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더니~ 카일 걔가 갑자기 끼어들어선 나보고 정리도 안하고 산다고 뭐라고 하는거 있지?!"
"하여간 카일 걔는 뭐든지 끼어드는 버릇좀 고쳐야돼... 그러니까 부대원들 사이에서도 평이 안좋은거 아니겠어?"
"...그래서 결국 제이크가 한동안 청소를 다 맡았다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다신 못볼 광경이었다고 ㅋㅋ"
...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분명 두시간 전, 실비아와 나는 그녀의 집에 도착해, 각자 정리를 하고 있었다.
"옷은 여기다 두고... 화장실은 요기 쭉 돌아가면 있어. 바로 오른쪽 방은 내 작업실이니까 들어올때 메일 보내고 오고..."
"아! 핸드폰이 없다고 했나? 안쓰는 태블릿 하나 줄게, 여기 내 메일도 적어둘테니까 내 방 들어올땐 꼭! 메일로 미리 알려야 된다?"
"그리고... 이불! 침실에 남는 이불이 좀 있으니까 그거 가져올게. 서재라 좀 춥긴 한데... 그래도 밖보단 나을테니 됐지?"
"고맙네. 자네에게 이런 도움을 받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응? 나 알아? 날 잘 아는 말투다?"
"이름을 듣고 알았을 뿐이라네. 델타 세븐의 지휘관인 마리아와는 나도 좀 인연이 있어서 말이야."
"오... 우리 아줌마랑 친한가봐? 웬만큼 친한 사람 아니면 내 얘기는 안할거 같은데."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닐세. 그저 업무 관련으로 조금 만나봤을 뿐이야."
"그나저나, 아까 들어왔을 때 봤는데, 좀 거대한 선반이 있던데, 뭘 올려놓은건가? 책은 전부 여기 있는거 같은데."
"아... 그거? 내가 세상에서 두번째로 아끼는거야. 술!"
"두번째? 그럼 첫번째는 무엇인가?"
"뭐긴 뭐야? 당연히 나지. 이 험난한 세상에선 나 자신을 매우 잘 아껴야 한다구."
"한잔할래? 어... 그러니까... 이름이? 계속 이렇게 부를 순 없을거 같은데."
"난..."
[SYSTEM : 관측자의 보안 등급이 올리브 등급으로 상향됩니다.]
[SYSTEM : 관측자의 보안 등급 상승으로 인한 2급 보안기밀 유출 방지 프로토콜 해제. 이상 인지도 필터, OFF. 객체 인지 필터, OFF.]
[SYSTEM : 상승된 보안 등급을 DB에 반영합니다. 다음 객체가 관측자 한정 개방됩니다. [관리자.이름] ]
"...유빈"
"나유빈임세. 편하게 유빈씨라고 불러도 좋네."
"좋아, 나유빈씨. 한잔 할래? 마침 위스키가 땡겨서."
"나도 한잔. 올드패션드로."
"오케이~ 메이커스 마크에 앙고스투라 비터. 따로 이견은 없지? 이견 있어도 안받아줄거야. 그냥 먹어."
"뭐, 가릴거 뭐 있나. 그보다 집에 비터가 있는게 신기하군. 술을 상당히 좋아하나봐?"
"뭐, 어릴때부터 세계 각국의 술을 수집했으니까. 여긴 술이 남아있는것만 가득하지, 뒤쪽에 창고 가보면 공병들도 잔뜩이야."
"이따 보러갈래? 보니까, 술 잘 아는거 같던데."
"아, 비터는 투 대쉬로."
"나도 술은 자주 마셨다네. 그냥 가볍게 아는 정도지."
"좋아! 여기다 레몬 필까지 올리면... 올드패션드 한잔 대령이요!"
달콤한 술이, 내 입을 타고 흘러들어온다.
알코올의 향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와, 정신을 취하게 한다.
점차 기분이 몽롱해진다.
"캬~ 내가 술을 이래서 못끊는다니까?"
"버번 콕이로군. 단걸 좋아하는 편인가봐?"
"물론이지, 단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오히려 난 아까 비터를 두방울이나 떨어뜨려 달라는 거 보고 좀 놀랐는데."
"저번부터 그렇고 엄청 애늙은이 같다. 혹시 막 엘프라서 600년 살고 그런거 아니야?"
정곡을 찔렸다. 이게 여자의 직감이란건가...
아님, 그냥 내가 너무 신기한 인생을 산 걸지도.
"하하. 그냥 남들보다 못 볼 꼴을 더 많이 봤을 뿐이라네."
"으음~ 그럼 우리 유빈이 오빠는 몇살이야? 겉만봐서는 거의 20대 같은걸?"
여기서 600살이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 재조립한 신체 나이로 해야겠군.
"하하. 이제 막 서른셋이라네. 현장직을 많이 다녀서 말이야."
"오오... 그럼 태스크포스에서 일하던건가? 어디 회사야?"
"별 데 아니네. 이름을 알려줄 정도로 큰 회사는 아니라서 말이야..."
"음... 나도 사실은 지금 좀 큰 태스크포스에서 일하고 있거든? 근데 여기가 델타세븐보다 나은 거같애~ 그냥 여기다 말뚝 박고싶더라."
"뭐, 종신계약이라는게 있으니. 그 회사에서도 열심히 하면 계속 그곳에 있을 수 있는것 아닌가?"
"사실 내가 사정이 있어서... 델타 세븐을 못떠나거든. 이번에도 기간 끝나면 다시 델타로 돌아걸거야."
"뭐, 그럼 결국 델타 세븐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하는거 아닌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건가?"
"말도마. 거기에 얼마나 짜증나는 녀석들이 있는지 알아? 정말 마리아 아줌마만 아니었다면 그냥 감옥 들어가고 말았을걸?"
실비아가 술을 다시한번 들이킨다. 어지간히도 답답한 모양이다...
"에휴... 내 말좀 들어봐. 거기에 카일 웡이란 애가 있다? 얘는 내사과거든? 근데 얘가 어~찌나 딱딱한지, 저번엔 내 책상 가지고도 트집을 잡더라니까?"
"뭐... 누구에게나 중요한게 있기 마련이지. 자네가 잘 이해해줘야 하지 않겠나?"
"또~ 나왔다. 니가 이해해달래. 그런 소리는 마리아 아줌마한테 백번이고 천번이고 들었거든? 오늘 처음 본 사람한테까지 그런말 듣고싶지 않네요~ 붸에~"
그녀가 퉁명스럽게 혀를 내밀어보인다.
"하하. 이거 내가 괜한 소리를 한건가? 하긴, 그 마리아 중장이면 비슷한 소리를 하겠지."
"카일만 문제면 또 몰라, 저번에는 제이크까지 날 못살게 굴더라? 진짜 짜증나."
"그냥 밤중에 밖에 좀 나다니는게 뭐 어때서! 근데 그걸 가지고 마리아 아줌마한테 꼰지르니 뭐니 하는건 심하다고 생각 안들어?!"
"에휴... 이러나 저러나 다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내 팔자는 왜 이리 안좋은지..."
"하아... 그냥 일 안하고 맨날 이러고 살고싶다. 안그래? 옛날엔 이럴 걱정도 없었는데~"
다시한번, 잔에서부터 그녀의 입술을 타고 흘러들어가는 술. 이걸로 세잔째다. 너무 마시면 안될텐데...
"뭐, 일을 해야 사람이 사는 의미가 있지 않겠나, 나는 일 말고는 다른걸 잘 안해봐서..."
"지인짜? 그럼 뭐 취미같은것도 없어? 불쌍해라~ 인생 심심해서 어떻게 살았대애~?"
"조아!! 그럼 내일은 일도 없는데 우리 나유빈 오빠랑 방방곳곳 탐험이다!!"
"그... 괜찮나 실비아양? 많이 취한것 같은데..."
"괜차나 괜차나 나 안취했어! 봐바 이렇게 창고도... 으앗?!"
순간, 창고로 올라가던 그녀의 몸이 휘청였다.
이대로라면 넘어질게 분명하다, 라는 판단을 할 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콰당
"... 역시 몸을 쓰는 일은 안맞는군. 조금 미안하게 됐네, 실비아양."
"...그래..."
"저기이... 아까 떨어지면서 엉덩이를 찧은거 같은데... 침대까지 데려다주면 안될...까?"
"... 알겠네. 자네 침실로 데려다주면 되는거겠지?"
별 의미는 없다. 나는 그녀를 들어올려 침실에다 내려놓는다.
"잘자~ 내일 봐~"
"잘 자게나 실비아양."
실비아가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진걸 들키지 않은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걸, 난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실비아의 집에서. 하루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