."
"아니... 털 났냐고. 거기에."
내내 여유로운 태도로 힐데의 머리꼭대기에 앉은 것 마냥 행동하던
로자리아의 얼굴이 폭발할 듯 빨개져서는 당황했다.
"아, 아니 그건 갑자기 왜? 아직 나 맘의 준비가... 손질이.."
"됐고, 있냐고 없냐고. 직접확인하기 전에 대답하도록."
"...있어."
"...씨발."
힐데는 조용히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로자리아는 당황해 얼굴이
빨개지고선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아스모데우스, 너는 도마랑 섹스하냐?"
"도도도도도도마랑? 뭐를 해? 너는 기르는 개랑 관계 맺니?"
"색욕의 마왕인 너라면 있을 법한 이야기지."
"안 하 거 든 ? 개랑 안하거든? 당연히 도마랑도 안해!"
"그러냐. 알겠다. 나는 술이나 마시러 갈테니까 갈 길 가라."
로자리아는 놀리러왔는데 놀림받은 것 같은 억울함에 빠져 힐데가
어째서 저렇게 저기압인지 머리를 풀가동해 유추하기 시작했다.
한껏 꾸민 상태로 울고 있던 그녀, 갑작스럽게 훅 들어온 음모보유
여부질문과 이어진 욕설, 성관계 관련 질문.
'아하, 발키리 이 귀여운 녀석. 섹스하고 싶었는데 털 없다고
퇴짜맞았구나? 흐흐흐. 남자가 필요한 암컷이었구나 가엾게도.'
로자리아는 음흉하게 웃으며 펍으로 향하는 힐데를 불러세웠다.
"뭔데? 자꾸 거슬리면 벤다고 했지?"
노골적으로 짜증난 표정으로 힐데가 말했다. 꾸미긴 했어도 평소의
펜릴 소대장다운, 늑대같은 도끼눈.
"아하하, 진정해. 너한테도 좋은 일이니까. 내가 아주 괜찮은
남자 하나 소개시켜줄까 하거든. 사실 그거땜에 찾아왔었어."
"뭐..?"
'늑대가 미끼를 물었군.'
로자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다음에 약속장소, 시간 잡아서 알려줄게, 그때까지 담배
꼭 끊어~ 아하하하."
힐데는 밤하늘을 날아가며 시야에서 멀어져가는 의자를 망연하게
바라보며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쓰레기통에 집어 넣고 발걸음을
돌렸다. 신발이나 신고 다니라는 말을 못해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