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0024504?category=%EC%B0%BD%EC%9E%91&p=2#comment


2편: https://arca.live/b/counterside/30068415



"그래서 이건 무슨 장치인거죠?"

 장치에 누워 머리에 헬멧을 쓴 달이 물었다. 헬멧과 장치가 연결된 선을 확인하는 동안 올리비에 박이 달의 질문에 대답했다.


 "관리국에서 예전에 기억재생기란 걸 만든 적이 있어요. 해마에 전기자극을 가해 원하는 기억을 재생하는 장치였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제품이었는데 이번에 완제품이 만들어졌어요." 

 "흐음……."

 "부작용으론 사용직후의 착란과 두통정도?"


 "새 신입 괜찮겠느냐?"

 힐데는 누워있는 달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달은 입술을 꽉 물고 있다 말했다. 


 "전 괜찮아요. 이제 돈도 받는데 빨리 제값해야죠."

 힐데는 그 말을 듣고 입에 말이 맴돈다는 듯 잠시 달을 바라보았다.


 "뭐, 그 편이 너한테도 좋겠지."

 그런 힐데가 한 말은 이런 상투적인 말이었다. 그러던 중 올리비에는 아 그리고라고 말하며 사람들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화면과 연결하면 다른 사람들도 화면을 통해 그 기억을 시청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실래요?"

 그녀는 그 장치 옆에 있는 작은 텔레비전을 가볍게 턱짓하며 물었다.


 "아무래도 당사자말을 들어봐야 겠는데요?"

 주시윤의 말을 듣고 힐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달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새 신입. 너한테 선택권을 주마. 이걸로 보여주던 말로 하던. 아니면 말해주지 말던 너가 정하거라."

 "나도 달의 의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왕이면 본인 얘기니까 본인한테 직접 듣고 싶어. 어때?"

 두 여자가 달을 보며 말했다. 


 "화면은 괜찮아요."

 달은 용기를 낸 듯 말했다. 그 말에 올리비에는 어쩐지 아쉬워하며 조교를 호출했다. 곧 버튼이 눌린 기계는 거대한 진동음을 내기 시작했다. 달은 그 장치가 채 작동하기 전에 쉼호흡을 네다섯번을 했지만 그걸로 긴장이 다 풀리진 않았다. 곧 달은 원통형의 기계 안으로 꼭 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몇 시간 걸려요."

올리비에는 미소지으며 남은 소대원들에게 말했다.


 "잘 될까? 결국 트라우마를 꺼내본다는거 아니야?"

 "그렇죠. 하지만 달군이라면 잘 해낼거에요.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한다면 펜릴 소대 실격이다. 그러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기도나 해주도록"

 "역시……., 스승님은 참 솔직하지 못하세요?

 주시윤은 스승의 그런 말을 듣자 은근한 말투로 말했다.


 "응 뭐라고? 다시 한 번 말해보도록."

 힐데는 제자를 째려보았고 주시윤은 능글거리게 웃으며 대화를 끝냈다.


 *


 발바닥 밑으로 단풍나무로 된 바닥이 느껴졌다. 몸이 무겁고 답답하다. 시야가 좁다. 아…….., 검도장이구나. 기계 속에서 눈을 감았던 달이 의식을 떴을 때 맨 처음 한 생각들은 이것들이었다. 달은 자신의 손에 쥐여진 죽도의 칼자루를 다잡았다. 


 달과 상대 사이에 깃발을 거세게 들어올리며 심판은 시작이라고 외쳤다. 달은 발뒤꿈치를 들고 오른다리를 앞세워 상대에게 달려나갔다. 첫 번재 공격은 동시에 머리를 쳐 불발되었다. 이후 서로는 칼자루를 맞대며 경합을 벌였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먼저 팔에 힘을 주고 거세게 뻗은 것은 달이었다. 밀려난 상대는 뒤로 넘어갔다. 머리부터 땅에 박으며 넘어진, 위험한 모양새였다. 달은 당황한 채로 상대에게 달려갔다. 상대는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듯 일어나질 못했다.


 "경기 계속 할 수 있어요?"

 상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저 꼭 이겨야 돼요 라고 말하는 듯. 둘은 다시 칼을 겨눴다. 깃발이 올라가자 둘은 다시 서로에게 칼을 휘둘렀다. 1초에 두 번씩 움직이는 죽도. 급소를 향해 움직이는 검을 따라 둘은 빠르게 몸을 놀렸다. 심장은 점점 빨라졌고 그럴수록 악을 쓰듯 기합소리는 커졌다.


 결국 이긴 것은 달이었다. 달은 그렇게 국가대표가 되었다. 그 날 저녁부터 달은 손가락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일시적인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합숙 훈련 중 달은 손에 힘이 빠져 검을 놓쳤다. 덜덜 떨리는 손의 증세는 점점 심해졌고 달은 결국 병원을 향했다. 힘줄 부상이었다. 그 날의 시합으로 생긴 것이 분명했다. 한국검도최고의 유망주는 그 날 부로 검도를 그만두었다.


 단순히 자신의 부상때문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뒤로 넘겨버렸던 상대는 그 날 심한 뇌진탕 증상을 호소하며 입원했다. 그가 재활불능판정을 받았다는 것이 달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활달한 편이었던 달의 성격이 바뀐 것은 그때부터였다. 망쳐버린 두 인생이 자신의 손 끝에 아직도 남아있는 듯.


 *


 "어? 어? 교수님?"

 기계에 부속되어있는 화면을 보던 조교가 다급하게 말했다.


 "조교야 무슨 일인데 그러니?"

 "오류……., 기기오류에요!"

 "뭐라고? 관리국 놈들 완제품이라면서…….., 일단 사람부터 꺼내."

 연구실에서 한바탕의 소동이 있었다. 다행히 기계에서 달을 쉽게 꺼낼 수 있었다.


 달은 또 다시 갑작스런 감각을 느꼈고 그에 의해 정신을 차렸다. 누군가가 찬물을 얼굴 위로 냅따 부어버린게 분명했다.


 "괜찮아? 정신 들어?"

 "새 신입 괜찮나? 기억은 보고 왔나?"

 "달군 괜찮으세요? 부작용이 있다던데요."

 달은 그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정신이 막 깨어난 시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오는 질문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이에 있는 소대원들의 얼굴들. 그런 요소들이 더더욱 달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일단 정신 좀 마저 차리고……..,"

 다행히 착란이나 두통같은 증상은 달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그곳에서 잠시 달의 상태를 지켜본 후 연구실을 떠났다.

"

 "그건 그렇고……., 과밀정보에 의한 오류라니……..,"

 "기계가 이상한 거 아니었을까요 교수님?."

 "흠……., 역시 그렇겠지. 고등학생 정도의 애한테 이런 오류가 생길리가…….,"


  *


"새 신입 물 좀 챙겨줘라. 시윤."

"하하. 말 안해도 그럴려고 했답니다. 스승님."

세 명의 펜릴소대원은 괜찮다는 달을 휴게실로 끌고왔다.


 "저 진짜 괜찮아요."

 "만약을 대비한 일이니 따르도록."

 자신의 사수의 사수에게 물을 떠오라고 하는 힐데를 보며 달은 그렇게 말했다. 허나 소대장의 단호한 태도에 결국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주시윤은 물을 페트병째로 들고왔고, 달의 손에 들린 종이컵에 따라주기까지 했다.


 "잘 된거야?"

 물을 마시던 유미나의 말에 달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리적인 문제가 맞았던 것 같아. 난 그 기억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을 줄은 몰랐거든."

 유미나는 알겠다는 듯 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고쳐앉았다. 유미나의 옆에 앉아있던 소대장이 달에게 물었다.


 "이유를 알았다니 다행이군."

 "다행히 효과는 있었나보네."

 "꼭 말을 할 필욘 없다. 사생활이나 개인사에 대한 것 까지 모두 밝힐 필욘 없지."

 유미나의 질문에 힐데는 말하든 말든 자유라는 듯 무심한 말투로 대답했다. 


 "말해드릴게요. 그게 저한테도 더 나을 것같아요."

 그 말에 일순 조용해지며 세 명 모두 관심의 눈빛을 달에게 쏘아보냈다. 달의 가슴은 그가 한 말에 무색하게 쪼그라드는 듯 했다. 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얘기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이능을 사용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닌. 힘을 쓰는 것 자체가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라고. 의도와 힘의 과중함을 떠나 자신의 누군가의 삶을 망쳐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그래도……., 그 날 처럼 숨어 지켜보기만 하는 것보단 낫겠죠."

 달은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말하고 곧 꽉 주먹을 쥐여보았다.


 "그래서 어깨랑 힘줄이 안 좋았다고 한거구나."

 유미나의 말에 달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훈계를 할 필욘 없을 것같군. 퇴근시간이기도 하고."

 "그러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하하. 그러게 시간이 빨리 갔네."

 "여하튼 모두 수고 많았다. 특히 새신입."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달의 표정은 많이 달라졌다. 전보다 편해보이면서도 부드러운 눈빛 속에선 뼈가 있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


 "무슨 소린가 했는데 너였구나 새 신입."

 문이 열리며 훈련실 안에 밝은 빛이 스몄다. 그 빛은 뻗어나가 달을 비추었고, 곧 넓게 퍼져 박살들이 난 훈련용 머신갑로봇들이 보였다. 달의 손에는 죽도가 하나 들려있었다.


 "너가 한 것이냐?"

 "아……, 네. 현실개변력을 쓸 수 있지 않을까해서 퇴근하고 다시왔는데."

 달은 그렇게 말하며 뒷말을 대신 하듯 주변의 로봇들을 둘러보았다.


 '발전이 꽤 빠른데.'

 힐데는 훈련실 안 쪽으로 걸어들어갔다. 훑어보건데 머신갑 로봇들은 깔끔하게 베어져있었다. 힐데의 머릿 속에서 검을 쥐고 막힘없이 움직여 이 철덩이들을 베어냈을 달의 모습이 그려졌다. 


 "흐음……."

 힐데는 어느새 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자기보다 20~30센티는 차이날 그 여자에 달은 겁을 먹은 듯 몸을 슬쩍 뺏다.


 "겁 먹지 말도록."

힐데는 그렇게 말하며 장갑을 낀 손을 올렸다. 그리곤 달의 손을 감싸며 검을 쥐게 했다. 달은 흠칫 놀라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잡아보거라."

 "......., 아 넵!"

  달은 어색해하며 검을 다시 쥐었다.


 '파지는 괜찮고.'

 힐데는 그렇게 생각하며 달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많이 벌게졌는데. 아픈데라도 있느냐?",

 "아…….., 아닙니다."

 "그래?"

 힐데는 그렇게 말하며 달과 몇발자국 떨어졌다. 그리고 달에게 여러 동작으로 검을 휘둘러보라고 했고, 직접 훈련용 로봇을 물리치는걸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달은 잔뜩 긴장한 채로 죽도를 휘둘렀고 힐데는 그런 달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꽤 빨리 배우겠는데. CRF쓰는 거야 더 연습해야겠지만.'

 달은 어느새 땀을 흘리며 힐데를 쳐다보고 있었다.


 "국대후보였다는게 거짓말은 아니었나보군. 좋아. 내일부턴 내가 직접 알려주지. 꽤 힘들테니 각오하도록."

 힐데는 그렇게 말하며 절도있게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출구를 향해 걸었다. 그러다 문뜩 해야할 말이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달을 쳐다보았다.

 

 "펜릴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애송이."

 그렇게 말하곤 힐데는 그대로 회사를 떠났다. 달은 자신의 가슴이 평소보다도 격하게 뛰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건 단순히 몸을 움직이고 검을 휘둘러 일어난 현상이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을 펼쳐 자신의 심장 위에 두었다. 두렵고 차갑기만 할 줄 알았던 소대장의 온기를 달은 장갑 위로 느낄 수 있었다. 소대장이 떠나면서 던져준 그 한마디가 달에겐 가슴이 꽉 찰 정도의 격려가 되었다.