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은 https://arca.live/b/counterside/29353607)

(전에 쓰던 소설 주시연 버전으로 리메이크 해봄)


===========================


주시연은 흰 병상에서 눈을 떴다. 푸른 눈동자에는 익숙한 병원의 천장이 담겨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저 입원했었죠..."


희고 고운 손으로 이마를 짚은 그녀는 이윽고 느껴진 통증에 신음했다. 어깨죽지에서부터 가슴에 이르는 큰 흉터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격통을 선사했다.


"윽..."


아마도 용혈에 반응하는 특수한 무언가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해당 부위의 피가 끓어오르고 피부가 찢어지는 고통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니까. 


"벌써 일주일 째인데... 미치겠네요 진짜."


관리자의 배려로 최고급 병실에서 최고의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상처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오히려 상처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처는 욱씬거렸고 주시연은 그럴 때마다 진통제에 의존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되도록이면 문병온 사람들 앞에서는 그 사실들을 숨기고 있었다. 


창가에 놓인 음료수와 과자들은 그녀를 찾아온 사람들의 수를 의미했다. 그녀가 저지른 말썽과는 다르게 그는 두루두루 친한 사람들이 많았다. 알트 소대를 대표해서 온 서윤은 돈을 모아서 사왔다며 고급 과자를 선물했다. 이수연은 당신은 회사의 재산이니 몸조리 잘하라며 알로에 주스를 두고갔다. 


"... 이거 다 먹고 마시면 살이 찌겠네요 하하..."


멋쩍게 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베베 꼰 주시연은 이수연이 두고 간 알로에 주스를 까서 들이켰다.


"부사장님 취향도 참... 올드하네요."


아마 이수연이 들었다면 병자고 뭐고 각오하라며 병실 구석에 있는 티비부터 집어던졌을 것이다. 주시연은 알로에 주스를 반 쯤 마시다 창가에 그대로 놓은 후 이수연이 한 말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시연 양의 용혈과 관련이 있는 사건 같습니다.]

[현장 근처에서 용혈을 추적하는 장비의 부품을 발견했으니까요.]

[당분간 몸을 사리는게 좋겠군요. 그럼 전 이만, 몸조리 잘하세요.]


주시연은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용혈 때문에 노려진다니. 눈 앞에서 살해당한 부모님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겨우 진통제의 여파로 잠들었다가 일어난 참이었다.


"무슨 정력에 좋은 보약도 아니고 다들 용혈 용혈..."


주시연은 자신에게 용혈을 깨울 것을 제안한 남자를 떠올렸다. 기분나쁜 웃음과 함께 여섯장의 날개를 펼친 남자는 무척이나 강했다. 전력을 다해 덤볐는데도 몸에 바람구멍이나 다섯 개나 생겼었으니까.


"그런 남자 트럭으로 가져다줘도 사양이죠 보통은."


혼자있는 병상  생활은 지겨웠는지 주시연은 최근 부쩍 혼잣말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 때, 병실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들어왔다.


"시연 양 괜찮아요?"


김하나는 근처 도시락집에서 새우튀김 도시락을 포장해와 주시연 옆에 놓인 테이블에 올련놓았다. 병원밥은 맛이 없다며 매 끼니마다 도시락을 가져온 것이다.


"이러실 필요 없다니까요 김하나 부장님."


"에이 시연 양은 이제 언니라고 불러주지도 않네요."


부모를 잃고 코핀 컴퍼니로 온 주시연은 작전부 견습으로 배정받았었다. 그때도 남사원을 비롯한 모든 직원들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주시연을 그나마 제대로 챙겨준 것은 김하나였다.


주시연이 카운터 용병으로 빠진 후로는 만나는 일은 줄었지만 여전히 같이 밥을 먹거나 하는 친분은 유지하고 있었다.


"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그야 당연히 맛없는 병원밥 대신 먹으라고 도시락 배달 온 거죠."


"다른 목적은 없으신 거죠..?"


"무슨 목적이라뇨?"


김하나는 의아해했다. 주시연은 스승은 휴대폰을 잘 쓰지 않으니까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안부를 물어주리라 기대했었다. 주시연은 애써 아니라며 부정한 후에 도시락 뚜겅을 열었다.


"그나저나 시연 양을 습격한 범인은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래요."


주시연은 도시락에 들어있던 불족발냉채를 우물거리면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누군지 몰라도 잡히기만 하면..."


김하나는 티비에서 본 격투기 기술을 흉내냈고 주시연은 그제서야 옅게 웃었다. 허나 그런 광경도 잠시 병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힐데는 잠시 밥을 먹던 주시연을 바라보더니 김하나에게 잠시 둘이 나눌 이야기가 있다며 나가달라고 부탁했다.


김하나는 사제간에 오붓한 대화를 나누시라고 한 후에 회사로 향했다.


"...이야기는 들었다."


"그러시겠죠."


"습격한 놈은 누구였지?"


"기억이 잘 안나네요 하하..."


도시락을 구석으로 치운 주시연은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승님 주스 하나 드실래요?"


구석에 놓여있던 주스 상자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낸 주시연은 평소처럼 여유롭게 웃었다. 지금도 상흔에서 일어나는 격통으로 식은땀이 났지만 김하나의 앞이니, 힐데의 앞이니 애써 웃고 있었다.


딱 하나 남은 오렌지 주스를 건넨 오렌지 주스를 건넨 주시연의 손은 곧 무안해졌다. 꽤 맛있어서 아끼던 주스였는데도 힐데는 그 호의를 무시하고 대화에 집중했다.


"... 용혈을 사용한 것은 아니겠지?"


주시연은 다시금 부모님이 살해당한 그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얼굴에 부모님의 피를 묻혔던 그 얼굴이 그녀의 눈 앞에 있었다.


"그럴리가요. 그러면 누구한테 무슨 꼴을 당하는지 잘 아는데."


힐데는 그 답변을 듣자마자 등을 돌렸다.


"그럼 됐다."


테이블 위에 오렌지 주스를 탁 소리나게 내려놓은 주시연은 서운한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찮냐고는 묻지 않으시네요."


"살아있는 것은 확인했으니 말이다. 세상 참 얄궃군."


힐데는 그 말을 끝으로 병실의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주시연은 힐데가 무시한 오렌지 주스의 뚜겅을 따고 단숨에 들이켰다. 새콤달콤해야 할 주스가 묘하게 씁쓸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